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엔지니어로서 살아온 30여 년의 세월과 더불어 인생 후반기를 맞아 행복을 추구하는 기술자의 변신 스토리입니다. --------- 기술 자문(건설 소재, 재활용), 강연 및 글(칼럼, 기고문) 요청은 010-6358-0057 또는 tiger_ceo@naver.com으로 해 주세요.
행복 기술자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최근에 받은 트랙백

글 보관함

calendar

일 월 화 수 목 금 토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진도 살아보기-관매도 탐방

2026. 11. 3. 07:00 | Posted by 행복 기술자

오늘 드디어 진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이라는 관매도에 가기로 한 날이다. 가슴이 설레어서 그런지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관매도로 떠나기 위해서는 여러 변수를 고려해야 했기 때문에 며칠 동안 고민을 많이 했다. 관매도가 섬이니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점은 날씨였다. 여행을 하기로 한 날 날씨가 안 좋아 배가 결항될 수도 있고, 더 안 좋은 상황은 섬에 갔는데, 갑자기 날씨가 나빠져서 결항되어 그 섬에 묶이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이번 주말 날씨를 살펴보니 오늘(금요일)은 바람도 거의 없고 파도도 잔잔한데, 내일(토요일)과 모레(일요일)에는 바람과 파도가 거세질 거라는 예보가 떴다. 그래서 오늘 아침 일찍 관매도에 갔다가 오후에 돌아오기로 결정했다. 만약 오늘 중으로 관매도를 다 돌아보지 못하는 경우에는 날씨가 좋아지는 월요일에 다시 한 번 더 관매도에 다녀오기로 했다.

 

사실 관매도에서 1박을 할까도 생각했었다. 그런데 블로그 등에서 관매도에서 1박을 한 사람들의 여행기를 읽어보니 부정적인 분위기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긍정적인 의견은 별로 찾을 수 없을 정도였다. 아마 유명한 관광지다보니 현지 상인들이 관광객을 대하는 태도가 그리 친절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그런 불편을 감수하고서라도 1박을 할 생각이 있었는데, 결정적으로 날씨 때문에 당일치기 여행을 하기로 결정하였다. 문제는 버스를 타고 움직이려면 아침 8시 20분 출발하는 배를 타고 갔다가 오후 1시 30분에 관매도에서 출발하는 배를 타야 한다는 점이었다. 다음 배는 오후 5시 20분에 출발하는데, 그럴 경우 버스 운행이 끊겨서 택시를 타야 했다. 다행스럽게도 같이 살아보기를 하는 멤버 중 한 분이 5시 20분 출발하는 배가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서 마중 나오겠다고 하여 한시름 놓게 되었다.

 

아침 7시에 숙소인 길은리를 지나 십일시로 가는 버스를 탔다. 십일시에 7시 25분에 도착하여 조금 기다리다가 7시 31분에 진도팽목항으로 가는 버스를 갈아탔다. 팽목항에 도착한 시각이 7시 52분. 표를 끊고 바로 승선하자 8시 15분에 배가 출발했다. 날씨가 약간 흐리고 쌀쌀했지만, 비가 올 것이라는 예보가 없어 크게 적정되지는 않았다. 따가운 햇볕에 노출되는 것보다는 오히려 이렇게 흐린 날씨가 더 나았다. 운항 시간이 1시간 정도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나는 바로 3층 야외 공간으로 올라갔다. 바람이 불어 약간 춥기는 했지만, 그럴 때를 대비해서 갖고 다니는 바람막이를 입으니 견딜 만 했다.

 

 

