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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로서 살아온 30여 년의 세월과 더불어 인생 후반기를 맞아 행복을 추구하는 기술자의 변신 스토리입니다. --------- 기술 자문(건설 소재, 재활용), 강연 및 글(칼럼, 기고문) 요청은 010-6358-0057 또는 tiger_ceo@naver.com으로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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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와 강원도가 삼척시에 30만㎡(약 9만평) 규모의 귀촌(歸村) 신도시를 조성한다. 서울 광화문광장의 8배 정도 규모다. 그동안 민간업체 등이 은퇴한 노년이 생활하는 실버타운을 지은 적은 있지만,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미니 신도시급 단지를 조성하는 것은 처음이다.

실버도시의 롤 모델… 인구 4만 미국 애리조나 선시티 - 미국 애리조나주에 있는 선시티(SunCity)의 전경. 여의도 13배 크기 부지에 은퇴자 맞춤형 도시로 조성한 곳이다. 미국 곳곳에서 온 은퇴자 4만여 명이 산다. 골프장과 극장, 대형 병원 등이 있다. 미국은 고령화에 대비해 1960년대부터 이러한 마을을 조성했다. 현재 미국 곳곳에 1900여 곳이 운영 중이다. /미국 선시티 홈페이지
서울시는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진태 강원지사가 이러한 내용의 ‘골드시티 조성 업무협약’을 체결했다고 8일 밝혔다. 은퇴한 서울시민들이 기후가 좋은 삼척에서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종합병원과 도서관 등을 갖춘 미니 신도시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골드시티 조성 공사는 SH서울주택도시공사와 강원개발공사가 맡는다. 삼척시 강원대 삼척캠퍼스 인근 30만여㎡ 부지에 2000~3000가구가 살 수 있는 규모로 귀촌 신도시를 조성할 계획이다. 2028~2030년 입주가 목표다.

그래픽=양진경
골드시티의 핵심 시설은 대학과 종합병원이다. 국립대인 강원대 삼척캠퍼스가 근처에 있고 강원대병원 삼척분원이 2030년쯤 개원할 예정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골드시티는 기존 실버타운과 달리 퇴직한 베이비붐 세대가 지역과 교류하며 건강하고 즐겁게 하루를 보낼 수 있도록 만들려고 한다”며 “요즘 삼척은 미세 먼지 걱정이 없는데다 바나나 등 열대 과일이 열릴 정도로 따뜻해 최적의 지역으로 봤다”고 했다. 삼척은 동해와 두타산 등이 어우러져 있는 데다 동해안 유명 관광지와 가깝고 골프장도 있다. 양양국제공항과는 자동차로 1시간 정도 거리다.

단지 내 주택은 분양 또는 임대할 예정이다. 퇴직한 서울시민 등이 서울에 있는 집을 팔고 이주하거나, 서울 집을 SH공사에 신탁하고 생활비(임대료)를 받으며 삼척에 살 수 있게 한다는 계획이다. 이른바 주택연금(역모기지) 방식을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SH공사 관계자는 “SH가 신탁받은 서울 주택은 청년이나 신혼부부 등에게 임대할 계획”이라며 “삼척 단지의 분양가는 25평형 기준으로 4억원대 정도(2028~2030년)로 예상하고 있다”고 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서울시민뿐만 아니라 해외 교포, 외국인 유학생, 강원 지역 주민들도 입주할 수 있게 개방할 계획”이라고 했다.

삼척에 이주한 서울시민을 위해 지역 일자리도 만들 계획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베이비붐 세대는 소소하게 일하길 원하는 사람이 많다”며 “강원대, 강원대병원, 단지 내 도서관 등에 맞춤 일자리도 함께 만든다는 계획”이라고 했다.

SH공사와 강원개발공사, 삼척시는 이번 업무협약을 계기로 협의체를 구성하고 부지 확보에 나서는 등 사업을 본격 추진하기로 했다.

골드시티는 서울시가 초고령화 시대에 대비해 지방 도시와 함께 추진하는 사업이다. 지난해 7월 오세훈 시장이 싱가포르의 ‘세대공존형 실버타운’을 보고서 제안한 것이다.

미국과 영국 등은 이미 1960년대부터 이러한 ‘은퇴자 복합도시’를 조성해 운영 중이다. 미국 애리조나의 선시티, 영국 요크의 하트리그 옥스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선시티는 상주 인구가 4만명 가까이 된다.

서울시는 삼척을 시작으로 제주도나 전북 새만금 등에 골드시티 조성을 검토 중이다.

최종석 기자 comm@chosun.com

 

[조선일보 2023년 11월 9일]

[한겨레21×희망제작소 공동기획] X의 지역작당 1회

아이들 행복학교 하교하면 상상놀이터로
42명 시작해 220여명 된 ‘동고동락 조합’
대안학교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남해 상주 풍경. 김소민 제공
 
경쟁이 아닌 연대, 개인이 존중받는 공동체, 자연을 해치지 않는 인간의 삶이 가능한가. 뜬구름 아닌가. 학생운동권 끝자락이거나, 버르장머리 없는 ‘엑스(X)세대’라 불리다 아이엠에프(IMF) 사태로 하루아침에 다른 세계를 맞이했던 이들 중 어떤 이는 지역에서 진짜 해봤다. 그런 삶이 되나 안 되나. 청년도 노인도 아닌 이들은 다 아는 길 대신 미지의 X를 택했다. 민간독립연구소 희망제작소와 공동기획으로 이들의 이야기를 4주마다 연재한다. ―편집자주
 
남해 바다는 오목한 만마다 마을을 품었다. 인구 1600명 정도인 경남 남해군 상주면은 은모래해변이 감싸고 있다.2023년 5월11일 상주복지회관 앞 삼거리에서 이종수(54) 남해상주 동고동락협동조합 이사장은 책가방을 멘 한 소년에게 인사한다. “아버지 일본에서 오셨니?” “아직요.” 그사이 흰색 벙거지를 쓴 30대 청년이 자전거로 쉭 지나가며 둘에게 손을 흔들었다. “우금치 극단 다니다 온 친구예요.” 벙거지 이상호씨는 상주면 주민을 모아 농악대를 만들고 지신밟기를 한다.은모래해변 쪽으로 골목길을 내려와 협동조합이 만든 동네 빵집 ‘동동’으로 들어가니 한쪽엔 비건 빵이 놓여 있다. 남해에서 만든 맥주, 에이드 등도 판다. 골목길을 더 내려오면 은모래해변 바로 앞에 상주중학교가 있다. 폐교 위기에 놓였던 상주중학교가 2016년 대안학교로 바뀌면서 경쟁 대신 연대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들었다은모래해변 작은 마을에서 대안적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작당이 시작됐다.
내일 보자던 후배가 스스로 떠난 뒤
‘더는 이렇게 살 수 없다.’ 경기도 용인에 살며 부동산자산관리회사(PFV)에 다니던 이종수 이사장은 2010년 42살에 귀촌 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2009년 어느 날, 옛 직장 후배가 술 한잔 하자며 그에게 전화했다. 주식, 선물옵션 정보도 나누던 후배였다. 그는 접대할 손님이 있으니 내일 보자고 끊었다. 그날 저녁, 후배는 자살했다. 투자 실패 때문이었다.이 이사장은 학생운동을 하다 1997년 2월 대학을 졸업하고 한 대기업에 취직했다. 그해 가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터졌다. 부서마다 해고 할당량이 떨어졌다. 결혼 안 한 그가 나왔다. 그 뒤 벤처회사, 건설회사에서 직장인으로 살았다.“어느 날 보니 제 삶이 피폐하더라고요. 건설회사 부조리를 다 알면서 모른 척 돈을 버는 데 회의가 커졌어요.” 큰아들이 초등학교 입학할 즈음이었다. 부부는 아이를 학원 순례하며 키우고 싶지 않았다.
이종수 남해상주 동고동락협동조합 이사장은 청소년과 어르신이 한 마을에서 서로를 도우며 사는 공동체를 꿈꾼다. 그 뜻에 동의하는 마을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김소민 제공
 
그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될 때까지 가족은 전국 방방곡곡을 다녔다. 이 이사장의 고향인 충북 음성은 귀촌 선택지에서 지웠다. 내륙고속도로가 뚫리고 고가도로가 솟았다. 고속도로를 따라 물류창고며 공장이 들어왔다. 그가 마음을 둔 곳은 족족 축사, 시멘트공장, 고가도로 차지가 됐다. “땅끝에 가면 고가도로는 안 짓겠다 싶었어요.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고 끌리는 곳이 있는데 남해가 그랬습니다.”한 신문에서 상주중학교 소식을 듣고 이 이사장 부부는 이곳에 정착하기로 마음먹었다. 1년간 방을 임대해 오가며 마을 사람들을 사귀다 2015년 내려와 집을 짓고 살았다. 일단 마을 이장과 친해졌다. 동네 모든 정보는 이장으로 통하기 마련이다. 곧 청년회 총무를 맡았다. 마을운영위원회 감사도 하게 됐다. 
은바지 클럽, 은모래바다를 지키는 아이들 모임
2016년 상주중학교에 이어 상주초등학교가 행복학교로 지정됐다. 대안교육을 고민하는 학부모들이 한 달에 한 번꼴로 모였다. 봄여름 연수도 함께 갔다. “대안교육은 부모들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한계가 있거든요. 학부모 모임에서 공동체를 배웠다니까요.” 2017년 이 학부모들과 선생님들이 모여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협동조합의 과제는 두 가지였다. 마을과 학교를 연결하는 교육공동체와 공동체의 경제적 기반 마련이었다.
이종수 남해상주 동고동락협동조합 이사장은 청소년과 어르신이 한 마을에서 서로를 도우며 사는 공동체를 꿈꾼다. 그 뜻에 동의하는 마을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김소민 제공
 
협동조합이 처음 만든 건 상상놀이터다. 학교 끝나면 도시에서 이사 온 애, 원래 여기 살던 애 가릴 것 없이 여기서 어울려 놀았다. 이 아이들은 ‘은바지’ 클럽을 결성했다. ‘은모래바다를 지키는 상주초 아이들’의 준말이다. 해변에서 놀며 쓰레기를 함께 주웠다. 협동조합은 마을교육공동체연구회도 꾸려 인문학 강좌 등을 열었다. 조한혜정·유창복 교수 등이 강연하러 왔다 조합원이 돼 돌아갔다.식당 ‘식량창고’를 열어 지역 농산물로 돌봄 급식을 만든다. 카페나 빵집 같은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할 장소가 필요했다. 이 이사장이 지역 마늘을 특화한 아이디어로 빵을 만드는 공모 사업에 도전했는데 덜컥 선정돼버렸다. 문제는 그가 빵을 만들 줄 모른다는 거다. 
사람을 보고 사람이 왔다
서울 북촌에서 빵집 하는 후배에게 부탁했다. ‘네가 빵을 보내면 내가 소스를 입히겠다.’ 말도 안 되는 계획이었다. 그 북촌 후배 셰프가 아예 남해로 와 눌러앉았다. 지금은 협동조합 빵집 ‘동동’에서 일한다. 그렇게 사람을 보고 사람이 왔다.은모래해변 작은 협동조합은 꿈의 스케일이 크다. 무지하게 크다. 무려 자본주의의 대안이 되는 ‘생태계’다. 열쇳말은 ‘전환’이다. “도시 모델을 농촌에 가져오면 100% 실패합니다. 백화점 멋있게 지어봤자 서울에 더 멋있는 거 있잖아요. 경쟁교육, 자본주의 소비경제, 개인적 삶 대신 삶을 위한 교육, 공동체 경제와 삶을 꿈꾸는 사람을 위한 마을을 만들어야죠.”일자리, 교육, 주거, 문화를 이 생태계 안에서 연결해 자생력을 확보하려 한다. 협동조합이 지역특산물 가공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이유다. “협동조합 초기에, 이 집 저 집 몰려다니며 공부하다 놀다 했던 시절이 좋았는데… 지금은 일이 너무 많아요.”당장 닥친 일은 ‘인생 학교’다. 내년 착공 예정이다. ‘삶의 전환’을 꿈꾸는 사람을 위한 학교다. 무엇을 가르치나? 이 이사장은 생태적 자급자족 시스템을 갖춘 ‘파머컬처’ 농장 그림을 그리고 있다. “포스트자본주의는 어떤 삶이 돼야 할까요? 저는 개인의 자유로운 삶이 보장되는 생태적 공동체가 답이라고 생각합니다. 먹거리를 자체적으로 생산하고 다양한 사람들이 전기, 목공 등 삶에 필수적인 기술을 갖고 나누면 공동체가 유지될 수 있어요. 로컬 단위의 에너지 자립이 기후위기 해법이기도 하고요.” 
동고동락협동조합 공동체가 주최한 캠프에 참가한 청소년들. 공동체는 마을 행복학교를 중심으로 대안교육을 고민한다. 동고동락협동조합 제공
 
