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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로서 살아온 30여 년의 세월과 더불어 인생 후반기를 맞아 행복을 추구하는 기술자의 변신 스토리입니다. --------- 기술 자문(건설 소재, 재활용), 강연 및 글(칼럼, 기고문) 요청은 010-6358-0057 또는 tiger_ceo@naver.com으로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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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서망항에 가서 생선을 사다가 물회 요리를 해서 먹는 체험을 하는 날이었다. 10시에 숙소를 출발해서 먼저 진도항에 도착했다. 나는 이미 진도항에 와서 세월호 기억관과 기념 등대 등을 둘러봤지만, 이렇게 팀원 전체가 함께 오니 감회가 새로웠다. 오늘은 기억관에는 들르지 않고, 기념 등대에 들러서 설명을 듣고 바로 서망항으로 이동했다. 위원장님이 기념 등대 옆에 있는 지도를 보면서 조만간 진도항에서 조도와 관매도를 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전체 일정을 설명할 때 조도 방문만 얘기를 했었기 때문에 관매도는 따로 가볼까 생각했었는데 잘 됐다는 생각이 들어, 꼭 실행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게다가 조도에 갔다가 관매도를 갈 때는 모터보트를 빌려서 갈 계획이라고 하니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렜다.

 

 

서망항에 도착해서 위탁판매장으로 이동했다. 이곳은 어선에서 내린 생선들을 경매로 산 경매인들이 운영하는 판매장들이 있는 곳이었다. 판매장 입구에는 큰 수조들이 많이 있었는데, 이미 늦은 시각으로 생선들이 많이 팔려나간 탓인지 대부분의 수조들이 비어 있었다. 그래도 여러 사람들이 수조 속의 생선들을 안쪽의 판매대로 옮기고, 빈 수조들은 청소하고 있었다. 안쪽에는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봤던 것과 같은 활어가 헤엄치는 수조와 생선 판매대가 있는 가게들이 여럿 보였다. 위원장님과 사무장님은 단골 가게인지, 첫 번째 가게에 들어가서 생선을 사서 포장을 했다. 그 동안 나와 몇몇 멤버들이 더 안쪽으로 들어가 다른 가게들을 구경했다. 그런데 맨 안쪽의 가게에서 어떤 아가씨(?)가 카메라를 앞에 두고 꽃게를 들어 보이면서 선전을 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서망항의 유명한 유튜버 판매자라나.

 

 

서망항을 떠나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진도 남도진성을 들렀다. 나는 이미 서해랑길 9코스를 걸을 때 들렀던 곳이지만, 함께 견학을 하니 감흥이 또 달랐다. 9코스를 걸었을 때는 입구에서 사진만 찍고 지나쳤는데, 이번에는 반대편 입구로 들어가서 안쪽까지 관람하고 나왔다. 진도 남도진성은 왜구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만든 성인데, 바다에서는 성이 잘 보이지 않고, 성에서는 바다가 잘 보이는 자리에 위치해 있다고 했다. 왜구의 침입이 잦았을 때는 진도 자체에 사람이 살지 못하도록 공도 정책까지 썼었다고 했다. 원래 진도 남도진성 안에 마을이 있었는데, 그 집들을 모두 밖으로 이주시키고, 성벽과 건물들을 복원했다고 했다. 남도한옥마을이 바로 옆에 있었는데, 그 마을의 집들이 대부분 새로 지은 집들이라 그 마을 주민들이 귀촌한 사람들일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진도 남도진성 안에 살던 주민들이 이주하여 만든 마을이었을 가능성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도 남도진성 옆에 있는 마을길을 지나서 조금 더 달리니 바로 인지리가 나왔다. 숙소에 도착하니 11시 30분.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요리가 시작되었다. 회를 뜨고, 하모를 손질하는 것은 위원장님 몫이었지만, 그래도 옆에서 회와 하모를 잘게 썰고, 국수를 삶는 등 간단한 작업은 우리 멤버들이 도왔다. 또 일부는 물회에 들어갈 양배추, 당근, 오이 등을 채로 써는 작업을 진행했다. 이번에도 요리를 잘 하는 동네 분이 함께 물회에 사용될 소스를 만들고, 준비된 회와 채 썬 야채로 물회 국수를 만들었다. 식당에 상을 차린 다음에 다 같이 모여서 물회 국수를 먹었다. 말 그대로 끝내주는 맛이었다. 회도 싱싱하고, 여럿이 함께 먹어서 더 맛있게 느껴지는 것일까? 국수를 먹은 다음에는 하모 샤브샤브를 먹었다. 물회 국수가 시원하게 입맛을 돋우었다면, 하모 샤브샤브는 뜨끈하고 진한 국물 맛과 어우러진 하모의 탄탄한 살이 감칠맛을 돋우었다.

