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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로서 살아온 30여 년의 세월과 더불어 인생 후반기를 맞아 행복을 추구하는 기술자의 변신 스토리입니다. --------- 기술 자문(건설 소재, 재활용), 강연 및 글(칼럼, 기고문) 요청은 010-6358-0057 또는 tiger_ceo@naver.com으로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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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두루누비 평화의길 홈페이지 캡처
정부가 다음 달 18일부터 비무장지대 접경지역 지자체에 조성한 DMZ 평화의 길 10개 테마노선을 개방한다고 28일 밝혔다.

테마노선은 인천(강화), 경기(김포, 고양, 파주, 연천), 강원(철원, 화천, 양구, 인제, 고성) 등 10개 접경지자체를 대상으로 민통선 이북의 생태·문화·역사자원을 통해 국민이 안보, 평화와 자유의 소중함을 직접 체험하도록 조성한 길이다.

정부는 테마노선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문화체육관광부, 통일부, 국방부, 행정안전부, 환경부 등 관계부처 협력을 바탕으로 디엠지(DMZ) 평화의 길 조성을 위한 통합운영체계를 구축해 운영하고 있다.

각 테마길은 비무장지대를 비롯한 접경지역에 서식하는 각종 야생 동식물의 보호와 참여자의 안전을 위해 차량으로 이동한다. 군부대의 협조를 받아 참가자가 직접 철책길을 따라 걷는 구간도 구성돼 있다. 참가자들은 접경지역에만 있는 천혜의 관광자원을 체험하고, 전문해설사나 해당 지역의 마을주민 등으로 구성된 안내요원을 통해 그 안에 숨어 있는 다양하고 매력적인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다. 테마노선 참가 시에는 신분 확인 절차를 거치며 참가비(1만원)를 받는다. 참가비는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지역상품권이나 특산품 등으로 환급받을 수 있다.

정부는 이번 테마노선 개방으로 비무장지대 접경지역의 안보·평화관광이 활성화돼 인구감소, 개발 제한 등으로 침체된 접경지역의 관광과 경제가 회복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또한 이를 계기로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평화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많은 영웅이 희생한 대가라는 사실이 기억되길 바라고 있다.

관계부처와 지자체 등은 앞으로도 비무장지대(DMZ)와 그 일원의 역사, 생태 가치를 전 세계와 공유할 수 있도록 ‘테마노선’을 세계적인 평화관광 자원으로 함께 육성해 나갈 계획이다.

테마노선 참가는 온라인을 통해 사전 신청해야 한다. 이날부터 평화의 길 누리집과 코리아둘레길 걷기여행 애플리케이션(앱) '두루누비'를 통해 신청하면 된다.

신용현 한경닷컴 기자 yonghyun@hankyung.com

 

[한국경제 2025년 3월 28일]

응봉역에서 서울숲역

2025. 3. 28. 07:03 | Posted by 행복 기술자

암사역사공원역-중앙보훈역

2025. 3. 25. 07:01 | Posted by 행복 기술자

좌읍 송당리 대표오름, 높은오름


당당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높은오름. 이름처럼 일대에서 가장 높다.

높은오름(405.3m)은 이름에서부터 맹주다운 기운을 대놓고 풍긴다. 제주에서 오름이 몰려 있는 구좌읍 송당리에서도 가장 높아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이름처럼 과연 우뚝한 자태를 가졌다. 전체가 삼각뿔 모양이어서 조금 떨어져서 보면 뭍에서 흔히 만나는 탄탄한 산의 느낌을 준다. 그러나 정상의 동그랗고 아담한 굼부리가 이곳이 화산체임을 알려 준다. 

제주 동부의 대표 오름 전망대

일대에서 유일하게 고도 400m가 넘고, 오름 자체의 높이도 175m로 높은 축에 드는 높은오름은 송당리의 숱한 오름 중에서도 도드라진다. 단단하고 거대한 뿔처럼 솟았기에 사면이 가파른 편이며, 가까운 세화리의 다랑쉬오름과 함께 제주 오름의 원형을 잘 보여 주는 곳으로 꼽힌다. 30년쯤 전만 하더라도 오름 전체가 온통 풀밭이었다는데, 지금은 정상부를 제외하고는 소나무로 빼곡히 덮였다.

