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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로서 살아온 30여 년의 세월과 더불어 인생 후반기를 맞아 행복을 추구하는 기술자의 변신 스토리입니다. --------- 기술 자문(건설 소재, 재활용), 강연 및 글(칼럼, 기고문) 요청은 010-6358-0057 또는 tiger_ceo@naver.com으로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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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게 된 취리히 시내

2022. 11. 17. 06:59 | Posted by 행복 기술자

행복한 엔지니어의 뉴스레터 (제 718 호)

 

【 다시 보게 된 취리히 시내 】

 

이번 출장에는 세 군데를 들러서 일을 보게 되어 있었다. 그 중에서 두 군데, 즉 이탈리아 밀라노와 아랍에미리트 두바이는 혼자(기술 제공사 직원들과 함께) 일을 보고, 기술 제공사와 기술 협의를 하는 스위스 윈터투어에서는 협력업체 담당 직원과 함께 하게 되어 있었다. 나는 당연히 그 직원이 업무를 끝내면 바로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하고, 업무 협의가 끝나는 금요일 밤에 나는 두바이로 가도록 항공편을 예약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직원은 업무가 덜 끝날 것을 대비해서(?) 주말을 윈터투어에서 보내고 월요일 오전에 귀국하는 일정을 잡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 직원이 혼자서 주말을 스위스에서 보내게 된 것이었다. 그 직원은 주말에도 기술 제공사와 업무를 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했지만, 스위스 회사의 업무 관행상 그건 불가능하다고 얘기를 했다.

다행히 업무 협의가 순조롭게 진행이 돼서 주말까지는커녕 금요일 오전에 모든 업무 협의가 끝나버렸다. 내 비행기 시간이 밤 10시였기 때문에 어차피 오후 시간이 비게 돼서 그 직원과 의논 끝에 취리히 시내를 둘러보기로 했다. 그 직원은 스위스가 처음이라 기차표 끊는 것도 익숙하지 않고, 취리히 관광에 필요한 사전 준비를 전혀 해오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안내를 하기로 한 것이었다. 그걸로 그 직원과 주말을 함께 스위스에서 보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편한 마음을 조금이나 덜 수 있게 되었다. 어차피 그 직원이 주말에 루체른 1일 관광을 가겠다고 하니까 기차표를 끊는 방법도 연습할 겸 자동 발매기에서 직접 표를 끊도록 했다.

사실 윈터투어에서 취리히 중앙역까지 가는 기차표는 끊기가 아주 단순한데도 그 직원은 실수를 하고 말았다. 버튼을 여러 번 눌러야 하는데, 중간 단계에서 버튼을 잘못 눌러서 2등석 표를 1등석으로 업그레이드 하는 표를 끊어버린 것이었다. 내가 표를 끊고 나서 아무래도 이상해서 금액이 서로 다른 것 같다고 했더니 자신은 달러로 결재를 하고 나는 스위스 프랑으로 결재를 해서 다른 거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기차를 타고 가다가 검표원이 표를 보더니 2등석 표를 구매해야 하고, 현장 구매이기 때문에 10 스위스 프랑의 돈을 더 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직원 본인도 어이가 없는 것인지, 다음 날 루체른 가는 기차표를 끊을 때는 지나가는 사람한테 부탁을 해야겠다고 말했다. 글쎄 부탁을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됐지만 어차피 내가 도와줄 수 없는 상황이니 본인의 판단에 맡기기로 했다. 두 정거장밖에 안 되는 거리를 오면서 이런 난리법석을 피우고 나니 기운이 빠지긴 했지만, 그래도 들고 온 짐을 라커에 넣고 취리히 시내 구경을 시작했다. 지난 번 방문 때 가지 못했던 취리히 공대를 거쳐서 중앙역 건너편의 구시가지를 걸었다. 취리히 공대가 언덕에 있어서 올라갔다 오느라 기운도 빠지고, 화장실도 가야 하는데 공중 화장실이 보이지 않아 길가의 카페에 앉아 맥주를 주문했다.