 

 

물회 국수와 하모 샤브샤브가 맛있어서 그랬는지, 식사를 시작한지 한 시간이 지난 12시 30분에 식사가 마무리되었다. 위원장님, 사무장님, 동네 분들이 먼저 자리를 뜨고 우리는 설거지를 마친 다음에 다시 모여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지난 번 프로그램을 시작할 때 간단히 자기소개를 했었지만, 이제 어느 정도 서로 조금은 안면이 트여서 서먹함이 없어졌으니, 조금 더 깊은 이야기를 해보자는 데 이견이 없었다. 확실히 지난 번 자기소개 때와는 달리 간단한 자기 이력과 더불어 한 주 동안 느낀 점, 다른 곳에서의 살아보기 경험 등 좀 더 깊은 이야기들이 나왔다. 이번에 처음으로 살아보기를 한 사람도 있었지만, 네 번이나 살아보기를 했던 사람도 있었다. 다른 곳에서 살아보기를 했던 사람들의 의견으로는 이번 진도에서의 살아보기가 가장 마음에 든다고 했다. 숙소 경치가 아름답기로는 고흥과 울릉도가 꼽혔고, 특히 울릉도의 경우에는 인기가 아주 높아서 처음 살아보기를 하고 부부가 지원한 경우가 아니면 채택되기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언젠가 울릉도에서 살아보기를 해보려고 했는데 이미 두 번이나 살아보기를 해서 나는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림산방 관람 후 진도군 인구정책실 간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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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에서 가장 가보고 싶은 곳 중의 한 곳이 운림산방인데, 오늘이 바로 그곳을 방문하기로 한 날이었다. 지난 번 서해랑길 8코스를 걷느라고 버스로 운림산방에 갔었는데, 오늘은 운림산방까지 승용차로 가니 편리하긴 했다. 운림산방을 기점으로 할 수 있는 활동이 많은데, 우선 이곳이 서해랑길 7코스의 종점이면서 8코스의 시작점이다. 또 이곳에서 첨찰산 등산을 할 수 있고, 삼별초 호국의 길을 걷는 시점이기도 하다. 오늘은 운림산방과 쌍계사를 둘러보고, 여기서 좀 떨어진 운림 무장애숲길을 탐방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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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0시에 숙소를 출발해서 10시 30분에 운림산방 주차장에 도착했다. 우선 쌍계사로 들어가서 대웅전을 비롯한 절 내부를 둘러보았다. 쌍계사는 그리 큰 절이 아니었지만, 역사가 오래 됐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진도에서 유일한 절이었다고 했다. 이곳 대웅전에 모신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은 1665년 만들어졌다고 알려졌는데, 좌상이 모셔진 대웅전이 수리 중이라 가까이 들여다볼 수 없어 아쉬움이 남았다. 쌍계사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 번잡스럽지 않아 좋긴 했지만, 마당에는 기왓장 불사가 가득 전시되어 있어서 너무 세속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다른 절에도 기왓장 불사가 있긴 하지만 한쪽에 전시되어 있는데, 이곳 쌍계사에서는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주 통로에 기왓장을 전시해 놓았다. 아마 그걸 보고 다른 사람들도 기왓장 불사를 하라는 의미라고 해석됐다. 세속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자신을 비우라는 부처님 말씀은 간 데 없고, 세속의 욕심을 채우는 데 부처님을 이용하려는 속셈이 보이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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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계사를 나와 바로 옆에 있는 진도군립 남도전통미술관으로 들어갔다. 예술의 고장 진도답게 여러 진도 출신 화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미술에는 문외한이지만, 그림을 보는 순간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 동양적인 요소들, 특히 시골스러운 요소들이 그림에 담겨있기 때문에 그런 느낌이 드는 게 아닐까라고 나름 분석해보았다. 시간이 많으면 천천히 그림 하나하나 감상할 수 있으련만, 오늘은 정해진 시간 안에 다른 데도 둘러볼 데가 많아서 주마간산 식으로 그림을 보면서 지나가야 하는 게 아쉬웠다. 하긴 이곳에는 첨찰산 등산 등을 위해 앞으로도 여러 번 와야 하니까 그때 혼자 들러서 찬찬히 보면 되지 않겠느냐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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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는 오늘의 하이라이트 운림산방을 관람할 차례였다. 운림산방에 들어가려면 입장료 2,000원을 내야 했는데, 65세 이상은 무료라 나는 무료입장을 했다. 들어가자마자 앞에 기와집이 보이고, 그 앞에 연못이 있었다. 연못에는 잉어가 많았는데, 사람 발자국 소리가 들리자 입을 벌리고 새까맣게 몰려들었다. 아마도 많은 관람객들이 먹이를 주다보니 잉어들도 그에 익숙해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연못을 돌아 기와집으로 들어갔다. 이곳 운림산방은 조선 후기 남종화의 시조로 알려진 소치 허련이 살면서 그림을 그리던 곳이라고 했다. 사실 소치가 실제 살던 집은 기와집 뒤에 따로 있었다. 그 집은 지금으로 보면 아담하지만, 조선 후기로 보면 상당한 재력이 있었음을 보여주었다. 하긴 그 만큼 재력이 있었으니 그림을 그릴 수 있었지 않았겠는가. 소치 허련은 해남 녹우당의 화첩을 보고 그림을 익히다가, 초의선사의 소개로 추사 김정희에게 그림을 배우면서 그만의 화풍인 한국 남종화를 완성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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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들른 곳은 전시관. 