작정하고 오름을 찾아다니는 이가 아닌 다음에야 뭍에서 온 여행자가 이 오름을 오를 일은 거의 없다. 다시 말해 인기가 없는 곳이다. 일단 ‘높은’이라는 이름 때문에 여행목록에서 제외됐을 가능성이 크다. 주변에 낮으면서도 멋진 오름이 수두룩하니 굳이 고생하며 이곳을 오를 이유를 찾지 못했을 테고, 우뚝 솟은 외형도 한몫했을 것이다. 또 그리 외진 곳이 아닌 데도 승용차가 없다면 찾아가기가 애매하다. 가까운 버스 정류장에서 오름 들머리까지는 1.4km쯤의 외진 길을 걸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오름 들머리에 자리한, 한적하고 으슥한 느낌의 공동묘지도 영향을 미쳤을 듯하다. 그러니 여행자라면 걸음이 주저되는 곳이다. 참 안타까운 탐방 여건이다. 


높은오름에서 본 한라산과 제주 동부의 오름들. 오름에 올라야만 만날 수 있는 풍광이다. 

 

사실 제주의 오름 중 높은오름만큼 장쾌한 풍광을 만날 수 있는 곳도 드물다. 서쪽의 노꼬메오름과 남쪽의 군산 정도가 꼽힐까? 제주 동쪽의 숱한 오름을 높은 지점에서 굽어보는 조망의 즐거움은 무척 특별하다. 그리고 겉보기와 달리 실제로 걸어보면 탐방에 어려움이 없다. 

정상엔 둘레가 500m나 되는 우묵한 원형 굼부리가 밋밋한 세 개의 봉우리에 둘러싸인 채 멋진 자태를 뽐낸다. 아찔한 깊이를 가진 다랑쉬나 산굼부리처럼 위압적이지 않고 아늑한 풀밭 느낌의 굼부리다. 능선을 따라 걸으면서 굼부리를 내려다보면 굼부리 내부가 손바닥처럼 훤히 다 보인다. 대청마루에서 앞마당을 보는 듯 가깝고 편한 느낌이다. 

정상부 능선에서 사방으로 조망이 시원스레 펼쳐진다. 바로 앞의 동검은이오름과 문석이오름이 손에 잡힐 듯 속속들이 가늠된다. 동시에 동부 오름 중 가장 당당한 모습을 보여 주는 다랑쉬오름과 송당리의 허다한 오름을 조망하기에 단연 최고의 명당이다. 동쪽 끝 멀리 깍두기 머리를 한 성산일출봉과 우도, 서쪽 멀리 한라산도 잘 보인다.


동검은이 알오름 상공에서 본 높은오름과 한라산, 그리고 제주 동부의 오름들.

탐방로는 무척 단순하다. 구좌읍공설묘지 사이로 난 콘크리트 포장도로를 따라 탐방이 시작된다. 공설묘지를 벗어나면서 계단길이 이어진다. 중간쯤에 숨 돌리며 쉬어가라고 얼마간의 평지도 나온다. 이 평평한 곳에도 무덤 몇 기가 자리를 잡았다. 여기서 정상부 능선까지는 다시 오르막 구간인데, 살짝 가파르다. 그러나 조망이 트일 때마다 가없이 펼쳐지는 제주 풍광이 아름다워서 감탄하다 보면 어느새 정상부 능선에 닿는다. 


공동묘지를 벗어나며 나무계단이 시작된다. 길옆으로 모시풀이 무성하다. 

 

아늑하고 예쁜 굼부리

능선을 만난 지점에서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왼쪽으로 꺾어지면 정상이 더욱 가깝다. 놀랍게도 감시초소 바로 뒤에 무덤 한 기가 눈길을 끈다. 어찌 이 높은 곳까지 올라와 고인을 묻었을까! 하긴 이만한 명당을 찾기도 쉽지 않을 듯하다. 높은오름 정상이 품은 제주 풍광을 이 무덤의 주인이 온통 차지하다시피 하고 있다. 부럽기까지 하던 이 무덤은 몇 해 전 파묘되어 빈 봉분만 남았다. 둥글게 두른 돌담이 소박하고 정겹던 무덤은 파헤쳐진 채 방치되어 흉물이 되고 말았다. 오름에서 자주 만나게 되는 이런 풍광은 제주도의 독특한 풍습 때문이기도 하다. 현재 법적으로는 파묘 후 봉분과 석물을 땅에 묻고 평탄 작업을 해야 하는데, 제주에서는 파 놓은 묘를 덮지 않는 것이 주변의 잡귀들이 따라오지 말고 그곳에 머물러 있도록 하는 조치라고 한다. 

높은오름 굼부리는 걸어서 들어갈 수 있어서 특별하다. 굼부리 안 세상은 바깥과 차단된 별천지다.

