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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로서 살아온 30여 년의 세월과 더불어 인생 후반기를 맞아 행복을 추구하는 기술자의 변신 스토리입니다. --------- 기술 자문(건설 소재, 재활용), 강연 및 글(칼럼, 기고문) 요청은 010-6358-0057 또는 tiger_ceo@naver.com으로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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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1 라디오 주말생방송정보쇼에 <저자 소개> 시간에 출연했습니다.

4시10분부터 4시40분까지 30분간의 대담이었습니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 출연이네요.

 

다시 듣기(46:00~1:18:00): http://vertical.kbs.co.kr/popup.html?source=episode&sname=vod&stype=vod&program_code=R2018-0046&program_id=PS-2018146148-01-000&section_code=99&broadcast_complete_yn=N&local_station_code=00

 

 

멀티 T형 인재의 전형인 레오나르도 다빈치

 

2006년 개봉되었던 영화 다빈치 코드는 기호학자 로버트 랭던(톰 행크스)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들인 모나리자암굴의 성모등에 숨겨진 비밀(코드)을 찾아내는 스토리로 구성되어 있다. 이 영화에서 다빈치의 그림들이 선택된 이유는 중세부터 내려온 시온 수도회라는 비밀 단체의 스토리와 연결시키기 위해 중세의 그림을 선택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빈치가 그림뿐만 아니라 과학, 기술, 철학 등에 조예가 깊은 독특한 인물이라는 배경이 더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다빈치는 미켈란젤로, 라파엘로와 함께 르네상스 시대의 3대 미술 거장으로 꼽히기도 하지만, 미술과학기술건축천문지리해부식물음악 등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 걸쳐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했다는 측면에서 다른 두 미술 거장과는 다른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다시 말해 다빈치는 멀티 T형 인재의 전형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의 다방면에 걸친 관심과 재능은 상승효과를 일으키면서 천재적인 작품들을 많이 남기고 있다.

예를 들어 다빈치는 사람과 동물의 시체를 해부하는 기이한 행동을 한 것으로도 유명한데, 그가 스케치북에 남긴 인체 해부도는 의학 발전에도 크게 기여하였지만, 그의 인체 해부에 대한 연구는 그의 미술 작품, 즉 그림과 조각 작품의 인체를 표현하는 데도 큰 도움을 주었다. 그림을 그릴 때 일반적으로는 겉으로 보이는 모습을 그리지만, 다빈치는 인체의 근육 움직임 등에 대한 과학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좀 더 생동감 있는 인체 모습을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다빈치는 과학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그의 그림에 르네상스 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발명이었던 원근법과 오일을 제대로 적용할 수 있었다. 그의 대표작인 예수를 둘러싼 열두 명의 제자를 소재로 한 최후의 만찬은 예수의 머리를 소실점으로 완벽한 균형을 이루는 구조로 되어 있다. 다빈치는 이 그림에서 원근법과 투시법을 활용하여 작품의 완벽한 질서를 표현하였다. 모나리자에서는 부드러운 오일의 표현과 인물 뒤의 공기원근법이 뛰어나게 표현되었다. 르네상스의 가장 훌륭한 업적, 즉 원근법과 자연에의 과학적인 접근, 인간신체의 해부학적 구조, 이에 따른 수학적 비율 등이 다빈치에 의해 완성되었다.

최근에는 다빈치의 드로잉(소묘)이 발견되어 주목을 받고 있다. 프랑스의 경매회사 '타장'(Tajan)에 의해 세상의 빛을 보게 된 이 작품의 이름은 '순교자 성 세바스찬'(The Martyred Saint Sebastian)이다. 양면지를 사용한 이 그림은 한 면에는 나무에 묶여 고통 받는 성 세바스찬의 모습이 또 다른 한 면에는 과학적인 내용의 스케치와 글귀가 적혀있다. 다빈치는 이처럼 과학적인 분야에 관심을 갖고, 또 수많은 소묘를 남겼다. 그의 과학적 연구는 수학·물리·천문·식물·해부·지리·토목·기계 등 다방면에 이르며, 이들에 관한 수기(手記)나 인생론·회화론·과학론 등이 많이 남아 있다. 그의 해부학·기체역학·동물학 등과 관련된 연구결과는 19세기 말에 들어서 주목을 받으면서, 다시 그의 과학적인 천재성으로 조명되고 있다. 현재 그의 기록이 23권의 책으로 남아 있다.

다빈치는 파동 운동 이론, 연통관 내의 압력, 유체에 미치는 압력에 대한 과학적인 지식을 갖고 있었다. 오늘날의 양수기와 수압의 발견자라고 볼 수 있다. 또 새의 나는 방법에 대한 연구를 통해 비행기의 원리를 생각하고 공기에 대한 연구를 통해 바람의 발생과 구름과 비의 발생도 이론적으로 연구했다. 또 공기 역학, 조류의 비행 등의 연구 노트에는 낙하산, 헬리콥터, 플레이트 날개 등이 기록되어 있다. 해부학에 있어서도 인체의 각 부분의 작용을 역학적 원리로서 분명히 이해하였다. 그는 식물학 등에 관해서도 연구를 하였다. 이처럼 다빈치는 예술과 과학의 창조에 대한 선구자적인 연구를 한 비범한 천재였다. 그의 저서로는 그림에 관한 르네상스 예술 이론의 중요한 문헌인 회화론을 비롯하여 많은 논문이 있다.

다빈치의 본명은 레오나르도 디 세르 피에로로 1452415일 피렌체 근교 토스카나 지방의 산골 마을 빈치에서 유명한 가문의 공증인인 세르 피에로서자와 카타리나(Catarina)라는 이름을 가진 농사꾼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들은 신분의 차이로 정식 결혼을 하지 못했으며 그가 태어날 때 그의 아버지는 다른 여자와 결혼하였다. 출생 면에서 보면 다빈치는 특별한 면이 없는 평범한, 아니 평범함 이하였다. 하지만 그는 어릴 때부터 수학을 비롯한 여러 가지 학문을 배웠고, 음악에 재주가 뛰어났으며, 유달리 그림 그리기를 즐겨하였다. 그는 1466년 열네 살 때, 가족과 함께 토스카나의 수도였던 피렌체로 이주해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의 공방에 들어갔다. 베로키오는 그 당시 피렌체에서 가장 유명한 공방을 이끌던 실력 있는 예술가였다. 그는 그곳에서 20대 초반까지 미술 및 기술 공작 수업을 받았다. 제자의 재능을 알아본 베로키오는 다빈치에게 그림을 맡기고 자신은 조각에만 몰두할 정도로, 그를 제자가 아닌 화가로 인정했다.

다빈치는 1519년 사망할 때까지 암굴의 성모’, ‘최후의 만찬’, ‘모나리자등 유명한 그림들을 많이 그리고, 운하 개발 등 도시 계획에도 참여하였으며, 인체의 해부와 조류의 비상, 광학, 지질학과 물의 운동 등에 관한 수많은 과학적 기록들을 남겼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평생 독신으로 살아 자식을 남기지 않았고, 그의 제자이자 동반자였던 프란세스코 멜지(Francesco Melzi)가 그의 유산을 상속하였다. 1570년 멜지의 죽음으로 그가 평생 간직하고 있었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엄청난 양의 크로키와 그림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다빈치는 수많은 미완성 그림들과 크로키들, 과학적 기록물들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그림들이 다빈치 코드라는 영화의 모티브로 선택된 이유도 이런 미완성 작품들과 과학적 연구 결과를 그림에 적용했기 때문이다.

다빈치는 뛰어난 업적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정규 교육도 받지 못했다. 그가 천재성을 발휘하게 된 배경으로는 타고난 소질도 있지만, 다양한 책들을 읽으며 많은 지식을 쌓고 사고와 의식의 도약을 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다빈치가 태어날 당시 유럽에는 책이 3만 권 정도밖에 없었다. 그러나 다빈치가 중년의 나이에 이른 1500년경에는 대략 800만 권의 책이 인쇄되어 있었다. 다빈치는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읽으면서 미술뿐만 아니라, 과학, 의학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쌓아나갔다. 1454년 구텐베르그가 최초로 성서를 인쇄해 출간하면서 종교혁명에 불을 댕기기도 했지만, 지식의 대중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 이전에는 지식은 소수의 귀족과 성직자들의 전유물이었지만, 인쇄술의 발달로 책이 대량 인쇄되면서 일반 대중들이 지식을 쉽게 습득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만약 인쇄술이 발달하지 않아 책이 대량으로 출간되지 않았거나, 다빈치가 그런 책들에 관심이 없어서 읽지 않았다면 다빈치의 천재성은 제대로 발휘되지 못했을 것이다.

책을 읽음으로써 차별화된 최고 인재가 된 사람들의 예는 다빈치 외에도 많이 있다. 영국의 수상이자 전쟁 영웅인 처칠은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꼴찌를 도맡아 했다. 이런 그를 최고의 인재로 거듭나게 해준 것은 영국 최고 가문 출신인 어머니의 특별한 독서 훈련이었다. 어머니의 독서 훈련 덕분에 꼴찌만 도맡아 했던 처칠은 독서를 많이 하게 되면서 변하기 시작했다. 중국 최고의시인 두보는 만 권의 책을 읽으면 글을 쓰는 것도 신의 경지에 이른다(讀書 破萬卷 下筆 如有神)”고 했다. 위대한 철학자 데카르트도 좋은 책을 읽는 것은 지난 몇 세기에 걸쳐 가장 훌륭한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과 같다는 말로 독서의 유익함을 지적했다. 인생의 실패자였을 뻔 했던 오프라 윈프리도 독서 덕분에 차별화된 최고 인재로 변할 수 있었다. 그녀는 가난해서 책을 읽는 게 사치라고요? 아무리 힘들어도 독서를 포기하지 마세요. 독서가 당신의 지갑과 정신을 채워줄 테니까요.”라는 말로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독서를 통해 세상을 보는 눈을 길러 크게 성공한 인물을 손꼽으라면 조지 소로소와 워런 버핏,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주인 빌 게이츠를 들 수 있다. 빌 게이츠는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것은 우리 마을 도서관이었고, 하버드대학교 졸업장보다 소중한 것이 독서하는 습관이다.”라고 말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윈스턴 처칠, 오프라 윈프리, 조지 소로스, 워런 버핏, 빌 게이츠 등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차별화된 최고 인재가 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독서다. 독서는 낯선 경험을 통해 새로운 사유를 하도록 해주어 창조력을 높여준다. 독서는 그저 새로운 지식을 확장하는 정도가 아니라, 사고의 확장과 의식의 도약을 가능하게 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독서를 하게 되면 좁은 사고와 의식을 뛰어넘어 넓은 세상을 볼 수 있게 된다. 다빈치의 경우처럼 독서를 통해 다양한 분야에 대한 지식을 습득함으로써 멀티 T형 인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독서는 1~2만 원의 적은 돈을 들여 한 분야에 일가견이 있는 저자와 일대일로 대화를 함으로써 가장 쉽고 효율적으로 지혜를 쌓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독서는 지식과 지혜를 효율적이고 경제적으로 습득할 수 있도록 해 줄뿐만 아니라, 차별화된 최고 인재가 되는 데 필요한 소프트 스킬, 스마트 스킬을 키우는 데도 도움을 준다. 특히 최근 들어 어린이들이 자라면서 주위와의 관계를 통해 자연스럽게 소프트 스킬을 키울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독서의 중요성은 더 커지고 있다. 과거에는 많은 형제들 틈에서 갈등과 다툼을 겪으면서 자라서 자연스럽게 소프트 스킬을 키울 수 있었다. 또 동네에 사는 또래들과의 놀이를 통해서, 일가친척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학교에서 급우들과의 교류를 통해서 소프트 스킬을 자연스럽게 키울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형제가 한 둘이거나 없는 경우가 흔하고, 동네 사람들과는 전혀 관계를 맺지 않으며, 학교 급우들은 교류의 대상이 아니라 경쟁 대상이기 때문에 소프트 스킬을 키울 수 있는 기회가 부족하다. 그런데 소프트 스킬을 키울 수 있는 지혜를 담고 있는 자기 계발서적을 읽거나, 더 나아가 복잡한 인간관계가 얽힌 소설을 읽음으로써 간접적으로 소프트 스킬을 키울 수 있다.

독서가 학교 공부보다 더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녀들이 책을 읽고 있으면 학교 공부를 하라고 다그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앞으로는 단순 지식을 쌓기 위한 학교 공부보다는 창조력을 높여주는 독서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점을 꼭 명심할 필요가 있다. 특히 어릴 때 독서를 많이 할수록 창조적인 사고력이 높아지고, 어린이들이 활동할 미래 시대의 성공에 필수적인 스마트 스킬을 습득할 수 있다는 점을 부모들은 꼭 알아야만 한다. 유치원에 다니는 자녀들에게 영어를 배우라고 다그칠 게 아니라, 부모가 동화책을 읽어주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동화책에 나오는 여러 인물들과 사건들을 통해 자녀들은 인간관계의 중요성과 세상을 사는 지혜를 알아가게 되기 때문이다. ‘세살 적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처럼 어릴 때의 독서 습관이 자녀가 성공하는 훌륭한 도구가 될 수 있다.

문제는 갈수록 한국 사람들이 독서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15년 기준으로 전국 2인 이상 가구의 도서구입비는 월평균 16623원으로 겨우 책 한 권 가격에 불과했다. 월 평균 도서구입비는 201021902, 201219026, 201318690, 201418154원으로 매년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도서 구입비가 줄어든 것은 스마트폰, 태블릿PC, DMB TV 등의 유행으로 책을 사서 보지 않는 풍조가 확산되는 상황에서 경기 침체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도서 구입 통계에는 학생들의 학습용 도서와 취업 준비생의 교재 구입비가 포함돼 있기 때문에 순수한 독서 목적 도서 구입 금액은 매우 미미한 수준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독서가 단순히 지식을 익히는 수단이 아니기 때문에 스마트폰 등 최신 전자기기들이 독서의 역할을 대신할 수 없다. 독서는 구시대 유물이고 전자기기를 통해 미래 시대의 지혜를 습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크나큰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네트워크 전략과 강점 활용으로 전승 신화를 만든 이순신 장군

 

한국인들에게 존경하는 역사적 인물을 꼽으라면 누구를 가장 많이 꼽을까?” 아마도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을 가장 많이 선택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런데 세종대왕은 한글을 창제하고 측우기 등 여러 과학 발명품들을 만들도록 하는 등 치적이 뛰어나지만, 왕이라는 직위에서 행한 업적들이 많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롤 모델로 삼기에는 부적합하다고 볼 수 있다. 사회 지도층 내지 기업 리더들이야 세종대왕의 리더십에서 배울 점이 많을 수 있겠지만, 일반인들은 세종대왕을 존경할 수는 있지만 본받기에는 거리감이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반면에 이순신 장군은 뛰어난 공적에 비하면 출신도 너무나 평범하고 알고 보면 타고난 자질도 그리 뛰어난 편이 아니었다는 면에서 일반인들이 롤 모델로 삼기에 적합하다.