멀어져 가는 진도항을 바로 보고 서 있는데,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멋진 캡틴 모자를 쓴 신사 ‘송oo’이었다. ‘관매도를 가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으로 시작된 대화는 관매도에 도착할 때까지 이어졌다. 송은 군 특수부대에 복무한 후 소방대원으로 근무한 다음 퇴직해서 현재 해안 지방으로 살아보기 여행을 하고 있다고 했다. 지금은 목포에 근거지를 두고, 목포 근처 섬들과 진도 섬들을 돌아보고 있는데, 오늘이 진도 섬 투어 마지막 날이라고 했다. 오늘 목포로 돌아가면 이틀 후에 정읍으로 이사(?)할 예정이라고 했다. 어제 조도 섬에 갔다가 관매도로 올 계획이었는데, 조도에서 관매도로 가는 배를 타는 데 착오가 생겨서 오늘 다시 관매도로 가게 되었다고 했다. “그 덕분에 당신과 내가 만나게 된 게 아닌가?”라고 내가 말하자 송도 웃었다. “그게 바로 여행의 묘미고, 계획대로 안 되면 다른 무슨 좋은 일이 일어나려고 하는구나.”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말하자, 송도 “맞습니다. 여행을 통해 그런 삶의 지혜도 배우는 거구요.”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 배가 관매도에 도착했다. 송이 “몇 시 배로 나갈 거예요?”라고 물어서 내가 “5시 20분 배요.”라고 했더니 “잘 됐네요. 그럼 그때 다시 만나면 되겠네요.”라고 말했다. 송이 차를 갖고 왔기 때문에 먼저 1층으로 내려가서 내릴 준비를 하겠다고 말했다. 필요하면 차를 태워다 주겠다고 했지만, 나는 걸어서 돌아볼 예정이라서 사양하겠다고 얘기하고 헤어졌다. 배에서 내려 앞에 보이는 ‘관매도’라는 안내판 앞에서 사진을 찍는 것으로 관매도에서의 일정을 시작했다. 관매도에는 크게 세 가지 길이 있는데, 꽁돌과 하늘바위로 가는 길, 벼락바위까지 갔다 오는 길, 돈대봉(돈두산)을 넘어 독립문 바위와 방아섬까지 가는 길이다. 나는 오늘 다 돌아볼 예정이었지만, 그래도 우선순위를 정했는데, 꽁돌과 하늘바위를 다녀온 다음 벼락바위, 그 다음에 돈대봉 트레킹을 하기로 했다.

 

 

지도에서 언뜻 보기에는 돈대봉 트레킹을 빼고는 그리 힘들지 않을 것으로 판단되었다. 그런데 이런 예상과 달리 꽁돌과 하늘바위로 가는 길은 그나마 좀 수월했지만, 벼락바위로 가는 길은 예상 외로 험난(?)했다. 중간에 바닷길과 산길이 있었는데, 둘 다 체험해 본다고 걸었다. 처음에 걸은 바닷길은 중간에 바위로 된 험준한 부분이 있었는데, 난간대가 있었지만, 동석산 못지않게 위험하고 힘들었다. 산 위에서 해안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위로 올라오는 과정도 힘이 들었다. 또 바닷가 바위라 울퉁불퉁하고 미끄러운 부분들도 있어서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바다에서 다시 위로 올라오는 길도 만만치가 않았다. 하지만 벼락바위(하늘담)와 다리여에 도착하니 그 동안의 고생이 충분히 보상받는 기분이 들었다. 자연의 경이로움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자연의 경이로움에 감탄하고 있는데, 멀리서 누군가 손을 흔들며 아는 체를 했다. ‘여기서 나한테 손을 흔들 사람이 없는데, 혹시 다른 사람을 보고 흔드나?’하고 주위를 둘러봐도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가까이 가서 보니 배에서 만났던 송이었다. 얼굴에 햇빛가리개를 쓰고 있어서 얼굴이 안 보이니 누군지 알아볼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반갑게 다시 인사를 나누고, ‘비슷한 시각에 도착했는데, 왜 오는 길에 그를 만나지 못했을까?’ 궁금해서 물어봤더니 그는 해안길이 아닌 산길로 왔다는 것이었다. 내가 해안길로 왔다고 했더니 ‘길이 어땠느냐?’ 물어봐서 “길이 좀 험하긴 한데 특전사 출신에게는 별로 어렵지 않을 겁니다.”라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해안길에서 고생을 했기 때문에 돌아올 때 걷는 산길은 덜 고생스러울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그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길이 삼각형 모양이라 해안길은 그나마 좀 짧았는데, 산길은 훨씬 더 길었다. 게다가 오르막이 많아서 힘든데다가 오르막 내리막이 반복되니 훨씬 더 힘들게 느껴졌다. 관매도를 소개하는 글에서는 산길에 나 있는 숲길이 아름다운 숲길로 선정되었다고 하는데, 그런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낄 수 없을 정도였다. 사실 이 정도의 산길은 트레킹을 하다보면 얼마든지 만날 수 있는데, 아마도 이 산길이 쉬울 거라는 기대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 힘들게 느껴졌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대치와 실제치(?)가 달라 느끼는 어려움은 인생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예를 들어 연애 초기에는 기대치가 낮아 상대가 해주는 게 무엇이든 고맙게 느껴지지만, 어느 정도 친밀감이 높아지고 나면 상대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지면서 갈등을 겪게 되니 말이다. 가까운 사람에게 더 큰 상처를 받게 되는 가장 큰 이유도 상대가 친하다는 이유로 그에 대한 기대치가 더 크기 때문이 아닐까?

