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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로서 살아온 30여 년의 세월과 더불어 인생 후반기를 맞아 행복을 추구하는 기술자의 변신 스토리입니다. --------- 기술 자문(건설 소재, 재활용), 강연 및 글(칼럼, 기고문) 요청은 010-6358-0057 또는 tiger_ceo@naver.com으로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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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제주도에 여행 가는데 꼭 가봐야 할 곳을 추천해달라고 하면, 가장 먼저 차귀도를 추천하곤 한다. 제주도에는 여러 부속 섬들이 있는데, 그 섬들 중에서 가장 끌리는 섬이 바로 차귀도이기 때문이다. 제주도를 좋아하는 여행객이라면 우도, 가파도, 마라도는 가봤을 가능성이 많지만, 차귀도를 가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설사 가봤다 하더라도 차귀도는 또 가도 좋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차귀도를 찾는 관광객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그래도 다른 섬들에 비하면 잘 알려지지 않아 한적한 편이다. 다른 섬들보다 차귀도가 매력적인 이유는 아마도 차귀도에 사람이 살지 않아 자연 풍광을 그대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 차귀도에는 3가구 12명이 농사를 지으며 살았었는데, 1968년 김신조 사건 이후 섬을 비우는 공도 정책에 의해 1973년에 이들이 떠나면서 무인도가 되었다. 지금도 차귀도에 도착해서 야트막한 오르막 계단을 오르면 그들이 살았던 폐가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차귀도는 면적 0.16제곱킬로미터로 고산리 해안 자구내 포구에서 약 2킬로미터 떨어져 있으며 배를 타면 10분 만에 도착할 수 있다. 차귀도는 수려한 자연경관과 깎아지른 듯한 해안절벽, 기암괴석이 절경을 이루고 있으며, 차귀도에서 바라보는 한라산 모습도 볼만 하다. 차귀도는 낮 풍경도 아름답지만, 노을이 질 때 죽도, 지실이섬, 와도 등 부속 섬들과 함께 바다 위에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풍경으로도 유명하다. 자구내 포구와 차귀도 일대는 1970년대 영화 ‘이어도’의 촬영 장소이기도 하지만, 여러 전설이 서려있는 곳이기도 하다.

 

중국 송나라 왕의 명을 받은 호종단이 제주에 와서 왕이 태어날 지맥들을 끊고, 중국으로 돌아갈 때 한라산 신이 독수리 형상으로 나타나 그 배를 침몰시켰다는 전설이 있는데, 그 독수리가 바위로 굳어진 형상이 차귀도 입구에 보인다. 또 차귀도의 장군바위는 제주를 만든 설문대 할망의 막내가 바위로 변한 것이라고 하는데, 나머지 499명의 아들들은 한라산 영실에서 오백장군이 되었다고 한다.

 

1973년 이후 사람이 살지 않아 자연이 잘 보존되어 있었던 차귀도는 천연기념물 제422호로 지정돼 출입이 금지되었다가, 2011년 말에 일반에게 개방되었다. 차귀도를 가는 배는 자구내 포구에서 출발하는데, 차귀도를 찾는 단체 관광객들이 많아지면서 원하는 시간에 배를 타기 위해서는 미리 온라인으로 예매를 하는 것이 좋다. 또 날씨가 나쁘면 배가 운항하지 않기 때문에 미리 운항 여부도 확인해야 하고, 섬에 그늘이 없기 때문에 양산이나 모자도 준비할 필요가 있다.

 

섬에 도착하면 주로 시계 방향으로 섬을 일주하는데, 사진을 찍으면서 천천히 걸어도 1시간이면 충분하기 때문에 그 시간에 맞춰 자구내 포구로 돌아가는 배가 대기하고 있다. 섬에 도착해서 계단을 오르면 폐가 흔적이 보이는데, 왼편에 보이는 억새밭 길을 따라 걷다보면 해식 절벽이 보이는 전망대가 나온다. 이 전망대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진을 찍느라 많은 시간을 보낸다. 전망대를 출발해 왼편에 짙푸른 바다를 끼고 걷다가, 약간의 오르막길을 오르면 등대가 서있는 볼레기 언덕에 다다르게 된다.

 

볼레기 언덕에 있는 차귀도 등대는 1957년 12월에 불을 밝히기 시작했는데, 이 등대에서 한라산을 봐도, 바다를 봐도 아름다운 풍경에 감탄이 나오면서 저절로 사진을 찍게 된다. 등대에서부터는 내리막길이 이어지는데,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내려가다가 중간에 포구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간다. 하지만 일부 걸음이 빨라 시간이 남고, 호기심이 많은 사람들은 반대편 오름으로 올라갔다가 내려오기도 한다.

