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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로서 살아온 30여 년의 세월과 더불어 인생 후반기를 맞아 행복을 추구하는 기술자의 변신 스토리입니다. --------- 기술 자문(건설 소재, 재활용), 강연 및 글(칼럼, 기고문) 요청은 010-6358-0057 또는 tiger_ceo@naver.com으로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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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원리의 단계

일반적으로 과학 원리는 여러 가지 명칭으로 불린다. 어떤 경우에는 ‘~~ 법칙’이라 불리기도 하고, ‘~~이론’, ‘~~론’ 또는 ‘~~설’이라 불리는 경우도 있다. 에너지 보존의 법칙, 일반상대성 이론, 진화론, 지동설 등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그러면 어떤 경우에 법칙을 붙이고, 어떤 경우에 이론, 론, 설 등의 말을 뒤에 붙이는가? 아직 이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는 글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내 나름대로의 의견을 여기 피력하고자 한다. 우선 법칙은 확고한 원리로 인정받는 경우에 붙이고 있다. 예를 들면 ‘만유인력의 법칙’, ‘에너지 보존의 법칙’, ‘물질 보존의 법칙’ ‘열역학 법칙’ 멘델의 ‘유전 법칙’ 등을 들 수 있다. 하지만 물질보존의 법칙의 경우만 해도 물질과 에너지가 별개라고 생각한 고전물리학에서는 법칙으로 성립이 되었지만, 물질과 에너지가 상호 전이가 가능하다는 ‘상대성 이론’이 발표되고 나서는 더 이상 성립되지 않는다. 물론 에너지까지 물질 보존의 법칙에 고려하고, 물질까지 에너지 보존 법칙에 고려한다면 이 두 가지 법칙은 여전히 성립한다고 볼 수 있다.

법칙이 보통 관찰된 비교적 단순한 현상에 대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체험을 경험론적으로 체계화시킨 것이라면, 이론은 관찰된 현상을 보다 폭 넓게 적용하기 위하여 가설을 세워 만들어낸 논리체계라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뉴턴의 고전역학에서 당연시 했던 절대공간, 절대시간의 개념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우주에 대한 관찰 결과에 더 적합하도록 시간과 공간이 상대적이라는 개념을 도입한 것이다. 물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통해 뉴턴의 고전역학 법칙들을 풀 수 있다. 다시 말해 뉴턴역학은 상대성 이론의 특수한 경우라고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즉 계산하는 조건을 우리 일상생활의 인식범위로 한정하면 상대성 이론과 뉴턴역학은 거의 결과가 같이 나오게 된다. 따라서 엄격히 말하자면 뉴턴역학은 모든 조건을 다 만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맞지 않는 이론이라고 볼 수 있지만, 우리가 흔히 접하는 일상생활에서는 잘 들어맞기 때문에 아직도 유효하게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뉴턴역학이 일반인들도 쉽게 이해하고 풀 수 있기 반면에, 상대성 이론은 전문가 수준에서만 풀 수 있기 때문에 아직도 뉴턴역학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첨단 과학기술이 일상생활에 점차 많이 적용되기 시작하면서 일상생활에서도 뉴턴역학보다는 상대성 이론을 적용해야 될 경우가 점차 늘어가고 잇다. 예를 들어 요즘 일상화되고 있는 GPS을 통해 자동차 위치를 계산할 때 뉴턴역학만 적용하게 되면 하루 수 킬로미터의 오차가 생기게 된다. 물론 현재 GPS를 통해 자동차의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있는 것은 상대성 이론을 적용하기 때문이다.

