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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로서 살아온 30여 년의 세월과 더불어 인생 후반기를 맞아 행복을 추구하는 기술자의 변신 스토리입니다. --------- 기술 자문(건설 소재, 재활용), 강연 및 글(칼럼, 기고문) 요청은 010-6358-0057 또는 tiger_ceo@naver.com으로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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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 대상 강연

2014. 12. 15. 10:21 | Posted by 행복 기술자

'공대 학생들이 미래를 위해 학창 시절에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하는 주제로 강연을 했습니다.

직원들을 보면서 답답하게 느끼는 점을 얘기하면서 학생 시절부터 사회에서의 생활을 잘 준비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얘기하는데 글쎄 학생들은 얼마나 느끼는지 모르겠습니다.

 

강연 자료: 공학도들의 학창시절 준비.ppt

 

 

 

 

오랜 역사. 중앙일보 江南通新 ‘맛대맛 라이벌’의 1위를 차지한 맛집의 공통점이다. 맛대맛 라이벌은 지난 2월 5일 설렁탕집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36가지의 서로 다른 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총 77개 식당(※공동 1위 두 차례 등)을 소개했다. 복수의 전문가가 추천한 리스트 가운데 독자의 투표를 가장 많이 받은 두 집을 소개하는 방식이었다. 이렇게 독자가 직접 선정한 1위집 38곳을 정리했다.

역사를 품은 맛집

 유학파 20~30대 셰프가 웬만한 연예인보다 더한 인기를 누리고 외국 유명 브랜드의 디저트 하나 먹겠다고 긴 줄을 서는 시대다. 그래도 변함없이 사람들을 이끄는 건 전부터 먹던 익숙한 음식이다. 맛대맛에서 1위를 차지한 38곳(일본식라멘·샤브샤브는 공동 1위) 중 25곳(66%)이 1994년 이전에 생긴 식당이었다. 2010년 이후 문을 연 식당 가운데 1위를 차지한 건 남경막국수(막국수)와 멘야산다이메(일본식 라멘), 송원스키야키샤브샤브(샤브샤브) 딱 3곳 뿐이었다. 송원스키야키샤브샤브가 1966년 개점한 송원복집의 세컨드 브랜드라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로는 2곳 뿐인 셈이다.

 역사가 긴 만큼 대를 이어 하는 곳이 많다. 예컨대 낙원떡집은 1대 고이뽀(59년 작고)씨가 1919년 낙원시장(현 낙원상가 자리)에서 떡을 팔기 시작한 후 96년 동안 4대가 이어오며 떡을 빚고 있다. 오장동 흥남집(냉면)과 한일관(불고기)은 3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 이문설농탕(설렁탕)과 명동교자(구)명동칼국수(칼국수), 삼원가든(소갈비), 토속촌(삼계탕), 한성돈까스, 백년옥(손두부) 등은 2대째 가게를 지키고 있다.

 역사가 오래된 만큼 현대사의 명암을 모두 목격했다. 또 정부가 새 정책을 시행할 때나 각종 식자재 파동마다 예상하지 못한 난관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뚝심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맛을 유지한 끝에 아직까지 살아남았다. 50년대 이문설농탕을 인수한 어머니에 이어 가게를 맡고 있는 전성근(66) 사장은 “별다른 맛의 비결이 있는 게 아니라 처음 맛 그대로를 유지하면 된다”며 “단골들 모두 이 맛에 익숙해져 계속 찾는다”고 말했다. 전주청국장은 85년 문을 연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콩을 씻고 불려 직접 띄운 청국장을 사용한다. 이 집 김종필(66) 사장은 “우스갯말로 우리집은 크기만 바뀌었다고들 한다”고 했다. 오장동 흥남집은 예전 맛을 내기 위해 요즘도 매일 면을 직접 뽑는다. 미리 많이 만들어 놓지 않고 면이 떨어질 때마다 새로 반죽해 면을 뽑고 참기름도 직접 짜서 쓴다.