 

차귀도는 낚시터로 유명하며 참돔, 돌돔, 벵에돔, 자바리 등이 잘 잡히는데, 특히 1~3월과 6~12월 사이에 낚시꾼들이 많이 찾는다. 차귀도는 주변 경관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주변 바다에 한국에서 기록되지 않은 종들과 신종 해산생물이 서식하고 있어 생물학적인 가치가 높은 곳이기도 하다. 차귀도를 다녀와서 시간과 체력이 허락한다면 근처의 수월봉 지질 트레일이나 차귀도를 바라보면서 용수포구까지 걷는 ‘생이기정길’을 걸어도 좋다.

 

차귀도를 보면서 걷는 생이기정길

 

차귀도를 둘러보고 나서 생이기정길을 걷고 싶다면, 차를 자구내 포구에 그대로 두고 걸은 다음, 생이기정길 종점인 용수포구에서 택시를 타고 되돌아오는 게 낫다. 생이기정길은 당산봉 아래 ‘섬풍경 펜션’에서 오르면 되지만 그곳에는 주차 공간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자구내 포구에서 출발해서 차가 들어왔던 방향의 포장도로를 따라 조금 걷다보면 왼편에 ‘섬풍경 펜션’이 보이는데, 그 옆으로 난 산길을 오르면 당산봉(당오름)이 나온다.

 

높이 148미터인 당산봉에는 뱀을 신으로 모시는 신당이 있었고, 그 신을 ‘사귀(蛇鬼)’라 불렀는데, 이 ‘사귀’란 말이 ‘차귀’로 와전되어 당산봉을 차귀오름이라고도 부르게 되었다. 당산봉 능선에는 제주도 내에 25개가 있었던 봉수대 중 하나가 자리 잡고 있었으나 지금은 희미한 흔적만 남아 있다. 당산봉을 내려와 산길을 좀 걷다보면 갑자기 시야가 확 트이면서 절벽 아래로 차귀도를 품은 옥빛 바다가 눈앞에 펼쳐진다. 이곳부터 절벽 능선을 따라 걷는 길이 ‘생이기정길’인데, 제주어로 ‘생이’는 새, ‘기정’은 벼랑을 뜻하기 때문에, ‘생이기정길’은 새가 살고 있는 절벽 위로 난 길을 의미한다. 생이기정길은 그 의미 그대로 해안가 절벽 위에 가마우지, 재갈매기, 갈매기 등이 떼 지어 살고 있는데, 특히 겨울철에는 이런 새들의 낙원이 되고 있다.

 

당산봉에 오르기까지는 약간 힘이 들지만, 생이기정길은 평탄하기 때문에 종착지인 용수포구까지 수월하게 걸을 수 있다. 더군다나 생이기정길을 따라 펼쳐지는 차귀도의 모습과 짙푸른 바다, 절벽 위를 날아다니는 새들의 모습을 보면서 걷다보면 어느새 최종 목적지인 용수포구에 도달하게 된다. 절벽길을 걷다가 왼쪽으로 당산봉이 바다와 만나는 지점을 자세히 살펴보면 해식동굴인 ‘저승굴’이 보이는데, 이 굴도 넘실거리는 파도와 어우러져 하나도 무섭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른편을 가로막고 있던 당산봉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멀리 한라산이 보이기 시작하면 길이 이제 종착점에 거의 이르렀다는 것을 의미한다. 생이기정길이 거의 끝나갈 무렵에 길은 바다를 향해 방향을 틀면서 차귀도와 걸어왔던 절벽길을 다른 각도에서 보여준다. 이곳에서 바라보면 생이기정길 쪽으로 들어온 바닷물이 마치 호수처럼 보이면서, 차귀도를 품은 넓은 바다 풍경과 대조를 이룬다.

 

 

차귀도를 뒤로 하고 띠(억새?)가 수북이 자란 전형적인 제주의 돌길을 걷다보면 포장도로를 만나고, 곧 용수포구에 이르게 된다. 용수포구 가기 전에 김대건 신부가 중국 상하이에서 사제서품을 받고 귀국하던 길에 표류하다 도착한 곳임을 기념해서 지은 기념관이 보인다. 김대건 신부는 1845년 한국인 최초로 사제 서품을 받았는데, 서품 후 1년 후인 1846년 새남터에서 순교하였다.

