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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과 1의 차이

2024. 11. 14. 07:00 | Posted by 행복 기술자

행복한 엔지니어의 뉴스레터 (제 822 호)

 

【 0과 1의 차이 】

 

“1층에서 기다릴게요.”

“알았어요.”

 

몇 년 전 인도네시아 회사에 근무하기 위해 갔을 때 한국으로 귀국하는 아내를 공항에 바래다주면서 운전기사와 나눈 대화 내용이다. 아내를 배웅하고 나서 내가 숙소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운전기사를 1층에서 만나기로 하면서 이런 대화를 나눈 것이었다. 공항에 차가 많아서 내가 내린 자리에 그대로 주차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운전기사가 차를 몰고 다른 곳에 갔다가 1층에서 기다리면 아내를 배웅하고 나서 내가 1층으로 가기로 한 것이었다. 그런데 아내를 배웅하고 1층에 가서 아무리 찾아도 내 차를 찾을 수가 없었다. 아직 인도네시아어를 유창하게 구사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대화는 나눌 수 있었고, 안 되면 번역기를 통해 의사소통을 했었기 때문에 1층에서 만나자는 얘기를 잘못 들었을 리는 없었다. 그래서 기사에게 전화를 했더니 자기는 1층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공항에 기다리는 차가 너무 많아서 내 차를 찾지 못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걸으면서 다시 살펴보았다. 그런데도 내 차는 찾을 수가 없었다.

 

씩씩거리면서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2층에서 운전기사가 손을 흔들고 있는 게 보였다. “아니 1층에서 기다린다고 하더니 왜 2층에 있는 거야?” 화는 나는데 인도네시아어를 유창하게 못하니 뭐라고 제대로 따질 수도 없고 답답했다. 그래도 번역기를 써가면서 대화를 해봤더니 인도네시아에서 1층은 한국에서 얘기하는 2층이고, 한국에서 말하는 1층을 인도네시아에서는 ‘lantai dasar’라고 부른다고 했다. 그러니까 내가 생각했던 1층과 운전기사가 생각했던 1층이 달랐던 것이었다. 한국에서 말하는 1층은 인도네시아에서는 0층이라고 할 수 있고, 굳이 번역하자면 ‘지상층(로비층)’ 정도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고 보니 한국에서 0층이 없고, 지상은 바로 1층부터 시작하고, 지하는 지하 1층(B1)으로 시작되는 게 오히려 이상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왜냐하면 지상 1층과 지하 1층 사이에 ‘0층’이 없으니까 말이다.

 

그 후에 건물 층수를 세는 방법에 대한 조사를 해봤더니 한국과 일본, 미국 등에서는 지상의 첫 번째 층을 ‘1층’이라고 하는 반면에, 유럽 국가들은 지상의 첫 번째 층을 ‘0층’ 또는 ‘지상층(ground floor)’라고 하고, 그 위층부터 1, 2, 3층 등으로 부른다고 한다. 또 스페인의 경우에는 한국에서 말하는 지하 1층부터 1층으로 세기도 한다니 헷갈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이뿐만이 아니라 층수를 셀 때 여러 가지 이유로 특정 층을 아예 없애기도 한다. 예를 들어 한국이나 중국 등 한자문화권에서는 4층 표기를 없애고 바로 5층을 매긴다든지 3A나 F로 표기를 대체하기도 한다. 더욱이 한국과 달리 중국에서는 14, 24, 34 등은 물론 40, 41, 42 등 4자가 들어간 모든 층 표시를 없애기도 한다. 인도네시아는 건축 분야에서 중국의 영향이 크기 때문에 중국과 마찬가지로 4가 들어간 층은 모두 표기를 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고층 건물 엘리베이터에는 ‘0(L), 1, 2, 3, 5, ~ 13, 15, ~ 39, 50, 51 ~' 등으로 표기되어 그 건물이 몇 층인지 엘리베이터 표기만을 봐서는 짐작할 수가 없을 지경이다. 이와 반면에 기독교 영향이 큰 유럽 및 북미의 경우는 13, 이탈리아의 경우는 17을 거르는 경우가 있다.

 

이왕 숫자 얘기가 나온 김에 ‘0과 1의 차이’에 대해서 좀 더 살펴보겠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나 숫자를 세는 문자는 있었다. 예를 들면 한자 문화권에서 일(一), 이(二), 삼(三), 사(四) 등으로 세고, 로마 문자로는 Ⅰ, Ⅱ, Ⅲ, Ⅳ, Ⅴ 등으로 표기한다. 하지만 요즘은 숫자 하면 아라비아 숫자인 ‘1, 2, 3, 4 ...’를 떠올린다. 실제로 수학에서는 아라비아 숫자가 보편화되어 있고, 아라비아 숫자가 없으면 수학 연산 표기를 할 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각 나라의 숫자 표기 문자도 10까지 세는 데는 별 문제가 없으나, 큰 숫자를 셀 때는 불편한 게 사실이다. 이와 반면에 아라비아 숫자는 아무리 큰 숫자도 표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계산을 하는 데도 아주 편리하다는 장점이 있다.

 

아라비아 숫자의 가장 큰 장점은 ‘0'이라는 숫자에 있다. 사실 다른 나라에서 사용하는 숫자에는 실제적으로는 ’0'이라는 개념의 숫자가 없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아무 것도 없는데 셀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즉 아라비아 숫자를 통해 ‘0’이라는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추상적인 숫자를 구체화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예를 들어 ‘8-8=0’이라는 계산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와 반면에 아라비아 숫자를 사용하지 않으면 ‘8-8=없다’로 표기되어 더 이상 사고를 확장할 수 없게 된다. 그뿐만이 아니라, ‘8+0=8’, ‘8-0=8’을 넘어 ‘8x0=0’, ‘8÷0=∞’ 등의 실생활과는 동떨어진 추상적인 계산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0’이라는 개념 도입이 추상적인 계산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수학 발전에 큰 기여를 하게 되었다. 더 나아가 0이 십진수의 개념을 확립함으로써, 10, 100, 1000 등 큰 숫자를 쉽게 표현할 수 있게 되어, 수학의 비약적인 발전이 가능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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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송호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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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엔지니어의 뉴스레터 (제 821 호)

 

【 저는 가끔 혼자 걷는 것을 좋아합니다 】

 

‘맨발 걷기’, ‘매일 만보 걷기’, ‘걷기 명상’

 

걷기가 건강에 좋다는 것은 이제 누구나 수긍할 정도로 상식에 속하는 주제가 되었습니다.

요즘은 ‘맨발 걷기’ 열풍까지 번지면서 그야말로 걷기의 전성시대가 도래한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사실 걷기는 가장 쉽게 실행할 수 있으면서 건강에 가장 확실하게 좋은 방법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저도 몇 년 전부터 매일 만보 걷기를 실천하고 있는데, 지금은 거의 걷기 중독에 빠졌다고 할 정도로 매일 걷습니다.

스마트폰의 만보기 앱을 활용해서 매일 걷는 양을 측정하고, 앱에서 제시한 여러 목표치, 예를 들면 365일 연속 만보 걷기 등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또 걷기 밴드에 가입해서 밴드에서 제안한 ‘매일 만보 걷기’ 행사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습니다.

