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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로서 살아온 30여 년의 세월과 더불어 인생 후반기를 맞아 행복을 추구하는 기술자의 변신 스토리입니다. --------- 기술 자문(건설 소재, 재활용), 강연 및 글(칼럼, 기고문) 요청은 010-6358-0057 또는 tiger_ceo@naver.com으로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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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배의 웰빙 풍수] 강과 암벽으로 둘러싸인 청령포는 천연 감옥… 장릉은 제사 향불 끊이지 않는 터

단종이 유배됐던 강원 영월군 청령포. 빠른 물살과 가파른 암벽에 둘러싸인 천연 감옥이다. 뉴스1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흥행에 성공한 이후 강원 영월군의 단종 무덤(장릉)과 유배지(청령포)가 관광 명소로 부상했다. 영월군에 따르면 장릉과 청령포의 누적 관람객 수가 5월 16일 기준 52만 명을 돌파했다. 벌써 지난해 연간 관람객(26만3327명)의 2배에 이른 것이다.

단종(1441~1457)의 삶은 그 자체로 사람들의 주목을 끌 만하다. 할아버지 세종과 아버지 문종의 기대 속에 역대 어느 왕보다 단단한 정통성을 갖고 왕위에 올랐지만 삼촌 수양대군(세조) 일파의 쿠데타로 하루아침에 권좌에서 쫓겨나 유배지에서 죽임을 당한 비운의 인물이니 말이다.

단종의 죽음은 왕실만의 비극도 아니었다. 의리와 충절을 핵심 가치로 여기는 선비 정신에 대한 도전이고, 유학을 국시로 삼은 조선의 정신을 훼손한 사건이기도 했다. 독립운동가이자 사회운동가인 고(故) 함석헌 선생(1901~1989)은 저서 ‘씨알의 소리’에서 세조의 불법적이고 부도덕한 권력 찬탈에 저항하다가 목숨을 잃은 사육신을 기리며 “세조의 피바람 뒤에 우리는 의(義)를 알았다. 사육신이 죽지 않았던들 우리가 ‘의’를 알았겠는가”라고 애도했다. 이 글은 서울 동작구 사육신공원 입구에 새겨져, 단종과 사육신 사건이 지금도 되새길 만한 역사임을 웅변하고 있다.

 

영월 단종 유적지에 인파 몰리는 이유

 

세상을 떠난 지 570년 가까이 된 단종이 지금도 인구에 회자되고, 각종 드라마와 영화 소재로 등장하면서 묘소에 참배 행렬까지 이어지는 현상은 풍수적으로도 주의 깊게 살펴볼 만하다. 좋은 기운을 가진 땅, 즉 풍수 명당은 사람을 끌어들이는 특징을 보이기 때문이다. 손님이 붐비는 가게, 소원을 비는 이가 들끓는 기도처, 가문을 빛낸 선조의 음택(묘) 등이 이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장릉과 청룡포도 명당에 해당할까.

먼저 청령포는 서강이 삼면으로 돌아 흐르고, 암벽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얼핏 보면 배산임수의 품격을 갖춘 터라 할 수 있겠지만, 나룻배 없이는 건널 수 없는 빠른 물살, 칼날처럼 가파르고 좁아 오르기 힘든 암벽 능선은 이곳이 천연 감옥임을 말해준다. 단종이 머문 청령포 어소 또한 터 기운을 제대로 받지 못한 곳이다. 정권을 가로챈 세조 측에서 단종을 좋은 곳에 머물게 했을 리 없으니, 의도적으로 고른 터라 할 수 있다.

그럼 장릉은 어떨까. 단종은 사망 후 한동안 방치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시신에 손대는 자는 삼족을 멸한다”는 왕의 서슬 퍼런 엄명 탓이다. 이후 당시 지역 호장(戶長·향리) 엄흥도가 몰래 시신을 수습했는데, 고사에 따르면 엄홍도는 산에 올라 단종 시신을 묻을 자리를 찾다가 소나무 밑에서 쉬고 있던 노루 한 마리를 목격했다. 겨울철 눈이 내리는 시기였는데 노루가 앉았던 자리에만 눈이 쌓이지 않은 것을 보고 바로 그곳에 단종 시신을 묻었다. 이 자리가 지금 장릉이라고 한다.

