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엔지니어로서 살아온 30여 년의 세월과 더불어 인생 후반기를 맞아 행복을 추구하는 기술자의 변신 스토리입니다. --------- 기술 자문(건설 소재, 재활용), 강연 및 글(칼럼, 기고문) 요청은 010-6358-0057 또는 tiger_ceo@naver.com으로 해 주세요.
행복 기술자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최근에 받은 트랙백

글 보관함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아미1--.jpg

 

과학문명을 선도하는 미국에 살면서도 말과 마차를 타고 다니며 단순 소박한 삶을 지켜가고 있는 그리스도인 마을 아미시들을 대상으로 박사학위 연구를 진행한 거투르드 앤더스 헌팅턴을 비롯한 인류학자들은 20세 중반까지도 그들의 문화가 인류역사에서 머지않아 사라질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그들은 인류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기는 커녕 매 20년마다 두 배로 인구가 증가하는 뜻 밖의 결과를 보여주었다.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연지동 한국기독교회관에서 열린 ‘아나뱁티스트 컨퍼런스’에서 캐나다 메노나이트 교회선교부 김복기 목사가 발표한 내용이다. 이날 컨퍼런스는 ‘아나뱁티스트들이 살아온 오랜 방식’ <공동체를 말하다!>란 주제로  열렸다. 최근 국내에 마을공동체에 대한 관심이 급중하면서 마을공동체운동의 원조격인 아나뱁티스트 컨퍼런스가 열리자 150여명의 청중들이 참가해 5명의 목사와 교수들의 발표를 경청하고 열띤 질의응답을 펼쳤다.

 

1컨퍼런스--.JPG 세미나--.JPG

 

아미쉬4--.jpg

 

 산상수훈 부르심에 응답한 삶 선택
   김복기-.JPG » 김복기 목사 아나뱁티스트는 ‘재세례파’는 뜻이다. 태어나자마자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세례를 받는 것을 거부하고, 성인이 되어 자발적 의지로 세례를 받아 예수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는 삶을 택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500년 전 루터와 츠빙글리의 종교개혁운동이 관주도개혁에 머무르자 초기교회의 공동체적 모습 그대로 따르려는 이들이 모여 살았다. 이에 대해 발표자인 김난예(침례신학대)교수는 “산상수훈의 부르심에 응답한 이들“로 정의했다.
 아타뱁티스트들은 전쟁과 폭력을 철저히 반대하고 어떤 명분으로도 살상과 총기와 유아세례를 거부해 군부와 가톨릭, 주류 기독교로부터 모진 박해를 받고 쫓겨다니면서도 예수의 본질적인 사랑과 비폭력의 삶을 이어오며 인류사회에 큰 영감을 주었다. 감리교를 창시한 존 웨슬리는 1735년 영국에서 미국으로 가던중 배가 뒤집어질질뻔한 풍랑을 만나 자신을 비롯한 승객들이 두려움에 떨고있을 때 모라비언들만이 태연하게 찬송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회심했다고 한다. 그 모라비안들이 바로 아나뱁티스트의 선조들이다. 2006년엔 미국 필리델피아 아미시의 한 학교에 침입한 범인이 10명에게 총기를 난사에 5명이 죽고, 5명이 부상을 입었는데 아나뱁티스트의 일종인 아미쉬인들이 그날 해가 지기도 전에 범인을 조건 없이 용서하고. 답지하는 성금을 범인의 아내와 세자녀에게 먼저 할애해줄 것을 요청하고, 범인의 가족들을 식사에 초대해 위로해 전세계를 놀라게 했다.

 

아미2-.jpg 아미3-.jpg 아미쉬1-.jpg 아미쉬6-.jpg 아미쉬8-.jpg 아미쉬11-.jpg
 
 혼삶 시대에도 왜 공동체로 사는 사람이 늘까
 김난예-.JPG » 김난예교수   아나뱁티스트로는 국내엔 부르더호프공동체가 널리 알려져있다. 그러나 더 많은 아나뱁스트들 그룹인 후터라이트와 아미시, 메노나이트 등이 있다. 모라비안의 후예로 미국과 캐나다에 정착해 14가정씩 개인소유 없이 공동으로 살아가는 후터라이트인구는 1980년 2만4천여명이었으나 현재 4만5천여명으로 늘었다. 아미시는 농촌지역에만 거주하며 자동차 등을 거부한채 말과 마차를 타고 다니고 개인보다는 공동체의 건강성과 안녕을 우선시하는 삶을 유지하고 있다. 아미시는 1900년엔 6천명에 불과했으나 현재 33만여명으로 집계된다. 메노나이트는 교회 그룹으로 확산돼 현재 9624개 교회에 146만명의 회원을 두고 있다.설목사-.JPG » 설은주 목사
 산업화, 도시화와 개인의 자유가 중시되면서 핵가족화와 혼삶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이렇게 공동체적 삶에 동참하는 이들이 줄기는 커녕 늘어나고 있는 것에 대해 설은주 ‘하늘숲-좋은나무공동체’ 목사는 “관계가 깨져가고 있는데 대한 위기의식이 높아지고, ‘이대로는 도저히 안된다’며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서 가시적으로 드러내보고 싶은 욕구의 분출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난예 교수는 “현대사회가 물질적 부만을 추구하며 생긴 불평등으로 인한 온갖 문제의 해결책이 공동체에 있고, 특별히 장애인과 노인 등 어떤 사람도 소외되지않은 사회의 필요성으로 공동체가 더욱 필요해지고 있다”고 밝혔다.
김복기 목사는 “통상적인 조직들은 실패하면 서로 욕하고 흩어지기 마련인데, 아나뱁티스트들은 성공과 실패까지 공유해왔다”고 지속성의 비결을 설명했다.
 

아미쉬5--.jpg 아미쉬7--.jpg


 갈등과 두려움을 넘어 어떻게 함께살까
 최철호-.JPG » 최철호 목사 컨퍼런스에선 서울 인수동과 강원도 홍천 등에서 300여명이 공동체로 살아가는 밝은누리 대표 최철호 목사도 발표했다. 최 목사는 “‘나도 다 해봤는데, 다 부질없는 이야기야!’, ‘생각은 좋은데 현실에 맞지 않아!’라는 생각들은 그 자체가 불신앙, 체념적 삶의 표현”이라며 “일상에서 늘 욕망을 조작하고 불안을 조장해 생명을 고갈시키는 시대 우상이 강요하는 삶에서 탈주해 먹고 입고 자고 즐기는 생활양식과  결혼·임신·출산·육아와 수련, 치유, 교육, 노동, 놀이 등 구체적 삶에서 하나님 나를 증언하는 삶을 살아가는 건 개인이나 가정 단위가 아니라 마을이라는 관계망에서 가능한 일”이라고 밝혔다라이스-.JPG » 크리스 라이스 .
  크리스 라이스 메노나이트 동북아책임자는 인종차별의 본거지라는 미국 미시시피주 수도 잭슨에서 백인과 흑인들이 섞여살던 ‘갈보리의 소리’라는 공동체에서 겪은 갈등 사례를 들려주었다. 그는 “우리는 미국에서 인종적으로 가장 잘 통합된 공동체라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흑인들이 ‘화해모임’을 조직해 ‘인종차별은 사회에 있기에 앞서 우리 공동체 안에 있다’고 주장하면서 위기에 봉착했다”며 “고통스런 과정을 거치며 내가 백인으로써 인종문제를 다루는 것은 선택적이었음을 깨달았다”고 했다. 즉 언제든 부유한 백인은 다른 부유한 백인 교회로 옮겨갈 수 있었으나 흑인 형제 자매들은 그런 선택이 없었으며, 백인들이 그런 특권을 이용한 해결은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얕은 해결책에 머물지않는 진정한 화해를 위한 3단계 과정을 이렇게 제시했다. “첫째 사회적 긴장과 트라우마의 진실,억압, 특권을 극복하려면 정면으로 부딪히고, 애도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두번째 진실이 없는 사랑은 거짓이라는 것이다. 즉 우리를 갈라놓고 망가지게 하는 것을 대면하지않는 화해가 있을 수 없으므로 괴로움과 분노의 과정까지 거치면서 진실과 사랑을 함께 결합해야한다는 것이다. 셋째 기독교공동체 화해의 핵심에는 자기부인이 있어야 한다.”

아미쉬10--.jpg

 

아미쉬2--.jpg

 

아미쉬3--.jpg

 
 고독의 시대, 공동체는 어떻게 세상을 돕는가
 이날 컨퍼런스에선 아나뱁티스트들이 공동체적 삶의 전통과 지혜를 살려 현대사회인들을 구제하는 사역들이 소개됐다. 6곳에서 운영되는 ‘그린크로프트’라는 ‘돌봄의 공동체’가 대표적이다. 이 공동체 중 한곳은 1922년 인대애나주 뉴 칼리슬의 30만평 숲에 만들어져 150명의 메노나이트 도우미들이 공동체로 살아가면서 배우자를 잃고 홀로 남은 65세 이상 노인들과 함께 총 270명이 살아간다. 또 고센 공동체엔 550명의 전문의료인 및 간호인을 포함해 노인등 1200명이 살아간다. 공동체 내엔 예배당과 소규모 예배실, 상담실, 도서관, 컨퓨터실, 영화관람실, 오락실, 각종 모임방 등이 있고, 건강한 이들은 은퇴 후에도 이곳에서 직업을 갖고 파트타임 일을 하거나 자원봉사에 나선다. 김복기 목사는 “돌봄의 공동체는 양노원이 아니라 메노나이트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청지기의 삶으로 함께하는 것”이라면서 “이 공동체들은 외진 곳에 있지않고 도시 끝자라에 위치해 도시 내 자녀들 및 친척들과 공동체성을 잃지안하고 연결되게 한다”고 설명했다. 노령화와 혼삶으로 소외와 고독사가 사회문제가 되고있는 한국사회에도 필요한 돌봄공동체가 아닐 수 없다.