 

화구벽능선을 따라 걷노라니 제주 동쪽의 거의 모든 오름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하나하나 짚어가며 걷는 재미가 비할 데가 없다. 화구벽이 높이를 낮춘 동북쪽에서 얕고 우묵한 초지대를 이룬 굼부리 안으로 들어설 수 있다. 화구 안은 철 따라 온갖 꽃이 흐드러져 천상의 화원을 방불케 한다. 높은오름은 ‘피뿌리풀’의 서식지로 유명하다. 고려 말, 몽골에서 유입되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피뿌리풀은 더덕처럼 생긴 굵은 뿌리가 핏빛처럼 붉어서 이런 무서운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수십 개의 작은 꽃이 모인 꽃송이가 무척 신비롭고 예쁘다. 예전엔 높은오름 능선에서 비교적 쉽게 볼 수 있었다는데, 무분별한 남획으로 지금은 눈을 씻고 찾아도 보이지 않는 멸종위기 야생식물이 되고 말았다. 


높은오름 굼부리를 걷고 있는 탐방객들. 뒤로 제주 북동부 바다 건너 완도 땅이 아스라하다.

 

하산은 올랐던 길을 되짚어 내려서는 길뿐이다. 공동묘지 바로 아래에 차를 댈 만한 공간이 넉넉하다. 높은오름은 이웃한 동검은이오름과 함께 탐방하면 좋다. 체력이 괜찮다면 식수와 도시락을 준비해서 백약이오름과 좌보미오름까지 둘러보면 금상첨화다.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높은오름 정상. 뒤로 돝오름, 다랑쉬오름, 아끈다랑쉬오름, 용눈이,손지오름이 늘어섰다. 

 


높은오름 능선에서 본 송당리. 이곳은 귤 농사가 되지 않아 각종 묘목을 많이 심는다. 

 

Info

 

교통

내비게이션에 ‘높은오름’을 입력. 오름 표석이 서 있는 곳에서 직진 방향으로 650m 더 들어서면 공동묘지 중간의 들머리가 나온다. 제주버스터미널에서 성산항을 오가는 211번, 212번 버스가 중산간동로 상의 ‘높은오름 입구’ 정류장에 선다. 여기서 오름 들머리까지는 1.4km를 걸어야 한다. 

주변 볼거리

스타벅스 송당파크R점 스타벅스가 2023년 10월에 선보인 국내 최대 규모의 리저브 전용 매장이다. 지상 1, 2층, 360평 규모로, 전체 좌석이 340개지만 늘 북적인다. ‘흑임자 품은 큐브 브레드’, ‘돌보루 마스카포네 브레드’ 등 이 매장의 특화 푸드와 음료가 인기. 제주 화산석을 중심으로 꾸민 자연친화적 공원인 ‘동쪽송당 동화마을’을 품고 들어선 터라 널따란 정원을 둘러보는 재미가 좋다. 영업시간은 09:00~22:00.


맛집

로타리식당 명성 자자한 오름이 숱하지만 딱 꼽을 맛집은 떠오르지 않는 곳이 송당리다. 허름하다는 말로도 모자랄 외관을 한 로타리식당은 점심때만 영업하는 가정식백반 전문점이다. 일대의 공사판 인부는 모두 이곳을 이용하는 듯, 피크타임엔 늘 자리가 없다. 또 조금만 늦게 가도 그날 준비한 재료가 떨어질 경우, 발길을 돌려야 한다. 한 번 먹으면 또 생각나는 곳이다. 


문의 064-783-2788.

Tip_ 알쏭달쏭 제주어

 

끌락(호끌락)

‘끌락다(호끌락호다)’의 어간. ‘끌락다’는 매우 작다는 뜻이다. 지역에 따라 ‘쩨끌락’, ‘쪼끌락’이라고도 한다. 

월간산 2월호 기사입니다.

출처 : 월간산(http://san.chosun.com)

두물머리

2025. 3. 19. 07:01 | Posted by 행복 기술자

진우석의 Wild Korea 〈21〉 평창 백덕산 눈꽃 산행

강원도 평창군과 영월군에 걸쳐 있는 백덕산(1350m)은 한적하게 눈꽃 트레킹을 즐기기 좋은 산이다. 산림청이 선정한 100대 명산인데도 아는 이가 많지 않다. 산은 정상부만 조망이 열린다. 치악산, 가리왕산 등 명산이 첩첩 산그리메를 그린다.

