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랑길은 해남 땅끝마을에서 출발해 바닷길을 타고 올라오다가 진도에서 6코스부터 12코스까지 한 바퀴 돌고, 해남으로 다시 올라가 서해안을 타고 가도록 되어 있다. 오늘은 해남 5코스가 끝나고 진도에서 첫 번째로 시작되는 6코스를 걷기로 했다. 6코스 시작점인 진도대교 쪽으로 가기 위해 길은리 숙소에서 7시 버스를 타고 진도읍내로 나가서 8시 녹진/신기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승객이 별로 없어 정차도 하지 않고 신나게 달리던 버스가 8시 27분 녹진(진도휴게소)에 도착하자 버스에서 내려 진도대교 밑을 지나 진도타워 방향으로 건너갔다. 지난번에 ‘명량대첩 축제’를 보기 위해 이미 한 번 와봤던 곳이었기 때문에 익숙한 곳이었다. 5코스 종점과 6코스 시작점을 알리는 안내판 사진을 찍고 나서 안내 표시를 따라 진도타워로 올라갔다.



가파른 길을 따라 올라가니 땀이 날 법도 한데, 쌀쌀한 날씨 탓에 땀이 나지 않고 오히려 몸이 훈훈해지면서 풀리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이제 아침 기온이 15도 정도로 내려가서 긴팔 옷을 입어야 하고, 추위를 타는 체질이면 겉옷까지 입어야 하게 되었으니 세월이 빠르게 흐르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진도타워에 도착하니 이미 차를 타고 도착한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진도대교를 내려다보며 사진 몇 장을 찍은 다음에 우수영으로 연결되는 케이블카 승강장으로 갔다. 10시부터 운행하는 것으로 나와 있어서 매표소와 승강장은 텅 비어 있었는데, 요금은 우수영에서와 마찬가지로 왕복 15,000원, 편도 13,000원으로 표기되어 있었다.

케이블카 승강장을 나와 진도타워로 올라갔다. 전망대에 가려고 엘리베이터 앞에 서니 7층이 전망대이고, 중간에는 식당과 가게 등이 있는 것으로 표기되어 있었다. 7층에 올라가니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내가 타고 온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기다리고 있고, 전망대 공간은 텅 비어 있었다. 한 바퀴 돌면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어느새 올라왔는지 어떤 부부가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들 옆을 지나는데, 그 부부가 나에게 ‘혼자 왔느냐?’면서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제안했다. 혼자 다니다보니 나를 찍을 수 없어 아쉬웠는데, 잘 됐다 싶어서 얼른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호의를 베푸는 것이긴 하지만 남에게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제안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그 부부에게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도타워를 내려와서 바로 본격적인 걷기를 시작하였다. 올라왔던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가니 내려가는 길이 보였다. 길이 약간 가파르긴 했지만, 비포장 흙길이라 편안하게 내려갈 수 있었다. 흙길이 끝난 곳에 공원이 조성되어 있었는데, 그 뒤로 이어진 포장된 길을 따라 더 가다보니 바닷가 옆에 무궁화동산이라고 쓰인 안내판이 보였다. 여기서부터는 바닷길을 따라 계속 걷는 길이었다. 포장된 길이긴 했지만, 차도 다니지 않는 한적한 길이라 편안하게 걸을 수 있었다. 또 비가 올 듯 찌푸린 날씨에 바람까지 시원하게 불어서 걷기에는 최적의 날씨였다. 한적한 바닷길이고, 건너편에 완도가 있어 잔잔한 바다라서 그런지 양식장이 많았다. 여기는 주로 전복 양식장, 그 중에서 전복 치패 양식장이 많이 보였다.



