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지니어로서 살아온 30여 년의 세월과 더불어 인생 후반기를 맞아 행복을 추구하는 기술자의 변신 스토리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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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이션에 비용 급증 도시민의 농촌行 늘어나는데 철근·콘크리트 등 자재값 뛰어 주택 건축비 최대30% 더 들듯
비료값 1년새 3배 오르고 국제유가 급등에 난방비도 부담 보일러 끄고 전기장판 생활하기도사진=게티이미지뱅크 “비료 가격이 1년도 안 돼 세 배 가까이 올랐습니다. 비닐하우스, 농자재까지 오르지 않은 게 없어요.”
5년 전 귀촌해 전남 담양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정모씨(63)는 요즘 예상치 못한 각종 비용 증가가 당황스럽다. “너무 급하게 부담이 커져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걱정스럽다”는 게 그의 얘기다. 정씨는 “농자재를 보관하는 컨테이너부터 비닐하우스에 들어가는 작은 철재 핀까지 대부분의 가격이 올라 주변 귀촌인은 물론 귀촌 희망자들까지 걱정스러워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주거비용 최소30% 상승
35만 귀촌가구가 ‘인플레이션 공포’에 떨고 있다. 농사를 짓고 귀촌생활을 하는 전 과정에 걸쳐 비용이 급증하고 있어서다. 귀촌을 결정하고 살 집을 짓고 있는 예비 귀촌인은 주택건설 비용이 애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이 들어 골치를 앓고 있다.
귀촌 비용 부담이 가중되는 것은 집을 짓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주택건설에 필요한 목재와 철근, 콘크리트 가격이 급등해 예비 귀촌인의 주택 마련 부담이 크게 늘었다. 농림축산식품부2020년 자료에 따르면 귀촌인의85.2%는 정착자금의 주요 사용처로 ‘주택 마련’을 꼽았다.
올해 목조주택을 지을 예정인 예비 귀촌인 김모씨(58)는 “시공사로부터 ‘3개월 정도 소요될 공사기간에 자재값이30%는 오를 것으로 보이니, 미리 돈을 입금하면 현재 가격으로 지어 주겠다’는 말을 들었다”며 “목재값으로만 수천만원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돼 미리 돈을 입금할지 고민 중”이라고 했다. 대한목재협회에 따르면 러시아산 제재목 가격은 지난해12월 기준 ㎥당57만원으로2020년12월(39만원)보다46% 상승했다.
유가 상승으로 난방비 부담도 커졌다. 농촌에는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아 등유 보일러를 쓰는 곳이 많다. 경기 연천에서53㎡ 크기 주택에 거주하는 박용수 씨(59)는 “2년 전 실내 등유가 한 드럼에16만원이었는데 최근20만6000원에 구매했다”며 “추운 겨울에는 난방비만 한 달에50만원씩 들어 부담이 크다”고 설명했다. 농자재·비료값 등 각종 비용이 증가해 귀촌인들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 한 귀농·귀촌 박람회를 찾은 관람객들이 부스를 돌아보고 있다. /한경DB
농사 비용도 크게 늘어
귀촌인들은 “농사 짓는 비용도 크게 늘었다”고 입을 모았다. ‘농사시즌’에 들어가기 전 뿌려줘야 하는 비료 가격부터 그렇다. 원료가 되는 요소와 염화칼륨 가격이 올랐기 때문이다.
한국비료협회에 따르면 지난해10월 중국의 수출 제한으로 요소 수입이 막히면서 요소비료 가격은 세 배가량 급등했다. 이후 지금까지도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다. “1년 전 이맘때만 하더라도 요소비료 한 포를 1만400원에 구매했는데, 지금은 2만6900원은 줘야 한다”는 게 귀촌인들의 설명이다.
하우스용 필름값 등이 올라 비닐하우스를 짓는 비용도 크게 늘었다. 경상남도와 일선 시·군 농협 등에 따르면 비닐하우스 시설 자재인 철강값은 t당150만원가량으로 지난해보다 약40만원 상승했다.
하우스용 필름도 소비자가격이10~15% 뛰었다. 전북에서 귀촌 생활을 하는 한모씨는 “작년 이맘때650㎡ 비닐하우스를 짓는 데1200만원이 들었는데, 올해는2000만원은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귀촌 증가세 꺾일 수도
이런 흐름은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 등으로 본격화한 귀촌 증가세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농식품부에 따르면2020년 귀촌 가구는34만5205가구로 전년 대비8.6% 증가해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은퇴 후 여유로운 농촌 생활을 꿈꾸는 사람이 늘고, 코로나19확산으로 저밀도 사회에 대한 관심이 증가한 데 따른 것이라는 게 농식품부의 분석이다.
귀촌 비용이 증가하면 귀촌을 준비하던 사람들이 계획을 접거나, 실행 시기를 늦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전남 무안군 농업기술센터 관계자는 “철근 가격이 오르면서 하우스와 축사를 신축하는 분들의 어려움이 크고, 유가도 급등해 보일러 사용을 멈추고 전기장판으로 겨울을 버티는 경우도 있다”며 “귀촌에 필요한 비용을 꼼꼼히 계산할 것을 권하고, 초기에 무리한 투자비용을 들여 귀촌하려는 것은 말리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민주지산 속 오지 ‘영동 도마령마을’ 60대 중심 귀촌으로 9→42가구 전원생활 로망 구현 “스트레스 끝”
마을 생기 되찾고 주민 단합도 이뤄 산촌축제·마을기업 등 아이디어 분출 “베이비부머가 농촌문제 해법” 주목
도시민 485만 “5년 내 귀촌 준비” ‘귀농’ 특성 살린 맞춤정책 아쉬워 의료·문화·교육 획기적 지원 필요
지난 1월26일 오후 충북 영동군 상촌면 둔전리 도마령마을의 주민인 임종덕 전 이장, 이미선 부녀회장, 윤여생 현 이장이 마을기업에서 공동운영하는 카페 ‘아! 도마령’ 앞에 섰다. 카페의 뒤로 1242m 높이의 민주지산이 한 폭의 수묵화처럼 펼쳐져 있다. 도마령마을은 전체 42가구 중 귀농귀촌인이 37가구이고, 그 대부분이 60대 이상인 베이비부머 정착촌이다. 영동/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첫눈에 반했어요!”충북 영동군 상촌면 둔전리의 귀농귀촌 새내기 홍애란(64)씨가 도마령마을을 제2의 인생 출발지로 선택한 이유는 단순 명료했다. 이 마을을 처음 찾은 것은 3년 전이다. 이후 거주지인 청주와 이곳을 부지런히 오가다가, 지난 1월 초 남편과 강아지 두 마리를 데리고 아예 정착했다.도시에 거주하는 베이비부머 세대가 본격적인 은퇴기를 맞으면서 귀향귀촌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광의의 베이비부머는 1차(1955~1964년생) 780만명, 2차(1968~1974년생) 623만명, 이들 사이에 출생한 248만명을 모두 합쳐 1700만명에 육박한다. 전체 국민의 3분의 1에 이르는 거대한 인구집단이다.<한겨레>가 설 연휴 직전인 지난달 26일 방문한 도마령마을은 대표적인 베이비부머 정착촌이다. 전체 42가구 중 귀농귀촌인이 37가구인데, 대부분 60대 이상이다. 부산에 살다가 10년 전 옮겨온 윤여생(59) 이장은 “63년생인데, 마을에서 두번째로 어리다”며 웃음 지었다.마을의 위치는 충북(영동)·전북(무주)·경북(김천)의 3도 경계지로, 높이 1242m인 민주지산의 중턱이다. 산의 초입인 영동군 용화면 사무소에서 구불구불한 산길 포장도로를 따라 차로 20분이나 올라가야 닿는 오지다. 귀농귀촌 가구 중에서 이 마을 출신은 하나뿐이다. 나머지는 서울·부산·포항·청주 등 도시에서 살다가 아무 연고도 없는 이곳으로 옮겨왔다. 삭막한 도시에서 벗어나 아름다운 자연 속의 전원생활을 즐기고 싶은 로망 때문이다. 민주지산은 봄에는 철쭉이 만발하고, 여름에는 원시림과 계곡이 일품이며, 가을에는 단풍으로 불타고, 겨울에는 설경이 장관이어서 사시사철 많은 등산객의 사랑을 받는다.베이비부머들은 귀향귀촌 이후 마음이 자유로워지고, 스트레스를 안 받게 됐으며, 건강이 좋아졌다고 함박웃음을 짓는다. 귀농귀촌 6년차인 이미선(58) 부녀회장은 “포항에서 교사로 있을 때 이곳을 찾았는데, 가을 단풍이 너무 아름다웠다”며 “아직 현직에 있는 남편은 주말마다 와서 힐링한다”고 말했다. 취미로 꽃차를 만드는 홍애란씨는 “집 주변이 온통 야생화”라며 “꽃차를 준비할 때 가장 행복하다”고 밝은 표정을 지었다.
지난 1월 초 충북 영동군 상촌면 둔전리 도마령마을로 귀농귀촌한 전상윤(왼쪽), 홍애란씨 부부가 1월26일 오후 집 앞에서 반려견들을 안고 있다. 영동/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주민 감소로 어려움을 겪던 도마령마을은 다시 생기를 찾고 있다. 토박이인 임종덕(63)씨는 “30~40가구에 달하던 마을이 9가구까지 줄었는데 귀농귀촌으로 큰 변화를 맞았다”며 “희망자가 더 있어서 70명인 주민 수가 3~4년 안에 100명까지 늘 것 같다”고 말했다.도마령마을은 토박이와 귀농귀촌 주민이 사이좋게 지내는 모범마을로 꼽힌다. 임종덕씨는 30년간 맡았던 이장 자리를 4년 전 윤여생 현 이장에게 넘겼다. 그는 “마을 발전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것을 보고 낙후된 고향을 조금이라도 발전시키려면 젊은 사람이 낫겠다 싶었다”고 말했다.도마령마을은 주민들의 단합을 토대로 마을 발전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친다. 2015년부터 매년 8월 둘째 주 토요일에 도마령산촌문화축제를 연다. 가수, 연주자, 합창단 등을 초청해 공연을 벌이는데, 많을 때는 600여명이 찾을 정도로 입소문이 났다. 코로나 사태로 2년간 중단했는데, 올해는 꼭 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주민들의 공동출자에 정부 지원을 얹어서 ‘마을기업’도 세웠다. 한과와 호두기름 같은 농산물 판매사업을 하고, 마을카페 ‘아! 도마령’도 문을 열었다.코로나 사태로 마스크 대란이 발생하자 마을에서 마스크를 만들어 지역사회에 나눠 줬다. 이 밖에도 매년 4월 개최하는 벚꽃축제, 각계 유명인사의 초청강연을 듣는 ‘인문학 교실’, 천연비누와 향수를 제작하는 영농 신활력사업, 독거노인에게 식사와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부녀회 등 마을 살리기를 위한 노력은 끝이 없다.정부와 지방자치단체도 이런 노력을 인정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마을문화공간 건립을 지원하기로 했다. 영동군도 ‘도마령마을 살아보기 체험 프로그램’에 필요한 6평 규모의 임시주택(농막)을 제공하기로 했다.농촌은 급격한 인구 감소로 소멸위기를 맞고 있다. 반면 서울 등 대도시는 인구 집중으로 일자리 부족, 집값 상승, 교통 혼잡이 심해지며 삶의 질이 떨어지고, 사회문제도 심각하다. 도시에 사는 베이비부머의 귀농귀촌에서 농촌과 도시를 모두 살리고, 국토 균형발전도 이루는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늘고 있다.베이비부머의 맏형 격인 1955년생은 이미 2020년 고령인구(65살 이상)로 진입했다. 막내 격인 1974년생까지 앞으로 20년 동안 연평균 82만5천명씩 고령인구가 늘어난다. 농촌경제연구원의 조사 결과를 보면 19살 이상 도시민 중에서 5년 이내 농산어촌에서 자신의 ‘버킷리스트’를 실천하기 위해 준비 중인 사람은 485만5천명으로 추정됐다. 이 중에서 50대 이상은 266만7천명으로 55%를 차지한다. 1960~70년대 농촌을 떠나 도시로 향했던 ‘이촌향도’와 정반대 흐름을 만들 토대가 있는 셈이다.