노인이 있는 마을은 느슨한 확대 가족
이 협동조합이 계획하는 미래에서 노인의 삶은 이렇다. 노인은 친구들, 마을 젊은이들과 여생을 보낸다. 마을이 느슨한 확대 가족이다. “요양원은 마을 단위로 만들어야죠. 노인이 따로 분리되지 않고 마을 아이들 자라는 걸 볼 수 있도록이요. 돌봄이 필요한 노인이 요양원으로 옮기며 빈집을 청년들에게 장기임대하거나 팔면 청년들이 살거나 창업 공간으로 활용하는 거죠.”이 이사장이 상주면으로 오며 만든 블로그 이름은 ‘소요유’, 장자 내편 첫 장 제목과 같다. 그렇게 유유자적하며 살 줄 알았다. 그 블로그는 폐업 상태다. 도시 살 때보다 더 바쁘다. 주 7일 일한다. 협동조합이 풀어야 할 숙제가 쌓여 있다. 경제적 안정을 확보해야 하고 일자리도 늘려야 한다.“힘들 때도 많죠. 그런데 우리 다 알고 있잖아요. 제 세대가 만든 이 세상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거, 아이들을 이렇게 교육하면 안 된다는 거, 1% 빼고 99% 아이들은 좌절할 수밖에 없는 쳇바퀴 속에 밀어넣으면 안 된다는 거. 그런데도 그 길을 계속 가잖아요. 불안 때문에.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서. 그래서 이런 공동체가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는 게 중요해요. 삶을 전환한 10명이 새로운 10명을 만들고…. 말하고 보니 다단계 같네요.”2015년 남해는 소멸위기 5위 지역이었고, 상주면은 인구 40%(702명)가 65살 이상이었다. 그간 상주초등학교 학생 수는 36명에서 2023년 3월 63명으로, 중학교는 18명에서 92명으로 늘었다. 2016년 이후 학부모나 청년 200여명이 상주로 들어왔다. 42명으로 시작한 협동조합 회원은 220여명으로 늘었다. 
뭐 어때, 중학교 졸업하고 1년 쉰 아들
초등학교 6학년 때 남해로 온 그의 아들은 2023년 산청간디학교를 졸업했다. 같은 반 아이들보다 한 살 더 많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1년 쉬며 여행하고, 농사짓고, 아르바이트했다. 건축가를 꿈꾸는데 대학을 갈지 말지 고민하고 있다. “저는 가지 말라 그래요. 대학 학위 같은 거 중요하지 않은 시대가 왔다고 저는 생각해요. 자기만이 할 수 있는 걸 찾고 경험하는 게 중요해요.”그는 불안하지 않을까? “혁신, 안 될 수도 있죠. 그래도 해보고 싶은 거 해본 거잖아요. 어떻게든 되겠지.” 그는 낙천적이다. “자존감이 튼튼”하다고 한다. 농부 아버지 영향이 컸다. “아버지가 항상 그러셨어요. ‘직장 생활 더럽고 힘들면 때려치워라! 아버지가 밥은 먹여 줄게.’” 그 말이 그렇게 든든했다는 그는 협동조합이 남들이 그려놓은 길이 아닌 길을 꿈꾸는 청년들에게 ‘비빌 언덕’이 돼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안학교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남해 상주 풍경. 김소민 제공
 
마을 빵집 ‘동동’을 나와 협동조합의 첫 프로젝트였던 상상놀이터까지 걸었다. 오후 2시, 아직 아이들은 학교에 있다. 조영(44) 상상놀이터 마을선생님이 식탁에 과자를 차려놓는다. 그는 6년 전 아이를 상주중학교에 보내려고 여기 왔다. 
‘○○야  노~올자!’ 아, 이게 가능하구나
“울산에 살 때였어요. 아이가 친해지고 싶은 애가 있는데 학교 끝나면 어디로 가버린대요. 자기도 거기 다니고 싶다는 거예요. 그 친구는 복지관에 다녔어요. 우리 아이도 다녀도 되냐니 소득이 얼마 이하여야 한다더라고요. 그렇게 분리되는 거예요. 여긴 그런 거 없어요. 다 뒤섞여 놀아요. 도시에 살 때 엄마들이 아이들 친구를 맞춰줘야 해요. 학원 같이 보내는 식으로요. 그 패턴에 못 들어가면 놀이터에서 혼자 놀아요. 여기선 제가 낄 여지가 없어요. 하루는 마을 애들이 와 우리 집 창문을 두드리며 그러는 거예요. ‘ ○ ○ 야, 놀자!’ 아, 이게 가능하구나.”상상놀이터 칠판엔 동아리 모임 시간이 적혀 있다. 어른들용이다. 주민 중 기타 치는 사람이 기타를 가르쳐주는 식이다. 상주마을회관 2층 엄살롱은 그중에서도 유명한데, 엄경근 학교 미술교사한테 그림을 배운 지역주민들이 개인전도 열었다.“상주에 이런 공동체가 있다는 걸 몰랐다면 저 혼자선 귀촌이나 대안교육 엄두를 못 냈을 거 같아요. 아직도 불안할 때 있죠. 도시 사람들 얘기 들으면 우리 아이만 이러고 있어도 될까 싶고. 저 혼자라면 불안했을 텐데 여기 사람들이 있잖아요. 의지해서 사는 거죠. 종수씨(이사장)가 아이들 다 키웠잖아요. 그 아이들 보면서, 괜찮구나 하는 거죠.”학교 수업을 마친 아이 대여섯 명이 ‘와~’ 상상놀이터로 몰려 들어왔다.
김소민 희망제작소 연구위원 monduck@makehope.org

[한겨레 2023년 6월 9일]

공모 선정된 지리산 활력타운 조성사업 토대로 단계적 추진

지리산 활력타운 조감도

[남원시 제공]

(남원=연합뉴스) 백도인 기자 = 전북 남원시가 정부 공모에 선정된 '지리산 활력타운 조성사업'을 토대로 전국 최대 규모의 은퇴자 마을을 만드는 방안을 추진한다.

 

7일 남원시에 따르면 최근 지리산 활력타운 조성사업이 정부의 지역활력타운 공모에 선정됐다.

지역활력타운은 국내에서 처음 시도되는 모델로, 지방 정착을 희망하는 은퇴자와 귀농·귀촌 청년에게 타운하우스 등 주거지를 분양 또는 임대로 제공하고, 인근에는 복지·문화 인프라를 조성해 살기 좋은 전원마을을 만드는 사업이다.

남원시는 2026년까지 국비 90억원 등 총 220억원을 들여 운봉읍 허브밸리 일대 3만4천여㎡ 부지에 귀농·귀촌인과 은퇴자를 위한 78가구의 주택단지를 건립할 계획이다.

이들의 안정적인 정착을 돕기 위해 작은 도서관과 공유 부엌, 소규모 체육관 등으로 구성된 복합 커뮤니티센터도 만든다.

귀농·귀촌인들의 전문 기술과 지식을 활용할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들어 지역사회와 연계시키는 방안도 추진한다.

시는 이 사업을 토대로 운봉읍 옛 가축유전자원센터의 유휴 부지에 대규모 주택단지와 시니어타운, 종합병원, 골프장 등이 들어서는 은퇴자 마을도 조성할 방침이다.

주택단지는 은퇴자의 특성을 고려해 5천가구 규모의 정원형과 텃밭형 단독주택, 빌라형 공동주택, 호텔형 시니어타운 등으로 구성된다.

노인종합병원, 골프장, 캠핑장, 아웃렛 등도 들어선다.

시는 이를 위한 용역을 발주한 상태며 조만간 결과가 나오는 대로 구체적인 추진 방안을 확정할 방침이다.

계획대로 추진되면 전국 최대 규모의 은퇴자 마을이 될 것이라고 시는 설명했다.

시는 운봉 일대가 지리산 자락의 해발 600m 고지대여서 귀농·귀촌인과 은퇴자가 선호하는 만큼 사업 추진에 큰 어려움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최경식 남원시장

[남원시 제공]

최경식 시장은 "지역활력타운 사업은 은퇴자마을 조성의 마중물 역할을 하는 만큼 모든 역량을 동원해 대응했고 다행히 좋은 결과를 얻었다"면서 "지역 소멸에 대응하는 랜드마크 사업으로, 많은 인구 유입과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doin100@yna.co.kr

 

[연합뉴스 2023년 6월 7일]

경북 영덕 '뚜벅이마을' 도보여행 프로그램 참여했다가 시골 정착

"전통주 만들 것", "허브 농사 짓고파" 꿈도 제각각

영덕군도 청년주택 만들어 지원…"지역 내 일자리 창출이 관건"

편집자 주 = 2010년대 중반 지역소멸론이 제기된 당시 79개이던 '소멸 위험' 지역은 올해 118곳으로 늘었습니다.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의 절반을 넘습니다. 이제 그 그림자는 대도시까지 드리우고 있습니다. 모두가 암울한 현실만을 얘기하는 이때 온 힘으로 저출산과 초고령화에 맞서는 지자체들이 있습니다. 지자체와 주민들이 힘을 모아 출산율을 끌어올리고 인구 유치에 발 벗고 나서는 그곳, '지방소멸에 맞서는' 그곳들이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그 현장을 생생하게 취재해 매주 월요일 1편씩 기획 기사를 송고합니다.

영덕 뚜벅이마을 도보여행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들

[뚜벅이마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영덕=연합뉴스) 손대성 기자 = 시골에는 청년이 없다.

논밭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도, 마을회관에 모여 수다를 떠는 사람도, 마을 '청년회장'을 맡는 사람도 모두 노인들이다. 젊은 사람을 구경하기가 워낙 힘든 나머지 "온통 노인 천지"라는 자조 섞인 말을 거리낌 없이 할 정도다.

 

그런 시골 마을에 청년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고 있다.

누군가는 전통주를 빚기 위해, 누군가는 허브 농사를 짓기 위해, 누군가는 지역의 관광 자원을 알린다는 꿈을 안고 시골 마을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이 청년들이 시골 마을로 오게 된 배경에는 우리나라에도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 같은 세계적인 트레킹 성지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지닌 한 청년이 있었다.

영덕 뚜벅이마을 도보여행 프로그램 참가자들

◇ '산티아고 순례길' 다녀온 청년, 영덕으로 오다

 

국토종주를 할 정도로 걷기 여행을 좋아하는 설동원(31) 메이드인피플 대표는 대구에서 대학에 다니던 시절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여행했다.

"수백㎞나 되는 길을 걸으며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 사람들과 친목을 다지고 마음의 평화를 찾았습니다. 평생 잊을 수 없는 경험으로 남았죠."

2021년 행정안전부가 지방소멸을 막기 위해 청년마을을 공모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설 대표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올렸다. 우리나라에도 산티아고 순례길과 같은 세계적인 걷기여행 성지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포부였다.

그리고 그 포부는 경북 영덕으로 향했다.