 

제가 매일 만보 걷기를 하는 형태는 ‘함께 걷기’와 ‘홀로 걷기’가 반반 정도 비율로 구성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함께 걷기는 제 아내랑 같이 걸을 때가 많고, 가끔 밴드나 친구 모임에서 트레킹 형태로 걷는 경우가 있습니다.

함께 걷기와 홀로 걷기 중 어느 쪽이 좋은가 하는 점은 한 마디로 단정해서 얘기하기는 곤란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아내랑 함께 걸으면 걷기 자체도 좋지만, 집에서는 나눌 수 없었던 대화를 자연스럽게 나누게 되어 좋습니다.

밴드 모임이나 친구 모임에서 트레킹을 하면서 걸을 때면 제가 모르던 길을 걸을 수 있고, 즐거운 대화와 뒤풀이를 할 수 있어서 그 나름대로 좋은 측면이 있습니다.

친구들과의 걷기 모임은 한 달에 두세 번, 밴드 걷기 모임은 한 달에 서너 번 참석하는 정도입니다.

 

친구들과의 걷기 모임에서는 이미 알고 있던 친구들을 계속 만나게 되니 나이가 들면서 건강이 점점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지 느끼게 됩니다.

반면에 밴드 모임에서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길을 걷게 되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특히 밴드 모임은 다양한 연령대(물론 나이 많은 사람들의 비율이 높은 편이지만)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걷기도 많이 하지만 가끔 저 혼자 걷는 기회를 가지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혼자 걸으면 다른 사람들과 함께 걸을 때와 비교해서 여러 가지 단점이 있긴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장점도 많이 있으니까요.

하긴 세상에서 일어나는 어떤 일이든지 장점만 있거나, 단점만 있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겁니다.

 

혼자 걸을 때의 가장 큰 단점으로는 혹시 위험 상황에 빠지게 되었을 때 대처하기가 곤란하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주로 걷는 길이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트레킹 길이기 때문에 이 단점은 크게 고려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혼자 걸을 때에는 자주 가는 길이 아니면 코스를 정하고, 그에 따른 교통편과 식사 장소 등을 혼자 정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문제는 단점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장점이라고 볼 수도 있는 문제입니다.

제가 가고 싶은 코스를 제가 그냥 정하면 되고, 다른 사람들과 시간을 맞출 필요 없이 제가 편한 시간에 떠날 수 있으니까요.

혼자 걸으면 제 체력과 그날의 컨디션에 맞춰서 중간에 걷기를 끝낼 수도 있고, 체력이 남으면 더 걸을 수도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얼마 전에 친구들과 남한산성의 외곽길인 남한산-은고개 코스를 걸었는데, 몇 년 전에 한 번 갔던 코스인데도 중간에 엉뚱한 길로 빠져서 당황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며칠 전에 저 혼자 그 코스를 다시 갔는데, 이번에는 거의 여섯 시간을 걸어 원점 회귀하였습니다.

아마 친구들이랑 그 코스를 걸었다면 그렇게 길게 걷지는 못했을 텐데, 혼자 걸으니 가능했습니다.

 

혼자 걷기를 하면 자기 속도에 맞춰서 걸을 수 있고, 중간에 코스 변경도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혼자 걷기의 장점은 뭐니 뭐니 해도 사색(명상?)을 하면서 걸을 수 있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며칠 전 남한산-은고개 원점회귀 코스를 걸을 때도 걷는 내내 가을 정취를 만끽하면서 혼자만의 생각을 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행복한 미래를 만드는 기술자

 

김송호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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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엔지니어의 뉴스레터 (제 820 호)

 

【 새삼스럽게 사계절의 고마움을 느낍니다 】

 

‘열대야 신기록’, ‘9월의 최고 기온 갱신’ 등 기온과 관계된 뉴스가 매일 지면을 장식하다가 이제야 사라졌습니다.

이번 겨울이 추울 거라는 예보가 있긴 하지만, 지금의 가을 기온은 지내기에 딱 좋은 정도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도 그리 춥다는 느낌이 들지 않고, 한낮에도 더워서 못 견딜 정도는 아니니까요.

 

우리가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자연환경에 영향을 받지만, 그중에서도 기온 변화는 우리 일상에 미치는 영향이 아주 큰 편입니다.

외국을 여행하면서 시차와 더불어 가장 민감한 영향을 끼치는 요소 중의 하나가 바로 기온입니다.

여행을 가는 지역의 기온이 한국과 많이 다를 때는 그 지역에 맞게 옷을 준비하는 게 상당히 어렵습니다.

 

제가 기온 차이가 일상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가장 실감을 한 것은 인도네시아 근무를 하게 되었을 때입니다.

인도네시아는 아침 최저 기온이 24~25도, 낮 최고 기온이 32~34도로 연중 거의 변화가 없습니다.

한국으로 말하자면 한여름이 연중 계속되는 것으로, 더 힘들게 하는 점은 습도가 아주 높다는 점입니다.

 

그래도 저는 회사 일로 근무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에어컨을 마음대로 켤 수 있어서 그나마 견딜 수 있었습니다.

물론 하루 종일 에어컨 바람 속에 생활하다보면 비염도 생기고, 코감기 기운이 떠날 줄을 모르기는 합니다.

하지만 가난한 현지 주민들은 에어컨을 켤 수 없는 처지이기 때문에 고작 하는 일이 그늘에 앉아서 소일하는 것입니다.

 

열대지방 사람들이 온대지방 사람들에 비해 행동이 느리고 느긋하다는 평가를 많이 받지만, 열대 기후 속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만약 열대지방에 사는 사람들이 온대지방에 사는 사람들처럼 급하게 움직인다면 아마 제 명까지 살지 못할 테니까요.

오죽했으면 열대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열 소모를 최소화하기 위해 몸집까지 왜소하도록 진화했을까요.

 

기후가 우리 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인도네시아와는 전혀 다른 기후 조건을 가진 몽골을 방문하면서 더 크게 느껴졌습니다.

몽골은 한국처럼 사계절이 있지만, 여름은 한국의 초가을처럼 선선하고, 겨울은 혹독하게 춥습니다.

겨울이 너무 추워서 11월 말부터 2월 초까지 대부분의 경제활동이 멈출 정도라고 합니다.

 

추운 겨울에는 대부분의 기업들이 문을 닫고, 직원들에게 월급도 주지 않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많은 몽골인들이 추운 겨울 동안 생계를 위해 한국을 비롯한 외국에 나가서 일을 한다고 합니다.

겨울 동안 한국에 와서 일하던 몽골인들이 눌러 앉아서 몽골 회사로 복귀하지 않는 경우도 종종 생길 정도라고 합니다.

 

몽골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최근에는 몽골 관련 뉴스나 다큐가 나오면 자주 보는 편입니다.

얼마 전 다큐에는 최근 기후 변화로 인해 겨울에 몽골에 눈이 너무 많이 오고, 강추위가 몰아 닥쳐서 가축이 많이 희생되었다고 하더군요.

작년에만 양과 염소 등 70만 마리가 눈과 강추위에 희생되었다고 하는데, 그 상황을 설명하는 몽골 유목민의 하소연에 가슴이 찡했습니다.

