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지니어로서 살아온 30여 년의 세월과 더불어 인생 후반기를 맞아 행복을 추구하는 기술자의 변신 스토리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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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이 제주인 제가 자라면서 많이 들었던 곳이다. 내가 천주교인이라서 이시돌 목장에 대해 더 많이 들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어렸을 적에 들었던 기억으로는 이시돌 목장은 외국 신부님이 와서 만든 곳, 돼지를 키우는 곳이었습니다. 또 이시돌 목장에서 운영하는 이시돌의원은 외국에서 들어온 좋은 약을 많이 구비하고 있어서 병이 빨리 낫고, 약값을 비롯한 진료비도 싸다는 것이었다. 최근에는 피정의 집, 요양원 등 다른 용도의 시설들도 많이 들어와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젊은이들 사이에 유명한 ‘우유부단’이라는 명소도 있다고 하여 나도 몇 번 들른 적이 있다. 최근 방문 때는 일부러 성이시돌센터와 ‘새미은총의 동산’도 둘러보았다. 이 책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초록>은 센터 전시관에서 이시돌 목장의 설립자 임피제 신부님에 관한 책이라는 소개를 보고 읽게 되었다.
나는 단순히 이시돌 목장이 외국에서 원조를 끌어와 쉽게 만들고, 현재도 잘 운영되고 있다고 막연하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일고 나서 임 신부님이 이시돌 목장을 만들면서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어떤 마음으로 이시돌 목장은 물론 한림수직, 이시돌의원 등을 만들었는지 알 수 있었다. 지금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제주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부러워한다. 하지만 과거에는 제주도에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지 잘 알지 못한다. 나는 ‘과거 제주도는 한국의 식민지였다.’고 주장한다. 그만큼 핍박을 받았고, 살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임 신부님의 고국인 아일랜드와 제주도가 비슷한 처지여서, 임 신부님이 더 제주도에 애착을 갖고 도우려고 하지 않았을까 추측하고 있다. 나도 그 의견에 동의한다. 그런 마음이었기에 임 신부님이 다른 선교사들과 달리 복음 자체보다는 제주 주민들의 빈곤을 개선하는 데 집중했을 것이다. 그는 한림수직에 이어 이시돌 목장을 통해 수천 명의 제주 사람들이 경제 기반을 마련했다.
이시돌 목장은 새로운 시대를 맞아 과거만큼 번창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임 신부님의 설립 취지를 살려, 제주 도민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여러 사업을 새롭게 시작하고 있다. 그 중의 한 가지가 바로 요양원과 호스피스 사업이다. 또 이런 복지 사업들을 뒷받침하기 위해 종마 육성 사업, 우유부단 등 6차 산업 등을 시도하고 있다. 이런 사업들이 잘 정착해서 임 신부님의 유지가 잘 실현되길 바라본다. 다음 번 제주에 가서 이시돌 목장을 둘러보면 다른 눈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시돌 목장의 모든 곳에서 임 신부님의 따스한 마음이 느껴질 것이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섬유 무역회사 텍스타폼의 중국 법인 정경현 지사장이 올 8월 열린 나미비아 사막 마라톤 250km에 출전해 달리고 있다. 정경현 지사장 제공
“달리면 심장이 뜨거워지잖아요. 그런데 달리다가 김구 선생, 윤봉길 의사, 안창호 선생을 떠올리면 심장이 한 번 더 뜨거워집니다. 심장이 두 번 뜨거워지는 경험이죠.”
네덜란드 섬유 무역회사 텍스타폼의 중국 법인 정경현 지사장(53)은 매주 목요일 오전 6시 상하이 지하철 신톈디(新天地) 역 6번 출구에서 달린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를 출발해 프랑스 조계지의 좁은 골목을 누비며 독립운동 유적지를 돌아보는 ‘NCR(Nongho City Run)’이다. ‘농호(侬好·농하오)’는 중국어 인사말 ‘니하오’의 상하이 사투리다. 그는 “우리가 찾아가지 않으면 잊힐 수 있는 길을 계속 달려서 기억하자는 뜻에서 ‘런 투 리멤버(Run to Remember)’라고 부른다”고 했다.