영덕 해안길에서 바라본 풍력발전기와 동해바다

[촬영 손대성]

부산에서 강원 고성까지 바닷가를 따라 이어진 해파랑길. 그 해파랑길 가운데 있는 영덕 구간은 도보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입소문이 난 곳이다. 영덕 대게공원에서 축산항을 거쳐 고래불해수욕장에 이르는 구간은 바다, 산, 들판을 고루 경험할 수 있는 아름다운 해안길이다.

설 대표는 이 구간을 트레킹 성지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안고 행안부의 사업에 공모했고, 당당히 당선됐다. 그리고 그 사업을 '뚜벅이마을'로 이름 지었다.

설 대표가 세운 문화기획사 메이드인피플이 운영하는 뚜벅이마을은 단순한 도보여행 프로그램이 아니다.

영덕 뚜벅이마을 게스트하우스

[촬영 손대성]

"서울 대치동이 자녀 교육 때문에 오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지방도 사람들을 끌어들일 충분한 매력이 있습니다. 평생 정착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테고, 상당 기간 머물면서 대도시의 번잡함에서 벗어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겁니다. 이런 사람들을 끌어들여 지방소멸을 막는 것, 그것이 뚜벅이마을의 목표입니다."

뚜벅이마을은 짧게는 1박 2일 단기 프로그램부터 길게는 7주에 이르는 장기 프로그램으로 이뤄져 있다. 단순히 도보여행을 즐길 수도 있지만, 수 주 동안 머물면서 시골 생활을 체험하고 정착의 가능성을 탐색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을 통해 지난 2년간 정착한 사람은 10여 명에 이른다.

◇ 도시 청년들, 시골에서 전통주와 허브차를 꿈꾸다

강원도 춘천이 고향인 한지석(25) 씨는 요즘 영덕군이 영해면에 지은 청년주택에 살면서 빌린 밭이 있는 창수면을 오가며 농사를 짓고 있다.

올해는 옥수수와 사탕수수를 심었다. 하지만 그의 꿈은 농사짓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누구나 인정할 만한 맛있는 전통주를 빚는 것이 꿈이다.

옥수수밭에서 잡초를 제거하는 한지석 씨

[촬영 손대성]

"대학에서 한식을 전공했습니다. 한식 조리를 하다가 발효에 관심을 갖게 됐고, 자연스럽게 전통주 담그는 데 흥미를 느꼈습니다. 그러다가 재작년 뚜벅이마을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됐죠. 그게 계기가 됐습니다."

뚜벅이마을 프로그램을 통해 영덕군에서 10주 동안 살아본 그는 전통주 주조의 꿈을 이곳에서 이룰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엿봤다. 영덕의 산과 물, 그리고 그 자연이 낳은 곡물로 자신만의 전통주를 빚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술을 빚어도 사연과 이야기가 중요하고, 정체성이 중요합니다. 아름다운 지역인 영덕에서 생산한 농산물로 전통술을 만들고 싶습니다. 지금은 그렇게 하기 위한 준비 단계죠."

농사를 짓다가 잠시 쉬는 한지석(왼쪽) 씨와 정현진 씨

[촬영 손대성]

한 씨의 정착은 친구 정현진(26) 씨의 영덕 생활로 이어졌다.

한 씨와 중학교 때부터 친구였던 정 씨는 영덕에 살던 한 씨의 소개로 지난해 12월 뚜벅이 마을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사격 강사 등 여러 직업을 경험했던 정 씨는 영덕의 매력에 푹 빠졌고, 영덕에 정착하기로 마음먹었다. 그의 꿈은 '허브차'를 만드는 것이다.

"아직 6개월밖에 지나지 않아 농사부터 시작해 영덕의 여러 가지를 경험해보는 단계입니다. 장기적으로는 허브 농장을 운영하면서 허브를 직접 재배하고, 찻집에서도 파는 것이 목표입니다. 부모님도 저의 뜻에 공감해 주셨습니다."

옥수수밭에서 잡초를 제거하는 한지석(왼쪽) 씨와 정현진 씨

[촬영 손대성]

도회 생활을 즐기던 정 씨와 한 씨에게 시골에서의 생활은 지루하고 답답하지 않을까. 두 사람은 "아니다"고 잘라 말한다.

"큰 도시와 같은 문화생활을 누리거나, 최신 경향을 접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영덕은 사람이 좋고, 산과 바다가 있어 평화롭게 살기가 무척 좋습니다. 앞으로 영덕만의 정체성을 지닌 술과 차를 만들고 싶습니다."

◇ 청년들, 지역의 일자리 창출에 도전하다

포항에 살면서 임용시험을 준비하던 이여빈(30) 씨는 우연히 청년주택 입주자 모집 공고를 봤다. 영덕군은 당장 집을 구하기 어려운 청년을 위해 영해면에 청년주택을 지어 저렴한 월세로 빌려주고 있다.

영덕 청년주택

[영덕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긴 수험 생활에 지쳐가던 그는 영덕문화관광재단 직원 채용 시험에 합격하자 영덕으로 이주하기로 마음먹었다. 다행히 청년주택에 입주할 수 있었다. 청년주택과 재단 사무실은 걸어서 15분 거리이다.

"이동식 목조주택이라 도시 원룸보다 훨씬 낫고, 주변에 비슷한 청년들이 모여 있어 교류도 할 수 있습니다. 가까운 곳에 바닷가도 있고, 포항에 살 때보다 공기도 좋고 조용해서 대단히 만족스럽죠."

이 씨처럼 영덕에 정착한 청년들은 깨끗하고 조용한 환경과 아름다운 바다, 빼어난 풍광이 장점이라고 입을 모은다.

영덕문화관광재단 사무실에서 근무 중인 이여빈 씨

[촬영 손대성]

하지만 정착 후에 일자리를 얻지 못하거나 생계를 꾸려가기 힘들다면 그 정착은 오래 이어지기 힘들다. 뚜벅이마을의 설 대표도 이를 고민한다.

"지방에서는 사람을 붙잡으려고 하지만, 먹고살 게 없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지자체의 정착 지원금만 빼먹고 나가버리는 이른바 '지원금 헌터'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일자리입니다."

이에 설 대표는 뚜벅이마을 외에도 사업다각화에 자꾸 나서고 있다. 옛 다방이 있던 2층 건물을 빌려 무인 상품판매장 '덕스'를 만들었다. 게스트하우스도 운영하고 있다.

무인 상품판매장과 게스트하우스로 구성된 '덕스'

[촬영 손대성]

덕스에는 도보여행에 필요한 상품과 각종 액세서리 등이 있다. 취재차 영덕을 찾은 지난 8일에도 여러 명이 덕스를 방문해 구경하거나 사가는 모습이 보였다.

특히 '영덕' 캐릭터가 인기를 끈다고 한다. 설 대표는 젊다는 뜻의 '영'(Young), 오리라는 뜻의 '덕'(Duck)을 합쳐 '젊은 오리' 캐릭터인 영덕을 만들어 각종 상품으로 팔고 있다.

문화기획사를 운영하는 만큼 문화재 탐방, 향교·서원 축제 등 다양한 행사 프로그램 용역도 맡아 수익을 올리고 있다.

뚜벅이마을 무인 상품판매장에서 물건 고르는 손님

[촬영 손대성]

"도보여행을 하러 왔다가 카페가 부족한 것을 보면 카페를 창업할 수 있을 테고, 지역민이나 관광객을 위한 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다각적인 각도에서 접근해 일자리를 만들려는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에 호응해 영덕군도 영농자금 융자, 현장실습 교육비 지원, 주택 제공 등 다양한 방식으로 귀농인 유입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권도혁 영덕군 이웃사촌마을팀장은 "시골의 인구가 자꾸만 줄어드는 상황에서 2년 동안 마을에 정착한 청년이 10여 명에 이른다는 것은 대단한 성과로 볼 수 있다"며 "지역의 정착 문턱을 낮추고 일자리를 만들어 외지 청년들이 영덕에 정착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sds123@yna.co.kr

 

[연합뉴스 2023년 5월 22일]

여행객 유혹하는 지자체 증가… 숙박형태에 따라 성격 바뀌어

 

지역을 온전히 느끼며 소소한 일상을 만끽하는 여행, 한달살기가 인기다. 지방자치단체에서는 한달살기 프로그램을 만들어 지역 활성화를 유도하고, 숙박업체는 장기 임대 상품을 선보인다. 한달살기를 하고 싶은 중장년이라면 이번 기사를 참고해 계획을 세우고, 당장 떠나보자.

중장년 10명 중 8명은 ‘장기간 살아보는 여행’을 하고 싶어 한다. 한달살기는 중장년의 버킷리스트(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을 적은 목록) 중 하나지만, 막상 떠나려니 어디에서, 어느 정도의 비용으로, 얼마나,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해하는 이들이 많다. 자유롭게 떠나도 되지만, 가이드와 함께하는 여행이 익숙한 중장년이라면 프로그램으로 첫 한달살기를 경험해보는 것도 좋다.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에 지원해 활동비를 받으며 한 달을 보낼 수도 있고, ‘작가로 한달살기’처럼 테마가 있는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도 있다. 코로나19 이후에는 호텔에서 한달살기도 하나의 방법이 됐다. 조금 더 알찬 한달살기를 위해 입문이 되어줄 프로그램, 숙소를 찾을 수 있는 다양한 플랫폼, 한달살기 꿀팁이 가득한 도서까지 참고가 될 내용을 소개한다.

◆한달살기가 처음이라면

많은 중장년이 오래 머무르고 싶어 하는 곳은 제주다. 하지만 제주 외에도 한달살기에 적합한 다양한 도시들이 있다. 어느 도시가 좋을지 모르겠다면, 한달살기를 지원해주는 각 지자체 프로그램을 참고해보자. ‘남도에서 한 달 여행하기’, ‘경남에서 한 달 여행하기’ 등이 대표적이다. 예산을 지원하다 보니 조건이 까다로울 수 있지만, 기회와 혜택을 생각하면 도전해볼 만하다. 각 지자체는 지역의 특색을 담은 명소나 특산품 혹은 농장 체험 등의 다양한 여행을 제안하는데, 만약 프로그램 신청이 어렵다면 지자체의 추천을 참고해 자유 일정을 계획하는 것도 방법이다. 한 달이 너무 길게 느껴진다면 3박 4일이나 일주일부터 시작해도 된다. 지자체별로 지원하는 예산 범위와 신청 조건, 신청 시기가 다르므로 미리 알아두면 좋다. 예산 지원은 사전 지급이 아닌 사후 정산이라는 점 참고하자.

▲지자체에서 진행하는 한달살기 프로그램은 접수 기간, 지원 내역, 지원 조건 등이 다르므로 해당 지자체 홈페이지를 통해 내용을 확인해야 한다.(사진=브라보마이라이프)

◆마을과 깊게 교류하는 한달살기

지역 주민들과 교감하고 머무르는 지역에 깊이 녹아들고 싶다면 ‘마을 호텔’ 형태의 도시에서 한달살기를 해보자. 한 건물에 라운지, 숙박, 헬스, 식사 등의 서비스가 모여 있는 호텔과 달리, 마을호텔은 마을 전체가 하나의 호텔 기능을 한다. 마을 입구의 카페가 안내데스크 역할을 하고, 마을의 맛집이 다이닝 역할을, 곳곳의 공방 등이 체험 서비스 역할을 한다. 그러니 마을 전체가 곧 즐길 거리다.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교류를 할 수 있는 건 덤이다. 관광형 한달살기가 아니라, 살아가는 한달살기를 찐하게 경험하고 싶다면 마을호텔은 어떨까.

ㆍ공주 마을스테이 ‘제민천’ 공주 제민천은 주민들이 유기적으로 마을호텔을 구성하고 있다. 한옥스테이 ‘봉황재’에서 시작하는 마을호텔의 프런트는 ‘가가상점’이 담당하고, 커뮤니티이자 로비 역할은 ‘반죽동247’ 카페가 하고 있다. 봉황재 외에도 ‘공주하숙마을’ 등의 고즈넉한 한옥스테이가 곳곳에 위치하며, 제민천을 중심으로 마을 곳곳에 먹거리와 볼거리가 숨어 있다.