 

 

아침에는 추웠는데, 힘들게 산길을 걸으니 땀이 엄청나게 쏟아졌다. 끝나지 않을 것처럼 느껴졌던 산길이 해안길과 나눠지는 삼거리 갈림길에 이르면서 끝이 났다. 사과와 빵 등 간식을 준비해오긴 했지만, 오후에 돈대봉 트레킹을 하기 위해서 점심식사를 하기로 했다. 관매도에 식당이 몇 개 있지만, 평이 별로 좋지 않아서 그냥 ‘관매도짜장집’에서 점심식사를 하기로 했다. 내가 밀가루 음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자장면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볶음밥도 팔고 있어서 볶음밥을 먹었다. 관매도짜장집에는 의외로 손님이 많았다. 아마 바가지를 쓰느니 간단히 한 끼 때우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볶음밥은 그런 대로 맛이 괜찮았다. 대부분의 손님들이 자장면을 먹고 있었는데, 대부분 만족스런 표정이었다. 아까 산길과 반대로 여기서는 기대치가 그리 높지 않았기 때문에 평범한 맛의 자장면이나 볶음밥도 괜찮다고 느껴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점심식사를 마치자마자 돈대봉 트레킹을 시작했다. 밥을 먹은 다음에 바로 걷는 게 좋지 않지만, 배 시간에 맞추기 위해서는 가능하면 빨리 트레킹을 마쳐야했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오전에 체력 소모를 많이 했기 때문에 곧바로 돈대봉을 오르는 게 힘이 들었다. 하는 수 없이 진도에 와서 처음으로 스틱을 사용하기로 했다. 스틱에 의지한 덕분에 그나마 수월하게 돈대봉에 오를 수 있었다. 관매도에 와서 첫 일정으로 돈대봉 트레킹을 시작했으면 능선을 따라 걸으면서 바라보는 바다 풍경이 멋있었겠지만, 이미 하늘바위와 벼락바위 가는 길은 물론 진도 다른 곳들을 다니면서 바다 풍경을 충분히 봤기 때문에 그냥 평범한 트레킹 길이 되었다. 역시 경치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높아진 덕분(때문?)이 아닐까?

 

 

돈대봉 전망대를 지나자 가파른 내리막길이 이어졌다. 조금 걷다 보니 무슨 소리가 나서, 혹시 멧돼지인가 해서 긴장했는데, 알고 보니 염소 떼였다. 벼랑을 잘 타는 염소들이 이곳 바위들 사이에 있다가 내가 내는 소리를 듣고 황급히 피하는 소리였다. 가파르고 낙엽이 쌓인 길이라 주의를 기울였는데도 불구하고 몇 번 미끄러질 뻔한 순간을 넘기고, 숲길 출구에 도착했다. 바닷가 옆이었는데, 거기서부터는 포장길이 이어졌다. 포장길을 따라 얼마쯤 걸으니 장산편마을이 나타났는데, 안내 표지에 따라 방아섬 방향으로 걸었다. 지도를 보니 그 길 가까운 곳에 관매해수욕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그 때문인지 멀리서 파도 소리가 들렸다.

 

 

방아섬 입구에 도착하니 꽤 넓은 주차장이 있었는데, 아마도 선착장에서 바로 차를 타고 온 사람들을 위한 것으로 보였다. 나처럼 힘들게 트레킹을 하지 않고, 차로도 쉽게 접근할 수 있으니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차장부터는 숲길이면서 가파르지 않아 노약자들도 쉽게 갈 수 있는 것으로 보였다. 실제로 내가 독립문 바위와 방아섬에 다녀오는 동안 많은 노인과 어린이들이 이곳을 찾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입구에서 조금 걸으면 독립문 바위와 방아섬을 가는 갈림길이 나오는데, 나는 어디를 먼저 갈지 망설이다가 독립문 바위에 먼저 가기로 결정했다. 방아섬까지가 1.1킬로미터로 독립문 바위까지 가는 거리인 0.4킬로미터보다 더 길었기 때문에 쉬운 곳부터 먼저 가보자는 생각에서 내린 결정이었다. 혹시 길이 험해서 한 곳만 다녀와야 할 경우까지 대비하자는 마음도 결정에 한몫했다.