이순신 장군은 무신이었을까, 아니면 문신이었을까?” 물론 장군이라는 칭호가 붙었으니까 당연히 무신이라고 답을 할 것이다. 하지만 처음 과거에 응시했을 때 이순신 장군은 무과에 응시했던 것이 아니라 문과에 응시했었다고 한다. 문신이 되기 위해 수차례 과거 시험을 봤으나 계속 낙방하였다. 그런데 나이도 차고 더 이상 문신으로 과거에 급제하는 것은 어렵다고 판단해서 주위의 권고로 무과 시험을 보고 무신이 되었다고 한다. 이 주장은 이순신 장군이 무과 시험을 치르다가 말에서 떨어졌다는 일화에서도 뒷받침된다. 옛날 읽었던 위인전을 보면 이순신 장군은 말을 타고 달리면서 활을 쏘는 무과 시험을 보다가 말에서 떨어졌고,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 부목을 댄 다음 다시 말에 올라 무사히 시험을 마치고 과거에 합격했다고 미화하고 있다. 하지만 만약 이순신 장군이 애초 무과를 준비하고 있었다면, 과거 시험 중 말에서 떨어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일 것이다. 문과 시험을 준비하자가 급하게 무과로 전환했기 때문에 충분히 말 타는 연습을 못해서 말에서 떨어졌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렇다면 왜 이순신 장군은 문과를 포기하고 무과로 과거에 급제하는 길을 택한 것일까? 조선은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에 의해 건국된 나라다. 즉 무신 반란에 의해 건국된 나라라는 뜻이다. 더구나 고려 말기에는 무신들이 정권을 잡고 나라를 혼란에 빠트리기도 했다. 1170년 정중부의 난으로 시작된 무신정권은 자손들에게 그 권력이 이어지는 상태를 유지하다가 1258년 최충헌의 증손자인 최의가 살해될 때까지 거의 100년 동안 지속되었다. 고려가 멸망한 요인 중의 하나가 바로 무신들의 득세였다. 이를 잘 알고 있는 이성계는 왕의 자리에 오른 후 무신들이 득세할 경우 언제 다시 반란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걱정으로 문신들을 우대하고 무신들은 천대하는 정책을 펼쳤다. 같은 직급이더라도 무신보다는 문신들의 권력이 더 셌고, 무신들은 되도록 왕궁 가까이 있지 못하도록 하고 변방에 배치하였다. 따라서 조선사회에서는 글께나 읽는 선비들은 문과를 선호하게 되어 무신으로 나아가지 않았고, 그러다보니 무신들은 당연히 글보다는 싸움 그 자체에 능한 사람들만의 차지가 되었다.

이런 사정을 잘 아는 이순신 장군도 무신보다는 문신이 되기를 원했을 테지만, 문신이 되기 불가능하다고 판단해서 어쩔 수 없이 무신의 길을 택하게 된 것이다. 이순신 장군이 문과에 합격하지 못한 것은 아마도 당시 부패했던 과거 제도의 탓도 어느 정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이순신 장군이 문과에 무난히 합격할 정도로 뛰어난 인재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아무튼 이순신 장군은 무과에 합격한 다음 변방에 배치되어 근무를 시작했다가 나중에 수군에 편입되었다. 사실 변방에서 국경만 지키는 경우에는 싸움만 잘 해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즉 전투에는 글을 잘 읽는 능력보다는 싸움을 잘 하는 것이 훨씬 더 유리했다. 만약 임진왜란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이순신 장군은 그저 평범한 무관으로 생을 마감했을지 모른다.

무신들이 단순히 변방만 지키거나 성문 보초를 서거나 시키는 임무만 수행하는 경우에는 싸움만 잘 하는 능력만 가졌어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전쟁에서는 싸움을 잘하는 자체도 중요하지만 작전이 훨씬 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더구나 일본의 철저한 전쟁 준비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아군의 강점을 활용하고 적군의 약점을 찌르는 작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게 되었다. 이순신 장군은 원래 문신이었기 때문에 병서를 읽고 작전을 짜고 전쟁을 준비할 수 있어서 뛰어난 전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이다. 즉 문신이라는 면과 무신이라는 면을 네트워크화 하여 그토록 눈부신 전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그가 문신으로 과거에 합격했더라면 아마 이름도 없는 평범한 관리가 되어 평생을 보냈을 가능성이 많다. 설사 그가 뛰어난 무술 실력만 갖고 있었더라도 그런 전과는 거두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순신 장군은 무과에 합격한 후에 북방의 국경 수비대에서의 근무를 시작으로 무신으로서 다양한 경험을 쌓았고, 또 문과를 준비하면서 쌓은 능력까지 보태서 큰 능력을 발휘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순신 장군은 무신으로서도 문신으로서도 당시 조선 사회의 기준으로 보면 뛰어난 수준이 아니었지만, 무신과 문신의 능력을 네트워크 시킴으로써 뛰어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네트워크 전략을 적용함에 있어서는 각 대상 능력이 아주 뛰어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풍전등화의 처지인 조선을 구한 이순신 장군의 전적이 어떻게 되는지 아는가? 한산대첩, 명량해전 등 모두가 알고 있는 큰 전투를 포함해서 크고 작은 전투를 포함하면 2323승의 전과를 거두었다고 한다. 이순신 장군이 거둔 2323승이라는 전과는 세계 전쟁사에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 어느 누구도 깰 수 없는 진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스포츠 경기에서도 2323승을 거두면 엄청난 일인데(아마 이런 성적을 거둔 팀은 여태껏 한 팀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물며 전투에서 1패도 없는 2323승을 거둔다는 것은 그야말로 기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만약 이순신 장군이 영국이나 미국 등 강대국에서 태어나 이런 전과를 거뒀더라면 세계사에 남는 위인으로 기억되고 있을 것이다. 몇 번의 크고 작은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고 트라팔가 해전에서 33척의 프랑스와 스페인 연합 함대에 27척의 배로 맞서 거둔 승리 때문에 얻은 넬슨 제독의 명성에 비해 이순신 장군의 명성이 어떤지를 비교해보면 그 후손으로서 부끄러움을 느낀다. 더구나 넬슨 제독이 국가의 전폭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 또 적과 거의 대등한 전력을 갖추고 싸운 데 비해 이순신 장군은 임금과 조정의 견제를 받으며 그런 혁혁한 전과를 거두었기 때문에 더 높게 평가받아야 마땅한 데도 말이다.

이순신 장군이 2323승이라는 전무후무한 전과를 얻은 가장 큰 요인은 무신과 문신 능력의 네트워크 전략에 더하여 강점 살리기 전략을 동시에 사용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우선 이순신 장군은 조선군과 일본군의 무기의 강점과 약점을 정확히 파악하여 조선군 무기의 강점을 최대한 살리고, 약점은 최대한 피하도록 작전을 짜서 승리할 수 있었다. 당시 일본군의 무기가 대포와 조총인데 비해, 조선군의 무기는 대포와 활이었다. 조선군은 전투에서 장거리에서는 대포, 단거리에서는 활을 사용했는데, 대포는 일본군에 비해 우수한 반면에 활은 일본군 조총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특히 일본은 긴 내전을 겪으면서 근거리 전투에 능한 반면, 조선군은 실전이 부족해서 백병전에 매우 약했다. 따라서 이순신 장군은 대포의 강점을 잘 살릴 수 있도록 조총의 사정거리 밖에서 대포를 최대한 활용한 전투를 주로 했다. 특히 조선군의 배는 크고 튼튼했기 때문에 대포를 10여문씩 실을 수 있었고, 대포 발사 시의 반동을 견뎌낼 수 있어서 동시에 대포를 여러 발 발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일본군의 배는 빠른 반면에 약해서 대포의 반동을 이겨낼 수 없었기 때문에 대포를 몇 대 실을 수 없었고, 발사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따라서 배의 수는 일본군이 많았지만, 전체 대포의 수는 조선군이 뒤지지 않았다. 더구나 대포에 맞은 경우에 튼튼한 조선군의 배는 파손이 덜한 반면, 약한 일본군의 배는 파손이 심할 수밖에 없었다. 이순신 장군이 대부분의 전투에서 펼쳤다는 학익진 대형은 바로 조선군의 대포의 강점을 살리는 전략이었다. 즉 조총의 사거리 밖에 배를 위치시키고, 대포로 먼저 공격을 퍼붓고, 일본군 배가 다가서면 뒤로 물러서면서 그 거리를 유지하는 전략을 펼친 것이다.

또한 일본군의 배는 빠르기는 하지만 충돌에 약한 약점이 있는 점을 이용해서 어느 정도 대포로 파손 시킨 뒤에 거북선을 앞세운 조선군의 배로 충돌시켜 침몰시켰던 것이다. 어차피 전투의 최종 마무리는 백병전을 통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처음부터 백병전을 한다면 조선군이 불리할 수밖에 없었지만, 일단 일본군의 배를 파손하고 침몰하는 배에 탄 일본군을 공격하는 것은 훨씬 더 유리했을 것이다. 더욱이 현대의 총과 달리 조총은 물에 약할 수밖에 없는데, 대포에 의해 튄 물을 뒤집어 쓴 조총을 쥔 일본군을 상대하기는 비교적 쉬웠을 것이다. 더구나 침몰하는 배에 탄 일본군은 이미 기가 한풀 꺾였을 가능성이 컸을 테니까 말이다.

물론 홈그라운드라는 강점을 십분 활용해서 지형지물을 최대한 이용한 점도 전승의 큰 요인이 될 수 있었다. 진도 울돌목 전투에서처럼 조수간만의 차와 좁은 지형에 의한 거센 물살을 이용하여 일본군 배를 침몰시켰던 전략은 누구나 생각해낼 수 있지만, 그 중요성을 깨닫지 못한 전략이었다. 또 이순신 장군은 대부분 전투 장소를 섬과 섬 사이의 좁은 해역으로 잡아서 일본군이 수의 우세를 활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전략을 사용하였다. 오히려 좁은 해역에 많은 일본군의 배들이 집결하게 함으로써 운신의 폭을 좁혀서 전진과 후퇴를 원활하게 하지 못하는 지혜를 발휘하였다.

이순신 장군의 예를 이렇게 길게 늘어놓은 이유는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시대를 뛰어넘어 평범한 사람들이 본받을 수 있는 좋은 사례이기 때문이다. 이순신 장군은 공부에 뛰어난 수재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평범한 문과 재능과 무과 재능을 네트워크화 하여 차별화된 최고 인재가 될 수 있었다. 거기에 더하여 임진왜란을 맞이하여 조선군과 일본군의 강점을 냉정하게 분석하여, 조선군의 강점이 최대한 발휘되도록 전략을 구사하였다. 이런 강점 발휘 전략 덕분에 조선 수군은 전력의 열세를 극복하고 전승 행진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임진왜란 중간에 이순신 장군이 선조의 명을 거역하고 출전하지 않아 좌천되고 잠시 원균이 지휘를 맡아 치른 칠천량 전투에서는 이순신 장군의 조선군 강점 살리기 전략을 무시한 채 무조건 돌격했다가 대참패를 당했던 것이 이를 잘 말해준다. 그 후 다시 조선 수군의 지휘를 맡게된 이순신 장군은 남은 12척의 배로 10배가 넘는 일본의 배들을 격파한 것도 바로 울돌목의 강한 조류를 이용한 강점 살리기 전략 덕분이었다.

2323승이라는 이순신 장군의 전적만 보고 이순신 장군이 뛰어난 능력을 가졌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은 일반적인 기준으로 봤을 때는 결코 뛰어난 인재가 아니었다. 만약 수능 성적이 안 좋아서 지방대를 간다고 하더라도 이순신 장군의 네트워크화 전략과 강점 살리기 전략을 잘 본받는다면 얼마든지 차별화된 최고 인재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문제는 자신의 강점들이 무엇인지 파악하지도 않고 자신의 학습 능력이 떨어진다는 약점만 생각하고 좌절하는 마음가짐에 있다. 이순신 장군처럼 평범한 자신의 강점들을 제대로 파악하고, 네트워크화 한다면 얼마든지 차별화된 최고 인재가 될 수 있다. 더 나아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자신이 속한 기업 또는 조직의 강점을 제대로 살릴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한다면 틀림없이 이순신 장군처럼 전승 신화를 창조하는 차별화된 최고 인재가 될 것이다.

네트워크 전략으로 애플 성공신화를 이끈 스티브 잡스

 

1장에서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경영에 복귀한 다음에 어떻게 아이팟을 통해 애플을 성공신화로 이끌었는지 설명했다. 아이팟의 성공은 단순히 예쁘게 디자인을 했다든지, 기능을 더 했다든지 하는 하드웨어의 개선이 아니라, 아이튠스를 통한 음원의 합법적 다운로드라는 새로운 콘텐츠 때문이라는 게 설명의 요지였다. 이와 마찬가지로 최근 들어 애플의 성공 신화가 지속되도록 만들고 있는 아이폰도 새로운 콘텐츠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애플 아이폰의 콘텐츠는 무엇인가? 아이팟과 마찬가지로 아이폰의 성공 요인을 하드웨어적인 개선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물론 아이폰의 성공 요인에 하드웨어적 개선 효과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가장 큰 요인은 앱 스토어를 통한 사용자와의 수평적 네트워크 형성이다. 즉 아이폰 사용자들을 단순한 고객이 아니라 주인으로 느끼게 해주는 역할이 앱 스토어의 콘텐츠였다. 블랙베리 등 기존에 대세를 이루던 핸드폰에서 버튼을 없애고 터치 식으로 만들었다든지, 모양을 예쁘게 만들었다든지 하는 하드웨어적인 개선보다는 앱 스토어라는 새로운 콘텐츠가 소비자들을 애플의 추종자로 만들었다.

경영학에서 영업이나 마케팅에 대해서 배울 때 가장 많이 듣는 말이 바로 고객은 왕이다.’라는 말이다. 이 경영전략은 고객을 왕처럼 모셔서 고객을 감동시키고, 더 나아가 고객 졸도까지 시켜야만 영업이나 마케팅에 성공할 수 있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자신들이 팔지도 않은 타이어를 환불해 주어 고객을 감동시켰다는 어느 백화점의 일화는 진부한 예화가 된 지 오래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고객 감동 내지 고객 졸도 전략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 아무리 이런 친절과 배려를 해도 고객들은 자신들의 주머니에서 돈을 빼내기 위해 기업이 그런다는 사실을 이젠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이제 거의 모든 기업들이 그런 친절을 베풀기 때문에 고객은 왕이다라는 전략에 고객들은 더 이상 감동하지도 않는다. 기업들이 명목상으로만 고객은 왕이다라고 할 뿐, 실제로는 고객은 봉이다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점을 고객들이 모를 리가 없을 테니까 말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애플은 그 해답을 이제 고객은 왕이다라는 전략을 넘어 고객은 파트너다라는 네트워크 전략을 구사하는 것에서 찾았다. ‘고객은 왕이다라는 전략의 허점은 고객과 기업을 이원적으로 구분한다는 점이다. 이런 구별은 어차피 기업이 어떤 친절을 베풀어도 고객의 돈을 빼내기 위해 수단일 뿐이라는 한계를 드러낸다. 하지만 고객은 파트너다라는 전략은 고객을 기업과 동등한 위치에 서도록 만들어서 고객이 돈을 지불하면서도 전혀 반감이 가지 않도록 만든다는 장점이 있다. 이런 전략을 가장 잘 구사하는 기업이 바로 애플이다. 애플의 앱 스토어는 이 전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앱 스토어에 콘텐츠를 올리는 주체는 누구인가? 바로 사용자, 즉 아이폰을 사용하는 소비자들이다. 그럼 그 콘텐츠는 누가 사용하는가? 바로 사용자, 즉 아이폰을 사용하는 소비자들이다. 그러니까 앱 스토어의 공급자도 소비자이고, 수요자도 소비자다.

