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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로서 살아온 30여 년의 세월과 더불어 인생 후반기를 맞아 행복을 추구하는 기술자의 변신 스토리입니다. --------- 기술 자문(건설 소재, 재활용), 강연 및 글(칼럼, 기고문) 요청은 010-6358-0057 또는 tiger_ceo@naver.com으로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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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림산방 관람 후 진도군 인구정책실 간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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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에서 가장 가보고 싶은 곳 중의 한 곳이 운림산방인데, 오늘이 바로 그곳을 방문하기로 한 날이었다. 지난 번 서해랑길 8코스를 걷느라고 버스로 운림산방에 갔었는데, 오늘은 운림산방까지 승용차로 가니 편리하긴 했다. 운림산방을 기점으로 할 수 있는 활동이 많은데, 우선 이곳이 서해랑길 7코스의 종점이면서 8코스의 시작점이다. 또 이곳에서 첨찰산 등산을 할 수 있고, 삼별초 호국의 길을 걷는 시점이기도 하다. 오늘은 운림산방과 쌍계사를 둘러보고, 여기서 좀 떨어진 운림 무장애숲길을 탐방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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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0시에 숙소를 출발해서 10시 30분에 운림산방 주차장에 도착했다. 우선 쌍계사로 들어가서 대웅전을 비롯한 절 내부를 둘러보았다. 쌍계사는 그리 큰 절이 아니었지만, 역사가 오래 됐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진도에서 유일한 절이었다고 했다. 이곳 대웅전에 모신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은 1665년 만들어졌다고 알려졌는데, 좌상이 모셔진 대웅전이 수리 중이라 가까이 들여다볼 수 없어 아쉬움이 남았다. 쌍계사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 번잡스럽지 않아 좋긴 했지만, 마당에는 기왓장 불사가 가득 전시되어 있어서 너무 세속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다른 절에도 기왓장 불사가 있긴 하지만 한쪽에 전시되어 있는데, 이곳 쌍계사에서는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주 통로에 기왓장을 전시해 놓았다. 아마 그걸 보고 다른 사람들도 기왓장 불사를 하라는 의미라고 해석됐다. 세속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자신을 비우라는 부처님 말씀은 간 데 없고, 세속의 욕심을 채우는 데 부처님을 이용하려는 속셈이 보이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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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계사를 나와 바로 옆에 있는 진도군립 남도전통미술관으로 들어갔다. 예술의 고장 진도답게 여러 진도 출신 화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미술에는 문외한이지만, 그림을 보는 순간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 동양적인 요소들, 특히 시골스러운 요소들이 그림에 담겨있기 때문에 그런 느낌이 드는 게 아닐까라고 나름 분석해보았다. 시간이 많으면 천천히 그림 하나하나 감상할 수 있으련만, 오늘은 정해진 시간 안에 다른 데도 둘러볼 데가 많아서 주마간산 식으로 그림을 보면서 지나가야 하는 게 아쉬웠다. 하긴 이곳에는 첨찰산 등산 등을 위해 앞으로도 여러 번 와야 하니까 그때 혼자 들러서 찬찬히 보면 되지 않겠느냐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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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는 오늘의 하이라이트 운림산방을 관람할 차례였다. 운림산방에 들어가려면 입장료 2,000원을 내야 했는데, 65세 이상은 무료라 나는 무료입장을 했다. 들어가자마자 앞에 기와집이 보이고, 그 앞에 연못이 있었다. 연못에는 잉어가 많았는데, 사람 발자국 소리가 들리자 입을 벌리고 새까맣게 몰려들었다. 아마도 많은 관람객들이 먹이를 주다보니 잉어들도 그에 익숙해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연못을 돌아 기와집으로 들어갔다. 이곳 운림산방은 조선 후기 남종화의 시조로 알려진 소치 허련이 살면서 그림을 그리던 곳이라고 했다. 사실 소치가 실제 살던 집은 기와집 뒤에 따로 있었다. 그 집은 지금으로 보면 아담하지만, 조선 후기로 보면 상당한 재력이 있었음을 보여주었다. 하긴 그 만큼 재력이 있었으니 그림을 그릴 수 있었지 않았겠는가. 소치 허련은 해남 녹우당의 화첩을 보고 그림을 익히다가, 초의선사의 소개로 추사 김정희에게 그림을 배우면서 그만의 화풍인 한국 남종화를 완성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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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들른 곳은 전시관. 전시관은 소치 허련의 작품을 전시한 1전시관과 소치의 후손들의 작품을 전시한 2전시관 두 곳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1전시관으로 들어서자 입구에 소치의 가계도가 붙어있었다. 가계도는 소치의 자손이 현재 5대까지 있고, 대부분이 자손들이 유명 화가로 활동 중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 가계도를 보고 소치의 자손들이 화가로서 성공한 이유가 타고난 유전자 덕분일까 아니면 그림을 자주 접한 후천적 환경 덕분일까 궁금해졌다. 