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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로서 살아온 30여 년의 세월과 더불어 인생 후반기를 맞아 행복을 추구하는 기술자의 변신 스토리입니다. --------- 기술 자문(건설 소재, 재활용), 강연 및 글(칼럼, 기고문) 요청은 010-6358-0057 또는 tiger_ceo@naver.com으로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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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교 고려대 안암병원 정형외과 교수
40대 이후 노화로 어깨 질환 증가… 회전근개-오십견-석회성 건염 많아
통증 나타나는 부위 약간씩 달라… 한쪽 아프면 다른 쪽도 손상 우려
한 달 이상 통증은 병원 치료 필요… 예방과 치료엔 꼭 꾸준한 스트레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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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가 아파 불편하지만 그냥 참고 사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정웅교 고려대 안암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40대 이후에는 어깨에 나타나는 증세를 잘 살펴보고 그에 맞춰 대처하는 게 바람직하다. 특히 스트레칭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고려대 안암병원 제공

 

강추위에 몸을 오래 웅크리면 추위는 잠시 잊을지 몰라도 어깨에 무리가 간다. 의자에 구부정하게 앉아 휴대전화를 볼 때도 어깨가 다친다. 목을 쭉 내민 자세로 키보드를 쳐도 마찬가지다. 팔베개를 하고 자는 동작도 어깨에는 좋지 않다.

이뿐만이 아니다. 어깨 건강을 위협하는 요소는 일상생활에 너무 많다. 팔을 높이 들어 올리는 것도, 심지어 다리를 꼬고 앉는 것도 어깨 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게다가 어깨 질환은 노화와 관련이 있다. 40대 이후에 어깨 질환이 늘어난다. 이때부터는 어깨 질환 위험을 안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체로 어깨 주변에 통증이 나타난다. 하지만 사고나 갑작스럽게 입은 부상일 때만 곧바로 치료한다. 그냥 방치했다가 통증이 극심해진 후에야 병원에 가는 사람이 많다. 늦어진 만큼 치료도 어려워진다. 정웅교 고려대 안암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40대∼70대에 가장 많은 어깨 질환을 알아 두고 증세에 따라 대처하는 게 현명하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회전근개 질환 △오십견 △석회성 건염을 주의할 것을 당부했다.

 

● 팔 올릴 때 아프면 회전근개 질환

어깨를 감싸고 있는 힘줄이 회전근개다. 회전근개가 뼈와 자꾸 충돌하면 염증이 심해진다. 팔을 들어 올릴 때 처음에는 괜찮다가 어느 각도 이상이 되면 통증이 나타나거나 뭔가 걸리는 듯한 느낌이 든다. 뒷짐 진 상태에서 팔을 위쪽으로 끌어 올릴 때도 아프다.

고지혈증, 당뇨 같은 대사질환을 방치하거나 흡연을 하면 힘줄이 더 약해져 병이 악화할 수 있다. 망치질을 반복한다거나 높은 곳에 짐을 올리는 동작을 자주 해도 회전근개가 손상될 수 있다. 키보드 작업을 오래 하다 보면 어깨가 앞으로 굽어지는데, 이 또한 회전근개 질환의 원인이다. 틈나는 대로 가슴을 내밀고 어깨를 쫙 펴는 자세를 취해주는 게 좋다.

한쪽 어깨에 이 병이 나타난다면 다른 어깨도 손상될 확률이 크다. 정 교수는 “처음에는 자주 사용하던 팔 쪽 어깨에서 이 병이 시작된다. 그러다가 반대쪽 어깨에 병이 나타날 확률이 약 40% 정도”라고 말했다. 만약 한쪽 어깨에 증세가 나타난다면, 반대쪽 어깨도 잘 관찰해야 한다는 뜻이다.

한 달 정도 지켜보자. 증세가 개선되지 않으면 치료가 필요하다. 염증을 억제하면서 물리치료와 운동치료를 병행한다. 한 달 정도 제대로 치료하면 증세는 크게 좋아진다. 대체로 3∼4개월이면 치료가 끝난다. 하지만 치료하지 않고 방치했다가 힘줄 자체가 찢어질 수도 있다(회전근개 파열). 그때는 통증이 더 날카로워진다. 팔을 들어 올렸다가 내릴 때 힘이 빠져 ‘툭’ 떨어질 수도 있다. 팔을 든 상태로 오래 있기가 힘들어진다.

