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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로서 살아온 30여 년의 세월과 더불어 인생 후반기를 맞아 행복을 추구하는 기술자의 변신 스토리입니다. --------- 기술 자문(건설 소재, 재활용), 강연 및 글(칼럼, 기고문) 요청은 010-6358-0057 또는 tiger_ceo@naver.com으로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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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랑길은 해남 땅끝마을에서 출발해 바닷길을 타고 올라오다가 진도에서 6코스부터 12코스까지 한 바퀴 돌고, 해남으로 다시 올라가 서해안을 타고 가도록 되어 있다. 오늘은 해남 5코스가 끝나고 진도에서 첫 번째로 시작되는 6코스를 걷기로 했다. 6코스 시작점인 진도대교 쪽으로 가기 위해 길은리 숙소에서 7시 버스를 타고 진도읍내로 나가서 8시 녹진/신기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승객이 별로 없어 정차도 하지 않고 신나게 달리던 버스가 8시 27분 녹진(진도휴게소)에 도착하자 버스에서 내려 진도대교 밑을 지나 진도타워 방향으로 건너갔다. 지난번에 ‘명량대첩 축제’를 보기 위해 이미 한 번 와봤던 곳이었기 때문에 익숙한 곳이었다. 5코스 종점과 6코스 시작점을 알리는 안내판 사진을 찍고 나서 안내 표시를 따라 진도타워로 올라갔다.

 

 

가파른 길을 따라 올라가니 땀이 날 법도 한데, 쌀쌀한 날씨 탓에 땀이 나지 않고 오히려 몸이 훈훈해지면서 풀리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이제 아침 기온이 15도 정도로 내려가서 긴팔 옷을 입어야 하고, 추위를 타는 체질이면 겉옷까지 입어야 하게 되었으니 세월이 빠르게 흐르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진도타워에 도착하니 이미 차를 타고 도착한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진도대교를 내려다보며 사진 몇 장을 찍은 다음에 우수영으로 연결되는 케이블카 승강장으로 갔다. 10시부터 운행하는 것으로 나와 있어서 매표소와 승강장은 텅 비어 있었는데, 요금은 우수영에서와 마찬가지로 왕복 15,000원, 편도 13,000원으로 표기되어 있었다.

 

 

케이블카 승강장을 나와 진도타워로 올라갔다. 전망대에 가려고 엘리베이터 앞에 서니 7층이 전망대이고, 중간에는 식당과 가게 등이 있는 것으로 표기되어 있었다. 7층에 올라가니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내가 타고 온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기다리고 있고, 전망대 공간은 텅 비어 있었다. 한 바퀴 돌면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어느새 올라왔는지 어떤 부부가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들 옆을 지나는데, 그 부부가 나에게 ‘혼자 왔느냐?’면서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제안했다. 혼자 다니다보니 나를 찍을 수 없어 아쉬웠는데, 잘 됐다 싶어서 얼른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호의를 베푸는 것이긴 하지만 남에게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제안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그 부부에게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도타워를 내려와서 바로 본격적인 걷기를 시작하였다. 올라왔던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가니 내려가는 길이 보였다. 길이 약간 가파르긴 했지만, 비포장 흙길이라 편안하게 내려갈 수 있었다. 흙길이 끝난 곳에 공원이 조성되어 있었는데, 그 뒤로 이어진 포장된 길을 따라 더 가다보니 바닷가 옆에 무궁화동산이라고 쓰인 안내판이 보였다. 여기서부터는 바닷길을 따라 계속 걷는 길이었다. 포장된 길이긴 했지만, 차도 다니지 않는 한적한 길이라 편안하게 걸을 수 있었다. 또 비가 올 듯 찌푸린 날씨에 바람까지 시원하게 불어서 걷기에는 최적의 날씨였다. 한적한 바닷길이고, 건너편에 완도가 있어 잔잔한 바다라서 그런지 양식장이 많았다. 여기는 주로 전복 양식장, 그 중에서 전복 치패 양식장이 많이 보였다.