 

 

독립문 바위까지 가는 길은 굴곡이 거의 없는 평이한 길이었다. 그런데 끝 부분에 도착하자 당황스런 상황이 발생했다. 주위에 울타리가 쳐져 있고, 앞으로도 옆으로도 가면 안 된다는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그렇다면 독립문 바위는 도대체 어디 있다는 걸까? 사방을 주의 깊게 살피다가 진행 방향으로 봐서 좌측 바다에 굴이 뚫린 바위가 어렴풋이 보였다. 그 바위가 바로 독립문 바위라는 판단이 들었다. 그 바위가 보이는 위치까지 내려가는 길이 좀 가파르긴 했는데, 사람들이 많이 다닌 흔적이 보여 쉽게 내려갈 수 있었다. 독립문 바위가 보이는 위치에서 사진을 찍고 올라왔다. 더 내려가면 더 확실히 볼 수 있을 것으로 보였지만, 거기는 좀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방아섬으로 가기 위해 다시 갈림길이 있는 입구로 걸어가고 있는데, 한 무리의 할머니(아줌마?)들이 걸어오는 게 보였다. 앞에 선 할머니가 ‘독립문 바위가 멀었느냐?’고 나에게 물어보자 ‘그렇다’고 대답하고는 ‘독립문 바위를 보려면 왼편 좀 가파른 길로 내려가야 한다.’고 일러주었다. 아까 나와 똑같은 상황에 처할 것이라는 염려가 들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그 일행들을 선착장에서 만났는데, 내가 조언을 해주지 않았더라면 독립문 바위를 보지 못했을 뻔했다면서 ‘고맙다’고 인사했다. 기껏 독립문 바위를 보러 갔는데, 보지 못하고 돌아서야 했다면 얼마나 실망이 컸겠는가. 갈림길에 오니 할아버지 두 분이 서서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아까 지나쳤던 할머니들과 일행인데, ‘그 까짓 것 보러 거기까지 갈 필요가 있느냐’면서 할머니들만 보낸 것으로 짐작되었다. 역시 할아버지보다는 할머니들이 용감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방아섬으로 갈 차례였다. 시간을 보니 4시. 서두른다면 충분히 배 시간에 맞춰 갈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되었다. 방아섬을 가는 길은 독립문 바위로 가는 길보다는 약간 굴곡이 더 있긴 했지만, 그리 힘들 정도는 아니었다. 중간쯤 걸었을 때 또 앞에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배 위에서 또 벼락 바위에서 만났던 송이었다. 잘 다녀오라는 격려의 말을 송으로부터 듣고 부지런히 걷다 보니 앞에 울타리가 쳐져 있고, 더 이상 가지 말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는 지점에 이르렀다. 썰물에는 방아섬으로 건너갈 수 있다던데 그럼 어디로 건너가야 한다는 걸까? 별 소용이 없는 걱정을 하면서 사진을 몇 장 찍고 돌아 나왔다. 돌아 나오는 동안 할머니와 할아버지, 그리고 어린이를 포함한 가족 등 여러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을 보면서 오늘 배를 타려면 서둘러야 할 텐데 하는 걱정하는 마음이 들었다.

 

 

주차장이 있는 입구까지 나온 다음 바닷가 쪽으로 난 산책길이 있어 그 길로 들어섰다. 주민들을 위한 시설이라고 되어 있었지만, 지도를 보니 관매해수욕장을 따라 형성된 소나무 숲 속에 만들어진 길이었다. 주민들을 위한 산책길이라서 그런지 길이 아주 잘 조성되어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소나무 숲을 구경하고 싶었는데, 소나무 숲길을 걷게 되었으니 이런 행운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2킬로미터에 이르는 소나무 숲길이 끝난 지점에 캠핑장이 있었고, 건너편에 선착장이 보였다. 오늘 아침에 물 두 통을 챙기고,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면서 다 마신 물통에 다시 물을 채웠지만, 그 물까지 다 마시고 나니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갈증이 심했다. 관매도에는 편의점도 없다고 들었고, 아까 점심식사를 했던 식당까지 갔다 오면 안 될 것 같아 걱정했는데, 다행히 선착장 바로 옆에 관매도 특산품판매장이 있고, 거기서 음료수를 판다는 안내판이 보였다. 얼른 들어가서 물 한 병과 맥주 한 캔을 사서 맥주는 그 자리에서 다 마시고, 물은 배를 타고 가면서 마시기 위해 따로 챙겼다.

