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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로서 살아온 30여 년의 세월과 더불어 인생 후반기를 맞아 행복을 추구하는 기술자의 변신 스토리입니다. --------- 기술 자문(건설 소재, 재활용), 강연 및 글(칼럼, 기고문) 요청은 010-6358-0057 또는 tiger_ceo@naver.com으로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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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엔지니어의 뉴스레터 (제 716 호)

 

【 이탈리아 밀라노 근교 꼬모 호수 여행 】

 

꼬모 호수 여행은 시작부터 일정이 꼬여 버렸다. 오늘 일정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철저하게 조사를 하지 못한 내 탓이 컸다. 꼬모 호수로 가는 기차역까지 가는 대중교통 편이 없어서 택시를 타는 것까지는 그런대로 좋았는데, 출발역으로 가리발디역을 선택한 것이 잘못이었다. 내가 찾은 정보에는 출발역으로 밀라노 중앙역과 가리발디역, 그리고 밀라노 북역을 추천하고 있었다. 그런데 가리발디역에 내려서 꼬모 호수에 가까운 지오바니역으로 가는 기차를 찾아보니 직행(고속열차) 편이 보이지 않았다. 기차를 잘못 타면 한참을 돌아가게 된다는 정보를 보았기 때문에 직행 편을 찾다가 결국 도착하자마자 탈 수 있었던 기차를 놓치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계속 바뀌는 전광판을 이 잡듯이 살피고 나서 직행편이 없다는 것을 알아내고 다음 기차를 타려고 했는데, 그 기차가 25분이나 연착을 했다. 이탈리아의 기차 편은 전광판에 탑승 홈이 표시되는데, 유독 내가 타려는 기차 편만 출발 시간이 다 되도록 탑승 홈이 표시가 되지 않아 초조하게 만들더니 결국 25분이나 연착을 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기차 편에 대한 사전 지식이 있어서 처음 도착하자마자 출발하는 기차를 탔더라면 1시간 25분이나 일찍 꼬모 호수에 도착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나중에 꼬모 호수, 즉 지오바니 역에서 밀라노로 돌아오면서 밀라노 중앙역으로 가는 고속 기차를 탔는데, 이 고속 기차는 가리발디 역을 경우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러니까 아침에 밀라노 중앙역으로 가서 고속 기차를 탔더라면 꼬모 호수에 2시간가량 일찍 도착할 수 있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아무튼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도착한 지오바니 역에서 꼬모 호수까지는 걸어서 10분 정도 걸렸다. 우선 오늘의 또 다른 목적지인 벨라지오로 가기 위해서는 배를 타야 하기 때문에 표를 먼저 사고 나서, 배 출발 시간 전까지 남는 시간 동안 꼬모 호수와 시내를 천천히 둘러보아야겠다는 생각에 서둘러 매표소로 갔다. 그런데 아뿔싸 매표소 앞에 사람들이 긴 줄을 서고 있는 것이 보였다. 긴 줄을 보는 순간 아침에 허비한 2시간이 더욱 더 아깝다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2시간 먼저 도착했더라면 줄이 이렇게까지 길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일단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표를 샀는데, 벨리지오까지 2시간 걸리는 배는 온라인으로도 살 수 있었지만, 1시간 걸리는 쾌속 보트(?)는 줄을 서야만 살 수 있었다. 11시 반경에 내 차례가 되었는데, 쾌속 보트는 1시 반 표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지금 2시간 걸리는 배를 타나, 1시 반에 쾌속 보트를 타나 벨라지오에 도착하는 시간은 비슷했지만, 일단 쾌속 보트 표를 샀다. 일단 줄을 서서 기다린 시간도 아까웠지만, 기다리는 두 시간 동안 꼬모 호수 주변과 시내 구경을 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표를 사면서 분명히 벨라지오에서 1~2시간 기다리다 돌아올 거라고 얘기를 했는데, 내가 받은 표는 벨라지오까지 가는 편도 티켓이었다. 다시 줄을 서서 되돌아오는 편 표를 사려니 너무 줄이 길고, 그냥 막무가내로 그 표를 팔았던 창구로 돌진하려니 좀 창피할 것 같아서 벨라지오에 도착하자마자 돌아오는 표를 사기로 했다. 그런데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출발하는 곳에서는 벨라지오에서 돌아오는 표를 살 수 없는 것으로 보였다. 왜냐하면 벨라지오에 도착하자마자 돌아오는 표를 사려고 줄을 섰더니 다른 사람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돌아오는 표를 사려고 줄을 섰기 때문이다. 문제는 돌아오는 가장 빠른 배의 표가 벨라지오에 도착한 후 3시간 반 이후라는 것이었다. 싫어도 벨라지오에 3시간 반 동안은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얘기였다.