 

[한겨레 2019년 1월 30일]

 

[르포-네덜란드 ’호헤베이크 마을’]

거주노인 169명 다니다 길 잃어도

직원 170여명이 길 찾아줘

의사·간호사 흰 가운 안 입어

클래식 스타일 등 7개 마을 선택

소득 따라 입소 부담금 달라

네덜란드 호헤베이크 마을에 거주하는 치매 노인들은 레스토랑, 펍, 슈퍼마켓 등에서 자유로운 일상생활을 누린다. 한국의 ‘치매안심마을’의 모델인 호헤베이크 마을은 의사와 간호사가 있지만 ‘병원’ 같지 않은 ‘특별한’ 치매 요양 시설이다. 호헤베이크 마을 제공



▶지난해 9월, 문재인 정부는 ‘앞으로 치매는 국가가 책임지겠다’고 선언했다. 전국 256곳에 간호사·사회복지사 등이 근무하는 치매안심센터가 문을 열었고, 치매 환자와 가족이 행복한 ‘치매안심마을’을 지정하는 사업도 진행 중이다. <한겨레>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사회보장제도 연수 과정 중 지난 10월24일(현지시각) 치매안심마을의 모델이 된 네덜란드 ‘호헤베이크(호그벡) 마을’을 찾아, 마을 공동창립자인 이보너 판아메롱언과 함께 마을 구석구석을 둘러봤다.



마르턴 디흐뉨(가명·75)은 암스테르담에서 자주 길을 잃었다. 홀로 집을 나섰다가 실종되곤 했다. 똑똑한 금융컨설턴트였던 그의 뇌 신경 세포는 치매를 앓으면서 점점 손상됐다. 10년 전에 처음 증상이 나타난 이후로 아내인 엘리(가명·62)는 남편 걱정이 끊이지 않았다. 2015년 봄, 마르턴은 주거지를 ‘호헤베이크 마을’로 옮겼다. 호헤베이크 마을은 네덜란드 수도인 암스테르담에서 자동차로 20여분 걸리는 베이스프의 주택가 한켠에 있다. 여기서 마르턴은 길을 잃지 않는다. 네모난 성냥갑 모양을 한 마을 1만2천㎡ 전체를 벽돌 담장이 둘러싸고 있다. 그 담장 안에 마르턴과 같은 중증 치매노인 169명이 모여 산다.

마르턴이 사는 집에는 향기로운 꽃이 꽂혀 있고 클래식 음악이 흐른다. 그는 치매를 앓기 전에 말러와 푸치니를 좋아했다. 음식은 프랑스식 생선 요리가 주로 제공된다. 이 집은 ‘클래식’ 스타일이다. 호헤베이크 마을 안에는 네덜란드식, 기독교식, 문화·예술식, 인도네시아식 등 7가지 주거공동체가 있다. 거주자의 취향에 따라 생활양식을 고른다. 마르턴은 혼자서 마을을 산책할 수 있다. 길을 잃으면 도와줄 직원 170여명이 상주한다. 가족과 함께 바깥나들이도 한다. 엘리는 일주일에 서너번 남편을 찾아온다. “치매 환자에게도 삶의 질이 중요하다. 이곳에선 일상생활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 호헤베이크 마을은 내가 남편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네덜란드 호헤베이크 마을에 거주하는 치매 노인들은 펍에서 자유롭게 커피나 술을 마실 수도 있다. 호헤베이크 마을 제공

2009년 완공된 호헤베이크 마을은 이를테면 치매 노인을 위한 요양시설이다. 하지만 ‘병원’이 아니라 ‘마을’이라고 부른다. 노인들은 ‘환자’가 아니라 ‘거주자’로 불린다.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등이 일하지만 하얀 가운을 입지 않는다. 노인 5~7명이 모여 사는 집집마다 평상복을 입은 직원이 상주하며 장을 봐서 요리하고 노인들을 돌본다.

이곳은 원래 요양원이었다. 요양원에 간호사로 근무했던 판아메롱언은 1992년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갑자기 숨지는 일을 겪고 요양원 경영진에게 ‘생활양식이 비슷한 노인들끼리 모여 사는 주거 형태’로 바꾸자고 제안했다. 그 뒤 호헤베이크 마을 창립을 사실상 주도한 판아메롱언은 “중증 치매 노인은 가뜩이나 뇌가 혼란스러운데 주변 환경이 생경하게 느껴지면 더 큰 혼란을 겪을 수 있다”며 “치매 노인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삶을 누리고 자기 집 침대에서 생을 마치는 것처럼 느끼게 하려고 만든 시설”이라고 설명했다.

비슷한 요양시설이 한국에도 없지는 않다. 2014년 개원한 서울 강남구 세곡동의 서울요양원이 대표적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재정 250억원을 투자해 직접 운영한다. 대기인원만 1080명에 이를 정도로 인기다. 치매 노인 150명이 생활하는 이곳 역시 호헤베이크 마을처럼 10개의 ‘마을’로 나뉘어 있다. 병실에 입원한 이들이 ‘마을’ 거실에 모여 식사하고 노래도 배운다. 작은 실외 텃밭도 있다.

결정적으로 다른 점도 있다. 하늘이다. 창문을 통해서만 겨우 바깥 풍경이 보이는 한국의 요양시설과 달리, 호헤베이크 마을의 시설 절반 이상은 건물 외부에 있다. 치매 노인들은 파란 하늘 아래서 햇빛과 바람을 느끼며 산책을 느릿느릿 즐긴다. 마을 곳곳에 나무와 꽃들이 가득하다. 누가 봐도 ‘마을’이다. 정문에 들어서면 왼쪽에는 레스토랑과 펍, 슈퍼마켓이 있고 오른쪽에는 커다란 분수대와 극장이 있다. 정문과 직선으로 연결된 널찍한 중앙로에는 미용실, 음악감상실, 요리실 등이 늘어서 있다. 언어는 잊어도 음악에는 반응하는 치매 노인들은 ‘모차르트의 방’이라고 이름 붙인 음악감상실에서 피아노 연주를 듣고, 요리실에서 추억을 떠올리며 팬케이크를 굽는다. 판아메롱언은 “취미활동 클럽도 많다”며 “카페에서 애플타르트를 함께 먹는 일은 매우 중요한 사회활동”이라고 말했다.

치매 노인들은 자유롭게 마을 곳곳을 누볐다. 한국 기자들에게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고 말을 걸거나, 기자의 팔짱을 끼고는 내내 함께 걸어다니기도 했다. 판아메롱언은 그들의 이력은 물론 성향까지도 깨알같이 파악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자원봉사로 노인들의 버스 여행을 기획하는 잉리트 더흐로트(63)는 “치매 노인들의 미소를 보면 행복하다”고 말했다. 더흐로트의 남편은 버스 운전 자원봉사를 한다. 이런 자원봉사자가 140여명에 이른다.

호헤베이크 마을 공동창립자인 이보너 판아메롱언이 지난 10월24일(현지시각) 한국 기자들에게 마을 곳곳을 소개하고 있다. 그는 오래된 요양원을 마을로 바꾸자고 제안하고 실질적인 운영을 주도하고 있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호헤베이크 마을을 배우러 해마다 수백명이 찾아온다. 미국, 뉴질랜드, 프랑스 등에 컨설팅도 해줬다. 호헤베이크 마을이 공공시설이 아니라 비영리단체가 운영하는 곳인데도 10년째 지속가능한 이유는 네덜란드 사회보장제도의 탄탄한 뒷받침 덕분이다. 1968년부터 실시된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에 따라, 모든 국민은 신체수발·간호 서비스, 시설 거주 서비스 등을 보장받는다.

요양등급 판정을 받아 호헤베이크 마을에 입소한 치매 노인은 적게는 월 500유로(약 65만원), 많게는 2500유로(약 322만원)를 부담한다. 소득이 많을수록 비용도 많이 내야 한다. 다소 비싸긴 하지만, 요양시설이 지급받는 1인당 월 6천유로(약 774만원)는 장기요양보험이 부담한다. 판아메롱언은 “빈곤한 치매 노인이라고 해도 노령연금을 받기 때문에 개인 부담이 크지 않다”고 말했다. 네덜란드는 노령연금이 전세계에서 가장 든든한 나라다. 전체 인구 1700만명 가운데 만 66살 이상인 300만여명의 모든 노인이 노령연금을 받는다. 네덜란드에 50년 이상 거주했거나 소득 활동을 한 노인이라면 홀몸노인은 월 1180유로(약 152만원), 부부는 각각 814유로(약 105만원)를 받는다. 네덜란드의 노인 빈곤율은 1.4%로 세계 최저 수준이다.

치매 노인을 받아주는 요양시설이 많지 않아 ‘치매 난민’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한국은 호헤베이크 마을을 본떠 치매안심마을을 조성하기로 했지만 아직 마을 어귀에 현판 하나 붙이는 게 고작이다. 한국은 과연 ‘치매국가책임제’로 가는 길을 제대로 찾아가고 있는 걸까. 한국의 치매 환자는 70여만명, 80대 이상 노인 10명 중 4명은 치매를 앓고 있다. 전세계 치매 인구는 5천만명에 육박한다.

