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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로서 살아온 30여 년의 세월과 더불어 인생 후반기를 맞아 행복을 추구하는 기술자의 변신 스토리입니다. --------- 기술 자문(건설 소재, 재활용), 강연 및 글(칼럼, 기고문) 요청은 010-6358-0057 또는 tiger_ceo@naver.com으로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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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2026. 8. 27. 07:06 | Posted by 행복 기술자

행복한 엔지니어의 뉴스레터 (제 913 호)

 

【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

 

‘인생은 BCD, 즉 B(Birth)와 D(Death) 사이에 C(Choice)의 연속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태어남(Birth)과 죽음(Death)은 우리가 선택할 수 없지만,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는 계속적으로 선택을 해야 만하는 것이 인생이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인생에서 선택을 포기한다는 것은 곧 죽음에 가까워졌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태어날 때 어떤 부모를 선택할 것인지는 선택할 수 없지만, 어떤 직업을 선택하고 누구와 결혼할지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비록 그 선택 과정에서 주위, 특히 부모님의 의사가 큰 영향을 미칠 수는 있지만 말입니다.

제 경우에는 대학을 선택하고, 결혼 상태를 정할 때 부모님과 갈등을 겪었지만, 결국 제 의사대로 선택을 했었습니다.

 

선택이라는 것은 결국 여럿 중에서 고르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를 버려야 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로버트 프로스트는 이런 선택의 딜레마를 ‘가지 않은 길’이라는 시로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 나는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고. 그리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놓았다고.’ 노래합니다.

 

선택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고민하게 되지만, 스스로 선택을 할 수 없는 상황이 오면 더 큰 고민을 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부모님의 노후를 보면서 ‘선택이 사라진 상황’이 얼마나 비극적인 상황인지 어렴풋이나마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 부모님께서는 노후를 나름대로 철저히 준비하고 잘 지냈었지만, 몇 년 전 어머니의 허리 통증이 심해지면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고, 그게 이어져 지금까지 요양병원에 입원해 계십니다.

 

입원 초기에는 틈만 나면 퇴원해서 집으로 가고 싶다고 말씀하셨지만, 자식들이 모두 고향 제주를 떠나 있어서 결국 어머니의 선택이 실행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부모님을 보면서 제가 선택할 수 없는 처지가 된다면 얼마나 비참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치매를 가장 두려워하는 이유도 치매에 걸리면 선택 자체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되기 때문일 겁니다.

 

누군가는 부자라는 의미가 ‘돈에 구애받지 않고 좀 폭넓게 선택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돈이 선택의 폭을 넓혀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선택의 폭을 좁히고 있으니, ‘돈이 많은 사람이 꼭 부자는 아니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와 반대로 돈이 적더라도 선택을 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면서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 나간다면 진정한 의미의 부자가 될 수 있을 겁니다.

 

프랑스의 작가 폴 브루제는 그의 소설 <낮의 악마>에서 ‘생각하는 대로 살지 못하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주위를 보면 퇴직하고 나서는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듯이 브루제의 말처럼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 사람’으로 변하는 퇴직자들을 많이 봅니다.

사실 은퇴 전에는 어느 학교를 갈까, 누구와 결혼할까 등 객관식 선택이라 크게 고민할 필요가 없지만, 은퇴 후에는 오히려 선택지가 너무 많아져 고민이긴 합니다.

 

가끔 ‘과거로 돌아가 다른 선택을 했었더라면 내 삶이 어떻게 됐을까?’라는 질문도 가끔 받고, 스스로 자문을 해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란 시에서 표현했듯이, 저는 제가 가지 못했던 길에 대한 회환은 없습니다.

그런 회한에 빠지는 대신 저는 은퇴 후 좋아하는 여행을 하기 위해 여행 작가가 되고, 여행 밴드를 만들고, 최종적으로 귀촌 마을 공동체를 만드는 선택을 했습니다.

 

 

행복한 미래를 만드는 기술자

 

김송호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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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여행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제가 운영하는 <제주 속살 트레킹 여행> 밴드(https://www.band.us/band/95412027)에 가입하시기 바랍니다.

 

이미 발송되었던 뉴스레터를 보고 싶으신 분들은 제 개인 블로그 http://happyengineer.tistory.com/의 <주간 뉴스레터> 목록에서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지난 6월 걸었던 무의도 트레킹 길 중 미처 걷지 못했던 나머지 구간인 큰무리선착장에서 하나개해수욕장까지 걸었습니다.

무의도 트레킹을 위해서는 인천공항 제1터미널 3층 7번 게이트 앞에서 무의1번 버스를 타야 합니다.

지난 번 트레킹을 주말에 하는 바람에 이 버스를 탈 때 사람이 너무 많아 고생을 했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평일인 목요일에 트레킹을 했습니다.

평일인데도 승객이 많았는데, 아마 대부분 소무의도 트레킹을 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짐작되었습니다.

 

 

우리 일행은 무의도 다리를 건너자마자 서는 큰무리선착장 정류장에 내렸습니다.

버스 정류장 바로 옆으로 무의도 트레킹 길이 보였습니다.

계단을 오르자 국사봉 쪽으로 올라가는 가파른 길과 무의도 둘레길로 가는 갈림길을 만났습니다.

우리는 국사봉 쪽으로 가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국사봉을 가려면 자그만 봉우리를 넘어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야 합니다.

내려가니 차도가 나오고 우측으로 실미도 가는 길이 보였습니다.