 

 

조금 걷다보니 노랑 코스모스가 만발한 공원이 보였다. 가까이 가서 보니 습지보호구역이라는 표지판이 보이고, 그 옆으로 데크 길이 나 있었다. 데크 길을 따라 조금 걸으니 몇몇 사람들이 데크에서 낚시를 하고 있었고, 썰물 때인지 갯벌이 드러나 있었다. 공원 뒤쪽으로 이어진 데크 길을 따라 걸으니 반대편 출구가 나왔다. 다시 큰길을 따라 걷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긴 장화를 신고 어깨에는 망태기 같은 걸 매고 갯벌 바깥쪽을 따라 걷고 있었다. 그러다가 목표 지점에 도착했는지, 그 사람이 이번에는 바다를 향해 나아갔다. 아마도 이 근방에 사는 어부이거나, 적어도 갯벌에서 오랫동안 작업을 해온 사람으로 보였다.

 

 

그 길을 따라 조금 더 걸으니 방파제가 나왔다. 방파제 위로 난 길을 따라 걸어 반대편에 도착하니 서해랑길 안내 표지판이 보였다. 이제까지 6킬로미터를 걸었고, 앞으로 걸을 거리가 9킬로미터 남았다고 표기되어 있었다. 이 때 시각이 10시 40분. 진도타워에서 좀 지체하긴 했지만, 이대로 걸으면 종점인 용장성에서 1시 50분에 회차하는 읍내행 버스를 타는 것은 문제가 없다는 계산이 나왔다. 바닷길을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중간 목표 지점인 벽파항에 도착했다. 벽파마을 입구에 이충무공 벽파진 전첩비라는 안내판이 보였다. 전첩비를 보고 다시 내려와 벽파항 방향으로 걸었다. 벽파항이라고 해서 진도항이나 최소한 쉬미항 정도 규모의 항구로 생각했는데, 터미널도 안 보이고 초라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안내 표지가 안 보여서 잠시 헤매다가 네이버 지도를 보고 길을 찾았다. 갈림길에서는 트레커들이 헷갈리지 않을 정도로 좀 상세한 안내 표지가 있으면 좋으련만. 벽파항에서 바닷길을 따라 만들어진 좁은 길을 따라 걷다보니 끝에 다시 큰길이 나왔다. 큰길을 따라 100미터쯤 나아가니 내륙 방향(우측)으로 길이 이어졌다. 조금 걸으니 시골에는 어울릴 것 같지 않게 제법 크게 지어진 2층 집이 보였다. 그 집 앞을 지나다보니 현관 옆에 성당 마당에서 볼 수 있는 정도 크기의 성모상이 보였다. 그 집이 수도원이나 성당 같지는 않아보였는데, 아마도 신실한 천주교 신자의 집이 아닐까 추측해보았다. 그 집을 지나자 조그만 마을이 나타났고, 마을을 지나 길은 건너편 밭길로 이어졌다.

 

 

밭길에서도 방향을 찾지 못해 약간 헤매긴 했지만, 결국 용장성으로 향하는 산길을 찾아냈다. 산길의 첫 부분은 콘크리트 포장길이었지만, 중간 중간 비포장 흙길이 이어지면서 걷기에는 좋았다. 산으로 올라가는 길이라 약간 경사가 있긴 했지만, 나무가 우거진 숲길이고 바람까지 불어서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이때부터 ‘삼별초 호국역사 탐방길’이라는 표지판이 자주 보였다. 아마도 용장성이 삼별초 근거지였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 걸었던 운림산방 옆에 있는 삼별초 호국의 길도 그 근처에 ‘삼별초에서 옹립한 왕인 ’승화후 왕온‘의 묘가 있기 때문에 그런 명칭이 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걷다보니 내리막길이 시작되었다. 포장된 내리막길을 따라 조금 내려가니 멀리 용장성과 그 옆에 있는 용장마을이 보였다. 마침내 오늘의 목표 지점이자 6코스의 종점인 용장성에 도착한 시각이 12시 40분. 녹전에서 출발한지 4시간 40분 정도 걸은 셈이었다. 용장성 입구에 서 있는 동상은 배중손 장군이었다. 그 동상을 지나쳐 용장성으로 향했다. 용장성은 이제 복원을 시작한 것인지 공사가 한창이었다. 휴일이라 공사를 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옆에 포클레인이 세워져 있고, 흙더미들이 쌓여 있었다. 그 옆을 지나쳐 용장사에 들렀다가 배중손 장군상이 있는 곳으로 다시 내려왔다.

