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지니어로서 살아온 30여 년의 세월과 더불어 인생 후반기를 맞아 행복을 추구하는 기술자의 변신 스토리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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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군산 고군산군도 내 5개 섬을 연결하는 해상 도보길 조성 사업이 속도를 내고 있다. 사업이 완료되면 섬과 섬을 걸어서 이동하는 독창적인 트레킹 경험을 제공하게 돼 서해안을 대표하는 해상 트레킹 관광지로 부상할 전망이다.
군산시는 문화체육관광부 공모를 통해 ‘K-관광섬 육성사업’의 핵심 사업으로 추진 중인 ‘고군산섬잇길’ 조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4일 밝혔다.
전북 군산시 고군산군도 내 말도 습곡구조. 천연기념 제501호로 지정돼 있다. 군산시 제공
고군산섬잇길은 고군산군도에 분포한 말도와 보농도, 명도, 광대도, 방축도 등 주요 5개 섬을 4개의 해상 인도교로 연결하는 사업으로, 총연장 8.64㎞ 규모의 국내 대표 해상 걷기 관광자원으로 조성되고 있다.
이 사업은 섬과 섬을 걸어서 이동할 수 있는 독특한 관광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코스는 이용객 유형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즐길 수 있도록 구성됐다. 방축도에서 말도까지 이어지는 장거리 종주 코스는 전문 트레커와 걷기 여행객을 겨냥했으며, 방축도·명도·말도 등을 중심으로 한 원점 회귀형 가족 코스를 마련해 다양한 관광 수요를 충족하도록 구성됐다.
각 섬은 저마다 차별화된 자연·생태·지질 관광자원을 갖춰 서로 다른 관광 매력을 제공한다. 방축도는 출렁다리와 동백나무 군락지, 독립문바위 등 수려한 자연경관을 자랑하며, 명도는 구렁이전망대와 오진여전망대를 통해 서해의 아름다운 풍광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말도는 천연기념물인 말도 습곡구조를 비롯해 천년송과 말도등대 등 지질·해양 관광자원이 풍부해 탐방객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전북 군산시가 해상 걷기 관광 자원으로 조성 중인 ‘고군산섬잇길’ 1, 2교 모습. 군산시 제공
군산시가 추진 중인 고군산섬잇길 명도에 위치한 구렁이전망대. 군산시 제공
군산시는 사업 홍보와 관광 수요 확보를 위해 다양한 마케팅을 병행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트레킹 전문 여행사와 전문 트래커를 초청한 현장 모니터 투어를 진행했으며, 체험형 홍보를 위한 팝업스토어도 운영했다.
특히 지난해 8월 열린 고군산섬잇길 팝업스토어에는 당초 예상 인원의 2.6배에 달하는 3085명이 방문해 높은 관심을 입증했다. 이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방문 후기와 체험 콘텐츠가 확산되면서 자연스러운 홍보 효과로 이어지고 있다.
시는 올해 10월 명도~광대도 구간인 제3교 공사를 마무리하고 시범 운영과 개통 기념행사를 추진할 계획이다. 아울러 군산 구불길과 전북 삼천리길, 서해랑길 등 기존 광역 걷기 관광 네트워크와 연계해 체류형 관광상품 개발에도 나설 방침이다.
전북 고군산군도 끝자락에 위치한 방축도와 광대도를 연결한 출렁다리. 군산시 제공
군산시 관계자는 “고군산섬잇길은 섬의 자연과 문화, 생태를 체험하며 머무를 수 있는 체류형 관광 플랫폼으로 발전하고 있다”며 “고군산군도가 한국을 대표하는 해상 트레킹 관광지로 자리매김하도록 콘텐츠 확충과 관광 기반 시설 개선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상이 된 여행. 이한호 한국일보 여행 담당 기자가 일상에 영감을 주는 요즘 여행을 소개합니다.
강원 정선군 민둥산은 최근SNS에서 '여름이 가기 전 올라야 할 산'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강원 정선군 민둥산 정상 부근 돌리네 연못에 물이 고여 있다.
