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엔지니어의 뉴스레터 (제 909 호)
【 식물인간이라뇨? 】
우리는 혼수상태에 빠져 외부 자극에 전혀 반응하지 않는 환자를 ‘식물인간’이라고 표현합니다.
하지만 페터 볼레벤 같은 식물학자들은 ‘식물인간’이라는 표현이 인간의 입장에서 식물을 바라본 잘못된 표현이라고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식물도 우리 인간 내지 동물과는 다르지만, 나름대로 외부 자극에 반응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페터 볼레벤은 그의 저서 『나무 수업』(이마, 2016년)에서 “나무도 부상을 당하면 인체처럼 전기 신호를 송출한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상처를 입으면 수백만 분의 1초 안에 몸 전체로 통증 신호가 퍼져나가는 인체와 달리 잎으로 전달되는 나무의 통증 전달 속도는 분당 겨우 1센티미터밖에 안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애벌레의 입맛을 망치는 방어 물질을 잎에 저장하여 애벌레를 퇴치하기까지는 무려 한 시간이 걸리는 문제가 있긴 하지만 말입니다.
페터 볼레벤은 또 다른 저서인 『나무의 긴 숨결』(에코리브르, 2022년)에서 “나무 꼭대기에는 식물의 뇌 같은 역할을 하는 세포들이 있다.”고도 주장합니다.
이들 꼭대기 세포들은 어둠 속에서 탐색을 하며 성장하고 최소 20개의 다양한 매개 변수를 관리한다는 것입니다.
『매혹하는 식물의 뇌』(행성비, 2016년)의 저자인 스테파노 만쿠소와 알렉산드라 비올라도 ‘식물에 뇌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식물들은 외부 자극에 반응할 뿐만 아니라, 적극적인 대응도 한다는 것이 이들 식물학자들의 주장입니다.
예를 들어 초식동물들이나 곤충들이 자신의 잎을 손상시키면, 식물들은 잎에 독성 물질을 내보낼 뿐만 아니라, 이웃 식물들에게도 경계하라는 신호를 보냅니다.
곤충들이 괴롭힐 경우에는 그 곤충들의 천적을 불러들이는 반응까지 보이는데, 그런 행동이 어찌 뇌가 없이 가능하겠느냐고 주장합니다.
더 나아가 나무는 살아가면서 배우는 것을 외부로 뻗어 있는 가지의 끝부분에 축적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 오래된 나무한테서 나온 가장 최근의 후손 안에는 지금까지 살면서 얻은 그 나무의 지식이 집약되어 있습니다.
식물의 뿌리도 물을 얼마나 마실지, 어떤 이웃 나무와 영양분을 나눌지, 어떤 균류와 공생할지 등을 결정하면서 인간의 뇌와 같은 기능을 수행합니다.
인간이 모든 지식을 뇌라는 한 부분에 집중해서 저장하는 대신에 나무는 나무 꼭대기, 가지 끝, 뿌리 등 여러 곳에 분산 저장하는 것이 다를 따름입니다.
식물이 이처럼 모든 기능들을 전신에 분산하는 이유는 어느 한 부분을 잃더라도 생명에 지장이 없도록 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이동이 자유롭지 않은 식물(나무)로서는 동물과는 다른 전략을 선택하는 것이 너무도 지혜로운 전략이 아닌가요?
동물이 두뇌, 심장, 폐 등 핵심적인 장기들이 뚜렷하게 구별되어 있는 반면에, 식물은 여러 개의 모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식물이 이처럼 모듈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것은 초식동물 또는 곤충이 자신의 일부를 손상시키더라도 생존에 지장이 없도록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만약 식물이 동물처럼 뚜렷한 개별 장기를 갖고 있다면, 초식동물이나 곤충이 식물의 일부를 손상시켰을 때 살아남을 수 없을 것입니다.
식물학자들의 이런 주장을 보면서 우리는 사물을 대할 때 ‘옳고 틀림’의 관점이 아니라 ‘다름’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더 느낍니다.
진화가 인간을 진화의 정점에 있도록 진화한 듯한 착각을 일으키다보니 이런 편견이 생긴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인간을 포함한 동물은 식물이 없으면, 살 수 없지만, 식물은 인간이 없어도 살 수 있으니 식물이 인간보다 더 우월한 존재가 아니냐?’고 반문하고 싶습니다.
행복한 미래를 만드는 기술자
김송호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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