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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찬의 다시 보는 중세
(16)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동상. 독일 바드 뵈리스호펜(Bad W?rishofen), 조각가 로타 스푸르젬(Lothar Spurzem), 2012년.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동상. 독일 바드 뵈리스호펜(Bad W?rishofen), 조각가 로타 스푸르젬(Lothar Spurzem), 2012년.
최태민, 최순실 부녀와 박근혜 대통령 사이에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종교적 연관관계가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일부 언론은 최순실을 무녀로 규정하며 러시아 제국의 몰락을 자초한 라스푸틴과 비교하기도 했다. 한 사회가 위기에 처했을 때 사람들은 종종 종교체험에 의지해서 위안을 받고자 한다. 서양 중세에서도 14세기가 시작하면서 교황과 황제간의 알력이 심화해 정치·사회적으로 불안해지고 지진·해일 및 페스트 등이 만연하자, 사람들은 마치 지구에 종말이라도 오는 것처럼 받아들였다. 위기 속에서 삶의 무상함을 경험했던 많은 이에게 추상적인 생각은 점차로 힘을 잃었고, 새로운 종교적 체험이 절실해졌다. 쓸쓸한 가을로 접어든 중세에 독일을 비롯한 유럽에서는 신비주의가 널리 퍼져 나갔다. 바로 독일 도미니코 수도회 사제였던 마이스터 에크하르트(Meister Eckhart, 1260~1327)가 신비주의를 정립한 스승이다. 그의 신비주의는 결코 마술이나 주술, 탈혼 상태에 빠진 종교적 체험, 사고의 포기 등을 뜻하지 않는다. 그에게 신비주의란 심오한 이성적 통찰을 바탕으로 모든 실재를 신적인 관점에서 조명하고, 특히 신 자신이 인간의 영혼에 드러나도록 끊임없이 사고하는 것을 의미했다. 오늘날 가장 주목받고 있는 신비사상가 중의 한 사람인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도대체 누구이며 어떤 가르침을 베풀었던 것인가?

신비주의를 계승한 ‘삶의 스승’

에크하르트는 도미니코 회원으로서 파리와 쾰른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했다. 1293년 파리대학 신학부장으로 취임했지만, 그의 첫 교수직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에어푸르트의 원장을 역임하는 등 도미니코 수도회 내에서 지도적인 역할을 맡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수도회 내의 여러 요직을 거치면서도 파리와 쾰른에서 강의하는 등, 전 생애에 걸쳐 영적인 스승과 학문적인 스승으로 활동했다.

그의 저서를 살펴보면, 에크하르트가 뛰어난 반성능력과 추상능력을 지녔고, 중세의 전통적인 형이상학에 통달했음을 알 수 있다. 전통철학의 범주와 용어를 사용해서 신비체험의 내용을 나타내면서도, 그는 다른 스콜라학자보다 더욱 생동감있고 개성있게 저술했다. 에크하르트는 학문적인 박식함에도 불구하고 방대한 이론 체계를 세우려고 노력하는 대신, 삶을 통찰할 수 있는 작은 단상들을 제시하려 했다. 그는 ‘학문의 스승’이 아니라 ‘삶의 스승’이기를 원했던 것이다. 이론적인 교육과 실제 생활을 연결하려던 그의 노력은 방대한 저서, 특히 강론집에서 잘 드러난다. 그의 강론의 초점은 단순한 현세 탈피가 아니라 인간의 삶과 세계의 근원이 무엇인가를 묻는 것이었다. 에크하르트는 독특한 언어와 비유로 대담한 생각과 이념들을 표현했다. 일상적인 틀에서 사고하며 종교적 타성에 젖어 있던 이들은 그의 강론을 듣고 오히려 혼란에 빠졌다.

에크하르트의 설교를 기록한 가장 오래된 양피지들 중에 하나. 괴팅엔 대학교 소장.
에크하르트의 설교를 기록한 가장 오래된 양피지들 중에 하나. 괴팅엔 대학교 소장.

자기 부정을 통한 신과의 합일

에크하르트가 강의와 강론을 통해 도달하려던 최종목표는 ‘신과의 합일’이었다. 그는 뛰어난 스승답게 목표를 확정했을 뿐 아니라 이에 도달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까지 제시했다.

첫째 단계는 “피조물은 자신이 지니고 있는 신적인 것에서 분리되면 전적으로 무(無)에 불과하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다. 피조물만 사랑하고 그 안에서 쾌락을 찾을 때 남는 것은 오직 슬픔과 비통함뿐이다. 우리를 신에게 바로 인도할 수 있는 유일한 피조물은 모든 피조물 가운데 가장 고상한 영혼 자체이다. 따라서 우리는 영혼의 탐구에 집중해야 한다.

이를 통해 바로 두 번째 단계, 즉 신에 대한 사랑으로 스스로를 부정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인정하는 단계에 도달할 수 있다. 인간은 모든 피조물에 대한 욕심에서 벗어나 자기의 순수한 본질에 도달함으로써 완전한 자유에 이르게 된다. 에크하르트는 신에게로 돌아가기 위한 최고의 덕목을 ‘영혼의 가난함’과 ‘공손함’이라고 보았다. 모든 피조물의 근원인 신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눈이 색깔에 대하여 순수하므로 모든 빛깔을 볼 수 있듯이” 영혼이 비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그대가 만일 단 한순간만이라도 그대 자신을 온전히 놓아줄 수만 있다면 그대는 모든 것을 다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가장 주목받는 신비사상가
마술·주술 아닌 이성적 통찰 바탕

“내 안에 신 계시고, 나는 신 안에”
범신론 주장 의심받아 재판 회부

이성 배제한 종교적 체험은 ‘위험’
위기의 한국 종교 돌아보도록 해

그런데 자신을 비우고 신에게 끊임없이 다가설 수 있는 것은 인간이 지닌 ‘영혼의 불꽃’이라고 하는 내면의 정신과 힘 때문이다. 모든 사물의 원리를 찾아 ‘길 없는 길’을 꾸준히 걸어가는 사람은 이 불꽃에 의해 완성단계에 도달할 수 있다. 이 완성단계에서 모든 사물과 자신을 버린 인간은 드디어 신과 하나 되어 찬양할 수 있다. “신이 내 안에 계시고, 나는 신 안에 있으며, 내가 나 자신을 전적으로 내놓고 그분의 작용에 내맡기면 맡길수록 나는 더욱 신 안에 있게 된다.” 에크하르트에 따르면, 신은 인간의 순수하고도 맑은 내면적 고독 안에서만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 고독 안에서 신의 ‘아늑함’을 느낀 사람은 일상적인 삶의 무수한 구속에서 벗어날 수 있다. 따라서 자기 자신·세계·신과의 일치를 발견한 사람의 삶은 단순해져 오직 “살기 위해서 산다”.