 

 

과거 역사 교과서를 배울 때 삼별초는 최씨 무신정권의 호위무사(?) 노릇을 하다가 고려 왕조가 몽골에 항복하는 것에 반대한 세력이라고 들었다. 삼별초가 난을 일으킨 이유도, 삼별초의 일부가 몽골과의 전쟁에서 포로로 잡혔던 군인들이었고, 무신 정권의 앞잡이 노릇을 하면서 백성들의 원성을 많이 샀기 때문이라고 배웠다. 그런데 지금은 삼별초가 마치 고려를 지키기 위해 몽골에 저항하는 난을 일으킨 것처럼 주장하는 의견이 나오고 있으니 헷갈린다. 삼별초가 진도에서 패배한 후에 제주도로 갔는데, 그 때문에 제주도민들이 많은 피해를 당했다. 처음 제주도에 도착했을 때는 제주도민들에게 호의적으로 대했지만, 최영 장군이 토벌대를 이끌고 진압하러 오자 제주도민들을 강제 동원하여 성을 쌓고, 실제 전투에서도 제주도민들을 방패막이로 삼아 전쟁이 끝난 다음에 많은 제주도민들이 희생되는 결과를 낳았다. 제주도에서도 그때 쌓은 성을 항몽유적지로 포장하고 있지만, 그게 과연 맞는 표현일까 의아심이 들었다. 자신들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난을 일으켰는데, 그 상대가 우리 국토를 침략한 몽골이다 보니 결과적으로는 호국이라는 의미일까?

 

용장성을 나와 버스를 타기 위해 용장마을로 향했다. 용장마을로 향하는 길은 다음에 걷게 될 서해랑길 7코스가 지나는 길이라 더 세심하게 살피면서 걸었다. 사과랑 떡 등 간단한 간식을 준비해오긴 했지만, 시장기가 있어서 음식점을 검색해봤더니 안 보였다. 하긴 이런 작은 마을에 식당을 열었다가는 금방 문을 닫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 혹시 아이스크림이나 빵 등을 살 수 있는 마트가 있나 검색해보았다. 다행히 마을 한복판에 마트가 있는 것으로 나왔다. 하지만 마트가 있다는 곳에 가봤더니 문이 굳게 잠겨 있고, 안은 텅텅 비어 있었다. 먹을 걸 살 수 없어 배고픔을 달랠 수 없다는 실망감보다는 조그만 마트도 운영이 안 되는 한국 시골의 실상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마을 밖 큰 길에 있는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니 1시 35분. 여기에는 진도 전체의 버스 안내표뿐만 아니라, 이곳을 지나는 버스의 읍내 출발 시각과 회차 시각이 인쇄된 안내표가 붙어 있었다. 젊은 사람들이야 앱을 통해 쉽게 알 수 있는 정보지만, 스마트폰에 익숙하지 않은 노인들을 배려한 따뜻한 마음이 느껴져 기분이 좋아졌다. 네이버 지도로 버스 시간을 확인해 보니 이곳을 지나 벽파항쪽으로 가는 버스가 5분 후에 지난다는 안내가 떴다. 여기서 기다렸다가 회차해서 돌아오는 버스를 반대편에서 타도되겠지만, 그냥 벽파항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갔다가 돌아오자고 생각하고 정류장 밖에 서있었다. 멀리 버스가 오는 걸 보고 서 있는데, 여기 설 듯 하던 버스가 그냥 가버렸다. 손을 들고 확실한 의사 표시를 했어야 했나 생각하면서, 떠나가는 버스 뒤꽁무니를 쳐다보다가 정류장 안으로 다시 들어왔다. 정류장에 놓인 의자에 앉아 책을 읽으면서 20분쯤 기다리니 그 버스가 왔다. 버스에 탄 승객은 달랑 나 혼자. 2시 12분에 읍내 버스 터미널에 도착해서 다시 책을 읽다가 3시 출발 숙소인 길은행 버스를 탔다.