전시관은 소치 허련의 작품을 전시한 1전시관과 소치의 후손들의 작품을 전시한 2전시관 두 곳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1전시관으로 들어서자 입구에 소치의 가계도가 붙어있었다. 가계도는 소치의 자손이 현재 5대까지 있고, 대부분이 자손들이 유명 화가로 활동 중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 가계도를 보고 소치의 자손들이 화가로서 성공한 이유가 타고난 유전자 덕분일까 아니면 그림을 자주 접한 후천적 환경 덕분일까 궁금해졌다. 소치의 후손 중에 가장 많이 알려진 이는 3대손인 남농 허건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이곳 진도에서 태어나 그림을 그리다가 나중에는 목포에서 주로 활동을 했다. 현재 활동 중인 4대와 5대 손들의 작품들도 전시되어 있었는데, 그들의 작품은 현대의 기법들이 적용된 것 같아 더 친근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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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관을 나와 차를 타고 운림 무장애숲길로 향했다. 무장애숲길 입구에 도착하니 노란색 유치원 버스가 서 있고, 마침 숲길 탐방을 마친 어린이들이 차에 탑승하고 있었다. 어린이들이 탄 버스가 출발하는 것을 보고, 숲으로 들어서니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입구에는 정자가 몇 개 있었는데, 뒤에 있는 정자에 깔판 등 짐이 잔뜩 쌓여 있었다. 사무장님 설명으로는 그 정자에는 어떤 부부가 거의 매일 와서 마치 자신들의 안방인 양 드러누워 지낸다는 것이었다. 숲속이라 시원해서 그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공공장소를 사유화하는 몰염치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마침 오늘은 그들이 안 보였지만, 어떤 사람들인지 한 번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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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는 편백나무가 많았는데, 1970년대 산림녹화 때 인공조림을 한 것이라고 했다. 숲 속에 조성된 데크 길을 한 바퀴 돌고 점심식사를 하러 출발했다. 오늘의 점심식사는 읍내 맛집인 자영식당. 어디를 가나 맛집을 찾는 게 여행의 묘미인데, 가장 효율적으로 찾는 방법은 현지인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이곳은 위원장님과 사무장님이 선정한 곳이니 틀림없이 맛집일 거라고 기대가 컸는데, 아니나 다를까 반찬이며 갈치조림이 기대 이상이었다. 위원장님이 다른 맛집으로 이화식당을 지목했는데, 이화식당이 큰길에 있는데 반해, 자영식당은 골목 안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단골이 아니면 찾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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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림산방 관람 후 진도군 인구정책실 간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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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에서 가장 가보고 싶은 곳 중의 한 곳이 운림산방인데, 오늘이 바로 그곳을 방문하기로 한 날이었다. 지난 번 서해랑길 8코스를 걷느라고 버스로 운림산방에 갔었는데, 오늘은 운림산방까지 승용차로 가니 편리하긴 했다. 운림산방을 기점으로 할 수 있는 활동이 많은데, 우선 이곳이 서해랑길 7코스의 종점이면서 8코스의 시작점이다. 또 이곳에서 첨찰산 등산을 할 수 있고, 삼별초 호국의 길을 걷는 시점이기도 하다. 오늘은 운림산방과 쌍계사를 둘러보고, 여기서 좀 떨어진 운림 무장애숲길을 탐방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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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0시에 숙소를 출발해서 10시 30분에 운림산방 주차장에 도착했다. 우선 쌍계사로 들어가서 대웅전을 비롯한 절 내부를 둘러보았다. 쌍계사는 그리 큰 절이 아니었지만, 역사가 오래 됐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진도에서 유일한 절이었다고 했다. 이곳 대웅전에 모신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은 1665년 만들어졌다고 알려졌는데, 좌상이 모셔진 대웅전이 수리 중이라 가까이 들여다볼 수 없어 아쉬움이 남았다. 쌍계사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 번잡스럽지 않아 좋긴 했지만, 마당에는 기왓장 불사가 가득 전시되어 있어서 너무 세속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다른 절에도 기왓장 불사가 있긴 하지만 한쪽에 전시되어 있는데, 이곳 쌍계사에서는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주 통로에 기왓장을 전시해 놓았다. 아마 그걸 보고 다른 사람들도 기왓장 불사를 하라는 의미라고 해석됐다. 세속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자신을 비우라는 부처님 말씀은 간 데 없고, 세속의 욕심을 채우는 데 부처님을 이용하려는 속셈이 보이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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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계사를 나와 바로 옆에 있는 진도군립 남도전통미술관으로 들어갔다. 예술의 고장 진도답게 여러 진도 출신 화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미술에는 문외한이지만, 그림을 보는 순간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 동양적인 요소들, 특히 시골스러운 요소들이 그림에 담겨있기 때문에 그런 느낌이 드는 게 아닐까라고 나름 분석해보았다. 