정 지사장은 12년 전 서울 사무소가 중국과 통합되면서 상하이로 옮겼다. 그가 사는 집이 임시정부 청사에서 200∼300m 거리다. 매일 그 주변을 달리다 보니 임시정부만 있는 게 아니었다. 김구 선생이 살던 집, 독립운동가 수백 명이 모여 사진을 찍은 푸싱(復興) 공원,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이라는 국호가 처음 정해진 임시정부 탄생지(청사에서 약 2km 떨어진 곳에 푯말), 도산 안창호 선생이 미주 교포들의 헌금으로 태극기를 걸고 청사를 꾸렸던 터가 있다. 윤봉길 의사가 상하이에 와서 첫날밤을 보낸 아파트, 의거 당일 아침 김구 선생과 마지막 식사를 한 집, 선서문을 목에 걸고 권총과 수류탄을 든 채 사진을 찍은 장소도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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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현 지사장(오른쪽)이 중국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유적지 앞에서 함께 달리던 NCR팀원들과 포즈를 취했다. 그는 지난해 6월부터 김구 선생, 윤봉길 의사, 안창호 선생 등이 활동했던 독립 유적지를 달리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정경현 지사장 제공.
지난해 6월 25일 시작한 NCR은 매주 목요일 정기 모임과 주말 비정기 모임으로 운영된다. 상하이 교민뿐 아니라 여행객도 신청하면 함께 달릴 수 있다. 달리기 주제는 매번 바뀐다. 주제에 따라 5~12km를 달린다. 임시정부의 시작과 끝을 따라가기도 하고, 윤봉길 의사의 마지막 여정을 잇는 ‘매헌(梅軒) 로드’를 달리기도 한다. “저는 앞으로 시계 쓸 일이 한 시간밖에 없으니 선생님 시계와 바꿉시다”라며 김구 선생과 시계를 바꾼 윤 의사가 택시를 타고 훙커우(虹口) 공원으로 향하고, 의거 뒤 끌려간 자리까지 이어지는 코스다. “고층 빌딩 사이에 아직 사람이 사는 100년 전 집들이 남아 있고, 그 골목을 달리면 그때로 시간 여행을 떠나는 느낌입니다. 이 길이 잊히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정 지사장은 40세 무렵부터 달렸다. 아버지는 그가 초등학교 1학년 때 40세가 되기 전에 세상을 떠났고, 할아버지도 40대에 돌아가셨다. “제가 아버지가 돌아가신 나이가 됐을 때 딸이 딱 그때의 제 나이, 초등학교 저학년이었어요. 덜컥 겁이 났습니다. 아이들에게 아버지와 함께하는 시간을 오래 주고 싶었어요. 뭔가 해야 하는데 할 수 있는 게 달리기밖에 없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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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현 지사장(오른쪽에서 세 번째)이 함께 달리던 러너들과 포즈를 취했다. 정경현 지사장 제공매일 달렸다. 처음엔 2, 3km가 고작이었다. 조금씩 거리를 늘려갔다. 달린 지 2년 만에 처음 마라톤 42.195km 풀코스를 완주했다. 기록은 약 5시간 30분. 힘들었지만 해냈다는 자신감이 불끈 솟았다. 90kg이던 체중은 6개월 만에 10kg이 빠졌다. 너무 열심히 한 탓에 왼쪽 장경인대 부상이 와서 6개월을 쉬기도 했다. 더 큰 고비는 심장이었다. 아버지가 심장병을 앓았는데, 그 역시 건강검진에서 비슷한 소견이 있다는 경고를 받았다. 어쩔 수 없이 약 2년을 달리지 못했다. 그러자 체중이 다시 불었다. 그는 “어차피 위험하다면 달려서 건강해지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다시 달리면서 체력의 한계를 느꼈다. 그래서 웨이트트레이닝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2017, 2018년엔 일주일에 4번씩 근육 운동을 해서 2019년엔 보디빌딩 대회에도 나갔고, ‘보디 프로필’도 세 번 찍었다. “근육이 자리를 잡고 나서 달리니까 훨씬 편하고 좋아졌어요. 그 뒤로는 장경인대 부상도 다시 오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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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현 지사장이 웨이트트레이닝으로 몸을 만든 뒤 찍은 보디 프로필. 정경현 지사장 제공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면서 중국은 한 마디로 완전히 폐쇄됐다. 한국으로 출국은 물론 상하이 옆 도시로도 이동이 불가능했다. 그는 “그땐 정말 운동만 했다”고 회상했다. 체육관이 모두 문을 닫자 같은 동네에 사는 외국인 친구들과 공간만 있으면 할 수 있는 달리기와 맨몸 크로스핏(Cross Fit)을 시작했다. 그렇게 2020년 2월 다국적 운동 모임 ‘GCS(Growth Club Shanghai)’가 만들어졌다. 회원은 20대부터 40대까지이고, 그가 가장 나이가 많다. 몇 년간 리더를 맡다가 지금은 다른 회원에게 넘겨주고 자문 역할을 하고 있다.