조금 걷다보니 노랑 코스모스가 만발한 공원이 보였다. 가까이 가서 보니 습지보호구역이라는 표지판이 보이고, 그 옆으로 데크 길이 나 있었다. 데크 길을 따라 조금 걸으니 몇몇 사람들이 데크에서 낚시를 하고 있었고, 썰물 때인지 갯벌이 드러나 있었다. 공원 뒤쪽으로 이어진 데크 길을 따라 걸으니 반대편 출구가 나왔다. 다시 큰길을 따라 걷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긴 장화를 신고 어깨에는 망태기 같은 걸 매고 갯벌 바깥쪽을 따라 걷고 있었다. 그러다가 목표 지점에 도착했는지, 그 사람이 이번에는 바다를 향해 나아갔다. 아마도 이 근방에 사는 어부이거나, 적어도 갯벌에서 오랫동안 작업을 해온 사람으로 보였다.



그 길을 따라 조금 더 걸으니 방파제가 나왔다. 방파제 위로 난 길을 따라 걸어 반대편에 도착하니 서해랑길 안내 표지판이 보였다. 이제까지 6킬로미터를 걸었고, 앞으로 걸을 거리가 9킬로미터 남았다고 표기되어 있었다. 이 때 시각이 10시 40분. 진도타워에서 좀 지체하긴 했지만, 이대로 걸으면 종점인 용장성에서 1시 50분에 회차하는 읍내행 버스를 타는 것은 문제가 없다는 계산이 나왔다. 바닷길을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중간 목표 지점인 벽파항에 도착했다. 벽파마을 입구에 이충무공 벽파진 전첩비라는 안내판이 보였다. 전첩비를 보고 다시 내려와 벽파항 방향으로 걸었다. 벽파항이라고 해서 진도항이나 최소한 쉬미항 정도 규모의 항구로 생각했는데, 터미널도 안 보이고 초라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안내 표지가 안 보여서 잠시 헤매다가 네이버 지도를 보고 길을 찾았다. 갈림길에서는 트레커들이 헷갈리지 않을 정도로 좀 상세한 안내 표지가 있으면 좋으련만. 벽파항에서 바닷길을 따라 만들어진 좁은 길을 따라 걷다보니 끝에 다시 큰길이 나왔다. 큰길을 따라 100미터쯤 나아가니 내륙 방향(우측)으로 길이 이어졌다. 조금 걸으니 시골에는 어울릴 것 같지 않게 제법 크게 지어진 2층 집이 보였다. 그 집 앞을 지나다보니 현관 옆에 성당 마당에서 볼 수 있는 정도 크기의 성모상이 보였다. 그 집이 수도원이나 성당 같지는 않아보였는데, 아마도 신실한 천주교 신자의 집이 아닐까 추측해보았다. 그 집을 지나자 조그만 마을이 나타났고, 마을을 지나 길은 건너편 밭길로 이어졌다.

밭길에서도 방향을 찾지 못해 약간 헤매긴 했지만, 결국 용장성으로 향하는 산길을 찾아냈다. 산길의 첫 부분은 콘크리트 포장길이었지만, 중간 중간 비포장 흙길이 이어지면서 걷기에는 좋았다. 산으로 올라가는 길이라 약간 경사가 있긴 했지만, 나무가 우거진 숲길이고 바람까지 불어서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이때부터 ‘삼별초 호국역사 탐방길’이라는 표지판이 자주 보였다. 아마도 용장성이 삼별초 근거지였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 걸었던 운림산방 옆에 있는 삼별초 호국의 길도 그 근처에 ‘삼별초에서 옹립한 왕인 ’승화후 왕온‘의 묘가 있기 때문에 그런 명칭이 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걷다보니 내리막길이 시작되었다. 포장된 내리막길을 따라 조금 내려가니 멀리 용장성과 그 옆에 있는 용장마을이 보였다. 마침내 오늘의 목표 지점이자 6코스의 종점인 용장성에 도착한 시각이 12시 40분. 녹전에서 출발한지 4시간 40분 정도 걸은 셈이었다. 용장성 입구에 서 있는 동상은 배중손 장군이었다. 그 동상을 지나쳐 용장성으로 향했다. 용장성은 이제 복원을 시작한 것인지 공사가 한창이었다. 휴일이라 공사를 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옆에 포클레인이 세워져 있고, 흙더미들이 쌓여 있었다. 그 옆을 지나쳐 용장사에 들렀다가 배중손 장군상이 있는 곳으로 다시 내려왔다.