베이스프(네덜란드)/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네덜란드 호헤베이크 마을에 거주하는 치매 노인들은 스스로 슈퍼마켓에서 장을 보기도 한다. 호헤베이크 마을 제공

 

[한겨레 2018년 11월 2일]

<2>‘대안가족’ 만드는 독일[서울신문]
독일도 우리나라처럼 3세 이하의 아이는 가정에서 키워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다. 영아를 위한 보육 시설은 미비했고 양육 부담은 오롯이 엄마에게 지워졌다. ‘독박육아’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엄마들이 힘을 모아 공동육아의 첫발을 내디뎠다. 1980년 ‘마더센터’가 탄생했고 전 세계로 확산됐다. 독일 내 400여개의 마더센터와 행정기관이 만든 500여개의 공동육아 시설 중 일부는 지역 사회에서 돌봄이 필요한 노인과 장애인, 이민자를 위한 공간으로 진화했다. 2006년 연방정부는 이런 마더센터를 토대로 540여개의 ‘다세대 하우스’를 세웠다. 크기와 형태가 다양하지만 아이들과 노인의 돌봄 사각지대를 없애고 세대 간 교류한다. 독일의 공동육아 모태인 마더센터를 둘러봤다.지난달 7일 독일 니더작센주 잘츠기터 마더센터에서 아이들이 보육교사와 노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우리나라의 ‘수건 돌리기’와 비슷한 게임을 하고 있다.지난달 7일 독일 최초의 마더센터 3곳 가운데 하나인 니더작센주 잘츠기터 마더센터에선 아이들이 마을 노인들과 함께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었다. 눈을 가린 채 엎드려 있던 에밀리아(4)가 일어나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누구야?, 누가 숨겼는지 모르겠네!”

에밀리아를 둥글게 감싸고 있는 아이들은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안간힘을 쓴다. 아이들 뒤 의자에 앉아 있는 한 노인이 ‘여기’라는 입모양을 지으며 물건을 가져간 아이를 슬쩍 가리킨다. 에밀리아가 물건을 숨긴 아이를 찾아내고 아이들과 노인들은 한바탕 웃는다.

20여명의 아이들이 2~3명의 보육교사와 함께 놀이를 하면 이곳에서 돌봄을 받는 노인 10여명이 이를 지켜본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은 의자에 깊숙이 몸을 기댄 채 아이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생기로 가득 찬 아이들 모습에서 삶의 활력을 찾는다. 점심때면 아이들과 노인들은 테이블에 뒤섞여 앉아 식사를 한다. 보육교사와 보조교사가 앉아 아이들과 노인들의 소통을 돕는다.잘츠기터 마더센터는 3세 이상의 미취학 아동들을 대상으로 노인과의 시간을 갖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잘츠기터 마더센터 설립자이자 프로젝트를 기획한 힐데가르드 쇼스(74)는 “마더센터가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한 30여년 전부터 다양한 세대가 이 곳에서 교류했지만, 한 발 더 나아가 적극적인 ‘소통의 장’을 만들어 지역 주민들에게 가족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특히 이제 막 세상을 알아가는 아이들이 노인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더 넓은 세상을 배울 수 있다고 여겼다.

에밀리아의 어머니이자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워킹맘’ 테사 겐터(37)는 “아이들이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아이들과 교사만 있는 일반 어린이집과 달리 다양한 배경과 세대의 사람들이 함께 어울리는 게 아이들 교육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겐터는 지난해 7월 바이에른주 뮌헨에서 잘츠기터로 이사 왔다. 인근 도시에 직장을 구하기도 했지만 이곳이 아이를 키우기에 더욱 좋은 환경일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다. 정해진 시간에 아이를 꼭 데려와야 했던 뮌헨과 달리 이곳에선 조금 늦더라도 아이를 돌봐 줄 사람들이 많아 서두르거나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

다섯 아이를 홀로 키우는 훔머스 니콜(38)은 9년 전부터 잘츠기터 마더센터를 이용하다 올해부터 마더센터의 전일제 근로자로 나섰다. 최근엔 맏딸(17)도 주말이면 각종 행사에서 엄마를 돕는다. 니콜은 “막내딸인 리자(4)는 어린이집이 끝나면 마더센터로 달려온다. 내가 있어서가 아니라 이곳엔 리자의 친구와 이모, 삼촌,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기 때문이다. 리자는 이곳을 ‘가족’이 있는 곳으로 생각한다”고 미소를 지었다.잘츠기터 마더센터는 지하 1층, 지상 3층에 2300㎡(약 700평) 규모다. 휠체어를 타거나 보행보조기를 이용하는 노인들을 위한 자동문을 지나면 왼쪽엔 카페가 있다. 아이들과 부모, 노인, 이민자, 마더센터 직원 모두가 이곳을 사랑한다. 실외 테라스까지 포함하면 100명 이상이 앉을 수 있다. 카페는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자 ‘광장’이다. 이용자들을 위한 새 프로그램에 대한 제안이나 논의는 물론 처음 방문한 사람들과의 만남도 이곳에서 이뤄진다. 가장 바쁜 시간은 점심 시간이다. 아이를 돌보느라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 없었던 엄마뿐 아니라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 지역 주민들을 위해 저렴한 가격에 식사를 제공한다.

마더센터 내엔 0~3세 아이들을 위한 공간과 3~6세 아이들을 위한 어린이집이 있다. 초등학교 수업을 마친 뒤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을 위한 공간, 어린이집이 끝난 뒤 보호자가 올 때까지 아이들이 머물 수 있는 공간도 따로 조성돼 있다. 2층 어린이집 외에는 모두 바깥 정원이나 놀이터로 나갈 수 있도록 동선이 짜여졌다.

독일 정부는 마더센터의 공동육아와 세대 교류를 확대하고자 2006년부터 다세대 하우스 정책을 펼치고 있다. 같은 해 잘츠기터 마더센터를 방문한 가족노인여성청소년부 장관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현 국방부 장관)은 세대 통합과 복지 사각지대를 줄이는 방안으로 마더센터 모델을 전국으로 확산하고자 했다. 독일 전역에 540여개의 다세대 하우스가 생겼고, 이 기관들은 연간 4만 유로(약 5100만원)를 연방정부와 시정부로부터 지원받는다.

글 사진 잘츠기터(독일) 민나리 기자

 

[서울신문 2018년 6월 7일]

개복숭아 효소 담그기

2018. 6. 25. 07:00 | Posted by 행복 기술자

개복숭아 담그기

 

0일차

2일차

 

0일차

2일차

1주일 지난 후

“그런 게 어딨어” 할 테지만 있다, 지상의 유토피아

[조현의 공동체마을 체험기] 돈 없이도 즐겁게 산다
① 왜 공동체인가

대안공동체를 찾아 1년 동안 세계를 누빈 조현 종교전문기자
대안공동체를 찾아 1년 동안 세계를 누빈 조현 종교전문기자
40대 후반인 크레스와 헤나 부부는 네 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성년이 된 장남과 열다섯 크리스틴과 열세살 베네사 두 딸에 이어 이제 한 살배기 막내 스티븐이 있다. 부부가 손주 같은 아이를 낳을 수 있었던 것은 온 마을이 아이를 제 자식처럼 함께 길러주기 때문이다. 집과 일터와 탁아방이 모두 걸어서 3분 거리다. 언제든 아가방에 가 아기를 볼 수 있어 사실상 온종일 한집에 사는 것과 다름없다. 부부는 오후 5시 퇴근해 가족끼리 오붓한 여유를 즐긴다. 1주일에 두세 번은 가든에서 식사한다. 주말이면 이웃을 초청해 바비큐파티를 하거나 야외수영장에서 놀거나 캠핑을 간다.

크레스와 같은 층에 사는 하이너는 이 마을 변호사다. 하이너의 동생 리처드는 대학교를 가지 않고 간호보조원이 됐다. 형제는 하는 일이 다를 뿐 이 마을에서 어떤 차별 대우도 없다. 하이너는 두 아이, 리처드는 세 아이의 아빠다.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늘 손주들과 잔디밭에서 공놀이를 한다. 미국 뉴욕에서 차로 3시간 거리인 우드크레스트에서 300여명이 살아가는 브루더호프공동체마을의 모습이다.

‘헬조선’에서 신음하는 한국에선 상상조차 어려운 모습이다.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세계 최하위 수준이다. 30살 미만 청년가구는 최근 3년간 빚은 2배 이상 늘고, 소득은 88만원세대에서 77만원세대로 낙하 중이다. 노인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가운데 빈곤율이 평균 13%의 4배나 되고, 자살률 1위다. 상위 10%가 전체 국민소득의 48%를 가져간다. 국민의 절반 가까이가 자기 집이 없다. 이런데도 대통령과 관료, 재벌 등 사회지도층은 국정농단과 부패 고리로 사적인 이득을 챙기기에 바빴다. 사회의 중심축인 지도층의 부도덕으로 공동체성이 철저히 무너져내리고 있다.

그래서 수백명이 한가족처럼 살아가는 해외 공동체마을을 찾았다. 차별이 없고, 평등하고, 고통을 함께 지는 공동체마을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타이 아속과 미국 브루더호프, 인도 오로빌, 일본 애즈원과 야마기시 등 지구촌 공동체마을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공동체의 원형을 찾았다.

미국 브루더호프
미국 브루더호프

‘죽도록 일하지 않아도 모두 풍족하게 산다. 모든 물건은 함께 소유한다. 자신들의 대표는 주민들이 선출하는 민주주의다. 그 대표는 공동체원의 의사에 반해 결정을 내릴 수 없다. 자발성과 창의성을 최대한 존중한다. 사회복지나 의료복지를 완전하게 실현한다. 부자라고 더 먹거나 더 좋은 집에 살 수 있는 게 아니라 모두 평등하므로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한다.’