ㆍ강원도 정선 ‘마을호텔 18번가’ 국내에서는 가장 먼저 마을호텔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고한읍의 낙후된 폐광촌에 고한18리 주민들이 힘을 모아 조성했다. 빈집을 리모델링한 숙소에 머무르면 마을식당, 카페, 사진관, 이발관 등에서 사용 가능한 할인 쿠폰을 받을 수 있다. 어르신들이 모여 있는 마을회관은 로비 역할을 한다. 마을을 둘러보다 쉬어가도 좋고, 어르신에게 볼거리를 물어봐도 좋다.

▲군산 마을호텔 후즈데어의 프론트데스크 역할을 하는 음식점,_럭키마케트(사진=럭키마케트 공식인스타그램)

ㆍ군산 ‘후즈데어’ 군산 영화동에서는 ‘영화장’이라는 오래된 목욕탕과 여관이 게스트하우스로 재탄생 한 ‘후즈데어’에서 마을호텔이 시작된다. 프런트 역할은 영화타운에 있는 미국 음식점 ‘럭키마케트’가 담당한다. 스페인 레스토랑 ‘돈키호테’, LP바 ‘해무’, 청주바 ‘수복’ 등이 모여 있는 영화타운은 근대문화유산으로 유명한 군산의 또 다른 매력을 보여준다.

ㆍ서울 ‘서촌유희’ ‘서촌유희’는 오래된 한옥과 옛길의 흔적이 골목 곳곳에 녹아 있는 동네의 개성 넘치는 가게들을 연결하고, 걷기 좋은 골목과 장소를 제안한다. 서촌유희의 한옥 숙소는 휴식을 취하며 나를 돌아보기 좋은 곳이다.

〈책으로 미리 챙기는 한달살기 ‘꿀팁’〉

 

1_여행 말고 한달살기

저자 김은덕, 백종민 출판 어떤책

한달살기를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가이드북. 장기 여행을 준비하는 데 필요한 꿀팁이 가득하다. 특히 해외에서 한달살기를 해보고 싶다면 상황별·계절별 추천 도시들을 보고 나에게 맞는 나라를 찾아보자.

 

2_60대 부부의 피렌체와 토스카나, 그리고 남부 이탈리아 소도시 한 달 살기

저자 김영화 출판 바른북스

한 도시에 머무르며 주변 소도시로 여행을 떠나고 싶은 자유로운 여행자에게 어울리는 책. 대중교통을 이용해 유럽을 둘러볼 방법을 소개한다.

 

3_다녀왔습니다, 한 달 살기

저자 배지영 출판 시공사

일하며 한달살기, 은퇴 후 한달살기, 반려동물과 한달살기 등 나의 상황에 맞는 계획을 세우기 좋은 책. 국내에서 한달살기를 했던 여행자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떠나고 싶어진다.

◆호텔에서 한달살기

‘호텔에서 보내는 바캉스’라는 의미의 ‘호캉스’가 유행하더니 ‘한달살이’ 상품도 등장했다. 깔끔한 공간과 다양한 부대 서비스로 중장년에게 인기가 많다. 즐길거리가 많은 도심에서 일상을 만들어가는 한달살기를 하고 싶다면 호텔에서 머물러보는 것도 방법이다. 가격은 천차만별. 롯데호텔이 내놓은 ‘한 번쯤 꿈꾸는 호텔에서의 삶’을 주제로 한 시그니엘 서울 한달살기는 1000만 원이 넘는다. 신라스테이, 포포인츠바이쉐라톤, 롯데시티호텔 등은 100만~200만 원대에 이용할 수 있다. 호텔별로 제공하는 서비스가 다르니 취향에 맞게 골라보자.

◆주제가 있는 한달살기

하나의 주제를 정해 한달살기를 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만 19세 이상 60세 이하인 작가들의 한달살기를 지원하는 ‘묵호등대마을 논골담길 한달살기’, 제주 시골집에서 보내는 어른의 방학 콘셉트의 ‘제주맥주 한달살기’, 다른 지역에서 원격 근무를 하며 살아보는 일(Work)과 휴가(Vacation)를 함께하는 ‘강원도관광재단 워케이션’, ‘제주 세화리 질그랭이 워케이션’ 등이 있다.

▲묵호등대(사진=동해시)
〈쉼이 되는 공간, 숙소 찾는 플랫폼〉

한달살기에서 중요한 건 머무르는 공간이자 생활을 하는 숙소다. 장기 숙박 상품을 모아둔 플랫폼에서 살고 싶은 숙소를 찾아보자.

ㆍ미스터멘션 ‘쉼’을 제안하는 장기 숙박 플랫폼. 한달살기, 보름살기, 일주일살기에 맞춰 전국의 숙소를 볼 수 있다. 추천 숙소, 호텔, 프라이빗한 곳, 반려동물과 함께할 수 있는 곳 등 다양한 테마가 다양하다. 개인이 숙소를 예약했다가 일어날 수 있는 ‘이중 계약’, ‘당일 입실 거부’ 등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최대 100만 원까지 숙소 비용을 보장하는 안전거래제도가 있다.

ㆍ호텔에삶 한달살기를 할 수 있는 호텔만 모았다. 저렴한 3성급부터 5성급 프리미엄까지 서울, 수도권, 경상, 제주에 있는 호텔 숙박 정보가 있다. 호텔을 예약하기 전 미리 내부를 둘러볼 수 있는 투어를 신청할 수 있다. 매월 할인 프로모션도 있으니 원하는 도시의 호텔 가격을 비교해보고 합리적인 호텔 라이프를 즐겨보자.

ㆍ에어비앤비 에어비앤비는 숙박 공유 서비스다. 전문 숙박업체가 아니라 개인이 제공하는 빈집을 빌리는 개념이기 때문에 공간 상태도 천차만별이고 숙박업체와 같은 서비스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대신 저렴한 숙소를 구할 수 있다. 장기 숙박이라면 할인 제안도 해볼 수 있다. 특히 해외는 에어비앤비가 활성화되어 있어 잘 둘러보면 좋은 집을 구할 수 있다. 숙소 선택에 실패하지 않으려면 ‘슈퍼호스트’가 제공하는 숙소 위주로 보고, 해당 숙소의 후기와 별점을 참고하는 게 좋다.

이연지 기자yeonji@etoday.co.kr

[브라보마이라이프 2022년 7월 12일]

귀촌인 떨게하는 'I의 공포'
비닐하우스 설치비 1000만원 더 들어

인플레이션에 비용 급증
도시민의 농촌行 늘어나는데
철근·콘크리트 등 자재값 뛰어
주택 건축비 최대 30% 더 들듯

비료값 1년새 3배 오르고
국제유가 급등에 난방비도 부담
보일러 끄고 전기장판 생활하기도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비료 가격이 1년도 안 돼 세 배 가까이 올랐습니다. 비닐하우스, 농자재까지 오르지 않은 게 없어요.”

5년 전 귀촌해 전남 담양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정모씨(63)는 요즘 예상치 못한 각종 비용 증가가 당황스럽다. “너무 급하게 부담이 커져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걱정스럽다”는 게 그의 얘기다. 정씨는 “농자재를 보관하는 컨테이너부터 비닐하우스에 들어가는 작은 철재 핀까지 대부분의 가격이 올라 주변 귀촌인은 물론 귀촌 희망자들까지 걱정스러워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주거비용 최소 30% 상승
35만 귀촌가구가 ‘인플레이션 공포’에 떨고 있다. 농사를 짓고 귀촌생활을 하는 전 과정에 걸쳐 비용이 급증하고 있어서다. 귀촌을 결정하고 살 집을 짓고 있는 예비 귀촌인은 주택건설 비용이 애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이 들어 골치를 앓고 있다.

귀촌 비용 부담이 가중되는 것은 집을 짓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주택건설에 필요한 목재와 철근, 콘크리트 가격이 급등해 예비 귀촌인의 주택 마련 부담이 크게 늘었다. 농림축산식품부 2020년 자료에 따르면 귀촌인의 85.2%는 정착자금의 주요 사용처로 ‘주택 마련’을 꼽았다.

올해 목조주택을 지을 예정인 예비 귀촌인 김모씨(58)는 “시공사로부터 ‘3개월 정도 소요될 공사기간에 자재값이 30%는 오를 것으로 보이니, 미리 돈을 입금하면 현재 가격으로 지어 주겠다’는 말을 들었다”며 “목재값으로만 수천만원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돼 미리 돈을 입금할지 고민 중”이라고 했다. 대한목재협회에 따르면 러시아산 제재목 가격은 지난해 12월 기준 ㎥당 57만원으로 2020 12월(39만원)보다 46% 상승했다.

유가 상승으로 난방비 부담도 커졌다. 농촌에는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아 등유 보일러를 쓰는 곳이 많다. 경기 연천에서 53㎡ 크기 주택에 거주하는 박용수 씨(59)는 “2년 전 실내 등유가 한 드럼에 16만원이었는데 최근 206000원에 구매했다”며 “추운 겨울에는 난방비만 한 달에 50만원씩 들어 부담이 크다”고 설명했다.
농자재·비료값 등 각종 비용이 증가해 귀촌인들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 한 귀농·귀촌 박람회를 찾은 관람객들이 부스를 돌아보고 있다. /한경DB
농사 비용도 크게 늘어
귀촌인들은 “농사 짓는 비용도 크게 늘었다”고 입을 모았다. ‘농사시즌’에 들어가기 전 뿌려줘야 하는 비료 가격부터 그렇다. 원료가 되는 요소와 염화칼륨 가격이 올랐기 때문이다.

한국비료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중국의 수출 제한으로 요소 수입이 막히면서 요소비료 가격은 세 배가량 급등했다. 이후 지금까지도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다. “1년 전 이맘때만 하더라도 요소비료 한 포를 1만400원에 구매했는데, 지금은 2만6900원은 줘야 한다”는 게 귀촌인들의 설명이다.

하우스용 필름값 등이 올라 비닐하우스를 짓는 비용도 크게 늘었다. 경상남도와 일선 시·군 농협 등에 따르면 비닐하우스 시설 자재인 철강값은 t당 150만원가량으로 지난해보다 약 40만원 상승했다.

하우스용 필름도 소비자가격이 10~15% 뛰었다. 전북에서 귀촌 생활을 하는 한모씨는 “작년 이맘때 650㎡ 비닐하우스를 짓는 데 1200만원이 들었는데, 올해는 2000만원은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귀촌 증가세 꺾일 수도
이런 흐름은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 등으로 본격화한 귀촌 증가세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2020년 귀촌 가구는 345205가구로 전년 대비 8.6% 증가해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은퇴 후 여유로운 농촌 생활을 꿈꾸는 사람이 늘고, 코로나19 확산으로 저밀도 사회에 대한 관심이 증가한 데 따른 것이라는 게 농식품부의 분석이다.

