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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6일 서울 마포구 성산동 성미산에서 성미산마을 아이들이 손바닥 텃밭 만들기 활동을 하고 있다. 사단법인 ‘사람과 마을’ 제공

[주간경향] 1994년 9월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 국내 첫 협동조합형 공동육아 어린이집인 ‘우리어린이집’(현재 성산동에 있음)이 문을 열었다. ‘육아’라는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회가 제시한 방식과는 다른 보육·교육 방식을 고민했던 부모와 교사들이 만든 기관이었다. 이후로 30년, 공동육아 어린이집이 전국 곳곳(현재 67곳)에 생겨났다.

우리어린이집의 30년 역사는 마을공동체 ‘성미산마을’의 역사이기도 하다. 성미산마을은 우리어린이집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우리어린이집 아이들은 성미산마을에서 자랐다. 30년이면 ‘한 세대’가 바뀌는 세월이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다녔던, 성미산마을에서 자란 아이들은 어떤 어른이 됐을까.

먼저 협동조합형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관해 간략히 설명하면, 만 5세 이하 아동들을 돌보는 민간 보육기관(일부 공립)이다. 부모가 출자금과 조합비를 부담한 조합원으로서 어린이집 운영 주체로 활동한다는 점에서 다른 민간 어린이집들과 차이가 있다. 부모와 교사가 함께 교육 프로그램, 생활 원칙 등을 정한다. 자연 나들이를 통한 놀이 중심 활동, 사교육·선행학습 지양, 친환경 먹거리 제공 등을 원칙으로 한다. ‘터전’(어린이집 공간)에서 아이들과 교사·부모들이 평어(격식을 갖춘 반말)를 사용함으로써 수평적 관계를 지향한다.

공동육아 이야기를 들으면 누군가는 ‘용감하다’고 하고, 누군가는 ‘유별나다’고 한다. 어떤 이는 ‘시대 흐름에 못 따라간다’고도 한다. 최근 ‘초등 의대반’을 넘어 ‘유아 의대반’까지 생긴 현실을 반영한 평가 아닐까. 모두가 같은 길을 걸을 순 없다. 과도한 경쟁 풍토 속에서 자란 청소년·청년들은 여러 어려움을 겪는다. 아이들에게 어떤 돌봄과 교육을 제공할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공동육아로 자라온 이들의 목소리도 들어봄 직하다.

■“자연에서 자랐던, 편견 없이 자란 경험이 자산”

성미산마을에서 공동육아를 통해 자란 20~30대 청년 7명을 지난 11월 9일과 18일, 성산동의 한 카페에서 차례대로 만나 인터뷰했다. 지난 11월 18일 전화로 1명을 더 만났다. 성미산마을은 ‘성미산’(성산동 위치)을 중심으로 한 도심 속 생활공동체로 공동육아가 뿌리이자 핵심이다. 성미산 주변에 우리어린이집 외에도 4개의 공동육아 어린이집(협동조합형 참나무·성미산·또바기 어린이집, 위탁 운영형 구립 성미어린이집)이 있다. 초등학생 방과후 돌봄기관인 도토리마을방과후(1999년 설립), 초·중·고 대안학교인 성미산학교(2004년 설립)도 협동조합형 공동육아기관이다.

지난 11월 9일 서울 마포구 성산동 한 카페에서 국내 첫 협동조합형 공동육아 어린이집인 ‘우리어린이집’과 초등방과후 ‘도토리방과후’를 다녔던 청년들이 주간경향과 인터뷰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혜수씨, 권예림씨, 강한결씨, 손수연씨, 강한얼씨. 김향미 기자

청년들에게 ‘어린 시절 기억’과 ‘공동육아 경험이 삶에 미친 영향’에 관해 물었다. 만 0세 때부터 초등학교 고학년 때까지 우리어린이집·도토리방과후를 다녔다는 손수연씨(30)는 ‘성미산’을 기억했다. “그때는 성미산에서 살았다고 할 정도로, 매일 성미산에서 하루를 다 보냈어요. 그 계절에만 만날 수 있는 식물, 동물 다 채집하고 다녔고 자연스럽게 그 안에서 놀거리를 항상 찾았던 것 같아요.”

서울 도심이라고 해서 자연과 가까이 지낼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들이 말한 자연에서의 경험은 ‘많은 시간’에 방점이 찍혀 있다. 수연씨는 미대 입시와 관련한 일화를 들려줬다. 수연씨는 한 대학 실기시험에서 입체도형 ‘구’가 주제로 제시되자 ‘쥐며느리’를 그려 합격했다고 한다. 남들보다 뒤늦게 미대 입시를 준비했기 때문에 기술적인 역량은 다소 부족했다는 수연씨는 “그 대학에 최종 합격하진 못했지만 내 삶에 녹아 있는 걸 표현했는데 (실기시험에서) 합격한 걸 보고 내 생각대로 표현하는 게 맞다는 확신이 생겼고, 이후 원하는 대학도 가게 됐다”고 했다.

놀이와 여행도 이들의 기억에 남았다. 신나라씨(32)는 우리어린이집을 졸업하고 초등학교 1학년까지 도토리방과후를 다니다 이사를 했다. 그는 새로운 학교에 가니 ‘자신만 아는 놀이’가 많았다고 했다. 그는 “전래놀이를 많이 했고, 같은 놀이도 많이 변형해서 만들어 놀았던 기억이 있다”고 했다. 다른 지역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다닌 후 성미산학교를 졸업한 강다운씨(26)는 “성미산학교에서는 한 학기에 한 번씩 친구들과 여행을 간다. 도보여행도 가고 밀양 송전탑 투쟁 현장에 가서 감 수확하는 것도 도와드렸고, 이런저런 여행이 기억에 많이 남아 있다”고 했다.

우리어린이집·도토리방과후에 다닌 강한얼씨(30)는 “날마다 모여서 같이 밥 먹고 기차 타고 놀러 가고 터전이랑 마을에서 시장놀이도 자주 했다”며 “다른 아이들보다 더 많은 경험을 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양한 경험은 진로를 결정하는 데 영향을 줬다고 한얼씨는 말했다. 그는 일반고를 다니다 3학년 때 전학해 제빵을 시작, 현재는 제주의 한 베이커리에서 일하고 있다. “부모님은 거의 처음부터 공동육아를 하신 분들이고요. 제가 학교를 옮길 때도, 제주에서 혼자 살기로 했을 때도 반대가 없었어요. 어떤 선택을 하는 데 있어서 집안 분위기나 자라온 환경 자체에서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마찬가지로 10년 이상 공동육아 환경에서 자란 강한결씨(28)는 “어릴 때부터 장애가 있는 친구들과 같이 지내면서 자연스럽게 배려하는 걸 익혔던 부분이 좋았던 것 같다”며 “지금은 제빵 일을 하고 있지만 사회복지 분야로도 일해보려고 했는데, 편견 없이 자랄 수 있었던 경험이 좋았다”고 말했다. 공동육아기관 다수는 장애 통합 교육을 한다. 다운씨는 “아주 뿌리 깊은 곳에 공동체 의식 같은 게 있어서 어떤 문제를 마주쳤을 때 해결하는 방식에서도 개인과 공동체를 같이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며 “다른 사람들과 어떤 사건이나 문제를 바라보는 게 다르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대학원에서 불교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권예림씨(28)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관해 말했다. 공동육아기관에서는 아이들이 친구의 부모나 교사를 부를 때 ‘별명’을 부르고 평어를 쓴다. 권예림씨는 “또래들을 보면 보통 어른이나 조직의 상사와 소통하는 걸 어려워하는데 저는 교수님이나 어른들과 소통할 때 조금 편한 부분이 있다”며 “공동육아 하면서 친구 부모님이랑 정말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고, 그분들이 저에게 호의적으로 대해주는 경험을 하다 보니까 권위적인 문화에 덜 위축되는 것 같다”고 했다.

■“다르게 자라온 것에 ‘방황’도···친절한 어른 경험”

이들은 공동육아에서 ‘졸업’한 뒤 중·고등학교 시기를 어떻게 보냈을까. 대안학교를 가지 않는 한, 학교에 다니면 학업 스트레스를 피할 길이 없었다. 이 시기를 건널 때 경험은 사람마다 달랐다.

부모님이 마을활동가로, 아기 때부터 공동육아 환경에서 큰 박혜수씨(27)는 “중학교 때까지는 큰 차이가 없었는데 일반계 여고를 다닐 때는 많이 방황했다”며 “친구들과 생각하는 부분이 다르고 학업적으로도 스트레스를 받아 부모님을 원망했던 것 같다”고 했다. 한결씨도 고등학교 때 비슷한 고민을 했다고 했다. 혜수씨는 다만 성인이 된 후 스스로 ‘좋은 환경에서 자랐다’고 되돌아볼 수 있었다. “‘소녀상 지킴이’ 활동을 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내가 이런 환경에서 자라서, 되게 용기 있는 행동을 할 수 있는, 부당한 것에 대해서도 말할 수 사람이 됐다고 생각했어요. 그냥 그냥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마을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나라씨는 중·고등학교 시기 대안학교를 다녀 대학 입시 압박을 크게 받진 않았다고 했다. 다만 그는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면서 공인 영어시험 점수가 필요해 어학원을 다니면서 ‘기한 내 달성해야 할 목표를 정해놓고 짜인 틀대로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리는 식’의 공부를 처음 해봤다. ‘한 번 죽어라 해보자’ 하는 마음을 먹기조차 어색하고 힘들었다”며 “그래서 제가 자라온 환경이 ‘울타리’라면 보호하는 울타리인지, 가두는 울타리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도 했다”고 했다.