 

물론 한국도 유례없는 무더위에 과일과 채소가 피해를 입고, 양식 어류도 많은 피해를 봤습니다.

그래도 한국은 ‘농어업재해보험’도 있고, 때에 따라 국가에서 약간의 보상을 해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홍수 피해를 입은 방글라데시나 겨울 추위에 가축이 얼어 죽은 몽골 유목민들은 그 피해를 개인이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지 않을까요?

 

이제 무더웠던 여름이 지나가고, 선선해서 지내기에 딱 좋은 가을이 우리 곁으로 왔습니다.

‘있을 때 잘해’라는 유행가 가사처럼 이처럼 딱 지내기 좋은 가을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감사하다는 생각을 해보면 어떨까요?

아마도 이런 감사하는 마음이 더해진다면 이 가을을 더욱 더 풍성하고 보람차게 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행복한 미래를 만드는 기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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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엔지니어의 뉴스레터 (제 819 호)

 

【 첫 번째 제주 속살 트레킹 여행-곶자왈 】

 

제주에 대해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무엇일까?

 

삼다도, 한라산 등 여러 단어가 떠오르겠지만, 곶자왈을 떠올리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하긴 곶자왈이라는 단어 자체가 새로 만들어진 단어이다 보니 익숙하지 않아서 잘 떠오르지 않을 수도 있다. 아니면 곶자왈에 대해 잘 모르고, 알더라도 곶자왈에 대해 최근에야 알게 된 탓도 있을 것이다. 곶자왈은 제주의 보물을 넘어 세계적인 보물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곶자왈에서 ‘곶’은 제주어로 ‘숲’, ‘자왈’은 ‘나무와 덩굴 따위가 마구 엉클어져서 수풀같이 어수선하게 된 곳’을 뜻하는데, 이 두 개의 단어가 합해져서 ‘곶자왈’이라는 새로운 단어가 만들어졌다. 그러니까 곶자왈은 나무와 덩굴이 뒤엉켜 있는 수풀을 의미한다.

 

나무와 덩굴이 뒤엉킨 형태의 숲은 제주도가 아닌 다른 지역에도 많지만 유독 제주도의 숲을 곶자왈이라고 달리 부르는 이유는 제주도의 곶자왈이 독특한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숲은 암석이 오랜 세월 동안 풍화되어 형성된 흙 위에 형성된다. 하지만 제주도는 화산이 폭발한지 그리 오래지 않아서 암석이 충분히 마모되어 나무가 서식할 수 있는 흙이 형성되지 않은 상태다. 한반도가 형성된 게 수 억 년 전인데 반해, 제주도의 한라산과 오름이 형성된 것은 20만 년이 채 안 되기 때문이다. 20만 년은 화산 용암과 화산탄 등 지표면의 암석이 흙으로 변하기에는 충분히 긴 시간이 아니다. 더군다나 제주에는 하천이 형성되어 있지 않아 물이 흐르면서 마모 작용을 일으켜 암석이 흙으로 변환될 기회마저 없었다. 제주는 강우량이 많지만, 바위와 자갈 등으로 이루어진 지형적 특성 때문에 물이 곧바로 지하로 스며들어 버려서 지표면에 남아 있는 경우가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곶자왈은 한라산과 오름이 형성될 때 분출된 잡석과 용암류, 스코리아와 화산탄 등의 지질 위에 나무와 덩굴식물이 자라는 형태로 형성되었다. 지질학적으로 보면 화산이 만들어낸 숨골과 풍혈 등이 갖추어진 형태를 이루고 있고, 식물학적으로는 이끼류, 양치류, 초지성 식물, 수목 및 가시덤불과 같은 식물들이 그 위에 자라고 있다. 지표면에 충분한 흙이 없다보니 곶자왈에 서식하는 나무들은 뿌리를 깊이 내릴 수가 없어서 지표면을 따라 넓게 뿌리를 펼치고 있다. 곶자왈에서 자라는 나무를 보면 바위를 감싸 안고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짠해질 때가 있다. 나무가 이처럼 뿌리를 넓게 펼치는 이유는 영양분을 섭취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제주 특유의 강한 바람에 쓰러지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흙이 부족하고 암석으로 이루어진 제주 곶자왈의 지형적 특성이 식물들에게 꼭 불리한 것만은 아니다. 기공이 많은 곶자왈의 지형적 특성 덕분에 물과 공기를 충분히 함유할 수 있어서 숲속의 기온과 수분을 적정하게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즉, 숲속이 건조해지면 품고 있던 수분을 내뿜고, 비가 많이 오면 수분을 흡수하여 저장한다. 또 숲속의 기온이 차가워지면 따뜻한 공기를 내뿜고, 숲속이 더워지면 차가운 공기를 내뿜어서 적정 온도를 유지하도록 만들어준다. 따라서 곶자왈은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이상적인 숲이 되는 것이다. 이런 기온과 수분 조절 작용에 덕분에 곶자왈은 외부와 10도 이상의 기온 차이가 나곤 한다. 그래서 제주 곶자왈이 겨울철에도 따뜻하여 나무들이 파릇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제주 곶자왈은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해서 세계에서 유일하게 열대북방한계식물과 한대남방한계식물이 공존하는 신비한 숲이다. 그 덕분에 곶자왈에는 양치식물을 비롯한 다양한 식물이 서식하고 있고, 삼광조나 팔색조 등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들이 보금자리로 삼고 있다. 제주 곶자왈은 온난다습한 기후대에 위치하여 식생이 풍부한 특성을 갖고 있다. 제주 곶자왈에는 양치식물 15과 44속 93종을 포함한 총 793종이 서식한다. 또 제주 곶자왈은 제주도 전체 면적의 6.1퍼센트에 불과하지만 식생의 46퍼센트를 차지할 정도다. 한반도 전체를 살펴보더라도 제주 곶자왈은 한반도 0.05퍼센트의 면적에 불과하지만, 한반도 식물종의 22퍼센트가 살아가고 있는 생태계의 보고다.

 

제주 곶자왈을 걷다 보면 그곳의 나뭇잎들이 유난히 반짝이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처럼 잎에 왁스를 발라놓은 것 같이 잎이 두껍고 반짝이는 듯한 조엽수림은 지구상에서 극히 한정된 곳에서만 볼 수 있다. 조엽수림은 제주도를 비롯하여 남해안의 좁은 해안지대와 일본 남부, 그리고 중국의 양자강 남부로부터 히말라야에 이르는 지역에만 분포한다. 조엽수림은 햇빛을 받으면 잎이 반짝이면서 따스하고 신선한 느낌을 준다. 조엽수림의 나뭇잎이 두껍고 왁스를 발라놓은 듯이 예쁜 이유는 상록수라는 특징과 연관이 있다. 추운 겨울이 되면 낙엽이 지는 낙엽수의 입장에서는 잎을 두껍고 예쁘게 유지할 필요가 없다. 채 1년도 사용하지 못하는 잎에 투자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엽식물의 입장에서는 잎을 장기간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두껍게 만들고 왁스까지 발라놓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과거에 곶자왈은 제주의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제주 사람들은 곶자왈에서 땔감을 채취했고 숯을 구웠고, 약초 등을 채취했다. 또 소와 말을 방목했으며, 노루와 꿩을 사냥하는 사냥터로 활용했다. 곶자왈은 지하수의 생성과 보존 등에도 큰 기여를 하고 있다. 문제는 이처럼 중요한 역할을 하는 귀한 곶자왈이 최근 급속하게 파괴되고 있다는 점이다. 곶자왈은 암석으로 덮여있는 지형적 특성 때문에 과거에는 사람들이 개간하는 데 한계가 있어서 보존될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토목 중장비를 활용하면 쉽게 개간할 수 있기 때문에 급속도로 파괴될 가능성이 커졌다. 더욱이 곡자왈은 중산간에 분포하고 있고, 효용성이 떨어져 가격이 낮았기 때문에 대기업들이 곶자왈을 매입하여 개간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최근 곶자왈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커지면서 곶자왈을 보존하자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가장 넓은 곶자왈이 분포한 교래 근방에 교래자연휴양림, 절물자연휴양림 등이 조성되면서 보존의 가능성이 커졌다. 하지만 에코랜드, 한화리조트 등 이미 많은 곶자왈이 대기업의 소유로 넘어가서 이미 개발되었거나, 개발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기 때문에 언제까지 곶자왈이 보존될 수 있을지 염려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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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엔지니어의 뉴스레터 (제 818 호)