다시 말해 애플은 앱 스토어에 콘텐츠를 제공하는 공급자들의 파트너이면서 아이폰을 사용하는 소비자들의 파트너이기도 하다는 의미다. 즉 애플은 고객들이 콘텐츠를 올릴 수 있는 장터를 마련해 주고 있는 동시에, 고객들이 그 콘텐츠를 사용할 수 있도록 도구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아이폰의 사용자들은 애플을 자신들의 파트너로 생각하기 때문에 애플에 그렇게 열광하는 것이다. 애플의 신제품이 나오면 밤을 새우면서 줄을 서서 애플 제품을 구입하는 마니아층이 많은 이유도 바로 이런 고객은 파트너다라는 네트워크 전략으로 설명할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애플이 고객의 입장만을 생각하는 착한 기업이라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애플의 영업이익률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 애플의 높은 영업이익률은 애플이 고객의 주머니에서 돈을 많이 빼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고객들은 자신들의 돈을 기꺼이 지불한다. 왜냐하면 애플을 자신들의 파트너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애플은 사용자들이 자유롭게 앱을 올리도록 한 다음 매출액의 30퍼센트 정도를 수수료로 챙기고, 나머지 70퍼센트를 앱을 올린 소비자에게 돌려준다. 어떻게 보면 애플은 대동강 물을 팔아먹은 봉이 김선달처럼, 또는 재주는 곰이 부리도록 하고 돈은 자기가 챙기는 왕서방처럼 비난 받아야 마땅한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멍석만 깔아주고 너무 비싼 임대료를 챙기고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이런 불평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애플이 자신을 파트너로 인정해주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삼성이 애플과 경쟁할 때 미래 경쟁력에서 뒤질까 염려되는 부분이 바로 이런 고객은 파트너다라는 전략을 구사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아직도 고객은 왕이다라는 전략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삼성이 애플보다 스마트폰 매출액에서는 앞서지만, ‘파트너’, 즉 마니아층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점도 고객은 파트너다라는 전략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삼성 입장에서는 애플이 갖지 못한 강점, 즉 제조업이라는 강점을 갖고 있지만, 앞으로 미래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고객은 파트너다라는 경영 전략의 적극적인 도입이 절실하다고 판단된다. 글로벌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는 삼성이 이 정도면 한국의 다른 기업들의 실상은 미루어 짐작을 할 수 있다. 아직도 대부분의 한국 기업들은 고객을 봉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다반사이고, ‘고객은 왕이다라는 전략조차도 제대로 적용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이제 한미 FTA 체결 등 글로벌 경쟁시대를 맞이하여 한국 기업들도 하루 빨리 고객은 파트너다라는 전략을 구사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애플의 아이폰 성공 신화를 논하면서 앱 스토어의 역할을 과소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한국의 이동 통신사들도 앱 스토어와 비슷한 앱 기능을 핸드폰에 이미 탑재하여 서비스를 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의 이동 통신사들이 앱 서비스를 제공한 것은 맞지만, 사용자를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차이가 있다. 한국의 이동 통신사들은 앱 개발자들로부터 앱을 구입한 다음 이를 핸드폰에 올리고 사용자들이 사용하면서 내는 요금을 통신사들이 모두 챙겼다. 앱 개발자들은 통신사에 돈을 받고 앱을 팔면 그만이었다. 여기서 이 방법이 애플의 방법과 무슨 차이가 있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물론 앱 개발자들이 받는 수입에는 별 차이가 없을 수도 있다. 문제는 한국의 이동 통신사들이 사용하던 방식에서는 앱 개발자들을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즉 통신사와 앱 개발자가 네트워크로 연결된 수평 관계가 아니라 납품 관계로 맺어진 수직 관계였다는 점이다. 이와 달리 애플의 앱 스토어는 앱 개발자를 네트워크로 연결된 수평적 관계로 끌어들임으로써 단순히 수입을 나누는 관계가 아니라, 파트너로 인정하였기 때문에 애플 마니아가 된 것이다.

아이폰의 성공의 가장 큰 요인은 앱 스토어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요인으로 네트워크 제조방식을 들 수 있다. 물론 이 방식은 아이팟을 제조할 때도 사용한 방식이었지만, 아이폰에서는 그 역할이 더욱 더 커졌다. 아이폰은 아이팟보다도 훨씬 더 많은 부품들이 사용되기 때문이다. 아이폰 모델에 따라 다르지만, 아이폰 제조에는 전 세계 각국의 200여 개 이상의 공급업체들이 네트워크를 이루면서 참여하고 있다. 물론 아웃소싱으로 알려진 이 방식은 애플 이전에도 많은 기업들이 사용했었다. 하지만 애플의 네트워크 제조 전략과 과거의 아웃 소싱 전략 사이에는 큰 차이점이 있다. 애플의 네트워크 전략이 차별화된 최고 제품을 만들기 위한 전략이라면, 과거의 아웃 소싱의 목적은 원가절감이라는 데 큰 차이점이 있다. 애플은 세계 최고의 차별화된 최고 제품을 만들기 위해 삼성전자와 같은 경쟁업체의 부품이라도 사용하지만, 과거 아웃 소싱 기업들은 계열사 부품을 사용하거나 싼 제품을 사용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애플은 아이폰의 제조(조립)도 아웃소싱 하고 있는데, 애플이 자금이 없어서 제조공장을 짓지 못하겠는가. 중국, 대만 등에서 외주로 제조하는 목적은 원가를 낮추려는 목적도 있지만, 그 보다는 애플이 핵심 역량인 콘텐츠의 개발과 마케팅에 집중하려고 하는 차별화 전략 때문이라고 보는 게 더 타당성이 있다.

스티브 잡스는 고객뿐만 아니라 직원들도 수평적 네트워크로 연결하여 파트너로 만들었다. 그는 직원들이 힘들게 일하도록 만들었다는 평을 듣는다. 직원들을 몰아세우고, 험한 말까지 서슴지 않았다는 얘기도 듣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직원들은 그를 따랐고, 열심히 일을 했다. 그의 비전과 열정을 이해하고, 그의 험한 말이 그 열정 때문에 나오는 것이라고 이해를 했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는 팔아서 회사에 이익을 많이 남기려고 제품을 만들지 말고, ‘우리 자신들이 사용하고 싶은 제품을 만들자고 직원들을 설득했다. 자신들이 사고 싶은 제품을 만든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신이 나겠는가. 과거 산업 사회에서는 카리스마를 발휘하여 강력한 추진력으로 얼마나 높은 성과를 내느냐로 좋은 리더인지 평가 받았다면, 네트워크 사회에서 좋은 리더란 미래에 대한 비전을 그리고, 그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열정을 바쳐 전진하도록 만드는 사람이다.

스티브 잡스가 성공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요인은 자신의 평범한 강점들을 네트워크화 하여 차별화된 최고 능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하드웨어 개발 능력 면에서 보면 애플의 공동 창업자인 스티브 워즈니악이 스티브 잡스보다는 훨씬 더 능력이 뛰어났다. 실제로 애플I, 애플II 등 애플 창업 초기에 만들었던 대부분의 제품들은 스티브 워즈니악이 만들었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이런 제품들을 상품화하는 데 뛰어난 역량을 발휘했다. 물론 애플 창업 초기에는 그의 기술 위주의 경영 전략 때문에 애플이 위기에 빠지도록 만들면서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하지만 픽사를 경영하면서 중요한 것은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관객의 경험, 즉 콘텐츠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의 표현대로 기술에 인문학적 소양을 더함으로써 성공가도를 걷게 된 것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새로운 콘텐츠를 통해 차별화된 최고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대로 실천했다. 그래서 사훈도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라고 정했던 것이다. 시장 조사를 통해 대중들이 원하는 그저 그런 제품을 만드는 게 아니라 상상력을 총동원하여 대중들이 환호할 수 있는 혁신적인 제품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스티브 잡스는 기업은 단순한 제품을 만드는 게 아니라 예술 작품처럼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기술력으로 승부한 것이 아니라 인간을 사로잡는 상상력과 통찰력으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그렇다면 애플과 경쟁하고 있는 삼성전자의 경우는 어떠한가? 삼성전자는 애플에 반도체를 공급하면서, 동시에 아이폰의 경쟁 제품으로 갤럭시탭을 출시하고 있다. 그러니까 그 동안 삼성전자는 애플에 반도체도 공급하면서 애플이 시장을 리드하고 있는 스마트 폰 시장에도 진출하면서 두 마리 토끼를 잡아 사상 최고의 실적을 거두는 기염을 토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애플이 삼성전자를 특허 침해로 고소하고, 삼성전자는 애플을 맞고소 하면서 삼성전자와 애플의 현재 관계가 지속되지 못할 것이라는 염려가 나오고 있다. 과연 삼성전자와 애플의 경쟁 관계이면서 협력 관계인 현재의 구도는 지속될 것인가? 만약 삼성전자와 애플이 경쟁 구도에 들어선다면 삼성전자가 애플을 이기기 위해 어떤 전략을 세워야 하는가? 여러 가지 견해가 있겠지만, 현재의 삼성전자의 전략으로는 애플의 아이폰을 이기기는 힘들다고 판단된다. 삼성전자와 애플은 표면상으로는 스마트 폰을 비롯한 애플의 제품들이 삼성전자의 제품들과 겹치면서 경쟁 관계에 있는 것처럼 비쳐지고 있다. 하지만 애플이 추구하는 제품 전략은 삼성전자와는 뚜렷이 구별된다. 애플은 소프트웨어를 중심으로 한 콘텐츠를 제품 전략으로 추구하는 반면, 삼성전자는 하드웨어를 중심으로 한 제품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애플의 경쟁력은 콘텐츠 중심의 제품 전략에서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에 반도체는 제조 중심의 전략으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지만, 스마트 폰의 경우에는 하드웨어 중심의 전략으로는 애플을 이기기가 곤란하다. 물론 삼성전자는 우월한 하드웨어 기술을 바탕으로 애플의 전략을 따라하면서도 애플을 위협할 수 있는 위치에 올랐기 때문에 애플이 삼성전자를 고소한 것이라는 반론을 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삼성전자의 따라 하기 전략으로는 애플을 추격할 수는 있겠지만, 애플을 추월하기에는 2퍼센트 부족하다. 즉 삼성전자가 스마트 폰에서도 애플을 제치고 세계 최고의 위치에 오르기 위해서는 반도체 제조에서 사용했던 전략과는 다른 차별화된 전략이 필요하다. 이 시점에서 삼성전자의 반도체 분야의 하드웨어 중심 기업 문화가 스마트 폰 분야가 콘텐츠 중심으로 바뀌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만약 그렇다면 하드웨어 중심의 반도체 분야와 콘텐츠 중심의 스마트폰 분야를 분리하는 것도 한 가지 대안이라고 판단된다. 두 분야가 사업부 별로 독립되어 있어서 분리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반론을 펼 수도 있으나, 하드웨어 중심의 반도체 분야가 지배적인 현재의 삼성전자의 기업 문화로는 콘텐츠 중심의 스마트 폰 시장을 리드하기는 버겁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물론 반도체 분야와 스마트폰 분야를 분리했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스마트폰 분야에서의 경쟁력은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가치를 중시하는 네트워크 사회의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의 성공을 생각할 때마다 한국 학생들의 처지를 비교해보곤 한다. 한국공학교육인증원에서 시행하고 있는 캡스톤 디자인 경진 대회에 심사위원으로 참석하여 출품된 작품들을 살펴볼 기회가 있었는데, 거기서 느끼는 점은 한국 학생들도 스티브 잡스 못지않은 끼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문제는 스티브 잡스가 주차장에서 애플을 창업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갖고 있었던 반면에, 한국 학생들은 그러지 못하다는 점이다. 극성스러운 한국의 부모들은 자녀가 스티브 잡스처럼 창업을 하겠다고 하면 결사반대를 할 것이다. 그 대신에 삼성전자처럼 대기업에 취업하여 성공적인(?) 인생을 살라고 강요하는 편을 택하고 있다. 설사 부모의 말을 듣고 삼성전자에 들어가더라도 삼성전자를 네트워크 사회에 성공하는 기업으로 만들려는 노력보다는 맹목적인 조직에 대한 충성을 내세워 출세하는 길을 택할 확률이 높다. 한국의 경제가 침체되고, 한국 기업들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학생들의 취업률이 낮아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약점을 강점으로 승화시킨 오프라 윈프리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자 중의 상위 리스트에 항상 올라가는 여자. 가장 돈을 많이 버는 방송인. 사생아로 태어나 아홉 살 때 사촌에게 성폭행 당하고 마약에 빠져 어린 시절을 불우하게 보냈지만, 미국 시청자만 2,200만 명에 세계 105개국에서 방영되는 토크쇼의 여왕이자 잡지, 케이블 텔레비전, 인터넷까지 거느리고 있는 하포주식회사 회장. 누가 떠오르는가? 바로 오프라 윈프리다.

그녀가 지금은 성공해서 토크쇼의 여왕, 아니 남녀 통틀어 1인자로 자리 잡고 있지만, 그녀가 토크쇼에 데뷔할 때만 해도 그녀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여건이었다. 그녀가 토크쇼를 시작할 당시만 해도 토크쇼 진행자는 백인 남성이어야 한다는 암묵적인 조건이 있었다. 하지만 오프라 윈프리는 흑인에 여성이다. 더구나 그녀는 여자로서도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미녀나 슈퍼 모델처럼 쫙 빠진 몸매를 가진 것도 아니었다. 물론 지금도 날씬한 편은 아니지만 한 때는 100킬로그램을 넘나드는 누가 봐도 뚱뚱한 체격이었다. 목소리만 나오는 라디오 방송이라면 모를까, TV에서는 그 당시 기준으로 보면 절대적으로 토크쇼로 성공할 수 있는 조건을 하나도 갖추고 있지 못했다. 게다가 그녀는 자신을 뒷받침해 줄 배경도 없었고, 남들은 한 가지만으로도 좌절할 만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오프라 윈프리는 1954년 시골인 미시시피 주에서 사생아로 태어났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와 함께 어린 시절을 보내다가 6세 때 위스콘신 주 밀워키로 이주하여 어머니와 함께 가난하게 살게 되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너무 가난했기 때문에 그녀를 집에 홀로 놔두고 일을 하러 나가야 했다. 그런데 9살 때 그녀의 어머니가 일을 하러 간 사이에 사촌오빠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 14살에 미혼모가 되었는데 그녀의 아들이 2주 후에 죽는 고통까지 겪었다. 또 이런 시련을 겪으면서 그녀는 마약에도 손을 대게 되었다. 그나마 그녀의 사정이 나아진 것은 그녀가 테네시 주에 이발사인 아버지와 함께 살기 위해 보내졌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그나마 책을 읽는 여유를 갖게 되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에게 적어도 1주일에 한 권 이상의 책을 읽으라고 권유했다. 훗날 그녀는 성공 비결이 뭐냐는 질문을 받자 독서가 내 인생을 바꿨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녀의 책 사랑은 훗날 오프라 윈프리 쇼에서 책을 소개하는 것으로도 나타났는데, 그녀가 소개한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현상까지 나타났다.

오프라 윈프리는 고등학생 때 라디오 프로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고, 19살에 지역의 저녁 뉴스의 공동 뉴스캐스터가 되었다. 하지만 그녀의 즉흥적 감정 전달이 뉴스캐스터로 적합하지 않다는 평가가 내려지면서 1983년 오프라 윈프리는 시카고에서 낮은 시청률을 가진 30분짜리 아침 토크쇼인 에이엠 시카고(AM Chicago)의 진행자가 되었다. 오프라 윈프리가 맡게 된 지 한 달 후 그녀의 토크쇼는 시카고에서 가장 인기 있는 토크쇼 도나휴를 능가하게 되었다. 뉴스캐스터를 하는 데는 약점이라고 생각했던 감정 전달 능력이 오히려 토크쇼에는 강점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오프라 윈프리는 그녀의 토크쇼에서 시사, , 이혼, 아동 등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주제로 방청객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청자와 함께 울고 웃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또 자신의 아픈 과거를 진솔하게 고백하면서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일반적인 토크쇼 프로그램이 스타를 게스트로 초대해 말장난을 함으로써 시청률을 높이는 데 반하여, 오프라 윈프리는 스포트라이트를 평범한 방청객들에게 비추면서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끌어냈다. 방송 중에는 객석을 활보하고, 시청자의 이야기에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버럭 화를 내기도 하며, 함께 웃는 모습도 보여주면서 일반 시청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냈기 때문에 그녀의 쇼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되었다. 자동차가 필요하다는 어느 시청자의 사연을 들은 오프라 윈프리는 어느 자동차 회사의 협찬을 받아 자동차가 절실히 필요한 사람들을 방청객으로 초청하여 275대의 차를 선물하는 파격적인 감동을 선물하기도 했다.

인기가 올라가면서 그녀의 쇼는 전국적으로 방영되는 '오프라 윈프리 쇼'로 바뀌었다. 그녀의 친숙한 고백적 형태의 미디어 커뮤니케이션이라는 토크쇼 형태를 대중화시키면서 토크쇼에 큰 바람을 일으켰다. 그녀의 이름을 내건 '오프라 윈프리 쇼'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로그램이 되었고 그녀를 세계 최고 부자 반열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그녀는 2011517일 그녀의 유명한 토크쇼의 고별 방송을 했다. 그녀가 설립한 자신의 제작 회사(하포-harpo)에 전념하기 위해서였다.