소치의 후손 중에 가장 많이 알려진 이는 3대손인 남농 허건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이곳 진도에서 태어나 그림을 그리다가 나중에는 목포에서 주로 활동을 했다. 현재 활동 중인 4대와 5대 손들의 작품들도 전시되어 있었는데, 그들의 작품은 현대의 기법들이 적용된 것 같아 더 친근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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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관을 나와 차를 타고 운림 무장애숲길로 향했다. 무장애숲길 입구에 도착하니 노란색 유치원 버스가 서 있고, 마침 숲길 탐방을 마친 어린이들이 차에 탑승하고 있었다. 어린이들이 탄 버스가 출발하는 것을 보고, 숲으로 들어서니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입구에는 정자가 몇 개 있었는데, 뒤에 있는 정자에 깔판 등 짐이 잔뜩 쌓여 있었다. 사무장님 설명으로는 그 정자에는 어떤 부부가 거의 매일 와서 마치 자신들의 안방인 양 드러누워 지낸다는 것이었다. 숲속이라 시원해서 그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공공장소를 사유화하는 몰염치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마침 오늘은 그들이 안 보였지만, 어떤 사람들인지 한 번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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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는 편백나무가 많았는데, 1970년대 산림녹화 때 인공조림을 한 것이라고 했다. 숲 속에 조성된 데크 길을 한 바퀴 돌고 점심식사를 하러 출발했다. 오늘의 점심식사는 읍내 맛집인 자영식당. 어디를 가나 맛집을 찾는 게 여행의 묘미인데, 가장 효율적으로 찾는 방법은 현지인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이곳은 위원장님과 사무장님이 선정한 곳이니 틀림없이 맛집일 거라고 기대가 컸는데, 아니나 다를까 반찬이며 갈치조림이 기대 이상이었다. 위원장님이 다른 맛집으로 이화식당을 지목했는데, 이화식당이 큰길에 있는데 반해, 자영식당은 골목 안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단골이 아니면 찾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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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림산방 관람 후 진도군 인구정책실 간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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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에서 가장 가보고 싶은 곳 중의 한 곳이 운림산방인데, 오늘이 바로 그곳을 방문하기로 한 날이었다. 지난 번 서해랑길 8코스를 걷느라고 버스로 운림산방에 갔었는데, 오늘은 운림산방까지 승용차로 가니 편리하긴 했다. 운림산방을 기점으로 할 수 있는 활동이 많은데, 우선 이곳이 서해랑길 7코스의 종점이면서 8코스의 시작점이다. 또 이곳에서 첨찰산 등산을 할 수 있고, 삼별초 호국의 길을 걷는 시점이기도 하다. 오늘은 운림산방과 쌍계사를 둘러보고, 여기서 좀 떨어진 운림 무장애숲길을 탐방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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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0시에 숙소를 출발해서 10시 30분에 운림산방 주차장에 도착했다. 우선 쌍계사로 들어가서 대웅전을 비롯한 절 내부를 둘러보았다. 쌍계사는 그리 큰 절이 아니었지만, 역사가 오래 됐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진도에서 유일한 절이었다고 했다. 이곳 대웅전에 모신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은 1665년 만들어졌다고 알려졌는데, 좌상이 모셔진 대웅전이 수리 중이라 가까이 들여다볼 수 없어 아쉬움이 남았다. 쌍계사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 번잡스럽지 않아 좋긴 했지만, 마당에는 기왓장 불사가 가득 전시되어 있어서 너무 세속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다른 절에도 기왓장 불사가 있긴 하지만 한쪽에 전시되어 있는데, 이곳 쌍계사에서는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주 통로에 기왓장을 전시해 놓았다. 아마 그걸 보고 다른 사람들도 기왓장 불사를 하라는 의미라고 해석됐다. 세속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자신을 비우라는 부처님 말씀은 간 데 없고, 세속의 욕심을 채우는 데 부처님을 이용하려는 속셈이 보이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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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계사를 나와 바로 옆에 있는 진도군립 남도전통미술관으로 들어갔다. 예술의 고장 진도답게 여러 진도 출신 화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미술에는 문외한이지만, 그림을 보는 순간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 동양적인 요소들, 특히 시골스러운 요소들이 그림에 담겨있기 때문에 그런 느낌이 드는 게 아닐까라고 나름 분석해보았다. 