정 지사장은 달리기를 “일반인이 목표를 세우고 성취감을 가장 쉽게 얻을 수 있는 운동”이라고 했다. “오늘 5km를 달렸으면 다음 달엔 10km를 뛰어보자, 이런 식으로 시간이든 거리든 목표를 정해서 이루는 거죠. 남과 경쟁할 필요도 없어요.” 그는 GCS의 젊은 회원 중 10km를 겁내는 이들을 데리고 함께 뛰어주곤 한다. “한 번 심리적 장벽을 넘으면 그다음부턴 쭉쭉 성장해요. 이제는 저한테 트레일러닝 100km를 같이 나가자는 친구도 있습니다.”
정경현 지사장이 제주 트레일에 출전해 즐겁게 달리고 있다. 정경현 지사장 제공
지금 그의 운동 루틴은 이렇다. 일주일에 최소 5일 달리고 한 달에 200∼250km를 달린다. 평일엔 5km나 10km, 주말엔 20km를 달린다. 새벽과 저녁, 번갈아 훈련한다. 편도 11km인 사무실까지 자전거로 출퇴근하는데 한 번에 50분쯤 걸린다. “달리기 거리만 계속 늘리니까 몸에 무리가 오는 것 같아서 자전거로 보충하고 있다”고 했다. 웨이트트레이닝은 요즘 일주일에 한 번 정도로 줄이고 근육 유지에 집중하면서 요가를 하고 있다. “몸을 잘 풀어줘야 더 잘 달릴 수 있다. 보조 운동으로는 요가가 최고”라고 설명했다.
자전거 출퇴근 덕분에 올해 5월엔 처음으로 철인3종 하프코스(수영 1.9km, 사이클 90km, 마라톤 21.0975km)를 완주했다. “다들 첫 대회를 하프로 하느냐고 말렸는데, 말릴 만하더라고요. 수영은 제한 시간 70분인데 1시간 5분, 거의 꼴찌로 나왔어요. 그 뒤의 사이클과 마라톤은 선물처럼 즐겼습니다.”
정경현 지사장이 한 트레일러닝 대회에 출전해 산을 오르고 있다. 정경현 지사장 제공
정 지사장은 지금까지 마라톤 풀코스를 10회 완주했다. 최고 기록은 지난해 3월 서울마라톤 겸 동아마라톤에서 기록한 3시간 46분 49초다. 트레일러닝 100km 9회와 160km 1회도 완주했다. 6일간 250km를 달리는 사막 마라톤도 두 차례(2024년 고비, 2026년 나미비아) 뛰었다. 건강을 위해 달린 그는 어느 순간 ‘철인’이 돼 있었다.
사막 마라톤은 2021년 중국에서 대회장으로 가는 기차 옆자리 승객에게서 처음 들었다. “외부 도움 없이 모든 걸 짊어지고 사막 안에서만 생활하며 달린다는 게 너무 해보고 싶었어요.” 2024년 고비사막 마라톤에 나가 발톱 두 개를 사막에 묻고 완주했다. 그 기세로 2024년 10월 트랜스 제주 100km(약 22시간)와 서울 100K를 2주 사이에 연달아 완주했다.