노루가 정해준 묘 터라는 이야기가 전해오는 강원 영월군 장릉.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장릉에 대해서는 풍수적으로 여러 견해가 나온다. 일단 이곳을 엄흥도가 단종을 묻은 터로 인정할 수 있는가 하는 회의적인 시각이 있다. 반면 산짐승이 머물다 갈 정도로 빼어난 갈용음수(渴龍飮水: 목마른 용이 물을 마시는 형상) 명당터라고 극찬하는 이도 있다. 일부에서는 과룡처(過龍處: 땅에 기운이 맺히지 못하고 흘러가는 곳)라며 부정적인 평가도 내린다. 필자 판단에 장릉은 그 터만으로 볼 때 수많은 사람이 즐겨 찾을 만한 천하 대명당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터가 사람을 끌어들이는 역량이 다소 부족하다는 뜻이다. 오히려 장릉은 ‘무자손 천년 향화지지(無子孫千年香火之地: 자손이 없어도 천년 동안 제사 향불이 끊이지 않는 묘)’에 가깝다. 전국 각지에서 참배객이 찾는 명소이니 말이다.

명당을 만들어내는 이야기의 힘

 

전북 김제시 화포리에 있는 진묵대사(1562~1633)의 모친 묘는 무자손 천년 향화지지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성모암이라고 부르는 이 묫자리는 ‘동방의 석가모니’로 불리던 진묵대사가 직접 선택한 곳이다.

진묵대사는 효심이 남달라 출가 후에도 모친을 모셨다고 한다. 여름날 노모가 모기로 고생하자 산신을 불러 “모기떼가 나타나지 않도록 하라”고 명령했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진묵대사는 생전에 “내가 후손을 남기기 못하더라도 어머니 묘의 향불이 1000년간 이어지게 하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이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성모암에 유해를 모시자 사람들 사이에서 소문이 퍼져나갔다. 진묵대사의 어머니 묘를 벌초하고 향을 바치며 공양을 올린 뒤 기도하면 중한 병도 낫는다는 소문이었다. 이후 이 묘 앞에서 간절히 기도하면 한 가지 소원은 이뤄진다는 소문이 더해졌다. 그러자 전국 각지에서 순례객이 모여들었다. 풍수적으로 해석하면 자손에게 전달되지 못한 명당 기운을 대신 누리려고 찾는 이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진묵대사 모친이 세상을 떠난 뒤 수백 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묘 옆에는 향초가 빼곡하다. 소원을 빌려고 오는 이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는다. 특히 선거철이나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둔 시기에 사람이 더욱 북적인다. 진묵대사가 어머니에게 한 약속이 지켜지고 있는 셈이다.

터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로 사람을 끌어들이는 명당은 또 있다. 강원 춘천시 우두산(牛頭山) 소슬묘(혹은 솟을묘)라는 곳이다. 우두산은 생김새가 하늘에서 내려온 소머리 같다고 해 붙은 이름이다. 높이 133m로 어느 동네에서나 흔히 볼 법한 이 산 정상에 소슬묘가 있다. 산 입구부터 걸어도 10분이면 도착하는 이 묘에는 한국을 넘어 중국, 일본까지 널리 퍼진 특별한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조선 후기 문신 이유원(1814~1888)은 1871년 발간한 저서 ‘임하필기’에 소슬묘 답사기를 남겼다. “우두산에 옛 무덤이 하나 있는데 주민들이 청조(淸祖: 청나라 시조)의 묘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이유원이 주민들에게 들었다는 이야기는 이렇다.

“묘를 파보니 정황기(正黃旗: 테두리가 없는 노란 깃발)만 나와 모두 두려워하면서 봉분을 다시 만들려 했다. 그런데 하룻밤 사이 봉분이 저절로 전처럼 솟아났다. 그 후로 소나 말이 와서 무덤을 짓밟아도 다시 전같이 솟아났다. 그래서 이 무덤을 스스로 솟은 산이라는 의미로 ‘솟을뫼’(自聳山·자용산)라고 부른다.”

강원 춘천시 우두산 소슬묘(오른쪽)와 조선시대에 지은 누각 조양루. 안영배 제공

 

당시 우두산 일대에는 아들 없는 여인이 밤에 소슬묘에 와서 절하고 봉분을 정성껏 돌보면 득남을 한다는 소문이 돌았다고 한다. 이 묘에 제를 지내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얘기도 나돌았다. 이후 전국 방방곡곡에서 사람들이 몰려와 벌초를 하고 밤낮으로 제물을 올리며 향불을 피웠다고 한다. 이곳 역시 무자손 천년 향화지지라 할 수 있다.