이들이 부모가 되면 공동육아를 선택할까. 한결씨는 “나중에 아이를 낳는다면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보내고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현실적으로 아이를 키우는 환경이 점점 뭔가 엄청나게 빨리 변하고 있어서, 옳고 그른 것을 정할 순 없지만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고민을 한다”고 했다.

다운씨는 “학교 다닐 때 친구들과 가끔 ‘우리가 어른이 돼서 아이를 낳더라도 부모들만큼 돈을 벌지 못하면 성미산학교에 보낼 수 있을까’란 우스갯소리도 했다”고 했다. 공동육아기관은 공공 보육·교육기관과 비교해 추가 비용이 많다. 어린이집에서 교사 1명이 맡는 아동의 수는 국공립보다 훨씬 적고, 친환경 먹거리로만 식사와 간식을 제공하기에 인건비, 식재료비가 많이 든다.

우리어린이집이 생길 때 6세였던 A씨(35)는 25년간 성미산마을에서 살았다. 결혼 후 성미산마을을 떠난 A씨는 현재 만 3세 아이를 둔 엄마다. 아이를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보낼까 고민하다 “맞벌이로서 부모 참여 활동이 많아 어렵겠다”고 생각해 보내지 않았다. 공동육아를 두고 지금도 계속 고민한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은 아이가 그냥 원에 가는 게 아니라 어른들, 친구들과 교류하면서 같이 커갈 수 있는 동지가 생긴다는 점이 좋은 것 같아요. 아이에게 그런 집단을 만들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성미산마을과 같은 공동육아 환경에서 자라면 부모와 교사뿐만 아니라 다양한 어른과 ‘비스듬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서로의 가정을 방문해 함께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거나, 품앗이 돌봄을 뜻하는 ‘마실’이라는 문화가 있기에 가능하다. 부모 아닌 다른 어른과 관계를 맺은 경험은 현재까지도 힘이 된다고 이들은 말했다. 혜수씨는 “공동육아 환경에서는 ‘존재만으로도 빛난다, 예쁘다’고 말해주는 어른들이 있다”며 “부모가 없어도 무너지지 않고 관계를 유지하고 자기만의 사회를 꾸려갈 수 있는 기반이 있다는 것 자체가 든든하다”고 했다.

1994년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 문을 연 국내 첫 협동조합형 공동육아 어린이집인 ‘우리어린이집’(현재 성산동에 있음)의 개원 초기 아이들의 놀이 활동 모습(왼쪽)과 최근 놀이 활동 모습. 우리어린이집 제공

수연씨와 한얼씨는 나중에 아이가 생긴다면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자녀를 보낼 것이라고 했다. 수연씨는 “제가 경험한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경험인지 아니까 보내고 싶다”며 “호주에 갔을 때 접한 육아 방식이 제가 커온 것과 같더라. 맨발로 아이들이 산에서 놀 수 있는 환경이었다. 공동육아가 아니면 해외에서 키우고 싶다”고 했다. 한얼씨는 “제가 마을에 있을 땐 활동적인 편이었는데 일반고에 가면서 소심한 성격으로 바뀌었는데 ‘이곳에서 자유로웠구나’란 생각을 했다”며 “제주에서 마을 모임을 찾고 싶고, 제가 제주에 공동육아 환경을 만들어내고 싶은 생각도 있다”고 했다.

청년들은 ‘좋은 어른의 상’을 그릴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2001년 성미산 개발 계획이 알려지면서 우리어린이집 부모들을 비롯해 성미산마을 주민들은 성미산 지키기 운동을 벌였다. 산에 텐트를 치고 숲속 공연을 하며 산을 지켰다. 이때 어린이로 성미산에 있었던 청년들은 “어른들이 우리의 터전을 지켜주기 위해서 힘을 합쳐준다는 게 감동적이었다”고 했다. 혜수씨는 “아이들에게 ‘너희는 위험하니 오지 마’라는 게 아니라 주체적으로 함께 해결하는 방법을 알려준 것이고, 아이들을 배제하는 게 아니고 한 명의 인간으로서 대해준 것이다. 그런 친절한 어른이 돼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아이들에게 아직도 자유가 필요하다”

지금 자녀를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보내는 부모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있는 또바기 어린이집 부모 조합원인 ‘쌀밥’(별명)은 자녀 2명을 이 어린이집에 보내고 있다. 첫아이를 임신하고 직장동료의 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우연히 공동육아 게시물을 봤다. 그는 “아이를 기관에 보낸다면 저렇게 자연에서 뛰노는 곳에 보내고 싶다고 생각”했고 “교사 대 아동 비율과 마당이 있는 터전이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아이가 매일 나들이를 가서 뛰놀고 자연과 가깝게 지내고, 다양한 어른들을 만나고 어른과 어른의 관계를 모델링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아요. 아이가 주체적이고 독립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또 다른 부모 조합원 ‘호두’(별명)도 자녀 2명을 또바기 어린이집에 보내고 있다. 그는 “교육학 전공할 때 한 논문에서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접했고, 아이를 낳고는 인지교육 없는 놀이중심이라는 부분이 마음에 들어 이 기관을 선택했다”고 했다. “공부하면서 한국 공교육의 여러 문제를 마주했는데, 특히 자기 주도 학습능력이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여섯 살인 첫째 아이의 행동을 관찰해보면 스스로 학습하고 온전히 체화하는 게 보여요. 그게 놀이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서울로 인구가 몰리고 급격한 도시화가 진행되던 1970~1980년대 영·유아기 아동 돌봄을 위한 사회적 자원은 사실상 공백 상태였다. 당시 달동네 ‘야학’에서 공동육아의 싹이 텄다. 교육운동가, 학생들은 1978년 ‘어린이걱정모임’을 만들고 교사 양성을 위해 해송보육학교를 만들었다. 이곳을 나온 노동자 출신 교사들이 1980년 서울 관악구 난곡동 철거민촌에 ‘해송유아원’을 설립해 운영한다. 그러나 1982년 새마을유아원법이 만들어지면서 어린이집과 탁아소를 제도권으로 강제편입, 해송유아원도 1984년 문을 닫는다. 이들은 같은 해 종로구 창신동에 ‘해송 아기둥지’를 설립하고 아이들이 도심 속 자연에서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나갔다.

1990년 부모가 아이를 맡길 데 없어 문 잠그고 일하러 나간 사이 집에 불이 나 남매가 숨진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으로 1991년 영유아보육법이 만들어졌다. 해송 아기둥지를 만든 교육운동가들도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공동육아 연구회’를 만들었다. 이 연구회에서 협동조합형 공동육아 어린이집이 시작됐다. 해송 아기둥지·공동육아 연구회 설립 구성원이면서 우리어린이집의 초대 원장을 지낸 정병호 사단법인 ‘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 이사장(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은 지난 11월 12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그때 소수의 용감한 부모들과 교사들이 선례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정병호 교수는 “정부 누리과정(만 3~5세 공동 교육과정)을 만들 때 공동육아 모델을 참고하면서 일반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도 숲나들이를 가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 됐다. 아이들을 자연 속에서 함께 키운다는 의미에서 아이들을 해방시켰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정 교수는 “아이들은 자연 속에서 또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면서 자유롭게 다양한 경험을 해야 공감 능력이나 지능 발달도 이뤄지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고 했다. 그는 “한국 교육 산업계를 비롯한 지배문화가 한국 부모들을 ‘소비자로서의 부모’로서 행동하도록 굉장히 압박하고 있다”고 했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고 싶어도 상대적으로 높은 비용은 진입 장벽으로 작용한다. 또 부모 참여를 원칙으로 해서 부모의 노동시간이 길고 불규칙하거나 한부모 가정이면 망설일 수밖에 없다. 정병호 교수는 “공동육아 어린이집마다 운영 특성이 다 다르기도 하고 그 안에서 배제하지 않고 함께 가는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며 “이혼 가정이 늘고 새로운 가족 형태가 나오는데 더욱 공동육아가 필요하다”고 했다. 협동조합형이 아닌, 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 등이 위탁운영하는 국공립 어린이집을 이용해볼 수 있다. 다만 아직 국공립형은 소수다. 무엇보다 사회 분위기가 아이들에게 학습만 강권하는 쪽으로 흐르고 있고, 최근 저출생으로 아이들이 줄면서 공동육아 어린이집들이 설 자리가 넓지는 않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만든 다음에 부모들이 자발적으로 초등방과후를 만들었습니다. 마을공동체가 됐고요. 성미산뿐만 아니라 대전 뿌리와새싹 어린이집 같은 곳에서도 마을을 만든 사례가 있어요. 거기서 희망을 보죠. 30년 전에도 ‘한국 부모들은 아이를 안전하게만 키우고 싶어하고 학업을 신경 쓰니까 이런 교육은 안 된다’ 이런 말을 했어요. 그래서 해보지 않을 수 없었고 그게 가능하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선택을 한 부모를 사회가 달달 볶지요. 그러니 같이 갈 공동체가 중요할 수밖에요.”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

 

[경향신문 2024년 11월 23일]

부 연말까지 전국 30곳 선정

유주택 중산층 고령자 수요 높을 듯

정부, 민간임대주택 임대료 비율 개편
기존 시니어 시설보다 임대료 비쌀 듯
식사·의료 등 서비스 이용 땐 별도 
정부가 고령 중산층을 위한 새로운 형태의 민간임대주택인 ‘실버스테이’를 연내 내놓는다. 중산층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 각종 서비스는 강화하되 임대료는 기존의 민간임대 방식에서 벗어난다.