그렇다면 오프라 윈프리는 불리한, 아니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조건이라고 생각되는 여건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바로 그녀만의 차별화된 최고 능력, 곧 강점을 살렸기 때문이다. 그녀의 가장 큰 강점은 남들 앞에서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논리적인 얘기가 아니라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친근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워낙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해서 불우한 어린 시절에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으니까, 동네의 강아지들과 심지어 돼지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얘기를 들려주곤 했다. 그녀가 어렸을 때 교회에 열심히 나갔는데(지금도 열심히 나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가장 큰 이유는 성경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교인들이 자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고 칭찬을 해 주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토크쇼에서 그녀가 지금과 같이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도 이렇게 인간적인 대화를 할 수 있는 강점을 살렸기 때문이다. 그녀의 토크쇼를 보면 꼭 이웃집 아줌마의 수다를 듣는 것 같은 편안함이 느껴진다. 일반적으로 백인 남성들이 하는 토크쇼가 틀에 박힌 유머를 구사한다면, 오프라 윈프리의 토크쇼는 안방에서 엄마들이 하는 구수한 수다를 듣는 것 같은 편안함을 느끼게 해 준다. 만약 오프라 윈프리가 그 당시 일반적인 토크쇼 형태를 흉내 내서 백인 남성들이 했던 것과 같은 스타일을 따라하려고 했었다면 성공할 수 있었을까? 아니 자신의 약점인 흑인, 여성, 뚱뚱함 등을 고치려고 집중했더라면 지금과 같은 성공이 가능했을까? 물론 아니다라고 누구나 대답할 것이다.

한국에도 오프라 윈프리 정도는 아니지만, 자신의 약점이 아닌 강점을 제대로 살려 MC로 성공한 여자 연예인이 있다. 바로 박경림이 그 주인공이다. 그녀는 여성 MC 하면 얼굴도 예쁘고 목소리도 고와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MC로 성공하였다. 그녀는 여자라면 누구나 감추고 싶어 하는 네모진 얼굴에 갈라진 목소리를 가졌지만, 그 약점을 그녀의 강점인 친화력으로 극복하면서 성공하였다. 그녀 특유의 재치 넘치는 언변과 유머, 주위 사람들을 유쾌하게 만드는 긍정 에너지는 그녀 주위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역할을 한다. 그녀의 이런 특성은 그녀의 외모에 대한 약점을 극복하고도 남는다. 아니 그녀의 외모는 오히려 그녀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강점이 되고 있다. 외모가 뛰어난 연예인들은 대부분 신비주의를 택하기 때문에 일반 대중들은 물론이고 주변 연예인들도 가까이 하기가 힘든 경우가 많다. 하지만 박경림은 동료 연예인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일반 대중들도 친구처럼 편안함을 느끼도록 만들고 있다. 그녀의 이런 강점 덕분에 그녀의 토크 콘서트에는 유명한 연예인들이 많이 출연하기로 유명하다.

그녀는 최근 들어 몇 개의 라디오 프로그램도 진행하면서 각종 예능 프로그램의 고정 패널로 참여하는 등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일부 연예인들은 이처럼 인기가 올라가면 일반 대중들과 멀어지기도 하는데, 박경림은 기부문화 형성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벌써 10년 넘게 세이브더칠드런의 홍보대사로 활약하고 있고, ‘모자 뜨기 캠페인’, ‘이리이리 바자회등의 뜻 깊은 행사를 널리 알리는데 큰 힘을 보태고 있다. 뿐만 아니라 박경림은 여성 맞춤공연으로 여성관객들의 열렬한 지지를 얻고 있는 자신의 토크콘서트를 통한 수익금을 세이브더칠드런미혼모 자립사업을 위해 기부하며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오프라 윈프리와 박경림의 예는 약점이 아닌 강점에 집중할 때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대학에 강의를 갔다가 교수들과 얘기를 나누다보면 학생들에 대한 불평을 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이 있다. 특히 지방대일수록 이런 불평은 더욱 심하다. ‘미적분도 제대로 안 배우고 공대에 왜 왔는지 모르겠다.’, ‘전공을 소홀히 한 채 쉬운 과목만 들으려고 한다.’, ‘공부에 대한 열의가 부족하다.’ 등 등 등. 그렇지만 나는 교수들이나 부모들이 요즘 젊은이들의 강점이 무엇인지, 그 강점을 살려서 그들을 어떻게 키워야 하겠는지 고민해 본 적이 있느냐고 반문하고 싶다. 혹시 그들의 약점만 들추면서 손가락질만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오프라 윈프리에게 너는 여자에 흑인이고 예쁘지도 않고 내 세울 배경도 없으니까 방송에 나갈 생각도 하지 말라고 충고했다면, 지금의 오프라 윈프리가 있었을까? 오프라 윈프리에게는 그러지 않았을 거라고 대답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의 자녀들도 오프라 윈프리처럼 약점 투성이지만, 그들이 성공할 수 있는 강점도 분명 가지고 있다. 그 강점을 찾도록 도와주는 것이 바로 우리들이 해야 할이다. 지금부터 내 학생들, 내 자녀들의 강점이 무엇인지 찾아보도록 눈을 크게 뜨고, 그들의 강점을 계발하도록 도와줘서 오프라 윈프리나 박경림처럼 성공할 수 있도록 만들자.

지방대생들도 사회 분위기나 대학, 교수를 원망하기보다는 오프라 윈프리나 박경림처럼 자신의 강점을 적극적으로 찾아서 계발하도록 해야 한다. 이제 더 이상 공부만이 성공의 유일한 길이 아닌 세상이 되었다는 점을 확실하게 인식해야 한다. 물론 아직도 공부를 잘 하면 취업도 잘 되고, 사회적으로도 인정을 받는 분위기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앞으로는 공부를 못하더라도 성공할 수 있는 다른 길도 분명히 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앞에서도 자세히 설명했지만, 인공지능의 발달과 네트워크 사회로의 진입이 공부 잘하는 인재들의 역할을 대신할 것이기 때문이다.

시대 변화에 맞는 자신만의 강점으로 성공한 가수 싸이

 

아마 가수 싸이의 강남 스타일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몇 년 전만 해도 거의 무명에 가깝던 가수 싸이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댄스팝 뮤직비디오 강남스타일이 인터넷 무료 동영상 사이트인 유튜브에서 공개된 후 52일 만에 조회 1억 건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하면서 전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다. 마이클 잭슨, 레이디 가가 같은 세계적 톱스타들이 2~3년씩 걸렸던 기록을 싸이는 유튜브 공개 52일 만에 초고속으로 달성한 것이다. 또 한국의 대중음악으로서는 처음으로 4주 연속 빌보드 차트 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이런 유명세 덕분에 싸이는 할리우드 톱스타인 톰 쿠르즈와 트위터 친구가 되기도 했다고 한다. 더 나아가 싸이는 저스틴비버, 칼리 레이 젭슨 등이 속한 스쿠터브라운프로젝트(SB프로젝트)와 매니지먼트 계약을, 유니버설 리퍼블릭 레코드와 한국, 일본을 제외한 전 세계 음반 유통 계약을 체결했다고 한다. 이처럼 세계적인 메이저 음반사·기획사와 음반 발매와 매니지먼트 계약을 맺은 것을 놓고 찬사와 더불어 염려의 목소리도 있지만 대단한 일인 것만은 틀림이 없다.

싸이의 강남 스타일의 성공 요인은 무엇일까? 싸이의 성공 이후 많은 사람들이 그의 성공 요인을 분석했다. 나는 싸이의 성공 요인을 한 마디로 차별화된 최고되기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못 생기고(개성 있게 생기고?), 뚱뚱한 아저씨 몸매를 그대로 살려서 다른 스타들이 갖지 못한 그 나름대로의 끼를 살렸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실 싸이는 2001년 데뷔 후 ’, ‘챔피언등을 통해 아주 반짝 떴던 가수다. 그 이후에는 이렇다 할 주목을 받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었다. 싸이가 새로운 도약을 한 계기는 와이지엔터테인먼트 사와 전속 계약을 하면서 양현석 대표가 툭 던진 다른 가수들을 따라 하지 말고 자신만의 차별화된 특징을 보여주도록 해 보시죠.”라는 이 한 마디 때문이었다고 한다. 사실 싸이는 그 동안 K팝의 대세인 매끈한 외모, 뛰어난 몸매, 화려한 춤 동작을 따라하려고 노력해 왔었다. 하지만 그런 노력은 전혀 먹혀들지 않아 점점 더 수렁에 빠지기만 했었다. 그런데 양현석 대표가 던진 말을 듣고 나서 자신만의 차별화된 특징, 즉 지극히 동양적인 얼굴, 30대 아저씨의 뚱뚱한 몸매, 익살스러운 몸동작 등을 결합하여 강남 스타일을 만들어 낸 것이다.

강남스타일'에서 싸이는 압도적인 춤을 내세운 강력한 카리스마로 서양인들에게 조롱의 대상이었던 그의 오리지널 동양적 외모를 친근감으로 바꾸어 버렸다. ‘강남스타일의 말춤 동작은 그의 특징인 개그 감각과 익살스러움이 잘 배어 있을 뿐만 아니라,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다는 친근감을 주기도 한다. 물론 싸이의 열풍이 과거 전 세계적인 붐이 일었지만 반짝 반응으로 끝났던 마카레나 열풍 때처럼 일회성으로 끝날 가능성 있다고 염려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실제로 강남 스타일이후 한 동안의 침묵을 깨고 20134월 발표한 후속 곡 젠틀맨도 인기를 끌긴 했지만 강남 스타일에는 훨씬 못 미치는 성적을 냈다. ‘젠틀맨20141월 기준 가장 많이 본 동영상 10위에 그쳤다. 하지만 강남 스타일처럼 싸이가 자신만의 스타일을 지속적으로 찾아 발휘한다면 지속적인 성공도 충분히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더욱이 싸이는 기본적으로 영어회화가 되고, 프로듀싱 능력과 공연에도 강점을 보인다는 점에서 세계무대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싶다.

싸이의 또 다른 차별성은 네트워크 사회의 가장 강력한 수단인 인터넷 동영상인 유튜브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는 점이다. 사실 인터넷은 가수에게 별로 반갑지 않은 존재다. 과거에 가수는 음반사들이 레코드, CD 등을 팔아서 받는 수익을 배분받거나 공연에 초대되어 노래를 부르고 일정한 금액을 받는 것이 주 수입원이었다. 그런데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음원이 무료 내지 싼 금액으로 다운로드 받는 것이 일반화되면서 주 수입이었던 레코드와 CD 등의 판매가 급격하게 줄어들었고, 그에 따라 가수들의 수입도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따라서 가수들의 입장에서 인터넷은 반갑지 않은 존재였다. 그런데 싸이는 새로운 시대의 대세로 자리 잡아 가는 인터넷의 존재를 인정하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유튜브에 자신의 강남 스타일동영상을 올리고 누구나 공짜로 볼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다른 가수들이 시대 변화를 거부하고 있을 때 싸이는 새로운 시대를 받아들이고 오히려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성공한 것이다. 구굴이 뛰어난 검색 기능을 무료로 이용하게 만들면서 이용자들을 끌어 모아 광고 등으로 수입을 챙긴 것처럼, 싸이도 유튜브 동영상을 통해 세계의 이목을 끈 다음 수입은 다른 방법으로 올린 것이다. 싸이의 뮤직 비디오를 보고 저스틴 비버(Justin Bieber)의 매니저인 스쿠터 브라운(Scooter Braun) 싸이에게 계약을 제의했고, 미국의 지상파 TV의 빅쇼에 연이어 출연하게 된 것이다.

이전에도 아이돌 그룹을 중심으로 한 K팝 한류 열풍이 뜨거웠지만, 일본·중국·동남아 등에 한정되었다. 하지만 싸이의 강남 스타일은 전통적인 한류 강세 지역을 넘어 미국과 유럽까지 강타했다. 또 기존 서구의 K팝 팬들이 한국 문화를 좋아하는 소수 커뮤니티 중심이었다면 이번에는 주류사회가 움직였다는 점이 다르다. 싸이의 강남 스타일의 또 다른 특징으로는 유튜브에서 원곡 뮤직비디오가 1차적으로 엄청난 속도로 퍼진 다음에 팬들이 제작한 팬 비디오들이 쏟아졌다는 점이다. ‘강남스타일을 보면서 즐거워하는 장면을 담은 리액션 비디오에서 직접 말춤을 따라 추는 모습을 올리는 패러디물들이 다양하게 등장했다. 수십, 수백 명이 대학이나 경기장에 모여 그들만의 ‘OO 스타일을 췄다. 미국 오레곤대학생들의 오레곤 스타일’, 코넬대학생들의 코넬 스타일’, 런던 트라팔가 광장 스타일등이다. 전 세계에서 올라온 팬 비디오들은 다시 원곡의 인기를 끌어올렸다[네이버 지식백과 <싸이 - 유튜브 시대 B급 정서의 글로벌 스타> 파워콘텐츠공식, 2014415, 커뮤니케이션북스 참조]. 한 마디로 싸이는 네트워크 사회의 특징인 공유와 상생의 개념을 제대로 활용하여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내가 이렇게 일개(?) 가수의 성공 스토리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이유는 그의 성공이 우리 교육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녀를 가진 부모 입장이나,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의 입장에서 와이지엔터테인먼트 사의 양현석 대표처럼 너의 차별화된 능력을 찾아보라고 권해본 적이 있는가? 아마도 대부분 싸이의 못생긴 동양적인 얼굴, 뚱뚱한 아저씨 몸매, 세련되지 못한 막춤 때문에 너는 가수로서 성공하기는 글렀다고 말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나는 싸이의 강남 스타일성공 소식을 들으면서 그 동안 내가 자녀들이나 학생들에게 얼마나 너만의 차별화된 능력을 개발해보라고 권했는지 반성했다. 세계가 싸이의 차별화된 최고 능력에 열광하듯이 이 사회가 자신의 자녀나 학생의 차별화된 최고 능력에 열광하도록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는데도 말이다. 수능 점수가 떨어졌다고, 수학 점수가 남들보다 낮다고 탓만 했지 그들이 가진 차별화된 능력을 개발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하지 못했다.