자손 없어도 배향 끊이지 않는 춘천 소슬묘

 

한편 소슬묘의 존재는 이웃 나라인 중국과 일본에까지 소문이 났다. 중국에서는 명나라를 창건한 황제 주원장의 조부 묘라는 그럴 듯한 스토리가 나돌았다. 고려 때 주원장의 부친이 조선에 들어와 명당을 찾다가 춘천 우두산에서 명당 혈을 발견하고 비밀리에 아버지 유해를 묻은 뒤 중국으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그 후 태어난 아들 주원장이 명나라를 세웠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소슬묘는 주원장 후손과 중국인 관광객의 방문이 끊이지 않는 장소가 됐다.

조선시대에 ‘중국 황제의 조상 묘’로 알려졌던 이곳이 일제강점기엔 일본 조상신의 묘로 새로운 이야기가 더해진다. 이 묘가 일본 시조신인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神)의 남동생 스사노오노 미코토(素殘嗚尊)의 묘역이라는 내용이다. 일본 역사서 ‘일본서기’에는 스사노오노 미코토가 신라(한반도) 소시모리에 강림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소시모리가 바로 소머리, 즉 우두산이라는 그럴듯한 근거도 더해졌다. 이 때문에 일제강점기 때는 일본 관리들이 춘천을 방문할 때면 이곳에 들러 참배하곤 했다. 드라마 ‘겨울연가’가 일본에서 큰 인기를 누리던 시절, 춘천을 찾은 일본인 관광객들도 이곳에 들러 절을 했다고 한다. 소슬묘가 빼어난 길지임을 강조하는 스토리텔링의 힘이라고 할 수 있다.

전통 풍수계 일각에서는 성모암이나 소슬묘 등 무자손 천년 향화지지에 그리 높은 점수를 주지 않는다. 땅 기운보다 땅에 스토리를 입힌 사람들의 마음(기운)이 담긴 인작(人作) 명당으로서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야기의 파급력은 자연 그대로인 명당보다 큰 것이 사실이다. 무자손 천년 향화지지는 사람이 명당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흔치 않은 사례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542호에 실렸습니다〉

안영배 미국 캐롤라인대 철학과 교수(풍수학 박사)
 
[동아일보 2026년 6월 7일]

장마가 끝나고 시작된 무더위를 피하기 위해 물축제가 열리고 있는 전남 장흥으로 달려갔다. 전남 장흥에서는 '치유가 물씬! 여름이 물씬! 씬나는 장흥'이라는 슬로건 아래 물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12시쯤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무더운 날씨로 인해 흐르는 땀을 식히기 위해 우선 장흥군특산물 판매센터에 들러, 와송발효주스도 사서 마시고 장흥테라피힐링센터에서 마시지 체험을 했다. 와송발효주스는 와송과 식혜를 발효해서 만든 주스인데, 맛도 좋거니와 온 몸이 건강해지는 느낌이 들면서 피로가확 풀렸다. 장흥테라피힐링센터에서 실시하는 마사지는 20분에 5,000원이었는데, 일반 마사지와는 완전히 다른 건강 마사지였다. 장흥을 다시 찾는다면 시간을 두고 센터에 찾아가 다시 마사지를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 1시가 되자 신나는 음악소리와 함께 본격적인 물 축제가 벌어졌다. 하늘을 향해 쏘아올린 물대포에 참가자들이 물을 흠뻑 맞으면서도 신나게 몸을 들썩이며 더위를 날려보내고 있었다. 모두와 어우러져 공중으로부터 쏟아지는 물을 맞으면서 흥겨운 음악에 젖다보니 무더위는 어느새 멀리 날아가버렸다.

탐진강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쏟아지는 분수 사이에서 수상 자전거를 신나게 타고 있었다. 파란 하늘과 어우러져 물위를 달리는 수상 자전거를 보니, 물 대포 축제장과는 다른 차분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물 다음에는 숲. 물축제에서 시간을 보낸 후 근처에 있는 우드랜드를 찾았다. 입구에 들어서자 편백나무의 향기가 진하게 느껴졌다. 물로 더위를 식혔을 때와는 또 다른 시원한 느낌에 기분이 상쾌해졌다. 편백나무 숲 속을 걸어올라가 목공예체험장에서 덩시된 작품들을 둘러보며 나무의 고마움을 느끼는 시간을 가졌다.