정부는 연내 시범 사업지 30곳을 선정한다는 계획이다. 유주택 고령자도 입주할 수 있고 소득 요건을 보지 않아 그동안 고령자 주거의 사각지대에 놓였던 중산층이 주로 혜택을 볼 수 있을 전망이다. 그러나 시장에선 임대료 산정 체계가 기존 민간임대주택과는 달라 실제 서비스가 제공될 땐 이용료가 부담될 수 있다는 부정적 의견도 나온다.
 

실버스테이 연내 30곳 선정

24일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연내에 전국 30곳의 실버스테이 사업지를 발표한다. 기존의 시니어 레지던스는 공공임대 방식으로 공급되는 ‘고령자 복지주택’과 노인복지주택으로 분류되는 실버타운이 대부분이었다. 지난해 실버타운 공급량은 전국 9606가구에 그쳤고, 고령자 복지주택 역시 3956가구만 공급됐다. 이에 20년 이상 민간임대 방식인 실버스테이를 새로 추가하겠다는 게 정부의 계획이다.
정부는 지난 8월 '신유형 장기민간임대주택'을 도입하기로 하면서 법 개정이 필요 없는 실버스테이를 우선 도입한다고 밝혔다. 고령층 입주민에게 특화 시설과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기업이 집주인이 되는 식이다. 정부는 서비스 품질 확보를 위해 식사와 건강관리, 안부 확인 등 최소한의 서비스 기준을 먼저 제시하고 주거약자법에 따른 고령층 특화 설계 적용을 의무화한다는 계획이다.

실버스테이는 다른 시니어 주거시설과 달리 유주택자도 제약 없이 입주가 가능하다. 고령층의 높은 자가 거주 비율(78%)이 오히려 시니어 주거시설 입주를 막고 있다는 비판 때문이다. 여기에 같은 단지 내 다른 가족들이 입주할 수 있도록 일반주택을 혼합해 세대공존형 단지로 조성할 수도 있다.

임대료 체계 다른 실버스테이

실버스테이는 중산층 고령자를 겨냥한 시니어 주거시설인 만큼, 기존 민간임대주택과는 임대료 체계가 달라질 전망이다. 당장 연내 시범 사업지 선정을 위해선 ‘민간임대주택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 등 바꿔야 할 규정도 많다. 대표적으로 20년 이상 임대를 위해선 임대료 상승률이 더 높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도 기존 10년 임대주택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임대료 증액 비율 산정 방식을 개편할 예정이다.
기존 민간임대주택은 100가구 이상일 경우 소비자물가지수 이하로만 임대료를 올릴 수 있다. 그러나 실버스테이는 20년 이상 임대하기 때문에 예외를 적용하겠단 것이다. 예외가 적용될 경우 임대료 상승률은 5%까지 오르게 된다. 초기 임대료 역시 주변 유사 시설의 95% 정도로 기존에 공공에서 공급해온 시니어 주거시설보다는 가격이 오를 가능성이 크다.

 
 
또 실버스테이에 도입되는 각종 편의 서비스에 대한 이용료도 별도로 청구될 전망이다. 현행 시행령은 민간임대에서 관리비 외에 별도의 이용료를 받을 수 없게 돼 있다. 실버스테이의 경우 의료 등 서비스의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이를 별도로 청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식사와 청소, 세탁, 의료·간호 서비스 등이 이용료로 별도 청구될 전망이다.

유주택자의 입주를 허용하기 위해선 기존 공공지원 민간임대의 입주 요건도 바꿀 필요가 있다. 기존에는 무주택세대 구성원 요건을 충족하면서 특별공급 비율이 따로 만들어졌는데, 이에 예외를 두는 식이다.

이용료 비싸도 수요 ↑

업계에선 실버스테이 이용료가 기존 공공 시니어 주거시설보다 다소 높더라도 수요는 충분할 것으로 예상한다. 그동안 시니어 주거 사각지대에 있었던 유주택 중산층 고령자에게 사실상 유일한 주거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자체에서도 중산층 고령자 수요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경기주택도시공사(GH)가 준비 중인 경기형 중산층 시니어 주택은 경제적 부담 경감을 위해 월세를 낮추고 초기 입주비를 최소화해 중산층 고령자들이 경제적 부담을 덜 수 있도록 설계됐다. 주로 신도시나 역세권 등 교통이 편리한 곳에 조성해 고령자들이 병원, 쇼핑센터 등 생활 편의시설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도 중산층 고령 가구를 대상으로 하는 시니어타운을 조성 중이고, SH(서울주택도시공사) 역시 강원도와 ‘골드시티’ 업무협약을 맺고 삼척 등지에서 공동 사업을 추진 중이다.

개발업계 관계자는 “시니어 인구 대다수가 집이 있지만, 노년에 서비스받기 위해 요양시설 거주를 희망하고 있다”며 “그동안 갈 곳을 잃은 중산층 시니어 주거시설 수요가 실버스테이로 몰릴 가능성이 있어 사업성 자체는 높다고 본다”고 말했다.

유오상 기자 osyoo@hankyung.com
 
[집코노미 2024년 10월 24일]

[저출산·고령화의 그늘...늘어나는 빈집]
외국인 대상 일본 부동산 매매 사이트 '아키야 앤드 이나카'에 올라온 일본 카나가와현 한 빈집. '아키야(空家)'는 1990년대 중후반 버블경제 거품이 걷히고 인구가 급감하면서 일본 전역에 버려진 빈집을 뜻한다. 사진 아키야 앤드 이나카 홈페이지 캡쳐

일본에선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이나 땅을 0엔 또는 마이너스 가격에 거래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26일 일본의 테레비니가타 등에 따르면 이런 부동산은 부모로부터 상속받은 지방 부동산이 대부분이다. 잘 팔리지 않는 데다, 관리비용ㆍ세금 등을 고려하면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는 게 오히려 손해다. 집주인들은 어떻게든 이를 처분하려 하지만, 일반 부동산 중개사무소는 중개 수수료가 나오지 않는다며 오히려 거절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 일컬어 부동산(不動産)이 아니라, 부담만 주는 애물단지여서 부동산(負動産)이란 말이 등장했을 정도다.

일본은 한국보다 앞서 빈집 문제를 겪고 있다. 지난해 10월 일본 총무성의 ‘주택·토지 통계조사’에 따르면 일본 전국 빈집은 약 899만 가구로 조사 때마다 최대치를 경신하고 있다. 총 주택 중 빈집이 차지하는 비율은 전체 재고량의 13.8%에 이른다. 일본은 5년마다 빈집 실태를 조사하는데, 2018년 849만 가구(전체의 13.6%)에서 5년 새 약 50만 가구가 늘었다. 일본 노무라종합연구소에 따르면 2033년에는 빈집 비율이 27.3%까지 확대할 전망이다.

이런 배경에는 한국처럼 저출산·고령화가 있다. 우토 마사아키 일본 도쿄도시대학 교수는 “일본에서는 고령화가 높은 지역일수록 빈집 비율이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고령의 주택 소유자 사망 이후 상속된 주택이 빈집으로 방치되면서 지방의 빈집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는 것이다. 2020년 일본 국토교통성의 빈집 소유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빈집을 소유하게 된 사유로 ‘상속’(54.6%)의 비율이 가장 높았다.

일본에서 빈집이 늘어나는 또 다른 이유로 낮은 세율이 꼽힌다. 일본에서 고정자산세는 과세표준의 1.4%지만, 주택용의 과세표준은 이의 6분의 1 수준이다. 우토 교수는 “비싼 철거 비용을 내는 것보다 주택으로 남겨두는 것이 훨씬 저렴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빈집 문제 해결을 위해 2015년 ‘빈집 등 대책 추진에 관한 특별조치법(빈집법)’을 제정했다. 이 법은 안전·위생 측면에서 위험하거나, 주변 경관을 현저하게 훼손하는 상태의 건물을 지방정부가 ‘특정 빈집’으로 지정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특정 빈집’ 소유자에게 지도·권고·명령 등의 단계적 조치가 취해질 수 있게 했는데, 만약 소유자가 이를 이행하지 못할 경우, 소유자는 철거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비용을 부담할 능력이 없다면 토지가 공매로 넘어갈 수 있다. 따라서 건물 소유자는 문제가 심각해지기 전에 건물을 매각하는 등 방안을 찾아야 한다.

다만 이 법이 시행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적용 사례가 많지 않다는 게 우노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특정 빈집을 철거할 때 철거에 따른 행정비용을 지방정부가 먼저 부담한 뒤 소유주에게 청구해야 하는데 지방의 재정 상황이 좋지 않다 보니 실제 실행하는 경우가 드물다”고 덧붙였다.

이탈리아 중부 마엔차 지역에서 빈집을 재생해 지방 도시의 인구 유출, 지방소멸 문제를 해결하려는 '1유로 프로젝트' 대상 빈집 모습. 연합뉴스

다른 주요 선진국에서도 빈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시행 중이다. 최근 이탈리아에서는 빈집을 자기 돈으로 리모델링하면 1유로(약 1480원)에 살 수 있는 ‘1유로 프로젝트’ 시행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국산학기술학회의 ‘빈집제도의 역할과 개선 방향에 관한 연구’ 논문에 따르면 미국은 도시지역의 경우 주택소유자협회가 지역 빈집을 알선해 재이용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독일은 빈집을 방치부동산으로 규정해 건물 환경개선을 직권으로 강제하는 ‘근대화 명령’을 시행하고 있으며, 프랑스는 빈집소유자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빈집세’, 유휴부동산 징발을 허용하는 ‘주택징발제도’, 빈집 임대를 쉽게 한 ‘일시적 주택계약’ 등 다양한 제도를 통해 빈집 문제에 대응하고 있다.