‘헬조선’이라며 신음하는 한국인들에겐 꿈같은 소리다. 이 솔깃한 얘기는 5세기 전 영국의 토머스 모어가 <유토피아>에서 제시한 ‘가장 살기 좋은 나라’의 모습이다. 2500년 전 플라톤도 아틀란티스라는 이상향이 있다고 했다. 플라톤과 토머스 모어는 내세의 천국이 아닌 현세에 그런 곳이 있다는 것을 더 믿게 하려고 구체적인 위치까지 적시했다.

지옥은 고통스런 현실도 현실이지만 미래에 대해 희망이 없고 상상력마저 결핍된 상태다. 희망만 있다면 어떤 고통도 기쁜 마음으로 감내할 줄 아는 게 인간이다. 쇼펜하우어는 “단테가 <신곡>에서 지옥은 그럴듯하게 그렸지만, 천국은 엉성하게 그릴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지옥은 지상에서 늘 봐왔지만 천국은 본 바가 없기 때문에 그랬다는 것이다.

플라톤이나 모어가 말한 이상향이 지금 지구상에 있다고 한다면 당장 ‘그런 게 어딨어’라고 의구심에 찬 눈초리를 보낼 것이다. 그래도 말할 수밖에 없다. ‘유토피아는 있다’고. ‘소설 속 이야기’냐고? 아니다. 아틀란티스나 유토피아 같은 허구의 세계가 아니다. 지구상에 분명히 존재하는 실제의 마을이다.

<주역>에서 죽을 사람에게도 힘을 주는 말이 궁즉통(窮則通)이다. 궁하면 통하게 되어 있다. 헬조선을 한탄만 하고 있거나 하늘만 쳐다보고 있다면 통할 리가 없겠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데, 하늘이 무너진 것도 아닌데, 살길이 없을 리가 없다.

나도 너무 궁해서 유토피아를 찾아 나섰다. 10년째 통증에 시달리다 결국 1년 병가를 냈다. 국내에서 좋다는 치료는 해볼 만큼 해봤지만 통증은 심해져만 갔다. 그 통증과 열이 눈에까지 뻗쳐 병가 내 유명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했지만 별무효과였다.

타이 아속공동체
타이 아속공동체

기존의 방법으로 효과가 없다면, 즉 궁하면 ‘대안’을 찾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생각난 것이 대안공동체였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게 타이의 아속공동체였다. 아속은 불교공동체지만, 경남 산청 기독교대안학교인 민들레학교 김인수 교장이 해마다 학생 10여명을 데리고 한달씩 살고 오는 곳이다. 그곳에서 감동을 받은 그가 예전부터 꼭 한번 가볼 것을 권유했다. 아속에서는 항문관장을 통해 몸의 독소를 빼내 건강을 되찾게 해주는데, 내가 그곳 사람들처럼 맨발로 시골길을 거닐고 해독까지 하면 몸이 회복될 수 있을 것 같다는 거였다. 더구나 그곳에선 유기농 대체의약품을 직접 만들어 판다고도 했다. 민들레학교에 다니던 아이와 함께 아속공동체에서 지내본 전 <기독교사상> 주간 한종호 목사도 달떠서 아속을 별세계처럼 소개했다. 또 그곳에서 가져온 조그만 물약을 주었는데, 통증 부위에 발랐더니 여간 시원하지가 않았다.

더구나 병을 낫게 해준다는 이런저런 사람들에게 돈 버리고 시간도 버려온 나로서는 공동체들이 ‘돈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도 구미가 당겼다. 공동체들에서 함께 일하며 지내면 숙식비를 내지 않아도 된다. 비행기표만 사면 따로 돈을 들이지 않고도 장기간 머무를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방콕에서 차로 10시간가량 떨어진 타이 중서부 시사껫의 시사아속으로 향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것이 여러 공동체로 이어지는 긴 여정이 될 줄은 몰랐다. 결론부터 말하면 대안은 만족스러웠다. 통증이야 자가면역질환에서 비롯돼 단시일 내에 나아질 수는 없었지만, 처음 닷새 동안 한 단식과 관장으로 컨디션이 상당히 회복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공동체에서 몸만 챙기고 있지는 않았다. 공동체에서 구경꾼은 허용되지 않는다. 그들은 관객이 되기를 원치 않는다. 그래서 ‘일단 문 안에 들어오면 일상사를 함께하라’는 것이 대부분의 공동체들이 요구하는 사항이다.

아속은 유토피아적인 것투성이였다. 유리병 속에 든 진열품이 아닌 날것들이어서 더욱 신선했다. 그들은 우물을 뛰쳐나온 개구리였다. 아속은 불교국가인 타이에서 주류 불교의 타락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계란으로 바위를 친 선지자들이다. 그런 배짱도 놀랍거니와 그런 소수파가 ‘이윤을 추구하지 않는 회사들’을 만들고, 오늘날 타이의 주류들도 무시할 수 없는 5개의 공동체마을을 포함한 아속왕국을 만들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군 장성 출신으로 출세 지향적이던 정치인 짬롱 시므앙을 무욕의 방콕시장으로 만든 멘토가 바로 아속의 창시자 포티락 스님이라는 것도 그랬고, 논밭에서 일하면서도 웃음꽃을 잃지 않는 학생들, 아무 대가 없이 타인을 위해 헌신하는 공동체원들의 일거수일투족도 신기했다.

시사아속을 나올 무렵 예고 없이 포티락 스님이 그곳에서 하루를 묵었다. 80대 노승인 그가 시사아속에서 묵은 경우는 처음이라고 했다. 외국 방문객이 포티락을 만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운좋게도 다음날 아침 노혁명가를 개별적으로 만나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포티락까지 만나 정담을 나눴으니, 이제야말로 쉼이 마땅했다. 병가를 낼 때 ‘일을 떠나 1년은 오직 쉬며 건강만 챙기겠다’던 다짐에 따라 쉬엄쉬엄 관광하며 휴식할 시간이었다. 그러나 내 직업병이 그리 두지 않았다. 아속을 더 알고 싶고, 더 보고 싶고, 더 확인하고 싶은 궁금증이 발동하고 말았다. 결국 가장 큰 공동체인 랏차타니아속으로, 치앙마이의 아속레스토랑공동체로, 방콕의 산띠아속까지 휩쓸고 다녔다. 최초의 아속공동체인 빠톰아속에선 5일을 더 보내며 무욕과 자비의 보살들을 현세에서 만났다.

0년째 통증 시달리다 1년간 병가
좋다는 치료 다 해봤지만 별무효과
궁즉통이라고 떠오른 게 대안공동체
방콕에서 차로 10시간 거리 시사아속
닷새 단식과 관장으로 기력 회복
그게 1년여 대안 공동체 순례의 시작

그곳에는 욕망의 열차를 내린 사람들
적게 소유하고 쓰며 많이 나누고 돕고
지구에 폐 안끼치고 치유하는 생활
남보다 자기 먼저 변하는 혁명가였다

비행기 타기 전 라이터·칼을 버리듯
그곳에 가기 전에 마음을 비워야
두 손 가득히 떡을 쥔 사람은
최상의 케이크를 던져줘도 받을 수 없어

인도 오로빌
인도 오로빌

그렇게 한달 동안 아속의 이곳저곳에서 보낸 뒤 간 곳이 인도의 오로빌공동체였다. 오로빌은 방대했다. 한 마을이라기보다는 인류공동체라는 목표로 만들어지고 있는 ‘계획도시’였다. 한 프랑스 여성의 꿈으로 시작된 오로빌은 혼자 꾸면 몽상이지만, 여럿이 함께 꾸면 현실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다음은 멀리 미국이었다. 뉴욕에서 차로 3시간쯤 떨어진 우드크레스트는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기독교공동체로 꼽히는 브루더호프의 본부 격이다. 브루더호프는 내가 최초로 인연을 맺은 해외 공동체마을이었다. 또한 공동체에 대한 탐구심을 유발한 곳이기도 했다. 처음 브루더호프를 방문한 것은 1999년 초였다. 지금은 해프닝조차 잊혔지만, 밀레니엄이라는 2000년을 앞두고는 지구 멸망을 예언한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 실현 여부가 관심사였다. 그의 예언이 아니더라도 자원 고갈과 자연 파괴, 비인간화, 전쟁으로 인한 위기의식이 팽배했다. 그래서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대안을 보여주려 공동체운동 취재에 나섰는데, 그 첫 대상이 영국 다벨 브루더호프 공동체였다.

그 이후 한국에 브루더호프 붐이 일었다. 영국의 시골마을에 영국 사람보다 한국 사람이 더 많이 찾아오는 이변이 생긴 것이다. 한국인, 특히 크리스천들의 열정은 아무도 못 말린다. 한국인들이 일체 개인 소유가 없이 살아가는 무소유공동체원들의 삶에 열광하는 것 자체가 의외였다. 한국인들은 브루더호프 공동체 사람들의 평화로운 표정에 매료됐다. 나도 우드크레스트에 17일 동안 머물면서 지상천국은 이런 곳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우거진 숲에 둘러싸인 호수에서 낚시와 수영을 하고, 골프장 같은 초원이 펼쳐진 언덕 위의 하얀 집과 별빛 아래서 가족끼리 정답게 속삭이는 우드크레스트를 보았다면 단테도 천국을 더욱 생생하게 그렸을지 모른다.