제주 여행-성이시돌센터

2026. 7. 29. 07:01 | Posted by 행복 기술자

제주 여행-성이시돌목장 우유부단

2026. 7. 28. 07:00 | Posted by 행복 기술자

경북 청송군 주왕산국립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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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청송군 주왕산 장군봉에서 바라본 기암. 그 너머 멀리 보이는 봉우리가 주왕산 정상 주봉이다.

 

전국 24개 국립공원을 관리하는 국립공원공단 직원들은 몇 년씩 순회 근무한다. 은연중 격·오지(隔·奧地) 순위가 짜이기 마련이다. 그중 2위가 경북 청송군 주왕산국립공원이다. 10년 전까지 청송은 ‘육지의 섬’으로 불릴 정도였다. 2016년 서산영덕고속도로 상주-영덕 구간이 개통되면서 좀 나아졌다곤 하지만 체감상 큰 차이는 없나 보다.

물리적이든 심리적이든 접근이 어려운 장소에도 장점은 있다. 은거하기에 딱 좋다. 숨을 곳을 찾아드는 사람은 스스로 이야기를 품고 있다. 시간이 오래 흐르면 그것은 전설이 된다. 어느 산인들 전설이 없겠는가만, 주왕산(周王山)에는 좀 특별한 구석이 있다. 기묘하면서도 친근한 큰 바위들이 그 전설을 1000년 넘게 지키고 있다.

● ‘어서 와. 주왕산은 처음이지?’

 

주왕산에 관한 책을 읽거나 인터넷을 훑거나 생성형 인공지능(AI)에 물어보면 빠지지 않는 내용이 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사람 이름을 딴 산이라는 것이다. 주왕은 누구일까. 두 인물이 맞선다. 중국 당(唐)나라 주도라는 인물과 통일신라시대 김헌창(혹은 그의 부친 김주원)이다. 둘 다 왕을 꿈꾸며 반란을 일으킨 자다. 그 바탕이 되는 두세 권의 옛 문헌과 인물과 해석이 등장한다. 그러나 정사(正史)는 아니다. 그래야 전설이 된다. 당나라 사람이 굳이 궁벽한 이곳까지 피신했다는 것이나, ‘삼국사기’에 웅진(지금의 공주)에서 죽었다고 기록된 김헌창이 여기서 항전했다는 것이나 가당찮기는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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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왕산국립공원 초입 청성군 상의리에서 바라본 기암.

 

그런데 말이다. 주왕산국립공원 들머리 격인 청송군 상의리에 들어서자마자 몇 km 앞에 보이는 장대한 암벽군(群)이 그 전설을 머릿속에 영화처럼 풀어내기 시작한다. 세로 길이 100m 안팎 7개 바위가 연봉을 이룬 기암(旗巖)이다. 주왕이 혹은 김헌창이, 아군에게 신호를 보내려고 깃발을, 혹은 병사가 많게 보이려고 깃발 수십 개를 꽂았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구름 위로 솟아 근두운 탄 손오공을 막은 부처님 손바닥 같기도 하고, 양식당 셰프의 주름진 흰 모자 토크(toque) 같기도 하고, 경복궁 근정전 용상 뒤에 걸린 일월오봉도의 그 오봉 같기도 하다. 반칙 아닌가. 등산로에 발을 들여놓지도 않았는데 이미 산을 다 본 것처럼 만드는 바위가 산자락에 앉은 듯 보이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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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대전사 경내에 장식된 연등들 위로 기암이 보인다. 사바세계를 굽어보는 것 같다.

 

점점 다가가 대전사(大典寺)에 이르니 기암이 그 위로 무동을 선 것 같다. 해발 480m에 솟은 기암을 계곡 너머 왼쪽에서 내려다보는 바위는 장군봉(해발 686m)이다. 주왕을, 혹은 김헌창 반란군을 토벌하러 온 마(馬) 장군이 기암 위에 반란군이 많이 있는지 올라가서 확인했거나, 혹은 반란군의 전초 망루 역할을 했다는 바위다. 장군봉은 상아를 뽐내는 코끼리가 돋을새김 된 듯도 하다. 전설은 한 줄기만 뻗지 않고 서너 가지를 쳐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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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사 경내 너머 왼쪽이 장군봉이다. 사진으로는 오른쪽 기암보다 낮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200m가량 더 높다.

