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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로서 살아온 30여 년의 세월과 더불어 인생 후반기를 맞아 행복을 추구하는 기술자의 변신 스토리입니다. --------- 기술 자문(건설 소재, 재활용), 강연 및 글(칼럼, 기고문) 요청은 010-6358-0057 또는 tiger_ceo@naver.com으로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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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알람을 6시 10분에 맞춰놨는데, 6시가 되니 저절로 눈이 떠졌다. 7시에 읍내로 나가는 버스를 타야 하니 서둘러야 했다. 오늘은 서망항에서 시작하는 서해랑길 9코스를 역방향으로 걸을 예정이라, 진도항으로 가는 7시 20분 버스를 타야 했기 때문이다. 어제 미리 준비해둔 포도와 사과, 삶은 계란을 배낭에 담았다. 사과와 유산균도 서둘러서 먹었다. 아침 세면을 하는데도 왜 그리 마음이 급한지. 네이버 지도로 버스 도착 시간을 체크해 보니 6시 58분으로 나왔다. 7시가 조금 넘어 도착할 거라 예상했었는데, 마음이 더 급해졌다. 서둘러 준비를 끝내고 나니 6시 40분. 걸어서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니 6시 50분이었다. 아침에 서두르느라 스트레칭을 못해서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가볍게 스트레칭을 했다. 지나가던 동네 주민들이 쳐다보긴 했지만 뭐 내가 잘못된 행동을 하는 것도 아니니 그냥 무시하고 했다.

 

6시 59분에 버스가 와서 승차했다. 밀리지 않아서 그런지 예측 시간이 거의 들어맞는 게 신기했다. 버스는 이제 익숙해진 노선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지난번처럼 길은리에서 읍내 터미널까지 20분이 걸리면 자칫 진도항 행 버스를 타지 못할 수도 있어 조바심이 났다. 다행히 버스는 지난번과 달리 타는 승객도 별로 없고(나를 포함하여 4명), 동네 안으로 들어가지 않아 7시 15분에 터미널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대기하고 있던 진도항 행 버스에 올라타니 마치 계를 탄 것 같이 마음이 뿌듯했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아니면 오늘이 일요일이라 그런지 지난번보다 진도행 버스에도 승객이 적었다. 중간에 타고 내리는 승객도 거의 없어서 버스는 계속 달렸다. 버스 기사가 개신교 신자인지 찬송가를 계속 틀어 놨다. 소리가 크지 않아서 거슬리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꼭 티를 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번 버스는 진도항에 먼저 들렀었는데, 이번 버스는 서망항에 먼저 들렀다가 진도항으로 가는 것으로 보였다. 서해랑길 9코스는 서망항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나는 서망항에서 내렸다. 내가 내리기 위해 벨을 눌렀더니, 승객 두 사람이 나를 빤히 쳐다봤다. 나중에 보니 그 두 사람도 서망항에서 내렸는데, 아마 못 보던 사람이 서망항 하차 벨을 누르니 의아했던 것으로 보였다. 버스에서 내린 시각이 7시 53분. 버스가 서망항 외곽 길에서 섰기 때문에 버스에서 내려서 서망항 방향으로 걸어갔다. 지난번 진도항에서 버스를 내려서 서망항까지 걸어와서 점심을 먹었던 엄마손 식당을 지나쳐서 계속 걸었다. 바다가 보이는 지점에 화장실에 있어서 볼일을 보고 나오니 바로 옆에 9코스 종점과 10코스 시작점을 알리는 안내판이 보였다. 왜 하필 화장실 옆에 안내판을 설치해놨을까 궁금했다. 시작점과 끝 지점에 오면 화장실을 갈 것으로 예상해서 그랬을까?

