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엔지니어로서 살아온 30여 년의 세월과 더불어 인생 후반기를 맞아 행복을 추구하는 기술자의 변신 스토리입니다. --------- 기술 자문(건설 소재, 재활용), 강연 및 글(칼럼, 기고문) 요청은 010-6358-0057 또는 tiger_ceo@naver.com으로 해 주세요.
행복 기술자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최근에 받은 트랙백

글 보관함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더 나은 사회]
경제 45% 협동조합이 담당하는 볼로냐시
협동조합 이끄는 주요 인사들 한국 찾아
‘사회적 경제’ 활성화 방안 등 조언 내놔

“사회 다양한 요구들에 민간이 먼저 반응
관, 민간 이니셔티브 인정·문제해결 협력을
민관 수평관계 담은 법제화 작업 준비하고
협동조합끼리 협업 통한 사업확대 등 고려를”
불평등 심화·고령화 등 직면 한국에 시사점

 

지난달 31일 오전 서울 종로구 한국교회백주년기념관에서 열린 ‘2019 국제희년재단 심포지엄-소외와 배제 없는 사회를 위하여’ 행사에 이탈리아 볼로냐시 협동조합 주요 인사들이 대거 참석해, 협동조합 활성화와 관련한 여러 조언들을 내놨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

이탈리아 중북부에 있는 볼로냐는 흔히 ‘협동조합의 성지’로 불린다. 조 단위 매출을 올리는 소비자협동조합 체인을 비롯해 농민·낙농·주택·유치원·급식·택시·연극·인쇄 등 수백개 협동조합이 활발하게 활동 중이기 때문이다. 인구 50만명이 채 안 되는 중소도시지만 1인당 국민소득은 이탈리아 전체 평균보다 두배 가까이 높고, 실업률은 5% 수준으로 이탈리아 평균의 절반에 불과하다.

 

이런 ‘협동조합의 도시’ 볼로냐 협동조합연합회를 이끄는 리타 게디니 회장, 돌봄서비스 사회적 협동조합 카디아이(CADIAI) 프랑카 굴리엘메티 회장, 볼로냐시 안젤로 피오리티 정신보건국장 등이 한국을 찾았다. 국제희년재단 등 주최로 지난달 31일~이달 1일 서울 종로구 한국교회백주년기념관에서 열린 ‘소외와 배제 없는 사회를 위하여’ 심포지엄에 참석해, 자신들의 경험을 한국의 활동가들과 함께 공유, 전수한 것이다. 이들은 수평적인 민관 협력관계 구축과 경쟁력 강화를 위한 협동조합 사이 협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리타 게디니(Rita Ghedini) 볼로냐 협동조합연합회장.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

협동조합이 GDP 45%…위기 땐 안전망 구실도 “볼로냐시 협동조합들 매출은 165억유로(약 22조원)로 시 국내총생산(GDP)의 45%를 차지한다. 협동조합들이 최근 1년 동안 만들어낸 일자리가 7만4천개인데, 이 가운데 86%는 영구계약직으로 안정성도 높다. (볼로냐 협동조합들은) 가진 자들의 착취나 소외가 없는 (자본주의를 벗어난) 다른 사회 형태를 선보였다고 할 수 있다.”심포지엄 기조발제를 맡은 임종한 인하대 의대 교수(국제희년재단연구원장)의 평가다. 리타 게디니 볼로냐 협동조합연합회장은 이탈리아 고용동향 데이터를 제시하며 이를 뒷받침했다. ‘사회적 경제는 어떻게 볼로냐 사회발전의 핵심 동력이 되었는가’를 주제로 발표한 게디니 회장은 “2013~16년 이탈리아에 경제위기가 왔고, 이때 일반기업들은 해고 등을 통해 고용을 줄였다. 하지만 협동조합이 경제를 주도하는 (볼로냐가 주도인) 에밀리아로마냐주에서는 고용이 더 늘었다. 경제가 어려울 때 협동조합은 더욱 발전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실제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8년과 2015년을 비교하면 볼로냐 전체 협동조합들의 자산 규모는 줄었다고 한다. 마진이 줄어들더라도 고용은 줄이지 않은 결과였다. 게디니 회장은 “협동조합이 경제위기의 영향력을 완화하는 구실을 한 셈”이라고 설명했다. 게디니 회장은 어린이·청소년·노인·장애인 등을 대상으로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적 협동조합 카디아이에서 30년가량 몸담다 이탈리아 상원의원이 돼 정계에 진출했고, 2014년 볼로냐 협동조합연합회장으로 ‘현업’에 복귀했다.

 

알세스테 산투아리(Alceste Santuari) 볼로냐 대학 경영대학원 교수.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

 

프란카 굴리엘메티(Franca Guglielmetti) 카디아이 회장.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

수평적 민관협력관계 중요…협동조합끼리 협업도 자본주의 사회이면서도 영리추구 목적이 아닌 협동조합이 어떻게 전체 경제의 절반 가까이 차지할 수 있을까. 볼로냐 인사들은 수평적 민관 협력 파트너십의 중요성을 한입으로 강조했다.볼로냐대 경영대학원 알체스테 산투아리 교수는 “민관 협력 파트너십이란 정부가 시장에서 (입찰을 통해) 사회적 기업이나 비정부기구(NGO), 협동조합의 서비스나 물품을 구매하는 공공조달과는 다르다”며 “(파트너십이란) 상호 신뢰에 바탕해공공기관과 민간이 동등한 책임과 권한을 가지는 관계”라고 말했다.그는 “현대사회에서 시민들의 요구는 다양하고 복잡하며 중층적이어서 공공기관이 이를 다 처리할 수 없다. 공동체의 필요에 시민들과 봉사자 등 민간에서 먼저 반응해 움직이게 되는데, 관은 이런 민간의 이니셔티브를 인정해줘야 한다”며 “(관은) 구매하면 된다는 마인드가 아니라, 어떻게 시민들의 필요에 응할지 함께 협의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민관이 동등한 관계에서 협력한다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게 좋다”고 강조했다.이들 두고 청중들 사이에서 ‘갑을 관계가 많고, 관 우위 전통이 오랜 한국 사회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법제화해야 한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등 반응이 나왔고, 산투아리 교수는 “20년 전 볼로냐에서도 (뭘 어떻게 법제화할지) 막연해했다. 필요하다면 여러분께 법제화 내용을 건네주겠다”고 화답했다.협동조합 사이 협업의 중요성도 얘기됐다. 카디아이 프랑카 굴리엘메티 회장은 “카디아이는 (사회복지 노동자들) 노동조합에서 시작했지만 단순한 노동조합이 아니라 기업적 가치를 실현하고자 했다. 다만 그 목적은 이익이 아니라 영속성이었다”며 “생산성 향상을 통해 수요를 창출해야 하고, 지역적 기반을 확실히 하되 컨소시엄과 향토기업 상품 프로모션 활용 등 다른 조합들과 협력을 통해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 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협동조합은 독자적인 기술과 경영 역량만으로는 성장하기 어렵다. 정부와 다른 협동조합, 지역사회와의 신뢰 관계를 바탕으로 한 협력 네트워크가 중요하다”며 “규모가 큰 협동조합일수록 중소 협동조합이 성장할 수 있도록 손을 내밀어주는 책임있는 자세가 필요하다”고도 덧붙였다.

 

안젤로 피오리티(Angelo Fioritti) 볼로냐 정신보건국장.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

정신병원, 사라져도 별일 없더라! 프랑스의 철학자·사회학자인 미셸 푸코는 서구에서 근대 출범의 지표 가운데 하나로 정신병원의 탄생을 들었다. 이성과 상식, 표준을 표방한 근대에 들어서면서 광인을 치료 대상으로 분류하고 감금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런 기준에서 보면, 이탈리아는 탈근대국가다. 정신병원이 사실상 사라진 나라이기 때문이다.이탈리아는 1978년 국립정신병원을 점진적으로 없애고 의료진을 재배치하는 내용의 법률을 제정했고, 그 결과 2000년께 70여개에 이르던 국립정신병원이 모두 폐쇄됐다. 이들 병원에 수용돼 있던 정신질환자 7만여명은 각자 지역사회로 돌려보내져 돌봄과 치료를 받게 됐다. 안젤로 피오리티 볼로냐시 정신보건국장은 ‘이탈리아 정신보건의 역사’ 발제에서 감금과 억압에서 지역사회 돌봄으로 점진적으로 옮겨간 정신의료 개혁 과정을 소개했다. 지역마다 설치된 정신건강센터를 중심으로 종합병원 외래, 주간치료센터, 공동거주 등 네트워크를 구축해 정신장애인들은 지역공동체 일원으로 생활하도록 했다는 내용이었다. 피오리티 국장은 “지난 10여년간 (지역사회 돌봄 중심 정신보건정책) 시스템이 위협받기도 했다. 경제위기로 인한 재정 악화로 위기가 오기도 했었지만 개혁 과정에 대한 평가는 전반적으로 긍정적”이라고 설명했다.