단죄받은 영적인 스승

신과의 합일에 관한 에크하르트의 가르침은 많은 이에게 신에게로 나아가는 훌륭한 지침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영혼의 불꽃’은 ‘창조되지 않은 것’이며, “영혼은 신과의 일치를 통해서 마치 빵이 그리스도의 몸이 되듯이 신으로 변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표현들은 범신론을 주장하는 것으로 의심받았다. 그의 심오한 신앙체험에 기초를 둔 비유적인 표현이 당대의 사람들에게 근본적인 오해를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에크하르트가 사용한 이율배반적인 표현들은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사태를 서술하는 데만 익숙한 스콜라 학자들에게는 너무 낯설고 이단적으로 들렸다.

결국 그는 동료수사에 의해 고발되어 1326년 쾰른의 추기경이 주관한 종교재판에 회부되었다. 에크하르트는 문제시된 표현들에 대해 자신이 덧붙였던 설명을 결백의 근거로 제시하며 스스로를 변호했다. 그 표현들이 비유적인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아무런 효과도 보지 못했다. 그는 아비뇽에 체류하던 교황에게까지 불려간 끝에 의심의 일부는 해명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끝내 재판이 끝나는 것을 보지 못하고 1328년에 사망하고 만다. 결국 1329년 3월에 내려진 판결은 그의 작품들에서 발췌된 28개의 문장을 단죄했다.

에어프루트 설교자교회에 있는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문.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요한 1, 5)라는 구절이 적혀 있다.
에어프루트 설교자교회에 있는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문.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요한 1, 5)라는 구절이 적혀 있다.
그러나 죽음 이후에도 에크하르트에 대한 존경은 이어져 독일 신비주의, 쿠사누스의 신학과 철학, 셸링과 헤겔을 포함한 독일 관념론 사상 체계 등을 거쳐 현대의 하이데거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에크하르트는 자신의 사유를 일정한 사고 체계의 틀에 담으려 하지 않고, 특정한 종교적 전통과 의식을 뛰어넘어 절대자 신에게 도달하는 길을 찾으려 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 다원론 시대에 더욱 많이 연구되어야 할 학자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그는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을 통해 신과 일치하려고 노력했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삶과 지식의 일치를 강조했던 동양의 다양한 전통과 연결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위기에 빠진 한국 사회를 위한 종교의 역할을 되돌아보게 한다. 우리나라의 종교들은 최태민이 만든 ‘대한구국선교단’ 식의 수많은 구국기도회나 구국법회 등을 여는 것을 재고해 보아야 한다. 정의를 무시하고 집권자의 입맛에 맞는 행동을 함으로써 개인이나 교단의 부를 축적하는 이들은 종교의 가르침을 포기한 자들이다. 제대로 된 종교라면 진정으로 추구할 종교적인 가치가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성찰하고 이를 통해 상처받은 민심을 어루만져야 한다. 이러한 위안은 이성을 배제한 종교적 체험으로부터가 아니라 이성적 반성을 넘어서는 통합적인 가르침으로부터 나와야 한다. 우리는 에크하르트가 강조한 ‘영혼의 가난함’과 ‘공손함’을 통해 가난한 이웃에게 애덕을 실천할 때에야 비로소 완성의 단계로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박승찬 가톨릭대 철학전공 교수

 

[한겨레신문 2016년 12월 23일]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775799.html#csidxe447ed97da5ca5abe08330d1da90c56

신의 존재를 과학으로 입증하다

김송호 지음/ 물병자리

삶이라는 것은 결국 

내가 맺어가는 너와의 관계…

인간을 포함한 우주만물은 신

서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어

우열이 있을 수 없다

종교와 과학이 인류에게

제시해야 할 점은 

인류와 생명의 조화와 행복 

“불교에서 말하는 궁극의 실재는 신이나 브라흐만이 아니라 열반이라는 정신상태다. 서양의 기독교가 일상생활과는 별개의 개념으로 종교와 신을 취급하는데 비해, 동양에서 종교는 인간사를 다루는 철학이나 일상에 녹아있는 생활양식이다. 즉 신에 대한 숭배보다 일체로서의 조화를 이루며, 동시에 사람들의 성공적인 삶을 돕는 수단으로 여겨진다.”

<신의 존재를 과학으로 입증하다>의 저자 김송호 씨는 서울대와 카이스트 석사, 미국 퍼듀대 공학박사를 받은 공학도다.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나 적극적인 신앙활동을 했다. 하지만 “마음의 갈증은 해소되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저자는 불교와 유교, 이슬람 등 다양한 종교를 접하면서 무릎을 쳤다. “서양에서 말하는 종교와 동양의 종교가 개념이라는 출발점부터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과학자이면서 종교철학에 관심을 가져온 김송호 씨는 ‘종교는 결국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결론을 낸다. 그리고 “종교는 지금 대립이 아니라, 사회 갈등을 해소하는 역할에 치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진은 미얀마의 불상.

저자는 여전히 가톨릭 신자지만 “신을 포기하면 신앙의 기반이 흔들리기 때문에 억지를 써서라도 그 주장을 반박하려고”하는 논쟁이 무의미하다고 말한다. “내가 증명하고 싶은 신은 기독교의 인격적인 신이기도 하고, 힌두교의 브라흐만이 될 수도 있고, 불교 도교에서 말하는 열반이나 도와 같을 수도 있다. 신이 없다는 무신론자들의 주장도 포용할 수 있다”고 단언한다.

저자는 과학적인 신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서 논의를 시작한다. 그리고 진화론의 입장에서 본 종교, 기도의 참다운 의미, 죽음이란 무엇이며, 지옥이나 천당의 뜻은 무엇인지, 인공지능 알파고가 가져온 변화 등을 종합적으로 설명한다.

“(기독교인들은) 불교는 합리적인 과학과 상당히 거리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양자물리학은 오히려 불교가 상당히 과학적이라고 말해주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는 <반야심경> 구절이다. ‘형체가 있는 것도 실체가 없는 것과 같으며, 실체가 없는 것도 형체가 있는 것이다’라는 의미다. 이 구절의 범어 원문은 ‘이 세상에 있어 물질적 현상에는 실체가 없는 것이며, 실체가 없기 때문에 바로 물질적 현상이 있게 되는 것이다. 실체가 없더라고 그것은 물질적 현상을 떠나 있지는 않다’고 말한다. 양자물리학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실체도 사실은 에너지 덩어리일 뿐, 우리가 생각하는 물질 자체로 존재하지 않는다.”