자료: 통계청(2022년 기준)
자료: 농촌경제연구원(2019년)
주민들의 자발적인 노력과 정부·지자체 등의 지원이 곁들여지면서 귀농귀촌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전남 구례군의 경우 2013년 1월부터 2021년 9월까지 8년9개월 동안 4001명(2981가구)이 귀농귀촌했다. 구례 농업기술센터의 김안란 주무관은 “귀농사관학교로 불리는 체류형 농업창업지원센터를 통한 체계적인 정착 지원과 월 10만원에 빈집을 빌려주는 구례정착보금자리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주효했다”고 소개했다. 군 인구가 2018년부터 감소세로 바뀐 것은 아쉽지만, 2013~2017년에는 5년 연속 증가했다.귀농귀촌 인구는 매년 50만명 안팎에 달한다. 하지만 실제 농사를 짓는 ‘귀농’은 2~3%에 그치고, 대부분은 전원생활을 즐기려는 ‘귀촌’이다. 귀농과 귀촌은 필요한 지원이 다를 수밖에 없다. 또 자녀를 동반한 청년세대와 부부 중심의 베이비부머도 차이가 크다. 베이비부머들은 귀농보다 귀촌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다. 도마령마을의 베이비부머도 농사를 주업으로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 작은 텃밭을 가꾸면서, 연금과 기존 재산으로 생활한다. 윤여생 이장은 “나이 들어 농사를 짓는 것은 힘들다”며 “정부와 지자체 지원이 도움 되지만, 농사가 주업이 아닌 귀촌자와는 좀 거리가 있다”고 아쉬워했다.지자체의 지원 정책은 농촌 살아보기 체험, 빈집 임대, 주택 수리·신축 지원, 농사 교육, 영농자재 공급, 농업창업 융자 등 비슷하다. 또 상대적으로 귀농과 청년세대 중심으로 짜여 있다. 지역과 수요자의 특성을 파악하고 귀농형과 귀촌형, 청년세대형과 베이비부머형으로 세분한 맞춤형 정책이 필요하다는 요청이 많다.강원도 홍천군은 베이비부머 등 은퇴자가 전원생활을 편하게 할 수 있는 지원시스템 구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2016년 전국 처음으로 귀농귀촌 특구를 지정하고 전원도시 정주기반 조성 등을 통해 4년간 1만2천명의 귀농귀촌을 유입함으로써 인구 감소를 완화시키고 있다.주말농장을 만들어 평일 닷새는 도시에서 일하고 주말 이틀은 시골에서 보내는 ‘5도2촌형’ 귀농귀촌도 꾸준히 늘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송미령 박사는 “인구가 줄어드는 농촌의 저가주택에 대해서는 2주택자 적용을 제외해 종합부동산세·취득세 감면 혜택을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정부와 지자체가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지원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장시혁 영동군 농촌정책팀장은 “20년 동안 귀농귀촌 지원을 하고 있지만 아직 농촌인구 감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며 “인구 유출을 막고 적정 인구를 유지하려면 부족한 의료·문화·교육 인프라에 대한 국가 지원부터 파격적으로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베이비부머가 떠나야 모두가 산다>의 저자인 마강래 중앙대학교 교수가 1월20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베이비부머 100만명 귀촌하면 2년 내 집값 안정”
‘베이비부머 떠나야 …’ 쓴 마강래 중앙대 교수“
베이비부머의 은퇴와 산업구조 변화라는 두 개의 ‘메가트렌드’로 인한 사회 충격과 갈등을 해결하려면 베이비부머의 귀농귀촌이 필요합니다.”마강래 중앙대 교수는 지난달 20일 <한겨레> 인터뷰에서 “베이비부머가 대도시를 떠나 농촌에서 인생 이모작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정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마 교수는 <베이비부머가 떠나야 모두가 산다>의 저자다.
―도시계획을 전공했는데, 베이비부머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미래 공간구조 변화를 촉진하는 메가트렌드 때문이다. 인구 측면에서 저출산·고령화의 영향이 크지만, 1955년생부터 1974년생까지 약 1700만명에 달하는 베이비부머의 은퇴 문제도 있다. 이들은 상대적으로 자산도 많고, 소비력도 높지만 은퇴 이후 어려운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연금도 충분하지 않다. 특단의 조처가 없으면 청년층의 부담이 커져 세대 간 갈등이 불거질 수 있다.”
―최근 펴낸 <부동산, 누구에게나 공평한 불행>에서는 산업구조 변화에 주목했다.
“1990년대 탈공업화로 수도권 쏠림이 완화됐는데, 2012~2013년 이후 4차 산업혁명으로 다시 대도시 지향성이 강해졌다. 청년들이 선호하는 일자리가 대도시, 수도권, 서울 중심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두 가지 메가트렌드의 결합이 미칠 영향은?
“베이비부머는 공업화 과정에서 ‘이촌향도’를 주도했는데, 은퇴 이후에도 대도시를 떠나는 게 쉽지 않다.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아 점점 대도시로 이동한다. 결국 모든 세대가 대도시로 집중되어 매우 심각한 사회문제를 만들게 된다. 집값 폭등, 출산율 하락, 지방인구 유출은 이런 공간적 쏠림 현상과 깊은 관련이 있다.”
―베이비부머의 귀농귀촌을 통한 청년층과의 ‘공간적 분업 전략’을 제시했는데.“베이비부머는 은퇴 이후 도시에 남아도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다. 하지만 귀농귀촌을 하면 인생 이모작의 기회가 열린다. 청년층과의 갈등 구조도 완화할 수 있다.”
―귀농귀촌을 희망하는 베이비부머가 많은데, 대규모 이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는?
“일자리, 병원, 사회적 관계 등 세 가지 요인이 가로막고 있다. 부부의 은퇴 이후 적정 생활비는 월 270만원인데, 이를 충족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으로 내려가면 향후 20~30년간의 생활을 예측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또 정기적인 건강체크가 필요한데 지방에서는 여의치 않다. 사회적 네트워크가 끊길 것이라는 걱정도 있다.”
―어떤 정책이 필요한가?
“지역 활성화를 위해서는 베이비부머의 귀농귀촌 정책을 먼저 추진해야 한다. 그다음에 장기적으로 청년층 유입 정책을 써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청년층 유입에 더 역점을 두고 있다.”
―귀농귀촌 정책에서 베이비부머와 청년층이 다른 점은?
“베이비부머는 농사 기술이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귀농보다 귀촌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베이비부머와 농촌, 중소기업을 연결하는 ‘3자 연합 모델’을 제안했는데.
“3자를 결합하면 엄청난 시너지가 발생할 수 있다. 베이비부머가 지방 중소기업에서 주 2~3일 일하면, 부족한 생활비를 보충할 수 있다. 중소기업은 만성적인 인력난을 해결하고, 농촌도 살 수 있다.”
―베이비부머가 얼마나 귀농귀촌을 할 수 있다고 보나?
“시골에서 수도권으로 올라온 1·2차 베이비부머가 440만명 정도다. 이들 중에서 10%만 움직여도 44만명이다. 서울 출생자 중에도 귀농귀촌을 원하는 사람이 많다. 여기에 (‘5도2촌’ 생활자와 같은) 관계인구까지 포함해서 100만명 정도를 타깃으로 삼을 수 있다.”
―100만명이 빠져나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집값 안정이다. 베이비부머는 주택 보유율이 높다. 100만명이 지방으로 내려가면 엄청난 임대용 주택이 쏟아진다. 새 아파트를 공급하려면 4~5년 걸리지만, 베이비부머가 이동하면 빠르면 2년 내 60만~70만호가 나온다.”
단기 입주형 재활주택 ‘케어비앤비(B&B)’는 의료와 일상훈련을 거쳐 살던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지원한다.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 올해 서울시 참여예산사업으로 운영하고 있다. 사진은 10일 오후 은평구 갈현동 케어비앤비 1호 입주자인 박희찬 할아버지의 활동 모습. 건강모임방에서 작업치료사의 도움을 받아 관절 가동운동을 한다.
“집에서 돌봄 받을 수 있는 마을을 만드는 게 목표”
올해는 시 참여예산 사업으로 추진
입주자 월 20만원 내고 독채에 살며
의료·생활·관계 등 안심 서비스 받아
“하루 세 끼 제대로 식사해 건강이 좋아진 것 같아요.”
지난 10일 오후 은평구 갈현동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의료사협)의 단기 입주형 재활주택 ‘케어비앤비(B&B)’ 2층 건강모임방. 박희찬(77) 할아버지가 2주 동안 이곳에서 지낸 소감을 말했다. 운동을 꾸준히 할 수 있는 것도 회복에 큰 도움이 되었단다.
2년 전 박 할아버지는 뇌경색을 앓았다. 혼자 생활하며 치료를 받았으나 후유증이 천천히 나타났다. 집에만 머무르면서 무기력해지고, 신체기능도 점점 더 떨어졌다. 혼자서 더는 생활하기가 어려운 상황이 되어 딸이 조합원인 살림의료사협의 케어비앤비 입주 신청을 했다. 심사선정위원회 심사를 거쳐 5월 말 입주해, 1호 입주민이 됐다.
케어비앤비 건물 입구에 붙어 있는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원들의 ‘호혜적 돌봄’ 실천 활동 기록판인 ‘노동의 협동’을 보고 있다.
의료사협은 주민들이 출자(5만원 이상)해 만든 협동조합 의료기관이다. 예방에 중점을 두고 조합원의 건강 자치력을 높이며 지역에서 건강공동체를 함께 만들어가는 일을 지향한다. 은평 지역에서 2012년 설립된 살림의료사협은 조합원이 3500가구이다. 62%는 은평, 나머지는 인근 자치구나 다른 지역에 산다. 현재 살림의료사협은 의원, 치과, 재가복지센터, 단기 입주형 재활주택 등을 운영하고 있다. 8월쯤 한의원, 데이케어센터를 열 계획이다.
