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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로서 살아온 30여 년의 세월과 더불어 인생 후반기를 맞아 행복을 추구하는 기술자의 변신 스토리입니다. --------- 기술 자문(건설 소재, 재활용), 강연 및 글(칼럼, 기고문) 요청은 010-6358-0057 또는 tiger_ceo@naver.com으로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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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이 급속히 발전하면서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그 영향이 절대적으로 커지고 있다. 과학기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는 반도체, 인터넷 등 기술적인 측면도 있지만, 모든 사실은 객관화할 수 있다는 과학적 사고도 한몫하고 있다.

과학은 객관적 사실을 다룬다는 생각은 고전물리학이 발전하면서 힘을 얻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현대물리학인 양자역학이 등장하면서 이런 생각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고전물리학을 키워 온 기본 개념들, 즉 절대 공간과 절대 시간, 인과율, 질량적 물질 등의 고전물리학적 개념은 양자역학에 의하여 모조리 파기되어 버린 것이다.

 

▲ [사진=픽사베이 제공]

고전물리학에 기반을 둔 서구의 과학은 관찰의 과정에서 모든 주관적인 것을 배제할 수 있다고 전제했으며, 그 결과로 과학은 가치중립적이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관찰의 대상체는 주관과는 관계없이 ‘거기 존재해’ 있는 것이므로 고전물리학은 객관적 존재의 불변적 특성을 파악할 수 있다고 전제해 왔던 것이다. 즉 고전물리학은 관찰의 과정에서 가변적이요 불확실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주관은 완전히 배제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하지만 현대 물리학의 대표인 양자역학은 관찰의 과정에는 필연적으로 주관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측정 불가능하다는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가 바로 대표적인 예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원리에 따르면 임의의 순간에 입자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수록 입자의 속도에 대한 정보는 더욱 불확실해지며, 따라서 잠시 후에 입자가 놓이게 될 위치도 모호해진다는 것이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를 한 마디로 정확하게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입자는 에너지의 다른 형태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오스트리아의 과학자 어윈 슈뢰딩거의 파동방정식에 따르면, 전자는 행성처럼 원자핵 주위를 선회하는 개별적 위치를 가진 물질 입자가 아니라 존재 가능성을 지닌 에너지 파동이다. 우리가 어떤 입자를 관찰하기 위해서는 에너지를 그 입자에 보내서 그 변화를 보게 되는데, 보내진 에너지가 입자의 운동량을 변화시키기 때문에 원래 입자의 위치에 대한 정확한 관찰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여기까지 읽고 나면 이 글이 이해될 듯하면서도 이해가 되지 않고 머리가 혼란스러울 수 있을 것이다. 양자역학자인 닐스 보조차도 “양자론을 처음 접하고도 충격을 받지 않는 사람은 결코 양자론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라고 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이처럼 양자역학이 어렵게 느껴지는 주된 이유는 비상식적인 가정이 시종일관 혼란을 야기하면서 고전물리학에 익숙한 우리의 상식을 깨기 때문이다.

이처럼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양자역학을 어렵게 설명하는 이유는 과학이 발전하면 우주와 자연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전제가 잘못되었음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양자역학의 거두인 막스 플랑크의 말대로 “우리가 이 세상을 참으로 안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 세상은 인간 정신의 인식으로 그 본질을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현대 물리학, 즉 양자역학은 오히려 고전물리학보다는 동양의 신비주의로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다.

현대 물리학의 세계에서 우리는 객관적 세계를 그 자체로 보지 않고, 주체와 객체의 만남에 따른 관찰 행위로써 창조된 것이라 생각해야 한다. 하이젠베르크의 말대로 “자연 과학은 자연을 단순히 기술하고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자연과 우리 자신 사이에 일어나는 상호 작용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현대 물리학에서 우리는 대상 그 자체의 속성에 관해서는 말할 수 없으며, 그것은 대상과 관찰자의 상호 작용이라는 맥락에서만 의미가 있다.

양자역학에 의해 과거에 ‘물질’과 관련되었던 속성들 중 상당수가 원자 입자에 적용되지 않게 되었다. 그 결과 현대 물리학자들은 세상이 물질과 유사할 것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근본에서 정신과 유사할 것이라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주체와 객체는 서로 무관한 것이 아니며, 이 둘은 하나의 세계, 즉 비이원론적 세계의 분리할 수 없는 얼굴이다.

따라서 과학을 통해 완전한 객관적 사실을 알 수 있다는 선입관을 버릴 때 진정한 세계의 모습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불완전한 감각기관들을 통해 세계를 이해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완전한 객관은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진정한 세계의 실체를 희미하게나마 파악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김송호 과학칼럼니스트]

■ 칼럼니스트 소개= 서울대학교 공대를 졸업하고 미국 퍼듀(Purdue)대학교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공학한림원 회원, 한국공학교육인증원 감사, 한국산업카운슬러협회의 산업카운슬러로 활동 중이다. 과학 기술의 대중화에도 관심이 많아 5000여 명에게 다양한 주제의 글을 써서 매주 뉴스레터를 보내고 있고 약 20권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의 책을 저술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인공지능AI 공존 패러다임’, ‘신의 존재를 과학으로 입증하다’, ‘행복하게 나이 들기’, ‘당신의 미래에 취업하라’, ‘신재생 에너지 기술 및 시장 분석’ 등이 있다.

 

[메가경제 2021년 7월 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