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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로서 살아온 30여 년의 세월과 더불어 인생 후반기를 맞아 행복을 추구하는 기술자의 변신 스토리입니다. --------- 기술 자문(건설 소재, 재활용), 강연 및 글(칼럼, 기고문) 요청은 010-6358-0057 또는 tiger_ceo@naver.com으로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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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점을 강점으로 승화시킨 오프라 윈프리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자 중의 상위 리스트에 항상 올라가는 여자. 가장 돈을 많이 버는 방송인. 사생아로 태어나 아홉 살 때 사촌에게 성폭행 당하고 마약에 빠져 어린 시절을 불우하게 보냈지만, 미국 시청자만 2,200만 명에 세계 105개국에서 방영되는 토크쇼의 여왕이자 잡지, 케이블 텔레비전, 인터넷까지 거느리고 있는 하포주식회사 회장. 누가 떠오르는가? 바로 오프라 윈프리다.

그녀가 지금은 성공해서 토크쇼의 여왕, 아니 남녀 통틀어 1인자로 자리 잡고 있지만, 그녀가 토크쇼에 데뷔할 때만 해도 그녀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여건이었다. 그녀가 토크쇼를 시작할 당시만 해도 토크쇼 진행자는 백인 남성이어야 한다는 암묵적인 조건이 있었다. 하지만 오프라 윈프리는 흑인에 여성이다. 더구나 그녀는 여자로서도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미녀나 슈퍼 모델처럼 쫙 빠진 몸매를 가진 것도 아니었다. 물론 지금도 날씬한 편은 아니지만 한 때는 100킬로그램을 넘나드는 누가 봐도 뚱뚱한 체격이었다. 목소리만 나오는 라디오 방송이라면 모를까, TV에서는 그 당시 기준으로 보면 절대적으로 토크쇼로 성공할 수 있는 조건을 하나도 갖추고 있지 못했다. 게다가 그녀는 자신을 뒷받침해 줄 배경도 없었고, 남들은 한 가지만으로도 좌절할 만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오프라 윈프리는 1954년 시골인 미시시피 주에서 사생아로 태어났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와 함께 어린 시절을 보내다가 6세 때 위스콘신 주 밀워키로 이주하여 어머니와 함께 가난하게 살게 되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너무 가난했기 때문에 그녀를 집에 홀로 놔두고 일을 하러 나가야 했다. 그런데 9살 때 그녀의 어머니가 일을 하러 간 사이에 사촌오빠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 14살에 미혼모가 되었는데 그녀의 아들이 2주 후에 죽는 고통까지 겪었다. 또 이런 시련을 겪으면서 그녀는 마약에도 손을 대게 되었다. 그나마 그녀의 사정이 나아진 것은 그녀가 테네시 주에 이발사인 아버지와 함께 살기 위해 보내졌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그나마 책을 읽는 여유를 갖게 되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에게 적어도 1주일에 한 권 이상의 책을 읽으라고 권유했다. 훗날 그녀는 성공 비결이 뭐냐는 질문을 받자 독서가 내 인생을 바꿨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녀의 책 사랑은 훗날 오프라 윈프리 쇼에서 책을 소개하는 것으로도 나타났는데, 그녀가 소개한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현상까지 나타났다.