귀촌 비용이 증가하면 귀촌을 준비하던 사람들이 계획을 접거나, 실행 시기를 늦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전남 무안군 농업기술센터 관계자는 “철근 가격이 오르면서 하우스와 축사를 신축하는 분들의 어려움이 크고, 유가도 급등해 보일러 사용을 멈추고 전기장판으로 겨울을 버티는 경우도 있다”며 “귀촌에 필요한 비용을 꼼꼼히 계산할 것을 권하고, 초기에 무리한 투자비용을 들여 귀촌하려는 것은 말리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장강호 기자

 

[한국경제 2022년 2월 25일]

민주지산 속 오지 ‘영동 도마령마을’
60대 중심 귀촌으로 9→42가구
전원생활 로망 구현 “스트레스 끝”

마을 생기 되찾고 주민 단합도 이뤄
산촌축제·마을기업 등 아이디어 분출
“베이비부머가 농촌문제 해법” 주목

도시민 485만 “5년 내 귀촌 준비”
‘귀농’ 특성 살린 맞춤정책 아쉬워
의료·문화·교육 획기적 지원 필요
지난 1월26일 오후 충북 영동군 상촌면 둔전리 도마령마을의 주민인 임종덕 전 이장, 이미선 부녀회장, 윤여생 현 이장이 마을기업에서 공동운영하는 카페 ‘아! 도마령’ 앞에 섰다. 카페의 뒤로 1242m 높이의 민주지산이 한 폭의 수묵화처럼 펼쳐져 있다. 도마령마을은 전체 42가구 중 귀농귀촌인이 37가구이고, 그 대부분이 60대 이상인 베이비부머 정착촌이다. 영동/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첫눈에 반했어요!”충북 영동군 상촌면 둔전리의 귀농귀촌 새내기 홍애란(64)씨가 도마령마을을 제2의 인생 출발지로 선택한 이유는 단순 명료했다. 이 마을을 처음 찾은 것은 3년 전이다. 이후 거주지인 청주와 이곳을 부지런히 오가다가, 지난 1월 초 남편과 강아지 두 마리를 데리고 아예 정착했다.도시에 거주하는 베이비부머 세대가 본격적인 은퇴기를 맞으면서 귀향귀촌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광의의 베이비부머는 1차(1955~1964년생) 780만명, 2차(1968~1974년생) 623만명, 이들 사이에 출생한 248만명을 모두 합쳐 1700만명에 육박한다. 전체 국민의 3분의 1에 이르는 거대한 인구집단이다.<한겨레>가 설 연휴 직전인 지난달 26일 방문한 도마령마을은 대표적인 베이비부머 정착촌이다. 전체 42가구 중 귀농귀촌인이 37가구인데, 대부분 60대 이상이다. 부산에 살다가 10년 전 옮겨온 윤여생(59) 이장은 “63년생인데, 마을에서 두번째로 어리다”며 웃음 지었다.마을의 위치는 충북(영동)·전북(무주)·경북(김천)의 3도 경계지로, 높이 1242m인 민주지산의 중턱이다. 산의 초입인 영동군 용화면 사무소에서 구불구불한 산길 포장도로를 따라 차로 20분이나 올라가야 닿는 오지다. 귀농귀촌 가구 중에서 이 마을 출신은 하나뿐이다. 나머지는 서울·부산·포항·청주 등 도시에서 살다가 아무 연고도 없는 이곳으로 옮겨왔다. 삭막한 도시에서 벗어나 아름다운 자연 속의 전원생활을 즐기고 싶은 로망 때문이다. 민주지산은 봄에는 철쭉이 만발하고, 여름에는 원시림과 계곡이 일품이며, 가을에는 단풍으로 불타고, 겨울에는 설경이 장관이어서 사시사철 많은 등산객의 사랑을 받는다.베이비부머들은 귀향귀촌 이후 마음이 자유로워지고, 스트레스를 안 받게 됐으며, 건강이 좋아졌다고 함박웃음을 짓는다. 귀농귀촌 6년차인 이미선(58) 부녀회장은 “포항에서 교사로 있을 때 이곳을 찾았는데, 가을 단풍이 너무 아름다웠다”며 “아직 현직에 있는 남편은 주말마다 와서 힐링한다”고 말했다. 취미로 꽃차를 만드는 홍애란씨는 “집 주변이 온통 야생화”라며 “꽃차를 준비할 때 가장 행복하다”고 밝은 표정을 지었다.
지난 1월 초 충북 영동군 상촌면 둔전리 도마령마을로 귀농귀촌한 전상윤(왼쪽), 홍애란씨 부부가 1월26일 오후 집 앞에서 반려견들을 안고 있다. 영동/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주민 감소로 어려움을 겪던 도마령마을은 다시 생기를 찾고 있다. 토박이인 임종덕(63)씨는 “30~40가구에 달하던 마을이 9가구까지 줄었는데 귀농귀촌으로 큰 변화를 맞았다”며 “희망자가 더 있어서 70명인 주민 수가 3~4년 안에 100명까지 늘 것 같다”고 말했다.도마령마을은 토박이와 귀농귀촌 주민이 사이좋게 지내는 모범마을로 꼽힌다. 임종덕씨는 30년간 맡았던 이장 자리를 4년 전 윤여생 현 이장에게 넘겼다. 그는 “마을 발전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것을 보고 낙후된 고향을 조금이라도 발전시키려면 젊은 사람이 낫겠다 싶었다”고 말했다.도마령마을은 주민들의 단합을 토대로 마을 발전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친다. 2015년부터 매년 8월 둘째 주 토요일에 도마령산촌문화축제를 연다. 가수, 연주자, 합창단 등을 초청해 공연을 벌이는데, 많을 때는 600여명이 찾을 정도로 입소문이 났다. 코로나 사태로 2년간 중단했는데, 올해는 꼭 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주민들의 공동출자에 정부 지원을 얹어서 ‘마을기업’도 세웠다. 한과와 호두기름 같은 농산물 판매사업을 하고, 마을카페 ‘아! 도마령’도 문을 열었다.코로나 사태로 마스크 대란이 발생하자 마을에서 마스크를 만들어 지역사회에 나눠 줬다. 이 밖에도 매년 4월 개최하는 벚꽃축제, 각계 유명인사의 초청강연을 듣는 ‘인문학 교실’, 천연비누와 향수를 제작하는 영농 신활력사업, 독거노인에게 식사와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부녀회 등 마을 살리기를 위한 노력은 끝이 없다.정부와 지방자치단체도 이런 노력을 인정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마을문화공간 건립을 지원하기로 했다. 영동군도 ‘도마령마을 살아보기 체험 프로그램’에 필요한 6평 규모의 임시주택(농막)을 제공하기로 했다.농촌은 급격한 인구 감소로 소멸위기를 맞고 있다. 반면 서울 등 대도시는 인구 집중으로 일자리 부족, 집값 상승, 교통 혼잡이 심해지며 삶의 질이 떨어지고, 사회문제도 심각하다. 도시에 사는 베이비부머의 귀농귀촌에서 농촌과 도시를 모두 살리고, 국토 균형발전도 이루는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늘고 있다.베이비부머의 맏형 격인 1955년생은 이미 2020년 고령인구(65살 이상)로 진입했다. 막내 격인 1974년생까지 앞으로 20년 동안 연평균 82만5천명씩 고령인구가 늘어난다. 농촌경제연구원의 조사 결과를 보면 19살 이상 도시민 중에서 5년 이내 농산어촌에서 자신의 ‘버킷리스트’를 실천하기 위해 준비 중인 사람은 485만5천명으로 추정됐다. 이 중에서 50대 이상은 266만7천명으로 55%를 차지한다. 1960~70년대 농촌을 떠나 도시로 향했던 ‘이촌향도’와 정반대 흐름을 만들 토대가 있는 셈이다.
자료: 통계청(2022년 기준)
자료: 농촌경제연구원(2019년)
 
주민들의 자발적인 노력과 정부·지자체 등의 지원이 곁들여지면서 귀농귀촌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전남 구례군의 경우 2013년 1월부터 2021년 9월까지 8년9개월 동안 4001명(2981가구)이 귀농귀촌했다. 구례 농업기술센터의 김안란 주무관은 “귀농사관학교로 불리는 체류형 농업창업지원센터를 통한 체계적인 정착 지원과 월 10만원에 빈집을 빌려주는 구례정착보금자리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주효했다”고 소개했다. 군 인구가 2018년부터 감소세로 바뀐 것은 아쉽지만, 2013~2017년에는 5년 연속 증가했다.귀농귀촌 인구는 매년 50만명 안팎에 달한다. 하지만 실제 농사를 짓는 ‘귀농’은 2~3%에 그치고, 대부분은 전원생활을 즐기려는 ‘귀촌’이다. 귀농과 귀촌은 필요한 지원이 다를 수밖에 없다. 또 자녀를 동반한 청년세대와 부부 중심의 베이비부머도 차이가 크다. 베이비부머들은 귀농보다 귀촌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다. 도마령마을의 베이비부머도 농사를 주업으로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 작은 텃밭을 가꾸면서, 연금과 기존 재산으로 생활한다. 윤여생 이장은 “나이 들어 농사를 짓는 것은 힘들다”며 “정부와 지자체 지원이 도움 되지만, 농사가 주업이 아닌 귀촌자와는 좀 거리가 있다”고 아쉬워했다.지자체의 지원 정책은 농촌 살아보기 체험, 빈집 임대, 주택 수리·신축 지원, 농사 교육, 영농자재 공급, 농업창업 융자 등 비슷하다. 또 상대적으로 귀농과 청년세대 중심으로 짜여 있다. 지역과 수요자의 특성을 파악하고 귀농형과 귀촌형, 청년세대형과 베이비부머형으로 세분한 맞춤형 정책이 필요하다는 요청이 많다.강원도 홍천군은 베이비부머 등 은퇴자가 전원생활을 편하게 할 수 있는 지원시스템 구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2016년 전국 처음으로 귀농귀촌 특구를 지정하고 전원도시 정주기반 조성 등을 통해 4년간 1만2천명의 귀농귀촌을 유입함으로써 인구 감소를 완화시키고 있다.주말농장을 만들어 평일 닷새는 도시에서 일하고 주말 이틀은 시골에서 보내는 ‘5도2촌형’ 귀농귀촌도 꾸준히 늘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송미령 박사는 “인구가 줄어드는 농촌의 저가주택에 대해서는 2주택자 적용을 제외해 종합부동산세·취득세 감면 혜택을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정부와 지자체가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지원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장시혁 영동군 농촌정책팀장은 “20년 동안 귀농귀촌 지원을 하고 있지만 아직 농촌인구 감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며 “인구 유출을 막고 적정 인구를 유지하려면 부족한 의료·문화·교육 인프라에 대한 국가 지원부터 파격적으로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곽정수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jskwak@hani.co.kr
<베이비부머가 떠나야 모두가 산다>의 저자인 마강래 중앙대학교 교수가 1월20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베이비부머 100만명 귀촌하면 2년 내 집값 안정”
 