과거 역사 교과서를 배울 때 삼별초는 최씨 무신정권의 호위무사(?) 노릇을 하다가 고려 왕조가 몽골에 항복하는 것에 반대한 세력이라고 들었다. 삼별초가 난을 일으킨 이유도, 삼별초의 일부가 몽골과의 전쟁에서 포로로 잡혔던 군인들이었고, 무신 정권의 앞잡이 노릇을 하면서 백성들의 원성을 많이 샀기 때문이라고 배웠다. 그런데 지금은 삼별초가 마치 고려를 지키기 위해 몽골에 저항하는 난을 일으킨 것처럼 주장하는 의견이 나오고 있으니 헷갈린다. 삼별초가 진도에서 패배한 후에 제주도로 갔는데, 그 때문에 제주도민들이 많은 피해를 당했다. 처음 제주도에 도착했을 때는 제주도민들에게 호의적으로 대했지만, 최영 장군이 토벌대를 이끌고 진압하러 오자 제주도민들을 강제 동원하여 성을 쌓고, 실제 전투에서도 제주도민들을 방패막이로 삼아 전쟁이 끝난 다음에 많은 제주도민들이 희생되는 결과를 낳았다. 제주도에서도 그때 쌓은 성을 항몽유적지로 포장하고 있지만, 그게 과연 맞는 표현일까 의아심이 들었다. 자신들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난을 일으켰는데, 그 상대가 우리 국토를 침략한 몽골이다 보니 결과적으로는 호국이라는 의미일까?
용장성을 나와 버스를 타기 위해 용장마을로 향했다. 용장마을로 향하는 길은 다음에 걷게 될 서해랑길 7코스가 지나는 길이라 더 세심하게 살피면서 걸었다. 사과랑 떡 등 간단한 간식을 준비해오긴 했지만, 시장기가 있어서 음식점을 검색해봤더니 안 보였다. 하긴 이런 작은 마을에 식당을 열었다가는 금방 문을 닫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 혹시 아이스크림이나 빵 등을 살 수 있는 마트가 있나 검색해보았다. 다행히 마을 한복판에 마트가 있는 것으로 나왔다. 하지만 마트가 있다는 곳에 가봤더니 문이 굳게 잠겨 있고, 안은 텅텅 비어 있었다. 먹을 걸 살 수 없어 배고픔을 달랠 수 없다는 실망감보다는 조그만 마트도 운영이 안 되는 한국 시골의 실상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마을 밖 큰 길에 있는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니 1시 35분. 여기에는 진도 전체의 버스 안내표뿐만 아니라, 이곳을 지나는 버스의 읍내 출발 시각과 회차 시각이 인쇄된 안내표가 붙어 있었다. 젊은 사람들이야 앱을 통해 쉽게 알 수 있는 정보지만, 스마트폰에 익숙하지 않은 노인들을 배려한 따뜻한 마음이 느껴져 기분이 좋아졌다. 네이버 지도로 버스 시간을 확인해 보니 이곳을 지나 벽파항쪽으로 가는 버스가 5분 후에 지난다는 안내가 떴다. 여기서 기다렸다가 회차해서 돌아오는 버스를 반대편에서 타도되겠지만, 그냥 벽파항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갔다가 돌아오자고 생각하고 정류장 밖에 서있었다. 멀리 버스가 오는 걸 보고 서 있는데, 여기 설 듯 하던 버스가 그냥 가버렸다. 손을 들고 확실한 의사 표시를 했어야 했나 생각하면서, 떠나가는 버스 뒤꽁무니를 쳐다보다가 정류장 안으로 다시 들어왔다. 정류장에 놓인 의자에 앉아 책을 읽으면서 20분쯤 기다리니 그 버스가 왔다. 버스에 탄 승객은 달랑 나 혼자. 2시 12분에 읍내 버스 터미널에 도착해서 다시 책을 읽다가 3시 출발 숙소인 길은행 버스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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