시간이 많으면 천천히 그림 하나하나 감상할 수 있으련만, 오늘은 정해진 시간 안에 다른 데도 둘러볼 데가 많아서 주마간산 식으로 그림을 보면서 지나가야 하는 게 아쉬웠다. 하긴 이곳에는 첨찰산 등산 등을 위해 앞으로도 여러 번 와야 하니까 그때 혼자 들러서 찬찬히 보면 되지 않겠느냐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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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는 오늘의 하이라이트 운림산방을 관람할 차례였다. 운림산방에 들어가려면 입장료 2,000원을 내야 했는데, 65세 이상은 무료라 나는 무료입장을 했다. 들어가자마자 앞에 기와집이 보이고, 그 앞에 연못이 있었다. 연못에는 잉어가 많았는데, 사람 발자국 소리가 들리자 입을 벌리고 새까맣게 몰려들었다. 아마도 많은 관람객들이 먹이를 주다보니 잉어들도 그에 익숙해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연못을 돌아 기와집으로 들어갔다. 이곳 운림산방은 조선 후기 남종화의 시조로 알려진 소치 허련이 살면서 그림을 그리던 곳이라고 했다. 사실 소치가 실제 살던 집은 기와집 뒤에 따로 있었다. 그 집은 지금으로 보면 아담하지만, 조선 후기로 보면 상당한 재력이 있었음을 보여주었다. 하긴 그 만큼 재력이 있었으니 그림을 그릴 수 있었지 않았겠는가. 소치 허련은 해남 녹우당의 화첩을 보고 그림을 익히다가, 초의선사의 소개로 추사 김정희에게 그림을 배우면서 그만의 화풍인 한국 남종화를 완성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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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들른 곳은 전시관. 전시관은 소치 허련의 작품을 전시한 1전시관과 소치의 후손들의 작품을 전시한 2전시관 두 곳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1전시관으로 들어서자 입구에 소치의 가계도가 붙어있었다. 가계도는 소치의 자손이 현재 5대까지 있고, 대부분이 자손들이 유명 화가로 활동 중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 가계도를 보고 소치의 자손들이 화가로서 성공한 이유가 타고난 유전자 덕분일까 아니면 그림을 자주 접한 후천적 환경 덕분일까 궁금해졌다. 소치의 후손 중에 가장 많이 알려진 이는 3대손인 남농 허건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이곳 진도에서 태어나 그림을 그리다가 나중에는 목포에서 주로 활동을 했다. 현재 활동 중인 4대와 5대 손들의 작품들도 전시되어 있었는데, 그들의 작품은 현대의 기법들이 적용된 것 같아 더 친근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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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관을 나와 차를 타고 운림 무장애숲길로 향했다. 무장애숲길 입구에 도착하니 노란색 유치원 버스가 서 있고, 마침 숲길 탐방을 마친 어린이들이 차에 탑승하고 있었다. 어린이들이 탄 버스가 출발하는 것을 보고, 숲으로 들어서니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입구에는 정자가 몇 개 있었는데, 뒤에 있는 정자에 깔판 등 짐이 잔뜩 쌓여 있었다. 사무장님 설명으로는 그 정자에는 어떤 부부가 거의 매일 와서 마치 자신들의 안방인 양 드러누워 지낸다는 것이었다. 숲속이라 시원해서 그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공공장소를 사유화하는 몰염치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마침 오늘은 그들이 안 보였지만, 어떤 사람들인지 한 번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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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는 편백나무가 많았는데, 1970년대 산림녹화 때 인공조림을 한 것이라고 했다. 숲 속에 조성된 데크 길을 한 바퀴 돌고 점심식사를 하러 출발했다. 오늘의 점심식사는 읍내 맛집인 자영식당. 어디를 가나 맛집을 찾는 게 여행의 묘미인데, 가장 효율적으로 찾는 방법은 현지인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이곳은 위원장님과 사무장님이 선정한 곳이니 틀림없이 맛집일 거라고 기대가 컸는데, 아니나 다를까 반찬이며 갈치조림이 기대 이상이었다. 위원장님이 다른 맛집으로 이화식당을 지목했는데, 이화식당이 큰길에 있는데 반해, 자영식당은 골목 안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단골이 아니면 찾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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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 돌아와 휴식을 취하다가 오후 2시부터 군청 인구정책실에서 설명회를 한다고 하여 세미나실에 모였다. 여느 지자체에서나 다 하는 귀농귀촌 관련 정책 설명회 자리인데, 담당 팀장과 주무관이 참석하여 설명을 했다. 자세한 사항은 인쇄물에 나와 있었는데, 진도에서는 특히 주거지에 대한 지원에 집중하는 것으로 보였다. 하긴 주거지 찾는 일을 귀농귀촌인의 개인 역량에 맡길 경우 농촌에 빈집이 많음에도 실제로 귀농귀촌인은 빈 집을 찾을 수 없는 일이 생겨나기 때문에 잘 하는 정책으로 보였다. 군에서 주관하는 임대 주택은 현재 4동이 있으며, 조만간 2동을 추가 완성할 예정이라고 했다. 현재 4호까지 있는 귀농인의 집은 6개월 단위로 임대 기간을 설정한다고 했다. 또 49세 이하 귀농귀촌인에게는 월 1만 원에 임대하는 아파트가 있다고 했다. 30평형대와 20평형대 각각 30가구로 건축 중인데 올해 말까지 완공하고 내년 초에 임대를 진행할 예정인데, 7년 임대가 가능하다고 했다. 우리 멤버 중에도 40대 부부가 이에 대해 큰 관심을 보였다. 부디 잘 진행돼서 그들 부부가 행복한 귀촌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다.