 

용수포구에 있는 절부암에는 고씨와 강씨 부부에 관한 슬픈 전설, 아니 1800년대 이야기니까 실화 같은 (지금으로 보면 어처구니없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이 마을에 살던 고씨 처녀와 강씨 총각이 결혼해서 살았는데, 강씨가 바구니 재료인 대나무를 하러 마을 사람들과 차귀도에 갔다가 풍랑을 만나 배가 침몰하였다. 다른 마을 사람들의 시신을 다 찾았으나 강씨의 시신만 찾지 못했는데, 고씨가 남편을 따라 죽겠다며 엉덕동산에 목을 매어 죽었더니 그 아래에서 강씨 시신이 떠올랐다고 한다.

 

용수포구에서 주차한 자구내포구로 돌아갈 때는 택시를 이용하면 된다. 대부분의 섬들은 그늘이 거의 없고, 해안에 위치해서 무덥기 때문에 여름철은 여행, 특히 걷기 여행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또한 바람이 많이 불고 추운 겨울철도 섬 여행하기에는 부적합한 계절이라고 봐야 한다. 따라서 날씨가 온화한 봄과 가을이 섬 여행에는 최적의 시기다. 물론 이 경우에도 햇볕을 가릴 수 있는 양산이나 모자를 꼭 챙기는 게 좋다. 섬에 가려면 배를 타야 하기 때문에 날씨가 나쁘면 갈 수 없다는 문제점도 있다. 육지의 날씨가 맑은 경우에도 바다는 파도가 심해 배가 운항하지 않을 수 있으니 미리 일기예보를 살피고, 운항 선사에 미리 전화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 특히 태풍이 많이 부는 늦여름에는 미리 날씨를 잘 살펴 여행 계획을 세워야 한다.

 

[이코노미퀸 2026년 9월호]

몽골 여행-칭기즈칸 동상

2026. 9. 15. 07:00 | Posted by 행복 기술자

 

울란바타르 공항과 테를지국립공원 사이에 위치해서 몽골 여행의 단골 코스가 되고 있는 칭기즈칸 동상.

몽골 하면 칭기즈칸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지만, 실제로 유목민족 답게 칭기즈칸에 대한 기록과 유적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칭기즈칸의 무덤도 비밀리에 조성해서 현재도 알 수 없다고 하네요.

 

그런 의미에서 세계 최대의 기마동상이라고 자랑하는 천진벌덕의 칭기즈칸 동상은 여행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잠시 들러 사진 찍고 가기에는 안성맞춤인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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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태, “1968년 2월 12일; 베트남 퐁니·퐁넛 학살,” 한겨레출판, 2015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과 레바논 전쟁’, ‘미국과 이란 전쟁’

 

지금도 세계는 전쟁 중이다. 하긴 전 세계적으로 봤을 때 전쟁이 없던 시기가 있었던가? 전쟁 하면 흔히 군인들 사이의 전투를 떠올리지만, 사실은 민간인들의 희생이 더 큰 게 전쟁의 속성이다. 특히 전쟁이 일어나면 힘없는 여자들과 어린아이들의 희생이 클 수밖에 없다. 전쟁이 일어날 때마다 여자들과 어린아이들의 희생이라는 비인도적 행위에 대해 비난이 쏟아지지만, 그 때뿐으로 그런 일은 반복되고 있다. 이 책 <1968년 2월 12일; 베트남 퐁니·퐁넛 학살>은 한국 군인들에 의해 자행되었던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를 다루고 있다. 베트남전에서 북베트남군과 베트콩들이 게릴라전을 전개함으로써 그들을 민간인과 구별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일어난 희생도 비난받아 마땅하겠지만, 거의 고의적으로 일으킨 민간인 학살 행위는 지금이라도 진상을 파악하고 그에 따른 조치를 취해야 마땅하다.

우리는 일본인들이 일제 강점기 때 한국인들에게 저질렀던 각종 만행에 대해 비난하곤 한다. 하지만 정작 우리는 베트남에서 한국인들이 베트남 민간인들에게 저질렀던 만행에 대해서는 직시하고 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구체적인 증거 자료와 현지인들의 증언을 통해 한국 군인들이 퐁니, 퐁넛 마을에서 74명의 민간인들을 아무런 이유 없이 살해한 사건을 재조명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이 책에서는 단순히 퐁니, 퐁넛 마을에서의 민간인 학살 사건 자체만이 아니라, 이를 한국의 1948년 제주도의 4·3사건과 1980년 광주민주항쟁 사건과도 연계하고 있다. 책을 읽는 동안 마음이 불편한 점도 분명히 있었지만,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