이쯤 되면 어떤 사람은 그 유토피아로 가기 위해 짐을 싸고 싶어 마음이 벌써 바빠지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나 비행기에 오르기 전에 라이터나 나이프를 버리듯 유토피아에 가기 전에 마음 보따리에서 비워내야 할 것도 알아둬야 한다. 양손에 떡을 쥔 사람은 하나님과 부처님이 합세해서 세상에서 가장 맛난 초코케이크를 만들어 던져줘도 받을 수가 없다. 브루더호프도 아속도 자신을 비워가는 사람들이다. 처음부터 비우지는 않았더라도 날마다 삶에서 욕망을 포기함으로써 밖과는 다른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는 사람들이다. 많이 벌고 싶고, 많이 놀고 싶고, 놀고먹고 싶고, 남보다 더 잘 입고 싶고, 얼굴에 영양주사도 맞고 싶고, 돈도 좀 펑펑 쓰고 싶고, 때마다 여행도 가고 싶고, 폼 나는 차와 큰 집도 사고 싶고, 가족 친척들에게 용돈도 주며 인심도 쓰고 싶고…. 허영기 섞인 이런 욕구를 다 채울 수 없는 고통으로 신음하는 게 헬조선이라면, 이런 욕구를 버리고 단순 소박한 삶에서 행복을 찾는 게 공동체다. 공동체살이는 세상에 대한 혁명이기에 앞서, 바로 자기 비움의 혁명이다.

대부분의 대안공동체들은 사람들에게는 말할 것도 없고 지구에도 폐 안 끼치는 삶, 치유하는 삶을 선택하고 있다. 자원을 마구 쓰고 버려 초록별을 결딴내며 쓰레기장으로 만드는 공범들이 아니다. ‘욕망의 열차’에서 내린 사람들이다. 욕망의 홍수가 뒤엎은 세상에서 방주로 남아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작게 소유하고 적게 쓰며 많이 나누고 더 돕는다. 남을 변화시키기에 앞서 자신이 먼저 변해 솔선수범하는 대안공동체 사람들이야말로 진정한 혁명가들인 셈이다.

미국 브루더호프
미국 브루더호프

그러나 공동체에 들어간다고 해서 꼭 지구를 구하는 독수리 5형제가 되라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이 점차 그런 삶에 동의해 살아가게 되겠지만, 독립운동이나 프롤레타리아 혁명처럼 자신이나 가족의 안위를 던지고 하는 혁명과는 달라도 많이 다른 혁명이다. 무엇보다 가족과의 삶을 소중히 여기며, 가족과 친구들과 이웃들과 행복하게 살아가는 혁명이다. 혁명치고는 특이하고 유쾌한 혁명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브루더호프 같은 공동체에선 어떤 것도 포기할 필요가 없다. 어느 집에나 아이 서넛은 기본이다. 모두 공동체원이 함께 돌봐주고 키워주니 내 돈을 따로 들일 일도 없고, 육아를 혼자 감내하지도 않는다. 대신 다둥이가 주는 기쁨은 무궁하다. 더구나 아무리 발버둥쳐봐야 흙수저는 흙수저일 뿐이라며 불평등과 부정의에 신음하는 밖과 달리, 공동체에서는 잘난 이나 못난 이나 같이 일하고, 같은 것을 먹는다. 먹거리도 양질의 친환경 제품들이다. 늙어도 친구들과 도란도란 대화하며 빨래 개기 같은 자기 몫을 한다. 자식 손자 손녀들에게 둘러싸여 살아가니 외로울 새도 없다.

이 이상적인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자유를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젊은이들에겐 ‘그림의 떡’일 수 있다. 혼삶 혼술 혼밥에 익숙해진 젊은이들은 일거수일투족을 함께해야 하는 공동체 생활을 구속으로 여길 수 있다. 설사 집을 나와 굶어 죽더라도 사생활의 자유를 누리겠다는 그들이다. 하지만 자유보다는 인간이 그리워 견딜 수 없는 외로운 삶이야말로 가장 비참한 지옥이라는 사람도 많다. 그래서 1인 가구 증가와 반대로 땅콩집, 캥거루족, 노소동거족 등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족이 늘어나는 현상을 퇴행이라고 비난할 것도 없고, 이상할 것도 없다. 인간은 자유에 갈급한 것만큼이나 고독을 견딜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산안마을이나 아름다운마을공동체나 산위의마을처럼 공동체마을을 만들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도전은 헬조선에 신음하는 것보다 백번 나은 결단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결단까지는 내리지 않더라도 해볼 수 있는 대안은 많다. 혼자서는 너무도 힘든 일들을 함께 나누며 삶의 동력을 회복하는 육아공동체나 식사공동체, 숙소공동체, 대안학교, 의료생협, 골목가게 공동체 등도 있다. 이미 성미산공동체나 우동사처럼 도시에서 그런 대안적 실험을 해가며 활력을 얻고 있는 이들도 있다.

일본 야마기시
일본 야마기시

공동체 여정은 일본의 ‘야마기시’에서 마무리됐다. 한국의 산안(야마기시)마을 공동체와는 20년의 인연을 유지해왔던 터다. 지금은 시들해졌지만 민주화운동 이후 방향을 잃은 진보지식인들도 공동체운동에 적지 않은 관심을 보였다. 일본의 나고야 인근에서 시작돼 세계에 확산되면서 1980년대 경기도 화성에 만들어진 산안마을공동체는 우리나라 공동체운동의 본보기가 된 곳이다.

나는 그 야마기시의 원조인 가스가야마와 도요사토를 둘러봤다. 브루더호프나 오로빌만이 아니라, 야마기시도 오늘날의 하모니를 이루기 전에 치열한 내분을 거쳤다. 야마기시에서 이탈한 사람들은 도요사토 인근 도시인 스즈카에 터를 잡고 애즈원을 만들었다. 이곳은 마을이 아니라 작은 도시 곳곳에 흩어져 살며 함께 회사와 가게를 꾸리는 독특한 형태의 공동체였다. 야마기시에도 머물고 애즈원에도 머물면서 그들의 ‘사랑과 전쟁’을 생동감 있게 들었다.

일본 애즈원
일본 애즈원

순탄하기만 한 가정사는 현실이 아니듯이 문제가 없는 공동체란 없다. 문제가 없어야 한다는 환상이야말로 가장 큰 문제일지 모른다. 문제가 두려워, 또는 헤어지는 것이 두려워 사랑 한번 못 해보는 바보가 된다면 생이 너무나 무료하지 않겠는가.

인간은 시련을 통해 배운다. 공동체들도 마찬가지였다. 1층부터 10층까지 온갖 욕망을 켜켜이 쌓고, 11층에 유토피아까지 올릴 수는 없다. 유토피아란 이기적인 자유 방종만으로 얻어지는 게 아니라, 고통이나 상처, 아픔까지도 껴안을 품이 있을 때 슬며시 안긴다. 그런 자세를 가져보겠다면, 그 무엇을 상상하거나 ‘그 이상’인 마을로 함께 여행을 떠나도 좋다. 함께 떠나보자. 우리의 유토피아로.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공동체가 궁금해요

세속적 삶 떠나 애안 택한 사람들
재산 공유하며 함께 먹고 함께 일

공동체를 다녀온 뒤 지인들의 질문 공세가 이어졌다. 한번쯤은 가보고 싶다는 관심 표명에서부터 ‘먹고사니즘’에 대한 질문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공동체살이는 세상과는 다른 관점과 ‘삶의 자세’가 필요한 곳이다.

-무엇을 공동체라고 하는가?

“2인 이상이 모이면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가장 기본적인 공동체는 가정이다. 그러나 여기서 내가 쓰는 공동체는 주로 욕망의 실현을 위해 달리는 세속적 삶에 한계를 느끼고 대안을 선택한 사람들의 마을이다.”

-먹고사는 문제는 어떻게 하나?

“대부분의 공동체는 사유재산 없이 공동재산을 택하고 있다. 대부분이 먹는 것은 호텔 레스토랑 못지않았다. 브루더호프나 아속은 점심이든 아침이든 그 공동체의 가장 중요한 식사를 공동식당에서 함께 하고, 나머지 끼니는 가족끼리 한다. 이때는 공동창고에서 원하는 먹거리를 가져다가 가족별로 집에서 요리해 먹는다. 물론 무료다.”

-개인의 재산은 다 내놓아야 하나?

“오로빌처럼 개인 재산은 상관치 않는 곳도 있지만, 대부분은 공동체살이를 하다 보면 의식이 전환돼 개인의 재산을 내놓고 전적으로 함께하는 경우가 많다. 일본 야마기시의 경우 내분 이후 공동체를 나온 사람들이 소송을 제기해 헌납한 재산의 일부를 돌려받기도 했다.”

-누구나 다 공동체에 들어가 살 수 있는가?

“대부분의 공동체는 새로운 회원을 공동체 가족으로 받아들일 때 공동체 전원이 찬성해야 한다. 최소 몇달에서 1년가량 지켜본 뒤 결정한다. 공동체원들 간 분란을 낳지 않고 살 수 있을 정도의 마음 자세나 삶의 태도를 중시한다.”

-노인도 공동체원이 될 수 있나?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공동체는 양로원이나 요양원이 아니다. 따라서 공동체원이 되려면 좀더 활동적인 나이에 결단을 내리는 것이 좋다.”

-노동은 얼마나 해야 하나?

“아속이나 브루더호프 등 성공적인 공동체들은 농사 말고도 수입으로 자립할 만한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우드크레스트의 경우 오전 7시30분부터 오후 5시까지 일했는데 상당한 숙련도와 집중도가 요구됐다. 아속은 농사일과 유기농제품 공장에서 일하는데, 자발성을 중시했다.”