 

라라 퓨리에리(Lara Furieri) 카디아이 협동조합 국제 프로젝트 총 책임자.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

이틀 동안 진행된 심포지엄에서 볼로냐 쪽 인사들은 긴 기대 수명과 산악지대가 많은 반도 국가, 인구 규모 등 이탈리아와 한국의 공통점을 언급하며 친근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처지나 조건이 비슷하니 한국에서도 협동조합 모델이 성공할 수 있지 않겠냐는, 기대 담긴 응원이었다. 임종한 교수는 “사회 불평등 심화, 실업 증가, 비정규직 증가 등 고용의 질 저하, 고령화에 따른 건강 취약계층의 증가, 의료 및 복지 비용의 증가 등 현대사회의 복잡한 사회문제들은 시민 참여에 따른 직접민주주의 실현, 사회적 경제 육성, 경제민주화 등을 통해 해결할 수 있음을 ‘볼로냐 모델’이 실증적으로 보여준다”며 “한국 사회에도 시사하는 의미가 적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순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수석연구원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15663.html#csidx88a65c89b5dd61ea8350669ca45e652

 

볼로냐 협동조합 수뇌부들 “민관 수평적 협력관계 구축을”

[더 나은 사회] 경제 45% 협동조합이 담당하는 볼로냐시 협동조합 이끄는 주요 인사들 한국 찾아 ‘사회적 경제’ 활성화 방안 등 조언 내놔 “사회 다양한 요구들에 민간이 먼저 반응 관, 민간 이니셔티브 인정·문제해결 협력을 민관 수평관계 담은 법제화 작업 준비하고 협동조합끼리 협업 통한 사업확대 등 고려를” 불평등 심화·고령화 등 직면 한국에 시사점

www.hani.co.kr

 

[한겨레 2019년 11월 5일]

성미산 마을 탐방

2019. 11. 4. 07:00 | Posted by 행복 기술자

요즘 50플러스재단 서부캠퍼스에서 진행하는 공동체 주택 관련 강의를 듣고 있습니다.

이번에 고양시 덕양구에 있는 여백이라는공동체 주택을 탐방했습니다.

간김에 근처에 있는 흥국사도 둘러봤습니다.

 

[토요판] 100세시대 일본
④독신 노후의 인간관계

‘느슨한 가족’ 만든 40대 비혼여성
한달에 두번 ‘생존 확인’ 겸한 식사
“노후 대비한 최소한의 사회안전망”

7080여성 7명 아파트 한동 모여 살기
서로 돕고 살지만 간병은 해주지 않아
‘자립’ ‘공생’ 같이 실현하는 것이 목표

 

한 아파트에 각자 따로 집을 구해서 서로 도우면서도 자립생활을 하는 고령자들의 모임 ‘코코세븐’ 멤버들이 한자리에 모인 모습. 이들의 사연은 최근 <엔에이치케이>(NHK)에 소개됐다. <엔에이치케이> 방송 화면 캡처

“혼자인 사람들에게는 강한 인간관계만큼이나 느슨한 인간관계가 절실해요. 느슨한 인간관계는 노후를 대비한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이기도 하지요.”일본 교토에 혼자 사는 사와노 토모에(44·발 관리사)는 ‘느슨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지인 50여명과 한 달에 한두 차례 “생존 확인을 겸한” 식사 자리를 만들고 있다. 원래부터 친분이 있던 사람들, 그리고 자신이 대표를 맡은 단체 ‘문화욕(文化浴)의 숲’ 회원들, 이렇게 두 그룹으로 나눠서 모임을 하고 있다. 문화욕의 숲은 절이나 신사 같은 문화재를 같이 둘러보며 산책을 하는 단체다. 이 모임에 참가하는 사람 중에 혼자 사는 사람은 30% 정도다.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기 사와노가 ‘혼자 사는 사람의 인간관계’에 관해서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우연이었다. 10여년 전 결혼을 하지 않았지만 웨딩드레스를 입어보고 싶어하는 여성에게 웨딩드레스를 제공하고 사진을 찍어주는 사업인 ‘솔로 웨딩’의 모델로 나서면서부터였다. 지인의 부탁으로 참여한 일이지만 언론들이 주목하면서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다. “인터뷰하면서 평소 듣기 힘든 직접적인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왜 결혼을 하지 않았느냐?’ ‘왜 지금까지 혼자냐’ 같은 질문들이었죠.” 지난 23일 교토에서 만난 사오노의 말이다. 그는 이런 질문들에 답하면서 혼자 산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스스로 정리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지금 혼자라도 행복하다. 그리고 앞으로도 결혼하지 않아도 좋다, 이런 식으로 답을 정리하게 됐죠.”사와노는 앞으로 결혼을 하게 될 가능성과 독신으로 고령자가 될 가능성 모두가 있다고 했다. 그래서 후자에도 대비한 인생계획을 세우다 보니, 느슨하면서도 좋은 인간관계의 필요성에 생각이 미쳤다는 것이다. “죽음은 혼자서 맞이할 수밖에 없어요. 무섭지는 않아요. 하지만 숨지기 전까지는 사람들과 유대관계를 맺으면서 정신적으로 서로 의지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평소에 주위와 교류가 없던 사람이 노후에 갑자기 인간관계를 만들기는 쉽지 않죠. 고독사를 피하기 위해서도 일찍 대비를 시작한 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사와노는 강한 인간관계와 느슨한 인간관계, 둘 다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강한 인간관계는 강한 애정과 책임이 동반되죠. 필요하지만 힘든 면이 있지요. 회사도 일종의 강한 인간관계에요. 강한 인간관계만으로 인간은 살 수 없는 것 같아요. 사실 과거 지역 사회가 살아있을 때는 근처에 사는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느슨한 인간관계가 유지됐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죠.” 느슨한 가족 모임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교토뿐만 아니라 오사카, 고베 등 다른 간사이 지역 출신들도 있다. 느슨한 유대의 힘은 지난해 오사카 태풍과 지진 때 절감했다고 한다. 사람들이 라인(네이버의 메신저) 등을 통해서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는 과정이 든든하고 힘이 됐다. 그는 절이나 신사의 공간 일부를 빌려서 정기적 모임 장소를 만드는 게 꿈이다. 다만 셰어하우스에서 같이 살 생각까지는 하지 않고 있다. “자립하는 강한 개인이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관계를 맺고 싶다”고 했다.

 

일본 서부 효고현에 사는 70~80대 독신 여성 7명은 좀 더 적극적으로 ‘자립과 공생’의 삶을 실천하는 사례로 유명하다. 이들은 맨션(한국의 아파트) 한 동에 각자 따로 집을 구매해서 살고 있다. 2008년에 시작해서 10여 년째 하는 실험으로 각종 강연회와 언론보도 등을 통해 많이 알려졌다. <엔에이치케이>(NHK) 아나운서 출신인 무라타 사치코(78)와 기업 홍보팀 출신인 다야 기쿠(83), 사회복지법인 전 이사장 이치카와 레이코(81) 등이 중심이 되어 지인들을 모았다. 이들은 결혼하지 않았거나 이혼한 뒤 혼자가 된 여성들로, 모임 이름은 ‘코코세븐’(個個 7, 개인 7명이라는 뜻)이다. 이들은 집을 비우는 사람이 있으면 다른 사람이 가서 베란다 화분에 물을 대신 준다든지, 녹차가 떨어지면 전화를 하고 바로 빌리러 간다든지, 갑자기 몸이 안 좋다고 하면 가서 혹시 위급한 상황이 아닌지 살펴주는 등 일상생활에서 서로를 돕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서로에 대해 병간호는 하지 않은 것을 원칙으로 한다. 멤버 중 한 명인 다야는 일본 여성지인 <죠세세븐>에 “친구와 근처에 살 때는 ‘자립’과 ‘공생’, 두 가지가 모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간병은 하지 않는다고 정했다. 간호는 프로에게 맡기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일본에서 혼자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어갈지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하는 이유는 독신자 증가와 고령화라는 배경이 있다. 일본 후생노동성의 국립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의 2017년 발표를 보면 2015년 기준 50살까지 결혼을 한 번도 하지 않은 이들의 비율을 나타내는 ‘생애 미혼율’이 남성은 23.4%, 여성은 14.1%로 집계됐다. 남성 4명 중 1명은 50살까지 한 번도 결혼하지 않는 것이다. 1970년만 해도 생애 미혼율이 남성은 1.7%, 여성은 3.3%에 불과했다.