 

 

선착장에 도착하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 무리의 팀이 그늘에 앉아 있었는데, 리더로 보이는 사람이 앞에서 얘기를 하고 있었다. 얘기를 들어보니 섬 여행 전문가가 운영하는 카페나 밴드에서 관매도에 왔다가 여행을 끝내고 가는 것으로 짐작됐다. 나도 제주 속살 트레킹 여행 밴드를 운영하면서 제주도와 몽골 여행을 리드하고 있으니, 그 여행 팀에 관심이 갔다. 그들은 진도항에 내려서도 서로 인사하면서 헤어졌다. 배표를 사려고 대합실에 들어갔더니,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간판을 보니 우편물 취급하는 사람이 배표도 파는 것 같았는데, 퇴근 시간이 지났는지 창구 문이 닫혀 있고 매표원도 보이지 않았다.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어느새 송이 다가와 배표는 승선해서 구입하면 된다고 말해 주었다. 대부분 미리 왔는지 배표를 갖고 있었고, 배표를 사지 못한 몇 사람은 승선해서 선원에게 표를 구매했다. 요즘은 카드 단말기가 있어 배 위에서 카드로 표를 살 수 있으니 참 좋은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도항으로 향하는 배 안에서도 나는 3층에 자리 잡고 앉았다. 아침에 올 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3층으로 올라왔다. 모두 아침의 설레던 마음이 어느 정도 가라앉았는지 차분한 표정으로 사진을 찍으며 바다 풍경을 감상했다. 새우깡을 달라고 하는지 갈매기 몇 마리가 배를 따라 왔지만, 모두 무심한 표정이었다. 배가 조도를 지날 때쯤 해가 지기 시작했다. 저녁에 진도항으로 와서 태워주기로 한 살아보기 멤버가 석양이 참 좋더라고 하더니 그 말이 이해가 됐다. 구름이 약간 끼어 있긴 했지만, 바다 위와 섬 사이로 보이는 석양이 몽환적인 풍경을 만들어냈다. 세방낙조 석양이 예쁘다고 하지만, 배 위에서 바라보는 석양도 그에 못지않게 아름다웠다. 송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보니 어느새 배가 진도항에 도착했다. 가끔 연락하고, 다음에 인연이 되면 다시 만나자는 인사를 끝으로 송과 헤어진 다음 배에서 내렸다. 배에서 내리니 앞에 읍내 버스가 서 있는 게 보였다. 아마도 이 배에서 내리는 승객을 태우고 진도읍으로 가려는 버스 같았다. 그 버스를 타고 읍내에 가더라도, 읍내에서 숙소로 들어가는 버스가 없으니 그 버스를 탈 수가 없었다. 그런 어려움을 이해하고 우리 살아보기 멤버가 일부러 나와서 숙소까지 태워주니 고맙기 그지 없었다.

 

 

이번에 관매도를 다 둘러보는 등 예상 외로 여행을 잘 마칠 수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 관매도를 다시 둘러볼 핑계거리는 남아 있다. 지금은 가을이지만, 4월 유채꽃이 필 때 관매도를 보면 지금보다 훨씬 더 예쁘다고 한다. 또 관매 8경 중에서 오늘처럼 걸어서 볼 수 있는 것은 여섯 곳(하늘바위, 벼락바위, 다리여, 돌묘와 꽁돌, 방아섬, 관매도해수욕장)이고, 나머지 두 곳(할미중드랭이굴, 서들바굴 폭포)은 선박을 타야만 볼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유람선은 여름 성수기 때만 운항한다고 하니, 기회가 되면 유람선도 한 번 타봐야겠다. 꼭 할미중드랭이굴과 서들바굴 폭포를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배를 타고 관매도를 돌아보는 것도 나름 좋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늘 관매도 여행은 기억이 오래 남을 여행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 소개-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초록

2026. 11. 2. 07:00 | Posted by 행복 기술자

김태훈,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초록,” 남해의봄날, 2026년

 

‘이시돌 목장’

 

고향이 제주인 제가 자라면서 많이 들었던 곳이다. 내가 천주교인이라서 이시돌 목장에 대해 더 많이 들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어렸을 적에 들었던 기억으로는 이시돌 목장은 외국 신부님이 와서 만든 곳, 돼지를 키우는 곳이었습니다. 또 이시돌 목장에서 운영하는 이시돌의원은 외국에서 들어온 좋은 약을 많이 구비하고 있어서 병이 빨리 낫고, 약값을 비롯한 진료비도 싸다는 것이었다. 최근에는 피정의 집, 요양원 등 다른 용도의 시설들도 많이 들어와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젊은이들 사이에 유명한 ‘우유부단’이라는 명소도 있다고 하여 나도 몇 번 들른 적이 있다. 최근 방문 때는 일부러 성이시돌센터와 ‘새미은총의 동산’도 둘러보았다. 이 책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초록>은 센터 전시관에서 이시돌 목장의 설립자 임피제 신부님에 관한 책이라는 소개를 보고 읽게 되었다.