‘베이비부머 떠나야 …’ 쓴 마강래 중앙대 교수
 
베이비부머의 은퇴와 산업구조 변화라는 두 개의 ‘메가트렌드’로 인한 사회 충격과 갈등을 해결하려면 베이비부머의 귀농귀촌이 필요합니다.”마강래 중앙대 교수는 지난달 20일 <한겨레> 인터뷰에서 “베이비부머가 대도시를 떠나 농촌에서 인생 이모작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정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마 교수는 <베이비부머가 떠나야 모두가 산다>의 저자다.
―도시계획을 전공했는데, 베이비부머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미래 공간구조 변화를 촉진하는 메가트렌드 때문이다. 인구 측면에서 저출산·고령화의 영향이 크지만, 1955년생부터 1974년생까지 약 1700만명에 달하는 베이비부머의 은퇴 문제도 있다. 이들은 상대적으로 자산도 많고, 소비력도 높지만 은퇴 이후 어려운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연금도 충분하지 않다. 특단의 조처가 없으면 청년층의 부담이 커져 세대 간 갈등이 불거질 수 있다.”
―최근 펴낸 <부동산, 누구에게나 공평한 불행>에서는 산업구조 변화에 주목했다.
“1990년대 탈공업화로 수도권 쏠림이 완화됐는데, 2012~2013년 이후 4차 산업혁명으로 다시 대도시 지향성이 강해졌다. 청년들이 선호하는 일자리가 대도시, 수도권, 서울 중심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두 가지 메가트렌드의 결합이 미칠 영향은?
“베이비부머는 공업화 과정에서 ‘이촌향도’를 주도했는데, 은퇴 이후에도 대도시를 떠나는 게 쉽지 않다.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아 점점 대도시로 이동한다. 결국 모든 세대가 대도시로 집중되어 매우 심각한 사회문제를 만들게 된다. 집값 폭등, 출산율 하락, 지방인구 유출은 이런 공간적 쏠림 현상과 깊은 관련이 있다.”
―베이비부머의 귀농귀촌을 통한 청년층과의 ‘공간적 분업 전략’을 제시했는데.“베이비부머는 은퇴 이후 도시에 남아도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다. 하지만 귀농귀촌을 하면 인생 이모작의 기회가 열린다. 청년층과의 갈등 구조도 완화할 수 있다.”
―귀농귀촌을 희망하는 베이비부머가 많은데, 대규모 이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는?
“일자리, 병원, 사회적 관계 등 세 가지 요인이 가로막고 있다. 부부의 은퇴 이후 적정 생활비는 월 270만원인데, 이를 충족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으로 내려가면 향후 20~30년간의 생활을 예측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또 정기적인 건강체크가 필요한데 지방에서는 여의치 않다. 사회적 네트워크가 끊길 것이라는 걱정도 있다.”
―어떤 정책이 필요한가?
“지역 활성화를 위해서는 베이비부머의 귀농귀촌 정책을 먼저 추진해야 한다. 그다음에 장기적으로 청년층 유입 정책을 써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청년층 유입에 더 역점을 두고 있다.”
―귀농귀촌 정책에서 베이비부머와 청년층이 다른 점은?
“베이비부머는 농사 기술이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귀농보다 귀촌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베이비부머와 농촌, 중소기업을 연결하는 ‘3자 연합 모델’을 제안했는데.
“3자를 결합하면 엄청난 시너지가 발생할 수 있다. 베이비부머가 지방 중소기업에서 주 2~3일 일하면, 부족한 생활비를 보충할 수 있다. 중소기업은 만성적인 인력난을 해결하고, 농촌도 살 수 있다.”
―베이비부머가 얼마나 귀농귀촌을 할 수 있다고 보나?
“시골에서 수도권으로 올라온 1·2차 베이비부머가 440만명 정도다. 이들 중에서 10%만 움직여도 44만명이다. 서울 출생자 중에도 귀농귀촌을 원하는 사람이 많다. 여기에 (‘5도2촌’ 생활자와 같은) 관계인구까지 포함해서 100만명 정도를 타깃으로 삼을 수 있다.”
―100만명이 빠져나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집값 안정이다. 베이비부머는 주택 보유율이 높다. 100만명이 지방으로 내려가면 엄청난 임대용 주택이 쏟아진다. 새 아파트를 공급하려면 4~5년 걸리지만, 베이비부머가 이동하면 빠르면 2년 내 60만~70만호가 나온다.”
 
곽정수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녹취 김슬아 보조연구원
 
[한겨레 2022년 2월 7일]

살림의료사회적협동조합, 병원과 집의 중간집 ‘케어B&B’ 5월말 문 열어

LH 매입형 주택 빌려, 13호 개별 가구에 3호 공유공간 갖춰 ‘의료·돌봄’

단기 입주형 재활주택 ‘케어비앤비(B&B)’는 의료와 일상훈련을 거쳐 살던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지원한다.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 올해 서울시 참여예산사업으로 운영하고 있다. 사진은 10일 오후 은평구 갈현동 케어비앤비 1호 입주자인 박희찬 할아버지의 활동 모습. 건강모임방에서 작업치료사의 도움을 받아 관절 가동운동을 한다.

 

“집에서 돌봄 받을 수 있는 마을을 만드는 게 목표”

올해는 시 참여예산 사업으로 추진

입주자 월 20만원 내고 독채에 살며

의료·생활·관계 등 안심 서비스 받아

 

“하루 세 끼 제대로 식사해 건강이 좋아진 것 같아요.”


지난 10일 오후 은평구 갈현동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의료사협)의 단기 입주형 재활주택 ‘케어비앤비(B&B)’ 2층 건강모임방. 박희찬(77) 할아버지가 2주 동안 이곳에서 지낸 소감을 말했다. 운동을 꾸준히 할 수 있는 것도 회복에 큰 도움이 되었단다.

2년 전 박 할아버지는 뇌경색을 앓았다. 혼자 생활하며 치료를 받았으나 후유증이 천천히 나타났다. 집에만 머무르면서 무기력해지고, 신체기능도 점점 더 떨어졌다. 혼자서 더는 생활하기가 어려운 상황이 되어 딸이 조합원인 살림의료사협의 케어비앤비 입주 신청을 했다. 심사선정위원회 심사를 거쳐 5월 말 입주해, 1호 입주민이 됐다.

케어비앤비 건물 입구에 붙어 있는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원들의 ‘호혜적 돌봄’ 실천 활동 기록판인 ‘노동의 협동’을 보고 있다.

 

의료사협은 주민들이 출자(5만원 이상)해 만든 협동조합 의료기관이다. 예방에 중점을 두고 조합원의 건강 자치력을 높이며 지역에서 건강공동체를 함께 만들어가는 일을 지향한다. 은평 지역에서 2012년 설립된 살림의료사협은 조합원이 3500가구이다. 62%는 은평, 나머지는 인근 자치구나 다른 지역에 산다. 현재 살림의료사협은 의원, 치과, 재가복지센터, 단기 입주형 재활주택 등을 운영하고 있다. 8월쯤 한의원, 데이케어센터를 열 계획이다.

살림의료사협 임직원들은 현장에서 지역 주민을 만나며 대다수가 시설보다는 집에서 돌봄을 받고 싶은 욕구가 크다는 걸 알 수 있었다. 2018년부터 두 차례 일본 요양시설을 둘러봤다. 병원과 집의 ‘중간집’ 제도가 눈에 띄었다. 사업 자체가 수익성이 있지 않다 보니 의료협동조합, 민주적의료기관연합회 소속 의료·돌봄 기관들이 주로 운영하고 있었다. 추혜인 살림의원 원장은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의료와 일상훈련을 지원하는 점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지난해 살림의료사협은 서울시 참여예산사업으로 ‘중간집’인 단기 입주형 재활주택을 제안했다. 아이디어는 시민투표에서 뽑혀, 예산(4억4500만원)과 담당 부서(어르신복지과)가 정해졌다. 살림의료사협이 실행 기관이 됐다.

민관 협력도 이뤄졌다.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이 다리를 놓아 한국토지주택공사 서울지역본부가 어렵게 신축 건물을 찾아 임대해줬다. 그 덕에 공간을 안정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됐다. 한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연합회는 의료복지 통합모델의 전국 확산 가능성을 보여주는 역할을 했다. 은평구청은 대상자 선정 등의 행정적인 지원 역할을 맡았다. 사업명은 숙박 공유서비스 ‘에어비앤비’처럼 지역에서 돌봄을 공유한다는 의미로 ‘케어비앤비’로 정했다.

 

올해 케어비앤비 입주 대상자는 중위 소득 150% 이하 만 60살 이상의 서울에 주소를 둔 시민이다. 자치구와 실행기관 그리고 재활의학과 전문의로 구성된 심사선정위원회에서는 신청자의 병력과 현재 독립생활 수준을 확인한다. 의료 조건과 재활 필요성도 살핀다.

특히 재활 의지와 어느 정도의 독립생활을 할 수 있는지에 주안점을 둔다. 각자 독채에서 개별 가구로 생활하기에 입주자는 일정 수준의 일상생활을 스스로 할 수 있어야한다. 밤에는 상주인력이 없지만 가구마다 안심벨이 있어 응급 상황일 때는 모바일폰 앱으로 간호사와 담당자에게 바로 연락이된다. 추혜인 원장은 “단순 돌봄이 아니라 집으로 다시 돌아가 일상생활을 할 수 있게 하는 게 목표이기에 본인의 재활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5층 다가구 주택 건물인 케어비앤비에는 16호가 있다. 이 가운데 13호는 개별 가구 공간이다. 약 35㎡ 규모로 방 2개에 화장실, 거실 겸 주방, 베란다를 갖췄다. 나머지 3호는 건강모임, 공동주방 등 공용공간으로 쓴다. 장애인용 엘리베이터가 마련돼 있다.

입주자는 주거비로 월 20만원을 내고, 의료·생활·관계 안심서비스를 받는다. 기존 이용하던 장기요양서비스나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는 이곳에 와서도 이어진다. 거주기간은 최대 6개월이고, 2개월 연장할 수 있다. 개별 가구 공간은 자율적으로 꾸밀 수 있고, 온돌이나 침대도 선택할 수 있다. 집에서 쓰던 가구를 갖고 와도 괜찮다. 민혜란 살림의료사협 통합돌봄팀장은 “최대한 집처럼 지낼 수 있게 해, 나중에 집에 돌아가 생활을 잘할 수 있게 도우려 한다”고 했다.

재활실에서 혼자 누웠다 일어나는 연습에 앞서 치료사가 굳었던 팔을 펴준다.

 

박 할아버지는 이날 점심 뒤에 건강모임방에 내려와 텔레비전을 보면서 가벼운 관절가동운동을 하고 있었다. 고관절이 밖으로 빠지지 않게 노란 밴드를 허벅지에 끼고, 앉은키 높이의 대에 꽂힌 빨간 풍선을 손으로 쳤다. 중간중간 손을 오므렸다 폈다 하면서 박수도 쳐본다.

잠시 뒤 재활실로 옮겨 치료사 도움을 받아 누워 나무 봉을 들고 팔을 펴 위로 올리기를 한다. 케어비앤비 직원들이 옆에서 “어머머, 팔이 펴졌어요. 어르신 이제 충분히 혼자 생활할 수 있겠어요”라며 연신 응원과 격려의 말을 건넸다. 박 할아버지는 이들의 응원 덕분인지 이날 누운 자리에서 도움 없이 일어나기를 처음으로 해냈다. 운동을 마친 박 할아버지는 “다들 친절하게 잘해줘 불편한 게 하나도 없다”며 “6개월만 있어야 해 아쉽다”고 했다.

전날 입주한 김아무개 할아버지에게도 하루 새 작은 변화가 나타났다. 휠체어에 20분도 채 앉아 있지 못하던 그가 이날 40분도 거뜬하게 앉아 있어 팀원들이 기뻐했다. 김할아버지는 4년 전 뇌경색으로 쓰러져 그간 거의 집에서만 지냈다. 이층집이라 외출이 힘들어, 치과나 안과 등 치료를 받으려면 사설 구급차를 이용해야 해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했다. 아버지를 돌보기 위해 요양보호사가 된 딸의 권유로 재활 의지를 갖고 이곳에 입주했다.

케어비앤비는 새벽 6시30분에서 밤 9시30분까지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입주자의 관절 운동 범위를 확인해 재활운동 계획을 세워 요양보호사, 작업치료사 등이 진행한다. 재활운동은 주중에 매일 한다. 방문간호는 입주자 건강 상태에 따라 주중 횟수(2~5회)가 정해진다. 코로나19로 식사는 개별적으로 한다. 사회적기업에서 완전식 또는 노인 맞춤식으로 만든 세 끼가 제공된다.

케어비앤비 직원과 함께 보행보조기를 짚고 걷기 연습에 나선다.

 

실행 기관 입장에서 애로점과 아쉬운 점도 있다. 무엇보다 새로운 모델이다 보니 설명하기가 어렵다. 추혜인 원장은 “요양시설이 아니면서 그냥 주택과는 달라 설명이 쉽지 않다”며 “내부적으로 각자 생각하는 모습도 조금씩 달라 맞춰가고 있다”고 했다.

서울시 참여예산 사업으로 대상이 60살 이상으로 정해진 점도 아쉽다. 애초 계획에서는 연령 제한 없이 공적 지원을 받기 전 어려움 겪는 이들을 돌보는 것으로 대상을 잡았다. 민 팀장은 “재활과 일상 복귀를 위한 지원 필요성은 젊은 연령층에도 있을 수 있는데 (연령이 제한돼) 안타깝다”고 했다.