폭설 내린 다음 날 새벽. 강원도 평창의 백덕산(白德山·1350m)에 올랐다. 동쪽 하늘에 걸린 붉은 띠를 뚫고 불끈 해가 떠올랐다. 추위에 떨다가 따뜻한 볕이 얼굴에 비칠 때 ‘괜찮아, 괜찮아. 새해에는 모든 게 잘될 거야’라고 중얼거렸다. 새해에는 높은 산에 올라 새 희망을 품어보자.

동심 자극하는 투명한 눈 결정


새벽에 운교리 먹골로 들어서서 능선을 걷다가 만난 일출. 눈 덮인 산은 옅은 화장을 한 듯 고운 빛을 띤다.

지난 연말 한파주의보가 내렸다. 일기예보에 따르면, 영서 지방에 많은 눈이 퍼붓고 다음 날 쨍하게 맑단다. 눈꽃 산행을 하기에 완벽한 날씨다. 백덕산과 태기산(1258m)을 놓고 저울질하다가 백덕산을 선택했다. 태기산은 정상까지 임도가 놓여 초보자 코스로 제격이다. 평창과 영월에 걸친 백덕산은 산림청이 선정한 ‘100대 명산’인데도 찾는 이가 드물다. 백덕(白德)이란 이름처럼 설경이 아름답고, 1350m 높이에서 바라보는 강원 내륙 산간지역의 조망이 탁월하다.


다음날 새벽, 평창으로 가는 도로는 말끔하게 제설됐다. 밤새 눈을 치운 분들에게 감사드리며 살살 차를 몰았다. 문재쉼터 입구의 등산로는 눈으로 덮였다. 할 수 없이 운교리 먹골을 들머리로 삼았다. 큰 주차장은 차 대신 눈으로 가득했다.

딸깍. 헤드 랜턴을 켜자 쌓인 눈에서 무언가 반짝반짝 빛났다. 유리처럼 투명한 눈 결정이다. ‘지구 북쪽 끝 눈의 나라로 눈의 여왕을 만나러 가지 않을래?’ 결정들이 소곤소곤 비밀 이야기라도 들려주는 듯 동심에 젖어 있다가 뺨을 후려치는 칼바람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촬촬. 먹골 계곡의 물소리가 들린다. 캄캄한 어둠 속이라 쫑긋 귀가 선다. 랜턴을 껐다. 기다렸다는 듯 어둠이 달려들고, 하늘에는 별이 초롱초롱하다. 번쩍. 별 하나가 긴 꼬리를 그렸다. 궤도를 벗어난 별똥별은 어디로 가는 걸까.

자녀 서울대 간다는 ‘서울대나무’


백덕산의 상징인 ‘서울대나무’. 알파벳 N자 모양으로 굽은 신갈나무다.

임도를 벗어나 능선에 올라붙자 길이 사라졌다. 바람이 능선에 수북하게 눈을 쌓아 놓았다. 이제부터 러셀(눈을 헤치며 길을 내는 기술)을 해야 한다. 아이젠과 스패츠를 착용했다. 동행한 여행작가 김영수씨가 길을 낸다. 발이 허벅지까지 빠진다. 그의 발자국에 내 발자국을 포갠다. 걷기가 한결 쉽다.

동쪽 하늘에 붉은 띠가 걸렸다. 눈 때문에 속도가 늦어져 정상에서 일출을 맞으려는 계획은 물 건너갔다. 전망이 나오는 장소를 찾아봤지만, 나무가 빽빽해 시야가 열리지 않았다. 왼쪽으로 큰 바위가 눈에 들어왔다. 본능적으로 그곳으로 향했다. 큰 소나무가 시야를 가렸지만, 나뭇가지 사이로 일출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해가 붉은 띠를 뚫고 벙긋 떠올랐다.

삼거리에 닿았다. 먹골과 문재 쉼터에서 오는 길이 여기서 만난다. 정상까지는 500m쯤 남았다. 능선에는 신갈나무 고목이 많은데 가장 특이한 게 일명 ‘서울대나무’다. 나뭇가지가 서울대 정문처럼 절묘하게 굽어 있다. 이 대문으로 5번쯤 드나들면 자녀가 서울대에 간다는 말이 있다.

