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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빌바오 여행(3)

행복 기술자 2022. 5. 26.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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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빌바오 여행(3)

 

빌바오에 있는 공장에서 현장 견학을 마치고 점심을 먹은 다음에 작별인사를 하고 나온 시각이 오후 4시경이었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눈에 확 띄는 건물이 보여서 물어봤더니 구겐하임 박물관(미술관?)이라고 했다. 빌바오에서 구경할 만한 대표적인 관광 명소로 꼽히는 곳이라 호텔에 잠깐 들러서 짐을 놓은 후 구겐하임 박물관을 구경하러 가기로 했다. 나는 책과 인터넷을 통해 빌바오에서 구경할 만한 곳을 찾아본 적이 있어서 구겐하임 박물관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었지만, 같이 간 일행들은 그 이름을 처음 들어본다고 얘기했다. “그렇게 유명한 박물관 이름을 처음 들어본다고?”라고 잘난 척 하긴 했지만, 사전에 조사를 하지 않았더라면 난들 그걸 알 수 있었겠는가?

박물관은 호텔에서 10분 정도 거리에 위치해 있었고, 가는 길도 자그만 강을 따라 나 있어서 강의 정취까지 덤으로 즐길 수 있었다. 관광객인지 주민인지 잘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강가를 거닐기도 하고, 강가의 벤치에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박물관 가까이 다가가자 거미처럼 생긴 커다란 조각품이 우리를 환영해 주었다. 가늘고 긴 다리를 넓게 펼치고 사람 키의 두 배가 넘는 조각품은 거미 같기도 하고, 우주 괴물처럼 보이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조각품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고, 우리 일행도 서로 사진을 찍어 주면서 한참 동안 그 주위를 서성거렸다.

박물관 입구에 다가섰을 때 일행 중 한 명이 이왕 왔는데 들어가서 관람하고 가죠. 그렇게 유명하다면서요.” 하는 게 아닌가. 사실 나는 박물관 안에 들어가 전시물을 관람할 생각까지는 없었다. 어디를 가도 박물관이나 미술관은 방문 대상에서 제외하는 게 나의 여행 원칙(?)이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방문 대상은 자연이고, 두 번째는 교회, 유적 등 건축물이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은 폐쇄된 공간이 답답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싫고, 또 그 안의 전시물에 대해서 잘 이해를 할 수 없기 때문에 괜한 시간 낭비를 했다는 생각이 많이 들곤 했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앞으로 여행을 가게 되면 자연경관 위주로 목적지를 정하되, 업무 출장으로 도시를 방문해서 자연 경관을 볼 수 있는 여유가 없는 경우에는 그 도시를 둘러보는 게 내 나름의 여행원칙으로 삼고 있다.

 

아무리 내 여행원칙이 그렇다고 하더라도 일행들의 의사를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에 박물관 안을 관람하기로 했다. 표를 끊고, 등에 있는 배낭을 맡기라는 입구 요원의 안내에 따라 짐을 맡긴 다음 안으로 들어갔다. 박물관 외부 통로 외부가 모두 유리로 되어 있고, 모양도 예술적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답답하다는 느낌은 의외로 들지 않았다. ‘아마 전부 둘러볼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사전 판단에 의해서 우선 맨 위층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서 내려오면서 너무 지치지 않을 정도까지만 관람하기로 했다. 맨 위층의 방들은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교과서에 나올 정도의 아주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이 아니라서 그런지 크게 감흥이 와 닿지는 않았다. 역시 추상화는 나의 이해 영역 밖이라서 시간을 두고 들여다본다고 해서 이해가 될 것 같지 않아 설렁설렁 둘러보았다.

문제는 한 개의 방을 나오면 다음 방에도 비슷한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아마도 최소 한 개 층에는 미술품들만이 전시되어 있는 것 같았다. 원형으로 배치된 방들을 뱅 돌아 나오니 그 아래층에 자동차들이 전시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 시차 때문인지, 지루함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정신이 몽롱하고 다리도 아파서 복도에 놓은 의자에 앉아 잠시 쉬었다가 아래층 전시실로 내려갔다. 아래층 전시실에는 희한하게 생긴 자동차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전시된 자동차들은 주로 과거의 럭셔리 자동차들로 처음에는 와 신기하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사진도 많이 찍었지만, 서너 개의 방을 지나고 나서는 사진 찍는 것도 시들해졌다.

 

다른 일행들도 관람하는 데 흥미를 잃었는지 나가자는 의사표시를 해서 밖으로 나왔다. 하긴 스페인 빌바오는 저녁시간이 되었지만, 한국은 새벽시간이니 꼬박 밤을 새운 격이라 지치는 게 당연한 일이긴 했다. 박물관을 나와서 다른 일행들은 호텔에 들어가서 쉬기로 하고, 나와 일행 중 한 사람만 도시를 둘러보기로 했다. 나는 욕심이 많아서인지 이런 기회가 생기면 무리를 해서라도 도시를 둘러보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그렇게 무리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긴 과거에는 나도 출장을 가면 업무에 충실했지, 방문 도시를 둘러본다는 생각을 한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내가 출장 중에도 여행에 욕심을 내게 된 것은 아마도 나이가 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젊었을 적에는 시간이 무한정 있을 것으로 생각해서 나중에 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을 했지만, 이제는 내가 언제 다시 여기 와 보겠어. 기회 있을 때 무조건 봐둬야 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박물관을 나와 강변을 따라 건너편에 보이는 시가지로 들어가서 특정한 목표를 정하지 않고, 여기저기 둘러보았다. 다른 데서 보면 관광 책자에 소개됐을 것 같은 큰 교회도 보고, 5층 정도의 나지막한 건물의 베란다에 놓인 화분들을 보면서 걷다가 호텔에 돌아오니 6시경이 되었다. 오늘 걸은 총 걸음수를 보니 19,000. 만보를 넘었으니 하루 걷기 목표도 넘었고 다리가 뻐근했지만, 알찬 하루를 보냈다는 생각에 별로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김송호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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