살림의료사협의 목표는 집에서 돌봄을 받고 지낼 수 있는 마을을 만드는 것이다. 케어비앤비와 더불어 지난해부터 또 하나의 모델 ‘마을간호스테이션’을 실험하고 있다. 마을에 간호스테이션을 두는 콘셉트이다. 마을이 일종의 병동이 되는 셈이다. 간호사, 영양사, 작업치료사, 사회복지사, 물리치료사, 의사(가정의학과 전문의)가 팀을 구성한다. 간호사들이 정기적으로 방문하고 필요하면 주치의, 사회복지사 등에게 연락한다. 팀은 매주 1회 사례회의를 해서 담당 환자에게 필요한 자원을 연결하는 등의 지원을 한다.

마을간호스테이션은 지난해 9월 시범사업을 거쳐 올해 3월부터 은평 지역에서 추진하고 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사회적 재난을 대비하는 복지사업 ‘사회백신 프로젝트’에 선정돼 4년 동안 진행할 예산을 확보했다. 현재 서비스 이용자는 80명 정도다. 30명가량이 주 1회 간호사의 정기적인 방문 서비스를 받고 나머지는 부정기적으로 이용한다. 주로 욕창 관리, 비위관 등 관 관리, 이동식 치과 장비를 활용한 와상 장애인들의 치과 치료 등이 이뤄진다.

추 원장은 “실제 해보니 지역에 간호가 필요한 주민이 많아 깜짝 놀랐다”며 “복지부 커뮤니티케어 사업이 제대로 되려면 마을을 순회하는 방문 간호사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살림의료사협은 필요성을 발굴해, 서비스를 제공하고, 어느 정도 비용이 드는지, 어느 정도 역량을 갖춰야 하는지 실험을 이어간다. 그는 “4년쯤 지나면 방문간호가 훨씬 폭넓게 제도화될 거라 기대한다”며 “우리의 실험이 도움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케어비앤비 개별가구 공간에서 김아무개 할아버지가 휠체어에 앉는 시간을 늘려가는 연습을 하고 있다.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한겨레 2021년 6월 18일]

7개동에 38가구, 공유·공동체·근생 시설 갖춰 입주 진행 중

중랑구 겸재로에 서울 첫 공동체주택마을 ‘도서당‘이 지난 3월 준공됐다. 주택 7채, 38가구에 공용·공동체·근린생활 시설을 갖추고 건물마다 책 테마를 붙였다. 입주민들은 규약을 마련해 공동의 생활 문제를 풀어가며 공동체 활동을 해나간다.

“공동체 활동 모습 떠올리면 벌써 설레요”

2채는 셰어하우스, 나머지는 다세대


마을 연습실·창작소·라운지 등 활용

수익사업도 가능, 자족공동체 꿈꿔

공동체주택은 주거공간과 더불어 독립된 공동체 공간이 있는 주택을 일컫는다. 입주민들은 규약을 마련해 공동의 생활 문제를 풀어가며 공동체 활동을 한다. 이런 공동체주택 7채가 한 번에 들어선 마을형이 서울에 처음 생겼다. 바로 중랑구 겸재로에 있는 공동체주택마을 ‘도서당’이다. 주거에 공동체와 책 문화를 더해 마을을 만들었다. 

 서울시는 2015년 공공임대, 민간임대, 민관협력 등의 방식으로 공동체주택 사업을 시작했다. 이듬해 겸재로 도로 확장 뒤 남은 자투리 필지(1625㎡)를 공동체주택으로 활용할 계획을 세웠다. 겸재로는 면목2동사거리에서 중랑천으로 가는 가로길이다. 경의선 중랑역, 상봉역과 지하철 7호선 면목역에서 걸어 15분 거리에 있다. 이 길에 지난 3월 7채의 신축건물이 준공됐다. 노출 콘크리트의 미니멀한 외관의 4~5층 건물이 400m 가로길 중간중간에 들어섰다.

 필지에 따라 모양새는 조금씩 다르지만 한눈에 공동체주택마을 ‘도서당’ 건물인 걸 알 수 있다. 건물 앞 색색깔의 도로표지판엔 건물명과 층별 안내가 적혀 있다. 도서당 이름 앞엔 건물마다 책의 테마(인문학·문화예술·요리여행·어린이·IT영상·소설에세이·디자인)가 붙었다. ‘책을 통해 배움의 기술과 삶의 기쁨을 누리는 도시 속 서당, 책 읽는 집’이라는 모토가 녹아 있다.

 사업 추진 방식을 정하고 기본계획과 공모지침을 세워, 통합운영주체를 선정하기까지 3년이 걸렸다. 이 과정에서 서울 첫 마을형 공동체주택으로 콘셉트를 정했다. 도난주 서울시 공동체주택 책임관은 “공동체주택 입주자가 많고 근린생활시설도 있어야 지역에 잘 안착하고 파급력도 생길 수 있어 기존 건물 단위에서 마을 단위로 추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사를 했거나 앞둔 입주민 3명이 5월28일 인터뷰에 앞서 도서당 공용·공동체 공간에 모였다. 입주 2개월째인 뭉흐바야르 오양가씨가 방음시설을 갖춘 마을연습실에서 악보대 앞에 서 있다.

 사업 추진 방식은 민관협력으로 이뤄졌다. 서울시가 시유지를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에 현물 출자하고, SH공사는 민간임대업자를 공모로 선정해 토지를 30년, 계약을 연장할 경우 최대 40년간 빌려주는 방식이다. 민간임대업자는 토지 이용료를 내고, 서울시는 대출 알선(보증사, 협약 은행), 대출금에 대한 8년간 이자(연 2% 기준)를 지원해준다.

 토지계약이 끝날 때는 건설원가로 SH가 건물을 매입한다. 통합운영주체로 경간도시디자인건축사사무소와 유석연 서울시립대 교수팀이 선정돼 2019년 건축허가와 공동체주택 예비인증 통과를 거쳤다. 2019년 8월 착공해 약 20개월 걸려 완공했다. 통합운영주체는 설계, 시공, 입주자 모집, 임대, 공간 관리, 프로그램 기획과 운영을 맡는다.

지난해 예비입주민으로 신청해 공동체 프로그램 기획에 참여하고 있는 진주환씨가 마을 파티룸과 연결된 루프트톱 벤치에 앉아 웃고 있다.

 5월28일 디자인 도서당의 1층 카페에서 3명의 입주민을 만났다. 모두 20~30대의 1인 가구다. 강수종(27)씨는 한국독립운동사를 전공하는 박사과정생이다. 그는 4월 이사할 집을 찾다 SH공사 누리집에서 공동체주택을 알게 돼 도서당 입주 신청을 했다. 방 하나에 거실 겸 부엌이 있는 독채를 쓸 수 있는 공간이다. 

 강씨는 학교 근처 고시원에서 살다 조금 나은 환경에 주거비 부담도 줄일 수 있는 곳을 찾았다. 도서당이 새 건물에 주거환경도 괜찮고, 전공을 살려 공동체 프로그램에 참여해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지원했다. 그는 “방에 넓은 창문도 있고, 근처에 중랑천이 있어 마음에 들었다”며 “여러 분야의 전문가나 관심 있는 입주민들이 모여 공동체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는 점도 끌렸다”고 덧붙였다.

 진주환(35)씨는 마케팅 분야에서 7년 정도 일한 기획자이자 여행 프리랜서다. 입주계약을 끝내고 이사 날짜를 조율하는 중이다. 그는 지난해 여름 청년주택 관련 지원 사업을 찾아보다가 공동체주택을 알게 됐다. 1인 가구로 오래 살아, 이웃과 교류하며 프로그램을 함께 하는 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한국독립운동사 전공을 살려 공동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싶은 강수종씨가 인문학 라운지에서 책을 펼쳐보고 있다.

 진씨는 30년 넘은 소형아파트에 전세로 살았는데 단열이 잘되지 않아 겨울철 계량기 동파로 여러 차례 고생한 경험이 있어 무엇보다 신축건물인 점에 끌렸다. 지난해 예비입주자 인터뷰를 거쳐 입주자 프로그램 기획에 참여하면서 변화를 느낀다. 그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던 이전과 달리 다양한 사람을 알게 되고 동네 활동도 하면서 생활이 달라졌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뭉흐바야르 오양가(25)씨는 도시설계를 전공하는 박사과정생이다. 몽골 유학생인 그는 친구 2명과 함께 4월부터 소설·에세이 도서당 셰어하우스에서 살고 있다. 입주해 두 달을 산 오양가씨는 “주거비 부담은 줄고 삶의 질은 올라갔다”고 웃으며 말했다. 월세가 이전보다 10만원 정도 줄었고 주거환경은 좋아졌단다. 그는 “이전엔 원룸이라 음식을 하면 온 집에 냄새가 배어 지내기가 힘들었는데, 이젠 공유주방에서 음식을 할 수 있어 냄새 걱정을 더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 친구들과 함께 지내 덜 외롭고, 중랑천을 따라 산책로로 학교에 갈 수 있어 생활에 활력도 생겼다.

 도서당 입주 신청자격은 만 20살 이상 무주택 가구 구성원이다. 공동체주택 규약에 동의하고 도서당 테마별 활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가구마다 연 2회 공동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이다. 입주신청서를 내면 서류심사로 적격 여부를 판정한 뒤, 통합운영주체와 SH공사 공동체주택 코디네이터가 화상으로 인터뷰한다. 주로 지원 동기와 입주 뒤 활동 계획을 묻는다. 

 세 사람은 “인터뷰한다고 해 긴장은 좀 됐지만, 막상 해보니 편안하고 재미있었다”고 했다. 그들은 인터뷰에서 나눈 얘기를 전했다. 진씨는 그간의 일 경험을 살려 이웃들과 함께 여러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겠다고 했단다. 주변의 산, 공원, 하천 등을 활용해 마을탐방 코스를 운영하는 등의 아이디어를 덧붙였다. 

 강씨는 이웃들과 독서모임을 하거나 한국 독립운동 관련 영화를 함께 보고 얘기도 나누겠다는 구상을 내놓았단다. 역사 왜곡에 대한 주민이나 청소년의 이해를 돕는 일도 적극적으로 해볼 생각이다. 오양가씨는 한글을 배운 경험을 살려, 어르신 대상 한글과 글쓰기 강좌를 열어볼 계획이다. 그는 “입주 인터뷰를 하면서 공동체 프로그램과 활동에 대한 방법을 함께 찾을 수 있었다”고 했다. 세 사람은 “모든 가구의 입주가 끝나고 집단면역이 생겨, 공동체 활동을 하는 모습을 떠올리면 벌써 설렌다”고 웃으며 말했다.

 도서당 주택 7채 가운데 2채는 셰어하우스이고 나머지는 다세대주택이다. 다세대주택 대부분은 1~2인 가구용이고, 이 가운데 전용면적 30~50㎡ 이하가 22호 있다. 호수는 통합운영주체와 상호 협의해 정한다. 주택 보증금과 월세는 주변 시세의 90% 수준이다. 준공 시점 감정평가 금액 기준이다. 입주자는 신청자격에 따라 대출과 이자 등 금융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최초 계약 기간은 2년, 재계약 요건을 유지하면 최장 20년 살 수 있다.

 공동체 공간으로는 마을 빨래방이 2곳 있고, 4명이 앉을 수 있는 인문학 라운지, 루프트톱과 연결된 마을 파티룸, 전신 거울과 방음방이 있는 마을 연습실, 유튜브 촬영을 할 수 있는 마을 창작소 등이 있다. 공간 활용계획은 통합운영주체가 입주자들과 협의해 정한다. 비영리 근린생활시설 2호도 들어선다. 임대료가 없는 근린생활시설을 활용해 입주자들이 영리활동을 할 수 있다. 통합운영주체인 유석연 교수는 “공간을 활용해 입주자 간 교류와 수익활동으로 자족공동체를 지향한다”고 했다. 그는 “대관 등으로 적정한 수입이 생기면 입주민의 주거비 부담을 줄여주는 방안도 찾으려 한다”고 덧붙였다.