● 오십견, 관절 운동 꼭 해야

어깨 관절을 둘러싼 주머니를 관절낭이라고 한다. 이 관절낭이 염증으로 굳어 버린 게 오십견이다. 나이 오십에 잘 걸린다고 해서 속칭 오십견이라고 하지만 정식 병명은 관절낭염이다.

오십견일 때도 통증이 나타난다. 다만 양상이 다르다. 회전근개 질환일 때는 팔을 들어 올릴 때 주로 아프다. 반면 오십견일 때는 상하좌우 어디로 팔을 움직이든 아프다. 관절 가동 범위 자체가 줄어들었기 때문에 팔을 올리거나 돌리거나 만세를 부르는 동작 모두가 고역이다. 뒷짐 지는 것도 힘들다. 밤에 통증이 심한 것도 오십견의 특징이다.

정 교수는 “극심한 통증으로 병원에 오는 오십견 환자 상당수가 주사 같은 약물에 의존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치료는 통증을 완화해 줄 뿐 질병 자체를 낫게 해 주진 않는다. 정 교수는 관절 운동을 병행해야 완전한 치료가 된다고 강조했다.

사실 오십견은 대부분 치료를 받지 않아도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통증이 사라지는 특징이 있다. 다만 완치는 아니다. 약물은 통증을 완화해 주는 효과만 낸다. 정 교수는 “통증이 사라졌다고 해서 오십견도 없어진 건 아니다. 관절 운동을 병행하지 않으면 관절 가동 범위는 종전의 60∼70%만 복구된다”고 말했다. 관절이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면 나중에는 근육도 약해진다. 다시 비슷한 질병에 노출될 수 있다는 뜻이다. 4∼5개월 동안은 꾸준히 관절 운동을 해 줘야 한다.

● 극심한 통증, 석회성 건염 의심

회전근개 힘줄 안에 세포 변성으로 인해 석회가 쌓이면 염증이 생긴다. 그게 석회성 건염이다. 주로 40대와 50대에서 많이 발생한다. 오십견이나 회전근개 질환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아 증세만으로 구분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참을 수 없을 정도의 극심한 통증이 나타날 때가 있다. 통증을 못 참고 응급실로 오는 환자도 많다. 일단 이런 통증은 병이 치유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정 교수는 “이 통증만 지나가면 1∼2주 이내에 좋아진다. 다만 통증이 사라지는 ‘자연 치유’ 기간은 사람마다 달라 1년 혹은 2년이 걸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 달 이상 극심한 통증이 지속되면 염증과 통증을 조절하는 치료가 필요하다. 먼저 약물로 시도한다. 효과가 없을 때는 바늘로 자극을 주거나 체외충격파를 쏘아 단단해진 부위를 쪼갠다. 이마저도 효과가 없을 때는 내시경 수술도 고려한다.

● 매일 30분씩 어깨 스트레칭을

어깨를 강화하는 게 최선의 치료이자 예방법이다. 스트레칭이 기본이다. 통증이 나타나도 참을 수 있을 정도라면 운동하는 게 좋다. 찌르는 듯한 통증이 있다면 운동을 피하는 게 좋다. 정 교수는 세 가지 어깨 질환을 모두 예방할 수 있는 운동법을 소개했다.

➊ 벽과 약 30cm 간격을 두고 선다. 벽에 상체를 밀착하고 한쪽 팔을 위로 천천히 뻗는다. 팔을 늘린다는 느낌이어야 한다. 최대한 팔을 들어 올린 후 5∼10초 멈춘다. 15∼20회 반복한 뒤 같은 요령으로 반대쪽도 운동한다.

➋ 벽과 벽이 만나는 모서리 공간을 이용한다. 양쪽 벽에 팔을 댄 뒤 가슴을 편 채로 천천히 내민다. 최대한 가슴을 내민 후에는 5∼10초 멈춘다. 가슴이 뻐근해지는 게 느껴진다. 15∼20회 반복.

➌ 두 손으로 우산을 잡고 양팔을 옆구리에 붙인다. 이때 손등이 바닥을 향하게 해야 한다. 손등을 천장으로 향하게 하면 어깨에 무리가 갈 수 있다. 이어 팔을 오른쪽으로 천천히 돌린다. 팔은 옆구리와 항상 붙어 있어야 한다. 최대한 팔을 돌린 후 5∼10초 정지. 15∼20회 반복 후 좌우 교대.