시야가 툭 터지는 곳이 정상이다. 순백의 눈을 밟으며 정상 등정의 기쁨을 누린다. 백덕산은 정상에서만 전망이 열린다. 동쪽 먼 하늘에 걸린 능선은 정선의 가리왕산(1561m)이다. 1500m 높이의 능선이 그리는 곡선이 한없이 부드럽다. 서쪽 멀리 삼각형처럼 봉곳 솟은 봉우리는 치악산 비로봉(1228m)이다. 찬란하게 쏟아지는 빛을 받으며 첩첩 산줄기를 감상하다 보면, 세상의 중심에 선 듯 호기로워진다. 따뜻한 볕을 쬐며 마시는 커피가 향긋하다.

속절없이 사라져 더 애틋한 눈


새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나뭇가지에 달린 눈꽃을 올려다봤다. 바닷속 산호초를 보는 것 같았다.

정상에 한참 머물다가 하산길에 들어섰다. 서울대나무 근처에 눈이 수북하게 쌓인 곳이 있다. 이런 곳에서는 드러눕기의 낭만을 놓칠 수 없다. 눈밭을 등지고 두 팔 벌리고 섰다가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체공 시간은 마치 영원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1초도 안 된다. 푹, 소리와 함께 눈가루가 분분히 날린다. 눈밭이 받아주는 푹신한 느낌이 좋다. 누우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시퍼런 하늘을 배경으로 눈꽃 핀 나뭇가지들이 탐스럽다. 개구리처럼 손발을 움직여 본다. 심해의 산호 사이를 헤엄치는 기분이 이와 같지 않을까.

왔던 길을 되짚어간다. 내 발자국에 발자국을 한 번 더 얹는다. 올라올 때 어두워 잘 보지 못했던 풍경은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능선에는 신갈나무 고목들이 많다. 생태가 잘 보존됐다는 뜻이다. 1시간쯤 내려와 낙엽송 숲에서 배낭을 내려놓았다. 이제 종점이 얼마 안 남았다.

바람이 분다. 나뭇가지에 쌓였던 눈이 바람에 날리며 은빛 커튼을 드리운다. 예사롭지 않은 풍경에 문득 마음이 허허로워진다. 애써 쌓은 눈이 바람에 날려 속절없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 우리네 인생사와 별반 다르지 않다. 출발점에 되돌아왔다. 바람결에 홀연 사라진다 해도 풍요로운 눈을 인생에 차곡차곡 쌓는 것이 또 내 할 일이라고 다짐해 본다.

여행정보


박경민 기자

백덕산은 강원도 평창군과 영월군에 걸쳐 있지만, 교통이 편한 평창 운교리를 들머리로 삼는 게 좋다. 방림면에서 먹골행 버스가 하루 두 편뿐이라 대부분 자가용을 이용한다. 코스는 문재 쉼터~사자산~정상~먹골 주차장. 15㎞, 6시간쯤 걸린다. 눈이 많이 왔을 때는 먹골 주차장에 차를 대고 왕복하는 게 좋다. 문재 쉼터에 주차할 수 있고, 먹골 등산로 입구에 큰 주차장이 있다. 백덕산에서 가까운 횡성 안흥면은 찐빵의 성지다. 팥이 달지 않고 빵이 쫄깃한 ‘면사무소앞안흥찐빵’을 추천한다.


글·사진=진우석 여행작가 mtswamp@naver.com

 [출처:중앙일보 2025년 1월 10일]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06465

봉은사 명상길

2025. 1. 29. 07:01 | Posted by 행복 기술자

아차산-용마산 트레킹

2025. 1. 14. 06:59 | Posted by 행복 기술자

4,500km 완공 대한민국 한 바퀴 챌린지


가장 인상적이었던 잠곡저수지의 아름다운 풍경.

대한민국을 한 바퀴 도는 코리아둘레길 4,500km. 15년이란 긴 시간 끝에 드디어 지난 9월 완공됐다. 동해, 남해, 서해 순으로 순차 개통된 데 이어 마지막으로 DMZ 평화의 길 500km가 열리면서 막힘없이 전국의 둘레를 걸을 수 있게 된 것.

많은 걷기꾼들이 코리아둘레길로 몰리자 여러 지자체, 기업들도 덩달아 관련 행사를 내놓고 있다. 그중 카카오는 걷기여행의 즐거움을 알리고 지역 경제와 국내 관광산업에 이바지하겠다며 총 45인을 선발, 9개 구간으로 나눈 코리아둘레길을 각각 걸을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행사 ‘대한민국 한 바퀴 챌린지’를 기획했다. 

카카오 코리아둘레길TF 조창엽 리더는 “직접 다녀온 사람들의 생생한 노하우와 지역 주민과의 재미난 에피소드들을 여러 사람에게 공유하고자 기획된 행사”라며 “그중 DMZ 평화의 길은 인적이 드물고 최고의 청정 자연을 자랑하는 곳”이라고 전했다.

