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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로서 살아온 30여 년의 세월과 더불어 인생 후반기를 맞아 행복을 추구하는 기술자의 변신 스토리입니다. --------- 기술 자문(건설 소재, 재활용), 강연 및 글(칼럼, 기고문) 요청은 010-6358-0057 또는 tiger_ceo@naver.com으로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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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이 선정한 전국 용(龍) 명소

 

갑진년(甲辰年)은 ‘푸른 용의 해’다. 상상의 동물인 용은 예부터 신성한 존재를 상징했다. 그래서 왕의 얼굴을 말할 때는 용안(龍顔), 왕의 옷을 이를 때는 용포(龍袍) 같은 표현이 쓰였다. 길한 기운을 받으려고 지명에도 용을 끌어다 썼다. 용이 들어간 지명이 지금도 1261개나 남아 있다. 전국 용 지명 중에서 여행 목적지로 가볼 만한 곳을 추렸다.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기운이 깃든 명소들이다.

계룡산은 높진 않아도 산세가 웅장하다. 삼불봉에서 관음봉, 천황봉으로 이어진 능선이 용이 꿈틀대는 것 같다. 지난 1월 25일 드론으로 설경을 촬영했다. 최승표 기자

‘푸른 용의 해’ 갑진년에 떠나는 신년맞이 여행

1. 비룡승천의 기운 - 계룡산

계룡산에 폭 안겨 있는 동학사.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비구니 승가대학이다. 최승표 기자

계룡산(鷄龍山·845m)은 닭 볏을 한 용의 형상에서 이름이 기원했다. 계룡산에 닭이 알을 품은 듯한 ‘금계포란(金鷄抱卵)’의 지형과 용이 하늘로 오르는 ‘비룡승천(飛龍昇天)’의 산세가 어우러져 있다고 한다. 예부터 하늘에 제를 올리는 산이었고, 여전히 무속인이 많이 드나든다. 계룡산국립공원 최대석 자연환경해설사는 “조선 시대 예언서인 『정감록』의 영향으로 계룡산 일대에서 최대 130개가 넘는 신흥종교가 융성했었다”고 말했다. 계룡산은 높지 않아도 웅장하다. 삼불봉(777m)에 올라 관음봉과 천황봉 방향의 능선을 보면 마치 용이 꿈틀거리고 있는 듯하다. 올겨울 계룡산에는 유난히 눈이 잦다. 1월 25일 동학사를 출발해 삼불봉까지 올랐는데, 강원도 고산지대 뺨치는 설경이 펼쳐졌다.

김영희 디자이너

 

2. 한강 발원지 - 검룡소

태백 금대봉 자락의 검룡소는 한강 발원지다. 연중 수온이 9도를 유지한다. [중앙포토]

 

검룡소(儉龍沼)는 1987년 국립지리원이 인정한 한강 발원지다. 강원도 태백 금대봉(1418m) 자락 800m 고지에 자리한다. 검룡소에서 서해까지 한강 물길이 약 514㎞에 이른다. 서해 이무기(검룡)가 용이 되려고 한강을 거슬러 올라 이곳에서 머무르고 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검룡소는 전설처럼 신비하다. 산에서 흘러내린 계곡물이 지하로 스몄다가 물길이 막히면 다시 솟아오르는 과정을 거친다. 1억5000만년 전에 형성된 석회암 동굴이 소 아래 있어서다. 하루 2000t의 지하수가 샘에서 솟구치고, 수온은 사계절 영상 9도를 유지한다. 모래와 자갈이 물과 함께 소용돌이치면서 암석을 깎아 만든 돌개구멍(포트홀)도 볼 수 있다. 태백산국립공원 검룡소 주차장에서 약 1.5㎞를 걸으면 검룡소가 나온다.

 

 

3. 산방산의 머리 - 용머리해안

산방산과 용머리해안. 원래는 하나로 연결돼 있었던 걸 알 수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제주도에는 용 명소가 두 곳 있다. 하나는 섬 북쪽의 용두암이고, 다른 하나는 섬 남쪽의 용머리해안이다. 먼저 알려진 건 용두암이지만, 현재 더 유명한 명소는 용머리해안이다. 용머리해안은 천연기념물이자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핵심지질명소다. 산방산(395m) 아래  600m 길이의 해안을 따라 20m 높이의 퇴적층이 벽처럼 두르고 있다. 썰물에만 해안을 거닐 수 있다(입장료 어른 2000원). 산방산과 용머리해안이 원래 한 몸뚱어리였는데, 산방산에 똬리를 튼 용이 바다로 내민 고개가 용머리해안이 됐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비록 중간에 끊기긴 했지만 용 머리와 똬리 튼 용의 지형이 펼쳐진다. 그러나 산방산과 용머리해안은 생성 연대는 물론이고 지질학적 특성도 전혀 다르다.