초록빛 화지에 검푸른 점 하나가 찍히니 드넓은 산정 초원은 산수 절경으로 화한다. 우묵한 바닥, 조금 찌그러진 듯한 원형 연못이 비경을 완성한 화룡점정이다. 계절의 생명력을 뽐내듯 푸르른 정상은 일대 봉우리를 굽어볼 만큼 높고 그 흔한 소나무 한 그루 없이 시야가 확 트였다. 강원 정선군의 민둥산(1,118.8m)이다. 전국에 벌거숭이 민둥산이 많지만 이곳은 본명이 민둥산이다.
가을이 오면 이 너른 들판은 황금빛 억새로 가득 찬다. 본래 민둥산의 제철이 가을로 여겨진 이유다. 그러나 근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민둥산의 여름이 주목받고 있다. 그 어느 계절보다 선명한 푸른색으로 물드는 풍경이 사람들의 감성을 사로잡은 것. 산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는 돌리네 연못은 억새밭을 뛰어넘는 민둥산의 명소로 자리매김했다. 연초SNS상에서 가장 주목받은 산이 관악산이라면 지금은 민둥산이 왕좌를 넘겨받았다.
여름 산이 된 가을 억새 명소 민둥산
민둥산 정상에서 돌리네 연못으로 향하는 길 위에서 등산객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민둥산을 찾은 젊은 여성 관광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평소 등산을 즐겼던 중장년층은 물론 2030세대와 외국인 관광객까지 민둥산을 찾는다. 현지 주민에 의하면 “요즘은 별다른 행사도 없는데 예년 (억새)축제 기간만큼 매 주말 등산객이 몰린다”고. ‘가을에 타는 산’ 민둥산이 ‘여름이 가기 전 꼭 올라야 할 산’이란 타이틀까지 거머쥔 셈이다.
민둥산에 나무 대신 억새밭이 자란 이유는 일대가 화전민 터전이었기 때문이다. 해발 1,000m를 넘는 첩첩산중에서 산촌 주민들이 생계를 꾸릴 방법은 삼림을 태운 땅에 작물을 심고 장작을 패고 나물을 캐서 파는 것뿐이었다. 지금은 전 국민이 사랑하는 별미가 된 곤드레(표준명 고려엉겅퀴)도 민둥산에서 재배되던 화전작물 중 하나. 1968년 전국적으로 화전이 금지되기 전까지 민둥산 일대는 해마다 불이 놓였고 나무는 자랄 수가 없었다.
생존을 위한 사투에도 민둥산은 비옥한 농경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정선, 태백, 삼척 일대가 그렇듯 민둥산도 물을 머금지 못하는 석회암 지대인 탓이다. 당시 산에 불을 놓던 이들은 상상하지 못할 일이지만, 원망스럽던 석회 땅은 수십 년이 지나 지역민을 먹여 살리는 명소가 됐다. 요즘 관광객이 민둥산을 찾는 이유가 된 돌리네 연못부터가 석회 땅이 깊게 파인 우물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민둥산 정상(오른쪽)과 돌리네(가운데)를 하늘에서 바라본 모습.
돌리네 연못 주위 땅은 주위 능선보다 확연히 낮아 보인다.
자연스러운 능선이 폭격이라도 당한 듯 움푹 파인 이 돌리네는 지표면 아래 석회암 지반이 빗물과 지하수에 녹아 가라앉으며 형성됐다. 말 그대로 ‘땅이 꺼져’ 생긴 구덩이로, 석회암이 용해되면서 형성되는 지형을 뜻하는 카르스트(Karst)의 일종이다. 이 구덩이에 빗물이 고여 차오른 것이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돌리네 연못이다. 용출수가 아닌 빗물로 이뤄진 못이라 강수량이 적으면 마르기도 한다. 반대로 강수량이 많은 계절에는 물이 차오른 못을 볼 확률이 높다.