맛집으로 오래 살아남으려면 주인의 뚝심이 있어야 한다. 독자 투표로 뽑은 ‘맛대맛 라이벌’ 1위집들 모두 그렇다. 이문설농탕에선 혀밑과 만하(소 비장)를 여전히 넣는다. 손질이 어려워도 그래야 제 맛이 난다고 생각한다. 이문설농탕과 동해해물탕, 전주청국장(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김경록 기자]


좋은 재료는 기본

 좋은 식자재를 고집한다는 것도 1위 맛집의 공통점이다. 백년옥(손두부)은 2000년대 중반 대기업이 두부 시장에 뛰어들며 어려움을 겪었지만 구수한 맛이 나는 강원도 고랭지산 콩만 고집해온 덕분에 손님을 잃지 않았다. 2대 사장 최요섭씨는 “문을 연 91년보다 지금은 콩값이 2배나 올랐지만 아버지 고집 때문에 여전히 가장 좋은 식재료만 쓴다”고 말했다. 광화문집(김치찌개)의 노병복(71)씨는 80년 가게를 인수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40년 넘게 국산 배추로 한 해 전 담근 김치만 써서 찌개를 끓인다.

 87년 청담동에 문을 연 진상샤브샤브 청담점의 손치중 대표는 요즘도 매일 아침마다 가게에 나와 수프(육수)맛을 보고 한우 상태를 확인한다. 한번은 150만원이 넘는 양의 한우를 상태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배달 직원 앞에서 쓰레기통에 버린 적도 있다. 그는 “내가 버리지 않고 그냥 돌려보내면 다른 가게에 주지 않았겠느냐”며 “안 좋은 고기는 내 가게는 물론 다른 가게에도 주지 말라는 뜻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식재료비가 치솟을 땐 모든 식당이 재료비를 아끼거나, 그렇지 않으면 음식값이라도 올려야한다는 유혹에 시달린다. 그러나 대부분의 1위 식당은 싼 재료를 쓰지도, 그렇다고 가격을 함부로 크게 올리지도 않았다. 이문설농탕 전성근 사장은 “79년 1500원이었던 설렁탕 한 그릇의 값이 지금은 7000원”이라며 “워낙 오랜 세월 드나든 단골이 많아 가격도 내 마음대로 올리지 못한다”고 했다. 오장동 흥남집도 2010년 이후 줄곧 8000원이던 가격을 4년 만인 올해 9000원으로 올렸다.

맛집 거리의 독보적 맛집

 같은 메뉴 식당이 모여있는 맛집 골목은 경쟁이 더욱 치열하다. 너도나도 원조 간판을 달고 손님을 끈다. 맛대맛 라이벌을 통해 장충동 족발거리, 응암동 감자국거리, 낙원동 떡집상가, 종로3가 닭볶음탕골목 등 맛집 골목이 여럿 소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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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중 오장동 흥남집은 오장동 냉면골목의 원조다. 6·25전쟁 직후 오장동은 북한에서 피난 내려온 실향민이 모여 살던 판잣집 동네였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북한 음식 파는 음식점이 생겨났고, 53년 쓰러져가는 판잣집에 ‘흥남’ 간판을 내걸고 함흥냉면을 판 게 이 집의 시작이다.

 그런가 하면 장충동 평안도족발집은 온통 ‘원조’간판 천지인 장충동 족발거리의 대표 맛집으로 꼽힌다. 이경순(80) 평안도족발집 사장은 62년부터 빈대떡을 팔았는데 몇몇 손님의 “다른 걸 좀 팔라”는 말에 고향에서 즐겨 먹던 족발을 팔기 시작했다. 이 사장이 50년 가까이 지키는 원칙은 그날 삶은 고기는 그날 다 판다는 거다. 일부러 조금 모자라게 준비하기 때문에 빠르면 오후 8시면 다 떨어진다. 그는 “족발이 남아 버리는 것보다 낫다”며 “남은 걸 다음날 데워 팔면 손님이 대번 알아채고 다음부터 안 오니 덜 만들어 덜 파는 게 오히려 남는 장사”라고 설명했다.