사막은 만만치 않았다. 아침 출발 땐 기온이 10도 밑으로 떨어지다가 낮 12시 무렵엔 40도를 넘는다. 하루는 50도까지 올라 탈진하는 참가자가 속출했다. 모래언덕(듄)에선 발이 푹푹 빠지고 물집이 잡혔다. 올 8월 아프리카 나미비아 사막을 다녀왔고, 그 힘으로 10월 초 열린 트랜스 제주 100마일(약 160km)을 35시간 만에 완주했다. 지난해 실패한 100마일을 올핸 완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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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현 지사장이 올 8월 나미비아 사막 마라톤에 출전해 모래 언덕을 오르고 있다. 정경현 지사장 제공
실패도 많았다. 지난해 세계 트레일러닝의 ‘꿈의 무대’인 UTMB(울트라트레일몽블랑)의 CCC(100km) 부문에 나섰다가 60km 지점에서 컷오프를 당했다. 그는 UTMB 출전 자격 포인트인 ‘러닝 스톤’을 모으며 몽블랑 ‘리벤지 레이스’를 준비하고 있다. 또 하나의 꿈은 칠레 아타카마 사막 마라톤이다. “다녀온 사람들이 다 끝판왕이라고 하더라고요. 남극 마라톤은 마지막 순위로 두고 있습니다.”
정 지사장은 “트레일러닝의 매력은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주중엔 사무실 일이 정말 바쁘고, 중국에서 일하다 보니 스트레스도 많아요. 산속에서 12시간, 24시간 집중하지 않으면 다치니까 오롯이 나에게만 집중하게 됩니다.” 그래서 대회 땐 사진도 잘 찍지 않고, 나미비아에선 아예 휴대전화를 두고 달렸다.
“제게 달리기는 정말 절박했어요. 안 하면 죽을 수도 있었죠. 지금은 도전 그 자체가 즐겁습니다. 그리고 독립 투사들이 활동했던 곳을 달리며 뜨거워지는 심장 박동 소리에 매번 감격합니다. 함께 달리고 있는 NCR 회원들에게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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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현 지사장(맨 앞)이 GCS 회원들과 함께 중국 상하이 시내를 달리고 있다. 정경현 지사장 제공
소수서원·소수박물관·선비세상·부석사 잇는 동선 박물관·전통문화 체험시설 연계… 선비문화 한눈에
영주문화관광재단이 소개한 ‘안빈낙도 권역’의 마지막 방문지인 부석사 전경. 사진제공=영주문화관광재단
서원에서 선비의 학문을 살펴보고, 한복을 입고 한식을 맛본 뒤, 산사에서 가을 풍경을 둘러본다. 경북 영주문화관광재단은 소수서원과 부석사를 잇는 ‘안빈낙도 권역’ 관광코스를 15일 소개했다.
코스는 소수서원과 소수박물관, 선비세상, 부석사로 이어진다. 권역 이름은 선비정신을 뜻하는 ‘안빈낙도(安貧樂道)’에서 ‘가난할 빈(貧)’을 ‘손님 빈(賓)’으로 바꾼 것이다. 방문객을 편안히 맞이하겠다는 뜻을 담았다.
첫 방문지인 소수서원은 1543년 풍기군수 주세붕이 세운 백운동서원이 전신이다. 1550년 명종에게서 ‘소수서원’ 현판을 받아 국내 첫 사액서원이 됐다. 2019년 ‘한국의 서원’ 가운데 한 곳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이름을 올렸다. 경내에는 강학당과 문성공묘, 경렴정 등이 남아 있다.
서원 옆 소수박물관은 고문서와 현판, 서책 등을 전시해 조선시대 선비의 학문과 생활상을 보여준다. 2022년 문을 연 선비세상에서는 한복·한식·한지·한글·한음악 등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
마지막 방문지인 부석사는 676년(신라 문무왕 16년)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2018년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으로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국보인 무량수전과 소조여래좌상 등을 볼 수 있다.
박정록 재단 대표는 “방문객들이 안빈낙도 권역을 둘러보며 선비정신에 담긴 여유와 배려의 가치를 경험하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