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니 5시. 어제 10시 반에 잤는데도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아마도 오늘 내가 어릴 적에 6년 동안(5살부터 11살까지) 살았던 탑립리와 그때 다녔던 죽림국민(초등)학교가 있었던 죽림리를 둘러보기로 해서 가슴이 설렜기 때문에 아침 일찍 일어나게 됐을 것이다. 아직 밖은 캄캄했는데, 지난번과 같이 밖에서 할머니(?)들끼리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창문으로 밖을 보니 사람은 보이지 않았지만, 멀리서 들리던 소리가 가까이도 들리는 걸 보니 운동장을 돌면서 운동을 하는 것으로 짐작됐다. 이왕 일어난 김에 사과를 먹고, 유산균을 걸러서 먹고, 스트레칭도 했다. 일찍 일어나니 여유 있게 준비할 수 있어서 좋았다.
간식으로 먹을 사과랑 포도를 싸고, 씻은 다음에 옷까지 다 차려 입었는데도 시간이 남았다. 덖음차까지 타서 먹으면서 여유를 부리다가 6시 40분경에 숙소를 나섰다. 다른 때와 달리 오늘은 마을 분들이 네 분이나 같이 버스를 기다렸다. 대화를 들어보니 오늘 장날이라 나가는 분, 치과 치료하러 나가는 분, 공공 근로 일을 나가는 분 등 용무가 다양했다. 전에는 7시 전에 오던 버스가 오늘은 7시 10분이 되어서야 도착했다. 버스도 이미 많은 승객들로 가득 차서 나는 그냥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다음 정거장에서 많은 사람이 타는 바람에 서 있는 승객이 더 많아졌다. 도저히 서 있기 곤란한 것으로 보이는 노인들이 탔지만, 모두 자리에 앉을 수가 없었다. 일부 노인들은 바닥에 쭈그려 앉았다. 아마 오늘 오일장 날이라 그런 것 같았다. 진도읍 오일장 날자는 2일과 7일이라고 했다.
오일장은 읍내 터미널 가기 두 정류장 전에 열린 것으로 보였는데, 벌써 사람들이 많이 모인 게 보였다. 그곳에서 대부분의 승객들이 내렸다. 보통 버스가 7시 20분 이전에 도착하는데 오늘은 사람들이 많이 타고 오느라 7시 28분에야 비로소 터미널에 도착했다. 승객이 많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승객이 몸이 불편한 노인들이라 타고 내리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기 때문이었다. 운전기사도 버스가 멈추기 전에 일어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고, 승차한 노인이 자리에 앉기 전에는 출발하지 않았다. 안전이 최우선이니까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됐다. 죽림/탑립으로 가는 첫 버스는 6시 40분에 이미 떠났고, 다음 버스는 8시 50분에 출발할 예정인 것으로 나와 있었다. 1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했는데, 그럴 줄 알았더라면 오일장이나 구경하다 올 걸 하면서 후회했다. 하지만 다시 가기도 그렇고 해서 이따 오늘 일정이 끝나고 돌아오면 어차피 또 버스를 기다려야 하니까 그때 구경하기로 했다. 다음에 탑립/죽림 가는 버스를 타게 되면 길은리에서 8시 20분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는 시간에 책을 읽다가 8시 50분에 버스를 탔다. 버스가 매정 정류장에 이르자 낯익은 승객이 버스에 탔다. 지난번 진도항에 가는 버스를 탔을 때도 두 번 모두 매정 정류장에서 탔던 승객이었다. 비교적 젊은 측에 속했는데, 공짜 버스라서 심심해서 타는 건가 궁금했다.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 버스가 임회면사무소 소재지인 십일시(석교) 정류장에 도착했는데, 그 승객이 거기서 내렸다. 다른 버스를 갈아타려고 하나? 아니면 그 승객도 나를 자꾸 보니까 멋쩍어서 내렸나?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다 보니 버스는 9시 40분에 종점인 헌복동에 도착했다. 내가 12시 50분에 이 종점에서 회차 하는 다음 버스를 타야 하니까 3시간의 여유가 있는 셈이었다.