 

나는 단순히 이시돌 목장이 외국에서 원조를 끌어와 쉽게 만들고, 현재도 잘 운영되고 있다고 막연하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일고 나서 임 신부님이 이시돌 목장을 만들면서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어떤 마음으로 이시돌 목장은 물론 한림수직, 이시돌의원 등을 만들었는지 알 수 있었다. 지금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제주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부러워한다. 하지만 과거에는 제주도에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지 잘 알지 못한다. 나는 ‘과거 제주도는 한국의 식민지였다.’고 주장한다. 그만큼 핍박을 받았고, 살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임 신부님의 고국인 아일랜드와 제주도가 비슷한 처지여서, 임 신부님이 더 제주도에 애착을 갖고 도우려고 하지 않았을까 추측하고 있다. 나도 그 의견에 동의한다. 그런 마음이었기에 임 신부님이 다른 선교사들과 달리 복음 자체보다는 제주 주민들의 빈곤을 개선하는 데 집중했을 것이다. 그는 한림수직에 이어 이시돌 목장을 통해 수천 명의 제주 사람들이 경제 기반을 마련했다.

 

이시돌 목장은 새로운 시대를 맞아 과거만큼 번창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임 신부님의 설립 취지를 살려, 제주 도민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여러 사업을 새롭게 시작하고 있다. 그 중의 한 가지가 바로 요양원과 호스피스 사업이다. 또 이런 복지 사업들을 뒷받침하기 위해 종마 육성 사업, 우유부단 등 6차 산업 등을 시도하고 있다. 이런 사업들이 잘 정착해서 임 신부님의 유지가 잘 실현되길 바라본다. 다음 번 제주에 가서 이시돌 목장을 둘러보면 다른 눈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시돌 목장의 모든 곳에서 임 신부님의 따스한 마음이 느껴질 것이기 때문이다.

 

'좋은 책 소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 소개-어떻게 죽을 것인가  (0) 2026.10.26
책 소개-이향인  (0) 2026.10.19
책 소개-윤회는 없다  (0) 2026.10.12
책 소개-그래도 여행은 하고 싶어  (0) 2026.10.05
책 소개-로스트 킹덤  (0) 2026.09.28
크게보기

네덜란드 섬유 무역회사 텍스타폼의 중국 법인 정경현 지사장이 올 8월 열린 나미비아 사막 마라톤 250km에 출전해 달리고 있다. 정경현 지사장 제공

 

“달리면 심장이 뜨거워지잖아요. 그런데 달리다가 김구 선생, 윤봉길 의사, 안창호 선생을 떠올리면 심장이 한 번 더 뜨거워집니다. 심장이 두 번 뜨거워지는 경험이죠.”

네덜란드 섬유 무역회사 텍스타폼의 중국 법인 정경현 지사장(53)은 매주 목요일 오전 6시 상하이 지하철 신톈디(新天地) 역 6번 출구에서 달린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를 출발해 프랑스 조계지의 좁은 골목을 누비며 독립운동 유적지를 돌아보는 ‘NCR(Nongho City Run)’이다. ‘농호(侬好·농하오)’는 중국어 인사말 ‘니하오’의 상하이 사투리다. 그는 “우리가 찾아가지 않으면 잊힐 수 있는 길을 계속 달려서 기억하자는 뜻에서 ‘런 투 리멤버(Run to Remember)’라고 부른다”고 했다.

정 지사장은 12년 전 서울 사무소가 중국과 통합되면서 상하이로 옮겼다. 그가 사는 집이 임시정부 청사에서 200∼300m 거리다. 매일 그 주변을 달리다 보니 임시정부만 있는 게 아니었다. 김구 선생이 살던 집, 독립운동가 수백 명이 모여 사진을 찍은 푸싱(復興) 공원,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이라는 국호가 처음 정해진 임시정부 탄생지(청사에서 약 2km 떨어진 곳에 푯말), 도산 안창호 선생이 미주 교포들의 헌금으로 태극기를 걸고 청사를 꾸렸던 터가 있다. 윤봉길 의사가 상하이에 와서 첫날밤을 보낸 아파트, 의거 당일 아침 김구 선생과 마지막 식사를 한 집, 선서문을 목에 걸고 권총과 수류탄을 든 채 사진을 찍은 장소도 남아 있다.

크게보기

정경현 지사장(오른쪽)이 중국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유적지 앞에서 함께 달리던 NCR팀원들과 포즈를 취했다. 그는 지난해 6월부터 김구 선생, 윤봉길 의사, 안창호 선생 등이 활동했던 독립 유적지를 달리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정경현 지사장 제공.