 

대전사를 오른쪽에 두고 주방천을 따라 오르는 길은 평탄하고 완만하다. 천변에 뒤돌아서 던진 돌멩이가 떨어지지 않고 잘 얹히면 아들을 낳는다는 아들바위가 있다. 무수한 자갈들이 바위 위에 깔려 있다. 그런데 4, 5년 전부터 돌을 던지는 사람이 급격히 줄었다. 차라리 ‘딸바위’라고 부르라는 탐방객도 있다고 한다. 전설이 다른 길을 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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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왕산 용추계곡 가는 길 주왕천 변 아들바위. 돌멩이들이 수북이 쌓여 있다.

 

첫 번째 폭포인 용추폭포를 끼고 있는 용추계곡으로 향하는 길 좌우는 연화봉, 병풍바위, 시루봉, 급수대, 학소대 등 높고 넓은 암벽이다. 저 위 능선에 있지 않고 이 아래에서 협곡을 이룬다. 무엇 하나 뾰족하지 않고 모나지 않았다. ‘어서 와. 주왕산은 처음이지’ 하면서 등을 토닥여 줄 듯 다소곳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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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추계곡 가는 길 옆 연화봉. 하늘에서 보면 연꽃이 핀 모양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용추계곡은 절벽 사이 좁은 틈을 지나 고개를 들면 또 다른 비경이 자태를 드러낸다. 절벽 하나 뒤에 다른 하나가 숨어 있다가 갑자기 나타난다. 직접 가 보지는 않았지만, 요르단 고대 암벽 도시 페트라 초입의 협곡 ‘알시크(al siq)’가 이런 느낌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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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추계곡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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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추계곡 입구를 돌아들면 보이는 풍광.

 

두 번째 절구폭포와 세 번째 용연폭포는 묘하게 움푹 파인 못을 담고 있다. 절구 같고 용이 솟아오른 연못 같다고 그런 이름이 붙었다. 약 7000만 년 전 화산 활동으로 생성된 용결응회암이 장구한 시간 퇴적되고 풍화된 결과다. 용결응회암은 화산재와 부석(浮石) 등이 분화 당시 날아가지 않고 용암의 800도 가까운 고열과 자체 압력으로 녹으며 굳은 것이다. 내부는 단단한데 표면은 과장하면 굳은 밀가루처럼 부스러지기 쉽다. 미국 요세미티 국립공원 절벽 앨캐피탄을 축소해 놓은 것 같은 암벽이 즐비한데도 암벽 타기를 할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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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추계곡 첫 번째 폭포인 용추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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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폭포인 절구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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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폭포인 용연폭포. 절구폭포처럼 2단 폭포다.

 

● 전설 잦아든 계곡에선 오롯이 나를

이제는 기억에서 잊힌 떡시루 모양인, 다시 보면 인자한 노인의 얼굴 같은 시루봉과 주왕 혹은 김헌창 반란군이 밧줄에 물동이를 매어 주방천 물을 길어 올렸다는 급수대와 12폭 병풍을 펼쳐 놓은 듯한 병풍바위를 뒤로 하고 절골계곡으로 향한다. 대전사에서 동남쪽으로 약 15분 차를 타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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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추계곡 가는 길 급수대(왼쪽)와 주상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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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수대 맞은편 계곡 건너 시루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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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폭 병풍을 쳐 놓은 것 같다는 병풍바위(오른쪽).

 

절골계곡에 깃든 전설은 없다. 그저 1급수에만 사는 버들치가 계곡물에 떼 지어 헤엄치고, 주왕산 깃대종 둥근잎꿩의비름이 그늘진 바위 지의류 틈새에서 피어나며, 누룩뱀이 전날 내린 비에 젖은 몸을 말리려 양지로 기어 나오고, 뱀들 다니는 길 들꽃 사이로 어른 엄지손톱만 한 새빨간 뱀딸기가 새초롬히 열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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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골계곡.

 

계곡 양쪽이 거대한 응회암 절벽의 연속인 협곡이다. 역시 깎아질렀으되 위압적이지 않고 둥글둥글하다. 초입부터 한동안은 설악산 흔들바위만 한 바위 수십 덩이가 시내를 메우고 있다. 암벽 신들이 ‘맘보공기’ 놀이를 하고 버려둔 공깃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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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골계곡 버들치 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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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골계곡 뱀딸기.