살림의료사협 임직원들은 현장에서 지역 주민을 만나며 대다수가 시설보다는 집에서 돌봄을 받고 싶은 욕구가 크다는 걸 알 수 있었다. 2018년부터 두 차례 일본 요양시설을 둘러봤다. 병원과 집의 ‘중간집’ 제도가 눈에 띄었다. 사업 자체가 수익성이 있지 않다 보니 의료협동조합, 민주적의료기관연합회 소속 의료·돌봄 기관들이 주로 운영하고 있었다. 추혜인 살림의원 원장은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의료와 일상훈련을 지원하는 점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지난해 살림의료사협은 서울시 참여예산사업으로 ‘중간집’인 단기 입주형 재활주택을 제안했다. 아이디어는 시민투표에서 뽑혀, 예산(4억4500만원)과 담당 부서(어르신복지과)가 정해졌다. 살림의료사협이 실행 기관이 됐다.
민관 협력도 이뤄졌다.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이 다리를 놓아 한국토지주택공사 서울지역본부가 어렵게 신축 건물을 찾아 임대해줬다. 그 덕에 공간을 안정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됐다. 한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연합회는 의료복지 통합모델의 전국 확산 가능성을 보여주는 역할을 했다. 은평구청은 대상자 선정 등의 행정적인 지원 역할을 맡았다. 사업명은 숙박 공유서비스 ‘에어비앤비’처럼 지역에서 돌봄을 공유한다는 의미로 ‘케어비앤비’로 정했다.
올해 케어비앤비 입주 대상자는 중위 소득 150% 이하 만 60살 이상의 서울에 주소를 둔 시민이다. 자치구와 실행기관 그리고 재활의학과 전문의로 구성된 심사선정위원회에서는 신청자의 병력과 현재 독립생활 수준을 확인한다. 의료 조건과 재활 필요성도 살핀다.
특히 재활 의지와 어느 정도의 독립생활을 할 수 있는지에 주안점을 둔다. 각자 독채에서 개별 가구로 생활하기에 입주자는 일정 수준의 일상생활을 스스로 할 수 있어야한다. 밤에는 상주인력이 없지만 가구마다 안심벨이 있어 응급 상황일 때는 모바일폰 앱으로 간호사와 담당자에게 바로 연락이된다. 추혜인 원장은 “단순 돌봄이 아니라 집으로 다시 돌아가 일상생활을 할 수 있게 하는 게 목표이기에 본인의 재활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5층 다가구 주택 건물인 케어비앤비에는 16호가 있다. 이 가운데 13호는 개별 가구 공간이다. 약 35㎡ 규모로 방 2개에 화장실, 거실 겸 주방, 베란다를 갖췄다. 나머지 3호는 건강모임, 공동주방 등 공용공간으로 쓴다. 장애인용 엘리베이터가 마련돼 있다.
입주자는 주거비로 월 20만원을 내고, 의료·생활·관계 안심서비스를 받는다. 기존 이용하던 장기요양서비스나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는 이곳에 와서도 이어진다. 거주기간은 최대 6개월이고, 2개월 연장할 수 있다. 개별 가구 공간은 자율적으로 꾸밀 수 있고, 온돌이나 침대도 선택할 수 있다. 집에서 쓰던 가구를 갖고 와도 괜찮다. 민혜란 살림의료사협 통합돌봄팀장은 “최대한 집처럼 지낼 수 있게 해, 나중에 집에 돌아가 생활을 잘할 수 있게 도우려 한다”고 했다.
재활실에서 혼자 누웠다 일어나는 연습에 앞서 치료사가 굳었던 팔을 펴준다.
박 할아버지는 이날 점심 뒤에 건강모임방에 내려와 텔레비전을 보면서 가벼운 관절가동운동을 하고 있었다. 고관절이 밖으로 빠지지 않게 노란 밴드를 허벅지에 끼고, 앉은키 높이의 대에 꽂힌 빨간 풍선을 손으로 쳤다. 중간중간 손을 오므렸다 폈다 하면서 박수도 쳐본다.
잠시 뒤 재활실로 옮겨 치료사 도움을 받아 누워 나무 봉을 들고 팔을 펴 위로 올리기를 한다. 케어비앤비 직원들이 옆에서 “어머머, 팔이 펴졌어요. 어르신 이제 충분히 혼자 생활할 수 있겠어요”라며 연신 응원과 격려의 말을 건넸다. 박 할아버지는 이들의 응원 덕분인지 이날 누운 자리에서 도움 없이 일어나기를 처음으로 해냈다. 운동을 마친 박 할아버지는 “다들 친절하게 잘해줘 불편한 게 하나도 없다”며 “6개월만 있어야 해 아쉽다”고 했다.
전날 입주한 김아무개 할아버지에게도 하루 새 작은 변화가 나타났다. 휠체어에 20분도 채 앉아 있지 못하던 그가 이날 40분도 거뜬하게 앉아 있어 팀원들이 기뻐했다. 김할아버지는 4년 전 뇌경색으로 쓰러져 그간 거의 집에서만 지냈다. 이층집이라 외출이 힘들어, 치과나 안과 등 치료를 받으려면 사설 구급차를 이용해야 해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했다. 아버지를 돌보기 위해 요양보호사가 된 딸의 권유로 재활 의지를 갖고 이곳에 입주했다.
케어비앤비는 새벽 6시30분에서 밤 9시30분까지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입주자의 관절 운동 범위를 확인해 재활운동 계획을 세워 요양보호사, 작업치료사 등이 진행한다. 재활운동은 주중에 매일 한다. 방문간호는 입주자 건강 상태에 따라 주중 횟수(2~5회)가 정해진다. 코로나19로 식사는 개별적으로 한다. 사회적기업에서 완전식 또는 노인 맞춤식으로 만든 세 끼가 제공된다.
케어비앤비 직원과 함께 보행보조기를 짚고 걷기 연습에 나선다.
실행 기관 입장에서 애로점과 아쉬운 점도 있다. 무엇보다 새로운 모델이다 보니 설명하기가 어렵다. 추혜인 원장은 “요양시설이 아니면서 그냥 주택과는 달라 설명이 쉽지 않다”며 “내부적으로 각자 생각하는 모습도 조금씩 달라 맞춰가고 있다”고 했다.
서울시 참여예산 사업으로 대상이 60살 이상으로 정해진 점도 아쉽다. 애초 계획에서는 연령 제한 없이 공적 지원을 받기 전 어려움 겪는 이들을 돌보는 것으로 대상을 잡았다. 민 팀장은 “재활과 일상 복귀를 위한 지원 필요성은 젊은 연령층에도 있을 수 있는데 (연령이 제한돼) 안타깝다”고 했다.
살림의료사협의 목표는 집에서 돌봄을 받고 지낼 수 있는 마을을 만드는 것이다. 케어비앤비와 더불어 지난해부터 또 하나의 모델 ‘마을간호스테이션’을 실험하고 있다. 마을에 간호스테이션을 두는 콘셉트이다. 마을이 일종의 병동이 되는 셈이다. 간호사, 영양사, 작업치료사, 사회복지사, 물리치료사, 의사(가정의학과 전문의)가 팀을 구성한다. 간호사들이 정기적으로 방문하고 필요하면 주치의, 사회복지사 등에게 연락한다. 팀은 매주 1회 사례회의를 해서 담당 환자에게 필요한 자원을 연결하는 등의 지원을 한다.
마을간호스테이션은 지난해 9월 시범사업을 거쳐 올해 3월부터 은평 지역에서 추진하고 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사회적 재난을 대비하는 복지사업 ‘사회백신 프로젝트’에 선정돼 4년 동안 진행할 예산을 확보했다. 현재 서비스 이용자는 80명 정도다. 30명가량이 주 1회 간호사의 정기적인 방문 서비스를 받고 나머지는 부정기적으로 이용한다. 주로 욕창 관리, 비위관 등 관 관리, 이동식 치과 장비를 활용한 와상 장애인들의 치과 치료 등이 이뤄진다.
추 원장은 “실제 해보니 지역에 간호가 필요한 주민이 많아 깜짝 놀랐다”며 “복지부 커뮤니티케어 사업이 제대로 되려면 마을을 순회하는 방문 간호사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살림의료사협은 필요성을 발굴해, 서비스를 제공하고, 어느 정도 비용이 드는지, 어느 정도 역량을 갖춰야 하는지 실험을 이어간다. 그는 “4년쯤 지나면 방문간호가 훨씬 폭넓게 제도화될 거라 기대한다”며 “우리의 실험이 도움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케어비앤비 개별가구 공간에서 김아무개 할아버지가 휠체어에 앉는 시간을 늘려가는 연습을 하고 있다.
중랑구 겸재로에 서울 첫 공동체주택마을 ‘도서당‘이 지난 3월 준공됐다. 주택 7채, 38가구에 공용·공동체·근린생활 시설을 갖추고 건물마다 책 테마를 붙였다. 입주민들은 규약을 마련해 공동의 생활 문제를 풀어가며 공동체 활동을 해나간다.
“공동체 활동 모습 떠올리면 벌써 설레요”
2채는 셰어하우스, 나머지는 다세대
마을 연습실·창작소·라운지 등 활용
수익사업도 가능, 자족공동체 꿈꿔
공동체주택은 주거공간과 더불어 독립된 공동체 공간이 있는 주택을 일컫는다. 입주민들은 규약을 마련해 공동의 생활 문제를 풀어가며 공동체 활동을 한다. 이런 공동체주택 7채가 한 번에 들어선 마을형이 서울에 처음 생겼다. 바로 중랑구 겸재로에 있는 공동체주택마을 ‘도서당’이다. 주거에 공동체와 책 문화를 더해 마을을 만들었다.
서울시는 2015년 공공임대, 민간임대, 민관협력 등의 방식으로 공동체주택 사업을 시작했다. 이듬해 겸재로 도로 확장 뒤 남은 자투리 필지(1625㎡)를 공동체주택으로 활용할 계획을 세웠다. 겸재로는 면목2동사거리에서 중랑천으로 가는 가로길이다. 경의선 중랑역, 상봉역과 지하철 7호선 면목역에서 걸어 15분 거리에 있다. 이 길에 지난 3월 7채의 신축건물이 준공됐다. 노출 콘크리트의 미니멀한 외관의 4~5층 건물이 400m 가로길 중간중간에 들어섰다.
필지에 따라 모양새는 조금씩 다르지만 한눈에 공동체주택마을 ‘도서당’ 건물인 걸 알 수 있다. 건물 앞 색색깔의 도로표지판엔 건물명과 층별 안내가 적혀 있다. 도서당 이름 앞엔 건물마다 책의 테마(인문학·문화예술·요리여행·어린이·IT영상·소설에세이·디자인)가 붙었다. ‘책을 통해 배움의 기술과 삶의 기쁨을 누리는 도시 속 서당, 책 읽는 집’이라는 모토가 녹아 있다.