스위스에서 길을 다니다가 닥치는 가장 난감한 문제가 화장실을 가야할 때다. 기차역에서조차 화장실이 유료(대개 1~2유로)이기 때문에 돈이 없으면 화장실도 갈 수가 없다. 그나마 예전에는 주로 화장실 앞에 사람이 앉아 있어서 큰돈을 주고 거스름돈을 받으면 됐지만, 최근에는 그것도 동전을 넣는 무인 시스템으로 바뀌면서 동전이 없으면 화장실도 갈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이럴 때 화장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비상수단이 바로 카페나 식당에 가서 식사나 차를 주문하고 거기에 있는 화장실에 가는 것이다.

 

나 혼자 다닐 때는 조금이라도 많이 볼 욕심에 카페에 앉아 차나 맥주 등을 마실 생각을 안 하고 계속 걸었는데, 둘이서 다니다보니 한가로이 앉아 맥주를 마실 시간을 갖게 되었다. 어느 유명 작가의 말대로 ‘멈추면 비로소 보인다.’고 한가로이 앉아 맥주를 마시다보니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표정이며 주위 풍경이 더 자세히 보였다. 지도에 보아야 할 지점들을 표시해놓고 그 목표지점을 조금이라도 빨리 보려는 욕심을 내려놓는 노력도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주 만나는 협력업체 직원이 아니라 마주 앉아 있어도 별로 할 말이 없어서 내일 가겠다고 했던 루체른에 대해 얘기를 꺼냈다. 일단 윈터투어에서 루체른으로 가는 직행열차를 끊도록 해야 하고, 중간에 갈아타는 기차를 타면 안 된다는 당부를 했다. 윈터투어에서는 매시 1분에 출발하는 기차가 갈아타지 않고 바로 루체른으로 간다는 정보까지 알려줬다. 아울러 루체른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필라투스산에 올랐다가 루체른 호수에서 크루즈를 타는 패키지도 소개해줬다. 하지만 그 직원이 자신은 자유여행을 원하기 때문에 일정에 얽매이는 패키지 프로그램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물론 그 직원의 의도는 충분히 이해를 하겠지만, 자유여행을 하려면 미리 정보를 파악하고 여행에 지장이 없도록 해야지 그냥 닥치는 대로 해결하겠다는 것이 자유여행이 아니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꾹 참았다. 그러면서 ‘참 여행에 대한 시각이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그 사람의 성격을 알려면 여행을 함께 해보면 알 수 있다는 말이 새삼 떠올랐다. 여행이 서로 성격이 맞는지 체크하는 방법 중의 하나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맥주를 마시고 나서 원래 계획했던 대로 취리히 호수까지 쭉 내려갔다가 다리를 건너 반대편 시가지를 따라 걸었다. 나도 사실 시내를 둘러보기 위한 지도를 갖고 오지 않았기 때문에 전에 한 번 걸었던 기억을 더듬어 단순하게 걸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 직원이 취리히 호수 주변을 걷지 않겠다고 하고, 교회 등 건물에도 크게 관심이 있는 게 아니어서 대충 둘러보다보니 2시간도 채 안 돼서 다시 취리히 중앙역에 도착했다. 겨우 4시가 안 돼서 시내 구경을 마쳤는데, 10시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바로 기차를 탈 수도 없고 해서 다시 건너편의 식당 골목으로 갔다. 어차피 식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어디서 할까 둘러보다가 중국집을 발견했다, 그런데 그 중국집이 6시가 돼야 문을 열기 때문에 다시 길거리 카페에서 맥주를 마시다가 그 중국식당으로 갔다.

아무리 현지 음식을 먹는다고는 하지만, 며칠 째 계속 국물이 없이 스테이크 종류만 먹다보니 속이 느글거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6시가 돼서 다시 그 중국집으로 갔는데, 우리가 기대했던 얼큰한 짬뽕 종류의 요리가 없어서 나는 쌀국수를 시켜서 먹었다. 중국집이니 중국술을 먹어야 되지 않겠느냐고 의기투합하여 중국술까지 마시니 속은 든든하고 머리는 약간 알딸딸하니 기분이 좋았다. 마지못해 다시 둘러본 취리히였지만, 경치가 아니라 여유 속에서 음식과 술의 정취를 느끼게 된 기분 좋은 하루였다.

 

 

행복한 미래를 만드는 기술자

 

김송호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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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발송되었던 뉴스레터를 보고 싶으신 분들은 제 개인 블로그 http://happyengineer.tistory.com/의 <주간 뉴스레터> 목록에서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관련 사진: 행복한 미래를 만드는 기술자 :: 스위스 취리히(2) (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