완벽한 이론적 체계를 갖추지 못했지만, 어떤 가설을 통해 관찰된 현상을 잘 설명할 수 있을 때 이를 보통 ‘~~론’이라 칭하게 된다. 진화론과 창조론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현재 일반적으로는 진화론이 진리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과학적으로 봤을 때 진화론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주장할만한 확실한 근거는 아직도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진화론이 옳으냐, 창조론이 옳으냐를 두고 논쟁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진화론의 근거로 화석 등의 자료와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동종 생물의 차이를 들고 있지만, 진화론을 반박할 자료들도 만만치 않게 많이 있다. 진화론의 가장 큰 취약점은 과거의 현상을 재현할 수 없다는 점이다. 더불어 생물의 다양성이라든가, 복잡하고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생물체가 어떻게 우연으로 진화할 수 있는가 하는 점에 대해 확실한 답을 할 수 없다는 점이다. 물론 성경을 절대적인 과학적 사실로 믿고 있는 창조론의 경우에도 명확한 과학적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하지만 최근 대두되고 있는 ‘성경이 비유적 해석’이라는 견해를 받아들이고, 이를 과학적인 관점에서 재해석해보는 것도 가치가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제3부에 자세히 다루겠지만, 예를 들어 시간이라는 단위가 빅뱅 초기와 앞으로 열적 죽음에 도달할 먼 훗날에 현재와 똑 같은 기준을 적용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점도 과학적이다. 그러니까 창세기에 기술된 하루가 현재의 기준으로 계산된 하루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성경에 기술한 창조론도 과학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어떤 이론적인 근거나 체계가 부족하지만 어떤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제시된 방법을 ‘~~설’이라고 한다. 대개 ‘~~설’은 라마르크의 ‘용불용설’과 같이 진화 현상을 잘 설명하는 것처럼 보여서 제시됐지만, 맨델의 유전법칙에 의해 후천적으로 획득된 성질은 유전되지 않는다는 보다 강력한 근거가 제시되면서 ‘~~론’이나 ‘~~법칙’으로 발전되지 못하고 끝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원자설’과 같이 고대 그리스에서 데모크리토스에 단순히 개념적으로 제시 되었지만 차후에 실험을 통해 그 존재가 확인되면서 ‘원자론’으로 격상된 경우도 있다. 사실 ‘~~설’은 단어 자체가 의미하는 그대로 단군신화설과 같이 누구나 그 자체는 사실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는 경우도 있고, ‘~~카더라’ 수준의 논란거리 제공을 함으로써 차후 증명을 요하는 모든 경우를 포함하게 된다.

법칙을 주로 많이 사용하던 시기는 고전물리학이 완성되기까지인 19세기 말까지다. 실제로 19세기 말에는 자연현상을 모두 이해했으니 물리학이 완성되었기 때문에 더는 할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고전물리학이 완성되었다고 생각한 20세기 초반에 들어오면서 고전물리학 자체 모순에서 비롯한 심각한 문제가 알려지게 되었다. 즉 유명한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의 이론 확립으로 고전물리학은 극히 제한된 조건 하에서만 성립하는 법칙임이 밝혀졌다. 즉 우리의 일상적인 인식 범위 안에서는 고전물리학이 성립되지만, 우주와 같이 아주 거대한 대상이나 원자와 같은 아주 미세한 대상에는 고전물리학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따라서 ‘~~법칙’이란 용어도 20세기에 들어오면서는 잘 쓰지 않게 되었다. 왜냐하면 나중에 우리가 알고 있는 법칙을 벗어난 새로운 법칙이 발견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이런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우리가 절대적 진리라고 믿었던 과학법칙도 나중에 부정될 수 있다면 과학법칙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인가? 그런 불확실성 하에서 과학법칙이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겠는가? 우리는 일반적으로 과학의 속성을 절대적 진리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잘못된 견해라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앞에서 과학이 자연 현상을 설명하는 우리의 인식작용이라고 정의했는데, 그렇다면 과학법칙의 불확실성을 우리의 인식 범위가 넓어짐에 따라 과학의 영역이 넓어지는 것으로 인식하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기존의 과학법칙을 적용해서 현상을 예측하고 대응하되, 다른 현상이 발생할 경우에는 열린 마음으로 다른 가능성을 탐색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를 좀 더 고상하게 표현해서 과학적 사고라고 부르는데, 이 ‘과학적 사고’는 중요하기 때문에 뒤에 별도로 다루기로 하겠다.

‘과학은 객관적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을 ‘과학적 실재론’이라고 부른데, 현재는 이러한 과학적 실재론은 받아들이지 않는 게 대세다. 그렇다면 어떤 이론적 해석이 과학적인 사실이라고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현대는 대체적으로 상호주관성을 통해 과학적 사실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추세다. 상호주관성이란 대다수 과학자들이 서로 동의할 수 있는 방식, 즉 실험, 관측과 논리적 추론을 통한 검증을 거쳐 상호 인정하면 과학적 사실로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과학 활동이 자연현상을 설명하는 우리의 인식작용이라면, 이는 어차피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데, 이를 보완하기 위해 대다수 과학자들이 합리적으로 수용할 수 있으면 과학적 사실이라고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따라서 요즘 일반적인 과정은 과학 잡지 또는 기술 잡지에 기고하여 심사를 받으면서 1차로 다른 과학자들의 검증을 받고, 발표된 논문은 다른 과학자들에 의해 확인 작업을 거치면서 과학적 사실로 인정받게 된다. 현재 매년 수십만 편의 학술 논문이 발표되지만 수 년 후 과학 집단 내에서 인정되어 과학적 사실로 수용되는 내용은 10퍼센트 미만이다. 사실 과학이 발전한 이유는 미신이나 종교를 타파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이처럼 과학 자신을 끊임없이 갱신하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