 

【 첫 번째 제주 속살 트레킹 여행-3일차 】

 

즐겁고 행복한 시간은 왜 이리 빨리 지나가는지? 제주 속살 트레킹 여행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아쉬운 마음에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교래 자연 휴양림 생태 숲길을 한 바퀴 걸었다. 아침 일찍 걷는 곶자왈 숲길은 신비감을 안겨 주기까지 했다. 전에는 아침 일찍 걸을 때면 가끔 노루가 보이기도 했는데, 이번에는 노루를 볼 수 없어서 아쉬웠다. 그래도 곶자왈 돌무더기 위에 온힘을 다해 뿌리를 뻗어 몸을 지탱하고 있는 나무들과 고생대부터의 역사를 간직한 채 곶자왈 바닥을 메우고 있는 양치식물들이 영화 <아바타>의 신세계를 보여주는 듯 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가 여행하는 3일 내내 맑고 청량한 날씨가 계속 돼서 걷거나 이동을 하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오히려 차귀도를 걷는 동안에는 햇볕이 내리쬐고 기온까지 은근히 높아서 땀이 날 정도였다. 그래도 맑은 날씨 덕분에 여행하는 내내 파란 가을 하늘과 짙푸른 바다를 볼 수 있어서 내 마음도 하늘의 구름처럼 둥둥 떠가는 느낌이 들었다. 오늘도 맑은 하늘이 예보되어 있어서 아름다운 길들을 걷고 맛있는 식사를 하고 이번 여행을 잘 마무리할 수 있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이번 여행을 함께 한 아홉 명 중 오후 3시경에 세 명이 떠나고, 나머지 여섯 명이 저녁까지의 일정을 함께 할 예정이었다. 7시쯤 숙소에 돌아오니 일행들이 아침식사를 준비하느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간단히 빵과 라면, 삶은 계란 등으로 아침식사를 마친 다음 짐을 싸고 체크아웃을 했다. 짐을 싸고 나가면서도 3일을 보냈던 숙소를 보며 모두 아쉬운 마음이 드는 듯 했다. 숙소에서 주차장까지의 길을 천천히 걸어가면서 아쉬운 마음을 달랬다. 10번을 넘게 이곳 교래자연휴양림에 왔던 나 도 처음 왔던 것처럼 아쉽기는 마찬가지였다.

 

오늘 일정은 오전에 한라생태숲에서 출발해서 절물자연휴양림까지 나있는 숫모르편백숲길을 걷고, 점심식사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제 걷기 일정이 무리였는지, 숫모르편백숲길을 걷는 게 무리일 것 같다는 일부 일행이 있어서, 그들을 절물자연휴양림에 미리 태워다 주기로 했다. 절물자연휴양림에도 다양한 걷기 길이 있기 때문에 거기서 자신의 수준에 맞는 길을 선택해서 걷고 있으면 다른 일행들이 숫모르편백숲길을 걸어가서 합류하기로 했다. 트레킹 위주의 여행은 참여자들의 체력 차이를 잘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새삼 깨달았다. 그렇다고 미리 체력 테스트를 해보고 참여자를 고를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다양한 단계의 체력에 맞는 여러 프로그램을 미리 짜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 프로그램 진행자로서는 가능한 한 많은 곳을 보여주고 싶지만, 그러다보면 체력적인 부담을 줄 수 있으니 말이다.

 

아홉 명의 일행 중 세 명을 절물휴양림에 태워다주고, 나머지 여섯 명이 한라생태숲에서 트레킹을 시작했다. 대부분의 제주 곶자왈이 그렇지만, 숫모르편백숲길도 높낮이가 그리 심하지 않은 숲길이다. 평일인데도 불구하고 숲길을 걷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그런데 여기 숲길을 걷는 사람들은 대부분 제주 사람들로 보였다. 가끔 들리는 말이 대부분 제주어였기 때문이다. 하긴 육지(?)에서 온 여행객들이 이 숲길을 걷을 일이 거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패키지관광을 온 관광객들에게 이런 숲길을 걸으라고 할 여행사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설사 트레킹을 표방한 패키지관광이라도 사려니숲길이라든가 한라산 등반 등 모두에게 익숙하고 유명한 곳을 안내하지, 숫모르편백숲길처럼 잘 알려지지 않은 곳으로 안내하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번 트레킹 여행의 목표가 관광객들이 잘 안 가고, 제주 사람들이 잘 가는 숲길과 식당을 탐방하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숫모르편백숲길이 그런 목표에 딱 맞는 곳이라 생각해서 이곳을 선택했다.

 

예정대로 10시에 한라생태숲의 숫모르편백숲길을 걷기 시작했다. 한참을 걷다가 한라생태숲과 절물자연휴양림의 경계 지점에서 쉬면서 ‘제주 곶자왈’에 대한 설명을 했다. 이번 일행 중에 나와 함께 숲해설가 과정을 마친 세 사람이 포함되어 있어서 제주에 대한 숲 해설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제주를 찾는 사람들이 단순히 ‘제주의 자연이 참 좋구나’ 하고 막연히 생각하는 것을 넘어, 제주 자연의 속살(?)을 알게 하고 싶다는 나의 ‘제주 속살 트레킹 여행’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내가 숫모르편백숲길에서 한 제주 곶자왈에 대한 해설은 길기 때문에 다음에 별도로 소개하기로 하겠다.