➍ 앉은 자세에서 우산을 어깨 너비로 벌려 잡는다. 천천히 팔을 들어 올리다가 머리 위에서 멈춘다. 5∼10초 정지 후 15∼20회 반복. 이때 팔이 머리에 닿아서도, 완전히 펴져서도 안 된다. 팔을 굽혀야 어깨 회전 운동 효과를 낼 수 있다. 팔이 아니라 어깨를 회전한다는 느낌이어야 한다.

➎ 한 팔은 어깨 뒤로, 다른 한 팔은 허리 뒤로 보낸다. 등 뒤에서 수건을 약간 비스듬하게 잡는다. 이어 천천히 위쪽으로 수건을 끌어 올린다. 아래쪽 팔의 어깨 관절 가동 범위가 넓어진다. 그 상태로 5∼10초 정지. 15∼20회 반복 후 좌우 교대. 이 동작은 통증을 유발할 수 있다. 그 경우 운동을 중단하는 게 좋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동아일보 2026년 1월 31일]

전남 해남

전남 해남과 진도 사이 울돌목. 충무공은 이 좁은 바다에 13척 배를 띄우고 빠른 썰물과 함께 적선 133척을 침몰시켰다. 희망이 현실이 된 곳이다.

 

여기서 다시 시작이다. 북위 34도 17분 32초. ‘더는 갈 곳 없는’ 땅끝이다. 중천에서 일몰로 더 기운 태양이지만 서해 낮은 하늘에서 눈 시리게 빛난다. 손차양해서 바라본 오른쪽으로 아련하게 거북 등 같은 섬들 점점이 늘어섰다. 어룡도, 소장구도, 대장구도, 죽굴도…. 시선을 왼쪽으로 돌리면 백일도와 흑일도가 좌우로 나란히 가깝게 보인다. 그 너머 노화도와 보길도가 어렴풋하다. 한반도 육지 맨 끝인데 묘하게도 서해와 남해가 이 지점에서 만나 한데 섞인다. 더 이상 서쪽 바다, 남쪽 바다로 갈리지 않는다. 새로운 물이다. 많은 문인이 지칠 대로 지쳐 땅끝에 왔다가 작은 생기나마 찾아 돌아간다고 고백했다. ‘바람이거나 구름이거나 귀신이거나 간에 변하지 않고는 도리 없는 땅끝’(김지하, 시 ‘그 소, 애린 50’에서)인 터다. 절망의 끝에서 희망을 모색하는 여정. 해남 여행을 여기서 시작하는 이유일지 모른다.

● 스스로 변할 수밖에 없는 땅끝

여기가 한반도 땅끝이다. 땅끝탑 앞에 놓인 스카이워크에서 관광객들이 서해를 내다본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라는 정취 없는 이름으로 바뀐 전남 해남군 땅끝마을은 40여 년 전까지 칡머리로 더 많이 불렸다. 지형이 칡덩굴 머리가 바다 쪽으로 쑥 튀어나온 듯해서 그렇다. 여전히 이곳 포구 이름은 칡 머리라는 뜻의 한자어 갈두(葛頭)를 쓰는 갈두항이다. 포구 근처 바닷가 절벽을 아우르며 깔린 데크 길을 걷는다. 보길도나 노화도를 오가는 여객선이 항구를 떠나 김 양식장 옆으로 물살을 가른다.

땅끝탑으로 이어지는 이 길 중간쯤 스카이워크가 있다. 바다나 큰 강을 낀 지역에서 스카이워크는 진부한 관광상품이다. 하지만 투명 바닥을 통해 넘실대는 바닷물을 드러내며 뻗은 길 위에서의 풍경은 좀체 질리지 않는다. 노화도에서 오는 길인지 흑일도 흑일항을 떠난 배가 땅끝마을을 향해 뱃머리를 튼다. 2∼3km 떨어진 흑일도와 백일도가 방파제처럼 버티고 있다. 태풍이 올 때 두 섬이 에워싼 땅끝마을 앞바다는 고깃배들이 닿기를 바라는 피난처다.

 

● 미황사… 지상 정토에 대한 염원

지난달 270여 년 만에 중창한 해남 미황사 대웅전. 달마산 기기묘묘한 암벽 능선이 굽어보고 있다.

 

땅끝탑에서 길을 따라 오르면 해발 150m 남짓한 사자봉이다. 여기서 북쪽을 쳐다보면 달마산이 보인다. 높이가 500m에 약간 모자라는 달마산은 ‘한반도 최남단 소백산맥이 마지막으로 일으켜 세운’ 산이다. 그 중턱에 자리한 미황사(美黃寺)는 꿈 같은 설화와 현실에서 모두 희망을 품은 절이다.