 

책 소개-윤회는 없다

2026. 10. 12. 07:02 | Posted by 행복 기술자

무위 해공, “윤회는 없다,” 책과나무, 2025년

 

‘윤회는 없다.’는 제목부터 자극적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윤회가 힌두교 사상인지는 알았지만, 자연스럽게 불교의 교리를 받아들여진 것으로 생각했던 게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서 윤회가 불교 교리가 아니라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이유는 불교 교리의 핵심인 ‘무아’의 교리와 배치되기 때문이다. 윤회란 ‘고정된 자아’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는데, 부처의 가르침은 ‘고정된 자아’가 없다, 즉 ‘무아’를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불교에서 가르치는 해탈에 이르는 길이 윤회를 벗어나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 책에서는 그게 아니라 ‘윤회를 경험하는 나라는 주체가 애초에 없었음을 깨닫는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윤회 사상이 인도 힌두교의 핵심 교리로 떠오르게 된 역사적 배경도 설명하고 있다. 인도를 점령한 소수의 아리안족이 인도의 원주민인 드라비다족을 다스리기 위한 카스트 제도를 합리화하기 위해 만든 게 바로 ‘윤회설’이라는 것이다. 이런 불평등 사상의 배경인 윤회설을 평등사상을 외치던 부처님이 주장할 리가 없다는 것이 이 책 저자의 주장이다. 다만 부처님이 입적한 후 불교가 힌두교의 강력한 힘에 떠밀려서 그 세력이 축소되자, 인도 사회에 널리 퍼져있던 윤회 사상을 받아들였지만, 이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윤회사상을 받아들이면서 등장한 것이 보살이라는 점도 놀라운 주장이었다. 저자는 초기 경전을 아무리 살펴봐도 석가모니 붓다는 이런 보살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여러 측면에서 왜 윤회설이 모순되는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교리적으로는 부처님의 핵심 사상인 ‘무아’와 모순이라는 점이다. 그밖에도 임사체험의 허구와 티벳 불교의 달라이라마 환생설의 모순점도 지적하고 있다. 가장 놀라운 점은 현대 과학인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이용해 윤회설의 모순을 지적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에 대해 충분히 이해할 수 없는 경우에는 그 내용이 잘 납득이 되지 않을 수 있지만, 일반인이 이해하기 난해한 양자역학을 인용하고 있다는 점 자체가 놀랍다. 양자역학이 부처님의 가르침과 일치하는 점이 많다는 주장이 많이 제기되었지만, 이 책에서처럼 구체적으로 제시된 것을 본 적이 거의 없었다. 불교의 교리와 윤회 사상에 대해 심도 있게 생각해볼 수 있게 만드는 책으로 적극 권하고 싶은 책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같은 시각에 똑같은 커피를 마셔도 누구는 잠을 설치고, 누구는 머리만 대면 잠든다.

실제로 카페인에 대한 반응은 사람마다 상당히 다르다. 카페인에 강한 체질과 약한 체질을 가르는 요인은 여러 가지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유전자다. 타고난 유전자에 따라 간에서 카페인을 분해하는 능력에 차이가 생기고, 뇌가 카페인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가 갈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전자가 전부는 아니다. 평소 커피를 얼마나 자주 마시는지부터 흡연 여부, 일부 약물 복용까지 다양한 요인이 카페인이 몸에 머무는 시간을 바꿀 수 있다. 어제까지 저녁 커피를 마셔도 잘 자던 사람이 어느 순간 같은 한 잔에 불면의 밤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다.