 

지난 23일 <한겨레>와 만난 사와노 토모에가 ‘느슨한 가족’ 모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비혼자만의 숙제 아니야 혼자인 채로 고령자가 되는 현상은 꼭 비혼자만 부닥치는 현실은 아니다. 죽음과 장례, 묘지 문제 등의 사생학(死生學)을 연구해온 고타니 미도리(50) 전 다이이치생명경제연구소 연구원은 지난해 배우자와 사별한 뒤 혼자 남은 사람의 문제를 다룬 책 <보츠이치>(?イチ)를 펴냈다. 보츠이치는 일본에서 이혼한 사람을 일컫는 속어적 표현인 ‘바츠이치’에 빗대어, 사별한 이들을 표현한 말이다. 고타니는 4년 전부터 배우자와 사별한 사람들이 중심이 된 모임인 ‘보츠이치 모임’을 하고 있다. 고타니 자신이 2011년 남편이 잠을 자다가 갑자기 숨지는 바람에 혼자가 됐다. 주위에서 “불쌍하다” “즐거운 듯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같은 반응이 나왔다. 그는 이런 반응들에 불편함을 느꼈고, 사별한 이후 혼자 남은 삶에 대해서 고민하게 됐다고 했다. 아이는 없었다. 고타니는 당시 릿쿄대학에서 장년층 이상을 대상으로 한 강의를 하고 있었는데, 여기서 배우자와 사별한 경험이 있는 수강생들을 만났고 이들과 의기투합해서 ‘보츠이치 모임’을 만들었다. 최근에는 사별한 남성들의 패션쇼도 기획했다. 고타니는 <보츠이치>라는 책에서 “현대사회에서는 배우자를 사별한 뒤의 삶이, 과거 대가족 사회일 때와는 매우 다르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과거 일본에서 남편과 사별한 아내는 혼자가 되지 않았다. 자식과 손자와 같이 사는 생활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또 평균 수명이 지금보다 짧았기 때문에 아내가 남편과 사별할 때에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였다. 하지만 지금은 부부 둘이 사는 경우가 많고 평균 수명 증가로 남성과 사별했을 때 여성도 상당한 고령인 경우가 다수”라고 지적했다. 혼자인 채로 나이가 들어가는 현상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대비를 해둬야 할 문제라는 것이다. 도쿄 글·사진/조기원 특파원

 

[한겨레 2019년 3월 30일]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japan/888033.html#csidxf817f890a853dba95d04d1f6ba0a420

귀농·귀촌 10가구 중 6∼7가구 달해
만족도 높고, 지역 융화도 순조로워
농림축산식품부 제공
농림축산식품부 제공
농촌에서 태어나 도시생활을 한 뒤 다시 농촌으로 귀농·귀촌하는 ‘회귀 현상’이 두드러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회귀 현상은 농업에 종사하려고 이주한 귀농 가구 10곳 중 7곳, 전원생활 등을 목적으로 이주한 귀촌 가구는 10곳 중 6곳에 달했다.

11일 농림축산식품부가 2013∼2017년 귀농·귀촌한 2507가구(귀농 1257가구·귀촌 1250가구)를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한 결과, 귀농 가구 53%, 귀촌가구 37.4%가 농촌에서 태어나 도시생활 뒤 연고가 있는 농촌으로 유(U)턴했다. 농촌에서 태어나 도시생활 뒤 비연고지로 이주(귀농 19.2%, 귀촌 18.5%)한 제이(J)턴까지 포함하면, 각각 72.2%, 55.9%으로 집계됐다. 도시에서 태어난 이가 농촌으로 가기 보다는 농촌에서 태어난 이들이 다시 농촌으로 회귀하는 경향을 보인 것이다.

귀농·귀촌 만족도도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귀농 가구의 60.5%, 귀촌 가구의 63.8%가 만족감을 나타냈다. 귀농과 귀촌 불만족은 각각 7%, 3.2%였다. 다만, 마을 주민과 교류, 마을 일·모임 참여 등 지역 주민들과 관계에서는 연고지로 이주한 귀농 가구의 만족도가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귀농 가구의 76.9%가 마을 주민관계가 좋다고 답했지만, 귀촌 가구는 62.5%에 그쳤다. 귀촌 가구의 35.8%가 마을 주민과의 관계가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고 답했다. ‘좋지 않다’고 답한 2% 미만의 귀농·귀촌 가구는 선입견과 텃세, 생활방식에 대한 이해 충돌 등을 주요 갈등 요인으로 꼽았다.

귀촌 가구 5곳 중 1곳(19.5%)은 이주 5년 이내 농업경영체를 등록하고, 농업에 종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농식품부는 귀촌 2년차 이후 농업에 종사할 경우 귀농 통계에 포함되지 않아 실제 귀촌 가구가 농업에 유입되는 비중은 더 클 것으로 예측했다.

농림축산식품부 제공
농림축산식품부 제공
귀농 가구의 소득은 이주 5년차 평균 3898만원으로, 일반 농가 평균 3824만원보다 많은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귀농 전 평균소득 4232만원에는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귀농 가구의 43.1%가 농업소득 부족 등의 이유로 농업 외 경제활동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밖에 귀농·귀촌인들은 지역에 확충해야 할 공공서비스로, 문화·체육 서비스, 취약계층 일자리, 임신·출산·양육 지원, 노인돌봄 등을 꼽았다. 농식품부는 이번 조사 결과를 토대로 귀농·귀촌인을 연계한 지역 일자리, 창업지원을 강화하고, 부족한 문화·복지 인프라 확충 방안을 검토할 방침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2017년 말 기준 귀농·귀촌 인구가 50만명을 넘어섰다”며 “이번 실태조사처럼 유의미한 데이터를 축적해 더욱 실효성 있는 지원 정책을 마련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정하 기자

 

[한겨레 2019년 3월 12일]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area/885374.html#csidx85c6691d509a91b9e95b428b8a4263c

아미1--.jpg

 

과학문명을 선도하는 미국에 살면서도 말과 마차를 타고 다니며 단순 소박한 삶을 지켜가고 있는 그리스도인 마을 아미시들을 대상으로 박사학위 연구를 진행한 거투르드 앤더스 헌팅턴을 비롯한 인류학자들은 20세 중반까지도 그들의 문화가 인류역사에서 머지않아 사라질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그들은 인류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기는 커녕 매 20년마다 두 배로 인구가 증가하는 뜻 밖의 결과를 보여주었다.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연지동 한국기독교회관에서 열린 ‘아나뱁티스트 컨퍼런스’에서 캐나다 메노나이트 교회선교부 김복기 목사가 발표한 내용이다. 이날 컨퍼런스는 ‘아나뱁티스트들이 살아온 오랜 방식’ <공동체를 말하다!>란 주제로  열렸다. 최근 국내에 마을공동체에 대한 관심이 급중하면서 마을공동체운동의 원조격인 아나뱁티스트 컨퍼런스가 열리자 150여명의 청중들이 참가해 5명의 목사와 교수들의 발표를 경청하고 열띤 질의응답을 펼쳤다.

 

1컨퍼런스--.JPG 세미나--.JPG

 

아미쉬4--.jpg

 

 산상수훈 부르심에 응답한 삶 선택
   김복기-.JPG » 김복기 목사 아나뱁티스트는 ‘재세례파’는 뜻이다. 태어나자마자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세례를 받는 것을 거부하고, 성인이 되어 자발적 의지로 세례를 받아 예수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는 삶을 택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500년 전 루터와 츠빙글리의 종교개혁운동이 관주도개혁에 머무르자 초기교회의 공동체적 모습 그대로 따르려는 이들이 모여 살았다. 이에 대해 발표자인 김난예(침례신학대)교수는 “산상수훈의 부르심에 응답한 이들“로 정의했다.
 아타뱁티스트들은 전쟁과 폭력을 철저히 반대하고 어떤 명분으로도 살상과 총기와 유아세례를 거부해 군부와 가톨릭, 주류 기독교로부터 모진 박해를 받고 쫓겨다니면서도 예수의 본질적인 사랑과 비폭력의 삶을 이어오며 인류사회에 큰 영감을 주었다. 감리교를 창시한 존 웨슬리는 1735년 영국에서 미국으로 가던중 배가 뒤집어질질뻔한 풍랑을 만나 자신을 비롯한 승객들이 두려움에 떨고있을 때 모라비언들만이 태연하게 찬송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회심했다고 한다. 그 모라비안들이 바로 아나뱁티스트의 선조들이다. 2006년엔 미국 필리델피아 아미시의 한 학교에 침입한 범인이 10명에게 총기를 난사에 5명이 죽고, 5명이 부상을 입었는데 아나뱁티스트의 일종인 아미쉬인들이 그날 해가 지기도 전에 범인을 조건 없이 용서하고. 답지하는 성금을 범인의 아내와 세자녀에게 먼저 할애해줄 것을 요청하고, 범인의 가족들을 식사에 초대해 위로해 전세계를 놀라게 했다.