그래서 민둥산은 여름에 한 번, 가을에 한 번 가야 한다고 한다.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살랑이는 억새는 장관이지만 이맘때면 기후가 건조해 돌리네 연못이 말라 있을 때가 잦다. 물이 마른 돌리네는 다소 심심하다. 반면 강수량이 풍부한 여름에는 연못이 마를 틈 없이 계속해서 물이 차오른다. 평범한 석회산 중 하나로 남을 뻔한 민둥산이 하늘이 찍은 화룡점정에 감성 충만한 명산으로 변한다. 여름 들판의 쨍함과 연못의 그윽함, 함께여야 비로소 완성되는 한 쌍이다.
예쁜 풍경과 험한 등산길
민둥산은 그늘이 적고 경사로가 끝없이 이어져 있어 보기보다 높은 등산 난이도를 자랑한다.
등산객 무리가 허리까지 자란 민둥산의 풀 사이를 걷고 있다.
둥글둥글 무해한 어감과 달리 민둥산은 꽤나 오르기 힘든 산이다. 30도에 달하는 급경사는 예사, 땅에 단단히 박히지 않은 돌멩이가 등산로에 산재해 위험하기도 하다.SNS에서는 ‘인생샷’을 찍겠다며 멋모르고 등반에 나섰다가 혼이 빠진 이들의 후기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체력 약한 등산 초보자라면 걸음을 옮길 때마다 숨이 턱턱 막힐 것이다.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그늘도 사라져 뙤약볕도 이겨내야 한다. 애초에 정상 봉우리의 해발고도가 1,000m가 넘는다. 많이들 오르는 관악산(632.2m), 인왕산(338.2m)보다 훨씬 높다.
다행인 점은 등산로 선택지가 다양하다는 점. 돌리네와 여름 들판을 보기 위해 민둥산행을 결정한 일반 관광객이라면 발구덕마을에서 출발하는 길이 수월하다. 해발 850m 언저리에 위치한 발구덕마을까지 차량으로 이동해 등산을 시작하는 경로다. 발구덕은 ‘여덟(팔) 개의 구덩이(구덕)’라는 뜻으로 산 정상의 돌리네와 같은 카르스트가 8개 분포해 있어 붙은 이름이다.
초입 경사는 다른 길과 다름없이 가파르지만 등산에 서툰 기자도 30분이면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굳이 정상에 오르지 않고 돌리네를 감상하는 것이 목표라면 20분이면 연못이 보이는 능선에 오를 수 있다. 지도 애플리케이션에서 ‘돌리네쉼터’를 검색하면 등산로 시작점을 찾을 수 있다. 다만 주말에는 차량 진입이 통제돼 보다 먼 능전마을에서 출발해야 한다.
가장 정석적인 등산로는 민둥산역 인근 중산초등학교에서 출발하는 경로다. 도중 급경사길, 완경사길로 갈리는데 어느 길을 택하든 편도 2시간은 족히 소요된다. 초심자에게 추천할 만한 길은 아니지만 등산을 즐기는 애호가는 도전해 봄 직하다.
발구덕마을발 등산로에서 바라본 민둥산 정상.
발구덕마을에서 민둥산 정상으로 향하는 등산로변에 금계국과 개망초가 만개했다.
나비 떼가 민둥산에 핀 금계국의 꿀을 따고 있다.
발구덕 등산로에서 마지막 능선으로 향하는 계단길은 들꽃이 아름답다. 초여름에는 산비탈 나무 계단 양옆으로 금계국과 개망초가 즐비하다. 달큼한 향기에 이끌린 나비와 꿀벌도 북적인다. 제아무리 요즘 사람이 많이 찾는다 해도 민둥산의 진짜 주인은 이들이다. 도시에서는 자취를 감추더니 온통 이곳으로 피난했나 싶다. 이따금 왱왱거리는 벌 소리가 무서워 발걸음을 떼기 망설이는 등반객도 있지만 정작 벌은 지천으로 널린 꿀을 따느라 사람은 안중에 없다.
민둥산은 수도권에서 당일치기 여행도 가능하다. 서울 청량리역에서 오전 7시 34분, 9시 51분 민둥산역행 무궁화호 열차가 출발한다. 각 열차편 도착시간은 오전 10시 46분, 오후 12시 41분. 오후 3시 24분, 4시 48분, 7시 53분 민둥산역에서 출발하는 청량리행 열차를 타고 복귀할 수 있다.