진화론과 창조론의 대립에 대해서도 저자는 일침을 가한다. 창조론으로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이 존재한다는 주장에 얽매이지 말라는 주장이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생물학의 부분은 심층생태학이 주장하듯 “삶이라는 것은 결국 내가 맺어가는 너와의 관계다. 인간을 포함한 우주만물은 신이며,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우열이 있을 수 없다. 서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한 성당의 그림.

이런 주장을 통해 저자가 도달하는 결론은 “과학의 시대에 종교가 필요한가?”라는 점이다. 종교의 필요성을 저자는 종교의 사회적 역할에서 찾는다. 일례로 극심한 스트레스의 결과로 분출되는 묻지마 범죄의 해결법을 종교가 제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과거에 사회적 스트레스를 완화해주던 종교의 역할이 줄어든 것이 묻지마 범죄 증가의 한 요인이다. 과학의 발달로 종교의 비합리적인 면이 부각되면서 종교를 불신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종교를 현대인의 사고에 맞게 과학적으로 재조명해야 사회적 스트레스를 완화시키는 종교 본연의 임무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인류, 특히 서양에서는 유신론이냐 무신론이냐는 논쟁을 지루하게 이어왔다. 더불어 과학의 발달은 서구 종교학자들의 논쟁에 ‘유리한 근거’로 인용되면서 왜곡현상도 발생했다. 그런데 저자는 “그런 대립이 필요하지도, 중요하지도 않다”고 말한다. 종교와 과학이 인류에게 제시해야 할 점은 “내가 옳다”가 아니라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 “인류와 생명의 조화와 행복” 등이 문제에 대한 해답이기 때문이다.

 

[불교신문3253호/2016년11월30일자] 안직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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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부정하는 사람들에게 신을 믿으라고 권하면 보통 '신을 보여주면 믿겠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죠. 하지만 이건 과학적으로 보면 틀린 논리죠. 인간의 눈은 단지 400~700㎚의 빛만을 감지할 수 있죠. 그 이하의 빛은 존재하더라도 전혀 감지하지 못해요. 청각도 마찬가지죠. 인간의 귀에 들리는 소리는 실제 우주에 있는 소리 중 아주 일부예요. 상대성이론 방정식으로 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물질'이라는 것은 전체 물질의 5%에 불과해요."

'신의 존재를 과학으로 입증하다(물병자리 펴냄)'를 낸 김송호 박사(59)는 "과학을 하면 할수록 신의 존재를 강력하게 긍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한다. 가톨릭 신자인 그는 과학자와 기업가의 삶을 동시에 살았다. 서울대와 카이스트를 거쳐 미국 퍼듀대에서 화학공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공학한림원 회원이자 대기업에서 신기술 개발 임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신을 맹목적으로 부정하거나 긍정하는 쪽 모두에게 문제가 있다고 봐요. 과학으로 모든 것을 분석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과학만능주의도 문제고, 신화시대에나 어울리는 전근대적 종교관을 대중에게 강요하는 쪽도 문제예요." 김 박사의 이번 책은 종교와 과학의 균형점을 제시한다. "신을 부정하는 쪽은 과학의 이름을 빌려 자신의 신념을 강요하고, 반대쪽을 종교는 신성할 뿐이라는 논리로 상대를 억압하고 있죠. 과학과 종교를 논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이 열린 자세입니다."

김 박사는 직선적 시간관에서 벗어나면 창조의 비밀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신이 6일 동안 세상을 창조했다고 하죠. 신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이것을 말도 안 되는 비과학적인 이야기라고 비난해요. 하지만 상대성이론에 기초해 보면 창조 초기의 1일은 현재 기준으로 몇 십억 년이에요. 그러니까. 6일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긴 시간이었던 거죠. 어마어마한 변화가 일어나고도 남을 만큼 엄청난 시간이었던 거예요."

김 박사에게 리처드 도킨스의 책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매우 명쾌한 답이 돌아온다.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는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에 대항하기 위해 너무 자극적으로 쓰인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사실 유전자가 이기적인 것만은 아니거든요. 다들 알다시피 벌이나 개미, 땅다람쥐, 돌고래 등 동물들에게서도 이타적인 행동들이 많이 발견돼요. 이기적인 요소만이 생명체를 이끌어왔다는 논리로는 최초 생명체, 대진화(종간 진화), 동물의 이타행동, 지구 생명체의 균형 등을 모두 설명할 수 없어요."

김 박사에게 "신을 무엇이라고 정의하고 싶냐"고 물었다. "신은 '방향성이 있는 에너지'입니다. 날개가 달려 있거나 긴 수염을 흩날리는 모습이 아니라 이 세상을 추동하고 있는 거대한 에너지입니다. 흔히 성서에 나오는 기적을 소설이라고 말하죠. 하지만 생각해 보세요. 전기나 전자라는 과학적 개념을 몰랐을 때는 전기나 전자 때문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기적이라고 했을 겁니다. 설명하지 못했던 많은 에너지가 세상을 움직여왔던 거죠.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매일경제신문 2016년 11월 26일 허연 문화전문기자 / 사진 = 한주형 기자]

“현실 종교의 모순성 ‘과학적 神’으로 해결”
엄주엽기자 ejyeob@munhwa.com
‘신의존재를…’낸 김송호박사

“‘과학적인 신’은 예수와 부처가 보여준 ‘인간을 포함한 우주 만물을 품어 안은 사랑의 신’입니다. 현실 종교에서 나타나는 모순과 폭력적 양상도 과학을 통한 신으로 접근해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서울대와 카이스트를 나와 미국 퍼듀대에서 화학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한국공학한림원 회원인 김송호(사진) 박사. 가톨릭 모태신앙으로 고교·대학에서 가톨릭학생회장을 지낼 만큼 체계적인 교리공부와 신앙생활을 해왔던 그는 “늘 종교와 과학 사이에서 느끼는 답답함으로 지금은 ‘냉담자’가 됐다”며 “직접 과학의 전공을 살려 신을 찾아보았다”고 말한다.