실미도를 잠깐 보기 위해 차도를 따라 내려갔더니 차단봉이 설치되어 있고, 사유지라고 입장료를 내야  들어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입장료가 1,000원으로 그리 비싼 편은 아니었지만, 돈을 내면서까지 들어갈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되돌아 나와 원래 둘레길로 들어섰습니다.

 

둘레길을 따라 국사봉을 올라가다보니 길 옆에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까치나 청설모가 내는 소린가 했더니 작은 게들이 낙엽 위로 걸어가면서 내는 소리였습니다.

바다에서 한참 먼 산 속에서 빨간 등껍질을 한 게들을 보니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간 고개를 넘으니 텐트들이 보였습니다.

무슨 텐트들인가 궁금해서 가까이 보이는 텐트를 들여다보자니 안에서 "여기는 사유지이니 들여다 보지 말고 지나가세요."라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러고 보니 길을 막는 철문이 설치되어 있는 게 보였습니다.

언젠가 이곳 사유지 주인이 저 철문을 닫으면 이 트레킹 길도 다닐 수 없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어진 국사봉 오르는 길은 완만해서 편히 걸을 수 있었습니다.

하긴 국사봉 해발고도가 230미터에 불과하니 그걸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국사봉을 넘어 하나개해수욕장으로 내려가는 길은 경사가 심하고 험해서 길을 잘못 들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국사봉에서 내려와 차도를 만난 다음 호룡곡산 쪽으로 직진하지 않고 우측 하나개해수욕장으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아까부터 내리던 이슬비가 점점 굵어져서 아쉽지만 포기하고 반대편 길을 따라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지난 번 트레킹 때도 들렀던 식당인데, 지난 번에는 30분 정도 대기하다가 식사를 할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평일이라 그런지 바로 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식사 후 거의 1시간 간격으로 운행하는 무의1번 마을버스를 탔는데, 주말만큼은 아니지만 역시 많이 붐볐습니다.

 

 

 

몽골 여행-어기호수

2026. 8. 25. 07:00 | Posted by 행복 기술자

몽골 하면 초원과 사막이 떠오르면서 물이 귀할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물론 몽골은 연 평균 강수량이 200밀리미터 정도로 적긴 하지만, 의외로 강과 호수가 많아 마을 형성과 목축에 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몽골의 3대 강으로는 툴강(Туул гол), 오논강, 헤를렌강을 들 수 있는데, 특히 툴강은 몽골의 수도인 울란바타르의 시내를 관통하면서 몽골인들에게 마실 물과 더불어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툴강 덕분에 울란바타르가 170만 명 인구의 대도시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몽골인들에게 강 못지않게 젖줄 역할을 하는 것으로는 호수를 들 수 있습니다. 몽골에서 호수는 단순히 물이 고여 있는 곳이 아니라, 생명의 근원인 신성한 곳으로 여겨집니다. 또 바다가 없는 몽골에서는 큰 호수를 바다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몽골에서 가장 큰 호수인 홉스골 호수를 보면 왜 몽골인들이 호수를 바다라고 부르는지 이해가 될 것입니다. 원래는 몽골영토에 속했으나, 몽골 독립에 도움을 준 대가로 러시아에 양도했다는 바이칼 호수를 보면 더욱 더 바다 같다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몽골에서 호수를 제대로 보려면 홉스골 호수를 가야 하지만, 가는 길이 너무 멀기 때문에 일부 여행자들은 울란바타르 가까이 위치한 어기 호수를 보면서 아쉬움을 달래곤 합니다. 하긴 엘승타사르하이 미니사막에서 어기 호수 가는 길도 너무 멀다고 불평했던 제 일행들을 생각해보면, 그런 선택이 이해가 갑니다. 중간에 몽골의 초기 수도인 카라코름에 잠깐 들르고, 점심식사를 하느라 지체하긴 했지만, 5시간이나 걸렸으니 그런 불평이 나오는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더군다나 포장 상태가 엉망인 도로와 비포장도로를 달리다 보니 뒷좌석에 앉은 일행의 만보기의 숫자가 3만 보를 찍을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그래도 비포장도로를 한참 달리다 어기 호수가 보이는 언덕에 서니, 그 동안의 고생이 보상 받는 듯한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마침 그곳에서 풀을 뜯고 있는 양과 염소 무리가 호수 풍경과 어우러지면서 그야 말로 한 폭의 그림을 만들어냈습니다. 그 염소들 중 한 마리가 우리 일행에게 다가오자, 가이드가 “사탕이 있으면 주라‘고 했습니다. 염소 주인이 염소를 모으기 위해 사탕 등 먹을거리를 주다보니 거기에 익숙해져서 사람들에게 다가오는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염소와 놀다가 호수까지 걸어가 보자는 의견이 나왔지만, 두 시간 이상 걸릴 거라는 가이드의 말에 차를 탔습니다.

 

 

몽골어 ‘어기’는 ‘손위 누나’라는 뜻과 함께 ‘베풀다’라는 의미가 있어서 ‘베푸는 어머니 호수’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어기 호수의 둘레는 24.7킬로미터이고, 평균 수심 3미터, 최대 수심 15미터입니다. 고도 1000미터 이상에 위치한 호수치고는 물이 따뜻해서 여름에는 수영도 가능하다고 하고, 실제로 수영을 하는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보트와 낚시를 하는 사람들도 많았고요.

 

 

어기 호수에는 게르가 별로 없어 한가하고, 주위에 불빛이 많지 않아 밤에 별을 보는 호사까지 누렸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게르 내에 별도의 화장실이 없어서 공용 화장실과 샤워실을 이용해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이런 불편은 아마도 어기 호수의 청정함을 유지하기 위한 규정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