김원·이아미 기자 kim.won@joongang.co.kr

 

[중앙일보 2024년 6월 27일]

[7-2]"대단지면 돈 아껴" 노인만 사는 브랜드 아파트

분양받은 1300가구, 모두 65세 이상이 주인

부대시설 모자란 게 없지만 '규모의 경제'로 비용 낮춰
▲지난달 3일 용인시 노인복지주택인 스프링카운티자이 전경이다. 보통 아파트 단지와 다름 없지만 이곳에는 65세 이상 어르신들이 모여산다. 사진=강진형 기자aymsdream@

경기도 용인시 동백역, 지하철이 플랫폼에 들어서면 차창 너머로 말끔한 아파트 단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여느 대단지 브랜드 아파트와 다름없는 곳이다. 그런데 단지를 오가는 이들을 자세히 살피면 이곳이 노인복지주택임을 알 수 있다. 총 1345가구 주인들이 모두 65세 이상 어르신들이다. 노인복지주택 분양제도가 살아있을 때 인허가를 받은 곳이다. 2016년에 일반분양을 했고, 2019년부터 어르신들이 이사를 왔다.

지난달 3일 오전 10시. 단지 안 커뮤니티 센터에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속속 모이기 시작했다. 한 손에는 우쿨렐레를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찹쌀떡, 뻥튀기, 누룽지맛 사탕 같은 간식거리를 들었다. 동호회 수업 전, 67세 임옥순 할머니부터 84세 오군자 할머니까지 "언니, 동생" 부르며 웃고 떠드는 것은 소녀 때 그 모습 그대로다. 이날 우쿨렐레 연습곡은 ‘바람이 불어오는 곳’. 돋보기를 쓰고 악보를 뚫어져라 보는 어르신들의 손끝에서 한 땀, 한 땀 음이 빚어졌다.

▲지난달 3일 용인 스프링카운티자이 아파트 입주민들이 커뮤니티센터에 모여 우쿨렐라 수업을 받고 있다.

"여기도 아파트지만 예전에 살던 아파트처럼 고립된 곳이 아니에요. 요즘 누가 아파트에서 노인들 만나면 인사하나요? 여기는 달라요. 우리끼리 사니까 서로 챙겨주잖아요. 누가 수술했거나, 아프다고 하면 집 앞에 먹을 것도 걸어주고 그래요. 정이 있어요. 대단지니까 이런 동호회만 50개 정도예요. 우리 남편은 일본어 동호회를 하는데, 요즘 일본 드라마에 빠져 살아요. 단지 안에서 모든 활동이 되니까, 여름이나 겨울이나 내려와서 이웃들 만나고 이야기해요."

2019년 스프링카운티자이에 들어온 여진순 할머니(76·가명)는 이같이 설명했다. 그는 젊었을 때 유치원을 운영해 돈을 모았다. 그 돈으로 용인과 분당에 각각 아파트 한 채씩을 샀다. 이 중 용인 아파트를 팔아 여기에 들어왔다. 분당 아파트는 월세를 놓고 그걸로 여기 관리비를 대고 있다. 지금 이곳 아파트 매매가격은 6억원(전용 59㎡ 기준) 정도다.

여 할머니는 "이웃 중에 떵떵거릴 정도로 잘 사시는 분들은 거의 못 봤다. 하지만 집을 팔든지 땅을 팔든지 해서 6억원 정도 목돈 마련하는 것이 가능하신 분들"이라며 "관리비 감당만 할 수 있으면 이곳만 한 곳이 없다. 내 돈 주고 산 내 집이라 마음도 편하다"고 말했다.

▲지난달 3일 용인 스프링카운티자이 아파트 커뮤니티센터에서 입주민들이 탁구를 즐기고 있다. 사진=강진형 기자aymsdream@

대단지 노인복지주택의 가장 큰 장점은 ‘규모의 경제’다. 1000가구가 넘다 보니 월 관리비를 낮출 수 있다. 이곳 운영을 담당하는 김영수 시설장은 "1인 기준이면 식비까지 포함해 한 달에 총 관리비가 60만~70만원 정도 나온다"고 했다. 일반 관리비 30만원에, 1일 1식(9000원) 식비 27만원, 수도비와 난방비 등 10만~15만원을 모두 합친 금액이다. 평수가 더 넓고, 부부가 살고, 난방비가 많이 드는 겨울이 되면 관리비가 월 100만원까지 오르기도 한다.

김 실장은 "피트니스센터, 사우나, 골프연습실, 당구장, 탁구장, 포켓볼장, 노래연습실까지 갖춘 데다 걸어서 5분 거리에 용인세브란스병원도 있다"며 "최고급 노인복지주택에 비해 부족하지 않은 시설인데도 1345가구가 나눠서 내니까 월 관리비를 내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늦은 오후, 203동에 사는 주병철 할아버지(77·가명)는 위·아래층 형님, 동생들을 아파트 내 탁구장에서 만났다. "저녁 내기 게임이야. 지면 설렁탕 사기로 했어. 건강하니까 이렇게 탁구도 칠 수 있고 감사한 일이지. 젊었을 때 다들 고생했잖아. 이젠 소소하고 평화롭게 살아야지. 더 바라는 것도 없어."

<특별취재팀>


심나영 기자 sny@asiae.co.kr박유진 기자 genie@asiae.co.kr강진형 기자 aymsdream@asiae.co.kr

[아시아경제 2024년 5월 22일]

 
서울시와 강원도가 삼척시에 30만㎡(약 9만평) 규모의 귀촌(歸村) 신도시를 조성한다. 서울 광화문광장의 8배 정도 규모다. 그동안 민간업체 등이 은퇴한 노년이 생활하는 실버타운을 지은 적은 있지만,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미니 신도시급 단지를 조성하는 것은 처음이다.

실버도시의 롤 모델… 인구 4만 미국 애리조나 선시티 - 미국 애리조나주에 있는 선시티(SunCity)의 전경. 여의도 13배 크기 부지에 은퇴자 맞춤형 도시로 조성한 곳이다. 미국 곳곳에서 온 은퇴자 4만여 명이 산다. 골프장과 극장, 대형 병원 등이 있다. 미국은 고령화에 대비해 1960년대부터 이러한 마을을 조성했다. 현재 미국 곳곳에 1900여 곳이 운영 중이다. /미국 선시티 홈페이지
서울시는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진태 강원지사가 이러한 내용의 ‘골드시티 조성 업무협약’을 체결했다고 8일 밝혔다. 은퇴한 서울시민들이 기후가 좋은 삼척에서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종합병원과 도서관 등을 갖춘 미니 신도시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골드시티 조성 공사는 SH서울주택도시공사와 강원개발공사가 맡는다. 삼척시 강원대 삼척캠퍼스 인근 30만여㎡ 부지에 2000~3000가구가 살 수 있는 규모로 귀촌 신도시를 조성할 계획이다. 2028~2030년 입주가 목표다.

그래픽=양진경
골드시티의 핵심 시설은 대학과 종합병원이다. 국립대인 강원대 삼척캠퍼스가 근처에 있고 강원대병원 삼척분원이 2030년쯤 개원할 예정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골드시티는 기존 실버타운과 달리 퇴직한 베이비붐 세대가 지역과 교류하며 건강하고 즐겁게 하루를 보낼 수 있도록 만들려고 한다”며 “요즘 삼척은 미세 먼지 걱정이 없는데다 바나나 등 열대 과일이 열릴 정도로 따뜻해 최적의 지역으로 봤다”고 했다. 삼척은 동해와 두타산 등이 어우러져 있는 데다 동해안 유명 관광지와 가깝고 골프장도 있다. 양양국제공항과는 자동차로 1시간 정도 거리다.

단지 내 주택은 분양 또는 임대할 예정이다. 퇴직한 서울시민 등이 서울에 있는 집을 팔고 이주하거나, 서울 집을 SH공사에 신탁하고 생활비(임대료)를 받으며 삼척에 살 수 있게 한다는 계획이다. 이른바 주택연금(역모기지) 방식을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SH공사 관계자는 “SH가 신탁받은 서울 주택은 청년이나 신혼부부 등에게 임대할 계획”이라며 “삼척 단지의 분양가는 25평형 기준으로 4억원대 정도(2028~2030년)로 예상하고 있다”고 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서울시민뿐만 아니라 해외 교포, 외국인 유학생, 강원 지역 주민들도 입주할 수 있게 개방할 계획”이라고 했다.

삼척에 이주한 서울시민을 위해 지역 일자리도 만들 계획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베이비붐 세대는 소소하게 일하길 원하는 사람이 많다”며 “강원대, 강원대병원, 단지 내 도서관 등에 맞춤 일자리도 함께 만든다는 계획”이라고 했다.

SH공사와 강원개발공사, 삼척시는 이번 업무협약을 계기로 협의체를 구성하고 부지 확보에 나서는 등 사업을 본격 추진하기로 했다.

골드시티는 서울시가 초고령화 시대에 대비해 지방 도시와 함께 추진하는 사업이다. 지난해 7월 오세훈 시장이 싱가포르의 ‘세대공존형 실버타운’을 보고서 제안한 것이다.

미국과 영국 등은 이미 1960년대부터 이러한 ‘은퇴자 복합도시’를 조성해 운영 중이다. 미국 애리조나의 선시티, 영국 요크의 하트리그 옥스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선시티는 상주 인구가 4만명 가까이 된다.