책 소개-로스트 킹덤

2026. 9. 28. 07:02 | Posted by 행복 기술자

세르히 플로히(허승철), “로스트 킹덤,” 글항아리, 2026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후 아직도 전쟁이 계속 되고 있다. 왜 갑자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그런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다. 그런 의문에 답을 주는 책이 바로 이 책 <로스트 킹덤>이다. 이 책은 우크라이나 출신으로 캐나다에서 교수 생활을 하고 있는 하버드대학 우크라이나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세르히 플로히가 쓴 책이다. 저자는 러시아 제국이 형성되던 시기부터 근처의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폴란드 등이 러시아와 어떤 관계에 있었는지부터 설명을 시작하고 있다. 러시아는 자신들과 우크라이나, 벨라루스와 같은 슬라브 민족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세부적으로는 러시아는 대러시아, 우크라이나는 소러시아, 벨라루스는 백러시아로 구분하고 있기도 하다.

러시아와 주변의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폴란드 등은 끊임없이 갈등을 빚어왔다. 러시아는 그들 국가를 차지하려고, 다른 국가들은 러시아에서 독립하려고 노력해왔다. 그 중에서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가장 크게 부딪쳐왔다. 왜냐하면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가까울 뿐만 아니라, 러시아 다음으로 큰 몫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러시아 입장에서는 우크라이나가 없이는 강대한 러시아를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저자는 “현재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갈등은 러시아 엘리트들이 자국과 동슬라브족 이웃 국가들을 공동의 역사적, 문화적 공간, 나아가 같은 민족으로 간주해온 사고에서 비롯된 러시아 정책의 최신 국면에 불과하다.”고 단정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단순한 영토 싸움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깊은 뿌리를 갖고 있다. 따라서 이런 갈등의 뿌리를 이해해야만 앞으로 이 전쟁이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이 가능하다. 한국도 중국과의 갈등, 일본의 침입으로 많은 시련을 겪어왔다. 하지만 단일 민족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그런 시련을 견디어 낼 수 있었다. 하지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얽히고설킨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갈등은 계속될 소지가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최근 러시아가 폴란드를 침공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왜 그런 예측이 나오는지도 이 책을 읽어보면 어느 정도 이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왜 러시아가 크림반도에 집착하는지도 짐작할 수 있다.

 

 

 

 

김경한 제일정형외과병원 척추센터 원장. 제일정형외과병원 척추센터 제공

 

허리 통증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의 영상검사(X-ray, MRI) 결과를 보다 보면 현재의 통증 원인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과거 척추 압박 골절의 흔적이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환자에게 골절 병력을 물어보면 “넘어지거나 크게 다친 적은 없었다”고 말하거나, 한동안 허리가 아팠던 기억은 있지만 일을 많이 해서 그런 것이라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고 이야기한다. 당시 골절을 인지하지 못한 채 일상생활을 이어갔고, 이후 골절 부위가 유합(골절된 뼈가 붙어 회복되는 과정)된 경우도 있다.