산비탈길에 세운 8층 석탑
민둥산 인근 정암사 수마노탑(국보)이 산비탈길 위에 우뚝 서 있다.
평온한 정암사의 모습.
보다 여유롭게 일정을 계획했다면 인근 관광지를 함께 둘러보는 것도 좋다. 대표적으로 만항재, 운탄고도, 정암사가 있다. 세 곳의 매력이 잘 드러나는 계절이 각기 다르다. 국내에서 차량으로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인 만항재는 겨울 설경이 유명하다. 하이원리조트 케이블카를 이용해 오를 수 있는 운탄고도는 오뉴월 꽃밭과 가을 단풍이 절경이다.
여름 민둥산과 함께 둘러보기 좋은 곳은 정암사다. 민둥산역에서 차량으로 15분이면 도착하는 가까운 거리에 있어 당일치기도 가능하다. 정암사는 산비탈에 우뚝 선 8층 석탑 수마노탑(국보)이 핵심인데 한창 식생이 우거질 여름에 가장 신비롭게 보인다. 탑 내부에는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셨다고 한다. 이 때문에 법당 내부에 불상을 두지 않고 탑 방향으로 창을 내 탑을 향해 불공을 드린다. 정암사 부지에 ‘수마노탑 10분’이라는 팻말이 있긴 한데 이 길 역시 경사가 만만찮다. 사찰 일대 계곡은 열목어 최남단 서식지로 쳔연기념물(정암사 열목어 서식지)로 지정됐다.
경북 청송군 주왕산 장군봉에서 바라본 기암. 그 너머 멀리 보이는 봉우리가 주왕산 정상 주봉이다.
전국 24개 국립공원을 관리하는 국립공원공단 직원들은 몇 년씩 순회 근무한다. 은연중 격·오지(隔·奧地) 순위가 짜이기 마련이다. 그중 2위가 경북 청송군 주왕산국립공원이다. 10년 전까지 청송은 ‘육지의 섬’으로 불릴 정도였다. 2016년 서산영덕고속도로 상주-영덕 구간이 개통되면서 좀 나아졌다곤 하지만 체감상 큰 차이는 없나 보다.
물리적이든 심리적이든 접근이 어려운 장소에도 장점은 있다. 은거하기에 딱 좋다. 숨을 곳을 찾아드는 사람은 스스로 이야기를 품고 있다. 시간이 오래 흐르면 그것은 전설이 된다. 어느 산인들 전설이 없겠는가만, 주왕산(周王山)에는 좀 특별한 구석이 있다. 기묘하면서도 친근한 큰 바위들이 그 전설을 1000년 넘게 지키고 있다.
● ‘어서 와. 주왕산은 처음이지?’
주왕산에 관한 책을 읽거나 인터넷을 훑거나 생성형 인공지능(AI)에 물어보면 빠지지 않는 내용이 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사람 이름을 딴 산이라는 것이다. 주왕은 누구일까. 두 인물이 맞선다. 중국 당(唐)나라 주도라는 인물과 통일신라시대 김헌창(혹은 그의 부친 김주원)이다. 둘 다 왕을 꿈꾸며 반란을 일으킨 자다. 그 바탕이 되는 두세 권의 옛 문헌과 인물과 해석이 등장한다. 그러나 정사(正史)는 아니다. 그래야 전설이 된다. 당나라 사람이 굳이 궁벽한 이곳까지 피신했다는 것이나, ‘삼국사기’에 웅진(지금의 공주)에서 죽었다고 기록된 김헌창이 여기서 항전했다는 것이나 가당찮기는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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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왕산국립공원 초입 청성군 상의리에서 바라본 기암.