 

아미2-.jpg 아미3-.jpg 아미쉬1-.jpg 아미쉬6-.jpg 아미쉬8-.jpg 아미쉬11-.jpg
 
 혼삶 시대에도 왜 공동체로 사는 사람이 늘까
 김난예-.JPG » 김난예교수   아나뱁티스트로는 국내엔 부르더호프공동체가 널리 알려져있다. 그러나 더 많은 아나뱁스트들 그룹인 후터라이트와 아미시, 메노나이트 등이 있다. 모라비안의 후예로 미국과 캐나다에 정착해 14가정씩 개인소유 없이 공동으로 살아가는 후터라이트인구는 1980년 2만4천여명이었으나 현재 4만5천여명으로 늘었다. 아미시는 농촌지역에만 거주하며 자동차 등을 거부한채 말과 마차를 타고 다니고 개인보다는 공동체의 건강성과 안녕을 우선시하는 삶을 유지하고 있다. 아미시는 1900년엔 6천명에 불과했으나 현재 33만여명으로 집계된다. 메노나이트는 교회 그룹으로 확산돼 현재 9624개 교회에 146만명의 회원을 두고 있다.설목사-.JPG » 설은주 목사
 산업화, 도시화와 개인의 자유가 중시되면서 핵가족화와 혼삶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이렇게 공동체적 삶에 동참하는 이들이 줄기는 커녕 늘어나고 있는 것에 대해 설은주 ‘하늘숲-좋은나무공동체’ 목사는 “관계가 깨져가고 있는데 대한 위기의식이 높아지고, ‘이대로는 도저히 안된다’며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서 가시적으로 드러내보고 싶은 욕구의 분출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난예 교수는 “현대사회가 물질적 부만을 추구하며 생긴 불평등으로 인한 온갖 문제의 해결책이 공동체에 있고, 특별히 장애인과 노인 등 어떤 사람도 소외되지않은 사회의 필요성으로 공동체가 더욱 필요해지고 있다”고 밝혔다.
김복기 목사는 “통상적인 조직들은 실패하면 서로 욕하고 흩어지기 마련인데, 아나뱁티스트들은 성공과 실패까지 공유해왔다”고 지속성의 비결을 설명했다.
 

아미쉬5--.jpg 아미쉬7--.jpg


 갈등과 두려움을 넘어 어떻게 함께살까
 최철호-.JPG » 최철호 목사 컨퍼런스에선 서울 인수동과 강원도 홍천 등에서 300여명이 공동체로 살아가는 밝은누리 대표 최철호 목사도 발표했다. 최 목사는 “‘나도 다 해봤는데, 다 부질없는 이야기야!’, ‘생각은 좋은데 현실에 맞지 않아!’라는 생각들은 그 자체가 불신앙, 체념적 삶의 표현”이라며 “일상에서 늘 욕망을 조작하고 불안을 조장해 생명을 고갈시키는 시대 우상이 강요하는 삶에서 탈주해 먹고 입고 자고 즐기는 생활양식과  결혼·임신·출산·육아와 수련, 치유, 교육, 노동, 놀이 등 구체적 삶에서 하나님 나를 증언하는 삶을 살아가는 건 개인이나 가정 단위가 아니라 마을이라는 관계망에서 가능한 일”이라고 밝혔다라이스-.JPG » 크리스 라이스 .
  크리스 라이스 메노나이트 동북아책임자는 인종차별의 본거지라는 미국 미시시피주 수도 잭슨에서 백인과 흑인들이 섞여살던 ‘갈보리의 소리’라는 공동체에서 겪은 갈등 사례를 들려주었다. 그는 “우리는 미국에서 인종적으로 가장 잘 통합된 공동체라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흑인들이 ‘화해모임’을 조직해 ‘인종차별은 사회에 있기에 앞서 우리 공동체 안에 있다’고 주장하면서 위기에 봉착했다”며 “고통스런 과정을 거치며 내가 백인으로써 인종문제를 다루는 것은 선택적이었음을 깨달았다”고 했다. 즉 언제든 부유한 백인은 다른 부유한 백인 교회로 옮겨갈 수 있었으나 흑인 형제 자매들은 그런 선택이 없었으며, 백인들이 그런 특권을 이용한 해결은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얕은 해결책에 머물지않는 진정한 화해를 위한 3단계 과정을 이렇게 제시했다. “첫째 사회적 긴장과 트라우마의 진실,억압, 특권을 극복하려면 정면으로 부딪히고, 애도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두번째 진실이 없는 사랑은 거짓이라는 것이다. 즉 우리를 갈라놓고 망가지게 하는 것을 대면하지않는 화해가 있을 수 없으므로 괴로움과 분노의 과정까지 거치면서 진실과 사랑을 함께 결합해야한다는 것이다. 셋째 기독교공동체 화해의 핵심에는 자기부인이 있어야 한다.”

아미쉬10--.jpg

 

아미쉬2--.jpg

 

아미쉬3--.jpg

 
 고독의 시대, 공동체는 어떻게 세상을 돕는가
 이날 컨퍼런스에선 아나뱁티스트들이 공동체적 삶의 전통과 지혜를 살려 현대사회인들을 구제하는 사역들이 소개됐다. 6곳에서 운영되는 ‘그린크로프트’라는 ‘돌봄의 공동체’가 대표적이다. 이 공동체 중 한곳은 1922년 인대애나주 뉴 칼리슬의 30만평 숲에 만들어져 150명의 메노나이트 도우미들이 공동체로 살아가면서 배우자를 잃고 홀로 남은 65세 이상 노인들과 함께 총 270명이 살아간다. 또 고센 공동체엔 550명의 전문의료인 및 간호인을 포함해 노인등 1200명이 살아간다. 공동체 내엔 예배당과 소규모 예배실, 상담실, 도서관, 컨퓨터실, 영화관람실, 오락실, 각종 모임방 등이 있고, 건강한 이들은 은퇴 후에도 이곳에서 직업을 갖고 파트타임 일을 하거나 자원봉사에 나선다. 김복기 목사는 “돌봄의 공동체는 양노원이 아니라 메노나이트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청지기의 삶으로 함께하는 것”이라면서 “이 공동체들은 외진 곳에 있지않고 도시 끝자라에 위치해 도시 내 자녀들 및 친척들과 공동체성을 잃지안하고 연결되게 한다”고 설명했다. 노령화와 혼삶으로 소외와 고독사가 사회문제가 되고있는 한국사회에도 필요한 돌봄공동체가 아닐 수 없다.

 

[한겨레 2019년 1월 30일]

 

[르포-네덜란드 ’호헤베이크 마을’]

거주노인 169명 다니다 길 잃어도

직원 170여명이 길 찾아줘

의사·간호사 흰 가운 안 입어

클래식 스타일 등 7개 마을 선택

소득 따라 입소 부담금 달라

네덜란드 호헤베이크 마을에 거주하는 치매 노인들은 레스토랑, 펍, 슈퍼마켓 등에서 자유로운 일상생활을 누린다. 한국의 ‘치매안심마을’의 모델인 호헤베이크 마을은 의사와 간호사가 있지만 ‘병원’ 같지 않은 ‘특별한’ 치매 요양 시설이다. 호헤베이크 마을 제공



▶지난해 9월, 문재인 정부는 ‘앞으로 치매는 국가가 책임지겠다’고 선언했다. 전국 256곳에 간호사·사회복지사 등이 근무하는 치매안심센터가 문을 열었고, 치매 환자와 가족이 행복한 ‘치매안심마을’을 지정하는 사업도 진행 중이다. <한겨레>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사회보장제도 연수 과정 중 지난 10월24일(현지시각) 치매안심마을의 모델이 된 네덜란드 ‘호헤베이크(호그벡) 마을’을 찾아, 마을 공동창립자인 이보너 판아메롱언과 함께 마을 구석구석을 둘러봤다.



마르턴 디흐뉨(가명·75)은 암스테르담에서 자주 길을 잃었다. 홀로 집을 나섰다가 실종되곤 했다. 똑똑한 금융컨설턴트였던 그의 뇌 신경 세포는 치매를 앓으면서 점점 손상됐다. 10년 전에 처음 증상이 나타난 이후로 아내인 엘리(가명·62)는 남편 걱정이 끊이지 않았다. 2015년 봄, 마르턴은 주거지를 ‘호헤베이크 마을’로 옮겼다. 호헤베이크 마을은 네덜란드 수도인 암스테르담에서 자동차로 20여분 걸리는 베이스프의 주택가 한켠에 있다. 여기서 마르턴은 길을 잃지 않는다. 네모난 성냥갑 모양을 한 마을 1만2천㎡ 전체를 벽돌 담장이 둘러싸고 있다. 그 담장 안에 마르턴과 같은 중증 치매노인 169명이 모여 산다.

마르턴이 사는 집에는 향기로운 꽃이 꽂혀 있고 클래식 음악이 흐른다. 그는 치매를 앓기 전에 말러와 푸치니를 좋아했다. 음식은 프랑스식 생선 요리가 주로 제공된다. 이 집은 ‘클래식’ 스타일이다. 호헤베이크 마을 안에는 네덜란드식, 기독교식, 문화·예술식, 인도네시아식 등 7가지 주거공동체가 있다. 거주자의 취향에 따라 생활양식을 고른다. 마르턴은 혼자서 마을을 산책할 수 있다. 길을 잃으면 도와줄 직원 170여명이 상주한다. 가족과 함께 바깥나들이도 한다. 엘리는 일주일에 서너번 남편을 찾아온다. “치매 환자에게도 삶의 질이 중요하다. 이곳에선 일상생활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 호헤베이크 마을은 내가 남편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네덜란드 호헤베이크 마을에 거주하는 치매 노인들은 펍에서 자유롭게 커피나 술을 마실 수도 있다. 호헤베이크 마을 제공

2009년 완공된 호헤베이크 마을은 이를테면 치매 노인을 위한 요양시설이다. 하지만 ‘병원’이 아니라 ‘마을’이라고 부른다. 노인들은 ‘환자’가 아니라 ‘거주자’로 불린다.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등이 일하지만 하얀 가운을 입지 않는다. 노인 5~7명이 모여 사는 집집마다 평상복을 입은 직원이 상주하며 장을 봐서 요리하고 노인들을 돌본다.