 같은 메뉴를 파는 경쟁 식당이 다 문을 닫고 홀로 골목의 명맥을 이어가는 곳도 있다. 계림(닭볶음탕)이 그렇다. 50여 년 전 종묘광장공원 맞은편 세운상가 쪽 좁은 골목길에 문을 열 당시는 물론 80년대까지만 해도 두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의 좁은 골목 양옆에는 닭볶음탕집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계림만 남았다. 길진영 사장은 “일흔 넘은 단골들이 ‘젊은 시절 싸고 푸짐하게 먹을 수 있어 자주 왔던 가게들이 다 없어져 서운하다’면서 계림만은 자리를 지켜달라고 한다”고 했다.

강북에서 강남으로

 강남 개발이 본격화하면서 80년대 들어 강남에도 맛집이 속속 생겨났다. 무교동유정낙지와 한일관처럼 강북에서 강남으로 자리를 옮긴 곳도 꽤 있다. 맛대맛 라이벌 1위집 38곳 중 18곳이 강남에 있는데, 강남에서 30년 넘게 맛집 자리를 지킨 식당이 11곳이다. 이중 원주추어탕은 강남에서 드물게 40여 년 역사를 이어오는 집이다. 80년대 추어탕 먹으러 자주 오던 손님이 미국 이민을 갔다가 20년 만에 귀국해서는 그 자리에 그 모습 그대로 있는 걸 보고 감격해서 돌아갔다는 얘기도 있다. 이 사연은 미국 한인 라디오 방송에 소개되기도 했다. 2대 이남수(45)사장은 “처음엔 국내산 미꾸라지를 구하기 힘들어 남원에 양식장까지 만들었지만 실패했다”며 “10년 전부터 자연산 미꾸라지가 많이 나오는 7월 초부터 한 달간은 태안에서 자연산 미꾸라지를 공수해온다”고 말했다.

 삼원가든(소갈비)은 선견지명으로 강남에 일찌감치 터를 잡았다. 삼원가든의 시작은 박수남(67)회장이 76년 금천구 시흥동의 삼원정이라는 고깃집을 인수한 데서 출발한다. 이후 강동구 길동을 거쳐 81년 지금의 신사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대우식당(부대찌개)이 84년 역삼동에 문을 열 당시 이 곳은 주택 외엔 별다른 게 없었다. 근처에 식당 하나 없었다. 대충해도 돈을 벌 수 있었겠지만 여인숙(61) 사장은 값싼 수입산 고기 대신 한우를 고집했다. 또 국물맛을 시원하게 하려고 미나리를 넣는데, 겨울철 미나리값이 3배 이상 올라도 양을 줄이지 않는다. 30년째 지켜온 원칙이라고 한다.

 고향집(보쌈)은 강남 개발 후 건설회관·석유개발공사·토지개발공사 등 큰 건물이 생겨난 86년 논현동에 문을 열었다. 이후 30년째 돼지고기 사태를 삶은 보쌈과 절인 배추를 함께 내놓으며 고향집만의 보쌈으로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강남에서 보기 드물게 인테리어 역시 처음 그대로라, 드라마 촬영지로도 자주 등장한다.

(중앙일보 2014년 12월 11일 송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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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평구 불광동에서 북한산 둘레길로 접어드는 곳에 있는 집 ‘구름정원 사람들’은 은퇴를 함께 준비하는 8가구가 모여 지은 공유주택이다.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매거진 esc] 라이프
은평구 불광동 실버형 공유주택 ‘구름정원’…사회적 가족공동체를 꿈꾸며 조합 만들어 짓기

나이 들면 누구와 살까
1회 실버형 공유주택 ‘구름정원 사람들’

1인가구 400만 시대, 한국 사회는 혈연이 아니더라도 누구와 공간과 시간을 함께 나누며 살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스웨덴 페르드크네펜 주택, 핀란드 로푸키리 주택 등 외국에서는 이미 청년들뿐 아니라 시니어 세대들까지도 남과 사는 문제를 두고 공동주거 실험을 시작한 지 오래됐다. 책 <마흔 이후, 누구와 살 것인가>에서는 공유주택, 협동주택, 함께 살기 등 늘어나는 1인가구만큼이나 다양한 대안이 존재한다고 조언한다. 민간과 개인 차원에서 시도되고 있는 함께 살기를 위한 여러 건축적 시도를 3회에 걸쳐 소개한다.