서울시는 삼척을 시작으로 제주도나 전북 새만금 등에 골드시티 조성을 검토 중이다.

최종석 기자 comm@chosun.com

 

[조선일보 2023년 11월 9일]

[한겨레21×희망제작소 공동기획] X의 지역작당 1회

아이들 행복학교 하교하면 상상놀이터로
42명 시작해 220여명 된 ‘동고동락 조합’
대안학교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남해 상주 풍경. 김소민 제공
 
경쟁이 아닌 연대, 개인이 존중받는 공동체, 자연을 해치지 않는 인간의 삶이 가능한가. 뜬구름 아닌가. 학생운동권 끝자락이거나, 버르장머리 없는 ‘엑스(X)세대’라 불리다 아이엠에프(IMF) 사태로 하루아침에 다른 세계를 맞이했던 이들 중 어떤 이는 지역에서 진짜 해봤다. 그런 삶이 되나 안 되나. 청년도 노인도 아닌 이들은 다 아는 길 대신 미지의 X를 택했다. 민간독립연구소 희망제작소와 공동기획으로 이들의 이야기를 4주마다 연재한다. ―편집자주
 
남해 바다는 오목한 만마다 마을을 품었다. 인구 1600명 정도인 경남 남해군 상주면은 은모래해변이 감싸고 있다.2023년 5월11일 상주복지회관 앞 삼거리에서 이종수(54) 남해상주 동고동락협동조합 이사장은 책가방을 멘 한 소년에게 인사한다. “아버지 일본에서 오셨니?” “아직요.” 그사이 흰색 벙거지를 쓴 30대 청년이 자전거로 쉭 지나가며 둘에게 손을 흔들었다. “우금치 극단 다니다 온 친구예요.” 벙거지 이상호씨는 상주면 주민을 모아 농악대를 만들고 지신밟기를 한다.은모래해변 쪽으로 골목길을 내려와 협동조합이 만든 동네 빵집 ‘동동’으로 들어가니 한쪽엔 비건 빵이 놓여 있다. 남해에서 만든 맥주, 에이드 등도 판다. 골목길을 더 내려오면 은모래해변 바로 앞에 상주중학교가 있다. 폐교 위기에 놓였던 상주중학교가 2016년 대안학교로 바뀌면서 경쟁 대신 연대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들었다은모래해변 작은 마을에서 대안적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작당이 시작됐다.
내일 보자던 후배가 스스로 떠난 뒤
‘더는 이렇게 살 수 없다.’ 경기도 용인에 살며 부동산자산관리회사(PFV)에 다니던 이종수 이사장은 2010년 42살에 귀촌 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2009년 어느 날, 옛 직장 후배가 술 한잔 하자며 그에게 전화했다. 주식, 선물옵션 정보도 나누던 후배였다. 그는 접대할 손님이 있으니 내일 보자고 끊었다. 그날 저녁, 후배는 자살했다. 투자 실패 때문이었다.이 이사장은 학생운동을 하다 1997년 2월 대학을 졸업하고 한 대기업에 취직했다. 그해 가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터졌다. 부서마다 해고 할당량이 떨어졌다. 결혼 안 한 그가 나왔다. 그 뒤 벤처회사, 건설회사에서 직장인으로 살았다.“어느 날 보니 제 삶이 피폐하더라고요. 건설회사 부조리를 다 알면서 모른 척 돈을 버는 데 회의가 커졌어요.” 큰아들이 초등학교 입학할 즈음이었다. 부부는 아이를 학원 순례하며 키우고 싶지 않았다.
이종수 남해상주 동고동락협동조합 이사장은 청소년과 어르신이 한 마을에서 서로를 도우며 사는 공동체를 꿈꾼다. 그 뜻에 동의하는 마을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김소민 제공
 
그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될 때까지 가족은 전국 방방곡곡을 다녔다. 이 이사장의 고향인 충북 음성은 귀촌 선택지에서 지웠다. 내륙고속도로가 뚫리고 고가도로가 솟았다. 고속도로를 따라 물류창고며 공장이 들어왔다. 그가 마음을 둔 곳은 족족 축사, 시멘트공장, 고가도로 차지가 됐다. “땅끝에 가면 고가도로는 안 짓겠다 싶었어요.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고 끌리는 곳이 있는데 남해가 그랬습니다.”한 신문에서 상주중학교 소식을 듣고 이 이사장 부부는 이곳에 정착하기로 마음먹었다. 1년간 방을 임대해 오가며 마을 사람들을 사귀다 2015년 내려와 집을 짓고 살았다. 일단 마을 이장과 친해졌다. 동네 모든 정보는 이장으로 통하기 마련이다. 곧 청년회 총무를 맡았다. 마을운영위원회 감사도 하게 됐다. 
은바지 클럽, 은모래바다를 지키는 아이들 모임
2016년 상주중학교에 이어 상주초등학교가 행복학교로 지정됐다. 대안교육을 고민하는 학부모들이 한 달에 한 번꼴로 모였다. 봄여름 연수도 함께 갔다. “대안교육은 부모들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한계가 있거든요. 학부모 모임에서 공동체를 배웠다니까요.” 2017년 이 학부모들과 선생님들이 모여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협동조합의 과제는 두 가지였다. 마을과 학교를 연결하는 교육공동체와 공동체의 경제적 기반 마련이었다.
이종수 남해상주 동고동락협동조합 이사장은 청소년과 어르신이 한 마을에서 서로를 도우며 사는 공동체를 꿈꾼다. 그 뜻에 동의하는 마을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김소민 제공
 
협동조합이 처음 만든 건 상상놀이터다. 학교 끝나면 도시에서 이사 온 애, 원래 여기 살던 애 가릴 것 없이 여기서 어울려 놀았다. 이 아이들은 ‘은바지’ 클럽을 결성했다. ‘은모래바다를 지키는 상주초 아이들’의 준말이다. 해변에서 놀며 쓰레기를 함께 주웠다. 협동조합은 마을교육공동체연구회도 꾸려 인문학 강좌 등을 열었다. 조한혜정·유창복 교수 등이 강연하러 왔다 조합원이 돼 돌아갔다.식당 ‘식량창고’를 열어 지역 농산물로 돌봄 급식을 만든다. 카페나 빵집 같은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할 장소가 필요했다. 이 이사장이 지역 마늘을 특화한 아이디어로 빵을 만드는 공모 사업에 도전했는데 덜컥 선정돼버렸다. 문제는 그가 빵을 만들 줄 모른다는 거다. 
사람을 보고 사람이 왔다
서울 북촌에서 빵집 하는 후배에게 부탁했다. ‘네가 빵을 보내면 내가 소스를 입히겠다.’ 말도 안 되는 계획이었다. 그 북촌 후배 셰프가 아예 남해로 와 눌러앉았다. 지금은 협동조합 빵집 ‘동동’에서 일한다. 그렇게 사람을 보고 사람이 왔다.은모래해변 작은 협동조합은 꿈의 스케일이 크다. 무지하게 크다. 무려 자본주의의 대안이 되는 ‘생태계’다. 열쇳말은 ‘전환’이다. “도시 모델을 농촌에 가져오면 100% 실패합니다. 백화점 멋있게 지어봤자 서울에 더 멋있는 거 있잖아요. 경쟁교육, 자본주의 소비경제, 개인적 삶 대신 삶을 위한 교육, 공동체 경제와 삶을 꿈꾸는 사람을 위한 마을을 만들어야죠.”일자리, 교육, 주거, 문화를 이 생태계 안에서 연결해 자생력을 확보하려 한다. 협동조합이 지역특산물 가공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이유다. “협동조합 초기에, 이 집 저 집 몰려다니며 공부하다 놀다 했던 시절이 좋았는데… 지금은 일이 너무 많아요.”당장 닥친 일은 ‘인생 학교’다. 내년 착공 예정이다. ‘삶의 전환’을 꿈꾸는 사람을 위한 학교다. 무엇을 가르치나? 이 이사장은 생태적 자급자족 시스템을 갖춘 ‘파머컬처’ 농장 그림을 그리고 있다. “포스트자본주의는 어떤 삶이 돼야 할까요? 저는 개인의 자유로운 삶이 보장되는 생태적 공동체가 답이라고 생각합니다. 먹거리를 자체적으로 생산하고 다양한 사람들이 전기, 목공 등 삶에 필수적인 기술을 갖고 나누면 공동체가 유지될 수 있어요. 로컬 단위의 에너지 자립이 기후위기 해법이기도 하고요.” 
동고동락협동조합 공동체가 주최한 캠프에 참가한 청소년들. 공동체는 마을 행복학교를 중심으로 대안교육을 고민한다. 동고동락협동조합 제공
 