통일신라 경덕왕 8년(749년) 의조화상이 창건했다는 기록이 설화와 함께 ‘미황사비명(碑銘)’(1692년)에 전한다. 사자포구(현 갈두항)에 돌 돛배를 탄 금인(金人)이 나타났다. 배의 금함(金函)에는 ‘화엄경’ ‘법화경’ 두루마리들과 비로자나불, 문수보살, 보현보살, 성중(聖衆), 선지식, 나한 등의 탱화와 조상(彫像)이 들었다. 홀연히 검은 돌이 깨어지며 청흑색 소가 나타났다. 의조화상 꿈에 우전국 왕이라는 금인이 나타나 경전과 불상을 안치할 곳을 찾다 달마산 정상이 1만 불(佛)을 모실 만해 정박했다고 말한다. 그 소가 두 번째 누운 곳에 지은 절이 미황사다. 소가 ‘미(美)’라고 울어서 미, 금인의 색을 취해서 황이라고 했다. 우전국은 현재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 지역이다. 망망대해를 헤매다 찾은 달마산이 극락정토라는 얘기다. 신라를 불국토(佛國土)로 만들겠다는 경덕왕의 염원이 미황사로 구현된 셈이다.

미황사 대웅전 앞뜰에서 바라본 달마산 암벽 능선은 기묘하고 웅장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말한 대로 ‘치마를 두른 듯 산허리에 높다랗게 늘어선 소나무와 참나무 위로 아주 흰 돌들이 우뚝 솟았는데 장대한 깃발도 같고 벽과도 같다. 사자가 찡그리며 하품하는 것 같고, 용과 호랑이가 발톱을 세우고 이빨을 벌린 것도 같다. 쌓인 눈이 공중에 떠 있는 것도 같다’(문화재청 ‘해남 미황사 대웅전 정밀 실측 조사 보고서’, 2011).

미황사 달마전 툇마루에 서면 오층 석탑 뒤로 저 멀리 진도 앞바다까지 아련하게 보인다.

 

미황사는 바위산 급경사면과 아래쪽 흙산의 완경사면이 만나는 지점에 있다. 풍수 연구가 최창조 전 서울대 교수는 “…산사태 위험성이 상존한 곳을 절이 막아 준다”고 짚었다. 달마산 자락 주민들이 스님들을 믿고 평안한 밤을 보낼 수 있다는 얘기다(조선일보 1997년 12월 13일 자).

미황사를 찾은 날은 대웅전 완전 해체 보수 공사가 완료된 날이었다. 정유재란 때 불탄 법당을 다시 짓고 1751∼1754년 대대적으로 손본 뒤 270여 년 만이다. 불자들의 바람이었다. 주춧돌부터 지붕까지 부재(部材) 5400여 개에 일일이 번호를 매기고 못 쓰게 된 데는 신재(新材)로 보충해 짜맞췄다. 이미 오래전 단청이 벗겨진 기둥이며 서까래, 공포, 도리, 처마, 문틀이 되레 따뜻하게 다가온다.

대웅전 뒤편 언덕 위 달마전으로 차를 마시러 간다. 서향인 달마전 마당에서는 까마득히 진도 앞바다가 보인다. 차를 우려내기 전 잠시 눈을 감고 명상한다. 주지 향문 스님 죽비 소리 세 번에 정신이 든다. 그가 묻는다. “당신의 마음은 어디 있습니까?”

● 바람이 현실이 되는 울돌목

울돌목 우수영관광지 얕은 바다에 충무공 이순신 동상이 부산 쪽 바다를 바라보고 서 있다.

 

희망이 실현된 곳을 찾아갈 차례이다. 서쪽 화원반도로 향한다. 진도와 가장 가까운 바닷길이 울돌목 즉, 명량(鳴梁)해협이다. 물때에 암초들을 때리는 물소리가 큰 울음처럼 들리는 물길이어서 명량이다. 임진왜란 때 수군이 주둔한 우수영(右水營)이 있었다. 해남은 조선시대 서남해안 뱃길의 관문이었다.

지금은 우수영관광지로 변한 그곳 해안가 얕은 물에 이순신 장군이 서 있다. 전국 여느 충무공 동상과 달리 칼을 차지 않고 갑옷도 입지 않았다. 포도대장이 입었다는 구군복(具軍服) 차림에 왼손에는 해도(海圖) 두루마리를 쥐고 있다. 진지한 눈매는 왜적이 쳐들어올 부산 쪽 수평선을 향한다.