사업 추진 방식을 정하고 기본계획과 공모지침을 세워, 통합운영주체를 선정하기까지 3년이 걸렸다. 이 과정에서 서울 첫 마을형 공동체주택으로 콘셉트를 정했다. 도난주 서울시 공동체주택 책임관은 “공동체주택 입주자가 많고 근린생활시설도 있어야 지역에 잘 안착하고 파급력도 생길 수 있어 기존 건물 단위에서 마을 단위로 추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사를 했거나 앞둔 입주민 3명이 5월28일 인터뷰에 앞서 도서당 공용·공동체 공간에 모였다. 입주 2개월째인 뭉흐바야르 오양가씨가 방음시설을 갖춘 마을연습실에서 악보대 앞에 서 있다.
사업 추진 방식은 민관협력으로 이뤄졌다. 서울시가 시유지를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에 현물 출자하고, SH공사는 민간임대업자를 공모로 선정해 토지를 30년, 계약을 연장할 경우 최대 40년간 빌려주는 방식이다. 민간임대업자는 토지 이용료를 내고, 서울시는 대출 알선(보증사, 협약 은행), 대출금에 대한 8년간 이자(연 2% 기준)를 지원해준다.
토지계약이 끝날 때는 건설원가로 SH가 건물을 매입한다. 통합운영주체로 경간도시디자인건축사사무소와 유석연 서울시립대 교수팀이 선정돼 2019년 건축허가와 공동체주택 예비인증 통과를 거쳤다. 2019년 8월 착공해 약 20개월 걸려 완공했다. 통합운영주체는 설계, 시공, 입주자 모집, 임대, 공간 관리, 프로그램 기획과 운영을 맡는다.
지난해 예비입주민으로 신청해 공동체 프로그램 기획에 참여하고 있는 진주환씨가 마을 파티룸과 연결된 루프트톱 벤치에 앉아 웃고 있다.
5월28일 디자인 도서당의 1층 카페에서 3명의 입주민을 만났다. 모두 20~30대의 1인 가구다. 강수종(27)씨는 한국독립운동사를 전공하는 박사과정생이다. 그는 4월 이사할 집을 찾다 SH공사 누리집에서 공동체주택을 알게 돼 도서당 입주 신청을 했다. 방 하나에 거실 겸 부엌이 있는 독채를 쓸 수 있는 공간이다.
강씨는 학교 근처 고시원에서 살다 조금 나은 환경에 주거비 부담도 줄일 수 있는 곳을 찾았다. 도서당이 새 건물에 주거환경도 괜찮고, 전공을 살려 공동체 프로그램에 참여해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지원했다. 그는 “방에 넓은 창문도 있고, 근처에 중랑천이 있어 마음에 들었다”며 “여러 분야의 전문가나 관심 있는 입주민들이 모여 공동체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는 점도 끌렸다”고 덧붙였다.
진주환(35)씨는 마케팅 분야에서 7년 정도 일한 기획자이자 여행 프리랜서다. 입주계약을 끝내고 이사 날짜를 조율하는 중이다. 그는 지난해 여름 청년주택 관련 지원 사업을 찾아보다가 공동체주택을 알게 됐다. 1인 가구로 오래 살아, 이웃과 교류하며 프로그램을 함께 하는 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한국독립운동사 전공을 살려 공동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싶은 강수종씨가 인문학 라운지에서 책을 펼쳐보고 있다.
진씨는 30년 넘은 소형아파트에 전세로 살았는데 단열이 잘되지 않아 겨울철 계량기 동파로 여러 차례 고생한 경험이 있어 무엇보다 신축건물인 점에 끌렸다. 지난해 예비입주자 인터뷰를 거쳐 입주자 프로그램 기획에 참여하면서 변화를 느낀다. 그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던 이전과 달리 다양한 사람을 알게 되고 동네 활동도 하면서 생활이 달라졌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뭉흐바야르 오양가(25)씨는 도시설계를 전공하는 박사과정생이다. 몽골 유학생인 그는 친구 2명과 함께 4월부터 소설·에세이 도서당 셰어하우스에서 살고 있다. 입주해 두 달을 산 오양가씨는 “주거비 부담은 줄고 삶의 질은 올라갔다”고 웃으며 말했다. 월세가 이전보다 10만원 정도 줄었고 주거환경은 좋아졌단다. 그는 “이전엔 원룸이라 음식을 하면 온 집에 냄새가 배어 지내기가 힘들었는데, 이젠 공유주방에서 음식을 할 수 있어 냄새 걱정을 더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 친구들과 함께 지내 덜 외롭고, 중랑천을 따라 산책로로 학교에 갈 수 있어 생활에 활력도 생겼다.
도서당 입주 신청자격은 만 20살 이상 무주택 가구 구성원이다. 공동체주택 규약에 동의하고 도서당 테마별 활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가구마다 연 2회 공동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이다. 입주신청서를 내면 서류심사로 적격 여부를 판정한 뒤, 통합운영주체와 SH공사 공동체주택 코디네이터가 화상으로 인터뷰한다. 주로 지원 동기와 입주 뒤 활동 계획을 묻는다.
세 사람은 “인터뷰한다고 해 긴장은 좀 됐지만, 막상 해보니 편안하고 재미있었다”고 했다. 그들은 인터뷰에서 나눈 얘기를 전했다. 진씨는 그간의 일 경험을 살려 이웃들과 함께 여러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겠다고 했단다. 주변의 산, 공원, 하천 등을 활용해 마을탐방 코스를 운영하는 등의 아이디어를 덧붙였다.
강씨는 이웃들과 독서모임을 하거나 한국 독립운동 관련 영화를 함께 보고 얘기도 나누겠다는 구상을 내놓았단다. 역사 왜곡에 대한 주민이나 청소년의 이해를 돕는 일도 적극적으로 해볼 생각이다. 오양가씨는 한글을 배운 경험을 살려, 어르신 대상 한글과 글쓰기 강좌를 열어볼 계획이다. 그는 “입주 인터뷰를 하면서 공동체 프로그램과 활동에 대한 방법을 함께 찾을 수 있었다”고 했다. 세 사람은 “모든 가구의 입주가 끝나고 집단면역이 생겨, 공동체 활동을 하는 모습을 떠올리면 벌써 설렌다”고 웃으며 말했다.
도서당 주택 7채 가운데 2채는 셰어하우스이고 나머지는 다세대주택이다. 다세대주택 대부분은 1~2인 가구용이고, 이 가운데 전용면적 30~50㎡ 이하가 22호 있다. 호수는 통합운영주체와 상호 협의해 정한다. 주택 보증금과 월세는 주변 시세의 90% 수준이다. 준공 시점 감정평가 금액 기준이다. 입주자는 신청자격에 따라 대출과 이자 등 금융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최초 계약 기간은 2년, 재계약 요건을 유지하면 최장 20년 살 수 있다.
공동체 공간으로는 마을 빨래방이 2곳 있고, 4명이 앉을 수 있는 인문학 라운지, 루프트톱과 연결된 마을 파티룸, 전신 거울과 방음방이 있는 마을 연습실, 유튜브 촬영을 할 수 있는 마을 창작소 등이 있다. 공간 활용계획은 통합운영주체가 입주자들과 협의해 정한다. 비영리 근린생활시설 2호도 들어선다. 임대료가 없는 근린생활시설을 활용해 입주자들이 영리활동을 할 수 있다. 통합운영주체인 유석연 교수는 “공간을 활용해 입주자 간 교류와 수익활동으로 자족공동체를 지향한다”고 했다. 그는 “대관 등으로 적정한 수입이 생기면 입주민의 주거비 부담을 줄여주는 방안도 찾으려 한다”고 덧붙였다.
겸재로엔 공동체주택에 관심 있는 시민이나 사업자들이 상담과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공동체주택 지원허브 ‘집집마당’이 있다. 집집마당은 올해 1월 운영을 시작했다. 교육, 홍보, 상담, 커뮤니티 프로그램 지원 등의 업무를 한다. 김영길 집집마당 센터장은 “앞으로 공동체주택 사업 활성화를 위해 더 많이 알리고, 커뮤니티 공간이 잘 운영되도록 지원해나가려 한다”고 했다.
도서당은 5월부터 입주자를 상시 모집하고 있다. 지난해 예비입주자 모집에서 약 60명이 입주신청서를 내고 인터뷰했는데, 성악가, 작가, 요리사 등 경력이 다양했다. 하지만 사업 추진 일정이 늦어지면서 대부분 입주로 이어지지 못했다. 유 교수는 “도서당 취지에 맞는 예비입주자들이 함께 못해 많이 아쉽지만, 그래도 공동체살이에 관심 있는 사람이 많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고 했다. 입주 모집 공고는 카카오톡플러스채널(@doseodang), 서울시 공동체주택 플랫폼(soco.seoul.go.kr) 등에서 볼 수 있다.
“공동체 활성화와 대안적 삶 가치 확산” 마을카페에서 시작된 변화의 날갯짓 아름다운재단 만나 ‘지리산권’으로
지역의 활동가 발굴하고 키우고 연결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의 실험 ‘눈길’ “일상의 작은 변화가 사회 바꿀 것”
2019년 10월 ‘작은 변화의 씨앗을 나누는 숲’을 주제로 열린 제5회 지리산포럼 참가자들이 손을 흔들고 있다. 지리산포럼은 지금과는 다른 사회를 열망하는 사람들이 지리산에 모여 아이디어와 경험을 나누는 행사로, 사회적협동조합 ‘지리산이음’이 주관한다.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 제공
서울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교사로 일하던 김한범씨는 2016년 뭔가에 이끌리듯 지리산 자락에 스며들었다. 12년간의 교직생활을 뒤로하고 연고도 없던 경남 산청으로 덜컥 귀촌을 한 것이다.“이곳 산청에 귀농·귀촌을 한 분들이 많고, 여러 가지 대안적인 움직임이 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어요. 그런 곳이라면 내가 하려는 일에 공감하고 지지해주실 분들이 있지 않을까 기대했던 것 같아요.”
그가 마음에 두었던 일은 청소년 공간을 만드는 것이었다. 기존 학교교육 시스템에 회의를 품고 있던 터여서 갈증이 컸다. 여러 후원자들의 도움에 힘입어 2018년 10월 산청 청소년 자치공간 ‘명왕성’이 문을 열었다. 명왕성 설립과 운영 과정에서 가장 큰 도움을 준 곳은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이하 변화센터)였다. 명왕성의 코디네이터로 일하는 김씨는 변화센터가 ‘지리산권’의 공익활동을 활성화하기 위해 지원하는 ‘작은 변화 활동가’이기도 하다. 지리산을 둘러싸고 있는 5개 시·군(전북 남원, 경남 함양·산청·하동, 전남 구례)을 뜻하는 지리산권에는 김씨를 포함해 15명의 작은 변화 활동가가 있다. 명왕성과 같은 커뮤니티 활동이나 새로운 실험들이 활발하게 이뤄진다.
■ “사람을 지원한다”
변화센터는 지리산권의 공익활동 지원을 통해 지역사회의 ‘작은 변화’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설립된 ‘변화지원조직’이다. 2018년 3월 아름다운재단과 남원지역 사회적협동조합 ‘지리산이음’이 함께 설립해 운영 중이다. 변화센터의 가장 큰 특징은 ‘사람’에 집중한다는 점이다. ‘지역을 바꾸는 것은 사업이 아니라 사람’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임현택 센터장은 “우리 센터의 역할은 선한 의지를 가진 사람을 찾아내고, 그들이 지역의 변화를 위해 벌이는 일이 잘 진행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느 중간지원조직과는 달리, 지원에서 유연성을 발휘한다는 점도 돋보인다. 까다로운 조건 탓에 원하는 활동을 못하는 일이 없도록 최대한 활동 주체의 자율성을 보장한다.