 겸재로엔 공동체주택에 관심 있는 시민이나 사업자들이 상담과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공동체주택 지원허브 ‘집집마당’이 있다. 집집마당은 올해 1월 운영을 시작했다. 교육, 홍보, 상담, 커뮤니티 프로그램 지원 등의 업무를 한다. 김영길 집집마당 센터장은 “앞으로 공동체주택 사업 활성화를 위해 더 많이 알리고, 커뮤니티 공간이 잘 운영되도록 지원해나가려 한다”고 했다.

 도서당은 5월부터 입주자를 상시 모집하고 있다. 지난해 예비입주자 모집에서 약 60명이 입주신청서를 내고 인터뷰했는데, 성악가, 작가, 요리사 등 경력이 다양했다. 하지만 사업 추진 일정이 늦어지면서 대부분 입주로 이어지지 못했다. 유 교수는 “도서당 취지에 맞는 예비입주자들이 함께 못해 많이 아쉽지만, 그래도 공동체살이에 관심 있는 사람이 많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고 했다. 입주 모집 공고는 카카오톡플러스채널(@doseodang), 서울시 공동체주택 플랫폼(soco.seoul.go.kr) 등에서 볼 수 있다.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2021년 6월 10일)

“공동체 활성화와 대안적 삶 가치 확산”
마을카페에서 시작된 변화의 날갯짓
아름다운재단 만나 ‘지리산권’으로

지역의 활동가 발굴하고 키우고 연결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의 실험 ‘눈길’
“일상의 작은 변화가 사회 바꿀 것”

 

2019년 10월 ‘작은 변화의 씨앗을 나누는 숲’을 주제로 열린 제5회 지리산포럼 참가자들이 손을 흔들고 있다. 지리산포럼은 지금과는 다른 사회를 열망하는 사람들이 지리산에 모여 아이디어와 경험을 나누는 행사로, 사회적협동조합 ‘지리산이음’이 주관한다.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 제공

 

서울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교사로 일하던 김한범씨는 2016년 뭔가에 이끌리듯 지리산 자락에 스며들었다. 12년간의 교직생활을 뒤로하고 연고도 없던 경남 산청으로 덜컥 귀촌을 한 것이다.“이곳 산청에 귀농·귀촌을 한 분들이 많고, 여러 가지 대안적인 움직임이 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어요. 그런 곳이라면 내가 하려는 일에 공감하고 지지해주실 분들이 있지 않을까 기대했던 것 같아요.”

 

그가 마음에 두었던 일은 청소년 공간을 만드는 것이었다. 기존 학교교육 시스템에 회의를 품고 있던 터여서 갈증이 컸다. 여러 후원자들의 도움에 힘입어 2018년 10월 산청 청소년 자치공간 ‘명왕성’이 문을 열었다. 명왕성 설립과 운영 과정에서 가장 큰 도움을 준 곳은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이하 변화센터)였다. 명왕성의 코디네이터로 일하는 김씨는 변화센터가 ‘지리산권’의 공익활동을 활성화하기 위해 지원하는 ‘작은 변화 활동가’이기도 하다. 지리산을 둘러싸고 있는 5개 시·군(전북 남원, 경남 함양·산청·하동, 전남 구례)을 뜻하는 지리산권에는 김씨를 포함해 15명의 작은 변화 활동가가 있다. 명왕성과 같은 커뮤니티 활동이나 새로운 실험들이 활발하게 이뤄진다.

 

■ “사람을 지원한다”

 

변화센터는 지리산권의 공익활동 지원을 통해 지역사회의 ‘작은 변화’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설립된 ‘변화지원조직’이다. 2018년 3월 아름다운재단과 남원지역 사회적협동조합 ‘지리산이음’이 함께 설립해 운영 중이다. 변화센터의 가장 큰 특징은 ‘사람’에 집중한다는 점이다. ‘지역을 바꾸는 것은 사업이 아니라 사람’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임현택 센터장은 “우리 센터의 역할은 선한 의지를 가진 사람을 찾아내고, 그들이 지역의 변화를 위해 벌이는 일이 잘 진행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느 중간지원조직과는 달리, 지원에서 유연성을 발휘한다는 점도 돋보인다. 까다로운 조건 탓에 원하는 활동을 못하는 일이 없도록 최대한 활동 주체의 자율성을 보장한다.

 

지난해 4월 열린 작은 변화 활동가 워크숍을 마친 뒤 활동가들이 다른 이들이 그려준 자신의 얼굴을 손에 든 채 기념 쵤영을 하고 있다.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 제공 ​

 

‘작은 변화 활동가’ 지원 프로그램은 ‘사람 지원’이라는 변화센터의 지향을 잘 보여준다. 작은 변화 활동가는 ‘지리산권’에 변화의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5개 시·군에 한 곳당 3명씩 모두 15명이 활동 중이다. 자신이 사는 지역의 변화를 이끌면서 각자 하고 싶은 공익활동을 한다. 마음껏 활동을 펼칠 수 있도록 변화센터가 정기적으로 활동비를 지급한다. 새로운 활동에 나설 때는 씨앗기금을 지원한다. 활동가들 간의 교류와 소통, 교육 프로그램 등을 통해 스스로 성장할 기회도 주어진다.‘사람’과 ‘자율성’이라는 지향점은 명왕성의 운영 방식에서도 엿볼 수 있다. 명왕성은 변화센터의 지원을 받는 ‘작은 변화’의 현장 가운데 하나다. 명왕성의 주인은 청소년들이다. 예산 편성과 집행, 이용 규정 등 모든 것을 청소년 운영진이 결정한다. 비청소년인 코디네이터는 조력자 역할에 머문다. 이곳에서 가장 ‘핫한’ 것은 ‘꿀알바’ 프로젝트다. 청소년의 자발적인 활동을 급여로 지원하는 사업이다. 친구에게 공부 가르쳐주기, 영화평 쓰기, 지역 단체 행사 도와주기 등 하고 싶은 일(알바)을 신청하면 청소년 운영진이 심사를 거쳐 급여를 지급한다. ‘쓸데없는 일’로 치부되곤 하는 청소년들의 활동에 대해 가치를 인정해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코디네이터인 김한범씨는 “명왕성은 청소년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쉴 수 있는 공간이다. 다만,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후원해준다”며 “이런 새로운 실험을 시작하는 데 변화센터의 지원이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꿀알바 프로젝트에는 변화센터의 씨앗기금이 지원됐다.

 

지난해 10월 남원시 산내면 마을카페 ‘토닥’에서 2020 지리산포럼의 한 주제섹션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지리산포럼은 ‘로컬 라이프’를 주제로 열렸다.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 제공

 

■ 마을카페에서 시작된 들썩임

 

지리산권 작은 변화의 날갯짓은 자그마한 마을카페에서 시작됐다. 2012년 남원시 산내면 주민들이 만든 ‘토닥’이다. 산내면은 1998년 시작된 실상사 귀농학교를 통해 귀농자가 꾸준히 모여든 곳이다. 주민 2000여명 가운데 500여명이 귀농·귀촌자다. 마을카페를 만들자는 논의도 귀농·귀촌자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부산의 시민단체에서 일하다 귀촌한 임현택 센터장도 그중 한명이다. 토닥에서는 영화 상영, 크고 작은 공연, 강연 등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처음엔 낯설어하던 주민들의 발길도 차츰 잦아졌다. 문을 연 지 1년이 채 안 돼 토닥은 마을 커뮤니티 활동의 구심점으로 자리잡았다.산내면 사람들은 토닥의 성공을 마중물 삼아 더 큰 꿈을 꾸기 시작했다. 지리산 주변 5개 시·군을 하나로 묶는 ‘지리산권’ 구상이다. 2013년 아름다운재단의 ‘변화의 시나리오 지원사업’에 이런 구상을 담은 ‘지리산 커뮤니티 이음’ 프로젝트 제안서를 제출해 선정됐다. 지역공동체 활성화와 대안적 삶의 가치 확산을 위해 ‘지리산이음’이라는 단체도 설립했다. 임현택 센터장은 “토닥의 경험을 지리산권으로 확장해, 지리산에 깃들여 사는 다양한 사람들의 삶과 이야기를 연결해보고 싶었다”고 ‘이음 프로젝트’의 취지를 설명했다.지리산이음은 지리산권 곳곳에서 커뮤니티 활동을 하는 단체와 사람들에 대한 조사를 시작으로, 마을신문·공간·적정기술 등 마을공동체에 필요한 정보를 공유하는 각종 워크숍을 진행했다. 2014년에는 시골살이를 위한 정보와 기술, 지혜를 나누는 지리산 시골살이학교를, 2015년에는 전국의 혁신적인 활동가들이 모여 한국 사회의 대안적 미래를 상상하는 지리산포럼을 열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토닥은 ‘거점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비영리 임의단체였던 지리산이음의 조직 형태도 공익법인인 사회적협동조합으로 바뀌었다.

 

지난해 10월 열린 2020 지리산포럼 기간에 남원 작은변화포럼이 로컬섹션의 하나로 연 원탁토론이 끝난 뒤, 참가자들이 남원의 미래에 대한 소망을 적은 종이비행기를 날리고 있다. 원탁토론은 ‘포스트코로나 시대와 남원 시민사회의 역할’을 주제로 진행됐다.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 제공

 

■ 작은 변화가 아름답다

 

이음 프로젝트의 ‘시즌2’라 할 수 있는 변화센터 설립은 시민사회 지원의 패러다임 전환을 모색하던 아름다운재단의 구상에서 비롯됐다. 바로 ‘지역의 작은 변화’ 지원이다. 홍리재희 아름다운재단 지역사업팀장은 “여러 해 동안 전국을 대상으로 공모지원사업을 해왔는데 수도권이 아닌 지역사회의 참여가 너무 저조했다. 지역에 그런 일을 할 만한 주체가 없었던 거다. 사람을 키우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지역에서 활동 주체를 발굴하고 그들의 역량을 강화하고 서로 연결하는 일을 할 ‘거점 조직’이 필요하다고 봤다는 얘기다. 거점 조직 모델 개발을 위한 6개월간의 현장조사를 거쳐 후보 지역 4곳 중 지리산권이 선정됐다. 마침 그곳에는 산내면을 넘어 지리산권으로 점차 활동 보폭을 넓혀가던 지리산이음이 있었다.두 단체의 협업으로 문을 연 변화센터가 맨 처음 벌인 일은 지역의 활동가들을 찾고 연결하는 것이었다. 5개 시·군에 한명씩 협력 파트너를 두고 지역 사람들을 두루 만날 수 있도록 지원했다. 유지선 남원 작은변화포럼 대표도 그중 한명이다. 유 대표는 “남원지역의 활동가들을 만나 인터뷰를 해보니 다들 각자 분야에서 열심히 활동하는데 네트워크가 안 되어 있는 게 문제였다. 한달에 한번 저녁에 식사하면서 이야기하는 모임에서 시작해 점차 네트워크를 만들어 나갔다”며 “사람을 키우는 것을 중시하는 변화센터의 지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남원지역 시민단체 18곳이 참여한 작은변화포럼은 이런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다.변화센터의 공모지원사업 중에는 ‘작은 변화의 시나리오’ ‘작은 교육’ ‘작은 조사’처럼 ‘작은’이라는 말이 들어간 것이 많다. 사회의 변화가 사람과 일상의 작은 변화에서 시작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산내면에서 직조공방을 운영하며 지난해 ‘우리 동네 수공예 작업자들’에 대한 ‘작은 조사’ 활동을 한 조회은씨는 “변화센터 지원사업의 장점은 문턱이 높지 않아서 누구나 해보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이라며 “일상의 작은 변화가 큰 변화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리산 사람들은 올해 다시 한번 도약을 준비 중이다. ‘작은 변화 베이스캠프 들썩’이라는 공간을 마련하는 일이다. 전국 곳곳에서 작은 변화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모여 더 나은 변화를 모색하는 공간이다. 변화의 ‘물음표’가 지리산을 만나 ‘느낌표’가 될 수 있도록.

 

남원 산청/이종규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한겨레 2021년 2월 15일]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82951.html#csidx5ed01855b79c6b993fbcea532e4aef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