-월급은 있나?

“월급은 기본적으로 없다. 의식주와 의료 등 복지는 공동체에서 보장해준다. 오로빌처럼 생활이 어려운 이들에겐 기본 생계비를 주는 곳도 있긴 하다. 그러나 야마기시는 한 달에 1만엔 정도의 용돈이 있지만, 브루더호프는 용돈이 따로 없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외출할 때 돈이 필요하면 신청을 하고 타서 쓴다.”

-개인의 자유는?

“공동체는 혼삶이 아닌 ‘함께’ 사는 곳이다. 노동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시간을 가족과 함께 보낸다. 또한 공동식사 모임 등 공동체원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많다.”

-방문하려면?

“어느 곳을 방문하거나 미리 연락을 해서 허락을 받아야 한다. 시사아속에선 외부 방문자도 관장프로그램을 해줬는데, 지금은 중단됐다고 들었다.”

-방문자는 돈이 안 드나?

“방문 허가를 받으면 공동체 사람들과 같이 일하며 자고 먹는 게 원칙이고 따로 숙식비를 받지 않는다. 일본의 애즈원은 방문자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특별한 경우로, 3박4일 일정에 1인당 3만5천엔을 받는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religious/778183.html#csidx3ce0ecdb013860396a88efa5deee789

 

 

[한겨레 2017년 1월 11일]

[논설위원이 간다] 오손도손 모여 사니 매일이 재밌는 잔칫날이죠

 

노인 공동생활공간 ‘사구시 사랑방’


15가구 26명 사는 당진 농촌 마을
온 주민이 공동으로 노인 돌봄 실천

십시일반 돈 모아 사랑방 만들고
마을 노인들 함께 생활하게 해

주민들이 앞다퉈 먹을거리 가져와
사랑방 ‘특식’놓고 마을잔치 열어

산책·윷놀이 하며 노노(老老) 케어
고령 사회 대안 ‘사회적 가족’ 실현

당진 사구시 사랑방 노인들이 산책을 하며 즐거워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당진 사구시 사랑방 노인들이 산책을 하며 즐거워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노인들이 행복하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고령화 사회의 피할 수 없는 그늘, 바로 노인 부양 문제다. 65세 이상 노인 가운데 30%가 넘는 129만여 명이 홀로 산다. 한 해 4% 넘게 느는 추세다. 노인 돌봄을 개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돌봄’ ‘커뮤니티 케어’ 차원에서 바라봐야 하는 이유다. 충남 당진시 사기소1통1반 ‘사구시마을’은 마을공동체의 노인 돌봄이 실현되고 있는 곳이다. 돌봄의 중심은 마을 사람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만든 ‘사구시 사랑방’이다. 홀몸노인 6명이 공동생활하는 보금자리를 넘어 온 마을 노인과 주민이 어울려 서로 의지하고 보살피는 공간이다. 어버이날을 나흘 앞둔 지난 4일 사구시 사랑방의 웃음 넘치는 소소한 일상을 함께했다.
 
마을 사람들이 ‘버스 길’이라고 부르는 지방도에서 마을 이정표를 보고 핸들을 꺾자 굽은 길이 시작됐다. 작은 저수지를 지나 4㎞쯤 들어갔을까. 산으로 빙 둘러싸인 아늑한 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15가구 26명이 사는 작은 마을이다. 65세 이상 노인만 12명이다. ‘사구시 사랑방’은 마을 한가운데 나무로 지은 정자 옆에 자리잡고 있다.
 
사랑방 문을 열고 들어서자 따뜻한 기운이 훅 끼친다. 온실에 들어온 듯하다. 밖의 기온이 20도를 웃도는 데도 난방 보일러를 틀어 놓아서란다. 방 안에 있던 예닐곱 되는 할머니들이 땀 흘리는 기자가 안쓰러웠는지 잠시 창문을 열어 준다. 사랑방 회장인 황정옥(82) 할머니는 “노인들이 생활하는 공간이라 냉기가 없도록 세심하게 신경 쓴다”고 했다.
 
점심을 함께 먹으며 활짝 웃고 있는 손영자·윤종학·이옥자·황정옥 할머니(왼쪽부터). [프리랜서 김성태]

점심을 함께 먹으며 활짝 웃고 있는 손영자·윤종학·이옥자·황정옥 할머니(왼쪽부터). [프리랜서 김성태]

때마침 점심 식사 준비가 한창이었다. 매일 끼니를 함께하다 보니 암묵적으로 정해진 ‘당번’이 있다. 박순복(85) 할머니가 밥을 짓고 황 할머니가 반찬을 만들면 이옥자(84) 할머니는 음식물 쓰레기, 손영자(76) 할머니는 설거지를 담당하는 식이다. 최연장자인 맏언니 윤종학(91) 할머니만 ‘열외’란다. 이날만큼은 박 할머니의 며느리 하기숙(58)씨와 황 할머니의 딸 김명숙(55)씨가 사랑방에 와서 부엌 일을 도왔다. ‘특식’을 준비하는 날이어서다. 상 차리는 걸 돕던 마을 반장 김낙준(61)씨는 “특식 있는 날엔 온 마을 사람을 사랑방으로 불러서 잔치하듯 함께 먹는다”고 말했다.
 
‘사랑방 특식 잔치’는 마을 사람들이 가져온 특별한 식재료가 있을 때마다 열린다. 이날 특식 메뉴는 가죽나물을 곁들인 제철 나물 비빔밥이다. 가죽나물은 참죽나무의 여린 잎이다. 마을 반장 김씨는 “마을에 키가 30m 넘는 참죽나무들이 있는데 사흘 전 카 크레인(이동식 크레인)을 하는 친구가 와서 잎을 따준 덕분에 오늘 마을 어른들에게 가죽나물을 대접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할머니들도 거들었다. “얼마 전엔 마을 사람들이 붕어랑 민물고기랑 잡아와 어죽털레기를 해 먹었고요. 마을 논에서 거둔 미나리를 보내왔길래 미나리전을 해서 먹었지요.” “돼지 한 마리가 통째로 들어온 날엔 온 동네 고기 잔치를 했어요.”
 
사랑방의 점심 시간인 ‘정오’가 다가오면서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더 모여들었다. 식탁 자리가 모자라 방바닥에도 상을 펴고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최연장자 윤 할머니가 입을 뗐다. “나도 여기 한 자리 끼어 모여서 먹으니까 좋아.” “이 자리에 없으면 흉보니까 꼭 와야 해.” 웃음이 터졌다. 사랑방 회장 황 할머니는 “노인들에겐 함께 모여 식사를 한다는 것만큼 소중한 일이 없는 것 같다”며 “맛난 것을 해서 마을 사람들을 불러 함께 먹고 마을 사람들은 다시 우리 노인들을 보살펴 주니 이보다 고마울 수가 없다”고 말했다.
 
사랑방에 모여 윷놀이하는 모습. [프리랜서 김성태]

사랑방에 모여 윷놀이하는 모습. [프리랜서 김성태]

사랑방 한쪽 벽에 걸린 흰색 칠판은 ‘기부자’들의 이름으로 빼곡하다. 믹스커피와 과일, 반찬거리를 갖다 준 이도 일부 있지만 대부분은 지난해 9월 사랑방을 만들 때 돈을 보탠 사람들이다. 마을 주민과 외지에 사는 자녀 60여 명이 형편대로 200만원에서 5만원씩 추렴해 3100만원을 모았다. 마을 반장 김씨에게 사연을 들어봤다.
 
“재작년 3월에 마실 장소인 윤 할머니 집에 불이 났어요. 반상회를 열고 별도의 마을 사랑방을 만들어 어른들을 모시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마침 당진시가 공동생활하는 노인들을 지원하는 ‘독거노인 공동생활제’라는 사업을 하길래 신청을 했지요. 그런데 사랑방 후보지로 신청한 마을 빈집이 무허가라 안 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마을 주민 힘으로 직접 사랑방을 만들자며 정성을 모은 겁니다.”
 
마을 사람들은 당진2동과 당진시를 오가는 1년여 노력 끝에 ‘독거노인 공동생활제’ 지정을 받기는 했다. 다만 건물 리모델링 비용은 주민이 모은 자체 돈으로 충당하고 냉장고, 에어컨, 전화기, TV, 전자레인지 등 비품을 사는 비용 800만원만 지원을 받았다. 당진시 노인복지팀 윤정원 주무관은 “관내 9개 독거노인 공동생활제 가운데 사구시 사랑방이 여섯 번째인데 마을 주민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만들고 운영하는 바람직한 모델”이라며 “운영비와 시설 보수비 등으로 연간 510만원을 사랑방에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을 노인들은 매일같이 사랑방에 나와 종일 어울려 지낸다. 홀몸노인들은 사랑방에서 함께 자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사랑방은 완벽한 ‘노인 돌봄’의 장소다. 마을 반장 김씨는 “그 전엔 외지에 나가 사는 마을의 자녀들이 혼자 사는 어른이 전화를 안 받는다며 나를 찾기 일쑤였는데 지금은 사랑방에서 ‘자동 확인’이 된다”며 웃었다.
 
사랑방에선 ‘노노(老老) 케어’도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막내급’인 70대 손영자 할머니는 15살 연상인 윤 할머니를 친언니처럼 살뜰히 보살핀다. 고령 탓에 듣는 게 약간 불편한 윤 할머니의 ‘대변인’을 자처한다. 손 할머니는 “따로 지낼 때는 방앗간 심부름이나 택시를 불러 시내 모시고 나갈 일이 생겨도 연락하시는 게 불편하곤 했는데 지금은 딱 붙어 지내니 보살펴 드리기가 훨씬 수월하다”고 말했다.
 