지난해 4월 열린 작은 변화 활동가 워크숍을 마친 뒤 활동가들이 다른 이들이 그려준 자신의 얼굴을 손에 든 채 기념 쵤영을 하고 있다.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 제공
‘작은 변화 활동가’ 지원 프로그램은 ‘사람 지원’이라는 변화센터의 지향을 잘 보여준다. 작은 변화 활동가는 ‘지리산권’에 변화의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5개 시·군에 한 곳당 3명씩 모두 15명이 활동 중이다. 자신이 사는 지역의 변화를 이끌면서 각자 하고 싶은 공익활동을 한다. 마음껏 활동을 펼칠 수 있도록 변화센터가 정기적으로 활동비를 지급한다. 새로운 활동에 나설 때는 씨앗기금을 지원한다. 활동가들 간의 교류와 소통, 교육 프로그램 등을 통해 스스로 성장할 기회도 주어진다.‘사람’과 ‘자율성’이라는 지향점은 명왕성의 운영 방식에서도 엿볼 수 있다. 명왕성은 변화센터의 지원을 받는 ‘작은 변화’의 현장 가운데 하나다. 명왕성의 주인은 청소년들이다. 예산 편성과 집행, 이용 규정 등 모든 것을 청소년 운영진이 결정한다. 비청소년인 코디네이터는 조력자 역할에 머문다. 이곳에서 가장 ‘핫한’ 것은 ‘꿀알바’ 프로젝트다. 청소년의 자발적인 활동을 급여로 지원하는 사업이다. 친구에게 공부 가르쳐주기, 영화평 쓰기, 지역 단체 행사 도와주기 등 하고 싶은 일(알바)을 신청하면 청소년 운영진이 심사를 거쳐 급여를 지급한다. ‘쓸데없는 일’로 치부되곤 하는 청소년들의 활동에 대해 가치를 인정해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코디네이터인 김한범씨는 “명왕성은 청소년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쉴 수 있는 공간이다. 다만,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후원해준다”며 “이런 새로운 실험을 시작하는 데 변화센터의 지원이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꿀알바 프로젝트에는 변화센터의 씨앗기금이 지원됐다.
지난해 10월 남원시 산내면 마을카페 ‘토닥’에서 2020 지리산포럼의 한 주제섹션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지리산포럼은 ‘로컬 라이프’를 주제로 열렸다.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 제공
■ 마을카페에서 시작된 들썩임
지리산권 작은 변화의 날갯짓은 자그마한 마을카페에서 시작됐다. 2012년 남원시 산내면 주민들이 만든 ‘토닥’이다. 산내면은 1998년 시작된 실상사 귀농학교를 통해 귀농자가 꾸준히 모여든 곳이다. 주민 2000여명 가운데 500여명이 귀농·귀촌자다. 마을카페를 만들자는 논의도 귀농·귀촌자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부산의 시민단체에서 일하다 귀촌한 임현택 센터장도 그중 한명이다. 토닥에서는 영화 상영, 크고 작은 공연, 강연 등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처음엔 낯설어하던 주민들의 발길도 차츰 잦아졌다. 문을 연 지 1년이 채 안 돼 토닥은 마을 커뮤니티 활동의 구심점으로 자리잡았다.산내면 사람들은 토닥의 성공을 마중물 삼아 더 큰 꿈을 꾸기 시작했다. 지리산 주변 5개 시·군을 하나로 묶는 ‘지리산권’ 구상이다. 2013년 아름다운재단의 ‘변화의 시나리오 지원사업’에 이런 구상을 담은 ‘지리산 커뮤니티 이음’ 프로젝트 제안서를 제출해 선정됐다. 지역공동체 활성화와 대안적 삶의 가치 확산을 위해 ‘지리산이음’이라는 단체도 설립했다. 임현택 센터장은 “토닥의 경험을 지리산권으로 확장해, 지리산에 깃들여 사는 다양한 사람들의 삶과 이야기를 연결해보고 싶었다”고 ‘이음 프로젝트’의 취지를 설명했다.지리산이음은 지리산권 곳곳에서 커뮤니티 활동을 하는 단체와 사람들에 대한 조사를 시작으로, 마을신문·공간·적정기술 등 마을공동체에 필요한 정보를 공유하는 각종 워크숍을 진행했다. 2014년에는 시골살이를 위한 정보와 기술, 지혜를 나누는 지리산 시골살이학교를, 2015년에는 전국의 혁신적인 활동가들이 모여 한국 사회의 대안적 미래를 상상하는 지리산포럼을 열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토닥은 ‘거점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비영리 임의단체였던 지리산이음의 조직 형태도 공익법인인 사회적협동조합으로 바뀌었다.
지난해 10월 열린 2020 지리산포럼 기간에 남원 작은변화포럼이 로컬섹션의 하나로 연 원탁토론이 끝난 뒤, 참가자들이 남원의 미래에 대한 소망을 적은 종이비행기를 날리고 있다. 원탁토론은 ‘포스트코로나 시대와 남원 시민사회의 역할’을 주제로 진행됐다.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 제공
■ 작은 변화가 아름답다
이음 프로젝트의 ‘시즌2’라 할 수 있는 변화센터 설립은 시민사회 지원의 패러다임 전환을 모색하던 아름다운재단의 구상에서 비롯됐다. 바로 ‘지역의 작은 변화’ 지원이다. 홍리재희 아름다운재단 지역사업팀장은 “여러 해 동안 전국을 대상으로 공모지원사업을 해왔는데 수도권이 아닌 지역사회의 참여가 너무 저조했다. 지역에 그런 일을 할 만한 주체가 없었던 거다. 사람을 키우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지역에서 활동 주체를 발굴하고 그들의 역량을 강화하고 서로 연결하는 일을 할 ‘거점 조직’이 필요하다고 봤다는 얘기다. 거점 조직 모델 개발을 위한 6개월간의 현장조사를 거쳐 후보 지역 4곳 중 지리산권이 선정됐다. 마침 그곳에는 산내면을 넘어 지리산권으로 점차 활동 보폭을 넓혀가던 지리산이음이 있었다.두 단체의 협업으로 문을 연 변화센터가 맨 처음 벌인 일은 지역의 활동가들을 찾고 연결하는 것이었다. 5개 시·군에 한명씩 협력 파트너를 두고 지역 사람들을 두루 만날 수 있도록 지원했다. 유지선 남원 작은변화포럼 대표도 그중 한명이다. 유 대표는 “남원지역의 활동가들을 만나 인터뷰를 해보니 다들 각자 분야에서 열심히 활동하는데 네트워크가 안 되어 있는 게 문제였다. 한달에 한번 저녁에 식사하면서 이야기하는 모임에서 시작해 점차 네트워크를 만들어 나갔다”며 “사람을 키우는 것을 중시하는 변화센터의 지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남원지역 시민단체 18곳이 참여한 작은변화포럼은 이런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다.변화센터의 공모지원사업 중에는 ‘작은 변화의 시나리오’ ‘작은 교육’ ‘작은 조사’처럼 ‘작은’이라는 말이 들어간 것이 많다. 사회의 변화가 사람과 일상의 작은 변화에서 시작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산내면에서 직조공방을 운영하며 지난해 ‘우리 동네 수공예 작업자들’에 대한 ‘작은 조사’ 활동을 한 조회은씨는 “변화센터 지원사업의 장점은 문턱이 높지 않아서 누구나 해보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이라며 “일상의 작은 변화가 큰 변화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리산 사람들은 올해 다시 한번 도약을 준비 중이다. ‘작은 변화 베이스캠프 들썩’이라는 공간을 마련하는 일이다. 전국 곳곳에서 작은 변화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모여 더 나은 변화를 모색하는 공간이다. 변화의 ‘물음표’가 지리산을 만나 ‘느낌표’가 될 수 있도록.
인도 기본소득 사회실험 설계자 “창업·경제활동 늘고 취학률도 상승 효과 검증 넘어 공론화 작업 큰 의미”
충남 장고도·제주 행원리 등 공유자산 활용 수익배분 눈길
“경기도 농촌기본소득 실험 때 지역 공동체 미치는 영향 살필 것”
지난 29일 서울 중구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의 복합문화공간 ‘채비’에서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등이 주최한 제1회 농촌기본소득 정책포럼이 열리고 있다. 왼쪽부터 사회를 맡은 조현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장, 토론 좌장을 맡은 이원재 랩2050 대표, 발제자인 강제윤 섬연구소 소장. 기조 발제자인 사라트 다발라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의장을 비롯해 나머지 발제자와 토론자들은 줌을 통해 토론에 참여했다. 이주형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보조연구원
경기도가 올해 하반기에 실시할 계획인 농촌기본소득 사회실험의 의미와 쟁점을 짚어보는 자리가 마련됐다. ‘지역공동체 중심 기본소득 사회실험의 의미와 쟁점'이란 주제로 지난 29일 개최된 제1회 농촌기본소득 정책포럼에서 인도의 기본소득 실험, 국내 장고도(충남 보령)와 제주도에서의 공유자산 수익 분배 등의 사례가 소개되고 시사점이 논의됐다. 이번 포럼은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경기도의 농촌기본소득 사회실험을 주관하는 경기도농수산진흥원,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민간 정책연구소 랩2050, 고려대 정부학연구소, 지역재단과 함께 마련했다. 일부 발제자와 토론자는 온라인으로 참여했다.
<인도 기본소득 실험의 교훈>
이날 기조 발제자로 나선 사라트 다발라는 인도의 기본소득 사회실험의 설계자이자, 전세계적으로 기본소득 논의를 주도하고 있는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의 의장을 맡고 있다. 그는 인도와 나미비아에서 실시된 기본소득 실험의 시사점을 전했다. 나미비아는 2008년부터, 인도는 2011년부터 12개월간 2천명에게 각각 월 12달러와 4달러씩을 지급하는 기본소득 실험을 실시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의 예상과는 달리 기본소득을 받은 사람들은 게을러지지 않았다. 창업과 경제활동이 늘었고, 새로운 교통시설이 생겨났으며 취학률이 올라가고 가계부채가 감소하는 등의 효과가 있었다. 특히 나미비아에선 알코올의 소비가 늘어나지 않았다”고 말했다.사라트 다발라는 기본소득 사회실험에 이은 정책의 변화도 소개했다. 그는 “사회실험 이후에 실제 인도의 지방정부가 2018년부터 모든 농민에게 농지 면적에 비례한 현금수당을 지급하기 시작했고, 이 정책으로 해당 정당이 지방 의회의 4분의 3을 석권했다. 하지만 농촌 지역에서 땅의 소유주들에게만 지급이 되면서 소작농들과 농민이 아닌 자들이 배제됐고, 기본소득 논의가 주로 ‘배제된 사람’들에게 초점이 맞춰져 진행됐다”며 “기본소득 사회실험을 진행할 때 개별성 원칙이 잘 지켜질 필요가 있고, 지역에서 배제되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 인도에서 얻을 수 있는 시사점”이라고 밝혔다.사라트 다발라는 증거 수집을 넘어 사회적 대화를 촉진하는 사회실험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과거 노예제 폐지나 여성 참정권을 쟁취할 때엔 미리 소규모로 사회실험을 실시하지 않았다. 이런 정책은 가치와 철학, 인권을 기반으로 실시됐다. 분명 정책 효과라는 근거는 중요하지만, 증거만 가지고 정책이 실시되진 않는다. 인도에선 사회실험 이후에 정치적 운동이 일어났고, 무엇이 나은 방안인지를 면밀하게 검토하고 공론화하는 작업이 있었다”고 전했다. 그가 강조하는 사회실험의 또 다른 역할은 대중과 언론, 전문가, 정당 간에 어떤 대안이 바람직한지를 논의하는 대화를 촉발한다는 점이다. 그는 “한국에서도 지난 5년간 성남시의 청년배당, 경기도의 청년기본소득, 코로나 사태 속에서 전국민 재난지원금 등의 실험적 사례들이 있었고, 그로 인해 소수의 학자들만 논의하던 기본소득이 정치권과 대중의 주목을 받는 의제가 되었다”고 말했다.
