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엔지니어의 뉴스레터 (제 855 호)
【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
저는 천주교 신자이지만, 언젠가부터 불교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고 불교가 친근하게 느껴지게 되었습니다.
성당에 안 나간 지 오래 되면서 신부님 등 성직자들과의 교류보다는 스님들과의 교류가 오히려 더 많은 편입니다.
물론 불교에 관심이 많다고 해서 절에 가서 불공을 드리거나 불교 행사에 참여하는 정도는 아닙니다.
지방으로 여행이나 트레킹을 갔다가 근처의 절에 들러 구경을 하거나 몇몇 스님들과 교류를 하는 정도입니다.
또 불교 관련 책을 읽고, 명상 등 불교의 수련법(?)이나 고승에 대한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있는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러니까 천주교에서 불교로 개종을 한 게 아니라, 인간 스스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불교의 가르침에 호기심을 느끼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제가 불교에 대한 관심이 많아진 것은 천주교 신자이지만 <길 없는 길>이라는 경허 스님 관련 소설을 쓴 고 최인호 소설가의 영향이 큽니다.
경허 스님은 깨달음을 얻고 나서 게송을 읊은 후 속세로 내려가서 서당 훈장 노릇도 하고 술잔을 기울이는 등 일반인과 같은 모습으로 지냈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고 나서 중생들을 가르치면서 살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삶의 모습을 보였던 경허 스님의 행동이 저에게 궁금증을 더해주었습니다.
게송(偈頌)은 깨달음을 얻은 스님이 자신의 깨달음을 함축하여 스승에게 알려줌으로써 깨달음의 인증(?)을 받는 의미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경허 스님의 게송으로는 여러 가지가 알려지고 있는데 그 중 하나를 여기에 소개합니다.
世與靑山何者是(세여청산하자시) 속세와 청산 어느 것이 옳은가?
春城無處不開花(춘광무처불개화) 봄이 오면 어느 곳이건 꽃이 피는 것을.
傍人若問惺牛事(방인야간성우사) 누가 나(성우, 경허 스님)의 경지를 묻는다면
石女心中劫外歌(석여심중겁회가) 돌계집 마음속에 영원한 노래라 하리라.
아마 이 게송을 읽고 나서 그 의미를 깨우치고, ‘아, 그렇구나.’라고 고개를 끄덕일 분은 거의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이 게송이 한자로 표기되어 있어서 이해하기 쉽지 않는 측면도 있지만, 깨달음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지 않으면 알아들을 수 없는 게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깨달음을 얻은 스님이 아무에게나 게송을 읊지 않고, 이미 깨달음을 얻은 스승에게 이 게송을 들려주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평생 동안 화두를 갖고 면벽 수련을 해도 아주 소수의 고승들만이 깨달음을 얻는다는 데 이런 게송을 이해할 사람이 드문 게 당연한 일이겠죠.
화두를 갖고 면벽 수련을 해본 경험도 없고, 깨달음을 얻어야겠다는 절박함도 없는 제가 어찌 이 게송의 의미를 논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감히 어쭙잖은 치기로 제가 이 게송의 의미를 나름 해석해 보더라도 이미 깨달음을 얻은 경허 스님이 충분히 이해해 주시지 않을까 감히 생각해 봅니다.
이 게송의 의미는 바로 ‘세상(우주)과 내가 둘이 아니라 하나’이며, ‘일상 속에 깨달음이 있음’을 깨달았다는 것이 아닐까요?
저는 깨달음의 단계가 ‘나의 욕심을 채우는 단계’에서 시작해서 ‘내가 우주에 보탬이 되는 단계’를 넘어 ‘우주와 내가 하나임을 깨닫는 단계’로 나뉜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욕심을 채우는 1단계는 나와 우주가 대립관계이고, 내가 우주로부터 이익을 챙기면 된다는 단계입니다.
내가 우주에 보탬이 되어야겠다고 깨닫는 2단계는 내가 우주 삼라만상에 자비와 선행을 베푸는 단계를 말합니다.
대부분의 종교에서 신자들에게 강조하는 이웃에 대한 사랑, 세상에 대한 사랑과 자비가 바로 2단계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3단계는 불교에서 말하는 내 안의 ‘본래 부처’ 찾기나 기독교에서 말하는 내 안의 ‘하느님의 형상’을 찾아내는 단계라고 생각합니다.
쉽게 설명해보려고 했는데, 어려운 설명이 되어 버렸는데, 개미 살생의 예를 통해 다시 한 번 더 쉽게 설명하도록 해보겠습니다.
스님들 중에는 살생을 저지르지 않으려고 길을 걸으면서도 땅에 혹시 개미가 있나 살피는 경우가 있다고 하는데, 그게 바로 2단계 깨달음입니다.
경허 스님 같은 3단계 깨달음의 단계에 이르게 되면 내가 곧 개미일 수 있기 때문에 개미를 밟아 죽일 수 있을까 걱정하지 않게 됩니다.
개미를 죽일 수 있을까 걱정하지 않는 것은 1단계와 3단계가 비슷하지만, 1단계는 내가 개미보다 우월해서 죽여도 된다고 생각하는 반면, 3단계는 내가 곧 개미이고 우주이기 때문에 개미의 죽음이 곧 나의 죽음이라 개의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석가모니가 환생을 거듭하다가 한 때 토끼로 환생한 적이 있는데, 굶주린 어미 호랑이가 불쌍해서 자신을 먹이로 내주었는데, 그 단계가 바로 3단계입니다.
3단계 깨달음을 얻은 상태에서, 신자들에게 2단계 깨달음이라도 가르쳐야 할 일부 종교 지도자들이 1단계 깨달음에 머물러 있음을 보아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행복한 미래를 만드는 기술자
김송호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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