 

주왕산 등산로든 절골계곡이든 걷다 보면 온통 그늘이다. 햇볕을 직접 쬐는 구간이 적다. 규정상 계곡물에 들어가는 것은 안 되지만 한여름 동네 주민들이 발 담그는 것까지 막기는 어렵다. 휴대전화도 터지지 않는다. 공단은 7~8월에 ‘계곡 트레킹’ 행사를 벌일 생각이다. 물길 따라 걸으며 바위에 걸터앉아 오롯이 나만을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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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0년에 지은 저수지 주산지. 물결이 잔잔하면 앞에 보이는 주아산(별바위)가 물에 그대로 비쳐 보인다.

 

절골계곡 근처에 주산지가 있다. 1720년에 논에 물을 대려고 만든 저수지다. 주위를 에워싼 주왕산과 주아산 능선이 바람 없는 날이면 잔잔한 수면에 거울처럼 비친다. 흙에 있다 물에 잠긴 버드나무가 300년째 서 있다. 푸른 잎이 무성하다. 식물은 죽음이 다가올수록 생명력을 지탱하려 안간힘 쓴다고 한다. 수면과 닿을 듯 만들어진 전망대에서 사람들 발소리 진동에 잉어들이 몰려왔다. 어른 팔만 하다. 이곳 수달도 손바닥 크기 잉어 새끼밖에 잡아먹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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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산지 물속에서 뿌리를 내린 300년 된 왕버드나무.

 

새벽 캠핑 트레일러(카라반) 창밖 새소리에 잠이 깼다. 공단이 상의리 주왕산국립공원 입구에서 예약제로 운영하는 상의야영장에는 카라반(4인용) 10대를 비롯해 자동차 캠핑장과 숙박용 오두막 등이 있다. 문을 열고 주방천 쪽으로 걸어 내려와 기암을 다시 바라본다. 전설에는 고려 말 공민왕의 스승이던 나옹(懶翁)선사가 등장한다. 그전까지 주방산, 석병산, 대둔산 등으로 불리던 이 산을 주왕산이라고 부르라고 했다는 것이다. 조선 초기 1463년 ‘주왕내기(周王內記)’ 저자 눌옹(訥翁)과 혼동했을지 모른다. 나옹선사는 말없이, 티 없이 살라는 ‘청산은 나를 보고’라는 시를 썼다. 그 한 대목을 되뇐다. ‘애초 사랑도 증오도 노여움도 아쉬움도 없다.’ 주왕산이 나를 보고 그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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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군 상의리 주왕산국립공원 입구에 있는 상의야영장 카라반(캠핑 트레일러).

 

글·사진 청송=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동아일보 2026년 6월 6일]

제주 여행-병악오름

2026. 7. 22. 07:01 | Posted by 행복 기술자

충남 보령 삽시도 워케이션

노트북 옆에는 바다가 있고 엘리베이터 대신 둘레길이 있으며 퇴근 후 네온사인 대신 붉은 낙조가 있다. 워케이션은 영어로 일(work)과 휴가(vacation)를 결합한 합성어다. 워케이션에서 일과 쉼은 서로 방해하지 않는다. 인구 소멸을 겪고 있는 지방도시들에 워케이션은 ‘체류형 관광’의 새로운 희망의 빛이 되고 있다. 충남 보령시 ‘숨어 있기 좋은 섬’ 삽시도에서 워케이션을 체험해 보았다.

● 물빛 아름다운 삽시도

보령 대천연안여객선터미널에서 출발한 페리호는 50분 만에 삽시도 술뚱선착장에 도착했다. 인근에 있는 원산도가 보령해저터널로 연결되고, 해상 교량으로 안면도와 이어지는 등 섬이 육지로 변하고 있지만 삽시도는 태고적 그대로 외딴 섬으로 남아 있다. 갯벌에는 드문드문 바지락을 캐는 주민들만 있을 뿐 한적하기 그지없다.

 

“지금 삽시도 물빛이 너무 아름다워요. 옥빛을 계속 닮아가고 있거든요.”

삽시도에서 숙박을 하게 된 펜션의 주인 김태연 씨는 물빛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고 보니 삽시도는 서해인데도 거무튀튀한 펄 같은 물색이 아니다. 고려청자의 비췻빛, 옥구슬 빛처럼 우아한 물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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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시도의 바다는 아침과 저녁, 계절과 물때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물빛을 보여준다. 삽시도 워케이션 참가자들은 센터에서 빌려주는 자전거를 타고 섬을 한바퀴 돌 수 있다.