최근 ‘신의 존재를 과학으로 입증하다’(물병자리)를 펴낸 김 박사는 과학적으로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고, 증명된 신의 모습이 종교의 기본 교리와도 잘 부합한다고 주장한다. 김 박사는 이렇게 증명된 신을 ‘과학적인 신’이라고 이름 붙였다. 김 박사는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데 열역학 제2법칙(엔트로피 법칙)을 기본으로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 빅뱅 이론 등을 이용한다. 엔트로피 법칙이란 빅뱅 이후 물리계의 에너지는 시간이 지날수록 쓸모없는 에너지로 변하며 무질서해지는 것을 말한다. 무질서해질수록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것이다. 우주에서 예외적인 경우가 있다. 김 박사는 “생명체의 탄생과 진화는 엔트로피가 감소하는 유일한 양상이다. 이는 엔트로피를 낮추는 목적을 가진 외부 시스템이 있다는 것이고, 그것이 신의 존재를 보여주는 증거라고 추론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신의 모습은 과학적으로 말하면 특정한 의지를 가진 에너지”이며 “곧 만물 안에 신이 존재하는 ‘만유내재신(萬有內在神)’”이라고 설명한다.

그의 신(神) 개념은 철학에서 스피노자에 의해 처음 제기돼 과학에서 아인슈타인으로 이어진 이신론(理神論), 또는 인도에 뿌리를 두고 철학자이자 신학자인 화이트 헤드로 이어지며 현대신학에서도 주목받는 ‘범재신론(汎在神論)’에 가깝다. 김 박사는 “현재의 과학지식 수준은 계속 발전하기 때문에 완전한 진리가 아니다”고 전제하면서도 “‘과학적인 신’은 무자비한 신을 앞세운 현실 종교의 만행과 반대로 무신론적 과학주의를 앞세운 신자유주의의 사회적 문제를 동시에 해소할 수 있는 신에 대한 관점”이라고 제안했다.

[문화일보 2016년 11월 24일 엄주엽 선임기자]

"과학과 종교, 방법론 달라도 궁극적 목적지는 같아"

 

'신의 존재를 과학으로 입증하다'의 저자 김송호 박사

(서울=연합뉴스) 김기훈 기자 =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나 종교와 과학 사이에서 느끼는 답답함이 있었습니다."

'신의 존재를 과학으로 입증하다'(물병자리)의 저자 김송호 박사는 21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진화론부터 시작해서 지옥과 천국의 존재 여부, 그리고 원죄에 대한 의문 등을 이 책을 통해 풀어보고자 했다"고 집필 동기를 밝혔다.

한국공학한림원 회원인 저자는 이 책에서 영원히 평행선을 달릴 것만 같은 과학과 종교의 접점을 모색하고 있다.

과학적 방법으로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고, 그렇게 증명된 신의 모습이 종교의 기본 교리와도 아주 잘 부합한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김 박사는 그러면서 과학적 방법으로 증명된 신을 '과학적인 신'이라고 명명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 빅뱅 이론, 열역학 제2 법칙(엔트로피 법칙) 등을 이용해 '과학적인 신'의 존재를 입증하고 있다.

빅뱅 이론은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과학적 관찰 사실로부터 나온 이론이다. 우주가 팽창한다는 사실을 역으로 생각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아주 작은 점으로 응축될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또 엔트로피 법칙에 따르면 한 물리계의 쓸모 있는 에너지는 시간이 지날수록 쓸모없는 에너지로 변하며 무질서해지기 마련이다. 한 물리계가 이전보다 더 무질서해지면 우리는 엔트로피가 증가했다고 말한다.

저자는 "우주의 초기 상태는 엔트로피가 제로인 무한히 작은 점 형태의 에너지 상태였는데, 빅뱅이 일어난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엔트로피 법칙에 의해 엔트로피가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빅뱅 이론과 엔트로피 법칙에 따르면 우주는 질서에서 무질서의 방향으로 진행해야 하지만 예외적인 경우도 있다.

저자는 이 예외적 경우로 "생명체의 탄생과 진화, 성장의 경우에는 엔트로피가 감소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엔트로피의 감소는 엔트로피를 낮추는 외부 시스템이 있다는 것이고, 신의 존재를 보여주는 증거라고 추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우주에 질서가 있고 생명체가 있다는 것은 엔트로피를 관리하는 신이 있다는 증거"라며 "신의 모습은 과학적으로 말하면 방향성이 있는 에너지"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과학이 종교보다 결코 우월하다고 할 수 없다는 게 저자의 결론이다.

과학은 신이 실재를 입증하고 그 실체를 밝히는 데 유용한 도구지만 그 역시 불완전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는 과학을 절대적 진리로 생각하는데 과학도 상대적 진리에 불과하다"며 "과학적인 방법으로 파악될 수 있는 진리는 현재의 과학지식 수준에 달려있기 때문이다"라고 한계를 지적했다.

이어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과학적 탐구와 종교적 탐구를 병행하여 같은 결론에 이르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라며 "과학과 종교는 진리 추구 방법이 다를 뿐이지 궁극적인 목적지는 같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저자는 이 책에서 '이단에 대한 기준', '제사를 지내면 죄인가', '과학이 발전하면 종교가 사라질까' 등의 주제를 다루며 '과학적인 신'을 통해 바라본 지적 모험의 세계로 안내하고 있다.

kihun@yna.co.kr

'신의 존재를 과학으로 입증하다'의 저자 김송호 박사.
'신의 존재를 과학으로 입증하다'의 저자 김송호 박사. (서울=연합뉴스) 김기훈 기자 = 21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공학박사 김송호 씨가 '신의 존재를 과학으로 입증하다'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를 열고 출간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2016.11.21. kihun@yna.co.kr

 

[연합뉴스 2016년 11월 21일] 

제목: 신의 존재를 과학으로 입증하다.

출간 시기: 11월 18일

 

 

 

 

“이제 종교의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 지금은 초종교적 영성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강화도에 심도학사 세운 길희성 서강대 명예교수

이달 초 강화도에 있는 심도학사를 찾았다. 바다와 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언덕. 모던한 디자인의 현대식 건물이 있었다. ‘심도학사(尋道學舍)’. 글자 그대로 ‘길을 찾아가는 공부집’이다. 국내 종교학계의 거두인 길희성(73) 서강대 종교학과 명예교수가 5년 전에 전재산을 털어서 지은 공간이다. 길 교수는 매주 토·일요일에 1박2일 프로그램으로 동·서양 종교의 고전을 넘나들며 영성과 종교와 철학을 강의한다. 멀리 지방에서 올라온 이들은 아예 금요일 밤부터 이곳에 와 잠을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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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희성 교수는 “종교는 제도와 벽에 갇힌다. 그러나 영성은 거기로부터 자유롭다. 심도학사는 특히 불교와 기독교의 소통과 화합에 역점을 둔다”고 말했다. [강화도=김경록 기자]

강의는 토요일 아침부터 시작됐다. 학생들은 10여 명쯤 됐다. 기업체 대표도 있고, 아이 셋을 둔 가정 주부와 삶의 의미를 찾는 증권 전문가, 영어 강사와 약사, 가톨릭의 신부 등도 있었다. 개신교와 불교, 가톨릭과 유교 등 이들의 종교적 배경은 다양했다. 종교는 없지만 ‘진리와 영성’에 목마른 이들도 꽤 있었다.