 

지난해 6월 25일 시작한 NCR은 매주 목요일 정기 모임과 주말 비정기 모임으로 운영된다. 상하이 교민뿐 아니라 여행객도 신청하면 함께 달릴 수 있다. 달리기 주제는 매번 바뀐다. 주제에 따라 5~12km를 달린다. 임시정부의 시작과 끝을 따라가기도 하고, 윤봉길 의사의 마지막 여정을 잇는 ‘매헌(梅軒) 로드’를 달리기도 한다. “저는 앞으로 시계 쓸 일이 한 시간밖에 없으니 선생님 시계와 바꿉시다”라며 김구 선생과 시계를 바꾼 윤 의사가 택시를 타고 훙커우(虹口) 공원으로 향하고, 의거 뒤 끌려간 자리까지 이어지는 코스다.
“고층 빌딩 사이에 아직 사람이 사는 100년 전 집들이 남아 있고, 그 골목을 달리면 그때로 시간 여행을 떠나는 느낌입니다. 이 길이 잊히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정 지사장은 40세 무렵부터 달렸다. 아버지는 그가 초등학교 1학년 때 40세가 되기 전에 세상을 떠났고, 할아버지도 40대에 돌아가셨다. “제가 아버지가 돌아가신 나이가 됐을 때 딸이 딱 그때의 제 나이, 초등학교 저학년이었어요. 덜컥 겁이 났습니다. 아이들에게 아버지와 함께하는 시간을 오래 주고 싶었어요. 뭔가 해야 하는데 할 수 있는 게 달리기밖에 없었죠.”

 
크게보기

정경현 지사장(오른쪽에서 세 번째)이 함께 달리던 러너들과 포즈를 취했다. 정경현 지사장 제공매일 달렸다. 처음엔 2, 3km가 고작이었다. 조금씩 거리를 늘려갔다. 달린 지 2년 만에 처음 마라톤 42.195km 풀코스를 완주했다. 기록은 약 5시간 30분. 힘들었지만 해냈다는 자신감이 불끈 솟았다. 90kg이던 체중은 6개월 만에 10kg이 빠졌다. 너무 열심히 한 탓에 왼쪽 장경인대 부상이 와서 6개월을 쉬기도 했다. 더 큰 고비는 심장이었다. 아버지가 심장병을 앓았는데, 그 역시 건강검진에서 비슷한 소견이 있다는 경고를 받았다. 어쩔 수 없이 약 2년을 달리지 못했다. 그러자 체중이 다시 불었다. 그는 “어차피 위험하다면 달려서 건강해지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다시 달리면서 체력의 한계를 느꼈다. 그래서 웨이트트레이닝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2017, 2018년엔 일주일에 4번씩 근육 운동을 해서 2019년엔 보디빌딩 대회에도 나갔고, ‘보디 프로필’도 세 번 찍었다. “근육이 자리를 잡고 나서 달리니까 훨씬 편하고 좋아졌어요. 그 뒤로는 장경인대 부상도 다시 오지 않았습니다.”

크게보기

정경현 지사장이 웨이트트레이닝으로 몸을 만든 뒤 찍은 보디 프로필. 정경현 지사장 제공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면서 중국은 한 마디로 완전히 폐쇄됐다. 한국으로 출국은 물론 상하이 옆 도시로도 이동이 불가능했다. 그는 “그땐 정말 운동만 했다”고 회상했다. 체육관이 모두 문을 닫자 같은 동네에 사는 외국인 친구들과 공간만 있으면 할 수 있는 달리기와 맨몸 크로스핏(Cross Fit)을 시작했다. 그렇게 2020년 2월 다국적 운동 모임 ‘GCS(Growth Club Shanghai)’가 만들어졌다. 회원은 20대부터 40대까지이고, 그가 가장 나이가 많다. 몇 년간 리더를 맡다가 지금은 다른 회원에게 넘겨주고 자문 역할을 하고 있다.

정 지사장은 달리기를 “일반인이 목표를 세우고 성취감을 가장 쉽게 얻을 수 있는 운동”이라고 했다. “오늘 5km를 달렸으면 다음 달엔 10km를 뛰어보자, 이런 식으로 시간이든 거리든 목표를 정해서 이루는 거죠. 남과 경쟁할 필요도 없어요.” 그는 GCS의 젊은 회원 중 10km를 겁내는 이들을 데리고 함께 뛰어주곤 한다. “한 번 심리적 장벽을 넘으면 그다음부턴 쭉쭉 성장해요. 이제는 저한테 트레일러닝 100km를 같이 나가자는 친구도 있습니다.”