그런데 말이다. 주왕산국립공원 들머리 격인 청송군 상의리에 들어서자마자 몇 km 앞에 보이는 장대한 암벽군(群)이 그 전설을 머릿속에 영화처럼 풀어내기 시작한다. 세로 길이 100m 안팎 7개 바위가 연봉을 이룬 기암(旗巖)이다. 주왕이 혹은 김헌창이, 아군에게 신호를 보내려고 깃발을, 혹은 병사가 많게 보이려고 깃발 수십 개를 꽂았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구름 위로 솟아 근두운 탄 손오공을 막은 부처님 손바닥 같기도 하고, 양식당 셰프의 주름진 흰 모자 토크(toque) 같기도 하고, 경복궁 근정전 용상 뒤에 걸린 일월오봉도의 그 오봉 같기도 하다. 반칙 아닌가. 등산로에 발을 들여놓지도 않았는데 이미 산을 다 본 것처럼 만드는 바위가 산자락에 앉은 듯 보이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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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대전사 경내에 장식된 연등들 위로 기암이 보인다. 사바세계를 굽어보는 것 같다.
점점 다가가 대전사(大典寺)에 이르니 기암이 그 위로 무동을 선 것 같다. 해발 480m에 솟은 기암을 계곡 너머 왼쪽에서 내려다보는 바위는 장군봉(해발 686m)이다. 주왕을, 혹은 김헌창 반란군을 토벌하러 온 마(馬) 장군이 기암 위에 반란군이 많이 있는지 올라가서 확인했거나, 혹은 반란군의 전초 망루 역할을 했다는 바위다. 장군봉은 상아를 뽐내는 코끼리가 돋을새김 된 듯도 하다. 전설은 한 줄기만 뻗지 않고 서너 가지를 쳐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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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사 경내 너머 왼쪽이 장군봉이다. 사진으로는 오른쪽 기암보다 낮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200m가량 더 높다.
대전사를 오른쪽에 두고 주방천을 따라 오르는 길은 평탄하고 완만하다. 천변에 뒤돌아서 던진 돌멩이가 떨어지지 않고 잘 얹히면 아들을 낳는다는 아들바위가 있다. 무수한 자갈들이 바위 위에 깔려 있다. 그런데 4, 5년 전부터 돌을 던지는 사람이 급격히 줄었다. 차라리 ‘딸바위’라고 부르라는 탐방객도 있다고 한다. 전설이 다른 길을 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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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왕산 용추계곡 가는 길 주왕천 변 아들바위. 돌멩이들이 수북이 쌓여 있다.
첫 번째 폭포인 용추폭포를 끼고 있는 용추계곡으로 향하는 길 좌우는 연화봉, 병풍바위, 시루봉, 급수대, 학소대 등 높고 넓은 암벽이다. 저 위 능선에 있지 않고 이 아래에서 협곡을 이룬다. 무엇 하나 뾰족하지 않고 모나지 않았다. ‘어서 와. 주왕산은 처음이지’ 하면서 등을 토닥여 줄 듯 다소곳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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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추계곡 가는 길 옆 연화봉. 하늘에서 보면 연꽃이 핀 모양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용추계곡은 절벽 사이 좁은 틈을 지나 고개를 들면 또 다른 비경이 자태를 드러낸다. 절벽 하나 뒤에 다른 하나가 숨어 있다가 갑자기 나타난다. 직접 가 보지는 않았지만, 요르단 고대 암벽 도시 페트라 초입의 협곡 ‘알시크(al siq)’가 이런 느낌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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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추계곡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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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추계곡 입구를 돌아들면 보이는 풍광.
두 번째 절구폭포와 세 번째 용연폭포는 묘하게 움푹 파인 못을 담고 있다. 절구 같고 용이 솟아오른 연못 같다고 그런 이름이 붙었다. 약 7000만 년 전 화산 활동으로 생성된 용결응회암이 장구한 시간 퇴적되고 풍화된 결과다. 용결응회암은 화산재와 부석(浮石) 등이 분화 당시 날아가지 않고 용암의 800도 가까운 고열과 자체 압력으로 녹으며 굳은 것이다. 내부는 단단한데 표면은 과장하면 굳은 밀가루처럼 부스러지기 쉽다. 미국 요세미티 국립공원 절벽 앨캐피탄을 축소해 놓은 것 같은 암벽이 즐비한데도 암벽 타기를 할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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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추계곡 첫 번째 폭포인 용추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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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폭포인 절구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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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폭포인 용연폭포. 절구폭포처럼 2단 폭포다.
