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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로서 살아온 30여 년의 세월과 더불어 인생 후반기를 맞아 행복을 추구하는 기술자의 변신 스토리입니다. --------- 기술 자문(건설 소재, 재활용), 강연 및 글(칼럼, 기고문) 요청은 010-6358-0057 또는 tiger_ceo@naver.com으로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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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모든 지방 공무원이 이 책을 읽으면서 고민해보길 바랍니다.

그간 ‘발버둥 쳤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심혈을 기울여 추진해온 ‘인구 늘리기’ 시도가 실패한 이유는 무엇이며, 각자 자기가 맡은 분야에서 할 수 있는 ‘귀향 친화적’ 사업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강준만 ㅣ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한국엔 ‘금의환향 이데올로기’라는 게 있습니다. ‘금의환향’은 “비단옷을 입고 고향에 돌아온다”는 뜻으로, 서울로 가서 출세한 후에 보란 듯이 뻐기면서 고향에 돌아오는 걸 이르는 말이지요. ‘이데올로기’라는 말을 남발하는 게 아니냐는 반론도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그간 한국 사회를 움직여온 사상이나 의식 중 그 어떤 이데올로기보다 더 강력했던 좌우통합의 이데올로기가 바로 이 ‘금의환향’이라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소설가 이호철씨가 <동아일보>에 <서울은 만원이다>라는 소설을 연재해 큰 인기를 누리던 1966년의 서울 인구는 380만명이었습니다. 지금 제가 살고 있는 전라북도의 인구는 당시 252만명이었습니다. 그간 한국의 인구증가율을 고려해 환산해보자면 지금의 전북 인구는 440만명대가 되어야 합니다만, 현재 180만명대로 쫄아들었고 지금도 계속 쫄아들고 있습니다. ‘줄다’나 ‘감소하다’는 단어로는 실감하기 어려울 것 같아 ‘쫄다’라는 말을 쓰는 것입니다.물론 출향 때문이지요. 이는 수도권을 제외한 전국에 걸쳐 일어난 현상입니다. 한번 출향한 사람은 좀처럼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지난 반세기 넘게 부·권력·문화의 서울 집중은 가속화되었기에 스스로 서울을 떠난다는 건 ‘계급 강등’을 수반하는 ‘낙향’의 의미가 강하기 때문입니다. 예외가 있다면 금의환향이지요. 이른바 ‘개천에서 난 용’들이 개천으로 돌아올 땐 주로 자기 고향의 국회의원이나 지방자치단체장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지방민들은 서울 가서 출세해 서울 권력 핵심부에 줄을 만든 사람을 뽑는 게 지역 발전에 유리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고, 이걸 간파한 정당들은 그런 식의 공천을 함으로써 금의환향 관행을 지속시킵니다.저는 금의환향을 비판하려는 게 아닙니다. 금의환향은 출세한 용들만 갖고 있는 꿈이 아니라 모든 출향민의 꿈이지요. 이들이 출향을 할 때 가졌던 굳은 각오와 이를 실천하기 위해 쏟은 ‘땀, 눈물, 피’가 오늘의 한국을 만들었음을 어찌 부인할 수 있겠습니까? 모두가 다 좋은 뜻으로 한 일이지만,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로 인해 ‘지방 소멸’과 그에 따른 ‘국가 파탄’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는 현실에 대해 우리 모두 고민해보자는 겁니다.평소 이런 고민을 해온 저로선 마강래 중앙대 교수가 최근 출간한 <베이비부머가 떠나야 모두가 산다: 청년과 지방을 살리는 귀향 프로젝트>라는 책은 더할 나위 없이 반가웠습니다. 마 교수는 이미 <지방도시 살생부>(2017)와 <지방분권이 지방을 망친다>(2018)라는 책을 통해 ‘지방 살리기’가 곧 ‘나라 살리기’임을 역설하면서 실천적 대안을 제시해왔고, 이 책은 그런 문제의식을 한단계 발전시킨 것입니다.베이비부머는 1차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와 2차 베이비부머(1968~1974년생)로 나눌 수 있는데, 이들 사이에 낀 4년간의 출생자까지 합하면, 모두 1685만명에 이릅니다. 이 가운데 귀향이 상당 규모로 이루어진다면 서울의 인구과밀을 완화해 집 문제도 꽤 해결할 수 있고, 지방의 생존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실제로 귀향을 원하는 사람들은 절반 이상일 정도로 많습니다. 그럼에도 귀향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이유는 금의환향을 할 수 없는 물적 조건 때문입니다. ‘서울 부동산 대박’ 미련, 양도소득세나 증여세 걱정, 그리고 귀향해서 할 수 있는 일의 상대적 희소성 등이 가장 큰 문제지요. 의료 문제, 그간 서울에서 맺은 인간관계가 약화되는 문제, 그리고 부부의 고향이 다를 때 한쪽이 소외되는 문제도 있습니다.게다가 지방이 귀향을 환영하느냐 하는 문제까지 있습니다. 마 교수는 “곧 노인이 될 베이비붐 세대를 지방으로? 지방이 여전히 ‘호구’냐?”는 말까지 듣기도 했다는군요. 다 죽어가면서도 아직 정신을 못 차렸다고 해야 할까요? 마 교수는 ‘처음으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았고, 자유화와 민주화를 이끌었고, 경제적으로 성공한 경험’을 가진 베이비부머는 지금의 고령자와는 너무나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나름의 구체적인 ‘귀향 프로젝트’ 방안을 제시합니다.전 모든 지방 공무원이 이 책을 읽으면서 고민해보길 바랍니다. 그간 ‘발버둥 쳤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심혈을 기울여 추진해온 ‘인구 늘리기’ 시도가 실패한 이유는 무엇이며, 각자 자기가 맡은 분야에서 할 수 있는 ‘귀향 친화적’ 사업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금의환향이 사라지고 소박한 귀향이 우리 주변의 익숙한 풍경으로 자리잡기를 소망합니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43454.html#csidx5d495c75341bdf7b6914fbf57bcd5a3

 

[강준만 칼럼] ‘금의환향’에서 ‘귀향’으로

전 모든 지방 공무원이 이 책을 읽으면서 고민해보길 바랍니다. 그간 ‘발버둥 쳤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심혈을 기울여 추진해온 ‘인구 늘리기’ 시도가 실패한 이유는 무엇이며, 각자 자기가 맡은 분야에서 할 수 있는 ‘귀향 친화적’ 사업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www.hani.co.kr

 

[한겨레 2020년 5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