<해삼 씨앗이 섬 주민 기본소득이 되기까지>
이날 토론회에선 지역 공동체가 공유한 자산에서 나오는 수익을 분배하는 사례들도 소개됐다. 강제윤 섬연구소 소장은 장고도에서 해산물 채취로 얻는 수익을 섬 주민들에게 배당하는 사례를 설명했다. 장고도는 81가구, 200여명의 주민이 사는 작은 섬으로 1993년부터 해삼 어장의 수익을 배당해 2019년엔 가구당 연간 1100만원이 지급됐다. 강 소장은 “해삼은 다른 어류 양식과는 달리 씨앗만 뿌리면 알아서 해초를 먹고 자란다. 성체가 될 때까지 주민이 신경 쓸 일이 하나도 없고, 다 자란 것을 채취만 하면 된다. 장고도 주민들은 거의 노동을 투입하지 않는 해삼 양식으로 기본소득을 받고, 두달간 열차례 바지락을 채취하는 노동소득으로도 동일한 금액을 배당받는다. 기본소득과 노동소득을 합쳐 마을 공동체로부터 받는 배당액이 가구당 연 2000만원 정도 되기 때문에 양식업을 하느냐에 따라 소득 격차가 큰 다른 섬들과는 달리 장고도 주민들은 균등하고도 안정적인 소득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충남 장고도에서는 해산물 채취로 얻는 수익을 주민들에게 배당하는 기본소득 실험이 진행 중이다. 강제윤 섬연구소 소장 제공
하지만 장고도 주민들이 균등한 배당액을 받기까지는 지난한 과정을 겪었다. 애초 장고도의 어장은 양식업자에게 임대를 주고, 마을 공동체인 어촌계가임대료를 받는 구조였다. 강 소장은 “(누구의 소유도 아닌) 어장을 임대해주는 것이 불법인데다, 임대료가 1983년 당시로서도 터무니없는 가격인 연 50만원이었다”며 “1983년 양식업자가 임대료를 내리려고 시도하자, 새로 부임한 청년 이장이 주민들을 설득해 어장을 되찾았고, 10년간은 어장에서 나온 수익을 마을 재산으로 관리하며 대부업 등에 사용했다. 논란 끝에 1993년에 처음 배당이 시작되자 더 이상 어장 수익에 대한 주민들의 불만이 사라졌고, 어장이 공동의 관심으로 잘 관리되면서 매년 배당액이 커졌다”고 전했다. 공정한 분배체계가 공유자산의 관리에 도움이 된 것이다.장고도와 마찬가지로 제주도에서 공유자산을 통한 기본소득의 가능성을 발표한 김자경 제주대 학술연구교수는 “제주도는 목장과 어장의 수익을 마을 공동체가 함께 운영하며 수익을 배분한 전통이 있다. 예를 들어 (해초류인) 톳과 우뭇가사리는 공동 작업해 배분하고, 미역은 개인이 채취한 만큼 가져가는 등 101개의 어촌계가 각기 나름의 관습과 질서가 있었다”고 설명했다.최근 제주에서 새로운 공유자산으로 주목받는 것은 풍력발전의 원동력인 ‘바람’이다. 김 교수는 제주도 동쪽 지역의 구좌읍 행원리 풍력발전 단지를 사례로 제시했다. 그는 “행원리의 6개 마을이 풍력발전 수익의 일부를 배당받고, 기금으로 적립하고 있다”며 “마을 내 갈등과 이견이 생길 가능성이 항상 존재하고, 이로 인해 마을의 의사결정 권한을 특정인이 독단적으로 행사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고 전했다. 새롭게 등장한 공유자산의 수익을 적절하게 분배하는 체계를 마련해야 하는 숙제가 남은 것이다.
제주 행원리에서는 풍력발전 수익 일부를 주민들에게 배당하고 있다. 김자경 제주대 교수 제공
<분배체계가 지역 주민에 미치는 영향 고려>
경기도 농촌기본소득 사회실험을 설계한 지역재단의 이창한 이사는 기본소득이 지역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하게 살펴보는 것이 실험의 주요 목적이라고 밝혔다. 그는 “농촌기본소득이라는 이름 때문에 많은 분들이 농민에게만 혜택을 주는 것이냐고 오해를 한다. 하지만 경기도의 농촌 지역에도 농업인의 비중은 전체의 16% 정도에 불과하다”며 “농업인과 비농업인이 농촌이라는 같은 생활공간에서 서로 어떤 상호작용을 하는지가 중요하다. 장고도처럼 분배체계가 주민들의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을 관찰할 것”이라고 말했다.이날 토론자로 나선 박경철 충남연구원 연구위원은 “2019년부터 여러 지자체에서 농민수당을 도입하고 있고, 농민을 대상으로 한 농민기본소득 논의가 있었다. 하지만 농촌에는 농민이 아닌 주민들도 농업 활동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고 있고, 함께 지역의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농촌의 활성화를 위해선 모든 농촌 주민에게 지급 대상을 확대하자는 개념이 농촌기본소득”이라고 설명했다.이지은 기본소득신진연구자네트워크 대표는 “농촌기본소득 사회실험은 분배 정의를 넘어 기후정의 측면에서 재평가될 수 있다”며 “농촌이라는 특수성을 반영해 이 실험으로 커먼스(공유자산)를 재발견하고, 지속 가능한 작은 경제 모델을 발굴하며 생태적인 페미니즘을 활성화하는 논의로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이날 토론의 좌장을 맡은 이원재 랩2050 대표는 “경기도 농촌기본소득 사회실험은 핀란드에서 실시된 기본소득 실험과 함께 독특한 지위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며 “핀란드에서도 집권한 총리가 정책실험을 실시한 것이었고, 한국에서도 기본소득이 정치권의 주요 의제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실시되는 실험”이라고 말했다. 사회실험의 결과에 따라 국가 전체의 정책이 좌우될 수 있는 환경이란 의미다.
이달 말 서울 중랑구 면목동에 들어서는 공동체 주택 마을 1호 ‘도서당’의 지원센터인 집집마당. 서울시 제공
서울 중랑구 면목동에 면접을 봐야 입주가 가능한 ‘공동체 마을’이 생겨난다.서울시는 이달 말 중랑구 면목동 중랑천 겸재교 인근에 ‘공동체 주택 마을’ 1호가 7개 동 38호 규모로 준공된다고 16일 밝혔다.공동체 주택은 서울시가 시유지를 빌려주고 민간사업자가 설계·시공·운영하는 주거시설로, 마을 형태로 조성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공동체 주택은 ‘책’을 콘셉트로 해 ‘도서당’으로 이름 지어졌다. 1층에는 서점·식당·카페 등 상업시설이 들어서고, 7개 동 사이사이에는 의자와 꽃·나무가 어우러진 ‘책 읽는 거리’가 조성된다. 입주는 다음달 중순부터다.
시는 지난 11월부터 인문학, 문화예술, 요리·여행, 어린이, 아이티(IT)·영상, 문학창작, 디자인 분야의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입주자 15가구를 선정했고, 이달 15일부터 비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입주자를 모집하고 있다. 다만, 입주자는 20살 이상 무주택자여야 하며, 이 주택 사업자 등으로 구성된 심사위원 인터뷰 면접을 통과해야 한다. 공동체 규약 등에 대한 동의와 이해 등이 선발 포인트라고 한다.시는 지원센터인 ‘집집마당’도 설치해 내년 2월부터 운영한다. 1층은 서재와 마당 정원으로 쉴 수 있는 공간이고, 2층은 주민들이 모여 교육·상담·회의를 할 수 있는 교육실, 3층은 직원 사무실, 4층은 옥상 텃밭 등으로 구성돼 있다. 집집마당에서는 공동체 주택에 관심 있는 시민들의 상담도 이뤄진다. 또 집집마당 옆에는 ‘앞마당 숲’을 설치해 주민들이 동네캠핑 등 소규모 야외모임 공간으로 활용하도록 했다.서울시 관계자는 “이번 공동체 주택 마을 조성을 계기로 노후주택이 밀집한 저층 주거지로 인식됐던 동네가 활기찬 동네로 재탄생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산골에 달랑 집 두 채. 경북 문경에 사는 이지은 작가 가족과 지인 가족의 집. 사진 이지은(에른) 제공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삶을 꿈꿨다. 하지만 현실은 비 오는 날, 오래된 집에 하루 만에 피어올라 온 곰팡이를 박멸하느라 골몰하는 날들의 연속이다. 전북 김제의 115년 된 시골집을 사 고치며 사는 이야기를 담은 유튜브 ‘오느른’ 채널을 운영하는 <문화방송>(MBC) 최별(31) 피디의 사연이다. 유유자적 부러워 보이기만 하는 ‘프로시골러’들에게도 우여곡절이 있었다.
그런데도 도시의 쫓기는 삶이 싫어서, 코로나19 이후 북적이는 도시를 피하고 싶어서, 천정부지 치솟기만 하는 집값에 인생이 저당 잡히고 싶지 않아서 시골 혹은 오지로 스며들고 싶다면 이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여보자. 마음은 먹었지만 집이나 땅 구하기부터, 가서 무엇을 해서 먹고 살아야 할지, 막연한 꿈을 꾸지만 어디서부터 계획을 세워야 할지 막막한 이들에게도 도움이 될 꿀팁을 전한다.최별 피디(시골 생활 4개월차), 경북 문경 외딴 산골 생활을 웹툰과 책 <도시 소녀 귀농기>를 펴낸 작가 이지은(필명 에른, 시골 생활 5년차), 경북 봉화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이유진·송태훈 부부(시골 생활 7년차), 시골집 소개 유튜브 ‘오지는 오진다’ 채널 운영자인 정태준씨(전북 나주 출신)에게 좌충우돌 상황을 줄일, 시골살이 노하우를 전해 들었다.