물론 얼마 전 젊은 오빠로 다시 돌아온 돌아와요 부산항에의 가왕 조용필도 화제의 중심에 있다. 조용필을 싫어하는 중장년층이야 없겠지만, 이제는 젊은이들까지 좋아하는 노래로 돌아왔다니 더욱 반갑다. 그런데 만약 조용필과 싸이 중 누가 나으냐?’고 묻는다면 답을 할 수 있을까?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 질문 자체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대답을 하기가 곤란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조용필과 싸이는 나름대로 각자의 분야에서 최고인 것이 틀림이 없기 때문이다. 신문에서 조용필의 인터뷰 기사를 봤는데, 조용필은 누구와 대화를 하든지 오로지 노래에 대한 얘기만 한다고 한다. 노래를 연습할 때도 이만 하면 됐어라고 하는 법이 없이 끊임없이 변화를 주고 연습을 하다가 더 이상 연습할 시간이 없을 때 발표를 한다고 한다. 조용필과 같이 공연을 하는 팀원들은 조용필의 스타일에 맞춰서 연습을 하다가 지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야말로 조용필은 음악성 면에서 대한민국 최고 가수라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도 조용필의 공연에 몇 번 가 봤지만, 다른 가수의 노래를 부르는 것을 못 봤다. 공연 시간 내내 조용필 자신의 히트곡만 불러도 모자랄 지경으로 히트곡이 넘쳐나는 이유는 그만큼 노래에 전심전력을 다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싸이는 어떤가? 조용필의 노래는 음악만 들어도 괜찮지만 싸이의 노래는 음악과 더불어 춤 동영상을 봐야 제 맛이 난다. ‘강남 스타일도 그렇고 젠틀맨도 노래 그 자체보다는 춤이 곁들여져야 노래가 완성이 된다. 만약 싸이에게 조용필 식으로 노래를 하라고 강요했다면 오늘날의 싸이의 성공이 있을 수 있었을까? 반대로 조용필에게 싸이의 방식을 따라 노래보다는 춤을 추는 게 더 나을 거라고 충고를 했다면 조용필이 받아들였을까? 조용필과 싸이 모두 각자 자신의 스타일에 따라 최선의 노력을 했기 때문에 정상의 위치에 설 수 있는 것이다. 조용필의 노래는 가사도 의미가 깊고, 멜로디도 음악성이 풍부하다. 반면에 싸이의 노래 가사는 누구나 알 수 있는 영어 단어를 나열하면서 단순한 멜로디를 반복한다. 조용필의 노래는 주로 대한민국 팬들에게 사랑을 받지만, 싸이의 노래와 춤은 전 세계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

조용필도 싸이도 각자 자신의 스타일로 차별화된 최고를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 산업 사회에서는 무조건 공부를 잘 하는 표준화 평준화된 인재가 성공을 하는 시대였다. 하지만 현재의 네트워크 사회에서는 세분화된 분야에서 차별화된 최고 인재가 성공하는 시대가 되었다. 조용필처럼 음악성이 뛰어난 노래를 하는 가수도 성공을 하지만, 싸이처럼 동영상을 활용하여 단순하고 쉬운 노래를 하는 가수도 성공을 하는 시대다. 조용필처럼 전통적인 개념의 가수는 가사와 멜로디를 창의적으로 만들고 연습을 통해 음악성을 발휘해야 한다. 하지만 싸이처럼 쉬운 가사와 누구나 따라할 수 있는 춤을 곁들여도 성공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사회적 현실은 어떤가? 학교에서나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조용필처럼 되라고 강요하거나, 싸이처럼 새로운 모델을 따라 하라고 강요하지는 않고 있는지 자문해 보자. 자녀들의 강점을 파악하고 그 강점을 살려 새로운 분야에서 차별화된 최고가 되라고 격려하기보다는 과거의 인재상을 강요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제는 조용필과 싸이처럼 모두가 최고를 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 있다. 단순히 지고이기는 과거의 패러다임을 버리고 모두가 이길 수 있는 상생의 차별화된 최고패러다임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자녀 교육 문제뿐만 아니다. 산업 사회에서의 대기업 우위 패러다임에 빠져 대기업이 갑의 위치를 내세우거나, 중소기업이 을의 위치에서 굴욕적인 처우를 감수하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해보아야 한다. 이제는 중소기업도 차별화된 최고 강점(핵심역량)을 파악하고 싸이처럼 이를 키운다면 얼마든지 경쟁우위에 설 수 있다. 대기업도 차별화된 강점이 없이 단순히 자본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경쟁우위에 설 수 없다. 대기업도 중소기업도 각자의 차별화된 강점을 개발해 서로 윈윈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이 세계적인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효과적인 시대가 됐다. 한국 경제의 재도약은 모두가 차별화된 최고가 되도록 해야만 이룰 수 있는 목표다. 대기업을 억눌러 중소기업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것이 해결책이 아니다. 단순히 지고이기는 과거의 패러다임을 버리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모두가 이길 수 있는 상생의 차별화된 최고패러다임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네트워크 사회에서 성공하려면 차별화된 최고 능력을 지니는 게 가장 중요한 조건이지만, 이 능력을 다른 사람 또는 기업과 네트워크화 하여 시너지 효과를 내도록 하는 열린 마음자세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제는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혼자서 일을 하는 것보다는 여러 사람들과 네트워크를 이루어 일을 하는 것이 더 효율이 높기 때문이다. ‘집단 지성이라고 알려진 이런 네트워크를 통한 협업의 효과는 네트워크 사회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과거에 한 사람의 뛰어난 천재가 10만 명을 먹여 살린다고 했다면, 네트워크 사회에서는 10만 명의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 집단 지성을 발휘하면 10만 명을 먹여 살리는 천재보다 훨씬 더 뛰어난 일을 할 수 있다. 어찌 보면 개인의 차별화된 최고 능력도 집단 지성을 발휘하기 위한 한 가지 조건 정도라고 봐야 한다. 왜냐하면 집단 지성은 열린 마음을 통해 차별화된 최고 능력을 가진 다른 사람들과 협업을 함으로써 비로소 나타날 수 있는 효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에서 주로 다룬 차별화된 최고 능력을 어떻게 계발할 것인가 하는 논의에 더하여, 이번에는 네트워크에 필요한 열린 마음자세를 어떻게 계발할 것인가 하는 주제에 대해 논해보겠다.

네트워크 사회에 들어서면서 열린 마음이 점점 더 중요해지는데, 그 이유는 다른 사람과 네트워크를 하려면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산업 사회에서는 정해진 일만 혼자서 성실히 수행하면 되었기 때문에 개인적인 능력이 중요했지, 열린 마음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네트워크 사회에서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내려면 개인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들과의 협업이 훨씬 더 중요하게 되었다. 이런 협업은 조직 내에서 뿐만 아니라, 외부 사람 또는 기업과의 시너지를 내기 위해서도 그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이제 기업의 조직은 주어진 일을 수행하는 역할보다는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역할이 더 커지고 있다.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혼자 작업하는 것보다는 서로 다른 능력과 관점을 가진 조직 내 팀원들이 협업하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이다. 팀장 더 나아가 경영진이 되기 위해서 소프트 스킬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즉 팀장이나 경영진의 역할이 과거의 감시나 통제에서 벗어나 앞으로는 팀원들의 역량을 어떻게 잘 모을 수 있느냐로 변하고 있다. 그런데 팀원들의 협업을 잘 이끌어낼 수 있는 소프트 스킬의 핵심 요소가 바로 열린 마음이다. 소프트 스킬이 다른 사람들과 협업하여 성과를 내는 능력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열린 마음 자세, 즉 다른 사람들과 공감하고 소통하는 능력이 바로 소프트 스킬의 핵심적인 요소가 되는 것이다.

기업에서 직원을 뽑을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 중의 한 가지가 바로 소프트 스킬, 즉 열린 마음이다. 기업은 입사 지원자의 열린 마음을 알아보기 위해 다양한 면접 기법을 사용한다. 대표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집단 토론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집단 토론은 여러 명의 지원자들이 주어진 주제에 대해 토론을 하도록 하고, 옆에서 면접관들이 토론 모습을 지켜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집단 토론에서 기업은 어떤 기준으로 지원자의 자질을 판단하고, 지원자들은 어떤 점에 주의를 해야 할까? 산업 사회의 패러다임에 익숙한 지원자의 경우라면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고, 상대를 제압(?)하는 능력을 보여주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기업이 보려고 하는 지원자의 자질은 지식을 기반으로 한 하드 스킬이 아니라 열린 마음을 기반으로 한 소프트 스킬이다. 상대를 제압하는 능력이나 지식은 학업 성적이나 시험을 통해 얼마든지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그런데도 시간도 많이 걸리고 비용도 많이 드는 면접 방식을 선택한 이유는 열린 마음을 알아보기 위해서다. 따라서 집단 토론을 통해 지원자가 상대의 얘기를 얼마나 잘 듣고 열린 마음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인 다음 자신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보태 차별적인 콘텐츠를 잘 제시하느냐를 기업은 보고 싶은 것이다. 집단 토론 외에도 집단 회식 자리를 갖는다든가, 함께 목욕을 한다든가 여러 기발한 방법을 사용하지만, 결국 기업이 지원자들로부터 보고 싶은 것은 얼마나 열린 마음을 갖고 있느냐다.

그렇다면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드는 집단 면접 등의 방법 외에 지원자들의 열린 마음을 측정(?)하는 방법은 없을까? 요즘 입사 과정에서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인적성 검사가 바로 그런 고민에서 나온 것이다. 인적성 검사가 완전하지는 않지만, 많은 인원 중에서 그나마 객관적으로 비교적 쉽게 인성과 적성을 가려낼 수 있기 때문이다. 지원자 전체를 대상으로 면접을 실시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인적성 검사를 통해 1차적으로 대상자 수를 줄이고, 그 대상자들에 대해 면접을 실시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게 기업들의 판단이다. 여기서 지원자들이 주의해야 할 점은 인적성 검사는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솔직하게 답을 하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내가 면접관으로 지원자들의 인적성 검사 결과를 살펴본 경험을 얘기하자면, 어떤 지원자들은 너무 정답에 집착해서 인위적으로 답을 하다 보니 일관성이 없다는 결과가 나와 지원자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다는 인상을 받는 경우가 꽤 있었다. 인적성 검사는 그야말로 지원자가 지원한 분야에 맞는지를 판정하는 방법이기 때문에 인적성 검사에서 떨어지면 지원 분야가 자신에게 맞는지에 대해 고민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

얘기가 옆으로 샜지만, 이제부터 네트워크 사회에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는 열린 마음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살펴보겠다. 특정 분야에 대한 적성은 태어나면서 대부분 결정된다. 그런데 열린 마음을 비롯한 인성은 어느 정도 선천적으로 타고나기도 하지만, 노력하기에 따라 향상될 수 있는 소지가 충분히 있다. 문제는 인성은 지식과 달리 벼락치기로 키워질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데 있다. 기업들이 지식보다 인성을 중요시하는 이유도 지식은 기업에 입사한 다음에도 단기간에 충분히 키울 수 있지만, 인성은 단기간에 고치기가 힘든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즉 지식, 즉 하드 스킬은 교육 등을 통해 습득하도록 강제하더라도 어느 정도 효과를 볼 수 있지만, 인성은 강제하더라도 효과를 보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한 가지 밖에 없다. 지원자 스스로가 열린 마음을 갖도록 미리 꾸준히 노력하는 것이다. 그런데 열린 마음으로 대표되는 소프트 스킬은 지식이 쌓일수록, 또 나이가 들수록 향상시키기가 힘들다. 즉 열린 마음은 학교 공부를 열심히 한다거나 세월이 지난다고 저절로 길러지는 게 아니다. 따라서 열린 마음을 키우기 위해서는 별도의 노력을 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열린 마음을 키우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여러 방법들이 있겠지만, 나는 독서와 여행을 적극 추천한다. 열린 마음을 키우는 데 독서가 중요한 이유는 독서를 한다는 행위가 내가 변화해야 하고, 그래서 다른 사람의 지혜를 받아들이겠다는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독서를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왜 독서를 하지 않느냐?’고 물으면 대부분 시간이 없어서라고 하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나는 지금 상태로도 충분하고, 귀찮게 변화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즉 독서를 한다는 자체가 세상의 변화를 인정하고 내가 변화해야 할 필요성이 있고, 다른 사람의 지혜를 받아들여서 내가 변화해야 하겠다는 의지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중요하다는 얘기다. 둘째로는 미래 사회를 살아가는 데 필수 요건인 차별화를 위해서도 독서가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차별화는 지금과 같은 대중화된 교육 체계 하에서는 불가능하다. 교실에서 여러 사람들을 대상으로 가르치는 내용은 다른 사람들도 다 알게 되기 때문에 나만의 차별화로 이용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나를 차별화하기 위해서는 그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나 스스로 나만의 것을 발견하여 보태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독서인 것이다. 독서를 통해서 나를 발견하게 되고, 나의 강점을 알게 되고 이를 자연스럽게 나의 차별화와 연결시킬 수 있다. 나를 차별화하기 위해서는 성공한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그들을 차별화시켰는지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독서를 통해 저자들의 차별화 방법도 배우고, 그들이 추구하는 차별화 내용도 배워서 나를 차별화하는 데 응용하는 지혜를 발휘하여야 한다.

1909년 노벨화학상을 받은 독일학자 오스발트는 위인이나 성공한 사람의 공통점을 조사한 결과, 첫 번째가 긍정적 사고이고, 두 번째가 독서란 사실을 밝혀냈다. 실제로 성공한 경영자들을 조사해보면 공통적인 요소보다는 다른 독특한 점들이 많은데, 한 가지 공통점은 독서를 많이 한다는 점이다. 그 성공한 경영자들이 시간이 남아돌아서 독서를 하겠는가? 경영을 하다보면 변화와 혁신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바로 독서를 선택하는 것이다. 그만큼 독서는 들이는 시간에 비해 변화와 혁신, 자기 계발에 절대적으로 유용한 수단인 것이다. 따라서 변화를 그 속성으로 하는 미래 사회에서 자신의 경쟁력을 확실히 키우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독서를 하여야 한다. 취업을 위한 스펙 쌓기도 바쁜데 독서할 시간이 어디 있느냐고 생각한다면 무책임한 변명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냉정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세계에서 가장 부자이면서 가장 바쁜 빌 게이츠도 특별히 시간을 내서 독서를 한다. 그 보다 더 바쁜 사람이 있을까? 빌 게이츠는 이미 성공했는데도 독서를 하고 있다면, 이제 성공을 위해 나아가고 있는 우리가 그 보다 더 많이 독서를 하지 않는다면 그를 뛰어넘을 수 없지 않겠는가.

어떤 사람들, 특히 젊은 사람들 중에는 인터넷에 모든 지식이 다 들어 있는데, 무엇 때문에 따분하게 앉아서 독서를 해야 하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는 뭔가 크게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에는 정보는 많이 있을 수 있지만, 지식 내지 지혜는 없다. 물론 지식이나 지혜의 정의에 따라서 인터넷에 단순한 지식은 있을지 모르겠지만, 진정한 의미의 지식이나 지혜는 없다. 책에는 그 책을 쓴 저자의 지식과 지혜와 더불어 철학이 들어있다. 나는 책을 읽을 때마다 만 원 안팎의 돈을 들여 그 저자의 평생의 엑기스를 전수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가하고 항상 감사하는 마음이 들곤 한다. 지금도 1년에 100권 정도의 책을 읽는 것을 목표로 하고, 실천해 오고 있지만, 언제면 마음대로 시간을 내어 더 많은 책을 읽을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독서를 효과적으로 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이미 많이 알려져 있지만, 몇 가지만 여기 기술하고자 한다. 우선 독서는 정기적으로 정해진 시간에 하는 것이 좋다. 특히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단 몇 분만이라도 규칙적으로 하는 것이 좋다. 두 번째는 자투리 시간을 잘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철 등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해서 출퇴근을 한다면 그 시간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콩나물시루 같은 전철이나 버스 안에서 무슨 책을 읽느냐고 생각한다면 오디오 북을 활용하는 것을 권장하고 싶다. 요즘은 유명강사의 강연 내용을 CD, 카세트 테이프, mp3 형태로 만들어 판매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을 활용하면 꼭 책을 펼치지 않아도 독서를 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나의 경우에는 지방 출장이 많은 편인데, 차를 타고 가면서 라디오를 들을 때도 있지만, 가능하면 강연 테이프를 듣곤 한다. 또 시내에 나갈 경우에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전철을 이용하면서 독서를 한다. 그런데 아쉽게도 요즘은 전철 안에서 독서를 하는 사람을 거의 찾을 수 없다. 대부분 멍하니 앉아 있거나 심지어 아까운 시간에 스마트 폰으로 TV를 시청하거나 게임을 하고 있다. 셋째는 명확한 목표 의식 내지 비전을 가져야 한다. 독서를 할 때는 그저 재미를 느끼기 위해서일 수도 있지만,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서 해야만 효율이 오른다. 피터 드러커는 3년 주기로 주제를 정해서 책을 읽었다고 한다. 나의 경우에도 좋은 책을 닥치는 대로 고르기도 하지만, 매년 주요 주제를 정해서 읽고 책을 쓰고 있다. 어떤 주제에 대해 책을 쓴다는 분명한 목표가 있을 때에 책의 내용이 머리에 잘 들어온다. 인기 작가였던 에르네스트 뎅네가 <사고의 기술>에서 세상에서 가장 좋은 독서 방법은 정말 궁금해서 책을 손에 쥐었을 때라고 말했듯이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주제를 정하는 것이 독서의 효율성을 크게 높이는 방법이다.