 

 

화장실을 나와 항구 쪽으로 가니 배들이 많이 보였다. 지도를 보니 서해랑길은 해안을 따라 걷는 게 아니라 국도(지방도?)를 따라 걷게 되어 있어서 일단 다시 버스에서 내렸던 큰 길로 다시 올라왔다. 아침이라 아직은 덥지는 않았지만 햇볕이 따가워서 걷는 게 상쾌하지는 않았다. 다행이 도로를 달리는 차들이 별로 없어서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실제로 9코스를 다 걷는 동안에 차를 열 대도 채 보지 못한 것 같았다. 아스팔트길을 걸으니 무릎에 충격이 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한 시간쯤 걸어 8시 50분쯤에 남도전원한옥마을이 보였다. 내가 길은푸르미마을에 지원하기 전에 남도전원한옥마을에 지원했었는데 떨어졌었기 때문에 어떤 마을인지 궁금해서 마을 안으로 들어가 봤다. 최근에야 인위적으로 조성한 마을인지 헌 집이 별로 없고, 거의 다 새로 지은 집이었다. 입구에서 왼쪽 편에는 기와집이 많았지만, 오른쪽에는 대부분 현대식 집들이었다. 마침 일하는 사람이 보여서 말을 걸어볼까 하다가 괜한 일이다 싶어 그냥 돌아서 나왔다.

 

 

조금 더 걷다보니 진도진성이 보였다. 생각보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는데, 아마 최근 복원한 것으로 보였다. 사진만 찍고 계속 걸었다. 오늘 가능하면 종점에 일찍 도착해서 탑립리도 좀 둘러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쪽에는 새로 귀촌한 사람들이 많은 건지 길 옆에 있는 집들이 모두 현대식 새 집이었다. 어떤 집들에는 문패까지 멋지게 달려 있었다. 진도진성을 지나고 나니 계속 오르막길이었다. 아스팔트길에 오르막이니 걷는 게 힘이 들었다. 게다가 점점 더 햇볕이 강해지고 그늘이 없어져서 더 힘들었다. 겨우 고갯마루에 올라 건너편에 보니 서해랑길 표식이 보였다. 가까이 가서 보니 바닷가 쪽으로 진도진성 가는 길이라는 표식이 보였다. 지도를 꺼내 확인해보니 아뿔싸 진도진성에서 바닷가 쪽으로 빠져서 돌아와야 했는데, 그냥 큰 도로를 따라온 것이었다. 다시 돌아갔다가 올 수도 없고 그냥 가야지 뭐.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그늘에 좀 쉬다가 마스크를 꺼내서 썼다. 공기가 나빠서가 아니라 자외선으로부터 얼굴을 보호하기 위해서. 마스크를 쓰니 더워서 땀이 나고 답답했지만, 벗었다 썼다를 반복하면서 계속 걸었다. 가다보니 진도자연휴양림으로 들어가는 표지판이 보였지만, 다음을 기약하고 그냥 지나쳤다. 진도휴양림을 지나서부터는 차도를 벗어났다. 비록 콘크리트 포장길이긴 했지만, 옆에 밭과 숲이 보이니 마음이 좀 푸근해졌다. 굴포항에서 바닷길을 따라 걷다가 다시 도로를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종점(역방향으로 걸었으니 사실은 시작점)에 도착했다. 시각을 보니 11시. 예상 시간이 4시간이라고 했는데, 세 시간에 걸은 셈이었다. 아마 거의 수지 않고 빨리 걸은 탓도 있고, 진도진성에서 바닷가 길로 돌아가지 않고 도로를 따라 걸은 것도 시간을 단축한 이유로 보였다.

 

 

탑립/죽림 방향으로 오는 버스의 회차 시각이 12시 50분이니, 1시간 30분 정도 시간이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그래서 일단 점심식사를 할까 하고 근처 식당을 검색했더니 국립남도국악원 아래 바닷가에 섬바라기식당이 괜찮은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그 식당으로 안내하라고 했더니 ‘오늘이 휴무’라는 안내 멘트가 나왔다. “아, 오늘이 일요일인 걸 깜빡했구나.” 할 수 없다는 생각에 근처의 아리랑마을관광지에 잠깐 들렀다 탑립리로 가려고 했더니, 아리랑마을관광지에 가까이 가보니 별로 볼 게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멀리서 그곳 사진만 찍고 탑립리 마을회관으로 안내하라고 네비에게 했더니 12시 15분쯤에 도착할 수 있다고 했다. 버스 시간을 보니 탑립리에 버스가 도착하는 시각이 12시 30분이라 마을 사진을 몇 장 찍고 기다리면 될 것으로 보였다. 서해랑 8코스가 이곳과 탑립리를 지나기 때문에 아리랑마을관광지에서 탑립리로 가는 길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네비는 다시 국립남도국악원으로 돌아가서 큰길을 따라 걷는 것으로 안내하였다. 나중에 확인한 바로는 내 판단이 맞았는데, 왜 네비가 다른 길로 안내했는지 이해가 안 됐다.