 

4. 용틀임 소리 - 비룡폭포 

설악산 소공원 쪽에 있는 비룡폭포. 폭포 낙차가 약 15m에 이른다. [사진 국립공원공단]

 

전국에는 유난히 비룡폭포(飛龍瀑布)가 많다. 흔히 물줄기가 가늘고 긴 폭포에 ‘비룡’을 붙이고, 물줄기가 넓게 퍼지면 수락폭포라고 한다. 전국의 수다한 비룡폭포 중에서 제일 유명한 비룡폭포가 설악산 비룡폭포다. 설악산 비룡폭포는 설악산 소공원 매표소 남쪽 2.4㎞ 거리에 있다. 상류에는 토왕성폭포, 하류에는 육담폭포가 흐른다. 16m 낙차로 떨어지는 물소리가 용틀임처럼 격렬하다. 먼 옛날 가뭄에 시달리던 마을에서 용에게 처녀를 바친 뒤 비가 내렸다는 전설이 있다. 겨울에는 폭포 물기둥이 꽁꽁 얼어 또 다른 장관을 연출한다. 소공원부터 비룡폭포까지는 약 1시간 걸리고, 육담폭포와 토왕성폭포까지 모두 관람하려면 왕복 3시간 정도 잡아야 한다.

 

5. 동양 최대 은행나무, 보물 대웅전 - 용문사 2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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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 용문사의 은행나무. [중앙포토]

남해 용문사 뒤편 차밭에 오르면 멀리 바다가 보인다. [중앙포토]

 

사찰에도 용이 자주 등장한다. 왕실의 후원을 받았거나 호국 도량으로 소문난 절 중에 용(龍) 자 들어간 사찰이 많다. 경기도 양평 용문산의 용문사가 대표적이다. 양평 용문사는 신라 신덕왕 2년(913년) 대경대사가 창건했다는 설과 경순왕(896~978)이 창건했다는 설이 있다. 용문사의 상징은 은행나무다. 수령 1100년에 이르는 동양 최대 은행나무로, 높이가 42m, 밑동 둘레는 15.2m에 달한다. 경순왕의 아들인 마의태자가 나라 잃은 설움을 안고 금강산 가는 길에 심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경남 남해에도 용문사가 있다. 신라 문무왕 3년(663년) 원효대사가 건립한 보광사가 용문사의 전신으로, 조선 숙종(1661~1720) 때 왕실 보호 사찰이었다. 대웅전이 보물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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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압도적인 바위 세상 - 미르마루길

전남 고흥 용암마을에 있는 용바위. 수직 높이가 120m에 달한다. [사진 한국관광공사]

 

전남 고흥군 영남면에는 용바위가 있다. 수직 높이 120m의 압도적인 위용의 암벽이다. 퇴적 암벽이 병풍처럼 펼쳐지고, 파도치는 듯한 바위를 비롯한 기암괴석이 거대한 바위 세상을 완성한다. 절벽 한쪽에 할퀸 듯한 자국이 선명하다. 자국의 내력에 관한 전설이 내려온다. 먼 옛날 용 두 마리가 여의주를 놓고 싸우고 있었다. 싸움을 구경하던 동네 사람이 한 용에게 활을 쐈다. 덕분에 싸움에서 이긴 다른 용이 바위를 딛고 승천했는데, 그 자국이 이렇게 남았다. 고흥군이 용바위와 우주발사전망대 사이에  4㎞ 길이의 해안 탐방로 ‘미르마루길’을 조성했다. ‘미르’는 용의 순우리말이다. 기암절벽은 물론이고 몽돌해변·다랑논 등을 두루 감상할 수 있다. 서핑 해변으로 뜬 ‘남열해돋이해수욕장’이 가깝다.

