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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로서 살아온 30여 년의 세월과 더불어 인생 후반기를 맞아 행복을 추구하는 기술자의 변신 스토리입니다. --------- 기술 자문(건설 소재, 재활용), 강연 및 글(칼럼, 기고문) 요청은 010-6358-0057 또는 tiger_ceo@naver.com으로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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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인 신

2014. 2. 21. 07:00 | Posted by 행복 기술자

행복한 엔지니어의 뉴스레터 (제 264 호)

 

【 과학적인 신 】

 

이번 뉴스레터부터는 당분간 제가 집필하고 있는 <과학적인 신>에 대한 내용을 보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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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종교’ 하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종교는 과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에 자연에 대해 잘 알지 못해서 느끼는 두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낸 미신’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아니면 과학과 종교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갈등을 느낄 하등의 이유가 없다거나 서로 보완적이라는 시각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과학과 종교’에 대해서 거론할 때는 과학과 종교는 갈등 관계에 있고, 시간이 지날수록 과학이 발전할 것이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과학이 종교를 누르고 승리할 것이라는 막연한 느낌이 대세라고 생각한다. 종교의 힘이 강했던 중세까지는 종교가 과학을 부당하게 핍박하고 억눌렀지만, 이제는 과학이 종교에게 절대적인 우위에 있다는 막연한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아직도 종교가 과학에 대해 우위에 있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종교 근본주의자이거나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들로 취급받는 세상이 되었다. 또 종교 우위를 주장하는 사람들조차도 종교가 절대적인 우위에 있다는 생각보다는 종교가 과학적이라거나 과학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종교가 해결할 수 있다는 정도의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렇다면 ‘과학과 종교’는 어떤 관계여야 하는가? 영원히 적대적인 관계여야 하는가? 아니면 종교가 과학에 빨리 항복하고 그나마 명맥이라도 유지하기 위해 과학을 종교에 최대한 받아들여야 하는가? 이제까지 ‘과학과 종교’의 관계를 논의할 때 대부분의 논조는 종교가 과학적 사실들을 최대한 받아들여 변신함으로써 과학과 종교가 화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입장은 일면 합리적인 주장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어찌 보면 과학을 일방적으로 편드는 주장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이런 주장은 종교가 결코 과학적일 수 없다는 전제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제까지 종교를 과학적으로 재해석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결국 지적설계론처럼 종교에 억지로 과학의 옷을 입혀놓은 것에 불과하다는 우려가 있었던 게 사실이다. 따라서 종교에 과학을 받아들여 ‘종교와 과학’이 대등하게(?) 되려는 시도는 부질없는 시도라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시각은 과학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과학만능주의에 빠지는 우를 범할 수 있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즉 과거에 종교가 부당하게 과학적 사실들을 왜곡했듯이, 과학이 과학주의로 변질되어 과학이 종교의 역할까지 감당하려는 어리석음을 범할 우려가 있다.

따라서 여기서는 종교가 과학을 받아들여 공존을 모색해야 한다는 정도의 어정쩡한 미봉책 대신에 종교가 과학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함으로써 ‘과학과 종교’의 관계를 재정립해 보려고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과학이 무엇이며, 종교, 특히 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제까지 ‘과학과 종교’에 대한 논쟁의 내면을 살펴보면 그 논쟁의 원인이 과학에 대한 오해와 신에 대한 부정확한 정의에서 비롯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진화론과 창조론의 논쟁의 경우를 보면 서로 상대 주장의 결점을 부각시킴으로써 자신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시도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상대의 잘못을 많이 지적할수록 자신의 주장이 정당성을 얻는다는 생각은 과학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확고한 과학적 주장이 되기 위해서는 반증을 반박할 수 있어야만 한다. 하지만 자신의 주장이 과학적인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자신의 주장이 과학 법칙에 근거하고 있느냐가 우선시 되어야 한다. ‘빛이 입자냐 파동이냐?’라는 논쟁에서 ‘빛이 파동’이라는 실험 결과가 나왔다고 해서 ‘빛이 입자’라는 주장이 틀렸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얘기다. 마찬가지로 ‘빛이 입자’라는 특성을 실험을 통해 관찰했다고 해서 ‘빛이 파동’이라는 주장이 틀렸다고 해서도 안 된다. 이 경우에는 ‘빛이 입자이면서 파동’이라는 것이 과학적 사실이기 때문이다.

또한 ‘신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제대로 대답하기 위해서는 이 질문 중의 ‘신이 어떤 존재인가?’ 하는 것부터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신이 없다’고 주장하는 대부분의 경우에 ‘신은 종교, 특히 기독교에서 말하는 세상의 일에 일일이 간섭하는 인격적인 신’을 의미한다. 따라서 과학적인 법칙을 통해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노력보다는 ‘종교에서 말하는 신’의 비합리성을 내세움으로써 신의 존재를 부정하려는 경우를 많이 본다. 예를 들어 ‘완벽한 인격적인 신이라면 이처럼 불완전한 세상을 만들 리가 없다’는 주장을 한다고 해서 신의 존재가 완벽하게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여기서는 과학적인 법칙에 근거해서 신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먼저 증명한 다음, 그 ‘과학적인 신’이 어떤 모습일까 하는 것까지 살펴보려고 한다. 물론 여기서 신의 존재를 증명했다고 해서 이제까지의 ‘과학과 종교’의 대립에서 종교의 승리를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주장하는 ‘과학적인 신’이 ‘종교적인 신’과 일치하느냐 하는 것은 또 다시 살펴봐야 할 별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엄밀하게 말해서 신이 존재하느냐 하는 명제는 ‘과학적인 신’에 한정되어야 하고, ‘종교적인 신’은 각 종교의 믿음의 문제로 별도로 다뤄져야 한다. 과학과 종교의 경계선이 바로 여기에 존재한다. 어찌 보면 이제까지 과학과 종교의 관계를 다루면서 서로의 주장이 평행선을 달리는 이유도 바로 ‘과학적인 신’과 ‘종교적인 신’의 경계를 명확하게 구분하지 않은 데 있다고 볼 수 있다.

 

행복한 미래를 만드는 기술자

 

김송호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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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발송되었던 뉴스레터를 보고 싶으신 분들은 제 개인 블로그 http://happyengineer.tistory.com/이나 http://www.linknow.kr/group/happygroup에서 <엔지니어를 위한 뉴스레터> 목록에서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그 동안 하던 헤드헌팅 업무를 접고, 삼표산업의 기술고문으로 이직하였습니다. 헤드헌팅과 관련된 일은 서현주 이사님(02)2183-2822 / 010-2277-4388, 이메일: hjseo@hrman.co.kr)로 문의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