이곳은 원래 요양원이었다. 요양원에 간호사로 근무했던 판아메롱언은 1992년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갑자기 숨지는 일을 겪고 요양원 경영진에게 ‘생활양식이 비슷한 노인들끼리 모여 사는 주거 형태’로 바꾸자고 제안했다. 그 뒤 호헤베이크 마을 창립을 사실상 주도한 판아메롱언은 “중증 치매 노인은 가뜩이나 뇌가 혼란스러운데 주변 환경이 생경하게 느껴지면 더 큰 혼란을 겪을 수 있다”며 “치매 노인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삶을 누리고 자기 집 침대에서 생을 마치는 것처럼 느끼게 하려고 만든 시설”이라고 설명했다.

비슷한 요양시설이 한국에도 없지는 않다. 2014년 개원한 서울 강남구 세곡동의 서울요양원이 대표적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재정 250억원을 투자해 직접 운영한다. 대기인원만 1080명에 이를 정도로 인기다. 치매 노인 150명이 생활하는 이곳 역시 호헤베이크 마을처럼 10개의 ‘마을’로 나뉘어 있다. 병실에 입원한 이들이 ‘마을’ 거실에 모여 식사하고 노래도 배운다. 작은 실외 텃밭도 있다.

결정적으로 다른 점도 있다. 하늘이다. 창문을 통해서만 겨우 바깥 풍경이 보이는 한국의 요양시설과 달리, 호헤베이크 마을의 시설 절반 이상은 건물 외부에 있다. 치매 노인들은 파란 하늘 아래서 햇빛과 바람을 느끼며 산책을 느릿느릿 즐긴다. 마을 곳곳에 나무와 꽃들이 가득하다. 누가 봐도 ‘마을’이다. 정문에 들어서면 왼쪽에는 레스토랑과 펍, 슈퍼마켓이 있고 오른쪽에는 커다란 분수대와 극장이 있다. 정문과 직선으로 연결된 널찍한 중앙로에는 미용실, 음악감상실, 요리실 등이 늘어서 있다. 언어는 잊어도 음악에는 반응하는 치매 노인들은 ‘모차르트의 방’이라고 이름 붙인 음악감상실에서 피아노 연주를 듣고, 요리실에서 추억을 떠올리며 팬케이크를 굽는다. 판아메롱언은 “취미활동 클럽도 많다”며 “카페에서 애플타르트를 함께 먹는 일은 매우 중요한 사회활동”이라고 말했다.

치매 노인들은 자유롭게 마을 곳곳을 누볐다. 한국 기자들에게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고 말을 걸거나, 기자의 팔짱을 끼고는 내내 함께 걸어다니기도 했다. 판아메롱언은 그들의 이력은 물론 성향까지도 깨알같이 파악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자원봉사로 노인들의 버스 여행을 기획하는 잉리트 더흐로트(63)는 “치매 노인들의 미소를 보면 행복하다”고 말했다. 더흐로트의 남편은 버스 운전 자원봉사를 한다. 이런 자원봉사자가 140여명에 이른다.

호헤베이크 마을 공동창립자인 이보너 판아메롱언이 지난 10월24일(현지시각) 한국 기자들에게 마을 곳곳을 소개하고 있다. 그는 오래된 요양원을 마을로 바꾸자고 제안하고 실질적인 운영을 주도하고 있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호헤베이크 마을을 배우러 해마다 수백명이 찾아온다. 미국, 뉴질랜드, 프랑스 등에 컨설팅도 해줬다. 호헤베이크 마을이 공공시설이 아니라 비영리단체가 운영하는 곳인데도 10년째 지속가능한 이유는 네덜란드 사회보장제도의 탄탄한 뒷받침 덕분이다. 1968년부터 실시된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에 따라, 모든 국민은 신체수발·간호 서비스, 시설 거주 서비스 등을 보장받는다.

요양등급 판정을 받아 호헤베이크 마을에 입소한 치매 노인은 적게는 월 500유로(약 65만원), 많게는 2500유로(약 322만원)를 부담한다. 소득이 많을수록 비용도 많이 내야 한다. 다소 비싸긴 하지만, 요양시설이 지급받는 1인당 월 6천유로(약 774만원)는 장기요양보험이 부담한다. 판아메롱언은 “빈곤한 치매 노인이라고 해도 노령연금을 받기 때문에 개인 부담이 크지 않다”고 말했다. 네덜란드는 노령연금이 전세계에서 가장 든든한 나라다. 전체 인구 1700만명 가운데 만 66살 이상인 300만여명의 모든 노인이 노령연금을 받는다. 네덜란드에 50년 이상 거주했거나 소득 활동을 한 노인이라면 홀몸노인은 월 1180유로(약 152만원), 부부는 각각 814유로(약 105만원)를 받는다. 네덜란드의 노인 빈곤율은 1.4%로 세계 최저 수준이다.

치매 노인을 받아주는 요양시설이 많지 않아 ‘치매 난민’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한국은 호헤베이크 마을을 본떠 치매안심마을을 조성하기로 했지만 아직 마을 어귀에 현판 하나 붙이는 게 고작이다. 한국은 과연 ‘치매국가책임제’로 가는 길을 제대로 찾아가고 있는 걸까. 한국의 치매 환자는 70여만명, 80대 이상 노인 10명 중 4명은 치매를 앓고 있다. 전세계 치매 인구는 5천만명에 육박한다.

베이스프(네덜란드)/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네덜란드 호헤베이크 마을에 거주하는 치매 노인들은 스스로 슈퍼마켓에서 장을 보기도 한다. 호헤베이크 마을 제공

 

[한겨레 2018년 11월 2일]

<2>‘대안가족’ 만드는 독일[서울신문]
독일도 우리나라처럼 3세 이하의 아이는 가정에서 키워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다. 영아를 위한 보육 시설은 미비했고 양육 부담은 오롯이 엄마에게 지워졌다. ‘독박육아’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엄마들이 힘을 모아 공동육아의 첫발을 내디뎠다. 1980년 ‘마더센터’가 탄생했고 전 세계로 확산됐다. 독일 내 400여개의 마더센터와 행정기관이 만든 500여개의 공동육아 시설 중 일부는 지역 사회에서 돌봄이 필요한 노인과 장애인, 이민자를 위한 공간으로 진화했다. 2006년 연방정부는 이런 마더센터를 토대로 540여개의 ‘다세대 하우스’를 세웠다. 크기와 형태가 다양하지만 아이들과 노인의 돌봄 사각지대를 없애고 세대 간 교류한다. 독일의 공동육아 모태인 마더센터를 둘러봤다.지난달 7일 독일 니더작센주 잘츠기터 마더센터에서 아이들이 보육교사와 노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우리나라의 ‘수건 돌리기’와 비슷한 게임을 하고 있다.지난달 7일 독일 최초의 마더센터 3곳 가운데 하나인 니더작센주 잘츠기터 마더센터에선 아이들이 마을 노인들과 함께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었다. 눈을 가린 채 엎드려 있던 에밀리아(4)가 일어나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누구야?, 누가 숨겼는지 모르겠네!”

에밀리아를 둥글게 감싸고 있는 아이들은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안간힘을 쓴다. 아이들 뒤 의자에 앉아 있는 한 노인이 ‘여기’라는 입모양을 지으며 물건을 가져간 아이를 슬쩍 가리킨다. 에밀리아가 물건을 숨긴 아이를 찾아내고 아이들과 노인들은 한바탕 웃는다.

20여명의 아이들이 2~3명의 보육교사와 함께 놀이를 하면 이곳에서 돌봄을 받는 노인 10여명이 이를 지켜본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은 의자에 깊숙이 몸을 기댄 채 아이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생기로 가득 찬 아이들 모습에서 삶의 활력을 찾는다. 점심때면 아이들과 노인들은 테이블에 뒤섞여 앉아 식사를 한다. 보육교사와 보조교사가 앉아 아이들과 노인들의 소통을 돕는다.잘츠기터 마더센터는 3세 이상의 미취학 아동들을 대상으로 노인과의 시간을 갖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잘츠기터 마더센터 설립자이자 프로젝트를 기획한 힐데가르드 쇼스(74)는 “마더센터가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한 30여년 전부터 다양한 세대가 이 곳에서 교류했지만, 한 발 더 나아가 적극적인 ‘소통의 장’을 만들어 지역 주민들에게 가족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특히 이제 막 세상을 알아가는 아이들이 노인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더 넓은 세상을 배울 수 있다고 여겼다.