 

원래 숫모르편백숲길을 천천히 걸으면 두 시간 정도 걸리는데, 절물자연휴양림에서 기다리는 일행들도 있고, 오후에 비행기를 타고 떠나야 하는 사람들도 있어서 서두르다보니 1시간 3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일행들이 절물자연휴양림의 편백나무 숲을 즐기고 있는 동안 나와 다른 일행이 한라생태숲에 주차해놓았던 차를 갖고 와서 일행들을 태우고 점심식사를 하러 갔다. 사실 교래 인근에는 유명한 맛집이 그리 많지 않지만, 지난 번 여행 때 찾아놓은 갈치조림 식당으로 가서 맛있게 점심식사를 했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먼저 떠나기로 한 일행 세 명이 승용차를 타고 떠나고, 남은 일행 여섯 명이 카니발에 탑승하여 에코랜드로 향했다. 숲길을 걷기에는 체력적인 부담이 있을 거라고 판단되었기 때문에 기차를 타고 곶자왈 숲길을 구경하면서 가볍게 걷는 방법을 택한 것이었다. 제주에서 기차를 타니 색다른 느낌도 들고, 중간에 내려서 호수와 숲길을 걸을 수도 있으니 제주에 가면 에코랜드 기차를 꼭 한 번 타보라고 권하고 싶은 곳이다. 물론 입장료가 좀 비싼 게 흠이긴 하지만,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에코랜드를 나와서 저녁식사를 하고 비행기를 타는 데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아서 산굼부리를 가보기로 했다. 가을하면 억새인데, 산굼부리에 가면 억새를 실컷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뿔싸 산굼부리에 들어서니 예전에 그토록 풍성했던 억새의 모습은 안 보이고, 쭉정이가 핀 것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기후 온난화의 영향으로 기온이 높아지다 보니 억새가 웃자라서 줄기는 껑충 크고, 억새는 더위 먹은 것처럼 축 늘어져 있어서 볼썽사나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기후 온난화가 제주의 풍경까지도 바꿔 놓는구나 하는 씁쓰레한 기분이 들었다.

 

공항 근처의 제주 토속음식점에서 이번 일정의 마지막 저녁식사를 마치고, 공항으로 향했다. 일행들은 만족스런 여행이었다고 얘기를 했지만, 이번 여행을 기획하고 안내한 나로서는 충분히 실력발휘를 하지 못한 듯해서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첫 번째 여행이었기 때문에 완벽할 수는 없었겠지만, 이번 여행을 참고해서 다음에는 좀 더 만족스런 여행을 하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이번 여행을 기획하면서 제주에 대해 공부하면서 더 많이 알게 되고, 그걸 다른 일행들에게 알려줄 수 있는 기회를 가진 것만으로도 이번 여행은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고 스스로를 위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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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엔지니어의 뉴스레터 (제 817 호)

 

【 첫 번째 제주 속살 트레킹 여행-2일차 】

다행히 둘째 날부터는 예정했던 일정대로 순조롭게 진행이 되었다. 숙소에서 아침 일찍 간단히 아침식사를 마치고, 오전 8시 40분에 숙소를 떠나 차귀도 탐방을 위해 자구내포구로 향했다. 자구내포구에 도착하니 9시 40분. 10시에 출발하는 배를 타려고 하니 급하게 서둘러야 했다. 각자 승선 명부를 작성하고, 신분증 확인을 받은 다음에 배에 올랐다. 자구내포구에서 차귀도까지는 1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우리 일행 말고 단체 20여 명이 함께 승선하여 배는 만석이 되었다. 차귀도에 운항 중인 배는 두 척인 것으로 보였는데, 각 선박에서 내린 사람들은 한 시간 동안 차귀도 탐방을 하고 나서 다시 그 배를 타야 했다. 그러니까 우리를 태웠던 배는 자구내포구로 돌아가서 한 시간 후에 다른 여행객들을 태우고 와서 차귀도에 내려주고, 우리를 태우고 자구내포구로 돌아가는 식이었다.

 

나는 사실 차귀도에 온 것이 이번이 세 번째였다. 처음 왔을 때는 너무나 환상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두 번째 왔을 때는 그보다 덜했고, 세 번째인 이번 탐방은 좀 밋밋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아무도 살지 않는 무인도를 한 시간 동안 돌면서 멋진 해안 절경과 바다 풍경을 즐기니 그 나름대로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욱이 이번에는 내가 일행들을 인솔하고 왔으니 그 나름 감회가 새로웠다. 차귀도를 도는 트레킹 길은 단순하게 나 있어서 길을 잃을 염려도 없고, 정상적인 속도로 천천히 걸으면 한 시간 내에 선착장에 도착할 수 있다. 또 좀 빠른 속도로 걸으면 선착장 옆에 있는 작은 산 정상에도 오를 수 있는데, 우리는 사진을 찍느라 지체하는 바람에 그 정상에는 오르지 못했다. 물론 나는 이미 이전에 그 산 정상에 올랐었지만 말이다.

 

선착장에서 배를 기다리면서 용머리해안 안내센터(064-794-2940)에 전화를 했다. 용머리해안은 바다에 인접해 있어서 만조 시간대나 파도가 심한 경우에는 관람을 통제하기 때문에 방문 전에 관람 가능 여부를 문의하는 게 좋다. 매일 아침 9시부터 안내센터에 전화를 하면 그날 관람 가능 여부를 알려준다. 차귀도에 갈 때 파도가 그리 심한 것 같지 않아 용머리해안 관람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했으나, 아쉽게도 파도가 심해 하루 종일 관람을 통제하고 있다고 했다. 사실 이제까지의 경험으로 보면 용머리해안 관람이 가능할 확률은 50퍼센트가 채 되지 않는 것 같다. 요즘 기후 온난화로 해수면이 높아지면서 용머리해안을 관람할 확률이 점점 더 낮아지고 있다고 한다. 용머리해안 관람까지 기후 온난화의 영향을 받는다니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머리해안을 보지 못한 대신에 그 근처에 있는 송악산 둘레길을 걷기로 했다. 모슬포 항에 있는 2덕승식당에서 제주 토속 생선 메뉴로 점심을 먹고, 송악산 옆 주차장으로 향했다. 송악산 둘레길은 요즘 내가 제주에 올 때마다 걷는 길이기도 하다. 주차장에서 출발하여 송악산 정상에 올라가지 않고 해안가로 나 있는 둘레길을 따라 걸으면 주차장까지 되돌아오는 데 한 시간 정도 걸린다. 이 둘레길을 따라 걷다보면 처음에는 형제섬도 보이고, 사계해안 너머로 산방산도 멋있는 자태를 뽐낸다. 조금 더 걷다 보면 깎아지른 절벽과 검푸른 바다 너머로 가파도와 마라도가 보인다. 데크 길이 잘 조성되어 있고 아름다운 풍경에 취해 걷다보면 걷는 게 크게 부담이 되지는 않는다.