지원자는 무려 9,000명. 운 좋게도 치열한 경쟁을 뚫고 45인 명단에 들 수 있었다. 걷게 된 길은 코리아둘레길 최대 난코스로 꼽히는 DMZ 평화의 길. 10월 1일부터 김황희, 이서준씨와 함께 이 길을 17일에 걸쳐 걸었다. 그리고 모든 일정을 마친 뒤, 날머리에 마주 앉아 이들과 대화를 나눴다.

“DMZ 평화의 길, 어떻게 걸으면 좋을까요?”

사전 준비는 어떻게 했나요?

지원  구간별 거리와 평화 쉼터(숙소), 캠핑 가능한 곳 위치를 확인 후 대략적인 일자별 이동거리를 정했습니다. 물론 실제로는 운행하며 우천 등의 상황으로 다소 조정은 해야 했지만 사전 준비를 꼼꼼하게 한 덕분에 크게 무리하는 일 없이 잘 완주할 수 있었습니다.

서준  해파랑길 종주를 했던 경험이 있어서 세심하게 정하진 않았습니다. 대략적인 일정만 정해 두고 나머지는 현지에서 조율하는 방식으로 했습니다.


카카오 ‘대한민국 한바퀴챌린지’ 참가자들에게주어진 굿즈.사진 임종진.

 

정방향(서에서 동) 혹은 역방향(동에서 서)은 각각 어떤 차이와 장단점이 있나요?

지원  저는 고향이 서울이라 먼 곳에서 가까운 곳으로 오는 것이 낫다고 판단해서 역방향으로 진행했어요. 장점은 상대적으로 난이도가 높은 강원도 구간을 체력적으로 유리한 초반에 넘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단점은 상승고도가 조금 더 높을 수 있다는 점이 있고요.

황희  저는 항상 정방향으로 걷는 걸 선호하는 편이에요. 보통 안내판이나 리본이 정방향으로 갈 때 더 잘돼 있기 때문입니다. DMZ 평화의 길 역시 뚜렷한 차이는 아니지만 역방향보다 정방향이 조금 더 표식이 잘 돼 있었고요.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지원  500km를 걸으며 정말 다양한 일들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작은 고양이와 함께 길을 걸었던 일입니다. 첫 만남부터 강렬했어요. 저 멀리서 저를 보자마자 마구 달려와서 제 품에 뛰어올라 안기더라고요. 심지어 차들이 꽤 달리는 구간까지 따라와서 한동안 제가 안고 걷기도 했죠. 이 친구를 어째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만난 분이 제 이야기를 듣더니 본인이 키우겠다며 데려갔습니다. 마지막까지 저한테 오려고 발버둥 치는 걸 보니 마음이 찡했어요.

황희  DMZ 평화의 길은 숙박 시설이 열악한 편입니다. 그래서 저는 캠핑 장비를 가지고 진행했어요. 오래 쓴 장비라 다소 노후화된 상태였고요. 텐트는 이미 한 번 폴대가 부러진 적이 있어서 불안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텐트를 설치하는 중에 또 부러졌어요. 하필이면 전체 구간 중 가장 힘들고 높았던 복주산 정상에서요. 해발 1,100m, 아무도 없는 산 정상에서 이미 해가 져 캄캄한데 혼자 1시간 동안 부러진 폴대를 응급처치하느라 끙끙 앓았습니다.


32-1코스. 걷기 시작한 첫날 묵은 박지에서 텐트 밖을 바라봤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코스, 혹은 장소가 있다면?

지원  정말 야생 그 자체였던 19코스입니다. 방금 말한 복주산을 지나는 길이에요. 백패킹으로 넘을 생각이어서 짐 무게가 10kg 이상이었는데 쓰러진 나무가 도처에 있어서 기거나 뛰어넘어 지나가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고생 끝에 헬기장에서 텐트를 치고 하룻밤을 묵는데 하늘에서 별이 정말 말 그대로 쏟아져 내리고 있었어요.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은 장면이었습니다. 또 그렇게 복주산에서 내려온 뒤 잠곡저수지의 풍경 또한 눈부시게 아름다웠어요. 그동안 힘들었던 여정을 보상해 주는 선물 같았어요.

황희  저는 연천 13코스가 가장 인상 깊었어요. 보통 우리가 멋진 그림을 칭찬할 때면 사진 같다고 표현하고, 반대로 멋진 풍경을 보면 그림 같다고 하죠. 13코스가 딱 그랬어요. 보자마자 ‘아 이건 그림이다’라고 생각하게 될 만큼 아름다웠습니다.