척추 압박 골절은 척추뼈 앞쪽에 있는, 몸의 무게를 받쳐주는 척추체가 압박받아 주저앉으면서 발생한다. 특히 골다공증 등으로 뼈가 약해진 경우에는 넘어지거나 부딪히는 큰 외상이 없이도 발생할 수 있다. 무거운 물건을 들거나 허리를 굽히는 등 일상적인 동작만으로도 골절이 발생할 수 있어 갑작스러운 허리 통증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처럼 뚜렷한 외상이 없는 경우에는 환자 스스로 골절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기 어려워 단순한 근육통이나 허리 염좌로 생각하고 지나치기 쉽다.

척추 압박 골절은 통증이 갑자기 시작되거나 특정 척추 부위를 중심으로 아픈 경우가 있으며, 몸을 움직이거나 자세를 바꿀 때 통증이 심해질 수 있다. 반면 근육통이나 염좌는 허리 주변에 통증과 뻣뻣함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다만 통증만으로 원인을 구분하기는 어려운 만큼, 고령이거나 골다공증이 있는 사람에게 특별한 외상 없이 갑작스러운 허리 통증이 생겼다면 정확한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좋다.

 

통증이 줄어들었다고 해서 척추가 반드시 원래의 형태로 회복되는 것은 아니다. 압박 골절로 주저앉은 척추체가 변형된 상태로 유합되면 척추의 정렬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특히 척추뼈가 심하게 주저앉거나 여러 차례 압박 골절이 반복되면 척추가 앞으로 굽는 후만 변형이 남을 수 있다. 이러한 척추 변형은 흔히 말하는 ‘꼬부랑 허리’로 이어지는 원인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척추 변형이 남으면 몸을 바로 세우기 어려워질 수 있고, 서 있거나 걸을 때도 불편을 느낄 수 있다.

따라서 나이가 들면서 허리가 점점 굽는 것을 단순한 노화 현상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과거에 발생한 척추 압박 골절이 제대로 진단되지 않았거나, 골절 이후 척추뼈가 주저앉은 상태로 유합되면서 변형이 진행된 것은 아닌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넘어지거나 다친 기억이 없더라도 갑작스러운 허리 통증이 생겼거나, 이전보다 허리가 굽고 키가 줄어든 것처럼 느껴진다면 척추 압박 골절 여부를 확인해 보는 것이 좋다.

척추 압박 골절은 환자의 증상과 과거 병력, 영상검사 등을 종합해 진단한다. X-ray를 통해 척추뼈의 높이가 낮아지거나 변형된 상태를 확인할 수 있으며, 필요한 경우 MRI 등을 통해 골절이 최근 발생한 것인지, 주변 조직이나 신경 구조에 이상이 있는지 등을 추가로 확인할 수 있다. 골절의 발생 시점과 척추뼈의 주저앉음이나 변형 정도, 통증의 지속 여부 등을 종합해 치료 방법을 결정한다.

척추뼈가 많이 주저앉지 않고 변형이 크지 않은 경우에는 통증을 조절하면서 보조기를 착용하고 움직임을 조절하는 등 보존적 치료를 시행할 수 있다. 반면 통증이 지속되고 보존적 치료만으로 증상이 충분히 조절되지 않거나 척추체의 주저앉음이 심한 경우에는 환자의 상태에 따라 경피적 척추체 성형술(골시멘트술) 등을 고려할 수 있다. 이는 주저앉은 척추체에 골시멘트라는 의료용 재료를 주입해 척추뼈를 보강하고 통증을 완화하는 데 목적이 있는 치료다. 중요한 것은 척추 압박 골절이라고 해서 모든 환자가 같은 치료를 받는 것은 아니며, 골절의 정도와 통증, 변형 여부 등을 종합해 치료 방법을 결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척추 압박 골절은 큰 사고나 외상이 없어도 발생할 수 있어 환자가 골절 사실을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통증이 줄어들더라도 척추뼈가 주저앉은 상태로 유합되면 척추 변형이 남을 수 있는 만큼, 갑작스러운 허리 통증이 생겼거나 이전보다 허리가 굽는 변화가 있다면 정확한 진단을 받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김경한 제일정형외과병원 척추센터 원장

 

[동아일보 2026년 9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