에밀리아의 어머니이자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워킹맘’ 테사 겐터(37)는 “아이들이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아이들과 교사만 있는 일반 어린이집과 달리 다양한 배경과 세대의 사람들이 함께 어울리는 게 아이들 교육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겐터는 지난해 7월 바이에른주 뮌헨에서 잘츠기터로 이사 왔다. 인근 도시에 직장을 구하기도 했지만 이곳이 아이를 키우기에 더욱 좋은 환경일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다. 정해진 시간에 아이를 꼭 데려와야 했던 뮌헨과 달리 이곳에선 조금 늦더라도 아이를 돌봐 줄 사람들이 많아 서두르거나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

다섯 아이를 홀로 키우는 훔머스 니콜(38)은 9년 전부터 잘츠기터 마더센터를 이용하다 올해부터 마더센터의 전일제 근로자로 나섰다. 최근엔 맏딸(17)도 주말이면 각종 행사에서 엄마를 돕는다. 니콜은 “막내딸인 리자(4)는 어린이집이 끝나면 마더센터로 달려온다. 내가 있어서가 아니라 이곳엔 리자의 친구와 이모, 삼촌,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기 때문이다. 리자는 이곳을 ‘가족’이 있는 곳으로 생각한다”고 미소를 지었다.잘츠기터 마더센터는 지하 1층, 지상 3층에 2300㎡(약 700평) 규모다. 휠체어를 타거나 보행보조기를 이용하는 노인들을 위한 자동문을 지나면 왼쪽엔 카페가 있다. 아이들과 부모, 노인, 이민자, 마더센터 직원 모두가 이곳을 사랑한다. 실외 테라스까지 포함하면 100명 이상이 앉을 수 있다. 카페는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자 ‘광장’이다. 이용자들을 위한 새 프로그램에 대한 제안이나 논의는 물론 처음 방문한 사람들과의 만남도 이곳에서 이뤄진다. 가장 바쁜 시간은 점심 시간이다. 아이를 돌보느라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 없었던 엄마뿐 아니라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 지역 주민들을 위해 저렴한 가격에 식사를 제공한다.

마더센터 내엔 0~3세 아이들을 위한 공간과 3~6세 아이들을 위한 어린이집이 있다. 초등학교 수업을 마친 뒤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을 위한 공간, 어린이집이 끝난 뒤 보호자가 올 때까지 아이들이 머물 수 있는 공간도 따로 조성돼 있다. 2층 어린이집 외에는 모두 바깥 정원이나 놀이터로 나갈 수 있도록 동선이 짜여졌다.

독일 정부는 마더센터의 공동육아와 세대 교류를 확대하고자 2006년부터 다세대 하우스 정책을 펼치고 있다. 같은 해 잘츠기터 마더센터를 방문한 가족노인여성청소년부 장관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현 국방부 장관)은 세대 통합과 복지 사각지대를 줄이는 방안으로 마더센터 모델을 전국으로 확산하고자 했다. 독일 전역에 540여개의 다세대 하우스가 생겼고, 이 기관들은 연간 4만 유로(약 5100만원)를 연방정부와 시정부로부터 지원받는다.

글 사진 잘츠기터(독일) 민나리 기자

 

[서울신문 2018년 6월 7일]

개복숭아 효소 담그기

2018. 6. 25. 07:00 | Posted by 행복 기술자

개복숭아 담그기

 

0일차

2일차

 

0일차

2일차

1주일 지난 후

“그런 게 어딨어” 할 테지만 있다, 지상의 유토피아

[조현의 공동체마을 체험기] 돈 없이도 즐겁게 산다
① 왜 공동체인가

대안공동체를 찾아 1년 동안 세계를 누빈 조현 종교전문기자
대안공동체를 찾아 1년 동안 세계를 누빈 조현 종교전문기자
40대 후반인 크레스와 헤나 부부는 네 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성년이 된 장남과 열다섯 크리스틴과 열세살 베네사 두 딸에 이어 이제 한 살배기 막내 스티븐이 있다. 부부가 손주 같은 아이를 낳을 수 있었던 것은 온 마을이 아이를 제 자식처럼 함께 길러주기 때문이다. 집과 일터와 탁아방이 모두 걸어서 3분 거리다. 언제든 아가방에 가 아기를 볼 수 있어 사실상 온종일 한집에 사는 것과 다름없다. 부부는 오후 5시 퇴근해 가족끼리 오붓한 여유를 즐긴다. 1주일에 두세 번은 가든에서 식사한다. 주말이면 이웃을 초청해 바비큐파티를 하거나 야외수영장에서 놀거나 캠핑을 간다.

크레스와 같은 층에 사는 하이너는 이 마을 변호사다. 하이너의 동생 리처드는 대학교를 가지 않고 간호보조원이 됐다. 형제는 하는 일이 다를 뿐 이 마을에서 어떤 차별 대우도 없다. 하이너는 두 아이, 리처드는 세 아이의 아빠다.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늘 손주들과 잔디밭에서 공놀이를 한다. 미국 뉴욕에서 차로 3시간 거리인 우드크레스트에서 300여명이 살아가는 브루더호프공동체마을의 모습이다.

‘헬조선’에서 신음하는 한국에선 상상조차 어려운 모습이다.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세계 최하위 수준이다. 30살 미만 청년가구는 최근 3년간 빚은 2배 이상 늘고, 소득은 88만원세대에서 77만원세대로 낙하 중이다. 노인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가운데 빈곤율이 평균 13%의 4배나 되고, 자살률 1위다. 상위 10%가 전체 국민소득의 48%를 가져간다. 국민의 절반 가까이가 자기 집이 없다. 이런데도 대통령과 관료, 재벌 등 사회지도층은 국정농단과 부패 고리로 사적인 이득을 챙기기에 바빴다. 사회의 중심축인 지도층의 부도덕으로 공동체성이 철저히 무너져내리고 있다.

그래서 수백명이 한가족처럼 살아가는 해외 공동체마을을 찾았다. 차별이 없고, 평등하고, 고통을 함께 지는 공동체마을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타이 아속과 미국 브루더호프, 인도 오로빌, 일본 애즈원과 야마기시 등 지구촌 공동체마을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공동체의 원형을 찾았다.

미국 브루더호프
미국 브루더호프

‘죽도록 일하지 않아도 모두 풍족하게 산다. 모든 물건은 함께 소유한다. 자신들의 대표는 주민들이 선출하는 민주주의다. 그 대표는 공동체원의 의사에 반해 결정을 내릴 수 없다. 자발성과 창의성을 최대한 존중한다. 사회복지나 의료복지를 완전하게 실현한다. 부자라고 더 먹거나 더 좋은 집에 살 수 있는 게 아니라 모두 평등하므로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한다.’

‘헬조선’이라며 신음하는 한국인들에겐 꿈같은 소리다. 이 솔깃한 얘기는 5세기 전 영국의 토머스 모어가 <유토피아>에서 제시한 ‘가장 살기 좋은 나라’의 모습이다. 2500년 전 플라톤도 아틀란티스라는 이상향이 있다고 했다. 플라톤과 토머스 모어는 내세의 천국이 아닌 현세에 그런 곳이 있다는 것을 더 믿게 하려고 구체적인 위치까지 적시했다.

지옥은 고통스런 현실도 현실이지만 미래에 대해 희망이 없고 상상력마저 결핍된 상태다. 희망만 있다면 어떤 고통도 기쁜 마음으로 감내할 줄 아는 게 인간이다. 쇼펜하우어는 “단테가 <신곡>에서 지옥은 그럴듯하게 그렸지만, 천국은 엉성하게 그릴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지옥은 지상에서 늘 봐왔지만 천국은 본 바가 없기 때문에 그랬다는 것이다.

플라톤이나 모어가 말한 이상향이 지금 지구상에 있다고 한다면 당장 ‘그런 게 어딨어’라고 의구심에 찬 눈초리를 보낼 것이다. 그래도 말할 수밖에 없다. ‘유토피아는 있다’고. ‘소설 속 이야기’냐고? 아니다. 아틀란티스나 유토피아 같은 허구의 세계가 아니다. 지구상에 분명히 존재하는 실제의 마을이다.

<주역>에서 죽을 사람에게도 힘을 주는 말이 궁즉통(窮則通)이다. 궁하면 통하게 되어 있다. 헬조선을 한탄만 하고 있거나 하늘만 쳐다보고 있다면 통할 리가 없겠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데, 하늘이 무너진 것도 아닌데, 살길이 없을 리가 없다.

나도 너무 궁해서 유토피아를 찾아 나섰다. 10년째 통증에 시달리다 결국 1년 병가를 냈다. 국내에서 좋다는 치료는 해볼 만큼 해봤지만 통증은 심해져만 갔다. 그 통증과 열이 눈에까지 뻗쳐 병가 내 유명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했지만 별무효과였다.