최별 피디가 고쳐 가며 사는 115년 된 시골집. 사진 최별 제공
Q 시골이나 오지도 가지각색, 너무 광범위한데 나에게 맞는 지역 어떻게 찾나?
A도시와 왕래가 잦은 이는 도시로부터의 거리를 따져라. 경제적인 요건이 중요하다면 부동산 가격을 우선순위에 두자. 자연적인 환경이 중요한 이라면 산과 들, 바다 중 어디를 고를 것인가 정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살 지역의 범위를 좁혀보자. 여기서 유의할 점은 수도권이나 대도시와 가까울수록 땅값이 비싼데, 그렇다고 도시로부터 실제 이동 시간도 짧아지는 건 아니다. 최별 피디는 직장이 있는 서울과 가까운 강화도를 가장 먼저 고려했다가 집값 등의 이유로 수도권에서 먼 지역으로 시선을 옮겼다. 현재 터전을 잡은 김제 집은 강화도 집값의 절반 가격이었다. 그런데 차량 이동 시간은 얼추 비슷했다. 강화도는 교통 체증으로 인한 실제 이동 시간은 김제와 비슷하게 약 3시간 정도 걸렸다고 한다. 흔히 교통 오지로 불리는 경북 봉화, 강원 태백 등도 의외로 서울에서 3시간 안팎이면 도착한다.
Q 살고 싶은 지역을 정했다면, 집은 어떻게 구하나? 온라인에 올라온 부동산 매물 믿을만한가?
A시골집이나 오지 땅 시세는 도시에서 아파트 매매가를 알아보듯 손쉽게 알아보기가 어렵다. 온라인상 정보로는 시골 빈집, 농가, 폐가 등을 싼값으로 소개하는 블로그, 유튜브 게시물 등이 있다. 온라인에 올라온 저렴한 매물 가운데 일부는 미끼 상품일 경우도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매물로 올라온 집을 보러 갔는데 정작 가면 이미 팔렸거나 없는 매물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집 주변 환경에 대한 정보 또한 중요하다. 인근에서 비료나 축사 냄새가 심하게 나거나, 집 근처가 모두 폐가라서 안전이 걱정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정보는 직접 눈으로 봐야 확인이 가능하다. 귀농귀촌종합센터(returnfarm.com)에서는 “농가 주택의 경우 대지가 아닌 농지에 지은 집일 수 있고, 땅 주인과 건물주가 다르거나 무허가 건물인 경우도 있으므로 토지대장, 건물등기부등본, 건축물대장을 꼭 확인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가고 싶은 지역의 농촌 빈집 정비 담당자(건축과 등)에게 문의하는 것도 안전한 방법이다.내가 살 집이기에, 전국구 발품을 피할 순 없다. 다만 집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을 그렸다면 헤매는 기간을 줄일 수 있다. 최별 피디는 주변의 간섭이 적고 채광이 좋은 집을 조건으로 삼았다. 그가 구한 집은 양지바른 논 한가운데 있는 집이다. 해가 잘 드는 집, 이웃과 떨어져 있는 집, 논밭을 끼고 있는 집, 산에 있는 집 등 내가 살고 싶은 집을 상상해보자. 봉화에 사는 송태훈씨의 조언도 귀 기울일 만하다. 그는 “임대로 집을 먼저 구해 지역이 자신과 잘 맞는지 살아보면서 알아보는 게 좋다. 그러면서 시골살이도 적응이 된다. 지역에서 정보를 얻어 살 집이나 땅을 구하는 것을 추천한다”고 말했다. 일부 지자체의 경우 농촌체험 등을 원하는 귀농 희망자에게 임시 거처를 제공하는 ‘귀농인의 집’을 운영하기도 하니 이를 활용해도 좋다.
최별 피디의 집에서 보이는 시골집 풍경. 사진 최별 제공
Q 살고 싶은 지역에 연고도 없고, 지역 공동체에 낄 자신은 더 없다면? 이럴 땐 지역 정보를 어디서 얻나?
A문경에 사는 이지은 작가는 “헤매지 않으려면 지자체 농촌개발과 등 관련 부서에 가보라”고 권했다. 각 지역에 있는 농업기술센터, 농림축산식품부 산하 귀농·귀촌종합센터에서도 정보를 얻을 수 있다. 1년에 서너번씩 열리는 귀농·귀촌 박람회도 도움이 된다. 지자체별로 상담 부스가 있어 지역의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지은 작가는 “청년 세대가 관심을 갖고 문의하면 어디든 엄청 환영해줄 것”이라며 귀띔하기도 했다.
Q 오래된 시골집 고치기와 내 집 짓기, 어느 쪽이 더 좋을까?
A오래되거나 비어 있어 관리가 되지 않았던 빈집의 경우, 비용이나 투입하는 노동력 등이 집 짓는 것 이상일 수도 있다. 전남 나주에 가족 대대로 내려오는 시골집을 고치기 시작한 정태준씨는 끝없이 들어가는 수리비에 잠시 수리를 중단했다. 최별 피디의 경우 집수리비가 집값을 넘어섰다고 한다. “지금까지 굵직한 수리비가 5100만원이었다.(집 구매 비용은 4500만원) 시골집이라 완벽하게 보수가 안 되고 살면서 계속 고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집을 짓는 게 더 쉬울 수는 있었겠지만, 지붕 아래 서까래 등 오래된 집이 주는 정취가 있다. 경제적인 선택은 아니지만 새로운 경험을 해보는 것도 재밌고, 이제는 집이 살아 숨 쉰다는 느낌이 들어 좋다”고 전했다.
반듯하진
않지만 정취 있는 전남 나주 시골집 풍경. 사진 정태준 제공
Q 전화와 인터넷이 연결 안 되는 곳, 어떻게 해결하나?
A 인터넷 연결은 어디든 가능하지만, 한편으론 도시에서처럼 콜센터에 전화해 주소만 불러주면 금방 연결되는 건 아니다. 이지은 작가의 경우 산골에 집을 지으며 인터넷 선을 연결하기 위해 집 옆에 전봇대를 새로 세워야 했다. 계약 조건도 도시에서와 달리 복잡했다. 봉화의 이유진씨도 회선 설치를 하는데 시일이 한참 걸려 한동안 전화도, 인터넷도 연결 안 된 상태로 살았다. 잠시 단절된 생활을 즐기고 싶다면 괜찮지만, 집을 얻는 순간 인터넷 설치 등을 알아보는 것이 좋다.
Q 시골살이의 어려움 가운데 하나는 지역 공동체와의 관계라고 하더라.A대부분의 정보가 알음알음 유통된다. 농사를 기반으로 오랜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집을 내놓을 때도 “우리 집 팔려는데 누구 살 사람 없냐”며 부동산이 아닌 옆집에 물어보는 식이다. 외지인에게는 알짜배기 정보가 닿지 않기도 한다. 누구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 다 아는 분위기에 적응하기 쉽지는 않지만, 협소한 공동체인 만큼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반대로 조용히 지내고 싶어 시골에 왔는데, 온갖 마을 행사에 동원되는 건 아닌가 걱정할 수도 있다. 이럴 경우 집을 마을과 적정한 거리두기가 가능한 곳으로 구하는 것도 방법이다.
오래된 시골집을 고치는 데는 비용과 노동력이 새로 집을 짓는 이상일 수도 있지만 오래된 집이 주는 정취가 있다. 사진 정태준 제공
Q 하던 일을 정리하고 왔는데, 지역에서 일자리를 구할 수 있나?
A군청 누리집을 공략하라. 등잔 밑이 어둡다. 지역에 있으면 지인이 많아야 알음알음 정보를 얻을 것 같지만 사실 웬만한 정보는 군청 누리집에 있다. 송태훈씨는 “직업에 대해 발상을 전환한다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곳이 시골이다. 도시에서 했던 일을 고집하지 않고, 생계 수단이라고 생각하면 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아주 넓다. 컴퓨터를 만지는 일부터 농사일까지, 특히 젊은 사람에게는 대부분의 일자리가 열려 있다”고 말했다.
Q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오지살이 왜 좋은가?
A이지은 작가는 “산책할 때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있다는 게 좋다”고 말했다. 그가 사는 곳에는 이 작가의 가족을 포함해 단 두 가구만 산다. 그는 “도시는 집에 혼자 있어도 창밖의 사람, 길에서 들려오는 소음이 있지 않나. 여기서는 오롯이 혼자 있고 싶을 때 그게 가능하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최별 피디도 말했다. “풍경이 주는 힘이 아주 큰 것 같다. 일을 놓지 않았으니 밤새는 일상은 똑같고, 집안일에 텃밭 농사까지 체력적으로는 더 힘들다. 그런데 잠깐 넓은 평야 보면서 쉬거나 텃밭에 작물 자라는 것을 들여다보는, 하루 고작 20~30분밖에 되지 않는 그 시간의 힘이 엄청 크다.”
엄격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염두에 둔다면, 살아보고 싶었던 곳에서 일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평소와 똑같이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는 업무에 집중하고, 출퇴근 시간을 길바닥에서 보내는 것 대신 자연을 즐길 수 있다면 금상첨화이지 않겠는가.코로나19 이후,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한달살기’, ‘일주일살기’ 프로그램 인기가 높아졌다. 지자체 제공 프로그램 대부분은 이용객에게 지역 편의 시설을 제공하거나 비용 등을 지원해 경쟁이 치열한 편이다. 경남 산청, 하동, 통영, 전남 강진, 광양, 강원 고성 등 다양한 지역에서 한달살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올해는 지자체 대부분이 한달살기 프로그램을 마감했으니 내년 초 ‘찜’해 둔 시·도군청 누리집을 부지런히 살펴보자.
미스터멘션 한달살기 지원 이벤트에서 제공하는 숙소. 사진 미스터멘션 제공
지자체 한달살기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으면서 사설 업체에서도 유사한 프로그램이나 이벤트를 진행하기도 한다. 미스터멘션은 한달살기 숙소 예약에 특화한 숙박 플랫폼이다. 1주일, 보름, 한달 단위로 숙박 예약할 수 있고, 미스터멘션 인증 숙박 업소의 경우 방역 수준 등도 확인된 시설이라고 한다. 미스터멘션에서는 현재 한달살기 무료 제공 이벤트도 진행하고 있다. 오는 20일까지 누리집을 통해 지원자 가능하다. 총 4개 팀을 선정해 내년 1월 제주 한달살기를 지원한다. 숙박, 렌터카 혹은 개인 차량 탁송, 항공권 등을 제공한다. 혼자, 친구, 가족, 부부 한달살기 등 테마에 맞춰 지원할 수 있다. 미스터멘션 관계자는 “최근 원격 근무 관련 문의가 늘었다”고 밝혔다.