노인이 있는 마을은 느슨한 확대 가족
이 협동조합이 계획하는 미래에서 노인의 삶은 이렇다. 노인은 친구들, 마을 젊은이들과 여생을 보낸다. 마을이 느슨한 확대 가족이다. “요양원은 마을 단위로 만들어야죠. 노인이 따로 분리되지 않고 마을 아이들 자라는 걸 볼 수 있도록이요. 돌봄이 필요한 노인이 요양원으로 옮기며 빈집을 청년들에게 장기임대하거나 팔면 청년들이 살거나 창업 공간으로 활용하는 거죠.”이 이사장이 상주면으로 오며 만든 블로그 이름은 ‘소요유’, 장자 내편 첫 장 제목과 같다. 그렇게 유유자적하며 살 줄 알았다. 그 블로그는 폐업 상태다. 도시 살 때보다 더 바쁘다. 주 7일 일한다. 협동조합이 풀어야 할 숙제가 쌓여 있다. 경제적 안정을 확보해야 하고 일자리도 늘려야 한다.“힘들 때도 많죠. 그런데 우리 다 알고 있잖아요. 제 세대가 만든 이 세상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거, 아이들을 이렇게 교육하면 안 된다는 거, 1% 빼고 99% 아이들은 좌절할 수밖에 없는 쳇바퀴 속에 밀어넣으면 안 된다는 거. 그런데도 그 길을 계속 가잖아요. 불안 때문에.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서. 그래서 이런 공동체가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는 게 중요해요. 삶을 전환한 10명이 새로운 10명을 만들고…. 말하고 보니 다단계 같네요.”2015년 남해는 소멸위기 5위 지역이었고, 상주면은 인구 40%(702명)가 65살 이상이었다. 그간 상주초등학교 학생 수는 36명에서 2023년 3월 63명으로, 중학교는 18명에서 92명으로 늘었다. 2016년 이후 학부모나 청년 200여명이 상주로 들어왔다. 42명으로 시작한 협동조합 회원은 220여명으로 늘었다. 
뭐 어때, 중학교 졸업하고 1년 쉰 아들
초등학교 6학년 때 남해로 온 그의 아들은 2023년 산청간디학교를 졸업했다. 같은 반 아이들보다 한 살 더 많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1년 쉬며 여행하고, 농사짓고, 아르바이트했다. 건축가를 꿈꾸는데 대학을 갈지 말지 고민하고 있다. “저는 가지 말라 그래요. 대학 학위 같은 거 중요하지 않은 시대가 왔다고 저는 생각해요. 자기만이 할 수 있는 걸 찾고 경험하는 게 중요해요.”그는 불안하지 않을까? “혁신, 안 될 수도 있죠. 그래도 해보고 싶은 거 해본 거잖아요. 어떻게든 되겠지.” 그는 낙천적이다. “자존감이 튼튼”하다고 한다. 농부 아버지 영향이 컸다. “아버지가 항상 그러셨어요. ‘직장 생활 더럽고 힘들면 때려치워라! 아버지가 밥은 먹여 줄게.’” 그 말이 그렇게 든든했다는 그는 협동조합이 남들이 그려놓은 길이 아닌 길을 꿈꾸는 청년들에게 ‘비빌 언덕’이 돼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안학교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남해 상주 풍경. 김소민 제공
 
마을 빵집 ‘동동’을 나와 협동조합의 첫 프로젝트였던 상상놀이터까지 걸었다. 오후 2시, 아직 아이들은 학교에 있다. 조영(44) 상상놀이터 마을선생님이 식탁에 과자를 차려놓는다. 그는 6년 전 아이를 상주중학교에 보내려고 여기 왔다. 
‘○○야  노~올자!’ 아, 이게 가능하구나
“울산에 살 때였어요. 아이가 친해지고 싶은 애가 있는데 학교 끝나면 어디로 가버린대요. 자기도 거기 다니고 싶다는 거예요. 그 친구는 복지관에 다녔어요. 우리 아이도 다녀도 되냐니 소득이 얼마 이하여야 한다더라고요. 그렇게 분리되는 거예요. 여긴 그런 거 없어요. 다 뒤섞여 놀아요. 도시에 살 때 엄마들이 아이들 친구를 맞춰줘야 해요. 학원 같이 보내는 식으로요. 그 패턴에 못 들어가면 놀이터에서 혼자 놀아요. 여기선 제가 낄 여지가 없어요. 하루는 마을 애들이 와 우리 집 창문을 두드리며 그러는 거예요. ‘ ○ ○ 야, 놀자!’ 아, 이게 가능하구나.”상상놀이터 칠판엔 동아리 모임 시간이 적혀 있다. 어른들용이다. 주민 중 기타 치는 사람이 기타를 가르쳐주는 식이다. 상주마을회관 2층 엄살롱은 그중에서도 유명한데, 엄경근 학교 미술교사한테 그림을 배운 지역주민들이 개인전도 열었다.“상주에 이런 공동체가 있다는 걸 몰랐다면 저 혼자선 귀촌이나 대안교육 엄두를 못 냈을 거 같아요. 아직도 불안할 때 있죠. 도시 사람들 얘기 들으면 우리 아이만 이러고 있어도 될까 싶고. 저 혼자라면 불안했을 텐데 여기 사람들이 있잖아요. 의지해서 사는 거죠. 종수씨(이사장)가 아이들 다 키웠잖아요. 그 아이들 보면서, 괜찮구나 하는 거죠.”학교 수업을 마친 아이 대여섯 명이 ‘와~’ 상상놀이터로 몰려 들어왔다.
김소민 희망제작소 연구위원 monduck@makehope.org

[한겨레 2023년 6월 9일]

공모 선정된 지리산 활력타운 조성사업 토대로 단계적 추진

지리산 활력타운 조감도

[남원시 제공]

(남원=연합뉴스) 백도인 기자 = 전북 남원시가 정부 공모에 선정된 '지리산 활력타운 조성사업'을 토대로 전국 최대 규모의 은퇴자 마을을 만드는 방안을 추진한다.

 

7일 남원시에 따르면 최근 지리산 활력타운 조성사업이 정부의 지역활력타운 공모에 선정됐다.

지역활력타운은 국내에서 처음 시도되는 모델로, 지방 정착을 희망하는 은퇴자와 귀농·귀촌 청년에게 타운하우스 등 주거지를 분양 또는 임대로 제공하고, 인근에는 복지·문화 인프라를 조성해 살기 좋은 전원마을을 만드는 사업이다.

남원시는 2026년까지 국비 90억원 등 총 220억원을 들여 운봉읍 허브밸리 일대 3만4천여㎡ 부지에 귀농·귀촌인과 은퇴자를 위한 78가구의 주택단지를 건립할 계획이다.

이들의 안정적인 정착을 돕기 위해 작은 도서관과 공유 부엌, 소규모 체육관 등으로 구성된 복합 커뮤니티센터도 만든다.

귀농·귀촌인들의 전문 기술과 지식을 활용할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들어 지역사회와 연계시키는 방안도 추진한다.

시는 이 사업을 토대로 운봉읍 옛 가축유전자원센터의 유휴 부지에 대규모 주택단지와 시니어타운, 종합병원, 골프장 등이 들어서는 은퇴자 마을도 조성할 방침이다.

주택단지는 은퇴자의 특성을 고려해 5천가구 규모의 정원형과 텃밭형 단독주택, 빌라형 공동주택, 호텔형 시니어타운 등으로 구성된다.

노인종합병원, 골프장, 캠핑장, 아웃렛 등도 들어선다.

시는 이를 위한 용역을 발주한 상태며 조만간 결과가 나오는 대로 구체적인 추진 방안을 확정할 방침이다.

계획대로 추진되면 전국 최대 규모의 은퇴자 마을이 될 것이라고 시는 설명했다.

시는 운봉 일대가 지리산 자락의 해발 600m 고지대여서 귀농·귀촌인과 은퇴자가 선호하는 만큼 사업 추진에 큰 어려움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최경식 남원시장

[남원시 제공]

최경식 시장은 "지역활력타운 사업은 은퇴자마을 조성의 마중물 역할을 하는 만큼 모든 역량을 동원해 대응했고 다행히 좋은 결과를 얻었다"면서 "지역 소멸에 대응하는 랜드마크 사업으로, 많은 인구 유입과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doin100@yna.co.kr

 

[연합뉴스 2023년 6월 7일]

경북 영덕 '뚜벅이마을' 도보여행 프로그램 참여했다가 시골 정착

"전통주 만들 것", "허브 농사 짓고파" 꿈도 제각각

영덕군도 청년주택 만들어 지원…"지역 내 일자리 창출이 관건"

편집자 주 = 2010년대 중반 지역소멸론이 제기된 당시 79개이던 '소멸 위험' 지역은 올해 118곳으로 늘었습니다.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의 절반을 넘습니다. 이제 그 그림자는 대도시까지 드리우고 있습니다. 모두가 암울한 현실만을 얘기하는 이때 온 힘으로 저출산과 초고령화에 맞서는 지자체들이 있습니다. 지자체와 주민들이 힘을 모아 출산율을 끌어올리고 인구 유치에 발 벗고 나서는 그곳, '지방소멸에 맞서는' 그곳들이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그 현장을 생생하게 취재해 매주 월요일 1편씩 기획 기사를 송고합니다.

영덕 뚜벅이마을 도보여행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들

[뚜벅이마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영덕=연합뉴스) 손대성 기자 = 시골에는 청년이 없다.

논밭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도, 마을회관에 모여 수다를 떠는 사람도, 마을 '청년회장'을 맡는 사람도 모두 노인들이다. 젊은 사람을 구경하기가 워낙 힘든 나머지 "온통 노인 천지"라는 자조 섞인 말을 거리낌 없이 할 정도다.

 

그런 시골 마을에 청년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고 있다.

누군가는 전통주를 빚기 위해, 누군가는 허브 농사를 짓기 위해, 누군가는 지역의 관광 자원을 알린다는 꿈을 안고 시골 마을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이 청년들이 시골 마을로 오게 된 배경에는 우리나라에도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 같은 세계적인 트레킹 성지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지닌 한 청년이 있었다.

영덕 뚜벅이마을 도보여행 프로그램 참가자들

◇ '산티아고 순례길' 다녀온 청년, 영덕으로 오다

 

국토종주를 할 정도로 걷기 여행을 좋아하는 설동원(31) 메이드인피플 대표는 대구에서 대학에 다니던 시절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여행했다.