서준  진부령미술관에서 소똥령마을로 연결되는 31코스도 좋았어요. 숲 사이 임도를 따라 걷는 길이에요. 이 코스를 걸을 때 주의할 점은 산불조심기간에는 다른 우회로를 이용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멋있었던 장소는 한탄강 송대소입니다. 고석정부터 안개가 너무 심해서 경치를 전혀 볼 수 없었는데 송대소에 도착할 즈음 안개가 확 걷히며 멋진 풍경이 나타났어요.


양구 해안면의 벼가 노랗게 익은 논을 지나가고 있다. 

 

걸으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지원 강원도 구간에 숙소와 식사가 마땅치 않아요. 그래서 1박2일 혹은 2박3일 정도는 백패킹으로 가는 것이 좋은 코스가 더러 있습니다. 짐이 무거워지니 계속 발에 물집이 잡혀 고생했어요. 발가락 양말, 바셀린, 물집 방지 밴드 등 미리 물집을 방지할 수 있는 물품들을 구비해 가면 도움이 될 듯합니다.


숙소 등 시설이 부족해 백패킹으로 걷는 게 효율적인 구간이 꽤 있다. 사진 임종진.

 

황희  저 역시 무릎이 너무 아파 심할 땐 걷지도 못할 정도였네요. 15kg 상당의 무거운 짐, 앞서 다른 장거리 일정을 소화한 점, 새 등산화를 신은 점 등이 작용했죠. 다행히 한 번 심하게 아픈 이후론 걷지 못할 만큼 아프지 않아 무사히 완주할 수 있었습니다.

서준  저는 첫날 저녁부터 물집이 크게 잡혀 고생했어요. 발이 심하게 부어올라 신발이 작게 느껴질 정도였고, 특히 발볼이 너무 아팠죠. 며칠은 참으며 걸었지만 7일차부턴 매일 아침 소염진통제를 먹었어요. 그리고 아예 신발을 칼로 뜯어서 발볼을 늘리기도 했습니다. 

특별히 힘들었던 코스는?

지원  저는 11코스가 힘들었어요. 코스 자체 난이도가 높지는 않은데 긴 시간 동안 비슷한 풍경이 계속돼 마치 정신과 시간의 방에 갇힌 느낌이었죠. 짐을 최소화하고 달려서 지나가면 덜 지루하게 지나갈 수 있을 것 같아요.

황희  19코스. 길이 정비가 안 되어 있어 조심해야 합니다.

서준  저도 19코스요. 약 14km로 짧은 거리지만 해발고도 400m에서 1,100m까지 치고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가야 합니다. 최근에 강한 돌풍으로 곳곳에 나무가 쓰러져 있고 길도 정비돼 있지 않았죠. 저는 하루에 이 코스를 다 걷지 않고 일정을 쪼개서 첫째 날 오후에 복주산 헬기장까지 오르고, 그 다음날 새벽에 하산하는 방식으로 체력을 안배할 수 있었습니다.

복장 및 장비를 소개해 주세요.

지원  상의(몬츄라 란도 메리노 말리아, 파타고니아 캐필린 쿨)는 며칠 입어도 냄새가 나지 않고 얇아도 보온성이 있는 메리노울 소재 혹은 빨리 마르는 속건성 소재의 티셔츠를 입었습니다. 갑작스러운 추위와 우천은 패킹 사이즈가 작고 가벼운 몬츄라 워터프루프 재킷을 챙겼고, 하의는 몬츄라와 파타고니아 등산용 바지, 그리고 피엘라벤 하이킹 레깅스를 입었어요. 

배낭은 어깨끈과 허리 벨트가 여성 체형에 맞게 설계된 인수스 42L 여성용 배낭 JHUN42W, 가벼움이 장점인 그래니트 기어 크라운3, 블랙다이아몬드의 디스턴스8, 살로몬 S lab 트레일 러닝 베스트를 상황과 코스에 맞게 사용했습니다. 신발은 호카 카하2, 코오롱스포츠 트라이포드 미드, 브룩스 아드레날린 GTS 23입니다. 신발은 출발하기 전에 시다스 아드레나인 매장에서 제 발에 맞게 인솔을 맞췄어요. 텐트는 가성비 좋은 네이처하이크 뉴 클라우드업2 UL, 매트는 씨투써밋, 침낭은 페더다운입니다. 