3시간이면 만족스럽게 원하는 곳들을 둘러볼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아니었다. 그래서 일단 우선순위를 폐교된 죽림초등학교와 탑립리로 정했다. 또 가능하면 서해랑길 8코스의 탑립리와 죽림리 코스를 포함하기로 했다. 8코스 전체를 걸으려면 대략 7시간이 소요되는데, 그 중 일부를 오늘 미리 걸으면 나머지 걸어야 할 부담이 줄어들기 때문이었다. 출발은 버스 종점인 헌복동에서 시작했다. 항구에 가서 사진을 몇 장 찍고, 죽림리 쪽으로 이동했다. 죽림리 해안가 동네는 나중에 8코스를 걸으면서 보기로 하고 바로 폐교된 죽림초등학교를 찾았다. 어릴 때 기억과 몇 십 년 전 찾아왔을 때의 기억으로는 정확한 위치를 알지 못했으나, 인터넷을 통해 정확한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다행히 그 위치는 탑립리로 넘어가는 중간 위치에 있었다.


죽림초등학교는 내가 생각했던 규모보다 훨씬 적었다. 교실도 몇 개 되지 않고, 단층으로 네 개 정도 되는 것으로 짐작되었다. 교무실을 빼면 세 개 교실. 그러니까 죽림초등학교는 요즘 말하자면 분교였던 것으로 보였다. 실제로 죽림초등학교는 1926년 석교초등학교 간이학교로 개교하였고, 1949년 독자적인 초등학교로 되었다가, 1999년 다시 석교초등학교 죽림분교로 되었고, 2012년 폐교된 것으로 나왔다. 그러니까 내가 죽림초등학교에 다녔던 1960년대에는 독립적인 학교였었지만 그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되었다. 아무튼 내가 다녔던 죽림초등학교는 미술관으로 변신해 있었다. 운동장이라고도 하기엔 너무 좁은 공간에 조각품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교실들도 작업실과 다른 용도로 바뀐 것으로 보였다. 과거의 흔적을 찾기 위해 학교를 한 바퀴 돌고 나와 탑립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탑립리로 가는 길은 약간 높은 고갯길을 넘어야 했는데, 아마 그 길을 따라 등교를 했었던 것으로 어렴풋이 기억되었다. 당시에는 비포장이었는데, 지금은 차가 달리는 포장도로로 바뀌었다. 완전히 고갯길 정상에 오르기 전에 탑립리 동네로 빠지는 길이 나왔다. 그 길도 어렴풋이 기억이 났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하교해서 돌아오다가 그 고갯길에서 넘어져서 턱 밑이 깨져 피가 났었던 기억이 났다. 그때는 동네도 크고 가구 수도 많았었던 같았는데, 지금 보니 몇 가구가 없어서 실망스러웠다. 탑립리는 동네 위쪽에 탑이 세워져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죽림리와 같이 불리면서 ‘탐림리’로 잘못 부르는 경우가 가끔 있는 것으로 보였다. 동네에서 바닷가도 상당히 멀었었던 것 같은데, 실제로 가 보니 별로 멀지 않았다. 그래도 땡볕에 바닷가까지 내려갔다가 올라오느라고 힘을 많이 빼서 남도국악원 쪽으로 걸어오는 게 힘이 들었다.




시계를 보니 어느덧 11시 30분이 넘어가고 있었다. 원래는 일찍 남도국악원 있는 동네로 가서 바닷가에서 점심식사를 하려고 계획했는데, 마음에 두었던 섬바라기 식당에 도착해 검색해보니 바로 걸어가야 남도국악원 앞 버스 정류장에서 겨우 버스를 탈 수 있는 것으로 나왔다. 하는 수 없이 점심도 거른 채 오르막길을 부지런히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그나마 준비해 간 사과와 포도 그리고 치즈 등 간식을 먹으면서 허기진 배를 달랬다. 버스 종점에서 출발할 때부터 시간이 충분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무더위에 제대로 먹지도 못한 채 허겁지겁 다니느라 몸도 마음도 지쳤다. 내가 너무 욕심을 부리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앞으로는 좀 더 여유롭게 움직이도록 마음을 조금은 비워야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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