● 카페인에 강한 체질 따로 있다

커피를 마시면 카페인은 빠르게 혈액으로 흡수돼 뇌에 도달한다. 카페인은 뇌에 에너지를 새로 공급하는 물질이 아니다. 깨어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증가해 졸음을 느끼게 하는 아데노신의 작용을 차단함으로써 일시적으로 피로를 덜 느끼고 더 깨어 있게 한다.

동시에 간에서는 효소가 카페인을 계속 분해하고, 분해된 물질은 주로 소변을 통해 몸 밖으로 배출된다. 이러한 카페인 분해·제거 속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카페인 민감도가 사람마다 다른 데는 유전적 요인이 상당 부분 관여한다.

2024년 국제 학술지 ‘중개의학저널(Journal of Translational Medicine)’에 발표된 체계적 문헌고찰은 26개 연구, 185만1428명의 자료를 분석했다. 연구진은 CYP1A2, ADORA2A, AHR 등 여러 유전자가 카페인 섭취와 대사에 관련돼 있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CYP1A2 유전자는 간에서 카페인을 분해하는 핵심 효소인 ‘CYP1A2’ 활성과 관련돼 있다. 사람마다 이 유전자에 차이가 있어 카페인을 빠르게 분해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상대적으로 느리게 분해하는 사람도 있다.

ADORA2A 유전자는 카페인이 뇌에서 작용하는 방식과 관련돼 있다. 2023년 유전적 차이와 카페인의 뇌 영향을 분석한 체계적 문헌고찰에서는 ADORA2A 유전자 변이가 카페인 섭취 후 불안이나 수면장애가 나타나는 정도와 관련된 것으로 나타났다.

정리하면 개인의 유전적 차이에 따라 같은 커피를 마셔도 어떤 사람은 간에서 카페인을 더 빨리 처리하고, 어떤 사람은 뇌가 카페인의 자극에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평소 카페인을 얼마나 자주 섭취하는지도 영향을 미친다. 반복 섭취에 따라 일부 효과에 내성이 생길 수 있다. 1992년 국제 학술지 ‘정신약리학(Psychopharmacology)’에 실린 성인 32명을 대상으로 한 소규모 임상시험에서는 카페인을 반복 섭취했을 때 카페인의 주관적 자극 효과에 대한 내성이 나타났다.

● 담배 피우면 카페인이 더 빨리 사라진다

담배를 피우는 습관도 카페인에 대한 반응을 바꿀 수 있다.

‘임상약리학 및 치료학(Clinical Pharmacology & Therapeutics)’에 발표된 연구에서는 건강한 흡연자 13명과 비흡연자 13명에게서 카페인이 몸에서 절반으로 줄어드는 시간을 비교했다. 흡연자는 평균 3.5시간, 비흡연자는 6시간이었다. 카페인 제거 속도 역시 흡연자가 더 빨랐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비밀은 연초 담배가 타면서 발생하는 연기에 있다. 담배 연기에 포함된 다환방향족탄화수소(PAH) 등이 간의 CYP1A2 효소 활성을 높이고, 결과적으로 카페인이 더 빠르게 분해된다.

전자 담배는 다를 수 있다. 일반적인 전자담배는 연초를 태우지 않는다. 이 때문에 연소 과정에서 연초 담배에 비해 PAH 노출이 훨씬 적다. 따라서 연초 담배에서 나타나는 것과 같은 CYP1A2 효소 유도 효과는 일반적으로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흥미로운 것은 담배를 끊었을 때다.

흡연으로 높아졌던 CYP1A2 활성이 떨어지면서 이전과 똑같은 양의 커피를 마셔도 카페인이 몸에 더 오래 남을 수 있다.