서울 은평구 장미공원에서 출발해 진관생태다리까지 이어지는 북한산 둘레길 8코스를 구름정원길이라고 부른다. 지난 10월25일 구름정원길 중에서도 불광사 산길과 마을이 맞닿는 곳에 ‘구름정원사람들’(구름정원)이라는 이름의 지하 1층, 지상 4층짜리 집이 섰다. 둘레길에서 따온 이름처럼 집의 모양은 구름처럼 밝고 가볍지만 의미는 바위처럼 묵직한 집이다. 이 집은 주택협동조합 하우징쿱이 건축 과정을 주도하고 조합원 8가구가 모여 함께 지은 주택이다. 58살부터 43살까지, 평균 연령 52살인 구름정원 건축주들은 나이듦을 고민하며 함께 은퇴를 대비하자는 뜻으로 실버형 공유주택을 지었다.

집은 1인가구와 대가족 등 가족 수와 삶의 모양을 고려해 집집마다 다르게 지어졌다.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나이 들면 어떤 모양새로 살게 될까? 혼자서는 쉽게 그려지지 않는다. 경제활동 가능 연령이 막바지에 이르러도 노후 비용을 확보한 가구는 많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한국인은 주거 비용을 줄여서 노후를 감당해야 한다. 구름정원 사람들은 공동거주와 공동소유 주택에서 해법을 찾았다.

구름정원은 겉으로는 외부 장식 하나 없는 단순하고 소박한 모양새지만 안으로는 이들이 각기 살아오고 함께 살아갈 날들을 말하듯 복잡하고 입체적인 구조다. 살림집은 2층부터 시작된다. 출판사 대표인 남편과 작가인 아내가 사는 203호는 복층 구조다. 살림집은 2층에, 아내의 작업실은 3층에 있다. 그 옆집 201호는 주방과 서재를 나란히 두고 서재 문을 투명한 미닫이문으로 달아 주방에서도 바깥 소나무숲이 한눈에 내다보이도록 한 것이 두드러져 보였다.

같은 층 남기창 청암교회 목사의 집은 다리가 불편한 남 목사를 위해 단층 구조다. 초등학교 교사인 부인과 세 아이가 모이는 넓은 거실이 시끌벅적할 때도 집 한켠에 마련된 작은 기도실은 조용하다. 부부는 현관문 옆에 침실과 기도실을 마련해 아이들이 들락날락하는 걸 지켜보며 자연스럽게 가족들이 말을 섞기를 원했다. 집을 안내하던 남 목사는 “좁은 집에서 기도실 같은 공간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커뮤니티하우스라서 가능하지 않았을까”라고 덧붙였다. 구름정원은 3층과 1층에 공동보일러실을 두고 공동세탁실로도 쓴다. 층마다 이웃과 교류하는 공동마루가 있지만, 4층엔 손님맞이나 공동행사를 열 수 있는 넓은 커뮤니티룸을 따로 마련했다.

401호 조합 이사장은 현장 작업반장
202호는 관공서 오가는 대외협력부장
303호는 함께 키울 텃밭 준비
조합원마다 일 분담하며
함께 집짓고 살림 꾸려가

입주민들 모임과 행사를 위해 만들어진 4층 공유공간은 책장과 주방으로 꾸며졌다.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공동주택이면서 안은 단독주택처럼 여러 가구가 다락방을 두고 사는 것도 특이하다. 고등학교 국어교사인 김성숙씨는 집 곳곳에 향기로운 편백나무로 원목가구를 짜넣으면서 어린 조카들이 놀러 와서 다락방에서 자고 가는 모습을 꿈꿨다. 402호 집주인 부부는 “아들이 낯선 동네로 이사 오길 싫어했는데 다락방을 보고 금세 마음을 바꿨다”고 전한다. 401호엔 하기홍 구름정원주택협동조합 이사장이 산다. 은평 살림의료생활협동조합 활동가로 일하던 하 이사장은 마포 성미산마을에 만들어지는 공유주택 소행주를 보면서 “혈연이 없더라도 사회적인 가족 공동체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구체적인 모양을 갖게 됐다”고 했다. 은평구는 마포구보다 좀더 도심에서 먼 대신 생태적인 삶을 가꿀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집의 주제는 자연스럽게 나이 들어 함께 사는 ‘실버형 공유주택’이 됐다.