 

 

아무튼 허겁지겁 서둘러 탑립리까지 걸어가서, 마을 회관과 동네를 잠깐 구경하고 사진 몇 장을 찍고 나니 버스 도착 시간이 다 되었다. 다음에 다시 와서 차분하게 마을 구경을 하기로 하고, 일단 버스를 기다렸다가 12시 30분에 탔다. 버스는 마을 입구로 다시 돌아나가서 죽림리를 향해 달렸다. 죽림리가 내려다보이기 시작하자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가 어디 있나 찾아보았다. 초등학교로 보이는 곳이 없어서 네이버 지도에서 검색했더니 죽림초등학교가 없는 것으로 나왔다. 길은리 초등학교는 폐교 후에 체험관으로 탈바꿈했는데, 죽림초등학교는 아예 문을 닫은 것으로 보였다. 몇 십 년 전에 이곳을 방문했을 때는 분명히 있었는데, 그새 사라졌다니 아쉬웠다.

 

버스는 바닷가에 가까이 가자 우측으로 방향을 틀어 계속 들어가더니 종점인 헌복동에 12시 42분에 도착했다. 회차하는 시각이 12시 50분이니 잠깐 쉬었다 가는 것으로 보였다. 내리기도 어중간하고 해서 버스에서 바다 사진을 몇 장 찍고 기다리고 있으니, 12시 50분에 버스가 다시 출발했다. 버스가 갈 때는 탑립리 등 마을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큰길로만 계속 달렸다. 이렇게 빨리 달리면 길은리로 가는 1시 20분 버스를 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는데, 버스가 1시 22분에 터미널에 도착하는 바람에 결국 아슬아슬하게 버스를 놓치고 말았다. 작년에 살아보기를 했던 멤버의 후기에서도 그가 탄 버스가 터미널에 도착하고 있는데, 길은리로 가는 버스가 출발하는 게 보였다고 한탄하는 글이 있었는데, 이 상황이 계속 반복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는 수 없이 다음 버스인 3시 버스를 타기로 하고, 터미널 근처에 있는 ‘콩밭애 두부’라는 식당에서 해물순두부를 시켜서 먹었다. 가성비가 그런대로 괜찮은 식당이라 다음 번에 이용해도 좋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점심식사 후에는 터미널 근처에 있는 하나로마트에 들러보기로 했다. 살 것도 특별하게 없고, 진도사랑상품권도 사용할 수 없다고 했지만, 그냥 무슨 상품들이 있는지 구경이나 해볼 작정이었다. 일단 뭘 파는지 알아놔야 나중에 필요할 때 이용할지 말지 결정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마트를 한 바퀴 구경하고 나서 터미널에 돌아오니 2시 30분. 책을 읽으면서 기다리다가 3시에 버스를 탔다. 예상대로 3시 45분에 길은리 숙소에 도착. 오늘 하루도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어젯밤에 늦게 잤는데도 아침 6시 전에 눈이 떠졌다. 어제 걷기 운동을 충분히 하지 못해서 그런지 몸도 찌뿌둥한 게 영 몸이 개운치가 않았다.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고 어제 사온 사과 반쪽을 먹었다. 오늘은 걷기 운동하는 시간이 애매해서 시원한 아침에 동네 산책을 하기 위해 나섰다. 동네만 걸어서는 괜히 개들만 시끄럽게 짓게 만들 것 같고 해서, 앞에 보이는 농로를 따라 걸어보기로 했다. 숙소 바로 옆 저수지 아래 농로를 따라 걸었다. 이제 농로조차도 모두 포장이 되어 있으니 흙 위를 걷기 좋아하는 나로서는 불만스러웠다. 하지만 어떻게 하겠는가. 동네 뒷산에 산책길이 있는가 물어봤더니 멧돼지도 출몰할 수 있어 위험하니 농로로 다니라고 이사장의 조언대로 농로를 걸을 수밖에. 농로가 모두 포장되어 있는 이유는 아마도 대부분의 농사에 농기계가 필수적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농기계가 들어가야 하니 그 길을 포장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논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걷다가 산 방향으로 걸었다. 