"수백㎞나 되는 길을 걸으며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 사람들과 친목을 다지고 마음의 평화를 찾았습니다. 평생 잊을 수 없는 경험으로 남았죠."

2021년 행정안전부가 지방소멸을 막기 위해 청년마을을 공모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설 대표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올렸다. 우리나라에도 산티아고 순례길과 같은 세계적인 걷기여행 성지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포부였다.

그리고 그 포부는 경북 영덕으로 향했다.

영덕 해안길에서 바라본 풍력발전기와 동해바다

[촬영 손대성]

부산에서 강원 고성까지 바닷가를 따라 이어진 해파랑길. 그 해파랑길 가운데 있는 영덕 구간은 도보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입소문이 난 곳이다. 영덕 대게공원에서 축산항을 거쳐 고래불해수욕장에 이르는 구간은 바다, 산, 들판을 고루 경험할 수 있는 아름다운 해안길이다.

설 대표는 이 구간을 트레킹 성지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안고 행안부의 사업에 공모했고, 당당히 당선됐다. 그리고 그 사업을 '뚜벅이마을'로 이름 지었다.

설 대표가 세운 문화기획사 메이드인피플이 운영하는 뚜벅이마을은 단순한 도보여행 프로그램이 아니다.

영덕 뚜벅이마을 게스트하우스

[촬영 손대성]

"서울 대치동이 자녀 교육 때문에 오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지방도 사람들을 끌어들일 충분한 매력이 있습니다. 평생 정착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테고, 상당 기간 머물면서 대도시의 번잡함에서 벗어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겁니다. 이런 사람들을 끌어들여 지방소멸을 막는 것, 그것이 뚜벅이마을의 목표입니다."

뚜벅이마을은 짧게는 1박 2일 단기 프로그램부터 길게는 7주에 이르는 장기 프로그램으로 이뤄져 있다. 단순히 도보여행을 즐길 수도 있지만, 수 주 동안 머물면서 시골 생활을 체험하고 정착의 가능성을 탐색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을 통해 지난 2년간 정착한 사람은 10여 명에 이른다.

◇ 도시 청년들, 시골에서 전통주와 허브차를 꿈꾸다

강원도 춘천이 고향인 한지석(25) 씨는 요즘 영덕군이 영해면에 지은 청년주택에 살면서 빌린 밭이 있는 창수면을 오가며 농사를 짓고 있다.

올해는 옥수수와 사탕수수를 심었다. 하지만 그의 꿈은 농사짓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누구나 인정할 만한 맛있는 전통주를 빚는 것이 꿈이다.

옥수수밭에서 잡초를 제거하는 한지석 씨

[촬영 손대성]

"대학에서 한식을 전공했습니다. 한식 조리를 하다가 발효에 관심을 갖게 됐고, 자연스럽게 전통주 담그는 데 흥미를 느꼈습니다. 그러다가 재작년 뚜벅이마을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됐죠. 그게 계기가 됐습니다."

뚜벅이마을 프로그램을 통해 영덕군에서 10주 동안 살아본 그는 전통주 주조의 꿈을 이곳에서 이룰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엿봤다. 영덕의 산과 물, 그리고 그 자연이 낳은 곡물로 자신만의 전통주를 빚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술을 빚어도 사연과 이야기가 중요하고, 정체성이 중요합니다. 아름다운 지역인 영덕에서 생산한 농산물로 전통술을 만들고 싶습니다. 지금은 그렇게 하기 위한 준비 단계죠."

농사를 짓다가 잠시 쉬는 한지석(왼쪽) 씨와 정현진 씨

[촬영 손대성]

한 씨의 정착은 친구 정현진(26) 씨의 영덕 생활로 이어졌다.

한 씨와 중학교 때부터 친구였던 정 씨는 영덕에 살던 한 씨의 소개로 지난해 12월 뚜벅이 마을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사격 강사 등 여러 직업을 경험했던 정 씨는 영덕의 매력에 푹 빠졌고, 영덕에 정착하기로 마음먹었다. 그의 꿈은 '허브차'를 만드는 것이다.

"아직 6개월밖에 지나지 않아 농사부터 시작해 영덕의 여러 가지를 경험해보는 단계입니다. 장기적으로는 허브 농장을 운영하면서 허브를 직접 재배하고, 찻집에서도 파는 것이 목표입니다. 부모님도 저의 뜻에 공감해 주셨습니다."

옥수수밭에서 잡초를 제거하는 한지석(왼쪽) 씨와 정현진 씨

[촬영 손대성]

도회 생활을 즐기던 정 씨와 한 씨에게 시골에서의 생활은 지루하고 답답하지 않을까. 두 사람은 "아니다"고 잘라 말한다.

"큰 도시와 같은 문화생활을 누리거나, 최신 경향을 접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영덕은 사람이 좋고, 산과 바다가 있어 평화롭게 살기가 무척 좋습니다. 앞으로 영덕만의 정체성을 지닌 술과 차를 만들고 싶습니다."

◇ 청년들, 지역의 일자리 창출에 도전하다

포항에 살면서 임용시험을 준비하던 이여빈(30) 씨는 우연히 청년주택 입주자 모집 공고를 봤다. 영덕군은 당장 집을 구하기 어려운 청년을 위해 영해면에 청년주택을 지어 저렴한 월세로 빌려주고 있다.

영덕 청년주택

[영덕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긴 수험 생활에 지쳐가던 그는 영덕문화관광재단 직원 채용 시험에 합격하자 영덕으로 이주하기로 마음먹었다. 다행히 청년주택에 입주할 수 있었다. 청년주택과 재단 사무실은 걸어서 15분 거리이다.

"이동식 목조주택이라 도시 원룸보다 훨씬 낫고, 주변에 비슷한 청년들이 모여 있어 교류도 할 수 있습니다. 가까운 곳에 바닷가도 있고, 포항에 살 때보다 공기도 좋고 조용해서 대단히 만족스럽죠."

이 씨처럼 영덕에 정착한 청년들은 깨끗하고 조용한 환경과 아름다운 바다, 빼어난 풍광이 장점이라고 입을 모은다.

영덕문화관광재단 사무실에서 근무 중인 이여빈 씨

[촬영 손대성]

하지만 정착 후에 일자리를 얻지 못하거나 생계를 꾸려가기 힘들다면 그 정착은 오래 이어지기 힘들다. 뚜벅이마을의 설 대표도 이를 고민한다.

"지방에서는 사람을 붙잡으려고 하지만, 먹고살 게 없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지자체의 정착 지원금만 빼먹고 나가버리는 이른바 '지원금 헌터'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일자리입니다."

이에 설 대표는 뚜벅이마을 외에도 사업다각화에 자꾸 나서고 있다. 옛 다방이 있던 2층 건물을 빌려 무인 상품판매장 '덕스'를 만들었다. 게스트하우스도 운영하고 있다.

무인 상품판매장과 게스트하우스로 구성된 '덕스'

[촬영 손대성]

덕스에는 도보여행에 필요한 상품과 각종 액세서리 등이 있다. 취재차 영덕을 찾은 지난 8일에도 여러 명이 덕스를 방문해 구경하거나 사가는 모습이 보였다.

특히 '영덕' 캐릭터가 인기를 끈다고 한다. 설 대표는 젊다는 뜻의 '영'(Young), 오리라는 뜻의 '덕'(Duck)을 합쳐 '젊은 오리' 캐릭터인 영덕을 만들어 각종 상품으로 팔고 있다.

문화기획사를 운영하는 만큼 문화재 탐방, 향교·서원 축제 등 다양한 행사 프로그램 용역도 맡아 수익을 올리고 있다.

뚜벅이마을 무인 상품판매장에서 물건 고르는 손님

[촬영 손대성]

"도보여행을 하러 왔다가 카페가 부족한 것을 보면 카페를 창업할 수 있을 테고, 지역민이나 관광객을 위한 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다각적인 각도에서 접근해 일자리를 만들려는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에 호응해 영덕군도 영농자금 융자, 현장실습 교육비 지원, 주택 제공 등 다양한 방식으로 귀농인 유입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권도혁 영덕군 이웃사촌마을팀장은 "시골의 인구가 자꾸만 줄어드는 상황에서 2년 동안 마을에 정착한 청년이 10여 명에 이른다는 것은 대단한 성과로 볼 수 있다"며 "지역의 정착 문턱을 낮추고 일자리를 만들어 외지 청년들이 영덕에 정착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sds123@yna.co.kr

 

[연합뉴스 2023년 5월 22일]

여행객 유혹하는 지자체 증가… 숙박형태에 따라 성격 바뀌어

 

지역을 온전히 느끼며 소소한 일상을 만끽하는 여행, 한달살기가 인기다. 지방자치단체에서는 한달살기 프로그램을 만들어 지역 활성화를 유도하고, 숙박업체는 장기 임대 상품을 선보인다. 한달살기를 하고 싶은 중장년이라면 이번 기사를 참고해 계획을 세우고, 당장 떠나보자.

중장년 10명 중 8명은 ‘장기간 살아보는 여행’을 하고 싶어 한다. 한달살기는 중장년의 버킷리스트(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을 적은 목록) 중 하나지만, 막상 떠나려니 어디에서, 어느 정도의 비용으로, 얼마나,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해하는 이들이 많다. 자유롭게 떠나도 되지만, 가이드와 함께하는 여행이 익숙한 중장년이라면 프로그램으로 첫 한달살기를 경험해보는 것도 좋다.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에 지원해 활동비를 받으며 한 달을 보낼 수도 있고, ‘작가로 한달살기’처럼 테마가 있는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도 있다. 코로나19 이후에는 호텔에서 한달살기도 하나의 방법이 됐다. 조금 더 알찬 한달살기를 위해 입문이 되어줄 프로그램, 숙소를 찾을 수 있는 다양한 플랫폼, 한달살기 꿀팁이 가득한 도서까지 참고가 될 내용을 소개한다.