독서 외에 열린 마음을 기르기 위해 권하는 또 하나의 방법은 여행을 하는 것이다. 여행을 하는 목적은 여러 가지가 있다. 좋은 풍경을 구경하기 위해서, 삶에 지쳐서 잠시 쉬기 위해서 등 여러 가지 목적이 있지만 여행의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목적은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체험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풍경을 구경하기 위한 여행은 관광, 삶에 지쳐 잠시 쉬기 위한 여행은 휴가라고 구분하기도 한다. 열린 마음을 키우기 위해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체험하기 위한 여행, 즉 열린 여행이 중요한 이유는 나와 다른 삶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열린 여행을 통해 음식, 관습, 날씨 등 그 동안 자신에게 너무 익숙한 것들이 사실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낯선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열린 여행은 그 동안 다른 사람이 틀리다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나와 다른 것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준다. 다른 사람이 틀린 게아니라 다르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게 바로 열린 마음이다. 즉 열린 여행을 통해 열린 마음을 키울 수 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반도 국가이면서 유일한 대륙과의 연결 통로가 북한으로 막혀 있는 한국의 지정학적 특성이 열린 여행의 중요성을 더욱 크게 만들고 있다. 물론 지금이야 해외여행도 돈이 있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갈 수 있지만, 유럽이나 미국 등 서구에 비해 외국 문화를 자연스럽게 접할 기회가 적은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더욱이 한국은 역사적으로도 외국으로부터 많은 침략을 받았었기 때문에 단일 민족이라는 개념을 앞세워 생존에 급급하다보니 외국 문화에 더 폐쇄적이 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런 폐쇄성을 가장 크게 보여주는 예로 한국에서 한국을 우리나라로 지칭하거나 한국사를 그냥 국사로 지칭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여러 국가들이 인접해 있고 활발한 교류가 일어나는 유럽에서라면 우리나라라는 말 대신에 그 국가의 명칭이, 독일의 교실에서도 국사대신에 독일사라는 말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그러다보니 독도는 한국 땅대신에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노래하게 되었고, 그 가사를 일본 사람들이 그대로 번역해서 독도는 우리(일본) 이라고 불러도 항의를 못하는 웃지 못 할 현상까지 일어나고 있다.

요즘 취업이 어렵고, 외국어, 특히 영어가 스펙 쌓기에 필수라는 인식 때문에 어학연수를 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어학연수를 가더라도 단순히 외국어를 배운다는 생각보다는 그 나라의 문화를 배운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인공지능의 외국어 번역 기능이 점점 더 좋아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외국 문화 경험을 통해 열린 마음을 키우는 게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어학연수를 가서 한국인들끼리 어울려 다니면서 외국어 수업만 받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 나라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어울리면서 그 나라의 문화를 배우려는 노력을 해야만 한다. 나중에 기업에 취업하기 위해 면접을 보는 경우에도 어학연수 중에 경험한 그 나라의 문화 특성에 대해 언급하고, 그런 경험이 그 기업의 해외 진출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 좋다.

차별화된 최고 인재가 되기 위한 전략으로 앞에서 강점 계발, 약점을 강점으로 바꾸기, 다른 사람의 강점과 네트워크 하기 등을 제시하였다. 여기에 더하여 한 가지 강점만으로는 차별화된 최고가 될 정도의 특별한 강점이 없을 경우에는 두세 가지 강점들을 네트워크 하는 것도 차별화된 최고 인재가 될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이다. 예를 들어 외향적인 성격에 대인관계는 좋아하지만, 낯선 사람들을 상대로 보험 상품을 팔아서 보험왕이 될 정도는 아니고, 동시에 공학 분야에 어느 정도 관심이 있어서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빠르지만 공학 분야에서 최선두에 서기에는 능력이 부족한 사람의 경우에 이 두 가지 적성을 합쳐서 기술 영업을 한다면 다른 사람들과 차별화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예를 들자면 너무나 많다. 문제는 이제까지 산업 사회에서는 어느 한 분야의 큰 범위 안에서 어느 정도 수준 안에 들어오면 개인적으로 살아가거나 사업을 하는데 큰 불편이 없었지만, 앞으로 미래사회에서는 좁은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차별화된 능력을 발휘해야만 한다. 예를 들어 전에는 화장품 업계에서 상위 그룹 안에만 들면 사업을 영위해 나가는 데 별 지장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화장품 시장에서도 세분화하여 천연 화장품에서 중년 여성들, 그 중에서도 부유한 상류 중년 여성들을 타깃으로 하는 시장에서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선두주자가 되어야 한다는 식으로 변해야 한다. 개인의 예를 들자면 전에는 전체 성적이 반이나 과에서 상위권에 들면 취업을 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회사가 요구하는 특정 분야에서 어느 누구도 따라 올 수 없고, 누구도 자신을 대체할 수 없는 차별화된 능력을 지녀야만 취업을 할 수 있고, 구조조정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회사가 붙잡아 두려고 애를 쓴다는 얘기다.

이처럼 여러 가지 강점들을 네트워크로 연결하여 차별화시키는 방법은 비단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기술들을 네트워크로 연결시키면 차별화시킬 수 있다. 이제까지 산업 사회에서는 일반적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서는 자체적으로 세계 최고의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는 엄청나게 어려운 과정이다. 특히 요즘같이 제품의 수명이 짧고, 기술의 발전 속도가 빠른 시대에서는 자체적으로 제품을 개발하면서 시간을 지체하다가는 경쟁에서 뒤떨어지기 쉽다. 하지만 네트워크 전략은 이미 알려진 기술들을 결합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큰 노력이 들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고, 여러 가능한 조합들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각자 독특한 조합으로 자신만의 차별화된 분야를 개척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네트워크 전략을 가장 잘 활용하고 있는 분야의 대표적인 예의 하나로 핸드폰을 들 수 있다. 초기에 핸드폰은 그 본래의 기능인 통화나 문자 서비스의 성능 차이로 차별화시킬 수 있었다. 중계기지 숫자가 많으면 통화 품질이 좋고, 통화가 안 되는 지역이 적었다. 하지만 중계기지 숫자가 비슷해지면서 통화 품질로는 더 이상 차별화시킬 수 없게 되자, 디자인을 예쁘게 하고, 경량화 시켜서 차별화시켰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여 사용한 방법이 바로 네트워크 전략이다. 휴대폰의 원래 기능에 이미 알려진 기술인 카메라 기능을 합치고, mp3기능도 넣는 등 다양한 기능을 추가하여 다른 핸드폰과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요즘에는 핸드폰이 전자 사전 기능, 노트북 컴퓨터까지 겸한 스마트 폰으로 진화하면서 핸드폰의 성능이 어디까지 확장될지 자못 흥미롭다.

네트워크 전략은 비단 차별화된 제품을 개발하거나 개인적으로 차별화된 특성을 개발하는 데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일하고자 하는 분야를 정할 때도 유용하다. 예를 들어 이화여자대학교 석좌교수인 최재천 교수는 동물학을 전공했지만 이를 사회학 분야와 네트워크 시킨 사회생물학이라는 학문분야를 개척하여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사회학자들이 주류를 이루는 사회 문제에 대해 과학자로서의 관점을 제시함으로써 확실하게 차별화된 등 분야를 개척하고 있는 것이다. 학문 분야 간의 네트워크화는 네트워크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트렌드 중의 하나가 되고 있다. 인문학 내 또는 공학 내 다른 분야끼리의 네트워크도 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지만, 위에 언급한 최재천 교수의 경우처럼 인문학 분야와 공학 분야와 같이 전혀 다른 분야의 결합이 더 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이는 마치 진화생물학에서 얘기하는 잡종 강세의 원리라고 비유할 수 있다. 이처럼 전혀 다른 분야끼리의 네트워크에 의한 효과가 큰 이유는 근시안적으로 자신의 좁은 범위 안에서만 바라보던 세계를 전혀 다른 각도에서 조명해 봄으로써 새로운 관점을 도출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위에 언급한 최재천 교수의 사회생물학 경우를 예를 들어보면, 고령화 사회의 문제점을 사회학자의 입장에서만 바라보면 문제투성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고령화 사회가 되면 될수록 사회 보장적인 측면에서 부담이 늘 수밖에 없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출산율을 높여서 부담을 할 수 있는 젊은 층을 늘리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고령화 사회는 인류가 그 동안 끊임없이 추구하던 장수의 꿈이 실현되는 것인데, 과연 이를 거꾸로 돌려야 한다고만 주장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동물들에게는 장수란 개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약육강식의 자연 세계에서는 늙어서 힘이 없어지면 당연히 죽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인간은 왜 장수를 할 수 있는가물론 의학의 발전이 큰 공헌을 했지만, 인간은 나이가 들면 힘은 없어지지만 지식이나 지혜는 오히려 많아진다는 점도 또 하나의 이유가 된다. 그런데 네트워크 사회는 힘을 필요로 하는 사회가 아니라 지식과 지혜를 필요로 하는 사회인 것이다. 노년층을 지혜 집단으로만 바꿀 수 있다면 그들은 사회에 부담만을 주는 쓸데없는 존재가 아니라 이 네트워크 사회를 떠받칠 소중한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사회생물학에서는 고령화 사회의 문제를 인간과 동물을 비교 분석하여 관찰함으로써 기존의 사회학에서 보여준 것과는 전혀 다른 차별화되고 긍정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책에선가 읽은 내용인데, 가수가 되기를 열망한 여고생이 있었다. 하지만 그 여고생의 어머니는 딸이 노래에 소질이 뛰어나지 않아서 가수로 성공할 수 없다고 판단해서 반대했는데, 네트워크 전략을 통해 그 갈등을 현명하게 해결했다. 그 여고생의 입장에서 좋아하는 일과 잘 할 수 있는 일이 달랐던 점을 모두 만족시키면서 해결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참고가 되리라 생각한다. 그 여고생은 너무나 가수가 되고 싶었기 때문에 어머니의 반대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은 가출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집을 나갔다. 하지만 역시 없는 소질이 새로 생겨날 리가 만무해서 그 여고생은 결국 고생만 하고 가수로 데뷔조차 하지 못했다. 그 때 그 여고생을 상담하던 전문가가 어머니와 그 여고생에게 새로운 길을 제시했다. 그 여고생 입장을 보면 가수가 될 정도로 노래에 뛰어난 소질이 없기 때문에 가수로 성공하기는 힘들지만, 노래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 꿈을 무작정 포기하라고 할 수는 없었다. 한편 그 여고생 어머니의 입장에서는 안정된 직업을 원했다. 따라서 그 두 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방법으로 음악 선생님이 되는 길을 제안을 하게 되었다. 물론 이 제안에 그 여고생과 어머니가 모두 찬성했다. 결국 그 여고생은 자신이 원하는 길을 선택했기 때문에 열심히 공부해서 음악 선생님이 되었다. 사실 그 여고생은 남을 가르치는 소질이 있었는데, 그 소질을 뒤늦게 찾아내서 좋은 음악선생님으로 성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또 한 가지 예를 들어 보겠다. 어릴 때 미국으로 이민 간 교포 씨는 어려서부터 엄마의 극성으로 발레를 배웠다고 한다. 씨는 어렸을 적에는 엄마의 극성에 떠밀려서 워낙 열심히 했기 때문에 상도 많이 타고 잘 나갔는데, 사회에 나와서는 발레가 자신의 적성에 맞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특히 동양적인 자그만 체구를 가진 씨는 신체적 조건이 불리해서 어차피 두각을 드러내기가 힘들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도 씨가 발레를 그만 두어야 되겠다고 결심하게 된 큰 이유였다. 그래서 씨는 엄마에게 자신의 의견을 얘기하고 발레를 그만 두겠다고 했다. 물론 엄마는 난리를 치면서 반대를 했다. 하지만 씨는 더 이상 엄마의 의견에 따라가지 않고 자신의 인생을 살기로 결심을 하고, 발레를 그만 두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이 공연 기획에 소질이 있기 때문에 공연 기획자로 나서기로 했다. 물론 처음에는 공연비용을 줄이기 위해 자신이 공연에도 참여하고, 길거리 공연 등 기존에 시도하지 않았던 참신한 공연 기획을 통해 고객들과 가까이 가는 노력을 하면서 성공을 하게 되었고, 지금은 발레를 직접 할 때보다 더욱 보람 있게 살고 있다고 한다. 자신이 어릴 때부터 해 오면서 잘 할 수 있는 발레와 자신이 원래 좋아하는 기획을 결합해서 가장 이상적인 길을 개척한 것이다. 씨는 공연 기획을 하면서도 자신이 출연자로서 활동을 했었기 때문에 출연자들을 이해하면서 기획을 더 잘 해 나갈 수 있다고 한다.

네트워크 전략을 통해 차별화된 최고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는 나의 경우를 예로 들어 보겠다. 나는 이제까지 10여 권의 책을 출간했다. 공대 출신으로 이렇게 많은 책을 내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또 매주 한 편씩 글을 써서 뉴스레터 형태로 보내고 있다. 그러다보니 글을 잘 쓴다는 칭찬을 듣는 경우가 많다. 아마도 공대 출신이라면 논리적이고 감성이 부족해서 글을 잘 쓰지 못할 것이라는 선입관을 갖고 있었는데, 공대 출신인데도 내가 제법 글을 쓴다는 의미의 칭찬일 것이다. 여러 권의 책을 내면서 주위 사람들부터 듣는 얘기 중의 한 가지가 내 책이 너무 논리적이고, 좀 과장하면 논문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책이 많이 안 팔리는 것 같으니까 재미있게 좀 써보라는 권유까지 듣곤 한다. 하지만 나의 강점은 공대 출신치고는 글을 좀 쓴다는 점과 공학박사 학위까지 있는 정통 엔지니어라는 점이다. 그러니 내 나름대로는 차별화 전략으로 이 두 가지 강점을 네트워크 하여 책을 쓰고 있는 것이다. 내가 유명 베스트셀러 작가들처럼 감성에 호소하는 글을 쓰기에는 내 자질이 부족하고, 만약 억지로 쓴다고 해도 내 강점들을 살리지 못하고 차별화에 실패할 가능성이 높지 않겠는가. 물론 훗날 귀촌을 하여 행복한 삶을 살다보면 감성이 되살아나 감성이 묻어나는 글을 쓸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내 책을 읽은 지인들로부터 많이 듣는 또 다른 이야기는 주제가 너무 다양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내 책의 주제를 굳이 구별하자면 신재생 에너지 분야, 공대생들의 진로, 인생 후반부의 삶이 주류를 이루지만, <부의 진화론>이라는 경제서, <CEO 공학의 숲에서 경영을 논하다>라는 경영서도 있고, <부동산 신투자전략>이라는 부동산 관련 책 등 그야말로 모든 분야를 망라한다. 그 뿐만 아니라 두 권의 번역서는 심리학 관련 책이고, 재테크와 에세이 형태의 공저도 있다. 이처럼 다양한 주제의 책을 썼지만, 내 나름대로는 미래의 삶행복이라는 주제에 대해 공학의 논리적인 분석 방법을 적용하여 글을 쓴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예를 들면 <부동산 신투자전략>의 경우에는 어떻게 부동산에 투자하여 돈을 버느냐에 대한 내용이 아니라, 통계를 이용하여 부동산 시장의 미래 트렌드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 쓴 책이다. 즉 내가 여러 주제에 대한 책을 쓰지만, 나의 강점인 엔지니어로서의 분석 능력과 논리에 기초한 글을 쓰는 차별화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내 책의 주제가 너무 다양(?)하다는 의견을 내는 사람들은 아마도 산업 사회의 전문가 개념에 익숙해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전문가 개념은 과학이 발전하면서 주류로 자리 잡은 환원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다. 환원주의는 삶의 영역을 세분화한 다음 각 분야를 깊이 파고들어서, 나중에 각 부분들을 합치면 완전한 전체가 된다는 개념에 기초를 두고 있다. 그러니까 각 분야에 깊이 파고드는 전문가들이 필요하고, 그 전문가들이 나중에 모이면 자연스럽게 전체적인 그림이 그려질 수 있다는 논리다. 하지만 자동차 부품들을 합치면 자동차라는 제품은 만들 수 있지만, 자동차가 주는 효용 가치는 단순히 부품 전문가들이 모여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동차의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전체적인 그림이 그려지고 그에 맞춰 각 부분의 전문가들이 힘을 합쳐야만 한다. 산업 사회에서는 사용 가치가 미리 정해진 제품에 맞춰 어떻게 각 부품들을 만드느냐가 중요했지만, 네트워크 사회에서는 각 부품에 필요한 기술들은 거의 확보되어 있기 때문에 어떻게 사용 가치가 높은 제품을 생각해내느냐가 중요해졌다. 예를 들면 스마트 폰에 필요한 기술들은 대부분 확보되어 있었지만, 그 부품들을 모아 아이폰 같은 사용 가치가 높은 제품을 만드는 게 네트워크 사회의 성공 포인트라는 얘기다.