타이 아속공동체
타이 아속공동체

기존의 방법으로 효과가 없다면, 즉 궁하면 ‘대안’을 찾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생각난 것이 대안공동체였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게 타이의 아속공동체였다. 아속은 불교공동체지만, 경남 산청 기독교대안학교인 민들레학교 김인수 교장이 해마다 학생 10여명을 데리고 한달씩 살고 오는 곳이다. 그곳에서 감동을 받은 그가 예전부터 꼭 한번 가볼 것을 권유했다. 아속에서는 항문관장을 통해 몸의 독소를 빼내 건강을 되찾게 해주는데, 내가 그곳 사람들처럼 맨발로 시골길을 거닐고 해독까지 하면 몸이 회복될 수 있을 것 같다는 거였다. 더구나 그곳에선 유기농 대체의약품을 직접 만들어 판다고도 했다. 민들레학교에 다니던 아이와 함께 아속공동체에서 지내본 전 <기독교사상> 주간 한종호 목사도 달떠서 아속을 별세계처럼 소개했다. 또 그곳에서 가져온 조그만 물약을 주었는데, 통증 부위에 발랐더니 여간 시원하지가 않았다.

더구나 병을 낫게 해준다는 이런저런 사람들에게 돈 버리고 시간도 버려온 나로서는 공동체들이 ‘돈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도 구미가 당겼다. 공동체들에서 함께 일하며 지내면 숙식비를 내지 않아도 된다. 비행기표만 사면 따로 돈을 들이지 않고도 장기간 머무를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방콕에서 차로 10시간가량 떨어진 타이 중서부 시사껫의 시사아속으로 향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것이 여러 공동체로 이어지는 긴 여정이 될 줄은 몰랐다. 결론부터 말하면 대안은 만족스러웠다. 통증이야 자가면역질환에서 비롯돼 단시일 내에 나아질 수는 없었지만, 처음 닷새 동안 한 단식과 관장으로 컨디션이 상당히 회복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공동체에서 몸만 챙기고 있지는 않았다. 공동체에서 구경꾼은 허용되지 않는다. 그들은 관객이 되기를 원치 않는다. 그래서 ‘일단 문 안에 들어오면 일상사를 함께하라’는 것이 대부분의 공동체들이 요구하는 사항이다.

아속은 유토피아적인 것투성이였다. 유리병 속에 든 진열품이 아닌 날것들이어서 더욱 신선했다. 그들은 우물을 뛰쳐나온 개구리였다. 아속은 불교국가인 타이에서 주류 불교의 타락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계란으로 바위를 친 선지자들이다. 그런 배짱도 놀랍거니와 그런 소수파가 ‘이윤을 추구하지 않는 회사들’을 만들고, 오늘날 타이의 주류들도 무시할 수 없는 5개의 공동체마을을 포함한 아속왕국을 만들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군 장성 출신으로 출세 지향적이던 정치인 짬롱 시므앙을 무욕의 방콕시장으로 만든 멘토가 바로 아속의 창시자 포티락 스님이라는 것도 그랬고, 논밭에서 일하면서도 웃음꽃을 잃지 않는 학생들, 아무 대가 없이 타인을 위해 헌신하는 공동체원들의 일거수일투족도 신기했다.

시사아속을 나올 무렵 예고 없이 포티락 스님이 그곳에서 하루를 묵었다. 80대 노승인 그가 시사아속에서 묵은 경우는 처음이라고 했다. 외국 방문객이 포티락을 만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운좋게도 다음날 아침 노혁명가를 개별적으로 만나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포티락까지 만나 정담을 나눴으니, 이제야말로 쉼이 마땅했다. 병가를 낼 때 ‘일을 떠나 1년은 오직 쉬며 건강만 챙기겠다’던 다짐에 따라 쉬엄쉬엄 관광하며 휴식할 시간이었다. 그러나 내 직업병이 그리 두지 않았다. 아속을 더 알고 싶고, 더 보고 싶고, 더 확인하고 싶은 궁금증이 발동하고 말았다. 결국 가장 큰 공동체인 랏차타니아속으로, 치앙마이의 아속레스토랑공동체로, 방콕의 산띠아속까지 휩쓸고 다녔다. 최초의 아속공동체인 빠톰아속에선 5일을 더 보내며 무욕과 자비의 보살들을 현세에서 만났다.

0년째 통증 시달리다 1년간 병가
좋다는 치료 다 해봤지만 별무효과
궁즉통이라고 떠오른 게 대안공동체
방콕에서 차로 10시간 거리 시사아속
닷새 단식과 관장으로 기력 회복
그게 1년여 대안 공동체 순례의 시작

그곳에는 욕망의 열차를 내린 사람들
적게 소유하고 쓰며 많이 나누고 돕고
지구에 폐 안끼치고 치유하는 생활
남보다 자기 먼저 변하는 혁명가였다

비행기 타기 전 라이터·칼을 버리듯
그곳에 가기 전에 마음을 비워야
두 손 가득히 떡을 쥔 사람은
최상의 케이크를 던져줘도 받을 수 없어

인도 오로빌
인도 오로빌

그렇게 한달 동안 아속의 이곳저곳에서 보낸 뒤 간 곳이 인도의 오로빌공동체였다. 오로빌은 방대했다. 한 마을이라기보다는 인류공동체라는 목표로 만들어지고 있는 ‘계획도시’였다. 한 프랑스 여성의 꿈으로 시작된 오로빌은 혼자 꾸면 몽상이지만, 여럿이 함께 꾸면 현실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다음은 멀리 미국이었다. 뉴욕에서 차로 3시간쯤 떨어진 우드크레스트는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기독교공동체로 꼽히는 브루더호프의 본부 격이다. 브루더호프는 내가 최초로 인연을 맺은 해외 공동체마을이었다. 또한 공동체에 대한 탐구심을 유발한 곳이기도 했다. 처음 브루더호프를 방문한 것은 1999년 초였다. 지금은 해프닝조차 잊혔지만, 밀레니엄이라는 2000년을 앞두고는 지구 멸망을 예언한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 실현 여부가 관심사였다. 그의 예언이 아니더라도 자원 고갈과 자연 파괴, 비인간화, 전쟁으로 인한 위기의식이 팽배했다. 그래서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대안을 보여주려 공동체운동 취재에 나섰는데, 그 첫 대상이 영국 다벨 브루더호프 공동체였다.

그 이후 한국에 브루더호프 붐이 일었다. 영국의 시골마을에 영국 사람보다 한국 사람이 더 많이 찾아오는 이변이 생긴 것이다. 한국인, 특히 크리스천들의 열정은 아무도 못 말린다. 한국인들이 일체 개인 소유가 없이 살아가는 무소유공동체원들의 삶에 열광하는 것 자체가 의외였다. 한국인들은 브루더호프 공동체 사람들의 평화로운 표정에 매료됐다. 나도 우드크레스트에 17일 동안 머물면서 지상천국은 이런 곳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우거진 숲에 둘러싸인 호수에서 낚시와 수영을 하고, 골프장 같은 초원이 펼쳐진 언덕 위의 하얀 집과 별빛 아래서 가족끼리 정답게 속삭이는 우드크레스트를 보았다면 단테도 천국을 더욱 생생하게 그렸을지 모른다.

이쯤 되면 어떤 사람은 그 유토피아로 가기 위해 짐을 싸고 싶어 마음이 벌써 바빠지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나 비행기에 오르기 전에 라이터나 나이프를 버리듯 유토피아에 가기 전에 마음 보따리에서 비워내야 할 것도 알아둬야 한다. 양손에 떡을 쥔 사람은 하나님과 부처님이 합세해서 세상에서 가장 맛난 초코케이크를 만들어 던져줘도 받을 수가 없다. 브루더호프도 아속도 자신을 비워가는 사람들이다. 처음부터 비우지는 않았더라도 날마다 삶에서 욕망을 포기함으로써 밖과는 다른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는 사람들이다. 많이 벌고 싶고, 많이 놀고 싶고, 놀고먹고 싶고, 남보다 더 잘 입고 싶고, 얼굴에 영양주사도 맞고 싶고, 돈도 좀 펑펑 쓰고 싶고, 때마다 여행도 가고 싶고, 폼 나는 차와 큰 집도 사고 싶고, 가족 친척들에게 용돈도 주며 인심도 쓰고 싶고…. 허영기 섞인 이런 욕구를 다 채울 수 없는 고통으로 신음하는 게 헬조선이라면, 이런 욕구를 버리고 단순 소박한 삶에서 행복을 찾는 게 공동체다. 공동체살이는 세상에 대한 혁명이기에 앞서, 바로 자기 비움의 혁명이다.

대부분의 대안공동체들은 사람들에게는 말할 것도 없고 지구에도 폐 안 끼치는 삶, 치유하는 삶을 선택하고 있다. 자원을 마구 쓰고 버려 초록별을 결딴내며 쓰레기장으로 만드는 공범들이 아니다. ‘욕망의 열차’에서 내린 사람들이다. 욕망의 홍수가 뒤엎은 세상에서 방주로 남아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작게 소유하고 적게 쓰며 많이 나누고 더 돕는다. 남을 변화시키기에 앞서 자신이 먼저 변해 솔선수범하는 대안공동체 사람들이야말로 진정한 혁명가들인 셈이다.