● 전설 잦아든 계곡에선 오롯이 나를
이제는 기억에서 잊힌 떡시루 모양인, 다시 보면 인자한 노인의 얼굴 같은 시루봉과 주왕 혹은 김헌창 반란군이 밧줄에 물동이를 매어 주방천 물을 길어 올렸다는 급수대와 12폭 병풍을 펼쳐 놓은 듯한 병풍바위를 뒤로 하고 절골계곡으로 향한다. 대전사에서 동남쪽으로 약 15분 차를 타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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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추계곡 가는 길 급수대(왼쪽)와 주상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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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수대 맞은편 계곡 건너 시루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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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폭 병풍을 쳐 놓은 것 같다는 병풍바위(오른쪽).
절골계곡에 깃든 전설은 없다. 그저 1급수에만 사는 버들치가 계곡물에 떼 지어 헤엄치고, 주왕산 깃대종 둥근잎꿩의비름이 그늘진 바위 지의류 틈새에서 피어나며, 누룩뱀이 전날 내린 비에 젖은 몸을 말리려 양지로 기어 나오고, 뱀들 다니는 길 들꽃 사이로 어른 엄지손톱만 한 새빨간 뱀딸기가 새초롬히 열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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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골계곡.
계곡 양쪽이 거대한 응회암 절벽의 연속인 협곡이다. 역시 깎아질렀으되 위압적이지 않고 둥글둥글하다. 초입부터 한동안은 설악산 흔들바위만 한 바위 수십 덩이가 시내를 메우고 있다. 암벽 신들이 ‘맘보공기’ 놀이를 하고 버려둔 공깃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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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골계곡 버들치 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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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골계곡 뱀딸기.
주왕산 등산로든 절골계곡이든 걷다 보면 온통 그늘이다. 햇볕을 직접 쬐는 구간이 적다. 규정상 계곡물에 들어가는 것은 안 되지만 한여름 동네 주민들이 발 담그는 것까지 막기는 어렵다. 휴대전화도 터지지 않는다. 공단은 7~8월에 ‘계곡 트레킹’ 행사를 벌일 생각이다. 물길 따라 걸으며 바위에 걸터앉아 오롯이 나만을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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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0년에 지은 저수지 주산지. 물결이 잔잔하면 앞에 보이는 주아산(별바위)가 물에 그대로 비쳐 보인다.
절골계곡 근처에 주산지가 있다. 1720년에 논에 물을 대려고 만든 저수지다. 주위를 에워싼 주왕산과 주아산 능선이 바람 없는 날이면 잔잔한 수면에 거울처럼 비친다. 흙에 있다 물에 잠긴 버드나무가 300년째 서 있다. 푸른 잎이 무성하다. 식물은 죽음이 다가올수록 생명력을 지탱하려 안간힘 쓴다고 한다. 수면과 닿을 듯 만들어진 전망대에서 사람들 발소리 진동에 잉어들이 몰려왔다. 어른 팔만 하다. 이곳 수달도 손바닥 크기 잉어 새끼밖에 잡아먹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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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산지 물속에서 뿌리를 내린 300년 된 왕버드나무.
새벽 캠핑 트레일러(카라반) 창밖 새소리에 잠이 깼다. 공단이 상의리 주왕산국립공원 입구에서 예약제로 운영하는 상의야영장에는 카라반(4인용) 10대를 비롯해 자동차 캠핑장과 숙박용 오두막 등이 있다. 문을 열고 주방천 쪽으로 걸어 내려와 기암을 다시 바라본다. 전설에는 고려 말 공민왕의 스승이던 나옹(懶翁)선사가 등장한다. 그전까지 주방산, 석병산, 대둔산 등으로 불리던 이 산을 주왕산이라고 부르라고 했다는 것이다. 조선 초기 1463년 ‘주왕내기(周王內記)’ 저자 눌옹(訥翁)과 혼동했을지 모른다. 나옹선사는 말없이, 티 없이 살라는 ‘청산은 나를 보고’라는 시를 썼다. 그 한 대목을 되뇐다. ‘애초 사랑도 증오도 노여움도 아쉬움도 없다.’ 주왕산이 나를 보고 그렇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