 

사실 둘째 날의 필수 코스로 차귀도, 용머리 해안, 송악산 둘레길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용머리 해안을 관람하지 못했기 때문에 추가로 한 군데를 더 가기로 했다. 어디를 갈까 망설이다가 일행 중 아무도 가보지 못했을 것으로 생각되는 군산오름을 선택했다. 사실 군산오름은 오름 정상 바로 아래까지 차가 갈 수 있어서 좋긴 한데, 올라가는 길이 꼬불꼬불한 편도 1차선 산길이라 망설였었다. 더욱이 이번에는 카니발 승합차이기 때문에 중간에 다른 차를 만나면 피하기가 어려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두 대의 차가 올라가야 하니 반대편 차를 잘못 만나면 낭패를 볼 수도 있는 일이었다. 다행히 올라갈 때와 내려올 때 약간의 어려움은 있었지만, 큰 문제없이 군산오름을 탐방할 수 있었다. 군산오름에 오르자 일행 모두 멀리 보이는 한라산과 송악산, 산방산, 사계해안 등을 보면서 탄성을 지르는 바람에 잘 선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군산오름에서 내려와서는 제주시내에 있는 동문재래시장을 들르기로 했다. 동문재래시장 구경도 하고, 흑돼지고기 등 식재료를 사서 숙소에서 저녁식사를 하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차가 두 대인데, 아무래도 제주시내를 통과하다보면 붙어서 다니기 곤란할 것 같아서 ‘동문재래시장 공영주차장’으로 내비를 입력한 다음에, 중간에 헤어지면 각자 알아서 주차하고 나서 시장에서 보기로 했다. 그런데 아뿔싸 주차장에 도착하고 연락해보니 뒤에 따라오던 다른 차는 다른 주차장에 주차했다는 것이었다. 동문재래시장에 공영주차장이 두 군데 있었는데, 각기 다른 곳에 주차를 한 것이었다.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시장에서 모두 모여서 장을 본 다음에 숙소로 향했다. 숙소에 도착하니 일부는 씻고, 일부는 지쳐서 드러눕고, 일부는 저녁식사 준비를 하느라 허둥댔다. 숙소에서 식사를 하면 편안한 분위기에서 술도 한 잔 하면서 얘기를 나눌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분위기만 어수선해지고, 일만 많아진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되었다. 그래도 조금 있다 모두 모여서 반주를 곁들여 맛있게 식사를 하고, 여행 소감을 나누면서 두 번째 날 일정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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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엔지니어의 뉴스레터 (제 816 호)

 

【 첫 번째 제주 속살 트레킹 여행을 다녀와서 】

 

드디어 9월 24일부터 26일까지 1차 제주 속살 트레킹 여행을 다녀왔다. 이제까지 내가 제주 여행을 하면서 다녔던 곳들이지만, 다른 일행들을 이끌고 다니니 새로운 느낌이 들었다. 나 혼자 또는 우리 부부가 다닐 때는 그저 그날의 사정에 따라 다닐 곳을 정하고, 식사도 내키는 대로 정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다양한 취미와 식성을 가진 사람들을 이끌고 다니다보니, 다닐 곳을 정하는 것도, 식사할 곳을 정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다닐 곳과 식사할 곳을 미리 정해서 공지하긴 했지만, 가능하면 참여한 사람들이 모두 만족하는 방향으로 하려다보니 약간의 어려움이 있었다.

 

첫 번째 어려움은 공항에 도착해서 렌터카를 타자마자 발생했다. 우리 일행이 9명이어서 카니발 9인승을 렌트했는데, 막상 지을 싣고 타려고 하니 6인승이었다. 억지로 우겨 타고, 렌터카 회사에 도착해서 문의를 하니, 9인이 탑승하려면 짐이 실린 맨 뒤 공간에 3인승 의자를 설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경우에는 짐을 실을 방법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여러 모로 고민을 하다가 승용차 1대를 추가로 렌트하기로 했다. 마침 일행 중에 한 분이 보조 운전을 해주기로 사전에 약속이 돼 있어서 그 분이 승용차 운전을 맡았다.

 

갑자기 승용차를 렌트하기로 했기 때문에, 승용차 준비에 2시간 정도가 소요된다고 했다. 2시간 동안 렌터카 회사에서 기다릴 수 없었기 때문에, 짐을 렌터카 회사 사무실에 보관하고, 점심식사를 하러 갔다. 짐을 실으면 사람이 모두 탈 수 없었기 때문이다. 비용은 비용대로 더 들게 되고, 시간까지 더 들게 되었으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점심식사는 렌터카 회사에서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앞뱅디식당에서 각재기조림과 각재기국을 먹었다. 제주에 올 때마다 맛있게 먹었던 곳이고, 일행들도 음식이 맛있다고 했지만, 나는 그리 맛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내 성향이 미리 계획을 하고, 그 계획대로 빈틈없이 움직여야 마음이 편하고, 이처럼 갑작스런 돌발 상황이 생기면 당황하는 편이다. 더군다나 나 혼자도 아니고 여러 사람들을 이끌고 가야 하는데, 이런 돌발 상황이 생겼으니 어찌 마음이 편하겠는가. 다행히 특별히 큰 불평을 하는 사람이 없어서 미리 예약을 한 교래자연휴양림에 집을 풀었다. 원래는 교래자연휴양림에 있는 곶자왈 길을 걸으면서 해설을 할 예정이었는데, 렌터카를 찾으러 갔다 오는 바람에 각자 알아서 곶자왈 길을 걷도록 했다.

 

추가 렌터카를 찾고 오니 예정보다 시간이 꽤 늦어졌다. 원래 예정으로는 비밀의 숲이나 비자림 중에서 한 곳을 골라 둘러보고 저녁식사를 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늦어지다 보니 한 군데를 더 보고 저녁식사를 하면 너무 늦어질 것으로 판단되어 바로 저녁식사를 하기로 했다. 원래는 근처에서 흑돼지 메뉴로 저녁식사를 할 예정이었지만, 흑돼지보다는 회를 먹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나와서 동문시장에서 회를 포장해 와서 숙소에서 먹기로 했다. 그래서 회를 포장하러 출발했는데, 전화가 와서 식당에서 회를 먹으면 좋겠다는 것이 다수의 의견이라는 것이었다. 하는 수 없이 차를 돌려서 일행들을 태우고 신제주에 있는 회 전문 식당으로 향했다. 사실 제주 사람들은 회를 그리 좋아하지 않아서 제주에 사는 친구들과 만나도 돼지고기 식당에 주로 가지 횟집에는 그리 자주 가지 않는 편이다. 그러다보니 내가 아는 횟집이 그리 많지 않은데, 몇 년 전에 가본 적이 있는 횟집이 있어서 거기로 향했다. 그 식당은 몇 년 전 내가 갈 때만 해도 손님이 너무 많아서 대기가 있을 정도였는데, 이번에는 손님이 우리밖에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예전 내가 먹었던 음식에 비해 너무 실망스러웠다.

 

이번 여행은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렌터카 문제부터 저녁식사 문제까지 기획주의자인 내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그 와중에 함께 이번 여행을 이끌었던 내 아내는 ‘왜 사람들의 의견에 좌지우지 되느냐? 우리가 정한 대로 이끌고 가야 되지 않느냐’면서 강한 불만을 제기했다. 나는 정해진 일정대로 끌고 가고, 끌려가는 패키지여행의 단점이 싫어서 우리 밴드 여행에서는 일행들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려고 시도했는데, 이런 결과가 초래되었으니 마음이 착잡해졌다. ‘내가 잘 못하고 있는 것일까?’, ‘내가 너무 이상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다행히 저녁식사를 끝내고 나서 숙소로 돌아오니, 어느 정도 마음이 가라앉았다. 저녁의 차분한 분위기 때문인지, 아니면 숲속에 자리 잡은 교래자연휴양림의 고즈넉한 분위기 탓인지 마음이 차분해졌다. 원래 이번 여행에서 과다한 음주는 삼가 하기로 했던 만큼 간단하게 맥주를 마시면서 참석자들이 돌아가면서 자신의 간단한 소개와 더불어 ‘왜 이번 여행에 참가하게 됐는지’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나는 ‘여행과 관광의 차이’에 대해 설명하고, 이번 여행의 취지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했다. 더불어 이번 여행이 관광이 아니라 여행이 되기를 바란다는 나의 바람도 얘기했다. 그러기 위해서 좋은 곳을 안내하는 역할 외에 제주와 우리가 방문할 곳에 대해 해설을 하겠다는 취지도 설명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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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엔지니어의 뉴스레터 (제 815 호)

 

【 제주가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 】

 

“비행기를 타고 제주에 도착해서 내리면 육지에서 느낄 수 없는 뭔가 새로운 느낌이 듭니다.”