◆한달살기가 처음이라면

많은 중장년이 오래 머무르고 싶어 하는 곳은 제주다. 하지만 제주 외에도 한달살기에 적합한 다양한 도시들이 있다. 어느 도시가 좋을지 모르겠다면, 한달살기를 지원해주는 각 지자체 프로그램을 참고해보자. ‘남도에서 한 달 여행하기’, ‘경남에서 한 달 여행하기’ 등이 대표적이다. 예산을 지원하다 보니 조건이 까다로울 수 있지만, 기회와 혜택을 생각하면 도전해볼 만하다. 각 지자체는 지역의 특색을 담은 명소나 특산품 혹은 농장 체험 등의 다양한 여행을 제안하는데, 만약 프로그램 신청이 어렵다면 지자체의 추천을 참고해 자유 일정을 계획하는 것도 방법이다. 한 달이 너무 길게 느껴진다면 3박 4일이나 일주일부터 시작해도 된다. 지자체별로 지원하는 예산 범위와 신청 조건, 신청 시기가 다르므로 미리 알아두면 좋다. 예산 지원은 사전 지급이 아닌 사후 정산이라는 점 참고하자.

▲지자체에서 진행하는 한달살기 프로그램은 접수 기간, 지원 내역, 지원 조건 등이 다르므로 해당 지자체 홈페이지를 통해 내용을 확인해야 한다.(사진=브라보마이라이프)

◆마을과 깊게 교류하는 한달살기

지역 주민들과 교감하고 머무르는 지역에 깊이 녹아들고 싶다면 ‘마을 호텔’ 형태의 도시에서 한달살기를 해보자. 한 건물에 라운지, 숙박, 헬스, 식사 등의 서비스가 모여 있는 호텔과 달리, 마을호텔은 마을 전체가 하나의 호텔 기능을 한다. 마을 입구의 카페가 안내데스크 역할을 하고, 마을의 맛집이 다이닝 역할을, 곳곳의 공방 등이 체험 서비스 역할을 한다. 그러니 마을 전체가 곧 즐길 거리다.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교류를 할 수 있는 건 덤이다. 관광형 한달살기가 아니라, 살아가는 한달살기를 찐하게 경험하고 싶다면 마을호텔은 어떨까.

ㆍ공주 마을스테이 ‘제민천’ 공주 제민천은 주민들이 유기적으로 마을호텔을 구성하고 있다. 한옥스테이 ‘봉황재’에서 시작하는 마을호텔의 프런트는 ‘가가상점’이 담당하고, 커뮤니티이자 로비 역할은 ‘반죽동247’ 카페가 하고 있다. 봉황재 외에도 ‘공주하숙마을’ 등의 고즈넉한 한옥스테이가 곳곳에 위치하며, 제민천을 중심으로 마을 곳곳에 먹거리와 볼거리가 숨어 있다.

ㆍ강원도 정선 ‘마을호텔 18번가’ 국내에서는 가장 먼저 마을호텔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고한읍의 낙후된 폐광촌에 고한18리 주민들이 힘을 모아 조성했다. 빈집을 리모델링한 숙소에 머무르면 마을식당, 카페, 사진관, 이발관 등에서 사용 가능한 할인 쿠폰을 받을 수 있다. 어르신들이 모여 있는 마을회관은 로비 역할을 한다. 마을을 둘러보다 쉬어가도 좋고, 어르신에게 볼거리를 물어봐도 좋다.

▲군산 마을호텔 후즈데어의 프론트데스크 역할을 하는 음식점,_럭키마케트(사진=럭키마케트 공식인스타그램)

ㆍ군산 ‘후즈데어’ 군산 영화동에서는 ‘영화장’이라는 오래된 목욕탕과 여관이 게스트하우스로 재탄생 한 ‘후즈데어’에서 마을호텔이 시작된다. 프런트 역할은 영화타운에 있는 미국 음식점 ‘럭키마케트’가 담당한다. 스페인 레스토랑 ‘돈키호테’, LP바 ‘해무’, 청주바 ‘수복’ 등이 모여 있는 영화타운은 근대문화유산으로 유명한 군산의 또 다른 매력을 보여준다.

ㆍ서울 ‘서촌유희’ ‘서촌유희’는 오래된 한옥과 옛길의 흔적이 골목 곳곳에 녹아 있는 동네의 개성 넘치는 가게들을 연결하고, 걷기 좋은 골목과 장소를 제안한다. 서촌유희의 한옥 숙소는 휴식을 취하며 나를 돌아보기 좋은 곳이다.

〈책으로 미리 챙기는 한달살기 ‘꿀팁’〉

 

1_여행 말고 한달살기

저자 김은덕, 백종민 출판 어떤책

한달살기를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가이드북. 장기 여행을 준비하는 데 필요한 꿀팁이 가득하다. 특히 해외에서 한달살기를 해보고 싶다면 상황별·계절별 추천 도시들을 보고 나에게 맞는 나라를 찾아보자.

 

2_60대 부부의 피렌체와 토스카나, 그리고 남부 이탈리아 소도시 한 달 살기

저자 김영화 출판 바른북스

한 도시에 머무르며 주변 소도시로 여행을 떠나고 싶은 자유로운 여행자에게 어울리는 책. 대중교통을 이용해 유럽을 둘러볼 방법을 소개한다.

 

3_다녀왔습니다, 한 달 살기

저자 배지영 출판 시공사

일하며 한달살기, 은퇴 후 한달살기, 반려동물과 한달살기 등 나의 상황에 맞는 계획을 세우기 좋은 책. 국내에서 한달살기를 했던 여행자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떠나고 싶어진다.

◆호텔에서 한달살기

‘호텔에서 보내는 바캉스’라는 의미의 ‘호캉스’가 유행하더니 ‘한달살이’ 상품도 등장했다. 깔끔한 공간과 다양한 부대 서비스로 중장년에게 인기가 많다. 즐길거리가 많은 도심에서 일상을 만들어가는 한달살기를 하고 싶다면 호텔에서 머물러보는 것도 방법이다. 가격은 천차만별. 롯데호텔이 내놓은 ‘한 번쯤 꿈꾸는 호텔에서의 삶’을 주제로 한 시그니엘 서울 한달살기는 1000만 원이 넘는다. 신라스테이, 포포인츠바이쉐라톤, 롯데시티호텔 등은 100만~200만 원대에 이용할 수 있다. 호텔별로 제공하는 서비스가 다르니 취향에 맞게 골라보자.

◆주제가 있는 한달살기

하나의 주제를 정해 한달살기를 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만 19세 이상 60세 이하인 작가들의 한달살기를 지원하는 ‘묵호등대마을 논골담길 한달살기’, 제주 시골집에서 보내는 어른의 방학 콘셉트의 ‘제주맥주 한달살기’, 다른 지역에서 원격 근무를 하며 살아보는 일(Work)과 휴가(Vacation)를 함께하는 ‘강원도관광재단 워케이션’, ‘제주 세화리 질그랭이 워케이션’ 등이 있다.

▲묵호등대(사진=동해시)
〈쉼이 되는 공간, 숙소 찾는 플랫폼〉

한달살기에서 중요한 건 머무르는 공간이자 생활을 하는 숙소다. 장기 숙박 상품을 모아둔 플랫폼에서 살고 싶은 숙소를 찾아보자.

ㆍ미스터멘션 ‘쉼’을 제안하는 장기 숙박 플랫폼. 한달살기, 보름살기, 일주일살기에 맞춰 전국의 숙소를 볼 수 있다. 추천 숙소, 호텔, 프라이빗한 곳, 반려동물과 함께할 수 있는 곳 등 다양한 테마가 다양하다. 개인이 숙소를 예약했다가 일어날 수 있는 ‘이중 계약’, ‘당일 입실 거부’ 등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최대 100만 원까지 숙소 비용을 보장하는 안전거래제도가 있다.

ㆍ호텔에삶 한달살기를 할 수 있는 호텔만 모았다. 저렴한 3성급부터 5성급 프리미엄까지 서울, 수도권, 경상, 제주에 있는 호텔 숙박 정보가 있다. 호텔을 예약하기 전 미리 내부를 둘러볼 수 있는 투어를 신청할 수 있다. 매월 할인 프로모션도 있으니 원하는 도시의 호텔 가격을 비교해보고 합리적인 호텔 라이프를 즐겨보자.

ㆍ에어비앤비 에어비앤비는 숙박 공유 서비스다. 전문 숙박업체가 아니라 개인이 제공하는 빈집을 빌리는 개념이기 때문에 공간 상태도 천차만별이고 숙박업체와 같은 서비스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대신 저렴한 숙소를 구할 수 있다. 장기 숙박이라면 할인 제안도 해볼 수 있다. 특히 해외는 에어비앤비가 활성화되어 있어 잘 둘러보면 좋은 집을 구할 수 있다. 숙소 선택에 실패하지 않으려면 ‘슈퍼호스트’가 제공하는 숙소 위주로 보고, 해당 숙소의 후기와 별점을 참고하는 게 좋다.

이연지 기자yeonji@etoday.co.kr

[브라보마이라이프 2022년 7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