결론적으로 얘기하자면 내 책이 주제가 다양한 것은 맞지만, 내가 전문가도 아니면서 이 책 저책 마구 썼다는 비판은 받아들일 수 없다. 왜냐하면 좋은 책은 단순하게 전문가 지식을 나열하는 게 아니라, 그런 지식들을 모아 어떤 콘텐츠, 즉 효용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과거 산업 사회와 달리 각 주제에 대한 지식은 인터넷과 다른 책들을 통해 얼마든지 습득할 수 있다. 더 나아가 한 분야에 깊은 지식이 있는 전문가는 자칫하면 한 면만 바라보는 편협함에 빠질 우려가 있다. 오히려 다양한 주제에 관심을 갖고 폭넓은 관점에서 책을 쓰면 더 좋은 콘텐츠의 책을 만들 가능성 높지 않을까? 물론 한 분야에 전문 지식을 갖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전문가 콘셉트에 빠져 좁은 시각을 고집함으로써 전문 지식이 오히려 자신의 발목을 잡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부동산 전문가는 부동산 가격이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은 피하고 싶어 한다. 왜냐하면 그런 전망 자체가 자신의 직업 터전을 잃게 만들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전문가 지식도 자신의 강점 중의 하나로 인식하고 다른 여러 가지 강점들과 함께 네트워크화 함으로써 차별화된 최고 인재가 되도록 하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다른 사람의 강점과 네트워크 하라

 

21세기 네트워크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차별화된 최고 인재가 되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한 다음에 약점에 대한 보완보다는 강점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여야 한다. 산업 사회에서의 특징은 표준화, 평준화이고, 네트워크 사회의 특징은 차별화, 창의성이라고 지적하였다. 따라서 산업 사회에서는 교육의 목표가 강점을 살리기보다는 약점을 보완하는 것이었다. 약점을 보완함으로써 표준화된 인간을 길러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약점을 보완하는 것과 강점을 살리는 것이 무슨 차이가 있느냐고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약점을 보완하면 강점만 남게 되니까 그게 그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두 가지 방법에는 근본적인 큰 차이가 있다. 한정된 시간과 비용을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투자할 때보다는 강점을 더 살리기 위해 투자하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앞에서 뇌과학을 통해 설명한 바 있다.

이 문제를 더 확실하게 설명하기 위해 한 가지 예를 들어 보겠다. 내가 대학에서 강연을 하면서 강점 얘기가 나오면 꼭 물어 보는 질문이 있다. 내 아들은 수학은 잘 하는데, 미술은 잘 못한다. “내 아들에게 투자를 하고 싶은데 수학과 미술 중 어느 쪽에 투자를 해야 하겠는가?”하는 게 질문 내용이다. 이렇게 질문을 받고 나면 한 번쯤 생각해 볼 것이다. 그냥 평범한 답을 요구하는 것이라면 물어보지 않을 것이니까 말이다. 그래서 학생들이 수학미술로 나뉘어 대답하면서도 고개를 갸우뚱한다. 하지만 만약 이런 경우를 실제로 당했다면 너무도 당연히 미술 공부를 시킬 것이다. 오히려 그런 질문을 하는 자체가 이상할 정도가 아니었을까? 당연히 미술 공부를 시킬 거라고 단정 짓는 이유는 이제까지 산업사회에서 요구하는 인재 자체가 표준화된 인재를 요구했기 때문에 잘 하는 분야를 더 잘 하게 하기 보다는 못 하는 분야를 조금 더 잘 하도록 해서 표준화된 인재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으로 다가 올 미래사회에서 차별화된 최고 능력을 가지도록 하기 위해서는 내 아들의 경우에 소질이 없는 미술 공부를 하도록 하는 것 보다는 소질이 있는 수학 공부를 더 하도록 해야 한다. 그 이유는 자명하다. 내 아들의 경우에 같은 시간을 들여 미술 공부를 할 때와 수학 공부를 할 때 어느 쪽이 능률이 더 오르겠는가? 앞에서 뇌과학 이론을 통해서 설명을 했듯이 수학 공부를 할 때 훨씬 더 능률이 높다. 즉 내 아들이 수학 공부를 더 하게 되면 그 분야에서는 뛰어난 성과를 보여줄 수 있지만, 미술 공부를 하게 되는 경우에는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난 차별화되는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게 된다.

앞에서 네트워크 사회에서는 약점 보완이 아니라, 강점을 더욱 키워주는 전략이 차별화된 최고 인재가 되는 확실한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위에 예를 든 내 아들의 경우에는 미술이 아니라 수학 공부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도록 함으로써 수학 분야에서만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도록 하면 확실히 차별화된 인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 경우에 약점인 미술은 어떻게 하느냐하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앞 장에서 설명했듯이 약점을 강점으로 바꾸는 전략이다. 만약 자신의 약점을 강점으로 바꿀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하지만 만약 약점을 도저히 강점으로 바꿀 방법이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앞에서 제시한 ‘H형 인재가 되어 자신의 약점 분야에 강점을 가진 사람과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도 약점을 강점으로 바꾸는 전략에 못지않게 좋은 방법이다. 내 아들의 경우에는 미술 잘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미술을 잘 하는 사람과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게 더 나은 방법이다.

내가 10여 권의 책을 내고 나서 주위 사람들로부터 자신도 책을 쓰고 싶다는 얘기를 많이 듣고 있다. 그래서 책 쓰기 인터넷 카페도 운영해보고, 직접 개인적으로 책 쓰기를 돕고자 하지만, 실제로 책 쓰기를 시작하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아니 거의 없다고 표현하는 게 옳을 정도다. 이처럼 책을 쓰고 싶은 욕구는 있지만, 실제로 책 쓰기를 망설이는 이유는 글 쓰는 솜씨보다는 막상 책을 쓰려니 콘텐츠가 별로인 게 가장 큰 이유다. 누구나 중년이 넘으면 소설 몇 권을 쓸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이야기 거리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그 이야기 거리를 콘텐츠로 구체화하다보면 별로라는 걸 발견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책 쓰기를 하려면 글을 쓰는 솜씨도 중요하지만, 콘텐츠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만약 정말 좋은 콘텐츠가 있다면, 글을 잘 쓰는 작가와 네트워크를 맺으면 된다. 쉬운 말로 자신의 콘텐츠로 책을 내서 대박 날 자신이 있으면 전문 작가의 도움을 받으면 된다. 정치인들은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 돈을 들이면서 전문 작가의 도움을 받아 책을 내는 경우가 많다. 책을 통해 자신의 이름을 알리겠다는 명확한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나도 처음 책을 낼 때는 책을 많이 팔아 돈을 벌겠다는 생각보다는 내 생각을 널리 알리겠다는 명확한 목표가 있었다. 물론 전문 작가를 고용할 형편이 안 돼서 내가 직접 글을 쓰고, 내 원고를 책으로 출간할 출판사를 내가 직접 찾아다녔지만 말이다.

만약 내가 정말 좋은 콘텐츠를 갖고 있다면 출판사에 전문 작가를 붙여달라고 요구할 수도 있다. 실제로 출판사들이 사업으로 성공한 사람, 유명하지만 시간이 없어 책을 못내는 사람들에게는 전문 작가를 붙여줄 테니까 책을 내자고 제안을 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물론 어느 화가(?)의 경우처럼 그림을 그리면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은 사실을 감추면 문제가 되겠지만, 전문 작가와 공동 작업임을 떳떳이 밝히면 아무 문제가 없다. 일부 전문 작가들 중에는 취재 형식으로 좋은 콘텐츠를 가진 기업가나 유명인들의 이야기로 책을 쓰는 경우도 많다. 책을 내기 위해서는 좋은 콘텐츠와 글 쓰는 솜씨가 필요하지만, 차별화된 최고 콘텐츠를 갖고 있는 경우에는 글을 잘 쓰는 작가와 네트워크를 통해 책을 내는 방법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서 좋은 콘텐츠라는 강점은 갖고 있지만, 글 쓰는 솜씨가 별로라는 약점을 갖고 있다면, 그때부터 글쓰기 공부를 하는 것보다는 글을 잘 쓰는 강점을 가진 사람과 네트워크를 맺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의미다.

여기서 다른 사람의 강점과 네트워크를 맺는 H형 인재가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필수 조건들을 갖춰야 한다. 첫째는 내가 차별화된 강점을 확실히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네트워크는 상호 관계의 문제로 내가 필요하다고 해서 상대방이 무조건 나와 네트워크를 형성하지는 않는다. 내가 네트워크를 맺고자 하는 상대방의 입장에서도 내가 확실히 상대방이 원하는 분야에서는 차별화된 최고여야 나와 네트워크를 형성하려고 할 것이다. 만약 내가 상대방이 원하는 차별화된 최고 인재가 아니라면, 상대방이 나와 네트워크를 맺으려고 하지 않을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왜냐하면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차별화된 최고 아닌 나와 네트워크를 형성하면 차별화된 최고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위에서 예를 든 책 출간의 경우에도 내가 확실히 차별화된 최고 콘텐츠를 갖고 있다면 출판사 내지 전문 작가가 네트워크를 맺자고 하겠지만, 그저 그런 콘텐츠를 갖고 있다면 출판사 내지 전문 작가가 나와 네트워크를 맺으려고 하지 않을 것은 너무도 당연하지 않겠는가.

둘째로는 어떤 상대와 합체를 이루어야 확실히 차별화된 최고가 될 수 있는지 판단할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하다. 아무하고나 무조건 네트워크를 형성했다고 해서 경쟁력이 높아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잘못 형성된 네트워크는 오히려 짐이 되어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가 있다. 이러한 안목을 높이기 위해서는 평소에 독서 등을 통해 세상의 트렌드를 계속 파악하고, 자신에 대해 끊임없는 성찰을 해야 한다. 셋째로는 차별화된 최고 인재와의 인맥 형성이 중요하다. 네트워크는 신뢰에 바탕을 둔 상생의 관계를 통해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평소에 인맥 형성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맥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여기서 구차하게 더 세세하게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 가지 인맥 형성에서 중요한 점은 여기서 말하는 인맥은 열린 인맥이라는 것이다. 열린 인맥에 반대되는 닫힌 인맥이 바로 한국의 고질병인 학연, 지연, 혈연이다. 닫힌 인맥은 인맥 자체가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네트워크 형성의 목표인 경쟁력 향상을 가져올 수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닫힌 인맥은 선택의 조건이 상대방의 차별화된 능력이 아니라 같은 학교, 같은 지역, 같은 친족이라는 나도 갖고 있는 조건이기 때문이다.

‘H형 인재가 되기 위해 위에 제시된 원칙은 업무나 사업을 할 때도 그대로 적용된다. 개인적으로 업무를 수행하거나 내 기업이 외부 기업과 네트워크를 통해 협업을 하더라도 서로 확실하게 상생을 넘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어야 한다. 과거에도 기업들은 비용 절감을 위해 비핵심적인 기능들을 외부에서 조달하는 아웃소싱을 활용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단지 비용 절감을 위한 아웃소싱이 아니라 서로에게 시너지 효과를 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H 형 인재내지 ‘H형 기업이 가져야할 원칙인 것이다. 예를 들어 앞에 제시한 H형 인재의 조건 중 첫 번째 조건인 나의 강점이 확실히 있어야 한다.’에 대해서 살펴보자. 수년 전 내가 처음 사업을 시작했을 때, 평소 알던 해외교포로부터 원하는 물건들을 찾아서 보내주면 좋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그 교포가 원하는 물건을 찾아 보내주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사실 자본금이 없어서 고민하고 있던 나는 귀가 솔깃했다. 하지만 워낙 잡다한 물건들을 찾아내야 하고, 보낼 물건들의 원가가 뻔하기 때문에 노력에 비해 수익이 별로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이런 일은 누구나 할 수 있기 때문에 나의 차별성을 발휘할 수 없어서 그 교포에게 휘둘릴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 교포의 제안을 거부하고, 나의 차별성을 발휘할 수 있는 콘크리트용 화학 첨가제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사업 방안을 찾아보기로 했다. 하지만 나는 자금이 없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화학 첨가제를 제조하는 공장을 설립할 수가 없었다. 따라서 자금이 부족하다는 나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이미 그런 제조 설비를 가지고 있는 기업과 네트워크를 맺기로 했다. 마침 내가 아는 선배가 제지 분야 화학제품을 제조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그 공장이 내가 제조하고자 하는 화학 첨가제를 생산할 수 있는 설비를 갖추고 있었다. 더욱 다행인 것은 그 선배도 주력 사업이던 제지 분야가 사양길에 접어들어 새로운 사업을 찾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서 그 선배의 회사 제조 설비와 연구 인력을 활용하여 내가 원하는 화학 첨가제를 개발했고, 나는 그 제품의 판매를 맡았다. 그 선배의 제조 설비와 연구 인력도 최상급이었고, 나도 콘크리트용 화학첨가제 분야에서는 독보적인 기술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 협업 관계를 통해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 후 내가 사정이 있어서 사업을 정리하는 바람에 협업 관계는 끊어졌지만, 그 선배의 회사는 나와의 협업을 통해 시작한 사업 덕분에 매출이 10배 이상 성장하였다.