 

꼬모 호수는 워낙 넓어서 다 돌려면 며칠이 걸릴 정도지만, 선착장 인근 산책길은 3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시내도 성당(두오모)과 광장을 중심으로 돌아보는 데 30분 정도 걸렸다. 남은 1시간 동안 무얼 할까 망설이다가 마침 선착장 옆에 있는 꼬모산으로 올라가는 기차(?)가 있다는 정보를 들었던 게 생각이 나서 그 기차를 타는 곳으로 가봤다. 하지만 거기도 긴 줄이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다시 선착장으로 돌아와서 할 일이 없으니 갑자기 배가 고파졌다. 그래서 식당에서 밥을 사먹기는 좀 아까워서 아이스크림을 사서 먹었다. 선착장 앞 벤치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자니 갑자기 ‘왜 내가 이러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풍경을 보러 왔으면 여유로운 마음으로 풍경을 즐겨야 하는데, 생각했던 만큼 일정 진행이 안 돼서 초조해하는 나를 보니 약간 한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마침내 배를 타고 벨라지오로 출발을 하니 선착장에서 보던 꼬모 호수와는 또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꼬모 호수는 ‘ㅅ'자 모양으로 생겼는데, 선착장에서는 작은 호수로 보였지만, 출발 지점에서 조금 나아가자 길쭉하고 넓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호수 양쪽에는 군데군데 작은 마을들이 형성되어 있었는데, 그 자체가 풍경 속에 녹아들어 한 폭의 그림을 만들고 있었다. 이런 풍경 때문에 로마 황제들이 이곳에 별장을 짓고 쉬러오지 않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배는 호수 양편을 오가면서 4군데 마을 잠깐 들르고는 1시간 정도 지나자 벨라지오에 도착했다.

 

다른 마을에서는 10명 미만의 사람들이 타고 내리더니, 벨라지오에서는 50명 가까운 사람들이 내리고 탔다. 그만큼 꼬모 호수에서 벨라지오는 가장 인기 있는 마을인 것으로 보였다. 벨라지오는 전통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고, 실제로 마을을 둘러보면서도 그걸 느낄 수 있었다. 벨라지오 마을을 둘러볼 수 있는 시간이 3시간이나 된다고 생각하니 자연히 발걸음이 느려지고, 호숫가 벤치에 앉아 괜히 호수를 바라보는 여유를 부리게 되었다. 그래도 천천히 호수를 따라 오른쪽으로 쭉 걸어갔다가 다시 돌아오면서 산비탈에 형성된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거의 마을 꼭대기 있는 곳으로 나 있는 길로 많은 사람들이 걸어가기에 따라 갔더니 반대편 호수가로 내려가는 길이 나왔다. 그 길은 더 이상 다른 길이 없는 작은 백사장이 있는 해변으로 연결되어 있었는데, 사람도 별로 없고 고즈넉한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 같은 곳이었다. 원래 생각대로 1~2시간만 벨라지오에 머물렀더라면 여기까지는 오지 않았을 것이고, 그러면 이처럼 다시는 보지 못할 것 같은 아름다운 풍경을 보지 못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여행을 꼭 계획대로만 할 게 아니라 가끔은 여유를 부리면서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마을 골목길을 오르내리면서 구경하고 마을 왼편 끝까지 갔다 돌아온 다음에 5시 반 배를 타고 출발했던 선착장으로 돌아왔다. 6시 반이라 아직 해가 조금 있긴 했지만, 꼬모 산에 오르는 것은 포기하고 밀라노로 가는 기차를 타러 갔다. 아침에 가리발디 역에서 고생했던 것이 생각나서 밀라노 중앙역까지 가는 기차표를 샀다. 그런데 지오바니 역에서 밀라노 중앙역까지 가는 기차 시간이 35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 것으로 나왔다. 이 기차가 바로 직행 고속열차였던 것이다. 아침에는 괜히 이 고속열차가 경유하지도 않는 가리발디 역으로 가서 고생을 했던 것이었다.

여기서 이탈리아에서 기차를 탈 때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매표소에서 표를 산 다음 승강장 입구에 있는 노란색 검표기에서 스탬프를 찍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스탬프를 찍지 않고 기차를 탔다가 검표원에게 걸리면 그 표는 무효가 되고, 벌금을 포함한 상당한 금액을 지불하고 다시 그 검표원에게 표를 사야 한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외국인에게는 상당히 부당한 일로 느껴지겠지만, 어쩌겠는가.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니. 나는 그래도 표를 파는 사람이 친절하게 안내해줘서 검표기에서 스탬프를 찍고 기차를 탔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중간에 내 표를 검표하는 검표원은 만나지 못했다.

 

 

행복한 미래를 만드는 기술자

 

김송호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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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발송되었던 뉴스레터를 보고 싶으신 분들은 제 개인 블로그 http://happyengineer.tistory.com/의 <주간 뉴스레터> 목록에서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관련 사진: 행복한 미래를 만드는 기술자 :: 이탈리아 꼬모 호수 (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