 

7. 용 닮은 하늘길 - 용궐산

순창의 용궐산 하늘길. 가파른 암벽을 따라 탐방로를 조성해 관광 명소가 됐다. 백종현 기자

 

전북 순창에는 용의 기운을 품은 용궐산(龍闕山)이 있다. ‘용의 궁궐’이라는 뜻의 이름이 본명은 아니다. 본디 용골산(龍骨山)이라 불렸으나 지역 주민들이 “죽은 용을 연상케 한다”며 개명을 요구해 2009년 지금의 이름을 얻었다. 2020년 용궐산 중턱 용여암(龍女岩) 절벽에 잔도길을 조성한 뒤 명소로 떠올랐다. 지난해 7월 유료(4000원)로 전환하고 정식 집계한 탐방객만 5만명이다. 순창군 산림공원과 정영호 팀장은 “올해 들어 입장객이 부쩍 늘었다”며 “주말마다 1500명 이상이 방문한다”고 말했다. 1.5m 폭의 벼랑길이 지그재그로 뻗은 모양도 용을 닮았다. 전체 길이가 1096m로 넉넉히 1시간이면 오를 수 있다. 눈이 오거나 길이 얼면 출입을 막는다. 용궐산 자연휴양림에 미리 문의하는 게 안전하다.

 

8. 용이 승천한 바다 - 구룡포

포항 구룡포에는 항구와 바다를 내다보는 언덕에 대형 용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백종현 기자

 

거친 바다에 기대어 살아온 갯마을에서도 용은 신성한 존재였다. 경북 최대 항구 도시인 포항 구룡포(九龍浦)에도 용의 전설이 내려온다. ‘아홉 마리 용이 승천한 포구’라는 뜻에서 구룡포라는 지명이 유래했다.

구룡포항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구룡포공원 언덕에 용 아홉 마리가 서로 엉겨 붙어 하늘로 오르는 모습의 대형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언덕 아래 근대문화역사거리(일본인 가옥거리)가 TV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 등장한 뒤 전국구 관광지로 거듭났다. 드라마에서 숱하게 나왔던 돌계단을 오르면 용 조형물이 나온다. 포항 호미곶 인근에도 아홉 마리 용이 드나들었다는 구룡소(九龍沼)가 있다. 바다로 불거진 바위 절벽 아래 파도와 자갈이 만든 돌개구멍 여러 개가 발달해 있다.

손민호·최승표·백종현 기자 ploveson@joongang.co.kr

 

[중앙일보 2024년 2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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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기후 위기 탓에 봄꽃 개화 시기를 예측하기가 힘들다. 지난해에는 서울과 경남 창원에서 벚꽃이 동시에 피었다. 올해는 어떨까. 이달과 다음 달 열리는 주요 봄꽃 축제 현황을 점검했다.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화사한 봄을 뽐내는 건 매화다. 전남 광양 다압면 매화마을이 대표적이다. 오는 8~17일 매화마을 일원에서 광양 매화 축제를 연다. 지난해보다 이틀 빨라졌다. 올해는 입장료 5000원을 받고 같은 액수의 지역 상품권을 환급해준다. 7일 현재 개화율은 70%다. 광양과 이웃한 전남 구례는 산수유가 유명하다. 샛노란 산수유꽃과 지리산이 어우러진 풍광의 산동마을에서 9~17일 산수유꽃 축제를 연다. 역시 지난해보다 이틀 앞당겼다.

김주원 기자

 

창원의 진해 군항제는 애초 22일부터 4월 1일까지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꽃샘추위 때문인지 23일로 행사 개막을 하루 미뤘다. 그래도 역대 군항제 중 가장 빨리 시작한다. 매해 수백만 명이 운집하는 전국 최대 벚꽃 축제답게 가볼 곳도 많고 에어쇼, 군악 공연 등 볼거리도 다채롭다. 경북 경주는 이달 22~24일 대릉원 돌담길을 중심으로 벚꽃 축제를 열 예정이다. 지난해보다 무려 9일이나 빨라졌다. 단, 기상 상황에 따라 축제 시기가 바뀔 수 있다고 한다.

지난해 서울의 봄은 유난히 따뜻했다. 꽃이 일찍 진 탓에 벚꽃 축제 기간에 벚나무 가지가 앙상했다. 그래서일까. 매해 4월 첫째 주에 개최했던 영등포 여의도 봄꽃 축제와 석촌호수 벚꽃 축제를 오는 27~31일 개최할 예정이다. 100% 결정된 건 아니다. 날씨가 변수다. 서울 영등포문화재단 관계자는 “개화 예상 시기가 계속 달라지고 있다”며 “다음 주 초 축제 시기를 확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도열한 왕벚나무에 만개한 벚꽃을 볼 수 있는 전남 영암의 왕인문화축제는 오는 28~31일 왕인박사 유적지 일원에서 진행된다. 전남 신안은 이달 22일부터 다음 달 7일까지 선도에서 섬 수선화 축제를, 4월 5~14일은 임자도에서 튤립 축제를 개최한다. 수선화 축제 때 노란색 옷을 입고 가면 입장료 6000원을 반값으로 할인해준다.