설계는 인터커드 건축사사무소 윤승현 소장이 했고, 시공은 공정건설에서 맡았지만 협동조합형 공유주택은 출자부터 설계까지 조합원들이 참여하는 집이다. 하기홍 이사장은 철거부터 준공할 때까지 현장을 지키며 작업반장 노릇을 자처했고, 남기창 목사는 은행, 관공서를 오가는 ‘대외협력부장’을 맡았다. ‘텃밭위원장’ 김성숙 교사는 봄이 오면 입주자들이 함께 가꿀 텃밭을 두고 궁리중이다. 구름정원 입주자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한 2013년 10월부터 집이 완공된 2014년 10월까지 8가구는 일주일에 한번씩 만나 할 일을 나누고 공간을 계획했다. 아직 어린 아기가 있는 집엔 햇살 잘 드는 창이, 강아지가 있는 집엔 두터운 방음문이 달린 구름정원 곳곳에선 입주자들이 서로 소통하고 배려한 흔적이 읽힌다.

집은 1인가구와 대가족 등 가족 수와 삶의 모양을 고려해 집집마다 다르게 지어졌다.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패시브하우스를 지향하는 구름정원은 옥상에 태양광 집열판을 설치하고 외벽을 120㎜ 단열재로 두르고, 내벽은 6㎜ 반사판에 50㎜ 단열재로 한번 더 둘렀다. 창은 모두 3중 단열창을 썼다. 511㎡의 땅에 8가구가 가족수와 필요에 따라 91.9~84.3㎡ 정도의 면적을 나눠 살면서 집집마다 땅값과 시공비에 2억4000만원씩을 냈다.

시공을 맡은 공정건설 대표이자 하우징쿱주택협동조합의 기노채 이사장은 “아파트 전셋값 정도로 들어올 수 있는 집을 생각했다. 구름정원은 노후에 큰 경제적 부담 없이 공기 좋은 곳에 공동체 마을을 만들면서 살 수 있는 집으로 지어졌다. 부동산 개발업자, 분양할 때 나가는 마케팅 비용을 생략하고 착한 건설을 추구하면 기초공사에 더 많은 돈을 들일 수 있다. 그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지속가능한 노후의 모양”이라고 했다. “집을 공동으로 사서 공동 등기 하니까 가구당 1000만원 이상 절세 효과도 거뒀다”고도 귀띔했다.

집은 1인가구와 대가족 등 가족 수와 삶의 모양을 고려해 집집마다 다르게 지어졌다.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윤승현 소장은 집집마다 작지만 특색있는 집을 제안하는 대신 모든 집에서 북쪽 수양산 소나무숲과 동쪽의 북한산이 내다보일 수 있도록 향을 평등히 나눴다. 또 건축가는 “지역 주민들 입장에서 보면 구름정원이 북한산을 조금이라도 가릴 수밖에 없는데 건물 밖은 단순하고 아름답게 만들 책임이 있다. 북한산 돌멩이처럼 짓자”고 건축주들을 설득했다. 에어컨 선도, 빨래 너는 곳도 보이지 않도록 모든 선을 벽 속으로 넣느라 배관값이 배나 들었지만 건축주들은 기꺼이 동의했단다.

이 집이 ‘실버형’인 것은 단순히 건축주들 나이 때문만은 아니다. 입주자들은 따로 돈을 모아 1층과 지하에 가게 3곳을 마련했다. 더 나이 들었을 때 함께 소득을 거둘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고 당장 마을과 소통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공유주택인 이상 마을에 어떤 방식으로든 역할을 해야 하는데 가게가 그 일을 했으면 했다. 저녁때가 되더라도 둘레길 입구를 밝혀주고 구름정원이 산에서 마을로 나아가는 마을 문 역할을 하길 바란다”는 것이 건축가의 바람이다. 입주자들은 상업적인 분위기에 쏠리지 않으면서 마을에 보탬이 될 만한 구름정원 장사꾼들을 찾는 중이다.

 

(한겨레 2014년 12월 11일 남은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