오프라 윈프리는 고등학생 때 라디오 프로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고, 19살에 지역의 저녁 뉴스의 공동 뉴스캐스터가 되었다. 하지만 그녀의 즉흥적 감정 전달이 뉴스캐스터로 적합하지 않다는 평가가 내려지면서 1983년 오프라 윈프리는 시카고에서 낮은 시청률을 가진 30분짜리 아침 토크쇼인 에이엠 시카고(AM Chicago)의 진행자가 되었다. 오프라 윈프리가 맡게 된 지 한 달 후 그녀의 토크쇼는 시카고에서 가장 인기 있는 토크쇼 도나휴를 능가하게 되었다. 뉴스캐스터를 하는 데는 약점이라고 생각했던 감정 전달 능력이 오히려 토크쇼에는 강점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오프라 윈프리는 그녀의 토크쇼에서 시사, , 이혼, 아동 등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주제로 방청객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청자와 함께 울고 웃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또 자신의 아픈 과거를 진솔하게 고백하면서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일반적인 토크쇼 프로그램이 스타를 게스트로 초대해 말장난을 함으로써 시청률을 높이는 데 반하여, 오프라 윈프리는 스포트라이트를 평범한 방청객들에게 비추면서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끌어냈다. 방송 중에는 객석을 활보하고, 시청자의 이야기에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버럭 화를 내기도 하며, 함께 웃는 모습도 보여주면서 일반 시청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냈기 때문에 그녀의 쇼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되었다. 자동차가 필요하다는 어느 시청자의 사연을 들은 오프라 윈프리는 어느 자동차 회사의 협찬을 받아 자동차가 절실히 필요한 사람들을 방청객으로 초청하여 275대의 차를 선물하는 파격적인 감동을 선물하기도 했다.

인기가 올라가면서 그녀의 쇼는 전국적으로 방영되는 '오프라 윈프리 쇼'로 바뀌었다. 그녀의 친숙한 고백적 형태의 미디어 커뮤니케이션이라는 토크쇼 형태를 대중화시키면서 토크쇼에 큰 바람을 일으켰다. 그녀의 이름을 내건 '오프라 윈프리 쇼'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로그램이 되었고 그녀를 세계 최고 부자 반열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그녀는 2011517일 그녀의 유명한 토크쇼의 고별 방송을 했다. 그녀가 설립한 자신의 제작 회사(하포-harpo)에 전념하기 위해서였다.

그렇다면 오프라 윈프리는 불리한, 아니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조건이라고 생각되는 여건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바로 그녀만의 차별화된 최고 능력, 곧 강점을 살렸기 때문이다. 그녀의 가장 큰 강점은 남들 앞에서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논리적인 얘기가 아니라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친근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워낙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해서 불우한 어린 시절에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으니까, 동네의 강아지들과 심지어 돼지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얘기를 들려주곤 했다. 그녀가 어렸을 때 교회에 열심히 나갔는데(지금도 열심히 나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가장 큰 이유는 성경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교인들이 자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고 칭찬을 해 주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토크쇼에서 그녀가 지금과 같이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도 이렇게 인간적인 대화를 할 수 있는 강점을 살렸기 때문이다. 그녀의 토크쇼를 보면 꼭 이웃집 아줌마의 수다를 듣는 것 같은 편안함이 느껴진다. 일반적으로 백인 남성들이 하는 토크쇼가 틀에 박힌 유머를 구사한다면, 오프라 윈프리의 토크쇼는 안방에서 엄마들이 하는 구수한 수다를 듣는 것 같은 편안함을 느끼게 해 준다. 만약 오프라 윈프리가 그 당시 일반적인 토크쇼 형태를 흉내 내서 백인 남성들이 했던 것과 같은 스타일을 따라하려고 했었다면 성공할 수 있었을까? 아니 자신의 약점인 흑인, 여성, 뚱뚱함 등을 고치려고 집중했더라면 지금과 같은 성공이 가능했을까? 물론 아니다라고 누구나 대답할 것이다.