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중앙일보 2024년 3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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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3. 13. 07:00 | Posted by 행복 기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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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3. 12. 06:59 | Posted by 행복 기술자

서울은 4월 3일 개화 시작 후 10일에 절정으로 예상

 

2024년도 벚꽃 개화 시기. 사진=웨더아이 
 
 

'결박, 정신의 아름다움'이라는 꽃말을 가진 벚꽃. 봄이 찾아오니 덩달아 벚꽃 생각에 설렌다.

 

벚꽃 개화일은 표준목의 경우 벚나무 한 그루 중 세 송이 이상이 완전히 피었을 때를 말한다. 또 군락지의 경우에는 대표하는 1~7그루의 나무에서 한 가지에 세 송이 이상 꽃이 피었을 때를 말한다

웨더아이에 따르면, 남부지방은 작년보다 1~7일 늦고 중부지방은 작년보다 5~9일 정도 늦은 시기에 벚꽃이 피기 시작한다고 밝혔다.

올해 벚꽃은 3월 24일 서귀포를 시작으로 남부지방은 3월 22일∼3월 31일, 중부지방은 3월 30일∼4월 7일, 경기 북부와 강원 북부 및 산간지방은 4월 7일 이후에 개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벚꽃의 절정 시기는 개화 후 만개까지 일주일 정도 소요되는 점을 고려할 때, 서귀포에서는 3월 31일 이후, 남부지방에서는 3월 29일∼4월 7일경, 중부지방에서는 4월 6일~4월 14일경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에서는 4월 3일 개화해 4월 10일에 절정에 이를 것으로 알렸다.

다만 개화예상기준은 기상청 각 기상관서 표준목을 대상으로 하였으며, 같은 지역이라도 벚나무의 품종, 수령, 성장상태나 주변 환경여건 등에 따라 개화시기는 차이가 날 수 있다.

한편, 벚꽃으로 유명한 곳은 서울 여의도, 잠실 석촌호수, 창덕궁, 안양천, 서울랜드, 춘천 소양강댐, 강릉 경포호수, 경주 보문관광단지, 진해군항제 등이 있다.

< 문화경제 이윤수 기자 > 2024년 3월 5일

원주 소금산 출렁다리

2024. 3. 5. 07:02 | Posted by 행복 기술자

지허스님 입적과 40년 된 매실나무

국내여행 일타강사

 

“햐~ 이 맛에 중노릇을 하는 거라.” 순천 금둔사엔 동지섣달에 꽃 피는 매실나무가 있습니다. 음력 섣달에 핀다고 ‘섣달 납(臘)’자를 붙여 금둔사 납월매라 불렀습니다. 겨울 매화 100송이나 피우던 금둔사. 이를 가꾼 큰스님이 지난 가을 입적했습니다. 그리고 올겨울, 금둔사 매화는 꽃을 감췄습니다.

 

전남 순천에 있는 금전산 남쪽 기슭에 자리한 금둔사 대웅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한겨울에도 꽃을 보러 다닌 건 올해로 20년째다. 처음엔 소문으로만 알았다. 전남 순천에 가면 낙안읍성 내려다보이는 금전산(668m) 남쪽 기슭에 금둔사라는 작은 산사가 있는데, 그 절집 매실나무가 동지섣달에도 꽃을 피운다고. 호기심 반 기대 반으로 찾아갔더니 정말 매화가 피어 있었다. 붉은 매화, 홍매(紅梅)였다. 그때부터였다. 태고종 종정 지허 스님과 연을 맺은 건.

40여 년 전 폐허 같았던 금둔사를 일으키고 매실나무 씨앗을 구해 와 이윽고 꽃을 피우게 한 주인공이 지허 스님이다. 금둔사에 들 때마다 스님은 손수 기르고 따고 덖고 내린 차를 내주셨다. 지허는 그 유명한 선암사 동구 차밭을 손수 일군 선사(禪師)다. 인연에도 끝이 있는 것일까. 지허 스님이 지난해 10월 2일 입적했다. 1941년 전남 보성 벌교에서 태어났으니 세수는 82세였고, 1956년 선암사에서 사미계를 받았으니 법랍은 67년이었다.

 

2020년 12월 촬영한 지허 스님. 한쪽 눈을 다쳐 색안경을 쓰고 있었다. 스님은 지난해 10월 2일 입적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금둔사로 내려간 건 지난달 17일이다. 금둔사는 아직도 어두웠다. 꽃망울 맺힌 나무에서 한두 송이가 겨우 꽃잎을 열었을 뿐이었다. 동짓달에도 100송이 넘게 꽃을 피웠던 금둔사 매화가, 제주도 매화가 86년 만에 가장 이른 개화 소식을 전한 이 겨울에는 피지 않았다. 설마 매화도 스님이 떠나신 걸 알았던 걸까.