심도학사는 매주 주제가 바뀐다. 이날은 ‘그리스도교 영성의 영원한 고전- 성 오거스틴(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론’이었다. 길 교수는 “하느님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예배는 ‘마음의 예배’다”라는 루소의 말로 강의를 시작했다. ‘하느님과 나 사이에는 어쩌면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있는지’ ‘가장 좋은 종교는 명료한 종교다’ 등 압축된 영성을 한 마디로 드러내는 명구(名句)들이 강의 내내 흘러나왔다. 그 출처는 ‘길 교수의 가슴’이었다.

그는 서울대 철학과를 나와 미국 예일대 신학부에서 석사를 했다. 여전히 목마름이 채워지지 않자 하버드대 대학원에서 비교종교학(불교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세인트올라프 대학 종교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1982년부터 서울대 철학과 교수를 하다가 84년 서강대 종교학과로 옮겼다. 이유는 하나였다. 길 교수는 “철학보다는 종교가 나의 궁극적 관심인 ‘신과 진리’에 대해 더 직접적으로 다룰 수 있기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세계문화권에서는 종교가 철학이고, 철학이 곧 종교였다. 둘을 가르지 않았다. 철학과 종교를 나누기 시작한 건 전적으로 서구의 산물이다”고 덧붙였다. 길 교수는 서강대 종교학과에서 20년간 강의를 한 뒤 은퇴했다.

심도학사의 강의는 뜨거웠다. 길 교수는 “성 오거스틴의 출현으로 이전에 있던 교부들의 시대는 갔다. 그들의 저서는 오히려 빛이 바랬다. 성 오거스틴은 가톨릭과 개신교를 통틀어 ‘최고의 신학자’로 불린다. 그는 내성적 성찰의 대가였다. 당시 주교였던 그는 자신의 창피한 내면까지 솔직하게 고백하며 자신의 허물을 그대로 드러냈다”고 소개했다. 이어 길 교수는 “요즘 신학생 중에는 『신국론』 같은 오거스틴의 저서를 읽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런 기독교의 고전에는 오늘날 우리가 머리 아프게 고민하는 종교적 물음과 그에 대한 답이 녹아 있다. 그걸 도외시하기에 기독교의 눈과 가슴이 자꾸만 좁아진다. 자꾸만 배타적으로 변한다”며 아쉬워했다.

강의는 점심때까지 이어졌다. 식사는 길 교수의 부인이 직접 준비했다. 정갈한 맛의 건강식이었다. 참가자들은 “심도학사에 오면 토요일 아침부터 일요일 점심까지 다섯 끼를 이곳에서 먹는다. 강의 못지않게 이곳의 밥맛이 늘 기다려진다”고 칭찬했다. 오후에 길 교수는 참가자들과 뒷산을 산책했다. 침묵 속에서 걷는 ‘묵언(默言) 명상’이다. 산책 후 오후 6시까지는 자유시간이었다. 저녁 식사 후에는 밤 10시30분까지 강의가 계속된다.

짬을 낸 길 교수와 마주 앉아 인터뷰를 했다. 그에게 ‘인간과 종교, 그리고 진리’에 대해 물었다.
질의 :종교가 우선인가, 진리가 우선인가.
응답 :“2000년 전에 예수님께서 계실 때 종교가 있었던 게 아니다. 종교는 진리를 찾아가는 통로일 뿐이다.”
질의 :그럼 우리는 무엇을 찾아야 하나.
응답 :“기독교 이전의 예수, 불교 이전의 부처다. 그분들이 서로 만났다면 어땠을까. ‘벌거벗은 인간’으로 만났지 않았을까. ‘당신은 뭐가 고민이오? 나는 뭐가 고민이오.’ 이런 식으로 대화를 나누지 않았을까. 종교가 왜 존재하나. 결국은 참 사람, 참 인간이다. 참 자아의 발견이다. 종교는 이것을 위한 수단이다.”

길 교수는 종교의 핵심이 ‘영성’이라고 강조했다. “서구에서는 탈종교의 시대가 열린 지 오래됐다. 우리나라도 탈종교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각 종교의 성직자 수도 점점 줄어든다. 사람들은 특정 종교에 매이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향락적인 삶을 원하는 것도 아니다. 종교적 속박을 싫어하는 이들에게도 영성적 목마름이 있다. 나는 그게 더 커지리라 본다. 그래서 미래 사회로 갈수록 종교가 아니라 ‘영성’이 더 중요하다.”
질의 :그런 영성 운동의 방향은.
응답 :“탈종교가 아니라 초종교적이어야 한다. 심도학사에는 신부님도 오시고, 스님과 목사님도 오신다. 종교를 찾아서 오는 게 아니라 진리를 찾아서 온다. 내 종교가 알고 싶은 만큼 타종교도 알고 싶어서 온다. 하느님은 무한하지만 종교는 유한하다. 그러니 기존의 종교적 패러다임을 깨야만 진리에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다. 우리는 ‘종교’에 목이 마른 게 아니라 ‘진리’에 목이 마르기 때문이다.”

한편 길 교수는 28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리는 ‘2016 서울인문포럼’(사무국 02- 587- 2708, seoulhforum@naver.com)에서 ‘인문학과 가치중립성’에 대해 강연할 예정이다. 그는 “대학의 인문학은 죽어가는데, ‘백화점 인문학’ ‘기업체 인문학’ ‘요점정리 학원식 인문학’은 붐이다.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인문적 인문학, 자연스러운 인문학이다. 인문학이란 말을 쓰지 않고 그냥 ‘좋은 책 읽기’라고 해도 좋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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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도학사(尋道學舍)

심도학사(尋道學舍)
강화도 고려산 자락에 위치한 심도학사 는 사단법인으로 등록돼 있다. 길희성 교수는 “이제 나의 재산이 아니다. 심도학사는 공부하는 이들의 것이다. 후임자가 정해지면 물려줄 생각”이라고 말했다. 종교 관련 서적 5000권이 소장돼 있다. 주말마다 ‘도덕경’ ‘반야심경’ ‘대학’ ‘복음서’ ‘바가바드기타’ ‘고백록’ ‘육조단경’ 등의 고전과 동서양 종교를 관통하는 주제별 강좌가 열린다. 회당 참가비는 15만원(숙박·식사 포함). 032-932-2957, 공식카페 cafe.daum.net/simdohaksa