점심 식사를 마치자 종이컵에 탄 믹스커피가 돌았다. 90세가 넘었는데도 윤 할머니는 하루에 커피를 3~4잔이나 마신다고 한다. “마셔도 잠이 안 오고 안 마셔도 어차피 잠이 안 오니 그냥 마시는 거야”라는 할머니 말에 한바탕 웃음이 번진다. 그 사이 방 밖에는 오전에 불던 바람이 잦아들고 볕이 좋아졌다. 산책을 나가기로 했다. 집 울타리에 철쭉꽃이 한창인 ‘반장댁’을 돌아오는 코스다.
 
윤 할머니와 이정순(86) 할머니가 유모차에 의지해 앞장을 섰다. 미나리가 드문드문 남아 있는 논을 지나 참죽나무 몇 그루가 줄지어 서 있는 길로 들어섰다. 야트막한 비탈길이다. 반장댁이 가까워오자 오르막이 심해졌다. 급기야 유모차를 밀고 가던 윤 할머니가 ‘만세’를 불렀다. “에고, 더는 못 가, 못 가. 점심 먹은 게 다 내려갔어. 죽는 게 나아.” 모두들 박장대소다. 
 


늘어나는 고령자 가구

늘어나는 고령자 가구

노인들이 넘어질세라 뒤를 따르던 황 할머니의 아들 김명호(57)씨가 잽싸게 윤 할머니의 유모차를 잡고 그 위에 윤 할머니를 앉혔다. 유모차가 움직이자 윤 할머니가 해맑게 웃는다. 다른 할머니들도 “호강하네요”라며 웃는다. 반장댁 철쭉 울타리에 도착했다. “분홍빛 옷 차려입은 할머니들이 더 화사해서 철쭉꽃이 빛이 나질 않네요.” 객쩍은 농에 할머니들 얼굴엔 또 웃음꽃이 피었다.
 
산책을 마치고 사랑방에 돌아오자 황 할머니가 “수고들 했다”며 사이다 한 잔씩을 건넸다. 숨을 고르고 나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방바닥에 담요를 깔고 윷판을 놓고는 빙 둘러 앉았다.
 
“사랑방 놀이의 9할은 윷놀이이고요. 민화투가 1할입니다.” 산책이 힘들었다던 윤 할머니가 언제 그랬냐는 듯 밝은 표정으로 윷판 바로 옆에 ‘좌정’을 하곤 ‘1번’으로 윷을 던졌다. 본새를 보니 이곳의 ‘지엄한 규칙’인 듯했다. 사랑방 총무
김연학(79) 할아버지는 “윤 할머니가 윷판의 말 놓는 걸 늘 주관하신다”며 “머리 시원찮은 사람은 윷판을 잘 못 쓰는데 할머니는 정말 말을 잘 놓는다”며 자랑을 했다. 오후 내내 윷이 던져질 때마다 사랑방에선 박수 소리와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이렇게 오순도순 모여 지내니 매일이 재밌고 행복한 잔칫날 같아요.” 황 할머니 말에 너나없이 맞장구를 쳤다.
 
겨울철이나 농사일이 바쁘지 않을 때는 사랑방이 함께 잠을 자는 ‘집’이다. 늘 보는 얼굴들인데 잠자리에서 무슨 얘기들을 나눌까. 손 할머니에게 물었다. “나란히 주욱 누워서 주로 자식들 얘기를 하지요. 다들 3~5명씩 자식들을 뒀는데 모두 외지에 나가 있으니 늘 잘 사는지 염려를 하지요.” 더러는 며느리 흉도 보느냐는 우문에 “며느리 자랑을 하면 했지 그런 일은 없다”는 단호한 답이 돌아왔다. 
 
그 말에 쉽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마을에서 한나절 지내는 동안 노인들이 이구동성으로 들려준 말 때문이다. “우리 마을 자식들은 다 효자고 효녀”라는 거다. 점심을 먹을 때도 산책을 할 때도 빼놓지 않는 화제다. 그것도 제 자식이 아니라 남의 집 자식을 칭찬하고 자랑한다. “저 할머니 아들은 다른 지역 읍장인데요. 어머니 안부가 궁금하면 새벽에라도 찾아와 인사를 드리고 출근하는 효자예요.” 황 할머니가 묻지도 않았는데 귀띔하듯 한 말이다.
 
온 마을이 노인들을 돌보는 걸 보니 그럴 만하지 싶었다. “이 마을은 영화 ‘웰컴투 동막골’에 나오는 동막골 같은 곳이죠. 30년 전 홀로 되신 어머니가 이곳에서 마을 어른들과 함께 지내며 행복해 하세요. 마을 어른들을 뵈면 정말 편하고 다 이모 같고 가족 같아요.” 인천 소래포구에 사는 황 할머니의 50대 딸 김명숙씨는 그래서 남편과 함께 이 마을로 돌아오기로 했다. 연말쯤 이곳에 집 짓는 일이 마무리된다. 김씨는 “마을 주민들과 함께 어머니와 노인들을 보살피며 살 것”이라고 했다. 
 
고령화 사회 노인 부양 문제의 대안 중 하나인 ‘사회적 가족’, 당진 사구시마을에선 이미 실현되고 있었다.
 
김남중 논설위원

[출처: 중앙일보 2018년 5월 16일] [논설위원이 간다] 오손도손 모여 사니 매일이 재밌는 잔칫날이죠

아인슈타인의 경고는 공동체의 이해를 전제하지 않은 사적 소유의 방종은 공동체의 해체와 몰락을 가져온다는 유럽의 경험을 전한 것이었다. 그리스와 로마가 바로 그렇게 망했던 것이다. 그리스의 솔론, 로마의 그라쿠스 형제가 호소했던 개혁은 바로 그런 위험의 경고였다.

1949년 5월 미국 자본주의의 심장부 뉴욕에서 사회주의 노선을 표방한 잡지 <먼슬리 리뷰>가 창간되었다. 그런데 창간호의 권두논문이 눈길을 끌었다. 그 논문의 필자가 뜻밖에도 당대 최고의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었고, 그것은 이 잡지의 사회과학 색채와 얼핏 어울리지 않아 보였던 것이다.

‘왜 사회주의인가’라는 제목의 이 글은 사적 이해에 과도하게 경도된 미국 자본주의에 경종을 울리면서 공동체 이해의 회복을 강조한 것이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질서의 주도권을 쥔 당시의 미국으로서는 다소 뜬금없어 보이는 경고였다. 그의 경고는 당연한 듯 무시되었고 오히려 뒤이은 매카시즘의 광풍에 그는 이 글의 대가를 혹독하게 치러야만 했다.

1933년 나치의 박해를 피해 스스로 피난처로 선택한 미국 사회에 대해서 그가 이런 딴청을 피운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독일에서 태어나 유럽에서 자란 그가 보기에 사적 이해의 과잉으로 공동체 가치가 밀려난 미국 사회가 매우 위태롭게만 보였기 때문이다. 그의 이런 생각은 역사적 근거를 가지고 있었다. 인류의 경제제도는 원래 공동 소유에서 시작되었다. 집단을 이루어야만 생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로마에서 잠시 사적 소유가 허용되었지만 그것은 공동체가 사적 소유를 보호해주는 조건에서만 그러했다. 그래서 공동체의 보호막(팍스 로마나)이 사라지자 곧바로 사적 소유는 폐기되고 공동체 소유만 지속되었다. 바로 봉건제도이다. 자본주의는 봉건제도를 이어받아 등장하였고 그것의 사적 소유도 당연히 공동체의 보호막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그것이 유럽의 자본주의이다.

그런데 미국 자본주의는 봉건제는 물론 아메리카 원주민의 이해와도 단절된 채 일방적인 식민의 형태로 건설되었고, 따라서 공동체의 보호막을 전제로 하지 않은 채 사적 이해만으로 이루어졌다. 소위 미국의 예외주의이다. 그것은 자유주의와 결합하여 방종으로까지 발전하였는데 약탈적 자본가로 이름을 떨친 제이 굴드가 그것을 대변한다. 그는 1886년 자신의 철도노동자들이 파업을 결의하자 이렇게 말했다. “나는 미국 노동자 절반을 고용하여 나머지 절반을 죽여버릴 수 있다.”

미국이 신대륙에 고립되어 있는 동안, 그리고 백인들 이전에 그 땅에 살고 있던 약 1300만명의 원주민들이 학살로 겨우 20만명만 살아남을 동안 사적 이해의 이런 방종은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았다. 4번의 공격으로 10야드의 땅만 빼앗으면 무한히 전진을 계속하는 미식축구가 그렇게 만들어졌다. 하지만 아메리카대륙의 고립에서 벗어나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고 전후 세계의 “제국”을 자처하면서 이런 방종은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아인슈타인의 경고는 공동체의 이해를 전제하지 않은 사적 소유의 방종은 공동체의 해체와 몰락을 가져온다는 유럽의 경험을 전한 것이었다. 그리스와 로마가 바로 그렇게 망했던 것이다. 그리스의 솔론, 로마의 그라쿠스 형제가 호소했던 개혁은 바로 그런 위험의 경고였다. 아인슈타인의 경고는 실제로 빈말이 되지 않았다. 철옹성 같았던 “팍스 아메리카나”의 “제국”은 1970년대 베트남에서 참담하게 무너졌고 경제적 번영도 함께 막을 내렸다. 지금 미국은 자신을 건사하기에도 바빠 세계를 상대로 무역 분쟁을 일으키고, 공동체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는 대통령은 세계의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의 이 경고가 지금 우리 사회에도 그대로 울리고 있다. 최근 드러나고 있는 한진, 삼성, 엘지 등 자본가들의 반사회적 행태가 그것이다. 제이 굴드의 방종을 그대로 본뜬 이들의 행태와 거리낌 없는 범법 행위는 우리의 공동체 이해가 얼마나 위태로운지를 알려준다. 그 방종이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에서 비롯되었고, 따라서 그 해법도 개인적 처벌이나 경영 퇴진을 넘어 사적 소유의 사회적 규제에 있다는 것은 이미 150년 전에 알려졌다. 유럽의 많은 나라들이 공동결정 제도를 통해 생산수단의 사용을 사회적으로 규제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사실 우리 사회가 지금 고민하고 있는 미투, 교육, 일자리 문제의 해법도 모두 여기에 있다는 것을 이들 유럽 나라는 알려주고 있다.