 

나도 제주에 갈 때마다 그런 느낌이 들지만, 나랑 같이 제주를 찾았던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다. 그럼 제주에 갈 때 새로운 느낌이 드는 이유는 뭘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건 아마도 제주가 육지와 달리 최근에 생성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주가 140억 년 전에 생성된 후, 46억 년 전에 지구가 생성되었고, 한반도도 수억 년 전에 형성되었다. 물론 한반도는 여러 차례의 지각 변동을 거쳐서 형성되긴 했지만, 수억 년 전에 지금의 형태가 만들어졌다고 보여 진다.

 

이와 반면에 제주는 약 2백만 년 전에 형성되기 시작하여 다섯 차례의 화산 활동을 거치면서 지금의 제주도 형태가 만들어졌다. 제주도의 형성은 180만 년 전 서귀포층의 형성으로 시작해서 130만 년 전 산방산과 용머리해안이 형성되고, 70~30만 년 전에 지금의 제주도 해안선이 만들어졌다. 45만 년 전에 차귀도가 형성되었고, 20만 년 전에 한라산, 2만 5천 년 전에 오름이 만들어지면서 완성되었다. 하지만 최근에도 화산활동이 탐지되기도 했는데, 산방산 근처에 있는 군산오름은 고려시대인 1016년에 형성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니 한반도의 나이를 100세라고 치면 제주도의 나이는 한 살도 채 되지 않는 셈이다. 그러니 제주도에 가면 갓난아이의 젖비린내가 나는 것이다.

 

한라산을 빼놓고는 제주도를 얘기할 수 없다. 어찌 보면 한라산이 제주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라산은 제주도의 중앙에 자리 잡고 있지만, 엄밀하게 말해서 남쪽으로 약간 치우쳐있다. 그러다보니 한라산 남쪽은 약간 경사가 심하고, 북쪽은 약간 경사가 덜한 편이다. 그 이유는 아마도 단단한 서귀포층을 피해서 북쪽에 오름 형성 등 화산활동이 많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실제로 대부분의 오름들이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초기 대규모 화산활동에 의해 형성된 서귀포 측, 즉 남쪽에 단단한 암석층이 많고, 북쪽 지형은 나중에 오름 형성으로 인한 성긴 바위층(곶자왈)이 많다. 그 때문에 남쪽에는 그나마 작은 하천도 있고, 그에 따라 천지연 폭포 등 폭포들도 있지만, 북쪽은 비가 오자마자 땅으로 스며들기 때문에 건천만이 존재하고, 지하로 스며든 물이 해변가에서 솟아오르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삼다수 공장도 북쪽 지역인 교래리에 소재하고 있다.

 

제주는 동서 방향으로 73킬로미터, 남북 방향으로 31킬로미터인 타원 형태를 띠고 있다. 남쪽과 북쪽도 차이점이 많지만, 동쪽과 서쪽도 차이점이 꽤 존재한다. 대체적으로 동쪽에 비해 서쪽에 농토가 많고 살기가 나은 편이다. 동쪽이 살기가 힘들다보니 뱀을 섬기는 신앙 등 민속신앙이 더 득세하고 있는 편이다. 지금은 동쪽에 성산일출봉, 섭지코지, 만장굴, 비자림 등 유명한 관광지가 많아 살기가 좋아졌지만, 아직도 유명한 맛집이 별로 없는 등 그 영향이 남아 있다고 볼 수 있다.

제주도에 대한 지질 연구 결과 2만 년 전까지만 해도 제주도가 육지와 연결되어 있었다고 한다. 빙하기에는 해수면이 130미터까지 낮아졌기 때문에 육지와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육지와 연결되어 있던 제주도는 1만 년 전에 빙하기가 끝나고 간빙기에 접어들면서 해수면이 높아지자 자연스럽게 섬이 되었다. 빙하기와 간빙기는 다섯 차례 정도 반복되었는데, 이런 흔적은 지질층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제주에 최초로 정착한 정착민은 1만 년 전 제주에 온 고산리 신석기인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들의 흔적은 고산리 유적에서 찾을 수 있다.

 

탐라국은 서기 1세기경에 탄생했는데, 상당한 세력을 형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구는 많지 않았지만, 선박 제조 기술과 항해술이 뛰어나 한반도는 물론 중국, 일본과도 활발한 교류를 하였다. 삼국시대까지만 해도 독립 국가 지위를 유지했던 탐라국은 고려가 삼국을 통일하면서 고려에 귀속되었다. 어찌 보면 이때부터 탐라국은 식민지와 비슷한 대접을 받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건국되면서 제주는 귀양지이면서 감귤, 전복 등 진상품을 바쳐야 하는 변방의 식민지로 변해갔다. 이런 푸대접과 탄압을 못 견뎌서 많은 제주민들이 육지로 탈출하자, 1629년부터 200년 간 허가 없이는 육지로 나갈 수 없는 출륙금지령이 내려졌다. 그야말로 제주민들은 창살 없는 감옥에 갇히는 셈이 된 것이다.

 

그 이후에도 제주민들의 고난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몽골의 침입에 항거하였던 삼별초들이 진도를 거쳐 제주도에 들어오자 여몽연합군이 쳐들어오면서 수많은 제주민들이 희생되었다. 또 여몽연합군이 제주에 상륙하여 삼별초의 난을 진압한 1273년부터 100년간 제주도는 몽골의 식민지로 전락했다. 몽골은 몽골인들(목호들)을 제주에 이주시켜 제주의 중산간 초원 지역에 말을 방목하도록 하였다. 이 시기 제주는 고려의 영토가 아니라 실질적인 몽골의 식민지였다. 몽골의 원나라를 쫓아낸 명나라가 제주의 말들을 징발하여 보내라고 하자 몽골인인 목호들이 저항하였다. 그래서 1374년 목호의 난을 진압하고자 고려는 최영 장군을 보냈다. 이 진압과정에서도 많은 제주민들이 희생되었다. 그 이후에도 이재수의 난, 4·3 등에 의해 많은 제주민들이 희생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행복한 미래를 만드는 기술자

 

김송호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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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엔지니어의 뉴스레터 (제 814 호)

 

【 기후 온난화를 실감하는 요즘입니다 】

 

“서울 열대야 39일로 최장 기록.”

“서울은 9월 10일에도 열대야. 근대 기상관측 이래 가장 늦은 열대야 기록.”

 

요즘 열대야로 인해 잠을 못자서 힘들다고 호소하는 분들이 주위에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저도 웬만한 조건에서는 잠을 잘 자는 편인데, 이번 여름에는 너무 더워서 밤에 잠을 깨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또 열대야일 때는 잠을 자고 일어나도 아침에 몸이 개운치가 않아서 하루 종일 힘든 시간을 보내곤 합니다.