강화도=백성호 기자

[출처: 중앙일보 2016년 9월 19일] “종교 이젠 패러다임 깨야 스님·목사님도 내 강의 듣죠”

성경과 과학은 공존이 가능할까. 기독교적 창조론과 현대 과학은 상호 보완적일까, 아니면 양자택일의 문제일까. 최근 국내에서는 이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한국창조과학회’ 안팎의 학자들을 중심으로 ‘창조론’을 둘러싼 과학적 논쟁이 불거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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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부터 7일간 미국 서부를 돌면서 “성경에 기록된 내용은 사실이다”는 전제 하에 구약 창세기에 대한 과학적 증명을 시도하는 미국창조과학 연구소의 입장을 취재했다. 창조론에는 공감하면서도 이들의 주장에는 반박하는 ‘점진적 창조론’, 그리고 신(神)과 진화론을 동시에 수용하는 ‘유신론적 진화론’ 등 다른 주장들도 함께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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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과학’ 진영은 노아의 방주도 실재했다고 본다. 영화 ?노아?에서 동물들이 암수 짝을 지어 방주를 향해 들어가고 있다. [킹맨(미국)=백성호 기자]

◆노아의 대홍수=구약 성경에는 ‘노아의 대홍수’가 기록돼 있다. 지구상에는 약 320개의 대홍수 전설이 내려온다. 미국창조과학 연구소에서 활동하면서 17년째 300회 이상 ‘창조과학 탐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지질학 전문가 이재만 선교사는 “노아의 대홍수는 지구를 물로 뒤덮은 ‘전지구적 사건’이었다”며 “창세기에도 ‘땅에 물이 크게 불어나서, 온 하늘 아래에 있는 모든 높은 산들이 물에 잠겼다’는 구절이 있다. 이건 역사적 사실이다”라고 주장했다. 대홍수 때 지구가 통째로 물에 잠겼고, 이후 해저 지진 등에 의해 땅이 솟으면서 바다와 육지로 갈라졌다는 것이다.

선교사 이재만 ‘젊은지구론’
“공룡·인간과 살다가 빙하시대 멸종
그랜드 캐니언, 노아 홍수의 증거”

물리학자 양승훈 ‘오래된 지구론’
“젊은 지구론, 성경 문자적으로 해석
노아 홍수 외에 격변 여러차례 있어”

이 선교사는 “당시 미처 바다로 빠지지 못한 물들은 고원 위에 한반도의 몇 배나 되는 거대한 호수를 형성했다. 그 호수의 둑이 터지면서 쏟아진 거대한 저탁류(물과 함께 이동하는 고밀도 퇴적물의 흐름)가 땅을 깎으면서 생겨난 게 그랜드 캐니언의 지형이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지구의 나이가 6000년이라는 ‘젊은 지구론’을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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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만 선교사(왼쪽)가 지난달 31일 미국 그랜드 캐니언의 지층을 통해 ‘노아의 대홍수’를 설명하고 있다. [킹맨(미국)=백성호 기자]

1981년 한국창조과학회 창립을 주도하며 ‘창조 과학’ 대중화에 기여했던 물리학자 양승훈(캐다나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 원장) 교수는 2008년 학회를 탈퇴했다. 양 교수는 ‘젊은 지구론’에 맞서 ‘오래된 지구론’을 주장하고 있다. ‘젊은 지구론’은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지구상에 노아의 홍수 외에도 여러 차례의 격변이 있었다”는 ‘다중격변론’을 제기하고 있다. 인류의 역사 이전에 장구한 기간에 걸쳐서 운석의 충돌에 의한 다중격변이 지구상에 있었으며, 노아의 대홍수는 신생대 홍적세 지층을 만든 마지막 격변이라고 반박한다.

◆고대 식물과 공룡=아담 창조 이전에 지구상에 생물이 있었을까. 창조론자들 사이에서도 이 문제는 ‘뜨거운 감자’다. ‘오래된 지구론’을 주장하는 이들은 아담의 창조 이전에 여러 차례의 창조와 멸종이 있었다고 본다. 반면 ‘젊은 지구론’을 지지하는 이들은 “ 성경에 반하는 주장”이라고 받아친다. 미국 창조과학연구소는 “노아의 방주에는 공룡도 함께 탔었다. 공룡은 인간과 동시대에 살았다. 대홍수 이후에 찾아온 빙하시대와 해빙 때 공룡이 멸종했다”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한마디로 ‘공룡에 대한 성경적 이해’다.

방사성 동위원소에 의한 연대 측정 결과에 대한 입장도 갈린다. ‘젊은 지구론’을 주장하는 이들은 방사성 동위원소 측정법을 과학적으로 신뢰하지 않는다. 오류가 많다는 이유다. 이 선교사는 “화석을 ‘고생대·중생대·신생대’ 등으로 나누는 지질시대표는 이들 화석에 대한 연대측정은 전혀 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한다.

◆창조론인가, 진화론인가=창조론자들은 “진화론에는 아킬레스건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원숭이와 인간의 중간적 존재에 대한 아무런 과학적 증거가 없다고 본다. “자바인과 네안데르탈인, 크로마뇽인의 유골은 중간단계가 아닌 사람의 것으로 판명났고,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유골은 현존하는 원숭이의 것”이라고 주장한다. 파충류와 조류의 중간단계 생물로 여겨졌던 시조새도 최근 학계에서 “시조새는 조류다”라는 결론이 내려졌다고 한다. ‘젊은 지구론’을 주장하든, ‘오래된 지구론’을 주장하든 창조론자들은 “인간의 출발점은 진화가 아닌 창조에 의한 것”이라는 관점이다.

반면 신(神)과 진화론을 모두 끌어안는 ‘유신론적 진화론’ 혹은 ‘진화론적 유신론’의 입장을 취하는 진영도 있다. 천체물리학자 우종학(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는 ‘창조과학’을 비판하면서 “우리가 믿는 것은 ‘성경을 우상시하는 성경교’가 아니라 ‘예수를 믿는 기독교’다. 성경의 올바른 이해를 위해서 해석의 작업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며 물리학계에서 제시하는 138억 년이란 우주의 역사와 진화론적 발전 과정을 수용한다.

이처럼 기독교 안에서도 ‘창조와 진화’를 바라보는 시각은 갈린다. 상대를 단죄하는 종교재판식 논쟁이 아니라 기독교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생산적 토론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출처: 중앙일보 2016년 8월8일] “지구 나이는 6000년…노아 방주에 공룡도 탔다”

드디어 출판사와 계약을 했습니다.

올 11월경에 책이 출간될 예정입니다.

