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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빌바오 여행(2)

행복 기술자 2022. 5. 19. 0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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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빌바오 여행(2)

 

만석인 비행기의 좁은 좌석에서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10시간 이상을 시달린 탓인지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피로가 몰려왔다. 더욱이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환승 시간이 길어져 연결 비행기를 타지 못할까 긴장을 했던 탓에 피로감이 더 크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체크인 후 방에 들어가서 대충 씻고 짐을 풀고 침대에 눕자마자 잠에 골아 떨어졌다. 시차 때문이었는지 새벽에 언뜻 잠이 깨었는데, 밖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다행히 창문이 이중창인지 소음이 크진 않았지만, 한둘이 아니라 여럿이 어울려 술을 마시면서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인 것 같아 참 스페인에도 예의가 없는 사람들이 있구나. 여행객들인 것 같은데, 이 새벽에 술을 마시면 조용히 마셔야지.”라면서 속으로 생각하다가 다시 잠이 들었다.

어제 늦게 잠자리에 들었는데도 아침 6시 조금 넘으니 눈이 떠졌다. 오늘 방문하기로 한 공장까지 가는 시간을 고려해서 7시쯤 아침식사를 하고, 8시에 로비에서 우리 일행을 안내할 기계 설계 회사 관계자와 만났다. 그런데 그 설계 회사 관계자가 오늘 방문할 회사에서 1030분 이후에 방문했으면 한다고 연락이 왔다고 해서 10시까지 자체 미팅을 가진 후 10시에 출발하기로 했다. 10시 반쯤 그 공장에 도착해서 인사를 나눈 다음 각자 회사에 대해서 소개하고, 공장 설비에 대해 궁금한 점을 묻고 답하다 보니 금방 12시가 되었다. 12시가 되었으니 이제 점심을 먹는가보다 하고 생각했더니 점심시간이 오후 2시부터이니 현장 견학을 가자는 것이었다. 점심시간이 오후 2시라고? 아하, 그러니까 스페인 공장의 업무 시작 시간이 10시이고, 점심시간이 오후 2시라서, 10시 이후에 방문해달라고 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이들의 퇴근 시간은? 물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당연히 늦지 않을까 하는 짐작이 들었다.

 

이들의 생활 패턴에 대해서는 공장 방문을 마치고, 호텔에 돌아와서 저녁식사를 하려고 식당을 찾다가 확실하게 깨달았다. 다음날 스위스 취리히로 가는 비행기를 아침 일찍 타야 했기 때문에 이른 저녁식사를 하기로 하고, 6시쯤 호텔을 나섰다. 빌바오가 스페인 북부에 위치하고 있어서 서울보다 약간 더 쌀쌀했지만, 길거리 노천카페에는 커피, 맥주, 포도주 등을 마시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우리는 식사를 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구글 검색을 통해 맛집을 확인하고, 구글 맵을 활용해 그 집을 찾아갔다. 식당에 들어서서 내부를 살펴봤더니 맛집치고는 손님도 없고, 입구에서 안내하는 웨이터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Hello”, “Excuse me”를 외치며 기다렸더니, 조금 있다 뜨악한 표정을 하고 앞치마를 두룬 사람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일행이 네 명이라고 얘기했더니 그 사람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하면서 서툰 영어로 식당 영업시간은 8시부터이니 8시 이후에 오라.”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 그래서 사람들이 맥주나 커피를 마시면서 길거리에서 기다리다가 8시가 넘으면 저녁식사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스페인 식 생활패턴에 대해서 책에서는 읽어본 적이 있는 것 같았지만, 실제로 맞닥뜨리고 나니 실감이 났다. 그러니까 스페인에서는 저녁을 늦게 먹고, 늦게 자니 당연하게도 아침 늦게 하루를 시작하고, 그에 따라 점심시간과 저녁시간이 늦어지는 패턴이 반복되는 것이었다. 스페인 식 생활패턴의 절정은 그날 밤에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그 전날에는 밤늦게 도착해서 피곤했기 때문에 아침까지 정신없이 잠을 잤지만, 그날에는 새벽에 울린 스팸 전화 때문에 잠을 깼다. 하긴 한국 시간으로는 오후 시간대이니 스팸 전화가 울려도 이상할 게 없지만, 여긴 스페인 아닌가. 투덜거리면서 시간을 확인해 보니 새벽 4시가 조금 지난 시간이었는데, 밖에서 그 전날 들었던 시끄러운 소음이 다시 들려오는 것이었다. 그럼, 어제 들었던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일시적으로 들렸던 소리가 아니라 매일 반복되는 일상적인 소음이라는 얘기란 말인가.

 

어차피 금방 잠이 올 것 같지도 않아서 창문 커튼을 열고 밖을 내다보니 술이 취해 길 가장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 어깨동무를 하고 서로 무슨 말인지 시끄럽게 얘기를 나누는 사람들로 골목길이 어수선했다. 이들이 하는 행태로 보아서 이제까지 술을 마시면서 떠들다가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인 것 같았다. 골목길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20대의 젊은이들로 보였으며, 나이 든 사람들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나이 든 사람들은 먼저 집에 가고 젊은이들은 늦게까지 술을 마시다가 이제야 집으로 가는 것으로 보였다. 아무래도 나이 든 사람들은 아침에 직장에 가야하니까 새벽 4시까지는 놀지 못하겠지만, 젊은이들이야 아침에 출근할 필요가 없어서 부담이 없을 수도 있고, 체력적으로도 견딜 수 있어서 새벽까지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건강에 좋다는 일반적인 상식에 거스르는 이러한 스페인 사람들의 생활 패턴은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스페인 사람들의 끈끈한 유대관계를 엿볼 수 있는 것 같아 부럽기도 했다. 긴 시간 동안 늦게까지 저녁식사를 한다는 것은 가까운 사람들끼리 떠들면서 식사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늦은 식사와 늦은 취침이라는 건강에 좋지 않은 요인과 가까운 사람들끼리의 유대 강화라는 건강에 좋은 요인 중 어느 쪽 영향이 큰지는 숙제로 남지만 말이다.

 

 

김송호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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