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열린사회와 그 적들 I
칼 포퍼(이한구), “열린사회와 그 적들 I,” 2006, 민음사
이 책 <열린사회와 그 적들 I>은 1943년에 씌어졌으니 아주 오래된 책이다. 이 책을 쓴 동기는 히틀러가 전제정치를 하면서 유럽 침략에 나섰는데, 그 부당성을 지적하기 위한 것이다. 열린사회는 민주주의 체제를 의미하며 닫힌사회는 전제정치 체제를 의미한다. 따라서 이 책 제목에서 열린사회는 민주주의 체제를, 그 적들은 닫힌사회, 즉 전제정치 체제를 가리키고 있다. 현재는 전제정치 체제에 대한 민주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물론 현재도 러시아와 중국 등 공산주의를 표방하면서 전제정치 체제를 유지하거나, 종교적 이유 등 다양한 이유로 전체정치 체제를 시행하고 있는 독재자들은 의사결정의 신속화 등 전제정치의 강점을 강조하기도 한다. 하지만 민주주의 체제의 우월성은 절대적인 진리로 여겨지고 있으며, 전제정치를 하는 나라들도 언젠가는 민주주의 체제로 진화(?)할 것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민주주의 체제의 우월성이 아직 명백하게 드러나지 않았고, 서구 국가들에도 아직 노예제의 잔재가 남아 있고, 여성들에게 투표권이 주어지지 않는 등 완전한 민주주의 체제가 자리 잡지 않은 상황에서 이 책이 쓰였다는 사실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저자인 칼 포퍼가 플라톤이라는 유명한 그리스 철학자를 소환하여 민주주의 체제, 즉 열린사회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도구로 사용한 점도 흥미를 끈다. 플라톤은 ‘철인정치’를 주장하였는데, 이는 지배계급의 피지배계급에 대한 전제정치를 의미하는 것이다. 플라톤이 민주주의 체제의 상징인 아테네에 살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민주주의 체제 대신에 아테네의 숙적 스파르타의 전제 정치체제를 옹호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이는 플라톤의 스승인 소크라테스의 가르침과도 정면으로 배치되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플라톤이 왕족 출신으로 자신의 계급을 옹호하고, 또 자신이 아테네의 통치자가 되기를 내심 희망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이 책에서 흥미를 끄는 또 한 가지 내용은 소크라테스의 죽음에 대한 설명이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너 자신을 알라’는 명제를 내세워 젊은이들을 선동했다는 죄목으로 사형을 당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더 자세하게는 그냥 젊은이들이 아니라, 스파르타와 내통했던 젊은이들을 선동했다는 죄목이었기 때문에 사형까지 당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귀족 계급의 일부 아테네 젊은이들이 전쟁 상대방인 스파르타와 내통해서 아테네가 패배했다가, 나중에 다시 민주주의자들이 다시 아테네를 되찾았는데, 스파르타와 내통한 젊은이들이 소크라테스의 제자들이었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도망갈 기회가 있었는데도 독약을 마시고 죽음 이유도, 도망을 갈 경우 조국인 아테네를 배신한 것을 인정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었다는 게 이 책의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