정경현 지사장이 제주 트레일에 출전해 즐겁게 달리고 있다. 정경현 지사장 제공

 

지금 그의 운동 루틴은 이렇다. 일주일에 최소 5일 달리고 한 달에 200∼250km를 달린다. 평일엔 5km나 10km, 주말엔 20km를 달린다. 새벽과 저녁, 번갈아 훈련한다. 편도 11km인 사무실까지 자전거로 출퇴근하는데 한 번에 50분쯤 걸린다. “달리기 거리만 계속 늘리니까 몸에 무리가 오는 것 같아서 자전거로 보충하고 있다”고 했다. 웨이트트레이닝은 요즘 일주일에 한 번 정도로 줄이고 근육 유지에 집중하면서 요가를 하고 있다. “몸을 잘 풀어줘야 더 잘 달릴 수 있다. 보조 운동으로는 요가가 최고”라고 설명했다.

자전거 출퇴근 덕분에 올해 5월엔 처음으로 철인3종 하프코스(수영 1.9km, 사이클 90km, 마라톤 21.0975km)를 완주했다. “다들 첫 대회를 하프로 하느냐고 말렸는데, 말릴 만하더라고요. 수영은 제한 시간 70분인데 1시간 5분, 거의 꼴찌로 나왔어요. 그 뒤의 사이클과 마라톤은 선물처럼 즐겼습니다.”

정경현 지사장이 한 트레일러닝 대회에 출전해 산을 오르고 있다. 정경현 지사장 제공

 

정 지사장은 지금까지 마라톤 풀코스를 10회 완주했다. 최고 기록은 지난해 3월 서울마라톤 겸 동아마라톤에서 기록한 3시간 46분 49초다. 트레일러닝 100km 9회와 160km 1회도 완주했다. 6일간 250km를 달리는 사막 마라톤도 두 차례(2024년 고비, 2026년 나미비아) 뛰었다. 건강을 위해 달린 그는 어느 순간 ‘철인’이 돼 있었다.

사막 마라톤은 2021년 중국에서 대회장으로 가는 기차 옆자리 승객에게서 처음 들었다. “외부 도움 없이 모든 걸 짊어지고 사막 안에서만 생활하며 달린다는 게 너무 해보고 싶었어요.” 2024년 고비사막 마라톤에 나가 발톱 두 개를 사막에 묻고 완주했다. 그 기세로 2024년 10월 트랜스 제주 100km(약 22시간)와 서울 100K를 2주 사이에 연달아 완주했다.

사막은 만만치 않았다. 아침 출발 땐 기온이 10도 밑으로 떨어지다가 낮 12시 무렵엔 40도를 넘는다. 하루는 50도까지 올라 탈진하는 참가자가 속출했다. 모래언덕(듄)에선 발이 푹푹 빠지고 물집이 잡혔다. 올 8월 아프리카 나미비아 사막을 다녀왔고, 그 힘으로 10월 초 열린 트랜스 제주 100마일(약 160km)을 35시간 만에 완주했다. 지난해 실패한 100마일을 올핸 완주한 것이다.

크게보기

정경현 지사장이 올 8월 나미비아 사막 마라톤에 출전해 모래 언덕을 오르고 있다. 정경현 지사장 제공

 

실패도 많았다. 지난해 세계 트레일러닝의 ‘꿈의 무대’인 UTMB(울트라트레일몽블랑)의 CCC(100km) 부문에 나섰다가 60km 지점에서 컷오프를 당했다. 그는 UTMB 출전 자격 포인트인 ‘러닝 스톤’을 모으며 몽블랑 ‘리벤지 레이스’를 준비하고 있다. 또 하나의 꿈은 칠레 아타카마 사막 마라톤이다. “다녀온 사람들이 다 끝판왕이라고 하더라고요. 남극 마라톤은 마지막 순위로 두고 있습니다.”

정 지사장은 “트레일러닝의 매력은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주중엔 사무실 일이 정말 바쁘고, 중국에서 일하다 보니 스트레스도 많아요. 산속에서 12시간, 24시간 집중하지 않으면 다치니까 오롯이 나에게만 집중하게 됩니다.” 그래서 대회 땐 사진도 잘 찍지 않고, 나미비아에선 아예 휴대전화를 두고 달렸다.

“제게 달리기는 정말 절박했어요. 안 하면 죽을 수도 있었죠. 지금은 도전 그 자체가 즐겁습니다. 그리고 독립 투사들이 활동했던 곳을 달리며 뜨거워지는 심장 박동 소리에 매번 감격합니다. 함께 달리고 있는 NCR 회원들에게 정말 감사합니다.”

크게보기

정경현 지사장(맨 앞)이 GCS 회원들과 함께 중국 상하이 시내를 달리고 있다. 정경현 지사장 제공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동아일보 2026년 10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