시간이 많으면 천천히 그림 하나하나 감상할 수 있으련만, 오늘은 정해진 시간 안에 다른 데도 둘러볼 데가 많아서 주마간산 식으로 그림을 보면서 지나가야 하는 게 아쉬웠다. 하긴 이곳에는 첨찰산 등산 등을 위해 앞으로도 여러 번 와야 하니까 그때 혼자 들러서 찬찬히 보면 되지 않겠느냐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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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는 오늘의 하이라이트 운림산방을 관람할 차례였다. 운림산방에 들어가려면 입장료 2,000원을 내야 했는데, 65세 이상은 무료라 나는 무료입장을 했다. 들어가자마자 앞에 기와집이 보이고, 그 앞에 연못이 있었다. 연못에는 잉어가 많았는데, 사람 발자국 소리가 들리자 입을 벌리고 새까맣게 몰려들었다. 아마도 많은 관람객들이 먹이를 주다보니 잉어들도 그에 익숙해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연못을 돌아 기와집으로 들어갔다. 이곳 운림산방은 조선 후기 남종화의 시조로 알려진 소치 허련이 살면서 그림을 그리던 곳이라고 했다. 사실 소치가 실제 살던 집은 기와집 뒤에 따로 있었다. 그 집은 지금으로 보면 아담하지만, 조선 후기로 보면 상당한 재력이 있었음을 보여주었다. 하긴 그 만큼 재력이 있었으니 그림을 그릴 수 있었지 않았겠는가. 소치 허련은 해남 녹우당의 화첩을 보고 그림을 익히다가, 초의선사의 소개로 추사 김정희에게 그림을 배우면서 그만의 화풍인 한국 남종화를 완성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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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들른 곳은 전시관. 전시관은 소치 허련의 작품을 전시한 1전시관과 소치의 후손들의 작품을 전시한 2전시관 두 곳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1전시관으로 들어서자 입구에 소치의 가계도가 붙어있었다. 가계도는 소치의 자손이 현재 5대까지 있고, 대부분이 자손들이 유명 화가로 활동 중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 가계도를 보고 소치의 자손들이 화가로서 성공한 이유가 타고난 유전자 덕분일까 아니면 그림을 자주 접한 후천적 환경 덕분일까 궁금해졌다. 소치의 후손 중에 가장 많이 알려진 이는 3대손인 남농 허건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이곳 진도에서 태어나 그림을 그리다가 나중에는 목포에서 주로 활동을 했다. 현재 활동 중인 4대와 5대 손들의 작품들도 전시되어 있었는데, 그들의 작품은 현대의 기법들이 적용된 것 같아 더 친근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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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관을 나와 차를 타고 운림 무장애숲길로 향했다. 무장애숲길 입구에 도착하니 노란색 유치원 버스가 서 있고, 마침 숲길 탐방을 마친 어린이들이 차에 탑승하고 있었다. 어린이들이 탄 버스가 출발하는 것을 보고, 숲으로 들어서니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입구에는 정자가 몇 개 있었는데, 뒤에 있는 정자에 깔판 등 짐이 잔뜩 쌓여 있었다. 사무장님 설명으로는 그 정자에는 어떤 부부가 거의 매일 와서 마치 자신들의 안방인 양 드러누워 지낸다는 것이었다. 숲속이라 시원해서 그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공공장소를 사유화하는 몰염치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마침 오늘은 그들이 안 보였지만, 어떤 사람들인지 한 번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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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는 편백나무가 많았는데, 1970년대 산림녹화 때 인공조림을 한 것이라고 했다. 숲 속에 조성된 데크 길을 한 바퀴 돌고 점심식사를 하러 출발했다. 오늘의 점심식사는 읍내 맛집인 자영식당. 어디를 가나 맛집을 찾는 게 여행의 묘미인데, 가장 효율적으로 찾는 방법은 현지인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이곳은 위원장님과 사무장님이 선정한 곳이니 틀림없이 맛집일 거라고 기대가 컸는데, 아니나 다를까 반찬이며 갈치조림이 기대 이상이었다. 위원장님이 다른 맛집으로 이화식당을 지목했는데, 이화식당이 큰길에 있는데 반해, 자영식당은 골목 안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단골이 아니면 찾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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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 돌아와 휴식을 취하다가 오후 2시부터 군청 인구정책실에서 설명회를 한다고 하여 세미나실에 모였다. 여느 지자체에서나 다 하는 귀농귀촌 관련 정책 설명회 자리인데, 담당 팀장과 주무관이 참석하여 설명을 했다. 자세한 사항은 인쇄물에 나와 있었는데, 진도에서는 특히 주거지에 대한 지원에 집중하는 것으로 보였다. 하긴 주거지 찾는 일을 귀농귀촌인의 개인 역량에 맡길 경우 농촌에 빈집이 많음에도 실제로 귀농귀촌인은 빈 집을 찾을 수 없는 일이 생겨나기 때문에 잘 하는 정책으로 보였다. 군에서 주관하는 임대 주택은 현재 4동이 있으며, 조만간 2동을 추가 완성할 예정이라고 했다. 현재 4호까지 있는 귀농인의 집은 6개월 단위로 임대 기간을 설정한다고 했다. 또 49세 이하 귀농귀촌인에게는 월 1만 원에 임대하는 아파트가 있다고 했다. 30평형대와 20평형대 각각 30가구로 건축 중인데 올해 말까지 완공하고 내년 초에 임대를 진행할 예정인데, 7년 임대가 가능하다고 했다. 우리 멤버 중에도 40대 부부가 이에 대해 큰 관심을 보였다. 부디 잘 진행돼서 그들 부부가 행복한 귀촌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다.