앞산 방향을 난 길을 따라가다 보면 혹시 산 속으로 걸어가는 길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져보면서 걸었다. 역시나 산 바로 앞에서 길은 양 갈래로 나눠졌다. 오른쪽 길은 다시 동네로 돌아가는 길이어서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걸었다. 어제 버스에서 태양광 얘기를 많이 들어서 눈에 띈 것인지 그 갈림길 옆에 태양광 패널이 설치되어 있었다. 산 바로 옆 비탈진 밭이라 농사보다는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산기슭을 따라 난 길을 가다 보니 바닥은 포장되어 있었지만, 그래도 나무가 우거진 숲을 지났다. 그때 문득 옆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자 머리털이 곤두섰다. 혹시 멧돼지? 하지만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고, 옆 산을 따라 길이 이어졌는데, 다행히 산 밑으로 내려가는 길이 보여 얼른 그 길을 따라 걸었다. 잠시 후 면사무소 소재지에서 길은리로 연결되는 큰 도로가 나왔고, 그 길을 따라 걷다가 왼편의 농로로 다시 들어서서 동네까지 걸었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씻고 나서, 글도 쓰고 책도 읽으면서 오전을 보냈다. 12시경에 점심식사를 하자마자 카톡방에 오후 3시 공연에 가야 하니 2시까지 모이라는 공지가 떴다. 2시가 되어 모두 모이자, 차 두 대에 나눠 타고 공연장인 국립남도국악원으로 향했다. 국립남도국악원은 여귀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그 자태가 자못 웅장했다. 어릴 적 내가 살았던 탑립리와 자그만 산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는데, 산자락에 위치해 있다 보니 푸른 바다 풍경이 내려다 보였다. 내부에는 각종 국악기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시간 여유가 있어서 전시물도 구경하고 사진도 찍었다. 공연은 매주 토요일 오후 3시부터 진행이 되는데, 관람료는 무료였다. 나중에 들은 해설자의 설명에 따르면, 관람자들 중에는 국악 매니아들이 많고, 그들은 매주 공연 관람을 온다고 했다. 관람석이 거의 찼는데, 그중 절반가량은 국악 매니아들이고, 나머지는 관광 등으로 온 사람들이라는 것이었다.

 

 

공연은 네 개가 진행되었는데, 피리산조, 판소리 <흥보가> 중 ‘제비노정기’, 해금산조, 경기 민요인 <노랫가락, 태평가, 창부타령> 순으로 진행되었다. 쟁쟁한 국악인들이 공연을 하는 터라 국악을 잘 모르는 내가 들어도 확실히 잘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은 약 1시간 동안 진행되었는데, 정말 지루한 줄 모르고 박수를 치다보니 끝나고 말았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공연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하는 바람에 공연 사진들을 여기 올리지 못하다는 점이었다. 어쩌면 공연 사진을 보기보다는 실제로 공연을 관람하라는 좋은 의미가 아닐까 라고 나름 해석해 보았다.

 

 

진도읍내에 있는 진도향토문화회관에서도 국악 공연이 매주 토요일 오후 2시에 진행된다고 했다. 이곳 국립남도국악원에서 진행되는 공연이 클래식하다면, 진도향토문화회관의 공연은 현대식이고 경쾌하다고 했다. 아무튼 국악을 좋아한다면 매주 토요일 어느 한 쪽을 골라 즐길 수 있다니 진도가 좋긴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도향토문화회관은 버스터미널에서 가깝고, 근처에 영화관도 있다고 하니 진도가 시골이라 문화생활을 할 수 없다는 핑계는 댈 수 없을 것이다.