 

저는 웬만큼 더워도 에어컨을 잘 켜지 않는 편이지만, 에어컨을 안 켜면 못 견디는 분들은 전기요금 때문에 또 다른 걱정을 하고 있을 겁니다.

제가 에어컨을 안 켜는 것은 전기요금 때문이라기보다는 에어컨 바람에 재치기를 하고 콧물을 흘리는 등 알레르기 증상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에어컨 문제를 차치하고서도 열대야는 모든 사람들을 힘들게 만들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여름은 더워야하고, 또 겨울은 추워야 하는 게 자연의 자연스런 섭리라고 얘기를 합니다.

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 그리고 중간에 지내기 좋은 봄과 가을이 있는 사계절의 특성이 한국의 자랑이긴 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지내기 좋은 봄과 가을은 점점 짧아지고, 무더위의 여름과 극한 추위의 겨울이 점점 길어진다는 점입니다.

 

여름이 아무리 덥더라도 낮에만 덥고 열대야가 없어서 아침저녁으로 선선하면 그런대로 견딜 만합니다.

그런데 열대야가 있는 날이 많아지면서 밤에 제대로 쉴 수 없으니 적응하기가 어려워지는 것 같습니다.

예년에는 8월 15일이 지나면 낮에는 덥지만, 아침저녁으로 선선해진다고 했는데, 요즘은 그런 공식도 깨지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이처럼 늦더위와 열대야가 기승을 부리는 이유는 바다의 수온이 높아져서 남쪽의 저기압의 세력이 강해졌기 때문입니다.

바다의 수온이 높아져서 많은 수증기가 발생하니, 그 기운이 강해서 낮은 온도의 북쪽 고기압이 내려오지 못하도록 막고 있기 때문이죠.

바다의 수온이 높아져서 수증기 발생량이 많아지니 요즘 태풍의 강도도 과거보다 엄청 세졌습니다.

 

최근 발생한 몇 개의 태풍이 일본과 중국, 베트남 등을 초토화시키는 괴력을 발휘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에 피해를 입힌 태풍은 없지만, 가을에 이런 강력한 태풍이 와서 가을 추수를 망치는 게 아닌지 걱정이 많이 됩니다.

그렇지 않아도 기후 온난화 때문에 작물 생육에 지장을 받아 과일값이 치솟는 등 부작용이 큰데 태풍 피해까지 입으면 정말 큰일일 테니까요.

 

실제로 한반도 주변 바다 수온이 지난 40년간 1.5도 올라갔다는 기상청의 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최근에는 높아진 수온 때문에 양식장 물고기들이 떼죽음 당하는 게 일상이 될 정도라고 하니 걱정입니다.

바다의 수온이 높아지면서 제주도 바다에 열대 물고기들이 나타나고, 제주에서 잡혔던 물고기들이 남해안과 동해안에서 보인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돈이 많은 부자들이야 안전한 고층 아파트에 살고, 더우면 에어컨도 맘대로 켜고, 시원한 해외로 떠나 있다가 오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태풍과 고수온으로 인해 양식장, 과수원, 농작물 피해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으니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기온 1도 상승이 우리 일상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나 크다는 사실을 절감하는 요즘입니다.

 

 

행복한 미래를 만드는 기술자

 

김송호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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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엔지니어의 뉴스레터 (제 813 호)

 

【 제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 사촌 동생의 죽음 】

“형, ㅇㅇㅇ이 조금 전 하늘나라로 가셨다는데, 어떡하실 건가요?”

“어떡하긴 어떡해, 얼른 준비하고 내려가야지.”

 

작년에 루게릭병이 갑자기 발병하여 투병 중이던 사촌 동생이 운명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갑자기 멍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아직까지도 루게릭병에 대한 발병 원인도 모르지만, 특별한 치료 방법도 없어서 병이 나을 거라는 기대는 안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루게릭병을 앓고 있던 사촌 동생이 막상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으니 가슴 한구석이 먹먹해지는 것은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 형제들이 많은 편이고(6남 2녀), 그에 딸린 자녀들도 많아서 사촌 동생들이 많은 편입니다.

하지만 제가 가장 손위인데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다음 고향을 떠나오는 바람에 어린 사촌 동생들은 잘 모르는 편입니다.

그래도 이번에 세상을 떠난 사촌 동생은 나보다 세 살 아래고, 어릴 때 같이 지낸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다른 사촌 동생들보다 정이 더 많이 가는 편이었습니다.

 

고향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촌 동생이 장손인 저를 대신해서 집안일들과 사촌동생들을 챙겨왔기 때문에 더 정이 많이 갔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고향인 제주에 내려갈 때마다 그 사촌 동생을 불러서 같이 식사도 하고, 술도 한 잔 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친 동생들과 사촌 동생들이 합쳐서 20명 가까이 있지만, 그래도 집안일들을 의논하고 편하게 술 한 잔 할 수 있었던 게 바로 그 사촌 동생이었으니까요.

 

그러고 보니 아버지 형제 여섯 분들 중 두 분만 살아계시고, 네 분은 이미 세상을 떠났으니 이제 우리 차례가 된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도 듭니다.

이미 우리 형제들(사촌 포함) 중에서 제 여동생과 이번에 세상을 떠난 사촌 동생 등 두 사람이 제 곁을 떠났네요.

재작년에 세상을 떠난 제 여동생이야 예순 살이 채 안 되었지만, 이번에 세상을 떠난 사촌 동생은 예순 다섯 살이 되었으니 빠른 죽음이라고 볼 수는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장수 집안이라 자처하는 제 집안 내력으로 따지자면 빠른 죽음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까지 돌아가신 집안 어르신들의 예를 보면, 90세 이하에서 돌아가신 분은 76세에 돌아가신 제 할아버지 한 분 뿐입니다.

제 할머니 두 분은 거의 100세에, 재작년에 돌아가신 제 아버지도 93세에 돌아가셨으니까요.

 

이번에 세상을 떠난 사촌 동생과 재작년에 세상을 떠난 제 여동생은 두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첫째는 젊은 시절(신혼 초기)에 가난으로 상당히 힘든 시기를 보내다가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부터 경제 형편이 나아졌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경제 형편이 나아진 다음에도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지 못하고 아등바등 살아갔습니다.

 

둘째는 두 사람이 일하던 일터의 환경이 건강에 안 좋은 열악한 상황이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사촌 동생의 경우는 세탁소 안에서 해로운 용제 냄새를, 제 여동생은 닭튀김을 하면서 기름 훈증을 계속 맡아야만 했습니다.

가난했던 시절 때문에 생긴 스트레스와 건강에 좋지 못한 환경이 두 사람의 목숨을 재촉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촌 동생의 장례는 성당에서 치렀는데, 장례미사 때 사촌 동생의 이름이 호명될 때마다 제 마음이 울컥했습니다.

제 사촌 동생의 이름이 제 이름과 아주 비슷해서 ‘김송ㅇ’까지는 똑같고, 세 번째도 'ㅎ‘으로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제가 장례미사의 주인공이 되어 관에 누워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아주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행복한 미래를 만드는 기술자

 

김송호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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