그 해법의 방향을 가리킨 마르크스의 탄생 200주년을 맞고 있다. 공동체의 회복을 밝힌 촛불이 마르크스를 돌아보아야 할 이유를 우리 사회의 자본가들이 때맞추어 애써 알려주고 있다. 참으로 ‘역사의 간지’라고 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44386.html#csidx4905a22b5438060812ce3838b42cc46

 

강신준 동아대 경제학과 교수

 

[한겨레 2018년 5월 14일]

느린삶학교 모임

2018. 4. 30. 09:51 | Posted by 행복 기술자

한겨레신문에서 만든 느린삶학교 과정 5기가 졸업(?)을 했다고 합니다.

저는 1기로 마쳤는데, 5기까지 나왔다니 반가웠습니다.

1기부터 5기까지 모임이 있다고 하여 모처럼 모임에 나갔습니다.

 

 

강화 지역 공동체 운동가 이광구씨

이광구씨는 서울법대 82학번이지만 졸업장은 없다. 대학 동기 모임에 대해 물었더니 이렇게 답했다. “서울법대 전체 동기 모임에는 나가지 않습니다. 대신 서울법대 82학번 운동권 동기 모임에는 나갑니다. 최소 2학년까지 학생운동을 한 친구들이죠.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 원희룡 제주도지사 등 모두 25명 정도 됩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이광구씨는 서울법대 82학번이지만 졸업장은 없다. 대학 동기 모임에 대해 물었더니 이렇게 답했다. “서울법대 전체 동기 모임에는 나가지 않습니다. 대신 서울법대 82학번 운동권 동기 모임에는 나갑니다. 최소 2학년까지 학생운동을 한 친구들이죠.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 원희룡 제주도지사 등 모두 25명 정도 됩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그동안 돈벌이로 23가지 일을 했더군요.” 그가 했던 일은 이렇다. 용접공, 노동상담, 자동차 정비공장, 대리운전, 해외인터넷방송 기획사, 두부공장, 대안학교, 영농조합, 증권사 등등. 상장 증권사를 갖고 있는 지주사 대표이사도 했단다. 잦은 생업 변경을 두고 아이들한테 “아빠는 자기 하고 싶은 것만 한다”는 원망을 듣기도 했단다. 그는 최근 <돈이 결코 마르지 않는 인생 2라운드 50년>이란 책을 펴낸 이광구(55)씨다. 23일 한겨레신문사에서 저자를 만났다.

직업만 다양한 게 아니다. 학생운동 이후 꾸준히 실천해온 사회운동의 형태도 무척 다양하다. 지금은 청년공동주거운동과 지역공동체운동에 힘을 쏟고 있다.

그는 서울대 법대 82학번이다. 졸업은 못했다. 학생운동을 하느라 학점 미달로 제적을 당했다. 85년과 87년 두차례 구속되기도 했다. 각각 1년씩 옥에 갇혔다. “처음엔 구로 지역에서 가두시위 주동을 하다 구속됐죠. 87년엔 구로구청에서 대선 개표부정 항의 농성을 하다 잡혔는데 전과가 있다고 구속시키더군요.”

석방 뒤에도 구로 지역에서 노동운동을 하다 92년 대선 이후로는 지역운동에 뛰어들었다. 구로 지역 활동가들과 생협 운동을 했다. 95년엔 노동자협동기업인 자동차 정비공장을 열었다. 그의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된 일이었다. “빨리 성취하려고 욕심을 부리다 6개월 만에 문을 닫았어요. 빚을 꽤 떠안았죠.” 빚을 갚기 위해 대우자동차에 들어갔다. 또 부천 전셋집을 빼서 강화도 월셋집으로 옮겼다. 김우중 당시 대우 회장의 ‘운동권 인재 특채’ 정책 덕에 들어간 대우자동차에선 딱 3년6개월간 일했다. “회사에서 (노조를 관리하는) 노무부서로 발령 내려고 하더군요. 받아들일 수 없었죠.”

서울법대 운동권 제적·두차례 구속
노동운동 거쳐 생협 등 지역운동 나서
재무설계사 6년 경험 ‘돈의 가치 자각’

공동주거·로컬푸드…건강한 돈벌이
‘돈이 마르지 않는 인생 2라운드 50년’
“지역공동체 통한 건전한 관계가 답”

2004년에 또 다른 인생의 분수령을 만났다. 같이 노동운동을 했던 라의형씨가 세운 포도재무설계에 입사한 것이다. 이곳에서 한차례 퇴사와 재입사를 거쳐 2013년까지 6년을 재무설계사로 일했다. “(재무설계사 일을 한 것은) 내 인생의 가장 탁월한 선택이었죠. 돈 문제에 대한 개인의 자각 없이는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으니까요.”

3년 전부터는 협동조합 ‘큰바위얼굴’을 설립해 청년공동주거운동을 하고 있다. “대학 선후배 10명이 뜻을 모았어요. 월 100만원을 받는 상근 직원도 둘 있습니다.” 저리의 공공 정책자금을 지원받아 아파트 등을 전세로 얻어 대학생들에게 싸게 임대해준다. 지난해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공모한 안산과 부천 지역 주택 33채도 확보해 모두 90명의 청년에게 집 걱정을 덜어주고 있다.

그가 20년 동안 살아온 강화 지역 공동체 운동에도 힘을 쏟고 있다. 지난해부터 강화 주민이 생산한 농산물을 파는 로컬푸드협동조합 일을 시작했고 장애인 직업재활 시설인 쌀도정공장에서 영업도 하고 있다. 지역 공동체를 건강하게 꾸리는 일을 하면서 돈도 벌고 있는 것이다.

그는 세 자녀(나리·온달·보리)를 두고 있다. 2010년엔 사교육 대신 강화의 자연 속에서 아이들의 꿈을 보듬어주며 키워낸 이야기를 담은 책 <희망교육 분투기>를 펴냈다. 큰딸 나리는 고교를 나온 뒤 생태운동을 하다 뒤늦게 꿈을 이루기 위해 대학에 들어갔고 아들 온달은 인천 과학고를 나와 지금은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다. 막내딸 보리는 대안학교를 졸업한 뒤 대학 대신 사회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고 있다.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 은퇴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그가 인생 2라운드를 맞는 이들에게 강조한 열쇳말은 ‘낙관과 목표’이다. 지나치게 노후를 걱정하지 말고 자기가 하고 싶은 목표를 세우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 정도의 경제력이면 나라가 어느 정도 노후를 보장해줄 수 있어요. 금융사 공포 마케팅에 불안해할 필요가 없어요.”

그가 보기에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고비용 사회’라는 점이다. “변호사와 공무원 부부조차도 사교육과 주거비 때문에 헉헉거리더군요. 재무상담을 할 때 그런 사례를 많이 봤어요. 충격이었어요.” 말을 이었다. “재무설계에서 중요한 것은 자신의 재무 상태를 아는 것, 꼭 하고 싶은 재무 목표를 정하는 것 그리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 장기 투자를 하는 것이죠. 그런데 늘 목표 설정이 문제입니다. 사회 시류에 편승하거든요.” 자기 목표를 정하고 소비를 줄인다면 노후 불안은 기우라는 것이다. 물론 그 전제는 국가가 시민의 삶의 질을 보장해주고 소득 양극화 해소에 나서는 것이다.

이런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기는 쉬워도 실천에 나설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는 세 자녀의 사교육에 돈을 쓰지 않았다. 아이들은 고교 졸업 이후 경제적으로 독립했다. 지금 사는 강화도 북쪽 끝단의 집도 4천만원에 구입했다. 경조사도 아주 가까운 경우만 챙긴다.

“불안의 핵심은 돈이 아니라 관계인 것 같아요. 지역사회에서 눈빛 마주치고 서로 어울리면, 혹 무시당할까봐 눈치 보면서 고비용으로 달려가는 풍조가 완화되지 않을까요. 건전한 인간관계를 맺으면 소비도 줄고 잔잔한 즐거움을 느끼죠. 그런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이들이 자극적 즐거움을 찾아 고비용으로 달려가죠.”

강성만 선임기자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29254.html#csidx46b0511714999209b132a08c7af6ff9

 

[한겨레 2018년 1월 25일]

겨울 텃밭 풍경

2017. 12. 11. 07:00 | Posted by 행복 기술자

겨울이 다가오면서 텃밭도 마감 상태입니다.

그래도 오랫만에 텃밭에 들러 시금치를 수확했습니다.

너무 늦게 심어서 그런지 시금치가 별로 많이 자라지 않았지만, 마무리 수확을 했습니다.

 

 

이전 1 2 3 4 5 6 7 8 ··· 3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