한국에도 오프라 윈프리 정도는 아니지만, 자신의 약점이 아닌 강점을 제대로 살려 MC로 성공한 여자 연예인이 있다. 바로 박경림이 그 주인공이다. 그녀는 여성 MC 하면 얼굴도 예쁘고 목소리도 고와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MC로 성공하였다. 그녀는 여자라면 누구나 감추고 싶어 하는 네모진 얼굴에 갈라진 목소리를 가졌지만, 그 약점을 그녀의 강점인 친화력으로 극복하면서 성공하였다. 그녀 특유의 재치 넘치는 언변과 유머, 주위 사람들을 유쾌하게 만드는 긍정 에너지는 그녀 주위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역할을 한다. 그녀의 이런 특성은 그녀의 외모에 대한 약점을 극복하고도 남는다. 아니 그녀의 외모는 오히려 그녀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강점이 되고 있다. 외모가 뛰어난 연예인들은 대부분 신비주의를 택하기 때문에 일반 대중들은 물론이고 주변 연예인들도 가까이 하기가 힘든 경우가 많다. 하지만 박경림은 동료 연예인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일반 대중들도 친구처럼 편안함을 느끼도록 만들고 있다. 그녀의 이런 강점 덕분에 그녀의 토크 콘서트에는 유명한 연예인들이 많이 출연하기로 유명하다.

그녀는 최근 들어 몇 개의 라디오 프로그램도 진행하면서 각종 예능 프로그램의 고정 패널로 참여하는 등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일부 연예인들은 이처럼 인기가 올라가면 일반 대중들과 멀어지기도 하는데, 박경림은 기부문화 형성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벌써 10년 넘게 세이브더칠드런의 홍보대사로 활약하고 있고, ‘모자 뜨기 캠페인’, ‘이리이리 바자회등의 뜻 깊은 행사를 널리 알리는데 큰 힘을 보태고 있다. 뿐만 아니라 박경림은 여성 맞춤공연으로 여성관객들의 열렬한 지지를 얻고 있는 자신의 토크콘서트를 통한 수익금을 세이브더칠드런미혼모 자립사업을 위해 기부하며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오프라 윈프리와 박경림의 예는 약점이 아닌 강점에 집중할 때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대학에 강의를 갔다가 교수들과 얘기를 나누다보면 학생들에 대한 불평을 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이 있다. 특히 지방대일수록 이런 불평은 더욱 심하다. ‘미적분도 제대로 안 배우고 공대에 왜 왔는지 모르겠다.’, ‘전공을 소홀히 한 채 쉬운 과목만 들으려고 한다.’, ‘공부에 대한 열의가 부족하다.’ 등 등 등. 그렇지만 나는 교수들이나 부모들이 요즘 젊은이들의 강점이 무엇인지, 그 강점을 살려서 그들을 어떻게 키워야 하겠는지 고민해 본 적이 있느냐고 반문하고 싶다. 혹시 그들의 약점만 들추면서 손가락질만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오프라 윈프리에게 너는 여자에 흑인이고 예쁘지도 않고 내 세울 배경도 없으니까 방송에 나갈 생각도 하지 말라고 충고했다면, 지금의 오프라 윈프리가 있었을까? 오프라 윈프리에게는 그러지 않았을 거라고 대답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의 자녀들도 오프라 윈프리처럼 약점 투성이지만, 그들이 성공할 수 있는 강점도 분명 가지고 있다. 그 강점을 찾도록 도와주는 것이 바로 우리들이 해야 할이다. 지금부터 내 학생들, 내 자녀들의 강점이 무엇인지 찾아보도록 눈을 크게 뜨고, 그들의 강점을 계발하도록 도와줘서 오프라 윈프리나 박경림처럼 성공할 수 있도록 만들자.

지방대생들도 사회 분위기나 대학, 교수를 원망하기보다는 오프라 윈프리나 박경림처럼 자신의 강점을 적극적으로 찾아서 계발하도록 해야 한다. 이제 더 이상 공부만이 성공의 유일한 길이 아닌 세상이 되었다는 점을 확실하게 인식해야 한다. 물론 아직도 공부를 잘 하면 취업도 잘 되고, 사회적으로도 인정을 받는 분위기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앞으로는 공부를 못하더라도 성공할 수 있는 다른 길도 분명히 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앞에서도 자세히 설명했지만, 인공지능의 발달과 네트워크 사회로의 진입이 공부 잘하는 인재들의 역할을 대신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