경주 블루원리조트가 스타트업 창업자들에게 제공하는 스튜디오. 사진 블루원리조트 제공
또다른 제주 한달살기 지원 프로젝트도 눈에 띈다. 맥주 생산업체 ‘제주맥주’가 이달 20일까지 지원자를 받는 한달살기의 경우 ‘내 생애 커다란 쉼표’란 콘셉트로 숙소, 항공권, 렌터카, 방역용품 등 한달살기에 필요한 대부분을 제공한다. 신청은 12월20일까지 제주맥주 누리집에서 가능하며 선정된 인원은 내년 1월11일부터 2월10일까지 제주에서 생활하게 된다. 제주맥주 관계자는 “쉼에 방점이 찍힌 캠페인이지만 그동안 한달살기 등에 접근하기 어려웠던 직장인, 프리랜서 등의 참여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지원자 가운데 총 3팀이 선정될 예정이다.경주 블루원 리조트는 ‘경주 일주일살기’와 ‘한달살기’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번 달 11일까지 신청자를 받아 총 3팀(동반 4인까지 가능)을 선정한다. 두팀을 뽑는 일주일살기의 경우 투숙 기간 동안 소독 및 방역 서비스를 제공한다. 스타트업 창업자를 대상으로 하는 한달살기의 경우, 투숙 서비스를 포함해 리조트 내 공유 오피스인 위드림 시설과 사진 촬영 및 영상 편집 등이 가능한 스튜디오를 이용할 수 있다.
신소윤 기자
* 본 기사는 <‘달방’ 있나요?…코로나 시대 오피스?!>[한겨레 2020년 12월 3일] 의 일부입니다.
[초고령 대한민국 : 신중년 시대] 1부 ③풍요로운 노인의 나라 스웨덴·독일 ‘노인 빈곤율 10%’ 스웨덴, 낸 만큼 받는 ‘NDC 연금’ ‘선별 보충급여’로 기초소득선 채워 큰 재정부담 없이 빈곤율도 개선 독일선 기대수명·생산인구 반영 연금액 조정·보장형 사적연금 병행
덜 풍요롭더라도 노후 걱정 없어야 한국 65살 이상 빈곤율 ‘절반 육박’ 국민연금 보험료 인상 여력 감안 독일·스웨덴처럼 제도 합리화하고 연령별 최저임금 차등 등 취업 유인 기초생보·기초연금 통합도 고민을
게티이미지뱅크.
▶노후 불안 없는 삶은 많은 이들의 꿈이다. 서구 복지국가는 풍요로운 노인의 나라가 현실에서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우리도 가능할까? 양재진 연세대 교수가 스웨덴과 독일 사례를 통해 가능성을 모색하는 글을 보내왔다.
기고 ┃노인 빈곤과 소득불안 해소풍요로운 노인의 나라가 가능할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태어난 서구 베이비붐 세대가 노동시장에 진출할 당시 선진국은 성장가도를 달렸다. 높은 경제성장률에 노인 수가 많지 않아 연금도 후하고 의료보장도 튼실했다. 은퇴 이후에도 노후 걱정 없는 복지국가의 절정기였다.
하지만 1980년대 서구 복지국가들은 경기침체와 고령화라는 이중 위기에 직면한다. 이 나라들이 재정 위기에 맞서 우선적으로 취한 정책들은 노인 관련 복지제도를 수술대에 올리는 것이었다. 평균수명이 늘어난 만큼 매달 받는 연금 수령액은 줄이고, 연금 개시 연령도 뒤로 늦추었다. 요양서비스를 강화해 의료수요는 줄여나갔다. 과거보다 건강해진 중고령자가 오래 일할 수 있도록 정년을 연장하고, 직업역량을 높이는 데 힘을 쏟았다.스웨덴이 앞서갔고, 독일도 그 뒤를 따랐다. 과감한 개혁을 통해 이들 국가는 노인들도 큰 걱정 없이 안정을 누리면서 살 만한 나라를 만들어가고 있다. 2018년 스웨덴의 노인빈곤율(65살 이상 노인 중 중위소득 50% 이하 소득자의 비중)은 10.9%, 독일은 10.4%이다. 두 나라 모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15%를 크게 밑돈다. 한국의 노인빈곤율이 45.7%인 것과 크게 대조된다. 스웨덴과 독일 노인들의 형편이 한국보다 크게 나은 이유는 우리보다 오래 소득활동을 할 수 있고, 노후소득보장제도도 재정효율적으로 지속가능하도록 구축되어 있기 때문이다.지난해 스웨덴의 중고령자(55~64살) 고용률은 77.7%로 아이슬란드에 이어 두번째로 높다. 독일도 72.7%로 우리나라의 66.9%보다 한참 높다. 정년을 없애는 대신 근로시간을 줄여서 일을 할 수 있도록 노동시장 유연성을 높인 덕이다. 또한 이들 나라에서는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이 올라가는 호봉급이 아닌 직무급이 정착되어 있다. 근로시간을 줄여도 직무에 부합하는 임금을 받아 일정 수준의 소득을 유지할 수 있다는 의미다.연금제도 합리화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스웨덴의 경우, 1999년에 연금개혁을 단행했다. 그 전까지 노후소득 보장 체제는 지금의 우리 사회와 유사했다. 한국의 국민연금에 해당하는 소득연금(ATP)이 있었고, 이에 더해서 모든 노인에게 기초연금이 지급되었다. 개혁을 단행한 이유는 30년 후 재정 고갈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 연금개혁위원회가 가동된 1990년대 초 소득연금기금은 스웨덴 국내총생산(GDP)의 30%까지 축적되어 있었다. 하지만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기금 고갈이 불가피했다. 국민에게 약속한 급여(소득대체율)를 지키기 위해서는 보험료를 인상해야만 했다. 평균수명이 빠르게 늘어나는 상황에서 보험료 인상만으로는 대처하기 어려웠다. 또한 일반재정에서 지급되는 기초연금을 전 노인에게 지급하다 보니 재정압박이 심해져 기초연금액을 인상하기 어려웠다. 이 때문에 소득연금을 못 받거나 받더라도 급여가 적은 저소득 노인들의 기초소득보장에 적신호가 켜졌다.해법은 구조적인 연금개혁이었다. 한국처럼 확정급여형으로 운영되던 소득연금을 명목확정기여(NDC) 연금으로 바꾸었다. 확정급여형 연금은 미래의 연금 수령액이 정해져 있고, 가입자들의 보험료율을 조정해 재정을 맞추는 방식이다. 반면 명목확정기여 방식은 가입자가 낸 보험료 총액에 법정이자를 더해 연금자산을 확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남은 수명(잔여여명)에 따라 급여를 산정하는 방식이다. 국가는 보험료를 강제로 거두어 개인 계좌에 넣어줄 뿐, 연금액 결정은 가입자가 한다. 연금을 일찍 받기 시작하면 금액이 줄고, 늦게 받으면 연금액이 늘어나는 식이다. 또한 일을 오랫동안 해서 보험료 납부 기간이 늘어나면 연금액도 오른다. 근로소득이 일부 발생해 경제적 여유가 생기면 연금의 2분의 1이든 3분의 1이든 선택해서 부분연금식으로 받을 수도 있다.그리고 프리미엄 연금이라는 강제가입 방식의 사적연금이 새로 도입됐다. 우리나라의 퇴직연금보다 규모는 작으나, 법정 사적연금이라는 점에서는 유사하다. 프리미엄 연금은 명목확정기여 연금으로는 부족할 수 있는 중산층의 연금액을 보완해준다. 총연금보험료율은 소득의 18.5%로 제한했는데, 이 중 16%는 명목확정기여 연금에, 나머지 2.5%는 프리미엄 연금에 넣어둔다.또한 저소득 노인의 기초보장을 위해 기초연금을 폐지하고, 선별주의적인 기초보장연금(Guarantee Pension)을 도입했다. 개혁 전에는 1인당 월 50만원 수준이었는데, 1인당 약 100만원까지 보장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물론 모든 저소득 노인이 100만원을 다 받는 건 아니다. 만약 명목확정기여 연금과 프리미엄 연금액을 합쳐 70만원이라면 기초보장선 100만원과의 차액인 30만원을 받는 보충급여 방식이다. 연금소득이 전혀 없을 경우엔 100만원을 수령할 수 있다. 모든 노인에게 무조건 50만원씩 줄 때보다 재정부담은 크지 않았다. 그럼에도 월평균 소득 100만원 이하의 빈곤층이 사라져 노인빈곤 문제가 크게 개선되었다.독일도 스웨덴과 비슷한 경로를 밟았다. 2004년 소득비례형 공적연금의 외양은 그대로 두되, 기대수명과 생산인구 수를 고려해 연금액이 자동으로 조정되도록 이른바 지속성계수(Nachhaltigkeitsfaktor)를 연금계산식에 집어넣었다. 매번 법을 통과시키지 않아도 연금액이 자동으로 삭감되는 장치를 장착한 것이다. 연금 보험료율은 2030년까지 22%를 넘지 못하도록 법제화하였다. 그리고 공적연금의 지급액 삭감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리스터 연금’이라 불리는 사적연금을 도입하였다. 스웨덴의 프리미엄 연금처럼 의무가입은 아니지만 저소득자에게 유리한 정액 보조금을 지급해 가입을 유인하고 있다. 2007년에는 연금수급 개시 연령을 65살에서 2029년까지 67살로 단계적으로 높이는 개혁을 단행했다. 기초연금이 따로 없는 독일은 스웨덴의 기초보장연금처럼 보충급여형의 사회부조를 통해 저소득 노인의 최저소득을 보장해주고 있다. 스웨덴과 독일의 은퇴자는 과거보다 덜 ‘풍요’로울지는 몰라도 노인빈곤율이라는 측면에서 양호한 성적을 유지하고 있다. 중산층은 공적연금액이 낮아졌지만, 전보다 오래 일하고 사적연금을 통해 부족함을 메우고 있다.우리도 개혁 전 스웨덴과 비슷한 어려움에 처해 있다. 국민연기금은 국내총생산의 30% 정도에 이를 만큼 천문학적인 수준이지만 35년 후면 고갈된다. 전체 노인의 70%에게 지급되는 준보편주의적인 기초연금이 있지만 저소득 노인의 빈곤 해결에는 부족하다. 국민연금 가입자도 짧은 가입연수 때문에 실제 연금액은 기대만큼 높지 못하다. 좀 더 오래 일하고 싶어도 법정 퇴직연령인 60살까지 버티기도 쉽지 않다.해답은 무엇일까? 먼저 스웨덴과 독일처럼 수명이 늘어나는 만큼 오래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게 필요하다. 임금 연공급성을 완화해 해고 유인은 낮추고, 연령별로 최저임금에 차등을 두는 등 중고령자 취업 유인을 높여야 할 것이다. 노후소득보장에 투입하는 비용도 한계를 둬야 할 것이다. 소득의 20% 정도로 설정하고, 비용부담을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현재 법정 퇴직(연)금의 사용자 부담분 8.33%에 국민연금 보험료율 9%를 더하면 총 17.33%를 노후소득보장 비용으로 쓰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국민연금 보험료를 3% 정도 인상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국민연금의 지속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2019년 기준으로 퇴직연금에만 34조1천억원의 보험료가 납부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퇴직자는 일시금으로 수령하고 있다. 무늬만 퇴직‘연금’인 셈이다. 이를 진짜 연금화해 국민연금을 보완하도록 해야 한다.저소득 노인을 위해서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와 기초연금을 통합해 스웨덴처럼 기초보장연금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가 풍요롭지는 못해도 빈곤과 소득불안을 해소해 좀 더 안정적인 노후가 가능해질 것이다. 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