책 소개-로스트 킹덤

2026. 9. 28. 07:02 | Posted by 행복 기술자

세르히 플로히(허승철), “로스트 킹덤,” 글항아리, 2026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후 아직도 전쟁이 계속 되고 있다. 왜 갑자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그런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다. 그런 의문에 답을 주는 책이 바로 이 책 <로스트 킹덤>이다. 이 책은 우크라이나 출신으로 캐나다에서 교수 생활을 하고 있는 하버드대학 우크라이나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세르히 플로히가 쓴 책이다. 저자는 러시아 제국이 형성되던 시기부터 근처의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폴란드 등이 러시아와 어떤 관계에 있었는지부터 설명을 시작하고 있다. 러시아는 자신들과 우크라이나, 벨라루스와 같은 슬라브 민족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세부적으로는 러시아는 대러시아, 우크라이나는 소러시아, 벨라루스는 백러시아로 구분하고 있기도 하다.

러시아와 주변의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폴란드 등은 끊임없이 갈등을 빚어왔다. 러시아는 그들 국가를 차지하려고, 다른 국가들은 러시아에서 독립하려고 노력해왔다. 그 중에서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가장 크게 부딪쳐왔다. 왜냐하면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가까울 뿐만 아니라, 러시아 다음으로 큰 몫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러시아 입장에서는 우크라이나가 없이는 강대한 러시아를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저자는 “현재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갈등은 러시아 엘리트들이 자국과 동슬라브족 이웃 국가들을 공동의 역사적, 문화적 공간, 나아가 같은 민족으로 간주해온 사고에서 비롯된 러시아 정책의 최신 국면에 불과하다.”고 단정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단순한 영토 싸움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깊은 뿌리를 갖고 있다. 따라서 이런 갈등의 뿌리를 이해해야만 앞으로 이 전쟁이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이 가능하다. 한국도 중국과의 갈등, 일본의 침입으로 많은 시련을 겪어왔다. 하지만 단일 민족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그런 시련을 견디어 낼 수 있었다. 하지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얽히고설킨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갈등은 계속될 소지가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최근 러시아가 폴란드를 침공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왜 그런 예측이 나오는지도 이 책을 읽어보면 어느 정도 이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왜 러시아가 크림반도에 집착하는지도 짐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