 

삽시도 워케이션의 중심지는 선착장 바로 앞 어촌체험휴양마을 카페. 노트북 한 대만 있으면 커피를 마시면서 일할 수 있는 곳이다. 오후에는 워케이션 센터에서 자전거를 빌려 섬을 한 바퀴 돌았다. 해변도로를 따라 한가롭게 달리고 있는데 검은 강아지 한 마리가 쫓아온다. 덩치는 큰 녀석이 뒤뚱뒤뚱하면서 잘도 달린다. 삽시도회식당 앞마당을 지키는 ‘득실이’다. 걷다 뛰다 반복하며 쫓아오던 득실이는 서쪽 끝 수루미해수욕장쯤 와서 지쳤는지 옆길로 빠진다.

수루미해수욕장에서 오른쪽으로 접어들자 삽시도 둘레길이 나왔다. 송림이 우거진 호젓한 약 5km의 산책길이다. 바다와 산을 함께 즐기고, 갯벌에서 나는 미식을 즐길 수 있는 것이 서해 섬의 매력이다. 강원도 깊은 산속 같은 길을 걷다 보니 삽시도 최고 절경인 면삽지에 도착했다. 250여 개 계단을 내려가면 조그만 섬과 이어지는 깨끗한 모래 해변을 걸을 수 있다. 해안절벽에는 해식동굴이 있는데, 그 내부로 들어가면 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샘물이 있다. 바닷가 동굴에서 짜지 않고 시원한 약수가 솟아나다니 신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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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보령 삽시도는 일하면서도 한적한 해변과 둘레길을 걸으며 휴식하기 좋은 섬이다. 사진은 면십지의 해식동굴 안에서 바라본 삽시도 해변.

 

면삽지는 하루 두 번, 밀물과 썰물이 변할 때 삽시도에 붙었다가 떨어진다. 바닷물이 들이차면 더 이상 삽시도에 속한 땅이 아니다. 그래서 ‘면할 면(免)’자를 쓴다. 하루 두 번 삽시도의 의무와 책임을 ‘면제받는’ 땅인 셈이다. 사람에게도 가끔씩 면제의 시간이 필요하다. 밥벌이하는 직장인으로서, 가장으로서 의무에서 벗어나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 본체와 떨어져 외딴 섬이 될 수 있는 시간. 삽시도 면삽지에서 진정한 휴식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자전거 타기와 치유의 숲길 산책 말고도 할 게 많다. 갯벌로 나가 전국 최고 품질을 자랑하는 바지락을 캐고, 낙지와 박하지(돌게)를 잡고, 방파제 낚시를 즐긴다. 배를 타고 10분 정도 나가면 ‘체험! 삶의 현장’을 경험할 수도 있다. 그물 체험이다. 선장님이 미리 설치해 놓은 길이 300m짜리 그물을 기계로 끌어올리자 간재미와 광어, 낙지, 꽃게가 줄줄이 올라왔다. 이날 저녁상에는 시원한 바지락국물과 함께 간재미와 광어회가 놓여 있었다. 역시 내가 직접 잡은, 수렵채취의 결과물이 가장 신선하고 맛있다.

워케이션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펜데믹이 한창이던 2021년 한국관광공사가 지역 관광 활성화를 위한 방안으로 ‘여행친화형 근무제(워케이션)’ 사업을 도입하면서 시작됐다. 부산, 강릉 같은 유명 관광지도 인기를 끌었지만 부여 공주 태안 보령을 비롯해 다양한 관광자원을 가진 충남도 워케이션 명소로 떠올랐다. 젊은 층은 보령과 태안 같은 해안지역을 선호하고 역사와 문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공주와 부여를 많이 찾았다. 지난해 ‘워케이션 충남’ 사업 참가자는 2024년 1540명에서 2649명으로 늘어 70% 이상 증가했다.

보령시는 대천해수욕장 인근에 약 40억 원을 들여 워케이션 센터를 조성하고 있다. 바다가 보이는 공간에서 파도 소리를 들으며 일할 수 있는 거점형 시설이다. 그런데 보령에서 가장 흥미로운 워케이션 공간이 삽시도에 있다. 삽시도 거주 인구는 약 240명. 펜션도 40개가 조금 넘는다. 규모가 작고 조용하지만, 워케이션이라는 관점에서는 오히려 경쟁력이 된다. 숨어 있기 좋은 섬이기 때문이다.

임미자 삽시도 어촌체험휴양마을 사무장은 “처음에는 많은 분이 섬이라서 불편하지 않을까하는 선입견을 가졌지만 업무와 체험 시설, 호텔식 침구류와 침대, 차량 운행 같은 서비스를 정비하면서 대기업 직장인부터 공무원, 프리랜서 등 다양한 신청자들이 찾고 있다”고 말했다.