당쟁에 휘말려 백의종군한 그에게 칠천량 패전 후 임금은 다시 중임을 맡겼다. ‘신에게는 열두 척의 배가 있습니다’는 그의 장계를 읽고 선조도, 조정 중신 누구도 감히 희망을 품지 못했을 터다. 명량해전을 책으로 읽으면서도 믿기지는 않았다. 어떻게 10배 넘는 적 함대를 물리친다는 말인가.

울돌목에도 스카이워크가 있다. 옆으로 케이블카가 울돌목 위로 진도를 오간다. 진도대교가 그 옆을 가로지른다. 케이블카에 타서 내려다보고 둘러보니 그제야 무릎을 치게 된다. 명량해전은 완벽한 전략의 승리였구나.

울돌목은 진도대교 북쪽 작은 섬 양도에서 남쪽 진도 벽파진까지 길이 약 2km, 최소 폭 약 300m의 바다다. 진도대교 아래에 충무공은 긴급히 수리한 배 한 척을 더해 13척을 일자진(一字陣)으로 놓았다. 그 배후에는 전투 능력 없는 어선 수십 척을 징발해 배치했다. 선체 폭 약 9m, 길이 32m 판옥선 13척이라면 그 길목을 충분히 막을 만하다. 거기에 썰물의 바닷물은 소용돌이치듯 적선을 향해 몰아친다. 왜적에게 바다 울음소리는 귀곡성처럼 들렸을 것 같다.

● 어떤 이의 ‘꿈’

해남 북평면 남창리 북평파출소 옆에 영화 ‘호프’ 대형 포스터와 작품 속 경찰차가 전시돼 있다.

 

진도를 바라보던 울돌목에서 완도를 바라보는 동남쪽 바닷가 마을로 간다. 북평면 남창리. 이 마을에서 한 영화인은 큰 꿈을 그렸다. 2023년 10월부터 약 100일간 남창리 한 거리를 세트장으로 만들어 영화를 찍었다. 제목은 당연히 ‘호프(Hope·희망)’다. 주민이 사는 진짜 마을을 탁월한 프로덕션 디자인으로 외계 생명체에 뜯기고 찢기고 무너진 아수라장으로 바꿔 놨다. 그 거리를 찾았다. 아뿔싸. 촬영이 끝난 지 2년여 뒤 주민의 일상생활 공간에서 영화의 흔적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좀 과했나 보다. 주인공 범석(황정민 역)과 활을 든 노인(이상희 역)이 누가 먼저 진입할까 말까 실랑이하던 정육점 입구는 간판과 함께 건물 벽에 그림으로만 남았다. 그 영화인의 꿈은 아쉽게도 희망이 되지 못하고 백일몽으로 끝난 듯하다.

글·사진 해남=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동아일보 2026년 8월 15일]

장흥 여행-천관산자연휴양림

2026. 9. 11. 07:02 | Posted by 행복 기술자

 

장흥 물축제 취재를 위해 1박을 해야 했는데, 원래 희망했던 우드랜드가 꼭 차서

좀 멀지만 천관산자연휴양림에서 1박 하기로 했습니다.

제주도는 물론이고 지방 여행을 할 때는 자연휴양림 숙소를 자주 이용하는 편인데,

천관산자연휴양림은 다른 곳에 비해 독특한 면이 있었습니

우선 천관산자연휴양림을 들어가기 위해서는 30분 이상 꼬불꼬불한 산길을 달려야 했습니다.

 

욕심껏 다른 곳들을 구경하고 숙소로 늦게 들어가게 되었는데,

오르막에 꼬불꼬불 산길을 오르느라 운전자가 고생을 했습니다.

운전이 지루하지 않게 하기 위한 배려인지 중간에 몇 고개라는 표지도 보였습니다.

 

숙소는 기대했던 대로 상당히 운치가 있었습니다.

깊은 산골에 위치해 주위 소음이 전혀 없었고, 그야말로 적막강산이었습니다.

예약한 숙소에서 숙박한 다음 아침에 천관사까지 다녀왔습니다.

천관산을 오를 수도 있었지만, 다음을 기약하고 다른 곳들을 보기로 했습니다.

하룻밤 숙박이었지만, 기억에 길이 남을 천관산자연휴양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