1997년 ‘중독행동(Addictive Behaviors)’에 발표된 임상시험에서는 평소 카페인을 섭취하던 흡연자 162명을 대상으로 금연 후 변화를 추적했다. 금연 뒤에도 기존처럼 카페인을 계속 섭취한 사람은 3주 후 체내 카페인 농도가 금연 전의 203% 수준까지 높아졌다.

담배를 끊은 후 이전과 똑같이 커피를 마셨는데 잠을 설치거나 카페인의 자극을 강하게 느낀다면, 금연으로 카페인 대사 속도가 느려진 것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 이럴 땐 커피 섭취량과 마시는 시간대를 함께 점검할 필요가 있다.

● 카페인 자극에 영향 미치는 또 다른 요인

임신하면 카페인을 분해하는 CYP1A2의 활성이 떨어진다. 건강한 성인의 경우 카페인의 평균 반감기가 대략 4~5시간인 반면, 임신 후기에는 15시간 안팎까지 길어질 수 있다는 보고도 있다.

일부 약물도 카페인을 분해하는 효소의 활동을 억제할 수 있다. 에스트로겐이 포함된 경구 피임약을 복용한 여성에게서도 카페인 제거 속도가 느려진 연구 결과가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숙면 방해 안 받으려면 커피 몇 시까지 마셔야 할까

개인차가 큰 만큼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정확한 ‘마지막 커피 시간’을 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대략적인 기준은 제시돼 있다.

2013년 ‘임상수면의학저널(Journal of Clinical Sleep Medicine)’에 발표된 연구에서는 카페인 400㎎을 잠자기 직전과 3시간 전, 6시간 전에 각각 섭취하도록 했다. 참고로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제시하는 건강한 성인의 하루 카페인 최대 섭취 권고량도 400㎎이다.

그 결과 취침 6시간 전에 섭취했을 때조차 수면에 유의미한 방해가 나타났다. 연구진은 상당량의 카페인은 적어도 취침 6시간 전부터 피하는 것이 좋다고 결론 내렸다.

더 넉넉하게 잡아야 한다는 근거도 있다.

2023년 ‘수면의학리뷰(Sleep Medicine Reviews)’에 발표된 24개 연구의 체계적 문헌고찰 및 메타분석에 따르면 카페인 섭취는 전체 수면시간을 평균 45분 줄이고, 수면효율을 7%포인트 낮췄다. 잠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9분 길어졌고 깊은 수면시간도 약 11분 줄었다.

연구진은 전체 수면시간 감소를 피하려면 카페인 107㎎이 든 커피 250㎖ 한 잔도 취침 최소 8.8시간 전에 마쳐야 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밤 11시에 잠자리에 든다면 마지막 커피는 오후 2시께 마치라는 얘기다.

2025년 ‘유럽 심장 저널(European Heart Journal)’에 게재된 미국 성인 4만여 명의 관찰 연구에서는 아침에 주로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 커피를 마시지 않는 사람보다 전체 사망 및 심혈관질환 사망 위험이 낮은 것과 관련이 있었다. 반면 하루 종일 커피를 마시는 사람에게서는 이러한 연관성이 뚜렷하지 않았다.

왜 이런 차이가 나타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연구진은 오후나 저녁의 커피 섭취가 하루 24시간 주기의 생체리듬과 멜라토닌 같은 호르몬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 등을 가설로 제시했다.

결국 커피를 몇 잔, 몇 시까지 마셔도 괜찮은지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타고난 유전적 차이는 물론 평소 카페인 섭취 습관과 흡연 여부, 복용 약물 등도 카페인에 대한 반응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커피를 마신 뒤 잠드는 데 어려움은 없는지,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불안·초조함이 생기지는 않는지 살피면서 섭취량과 시간을 자신에게 맞게 조절하는 것이 커피를 건강하게 즐기는 현실적인 방법이다.

박해식 기자 pistols@donga.com

 

[동아닷컴 2026년 9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