 

 

신희섭 박사 - 채수일 한신대 총장
기독교, 과학적 성과 외면할 수 없어
죽음·영생 의미 오늘날엔 달라져
과학에 마음 열었던 달라이 라마
불교 백팔번뇌도 뇌과학으로 설명

 
올올해 종교·과학센터를 설립한 채수일 한신대 총장(오른쪽)과 뇌과학자 신희섭 박사. 21세기 종교를 이해하려면 뇌과학 연구가 필수적이라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최근 한국기독교회관에서 보기 드문 풍경이 펼쳐졌다.뇌과학 연구의 권위자 신희섭 박사(64한국기초과학연구원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장)가 신학자들 앞에서 ‘뇌 연구를 통한 마음의 이해’라는 주제로 특별강연을 했다. 올해 설립된 한신대종교와과학센터(센터장 전철)가 마련한제1회 종교와과학 포럼이 열린 자리다.

신 박사는 “뇌과학은 의식이 어떻게 뇌와 연결돼 있는가를 다루는 학문”이라며 “뇌과학자로서 뇌와 연관이 없는 마음은 이해하기 힘들다”는 입장을 밝혔다.

서구 선진국에서 이질적인 분야의 전문가가 한자리에 모여 연구성과를 공유하는 것은 이제 드문 일이 아니다. 국내에서도 학문 간 대화가 권장되고 있지만, 이날처럼 기독교 신학계가 먼저 나서 종교-과학 간 융합연구를 주도한 것은 이례적이다. 종교와과학센터는 유럽· 북미 센터와의 공동연구와 ‘성직자를 위한 과학 코스’ 등의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다.

이날 포럼이 끝난 후 뇌과학자와 신학자의 대담을 따로 마련했다. 신 박사와 채수일 한신대 총장(62)이 두 주인공이다. 채 총장은 “기독교 신학 자체가 대화하는 학문“이라며 “과학과 종교가 서로 존중하며 대화할 때 인간에 대한 탐구가 더욱 깊어지고 풍성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신희섭 기초과학연구원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장.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종교와 과학은 보완관계

채수일(이하 채):기독교가 진리를 추구하는 여정에서 스스로 변증하기 위해 다양한 분야와 대화가 필요하다. 현재 일부에서는 과학과 등을 지는 극단적인 움직임도 있지만 그것은 옳지 않다.의견이 다르더라도 지속적으로 대화를 나누는 게 결국 서로를 돕는 것이라고 믿는다. "종교 없는 과학은 불완전하고 과학 없는 종교는 맹목적이다"고 한 아인슈타인의 말에 공감한다. 종교에는 과학이 필요한데, 과학자로서 종교를 어떻게 보시는지 묻고 싶다.

신희섭(이하 신): 뇌과학의 궁극적인 목적은 뇌의 기능이 인간의 행동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메커니즘을 밝혀내는 것이다. 우리는 커피 잔을 들고 이것이 커피 잔이라는 것을 어떻게 아는지, 왜 우리는 어떤 사람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왜 기분이 우울한지 등을 묻는 것이다. 과학이 이런 질문을 파고들다 보면 종교와 철학에 가 닿을 수밖에 없다.하지만 지금 뇌 연구는 아직 이런 큰 질문에 가 닿지 못하고 사람이 어떻게 컵을 들어올릴 수 있는가를 규명하는 수준에 와 있다(웃음). 분명한 것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모든 의식과 행위가 뇌와 연결돼 있다는점이다. 예술·철학·종교는 모두 뇌과학의 탐구 대상이다.

채: 과학과의 대화에 개방적인 신학자가 있지만 아직은 그들이 소수인 게 현실이다. 한편 자연과학자들 가운데 '종교는 사기'라고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신: 티베트 불교의 수장인 달라이 라마(79)는 미 신경과학자들과 대담에 나설 만큼 과학과의 대화에 적극적이다. 불교에서는 과학적인 팩트를 중시한다. 예를 들어 달라이 라마는 종교체험 할 때 뇌에 무슨 변화가 있는 지 미 하버드대 신경과학자들의 연구에 협력했다. 저는 불교에 관심이 많은데 불교 자체가 뇌과학이라고 생각한다. 불교의 유식 사상(唯識思想)마음 외에는 어느 것도 존재할 수 없으며, 마음에 의하여 모든 것이 창조된다는 사상)은 심리학이고 뇌과학이다. '백팔번뇌'라는 말을 보라. 사람의 마음을 108개로 구분해 놓은 것인데, 그게다 뇌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신 단장은 불교가 뇌과학에 가까운 이유로 “관심사가 사람의 마음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불교에선 사람이 왜 괴로운가를 물으며 고통의 근원이 무엇인가를 따진다. 탐구 대상이 마음이기 때문에 저절로 뇌과학이 된 것이 아닐까 한다“고 덧붙였다.


채수일 한신대 총장.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뇌는적응과 필요에 의해변화하는 것“

채: 기독교는 뇌과학뿐만 아니라 천체물리학·진화론 등 다양한 과학적 발전·발견과 충돌을 일으켜왔다. 기독교 신학은 플라톤의 철학에 기초해 발전해왔기 때문에 이원론적 세계관에 갇혀 있다. 몸과 영혼을 나누어 본다.기독교 신학은 현재 많은 도전을 마주하고 있는데 저는 뇌과학이 이원론적 기독교 신학에 자기 수정의 길을 열어줄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유전자결정론'과 '뇌 환원주의'에 대해 저항이 적지 않다.

신: 유전자 결정론이라는 말은유전학 연구하는 사람들은 쓰지 않는다. 유전자가 중요하기는 해도 환경의 영향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태아는 수정됐을 때부터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산모의 스트레스 호르몬은 태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정서 상태도 큰 영향을 미친다. 뇌는 고정된 그 무엇이 아니라 환경에 반응하고 변화한다. 그것을 뇌의 가소성(plasticity)이라 부르는데, 그 가소성이 대단하다. 이 가소성을 생각해보면 새로운 사람이 되는 일과 같은 일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채: 그렇다면 뇌가 진화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신: 가소성이 크다는 것은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중요한 것은 반응의 결과가 뇌에 저장되는데 반응의 결과가 뇌 회로 자체를 바꿀 수 있다. 교육이 사람을 바꾼다는 말은 문자 그대로 맞다.

채:사람이 근본적으로 바뀔 수 있다고 보는가.