 

숙소에 도착해서 차에서 내리자, 다른 일행이 온실에 가면 고추랑 다른 채소들이 있으니 들러서 가자고 했다. 그렇지 않아도 동네 하나로마트에서 채소와 우유 등을 팔지 않아 불편했는데, 잘 됐다 싶어 같이 온실에 갔다. 온실에는 고추를 비롯해서 가지, 토마토, 깻잎 등 여러 채소들이 있었는데, 고추와 깻잎을 조금 따고, 망에 담겨 있는 양파 중에서 상하지 않은 것으로 한 개를 골라 가져왔다. 저녁에 뭘 먹을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깻잎과 양파가 있으니 삼겹살을 구워서 먹기로 했다. 지난번에 사온 상추를 반만 먹었었기 때문에 남은 상추와 깻잎을 씻고, 삼겹살을 굽다가 양파와 남은 버섯을 넣으니 훌륭한 저녁 한 상이 차려졌다. 먹는 게 남는 거라고 혼자 생활하더라도 먹는 것은 잘 챙겨 먹어야지 생각하면서 맛있게 저녁식사를 했다.

책 소개-이주, 경계, 꿈

2026. 9. 21. 07:00 | Posted by 행복 기술자

권준희(고미연), “이주, 경계, 꿈,” 생각의힘, 2025년

 

‘조선족’, ‘연변’

 

향수를 불러일으키면서도 뭔가 퀴퀴한 냄새가 나는 것 같이 느껴지는 단어다. 이 책 <이주, 경계, 꿈>은 조선족들이 한국에 와서 ‘코리언 드림’을 실현하고, 그 이후 연변 등 중국에서 생긴 변화에 대해 기술한 책이다. 우리는 단순히 조선족들이 한국에 와서 일하면서 돈을 벌어간다고 생각하고, 아직도 조선족들이 한국에 와서 일하고 싶어 하리라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조선족들은 더 이상 한국에 와서 돈을 버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그 이유는 중국이 경제발전을 하면서 연변 자체도 경제 발전을 하면서 더 이상 한국에 와서 힘들게 일을 하면서 돈을 벌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오히려 한국에 와서 일을 하는 조선족들이 단순 육체노동을 하면서 돈을 벌기 때문에, 연변으로 돌아갔을 때 지속적인 경제활동을 하는 게 어려워지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 더군다나 조선족들이 한국으로 오면서 생긴 빈집이나 빈 농토를 한족들이 차지하면서 이제 연변은 더 이상 조선족들의 독무대가 아닌 상태로 변하고 있는 것도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중국의 경제 발전에 따라 연변도 더불어 발전하는 시기에 연변을 떠난 조선족들은 다시 연변으로 돌아갔을 때 적응하는 데 문제가 생기고 있는 것이다.

이 책 <이주, 경계, 꿈>은 단순히 조선족의 한국 이주 문제를 이론적으로 살펴본 게 아니라, 실제 이주한 조선족들의 사례를 찾아 소개하고 있다는 데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한국에서 일하는 조선족들의 한국에서의 생활뿐만 아니라, 연변으로 돌아간 다음에 재정착하면서 겪는 문제점들도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아울러 조선족들이 한국에 들어오면서 생긴 부작용들, 즉 장기간 이별이 실제 이혼으로 이어진 사례, 자녀들의 교육 부재로 인한 탈선 문제 등 여러 문제들에 대해서도 기술하고 있다. 또 한국에서 돈을 벌기 위해 무리하게 일하면서 생긴 질병에 의해 고통을 받거나, 연변에서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여 연번으로 돌아가서는 일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는 문제점들도 기술하고 있다. 한국에 나와서 일을 하는 동안 연변에 남아 있던 다른 조선족들과 한인들이 오히려 더 잘 살게 되면서, 한국에 나와서 일했던 조선족들을 괄시하는 분위기도 고통으로 다가온다고 한다. 우리가 단순히 조선족들이 한국에 와서 고생하면서 돈을 벌고, 연변에 돌아가서는 편안하게 살 거라는 막연한 기대와는 다른 조선족들의 실상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면서 조선족들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