삽시도 워케이션이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가격 경쟁력이다. 2박 3일 동안 숙박과 아침식사, 갯벌 체험, 자전거 대여, 섬내 교통 편의까지 제공받는데 단돈 3만 원이면 된다. 보통 바닷가 펜션이 하루 투숙 비용이 수십만 원대인 것에 비하면 엄청나게 싼 가격이다.

워케이션에 참가하려면 4대 보험 가입자와 특수 형태 근로종사자(프리랜서) 등 ‘일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또한 7, 8월 성수기와 주말은 워케이션 신청을 받지 않는다. 비수기와 평일에 체류형 관광객을 늘리기 위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예산 지원 사업이기 때문이다. 1인당 연 2회 신청할 수 있고 6박 7일까지 체류할 수 있다고 한다.

● 바닷가 조개껍데기와 바다유리

삽시도 바다는 노을 물드는 저녁이면 갈매기가 낮게 날고, 물빛이 시시각각 표정을 바꾼다. 그러나 파도가 물러간 자리에는 떠내려온 유목(流木)과 조개껍데기, 밧줄, 튜브 조각, 스티로폼, 바다유리(깨진 음료수병 같은 유리 조각이 풍화돼 돌 같이 된 것) 같은 해양쓰레기도 함께 남는다.

삽시도 워케이션 센터에서는 해양쓰레기를 주워 오면 갯벌 체험비 20%를 할인해준다. 그리고 조개껍데기와 바다유리를 이용해 키링이나 액자 만들기 같은 공예 체험도 진행한다. 그중에서도 눈길이 가는 것은 바다유리다. 수십 년 전 해안가에 무심코 버린 소주병, 사이다병, 맥주병 등이 깨져 생긴 유리 조각이 파도에 휩쓸리며 닳고 닳아 둥글둥글해져 재탄생한 크리스털 같은 조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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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연 사진작가의 삽시도 사진과 액자.

 

삽시도에서 버디하우스 펜션을 운영하는 김태연 씨는 사진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김 작가는 지난 5년 동안 삽시도의 노을과 방파제에 앉은 갈매기,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의 결을 사진에 담아 왔다. 김 씨는 26~29일 보령문화회관에서 ‘삽시도, 수많은 날들 중 하루’라는 제목의 사진전을 열기도 했다.

● 고대도? GOD愛島!

보령 앞바다에는 삽시도 외에도 원산도 고대도 장고도 효자도 같은 섬들이 관광지로 개발되고 있다. 삽시도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갈 수 있는 고대도는 ‘God愛島’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우리나라에서 개신교 선교사가 최초로 들어온 섬이기 때문이다. 1832년 7월 25일, 독일 출신 선교사 칼 귀츨라프(1803~1851)가 영국 동인도회사 상선 로드 애머스트호(號)를 타고 고대도 안항(安港)에 정박했다. 1885년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 부부가 인천 제물포항에 상륙한 것보다 53년이나 빨랐다.

고대도선교센터 정수목 목사는 “귀츨라프는 한국에 기독교를 전했고, 한글의 가치를 세계에 소개했으며, 처음으로 감자 재배법을 가르쳐준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귀츨라프 선교사가 1개월 동안 섬에 머물면서 남긴 업적은 놀라울 정도다. 그는 고대도 주민들에게 한문으로 쓰여진 성경책을 나눠주었고, 감기환자들에게 약을 주며 서양 근대 의술을 소개했다. 또한 서양식 감자 파종법을 가르쳐주고, 국내 최초로 감자를 심었다고 알려져 있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주기도문의 한글 번역이다. 귀츨라프는 그 짧은 기간 한글을 배웠는데, 그의 친필 한글이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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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도 해변에 복원된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 귀츨라프가 타고 왔던 로드 에머스트호.

 

선바위가 보이는 안항에는 귀츨라프 기념공원이 있다. 공원에는 로드 에머스트호가 복원돼 서 있고, 귀츨라프가 수학했던 독일 베를린 보헤미아 베들레헴 교회를 본뜬 조각 작품도 서 있다. 고대도에서는 매해 7월 25일 전후로 국제영화제와 감자 심기 대회 등을 하는 ‘칼 귀츨라프의 날’ 축제가 열린다.

글·사진 보령=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동아일보 2026년 5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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