신: 사람의 성격이라는 것은 매우 종합적인 것이다. 뇌과학에서 풀고 싶어하는 수수께끼가 바로 사람의 성격인데, 사람이 저마다 다른 개성을 갖게 되는 것은 뇌 전체가 작동하는 것이라고 유추해볼 수 있다. 평생의 경험과 기억이 영향을 준다는 뜻이다. 무엇을 바꿀 수 있느냐 언제 바꿀 수 있는가를 생각하면 유아 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뇌의 가소성이 가장 큰 때가 바로 이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원숭이 실험으로도 증명됐다. 태어났을 때 먹을 것은 잘 주면서 부모의 스킨쉽없이 키운 원숭이는 자라서 문제가 생긴다. 매우 잔인한 연구이지만 이것이 주는 메시지가 크다.

채:하지만 사도 바울(성경에 따르면 바울은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다가 부활한 예수를 만나 인생의 큰 전환점을 맞이했다)처럼 극적인 변화가 생기기도 하지 않나.

신: 일명 '은혜를 받았다'는 변화를 묻는 것인가.저는 그것을 굉장히 어려운 변화, 다양한 변화를 유도하는 하나의 현상이라고 해석한다. 뇌에는 워낙 다양한 회로가 관련 돼 있고 그런 회로가 바뀔 정도라면 엄청난 영향이 필요하다. 그런 변화가 '있다' '없다'는 것은 제가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실제로 세상에는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으니까. 하지만 저는 그것을 엄청난 영향에 의해 뇌의 단단한 회로들이 바뀌었구나 하고 해석한다.


◆죽음과 내세영생의 의미

채:종교는 인간 인식의 한계, 생명의 한계, 그리고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열망 등에 근거해 고유한 관점을 형성해왔다. 예를 들면 '내세'의 존재 여부를 놓고 과학계와 종교계의 충돌이 크다.

신: 내세의 문제는 과학이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다.있는 것으로도, 반대로 없는 것으로 증명하기 어렵다. 이것은 과학적인 논의는 불가능하고 전통적인 종교적인 논의만 가능한 것이다.

채: 전 세계 인구의 상당수는 어떤 종류로든 종교를 갖고 있다고 한다. 가령 서구 사람들은 자신이 매주 교회를 다니지 않더라도 내세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뇌과학과 종교의 관계를 연구한 두 학자 라이오넬 타이거와 마이클 맥과이어는 『 신의 뇌』라는 책에서 '뇌가 종교를 만들어낸 것은 종교적 믿음이 뇌와 신체 생리를 안정시키는 효과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뇌가 불확실성보다는 확실성을, 막연한 것보다는 분명한 것을, 불균형과 비대칭보다 균형과 대칭을 아주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신:그것은 뇌에서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지 입증해야 한다(웃음). 경험상으로 보면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불안한 게 사실이다. 왜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하는가. 그것에 대해 몰라서 그렇다고 하는 견해가 있다. 뭔지 확실히 알면 두렵지 않을 수도 있다. 뇌는 합리화를 잘한다. '합리화하는 뇌'라는 용어가 있을 정도다. 자신을 속인다는 뜻이다. 퇴계 이황 선생께서는'무자기' 즉, '나 자신을 속이지 않는다'고 했는데, 이런 말씀이 모두 합리화하는 뇌를 설명해 준다고 본다.우리는 도대체 종교가 무엇인지도 다시 물어봐야 한다. 어릴 때 저의 할머니는 "조상님이 도왔다"는 말씀을 자주하셨다. 그 분에겐 제사가 생활의 일부였다. 이럴 때 조상님은 종교는 아니지만 보통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종교적 습성을 보여준다. 같은 종교라고 해도 너무도 다른 경우를 많이 보았다. 예컨대 불교에 귀의한다고 해도 어떤 사람은 구복신앙을 갖지만, 고승들을 보면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 점에서 저는 '종교'보다는 종교를 믿는 습성인 '종교성'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


종교와과학의 융합 연구를 위해 올해 종교와과학센터를 설립한 채수일 한신대 총장(오른쪽)과 뇌과학자 신희섭 한국기초과학연구원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장.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채: 근본적으로 종교성이라는 것이 인간 안에 내재돼 있다고 보시는 것 같다. 저도 그 점에 동의한다.종교성이라는 큰 틀에서는 다르지 않은데 기독교가 다른 종교를 폄하하는 것은 문제다. 인간에게는 인식의 한계가 있고 인간은 결국 죽는다, 신은 불멸이다 하는 것에 기대며 종교의 우월적 가치를주장한다. 죽음을 어떻게 보시는가.

신: 저는 칼릴 지브란(1883~1931)의 시를 좋아하는데 그는 죽음에 대해 이렇게 썼다. '죽음이 뭐냐. 바람 속에 벌거숭이로 서 있는 것, 태양에 녹아드는 것'(For what is it to die but to stand naked in the wind and to melt into the sun). 영화 '박쥐'의 강렬한 마지막 장면을 보았을 때 이 싯구가 떠올랐다. 이 시는 언제나 내 마음을 평안하게 한다. 인간이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과학자도 동물 실험을 많이 하다 보니까 연말이면 실험으로 희생된 동물을 위해위령제를 지낸다.

채: 생쥐를 위해 위령제를 지내는 것은 쥐와 살아 있는 우리의 관계를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제사도 그렇다. 실제로 죽은 자에게 혼령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많은 경우에는 죽은 자와의 관계를 생각하는 것이다. 제사를 무조건미신이라고 보는입장은 잘못된 것이다. 제사의 본질에 대한 논의 출발 자체가 다르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신: 과학이 종교를 위협한다고 보시지는 않나.

채: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학문과의 대화는 상대를 올바르게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 내 정신적 체계의 무지를 깨닫게 해준다. 신학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죽음을 바라보는 시각이 한 예다. 전통적인 기독교의 입장에서는 죽음을 원죄의 결과인 것처럼 말하는데, 오늘날의 신학은 과연 그런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죽음은 끝이 아니다. 끝은 곧 시작인 것이다. 삶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시작이라는 인식의 변화가 많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생을 바라보는 시각도 마찬가지다. 영생은 생명의 무한한 연장 상태가 아니라, 과학적인 깨달음으로 다시 생각하면 '의미로 충만한 순간'으로 해석될 수 있다. 과학과의 대화가 그런 통찰을 풍요롭게 해줄 수 있다고 믿는다. 신학과 과학의 대화 가능성과 그 가치는 무궁무진하다. 저는 과학과의 대화가 신학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정리=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신희섭(64)=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미 코넬대에서 유전학 연구로 박사학위. 미 MIT 조교수·포항공대 생명과학 교수·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 신경과학센터장 역임.

◆채수일(62)=한국신학대학과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석사), 독일 하이델베르크대(박사)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2009년부터 한신대 총장. 세계교회협의회(WCC) 정의평화창조위원회·국제위원회 위원을 지냈다.

 

(중앙일보 2014년 12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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