또 다른 네트워크 사업의 예로 공장은 하나도 운영하지 않지만 1년에 20억 벌의 의류를 생산하면서 24조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중국의 리앤펑의 경우를 살펴보겠다. 리앤펑은 1980년대부터 IT 기반의 공급망 관리를 통해 플랫폼 사업을 시작했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미국의 사로부터 10만 벌의 의류를 주문받으면 리앤펑은 그 물량을 공급할 수 있는 중국 제조업체를 찾아 사와 연결해주었다. 하지만 지금은 지퍼는 한국이나 일본, 실은 말레이시아, 직물은 인도에서 공급받고 완제품은 파키스탄에서 생산하는 방식으로 사의 주문에 대응한다. 납품 기일까지 최적의 완제품을 납품하기 위해 리앤펑은 협력업체 중 원자재 공급업체와 완제품 생산업체를 선별하여 연결하고, 이 업체들이 상호 협업을 통해 완제품을 생산한 후 납품하고 있다. 리앤펑은 1800여 곳의 의류 관련 협력업체의 정보를 관리하면서 세계 40여 개국에 240여 개의 지역 사무소와 물류 거점을 운영할 뿐이다. 자라, 유니클로 등과 같은 SPA 업체들은 제품기획, 디자인, 생산, 유통, 판매 등을 직접 하는 수직 계열화를 통해서 시장에 빠르게 대응함으로써 시장 지배력을 키워가고 있는데 반해, 리앤펑은 스스로 구축한 플랫폼에서 협력업체들과 동등한 협력관계를 기반으로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지속적인 성장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 한국에서는 세계화를 통해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한국인들의 의식 속에는 서구, 특히 미국의 방식이 최고라는 의식이 팽배해지고 있다. 특히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우리 것에 대한 자신감을 잃고, 다시 옛날식으로 선진국을 모방해서 한강의 기적을 일구었던 방식을 답습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그래서 미국식 경제 논리, 미국식 경영 방식, 영어 등 모든 것을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이 현재의 경제 위기를 해결하는 방향이라는 분위기에 휩싸이는 것 같다. 하지만 과연 미국식 방식을 무조건 받아들인다고 우리의 경쟁력이 높아질까? 과거 산업사회에서는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기술, 경영 방식, 사고 체계를 어떻게 하면 빨리 모방하는가 하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이었다. 하지만 차별화된 최고만이 살아남는 지금은 한국도 선진국 방식을 무조건 따라 해서는 결코 그들을 뛰어넘어 세계 최고이 될 수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차별화된 최고가 될 수 있는 한국적인 방식을 찾아내야 한다. 나는 그 해법이 바로 서양의 문화와 한국 내지 동양 문화의 네트워크에 있다고 확신한다. 예를 들어 의학 분야를 보더라도, 동양 의학(한의학)은 비과학적이고, 서양 의학만이 과학적이라는 편견을 버려야 한다. 한의학은 수천 년간 내려온 조상들의 지혜가 녹아 있는 귀중한 보고다. 물론 서양 의학이 세균의 발견에 의한 위생의 개선, 면역 방법의 발견, 항생제의 개발 등으로 인류의 숙원이었던 생명 연장과 장수의 꿈을 이룬 것은 사실이지만, 요즘 트렌드가 되고 있는 잘 사는 것(웰빙)에는 뭔가 2퍼센트 부족한 느낌이 든다. 이를 보완해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네트워크의 한 축이 바로 동양 의학이다. 서양 의학이 질병이 나타난 증상에 대해 1:1로 대응하는 대증 요법인데 비해, 동양 의학은 질병이 나타나게 된 원인을 찾아내어 신체의 자연 면역력과 장기의 균형을 통해 병의 원인을 치료하는 원인 요법이라는 차이가 있다. 과거의 전형적인 질병인 전염병의 경우에는 서양 의학의 대증 요법이 우수한 치료 효과를 거두었지만, 현대의 생활습관병에 대해서는 동양 의학적인 관점이 요구된다. 예를 들어 모든 현대 질병의 근원이라는 비만을 치료하는 경우에 서양 의학에서는 다이어트, 복부 지방 제거 등의 방법이 제시되지만, 동양 의학에서는 비만의 원인이 체질적인 것인지, 스트레스에 의해 폭식을 하는 것인지, 배설 기관의 이상으로 과다 영양분이 빠져나가지 못하기 때문인지를 따져서 치료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이 경우에 서양 의학적인 대증 요법은 단기간에 효과가 나타나는 데 반해 신체에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많지만, 동양 의학에서 사용하는 원인 치료 방법은 효과가 바로 나타나지는 않지만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근본적인 치료를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여기서 물론 서양 의학보다 동양 의학이 우수하다고 주장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각 질병에 따라서 서양 의학과 동양 의학을 선택해서, 아니 더 나아가 서양 의학과 동양 의학을 네트워크해서 같이 사용하다면 더 큰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행히 요즘은 양방과 한방 협진을 시행하는 경우도 많이 늘어나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의학 분야뿐만 아니라 경영에서도 인간 중시의 동양 문화를 현대 경영에 네트워크 하는 노력이 뒤따라야만 세계적인 기업을 일구어 낼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더구나 앞으로 맞게 될 네트워크 사회에서는 동양의 인간 중심 철학이 큰 역할을 할 것으로 확신한다. 비단 앞에 예를 든 분야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우리 것을 모두 버릴 것이 아니라, 서양의 우수한 문화를 받아들이되, 우리의 고유한 특성을 네트워크 해서 새로운 우리의 차별화된 최고을 창조해 내는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

 

 

약점을 강점으로 바꿔라

 

앞에서 차별화된 최고 인재가 되기 위한 첫 번째 방법으로 강점을 찾아내어 계발하는 것을 제시했다. 그런데 자신의 강점을 찾으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좋은 점만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외모의 경우에 강점이 있는 사람으로는 키가 크고,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한 마디로 잘 생긴 사람을 쉽게 떠올린다. 하지만 코미디언의 경우에는 오히려 좀 이상하게 생긴 것이 큰 강점이 될 수 있다. 심각한 얼굴보다는 얼굴만 봐도 그냥 웃음이 나오는 얼굴을 가졌다면 코미디언으로서는 한 수 접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코미디언 중에 고 이주일 씨가 바로 이렇게 자신의 독특한 얼굴을 제대로 활용한 대표적인 예라고 볼 수 있다.

비단 외모뿐만이 아니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상당히 비판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 술좌석에서도 토론이 벌어지면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관점에서 비판을 하곤 해서 너는 왜 꼭 어두운 면만 보느냐면서 주위의 빈축을 사곤 했다. 하지만 그는 언론계에 진출해서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다른 일반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어두운 면을 볼 수 있는 그의 능력이 강점으로 작용할 수 있는 언론이라는 분야를 찾았기 때문에 그가 그렇게 성공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혹시 주위 사람과 다른 특성, 특히 일반적으로 약점이라고 비판받는 면을 가지고 있다면, 혹시 그 약점을 나의 차별화 도구로 사용할 수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즉 약점을 뒤집으면 강점이 될 수 없는지 역발상을 해 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나는 체구가 작은 편이다. 하지만 나는 내 체구를 이코노믹 사이즈라고 주장한다. 일반적으로는 체구가 큰 사람이 멋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용적인 면에서는 체구가 작은 게 좋다는 게 내 주장이다. 예를 들어 지하철을 타서 좌석에 앉더라도 나는 체구가 작기 때문에 옆 사람들에게 불편을 주지 않지만, 체구가 큰 사람이 옆에 앉으면 상당히 불편하다. 특히 장거리 비행기 여행이라도 할라치면 큰 체구는 상당히 큰 불편을 초래한다. 비즈니스 석 이상을 타면 그나마 낫지만, 비좁은 이코노미 석을 타면 내 작은 체구의 진가가 제대로 발휘된다. 물론 높은 데 물건을 내린다거나, 군중들이 많이 모여 있을 때 앞의 무대가 잘 안 보이는 게 내 작은 체구의 약점이지만, 그런 약점들이야 의자를 놓고 올라가거나, 앞 무대가 잘 보이는 곳으로 이동을 하면 된다. 하지만 이코노미 석에 맞춰 큰 체구를 잘라 내는 것도 불가능하고, 큰 체구 때문에 비싼 비즈니스 석을 타야 한다면 그 또한 약점이 되지 않겠는가. 실제로 큰 체구일수록 비좁은 이코노미 석에서 움직이기가 곤란하고, 따라서 생명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이코노미 석 증후군에 걸릴 가능성도 높다. 언젠가 외신에서 어느 항공사가 옆 좌석에 폐를 끼칠 정도로 지나치게 비만한 사람들에게는 두 사람의 요금을 내도록 하겠다고 발표를 해서 논란이 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무튼 나는 나의 작은 체구가 약점이 아니라 강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약점까지는 아니지만 자신이 가진 것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이야기가 장자의 내편 소요유(逍遙遊)에 나온다. 송나라에 손이 트지 않는 약을 잘 만드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그 기술을 대대로 하던 솜을 물에 세탁하는 일을 할 때 사용했다. 어떤 손님이 그 이야기를 듣고 이 손이 트지 않는 처방을 백금을 주고 사겠다고 제안했다. 그 솜틀장이는 가족들을 모아놓고 우리는 대대로 솜을 물에 세탁하지만 몇 금을 버는데 불과했다. 이제 하루아침에 그 기술을 백금에 받게 되었으니 허락하자.”고 말했다. 그런데 그 비법을 산 손님은 오나라 왕을 찾아가서 그 비법을 알렸다. 때마침 월나라가 침입하자 오나라 왕은 그를 장군으로 삼아 겨울에 월나라 사람들과 수전(水戰)을 벌였다. 그는 월나라를 대패시키고 땅을 봉해 받아 영주가 되었다. 손을 트지 않게 하는 재능은 하나지만, 어떤 이는 영주가 되었고 어떤 이는 솜을 물에 세탁하는 일을 면치 못한 것은 그것을 사용하는 방법이 달랐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신이 가진 것 중에서 전혀 쓸모없다고 여기는 것이라도 다른 시각으로 보면 대단한 가치가 있는 것일 수 있다[김종언 저 <나는 자유롭고 싶다>에서 인용].

일본에서 경영의 신이라고까지 칭송받고 있는 마쓰시다정공의 마쓰시다 회장은 자신은 세 가지 은혜를 입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얘기하곤 했다. 마쓰시다 회장이 말하는 세 가지 은혜란 다름 아닌 가난, 낮은 학력, 병약한 몸이다. 가난한 생활을 벗어나기 위해 열심히 일할 수 있었고, 낮은 학력 때문에 다른 모든 사람에게서 배우려고 노력할 수 있었고, 어릴 적부터 몸이 병약해서 항상 건강에 유의해서 장수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긴 마쓰시다 회장이 자라던 시절에는 대부분 가난했고, 학교도 제대로 다닐 수 없었고, 제대로 먹지 못해서 건강이 좋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마쓰시다 회장이 다른 사람들과 다른 점은 이렇게 불리한 여건들을 원망하고 좌절하기 위한 핑계로 삼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을 분발시키는 좋은 여건으로 삼는 긍정적인 마음의 자세를 가졌다는 것이다. 즉 마쓰시다 회장의 성공의 요인은 자신의 약점을 뒤집어서 강점으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약점을 차별화의 방법으로 승화시킨 또 다른 예로 몇 년 전 한국을 방문했던 영국의 구족 화가 앨리슨 래퍼와 네 손가락 피아니스트 이희아를 들 수 있다. 그들은 예술 자체로도 물론 뛰어나지만, 장애를 딛고 일어선 불굴의 의지를 세상에 보여 줌으로써 자신을 차별화하고 있다. 만약 그들이 자신들의 장애를 약점으로만 여기고 좌절하고 있었다면 그런 인간 승리를 거둘 수 있었을까? 자신의 약점도 이와 같이 자신이 마음먹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자신을 차별화하는 방법으로 활용할 수가 있다.

내가 쓴 다른 책에서 소개한 내용이지만, 자신의 약점을 강점으로 활용하는 좋은 비유가 있어서 여기 다시 소개한다. 아마 옛날 교과서에 나왔던 토끼와 거북이이야기를 기억할 것이다. 토끼와 거북이가 시합을 했는데 토끼가 중간에 낮잠을 자는 바람에 쉬지 않고 달린(기어간?) 거북이에게 지고 말았다는 얘기 말이다. 이 이야기는 능력이 좀 떨어지더라도 무조건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이 성공할 수 있다는 산업 사회의 패러다임을 강조하고자 하는 우화다. 그 후에 만들어진 제2탄은 토끼와 거북이가 재 시합을 했는데, 당연히 이번에는 토끼가 잠을 자지 않고 달려서 거북이에게 크게 이겼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얘기하고자 하는 중요한 비유는 바로 제3탄이다. 그 후에 거북이 나라는 토끼 나라에 눌려 지내고 있었는데, 견디다 못한 거북이 나라에서 토끼와 시합을 해서 이기는 거북이가 있으면 거북이 나라의 왕으로 추대하겠다.’는 방을 붙였다. 그런데 어떤 용감한 거북이가 토끼를 이길 수 있다고 나섰다. 그런데 그 거북이는 토끼 나라에 도전장을 내면서 한 가지 조건을 붙였다. 거북이가 토끼에 비해 달리기에는 불리하니까 출발점과 도착점은 거북이가 선택하는 것으로 해 달라는 것이었다. 토끼 나라에서는 모여서 상의를 했지만, 워낙 달리기에는 자신들이 유리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처음처럼 잠들지만 않는다면 무조건 이길 거라고 판단해서 그 조건을 들어 주기로 했다. 그래서 시합이 이루어지게 되었는데, 거북이는 산꼭대기에서 출발하여 산 밑으로 달리는 시합을 제안했다. 이 정도에서 짐작을 했겠지만, 시합의 결과는 거북이의 승리였다. 토끼는 열심히 네 발로 달려 내려 왔지만, 거북이는 머리와 네 발을 두꺼운 껍데기에 집어넣고 굴러 내려와서 이긴 것이다. 평소에는 달리기에 약점으로 작용했던 무거운 껍데기를 강점으로 변화시킨 것이다. 이와 같이 평소에 자신이 약점으로 생각했던 특성을 강점으로 역이용하는 지혜를 발휘한다면 자신을 확실한 차별화된 최고 인재로 만들 수 있다. 물론 약점을 강점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 약점을 적용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아야 하고, ‘목표한 바를 이루고자 하는 열정’, ‘다양성을 인정하는 열린 마음 자세’, ‘되는 방법을 찾는 긍정적인 마음가짐등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인들이 가진 약점들 중에서 오히려 7, 80년 대 압축 고속 성장을 이룬 원동력이 되었던 특성 중에 한 가지가 사촌이 밭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시기심이다. 나쁜 의미에서 보자면 남이 잘 되는 것을 못보고 끌어내리도록 한다는 부정적인 의미가 있지만, 남의 성공에 자극받아 나도 잘 되도록 분발한다는 경쟁심으로 발전한 긍정적인 의미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국이 고속 경제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던 데에는 나도 뒤질 수 없다는 경쟁심이 큰 역할을 했다. 특히 경쟁심은 치맛바람, 사교육으로 대변되는 교육열로 비화되어 이제 고등학교 졸업생의 80퍼센트 이상이 대학에 들어가는 세계 최고의 대학진학률을 나타내고 있다. 이렇게 높은 대학 진학률은 잘못하면 이제 너도나도 대학을 졸업했으니 같이 대우 받아야 한다는 평등주의로 빠질 수 있고, 고학력 실업자를 양산하는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지만, 새로운 시대의 트렌드에 맞는 지식 근로자의 양성이라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사실 삼성전자가 세계 최고의 반도체 제조회사로 우뚝 서게 된 데는 바로 이런 교육열과 경쟁심의 조화가 큰 힘이 되었다. 7, 80년대의 유학 붐을 타고 많은 인재들이 양성되었기 때문에 그들을 활용할 수 있었고, 그 우수한 인재들이 사내에서 경쟁을 통해 세계 최고의 기술을 엄청난 속도로 개발해 냈기 때문에 선두에 설 수 있게 된 것이다. 삼성전자는 기술 개발 프로젝트가 주어지면 2개 이상의 팀을 만들어서 서로 경쟁을 하도록 한다고 한다. 그리고 먼저 개발한 팀에 모든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는 승자독식의 방법을 채택하고 있다고 한다. 너무 심하지 않느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런 시기심을 경쟁심으로 발전시킨 시스템 덕분에 오늘날의 삼성전자가 존재하게 된 것이다. 물론 산업사회에서 성공을 거두었던 삼성전자의 이런 승자독식의 경쟁 방식은 상생의 패러다임을 기반으로 하는 네트워크 사회에서는 통하지 않을 것이다.

<따뜻한 편지>에 소개된 보석의 흠이라는 글도 약점을 강점으로 승화시켜 더 큰 가치를 만들어내는 좋은 비유라고 생각된다.

 

보석상을 하는 한 남자가 해외를 여행하다 진귀한 보석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가격을 물어보니 엄청난 금액이었지만 그 보석을 샀습니다. 물론 자신의 나라에 가져가서 그 이상의 돈을 받고 팔기 위해서였죠.

여행을 마치고 즐거운 마음으로 보석상으로 돌아온 남자는 보석을 이리저리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살 때는 보지 못했던 흠집이 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 이런 흠집이 있었다니..." 남자는 어찌할 줄을 몰랐습니다. 감정사들도 그 흠집이 보석의 가치를 떨어뜨린다고 말했습니다. 보석은 제값을 받기는커녕 작은 흠집 하나 때문에 가격이 한없이 하락했습니다.

남자는 여러 가지 생각에 잠겼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보석을 다시 원래의 가치로 되돌릴 수 있을까?' 그는 오랜 고민 후에 한 가지 결정을 내렸습니다. 보석의 작은 흠집에 장미꽃을 조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는 장미꽃 조각 하나로 보석의 가치는 몇 배 이상 올라갔습니다. 보석상 남자는 다시 행복해졌습니다.

보석의 작은 흠집은 우리의 약점과도 같습니다. 숨기려고만 하면 그 흠집은 더욱 도드라져서 우리의 가치를 떨어뜨립니다. 그러나 끊임없이 노력하여 약점을 다른 시각으로 장점으로 만든다면 우리의 가치를 더욱 빛나게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이 가진 약점을 끊임없이 단련하십시오.

[따뜻한 편지 714]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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