2020년 12월, 코로나19 사태가 끝나지 않았던 시절, 문득 금둔사 홍매가 그리웠다. 오랜만에 지허 스님에게 전화를 넣었다.

 

 

“스님, 매화가 언제 필까요?”

“아직 멀었제. 동짓달은 지나야 확 피제.”

지난달 17일 촬영한 금둔사 백매. 겨울이 다 가야 피던 백매가 올겨울에는 서둘러 피었다. 손민호 기자

 

음력으로 동짓달 하고 열나흘. 금둔사에 들었다. 요사채 앞 매실나무 한 그루가 붉은 기운으로 온통 화사했다. 가지마다 두서너 송이씩, 얼추 100송이 가까이 핀 듯했다.

“나가 야들을 심은 게 35년 전이여. 여태 이렇게 일찍 핀 적이 없었네.”

팔순 앞둔 노스님이 아이처럼 신이 나 말하고 있었다. 엄동설한에 꽃 피운 매화보다 큰스님의 해맑은 얼굴이 더 숭고하고 아름다웠다. 그 기운을 받아 코로나로 버거웠던 날들을 버텼다.

 

 

올겨울에는 금둔사 홍매가 좀처럼 피지 않았다. 손민호 기자

 

금둔사는 작은 사찰이다. 바로 옆 조계산(887m) 자락에 선암사와 송광사가 있어 이름도 크게 밀린다. 절은 작아도 내력은 길다. 백제 위덕왕 30년(583)에 창건했다는 기록이 전해 온다. 통일신라 시대에는 제법 번창했었다. 당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석조불상과 삼층석탑이 남아 있다. 모두 보물로 지정됐다. 금둔사의 명맥이 끊긴 건 정유재란(1597) 때다. 난리 통에 가람이 전소했다. 이후 오랜 세월 폐사지였다. 1970년대까지 산 아래 주민이 금전산 중턱 절터까지 올라와 밭농사를 지었다.

금둔사를 다시 일으킨 주인공이 지허다. 1979년 금전산 기슭에서 무너지고 부서진 석조불상과 삼층석탑을 발견하고서다. 그 뒤로 스님은 길 닦고 돌 쌓으며 버려진 절을 다시 세웠다. 산 아래 낙안읍성에서 600년 묵은 노거수의 씨앗 한 움큼을 받아와 금둔사 곳곳에 뿌린 건 1985년의 일이다. 그 씨앗 중에서 6개가 살아남아 매운 계절에 꽃을 피운다. 생전의 스님은 “매화가 부처”라고 말했었다.

금둔사의 새 주지 승국 스님. 손민호 기자

 

생전의 지허는 ‘선농일치(禪農一致)’라는 말을 자주 했었다. 농사짓는 게 참선이라는 뜻이다. 60여 년 전 선암사 차밭을 일구기 시작했을 때도 한마음이었을 터이다. ‘선다일여(禪茶一如)’도 지허가 자주 부린 말씀이다. 차 생활이 참선이라는 말이니 수행하지 않으면 차를 만들 수 없다는 경구다. 지허는 참선하는 마음으로 차를 빚었고 농사를 지었고 꽃을 기다렸다.

새 주지로 들어온 승국 스님은 죄라도 지은 양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이었다. 스님이 가신 것도, 매화가 피지 않는 것도 다 제 잘못인 듯한 얼굴이었다. 하릴없이 경내를 거니는데 활짝 핀 백매 한 송이가 눈에 들어왔다. 홍매도 안 핀 금둔사에 백매가 피었다니. 이건 또 무슨 조화인가.

승국 스님은 “다비식에서 사리 여러 점이 나왔는데, 1주기가 되면 선암사에서 정식으로 모시기로 했다”고 말했다. 태고종 종정을 역임한 큰스님에 대한 예우다. “말씀을 남기신 게 있느냐” 물었더니 지허 스님의 열반송(涅槃頌)을 보여줬다. 생전의 노스님이 “내가 죽거든 열반송으로 쓰라”고 미리 건넨 글귀라고 했다.

 

뿌리 없는 나무 위에 녹음이 꽃 같고
끓는 물 가운데 흰 연꽃이 활짝 피었네.
지팡이 끝에 걸린 옛 달은 허공을 비추고
하늘 밖에 학 울음소리 길게 떨어지는구나. 

기사 전문과 더 자세한 내용은 더중앙플러스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중앙일보 2024년 2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