미국 브루더호프
미국 브루더호프

그러나 공동체에 들어간다고 해서 꼭 지구를 구하는 독수리 5형제가 되라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이 점차 그런 삶에 동의해 살아가게 되겠지만, 독립운동이나 프롤레타리아 혁명처럼 자신이나 가족의 안위를 던지고 하는 혁명과는 달라도 많이 다른 혁명이다. 무엇보다 가족과의 삶을 소중히 여기며, 가족과 친구들과 이웃들과 행복하게 살아가는 혁명이다. 혁명치고는 특이하고 유쾌한 혁명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브루더호프 같은 공동체에선 어떤 것도 포기할 필요가 없다. 어느 집에나 아이 서넛은 기본이다. 모두 공동체원이 함께 돌봐주고 키워주니 내 돈을 따로 들일 일도 없고, 육아를 혼자 감내하지도 않는다. 대신 다둥이가 주는 기쁨은 무궁하다. 더구나 아무리 발버둥쳐봐야 흙수저는 흙수저일 뿐이라며 불평등과 부정의에 신음하는 밖과 달리, 공동체에서는 잘난 이나 못난 이나 같이 일하고, 같은 것을 먹는다. 먹거리도 양질의 친환경 제품들이다. 늙어도 친구들과 도란도란 대화하며 빨래 개기 같은 자기 몫을 한다. 자식 손자 손녀들에게 둘러싸여 살아가니 외로울 새도 없다.

이 이상적인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자유를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젊은이들에겐 ‘그림의 떡’일 수 있다. 혼삶 혼술 혼밥에 익숙해진 젊은이들은 일거수일투족을 함께해야 하는 공동체 생활을 구속으로 여길 수 있다. 설사 집을 나와 굶어 죽더라도 사생활의 자유를 누리겠다는 그들이다. 하지만 자유보다는 인간이 그리워 견딜 수 없는 외로운 삶이야말로 가장 비참한 지옥이라는 사람도 많다. 그래서 1인 가구 증가와 반대로 땅콩집, 캥거루족, 노소동거족 등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족이 늘어나는 현상을 퇴행이라고 비난할 것도 없고, 이상할 것도 없다. 인간은 자유에 갈급한 것만큼이나 고독을 견딜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산안마을이나 아름다운마을공동체나 산위의마을처럼 공동체마을을 만들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도전은 헬조선에 신음하는 것보다 백번 나은 결단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결단까지는 내리지 않더라도 해볼 수 있는 대안은 많다. 혼자서는 너무도 힘든 일들을 함께 나누며 삶의 동력을 회복하는 육아공동체나 식사공동체, 숙소공동체, 대안학교, 의료생협, 골목가게 공동체 등도 있다. 이미 성미산공동체나 우동사처럼 도시에서 그런 대안적 실험을 해가며 활력을 얻고 있는 이들도 있다.

일본 야마기시
일본 야마기시

공동체 여정은 일본의 ‘야마기시’에서 마무리됐다. 한국의 산안(야마기시)마을 공동체와는 20년의 인연을 유지해왔던 터다. 지금은 시들해졌지만 민주화운동 이후 방향을 잃은 진보지식인들도 공동체운동에 적지 않은 관심을 보였다. 일본의 나고야 인근에서 시작돼 세계에 확산되면서 1980년대 경기도 화성에 만들어진 산안마을공동체는 우리나라 공동체운동의 본보기가 된 곳이다.

나는 그 야마기시의 원조인 가스가야마와 도요사토를 둘러봤다. 브루더호프나 오로빌만이 아니라, 야마기시도 오늘날의 하모니를 이루기 전에 치열한 내분을 거쳤다. 야마기시에서 이탈한 사람들은 도요사토 인근 도시인 스즈카에 터를 잡고 애즈원을 만들었다. 이곳은 마을이 아니라 작은 도시 곳곳에 흩어져 살며 함께 회사와 가게를 꾸리는 독특한 형태의 공동체였다. 야마기시에도 머물고 애즈원에도 머물면서 그들의 ‘사랑과 전쟁’을 생동감 있게 들었다.

일본 애즈원
일본 애즈원

순탄하기만 한 가정사는 현실이 아니듯이 문제가 없는 공동체란 없다. 문제가 없어야 한다는 환상이야말로 가장 큰 문제일지 모른다. 문제가 두려워, 또는 헤어지는 것이 두려워 사랑 한번 못 해보는 바보가 된다면 생이 너무나 무료하지 않겠는가.

인간은 시련을 통해 배운다. 공동체들도 마찬가지였다. 1층부터 10층까지 온갖 욕망을 켜켜이 쌓고, 11층에 유토피아까지 올릴 수는 없다. 유토피아란 이기적인 자유 방종만으로 얻어지는 게 아니라, 고통이나 상처, 아픔까지도 껴안을 품이 있을 때 슬며시 안긴다. 그런 자세를 가져보겠다면, 그 무엇을 상상하거나 ‘그 이상’인 마을로 함께 여행을 떠나도 좋다. 함께 떠나보자. 우리의 유토피아로.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공동체가 궁금해요

세속적 삶 떠나 애안 택한 사람들
재산 공유하며 함께 먹고 함께 일

공동체를 다녀온 뒤 지인들의 질문 공세가 이어졌다. 한번쯤은 가보고 싶다는 관심 표명에서부터 ‘먹고사니즘’에 대한 질문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공동체살이는 세상과는 다른 관점과 ‘삶의 자세’가 필요한 곳이다.

-무엇을 공동체라고 하는가?

“2인 이상이 모이면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가장 기본적인 공동체는 가정이다. 그러나 여기서 내가 쓰는 공동체는 주로 욕망의 실현을 위해 달리는 세속적 삶에 한계를 느끼고 대안을 선택한 사람들의 마을이다.”

-먹고사는 문제는 어떻게 하나?

“대부분의 공동체는 사유재산 없이 공동재산을 택하고 있다. 대부분이 먹는 것은 호텔 레스토랑 못지않았다. 브루더호프나 아속은 점심이든 아침이든 그 공동체의 가장 중요한 식사를 공동식당에서 함께 하고, 나머지 끼니는 가족끼리 한다. 이때는 공동창고에서 원하는 먹거리를 가져다가 가족별로 집에서 요리해 먹는다. 물론 무료다.”

-개인의 재산은 다 내놓아야 하나?

“오로빌처럼 개인 재산은 상관치 않는 곳도 있지만, 대부분은 공동체살이를 하다 보면 의식이 전환돼 개인의 재산을 내놓고 전적으로 함께하는 경우가 많다. 일본 야마기시의 경우 내분 이후 공동체를 나온 사람들이 소송을 제기해 헌납한 재산의 일부를 돌려받기도 했다.”

-누구나 다 공동체에 들어가 살 수 있는가?

“대부분의 공동체는 새로운 회원을 공동체 가족으로 받아들일 때 공동체 전원이 찬성해야 한다. 최소 몇달에서 1년가량 지켜본 뒤 결정한다. 공동체원들 간 분란을 낳지 않고 살 수 있을 정도의 마음 자세나 삶의 태도를 중시한다.”

-노인도 공동체원이 될 수 있나?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공동체는 양로원이나 요양원이 아니다. 따라서 공동체원이 되려면 좀더 활동적인 나이에 결단을 내리는 것이 좋다.”

-노동은 얼마나 해야 하나?

“아속이나 브루더호프 등 성공적인 공동체들은 농사 말고도 수입으로 자립할 만한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우드크레스트의 경우 오전 7시30분부터 오후 5시까지 일했는데 상당한 숙련도와 집중도가 요구됐다. 아속은 농사일과 유기농제품 공장에서 일하는데, 자발성을 중시했다.”

-월급은 있나?

“월급은 기본적으로 없다. 의식주와 의료 등 복지는 공동체에서 보장해준다. 오로빌처럼 생활이 어려운 이들에겐 기본 생계비를 주는 곳도 있긴 하다. 그러나 야마기시는 한 달에 1만엔 정도의 용돈이 있지만, 브루더호프는 용돈이 따로 없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외출할 때 돈이 필요하면 신청을 하고 타서 쓴다.”

-개인의 자유는?

“공동체는 혼삶이 아닌 ‘함께’ 사는 곳이다. 노동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시간을 가족과 함께 보낸다. 또한 공동식사 모임 등 공동체원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많다.”

-방문하려면?

“어느 곳을 방문하거나 미리 연락을 해서 허락을 받아야 한다. 시사아속에선 외부 방문자도 관장프로그램을 해줬는데, 지금은 중단됐다고 들었다.”

-방문자는 돈이 안 드나?

“방문 허가를 받으면 공동체 사람들과 같이 일하며 자고 먹는 게 원칙이고 따로 숙식비를 받지 않는다. 일본의 애즈원은 방문자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특별한 경우로, 3박4일 일정에 1인당 3만5천엔을 받는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religious/778183.html#csidx3ce0ecdb013860396a88efa5deee789

 

 

[한겨레 2017년 1월 11일]

이전 1 2 3 4 5 6 7 ··· 2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