백패킹 모드로 운행 중일 때 장비 착장 모습. 상황과 코스에 따라 백패킹으로 갈지, 트레킹 혹은 트레일러닝으로 갈지 잘 결정하면 한결 쾌적하게 완주할 수 있다. 

 

황희  저는 최우선 가치가 가성비입니다. 이 기준에 맞는 브랜드가 저한텐 데카트론이에요. 대부분 여기 걸 썼습니다. 

서준   장비 리스트는 다음과 같습니다. 

텐트-자작 텐트(약 495g, 다이니마 소재와 카본폴 사용)
배낭-자작 배낭(약 780g, 40L)
매트-프로몬테 PMT-120(약 310g / 120cm)
침낭-EE Revelation APEX Sleeping Quilt (약 600g, 5°C 커스텀 주문 버전)
상의-자작 후드(약 136g, 폴라텍 알파다이렉트 색상 커스텀 원단)
재킷-EE Visp Rain Jacket(약 168g, 투습력 약 83000의 소프트쉘 겸용 재킷)
보온재킷-EE Torrid Jacket(약 300g, 외피 20D 커스텀 주문 버전)
바지 - cayl cargo vent pants(약 330g, L)

텐트와 배낭은 직접 만든 겁니다. 텐트는 다이니마 소재로 2개 폴을 쓰는 싱글월입니다. 높이가 낮아 바람에 강하고 너비와 길이가 각 1m, 2.3m로 여유도 있죠. 카본 폴 대신 DAC의 nfl 알루미늄 폴을 썼고요. 배낭은 카본프레임을 쓴 가볍고 내구성 좋은 전면 전체 개방형입니다. 자주 쓰는 물건을 수납할 수 있는 4개의 포켓도 있고요.


이서준씨는 본인이 직접 제작한 배낭과 텐트를 갖고 이번 챌린지에 임했다.


매트는 2~3번 불어주면 펼쳐지는 제품이에요. 설치가 빠르죠. 부족한 길이는 배낭과 발포 방석을 이용해 해결했습니다. 

나머지는 주로 Enlightened Equip-ment 제품입니다. 단순명쾌한 디자인과 좋은 소재가 장점이고, 세일할 때 사면 상당히 저렴하게 살 수 있어요. 상의는 최근 유행한 폴라텍 알파다이렉트 소재를 이용해 직접 만든 것입니다. 이렇게 직접 만든 장비로 다니면서 개선점을 찾아 수정하고 보완하는 것도 무척 즐거운 일입니다. 

가장 좋았던 평화 쉼터(숙소)는?

지원  아쉽게도 숙박은 못 했지만 너무나 친절해 기억이 남는 화천 ‘청정아리풍차펜션’입니다. 길을 걷는 분들에게 커피도 무료로 제공해 주고 따뜻하게 응대해 줘 고단한 여정 중 달콤한 휴식처가 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대부분의 쉼터가 다 좋았는데 양구 ‘두타연 금강산가는길 안내소’와 연천 ‘새둥지 마을’이 시설이 깨끗하고 가격이 저렴해 추천할 만합니다. 

DMZ 평화의 길을 걸으려는 사람들에게 해줄 만한 조언이나 팁이 있다면?

지원  사전 준비를 잘해야 합니다. 천재지변이나 컨디션 난조 등으로 운행 거리가 당연히 달라질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큰 틀은 잡아두세요. 항상 다음날 걸을 코스를 검토하고 중간에 보급이나 급수할 구간이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일부 급수가 어려운 구간이 있어 휴대용 정수필터를 챙겨 가면 도움이 됩니다. 코스 중간에 식당이나 편의점이 나오면 충분히 많이 먹어서 칼로리를 축적해야 합니다. 파워젤도 늘 휴대하면 좋습니다.

황희  꾸준한 연습이 답입니다. 연습을 통해 체력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신체적 능력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해요. 그래야 이를 바탕으로 배낭 무게, 휴식 주기, 하루 운행 거리를 정할 수 있습니다. 

서준  풍경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산길이나 임도보다 포장도로가 많은 편이니 이에 맞게 편한 신발을 잘 챙기고 중간에 있는 보급소와 숙박시설 또한 미리 여러 곳을 알아둔 후 실제 일정에 따라 연락하는 방법을 추천 드립니다. 언제나 계획대로 되지는 않고, 그래서 예상치 못한 즐거운 일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25코스 양구군 방산면의 고즈넉하고 정겨운 시골 풍경.

 

월간산 12월호 기사입니다.

출처 : 월간산(http://sa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