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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로서 살아온 30여 년의 세월과 더불어 인생 후반기를 맞아 행복을 추구하는 기술자의 변신 스토리입니다. --------- 기술 자문(건설 소재, 재활용), 강연 및 글(칼럼, 기고문) 요청은 010-6358-0057 또는 tiger_ceo@naver.com으로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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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담봉으로 향하는 길, 풍경을 화폭에 담았다. 사진 김강은 제공

 

높이 : 구담봉(330m), 옥순봉(286m)

코스: 옥순봉·구담봉 주차장-374봉-구담봉-374봉-옥순봉-원점회귀

거리/소요시간/이동시간 : 약 6㎞/2시간40분(휴식·그리기 시간 포함 4시간)

난이도: ★★☆

기타 사항: 두 봉우리 모두 짧은 바위 구간이 있으니 등산화를 착용할 것! 장회리에 있는 유람선 선착장에서 유람선을 타면 구담봉, 옥순봉의 또 다른 각도를 조망할 수 있다.

 

산 정상에서 맛보는 성취감에 푹 빠졌던 때가 있었다. 정상에 오르면 해냈다는 기분에 뭐라도 된 것 같았다. 습관적으로 높은 산, 더 힘든 산을 향했다. 낮은 산들은 산으로 안 쳤다. 그런데 정상의 기쁨이 아닌, 하이킹 그 자체의 묘미를 알려준 산이 있다. 바로 단양군 단성면과 제천시 수산면 경계에 있는 구담봉과 옥순봉이다. 나란히 솟아있는 이 두 봉우리는 작다고 무시하면 안 된다. 월악산 국립공원에 포함된 이 지역의 산들은 모두 산세가 수려하고 옹골지다. 두 곳 모두 단양 8경에 속해있다.

 

산행은 옥순봉·구담봉 주차장에서부터 시작한다. 서늘한 바람이 계절을 실감케 한다. 가을을 지나고 겨울로 향하는 길목이다. 딱 한 달 전 주홍빛 참나무 잎사귀로 둘러싸여 있던 가을 숲길은, 낙엽들로 뒤덮여 버렸다. 화려함은 사라졌지만 바스락거리는 갈색의 소리와 센티한 분위기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늘 푸를 것만 같던 생명이 져버린 까닭일까. 지난봄은 어땠는가, 여름은 얼마나 뜨거웠는가. 지나간 시간들을 떠올리게 한다. 사색에 잠겨 걷다 보면 차갑게 느껴지던 공기는 온데간데없고 온몸이 뭉근히 달아오른다.

 

20분을 오르니 구담봉과 옥순봉의 갈림길을 가리키는 안내판이 나타났다. 실제로 가장 높은 지점인 374봉이다. 구담봉으로 먼저 향하며 길은 한결 재미있어지기 시작한다. 부드러운 흙길은 탄탄한 바위가 얼굴 내민 길로 바뀌고, 오르락내리락 덱(데크) 계단도 이어진다. 능선을 따라 걸으며 옥빛의 충주호가 펼쳐진다. 물에 비친 바위가 거북 형태라 해서 이름 붙여진 구담봉은 실제 거북이가 물속에 머리를 박고 반쯤 잠겨있는 듯했다. 산자락을 따라 굽이치는 충주호와 바위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물빛에 취한 것일까? 무엇에게 홀리기라도 한 걸까? 마치 푸른 구렁이와 거북이가 포옹하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오늘은 여기가 좋겠다! 챙겨온 미술 도구를 펼쳤다. 푸른 구렁이의 청량함을 눈에도 마음에도, 화폭에도 가득 담았다.

 

다시 374봉으로 돌아와 옥순봉으로 향하는 길은 대부분 내리막이다. 가파른 길이라서 조금 미끄럽지만, 등산화를 신으면 무리가 없다. 마지막 바위지대를 5분 정도 오르면 곧 옥순봉 전망대이다. 옥순봉의 풍경은 이색적이다. 정면으로 흐르는 충주호를 사이에 두고 북쪽으로는 가은산과 금수산이, 동쪽으로는 구담봉이 보인다. 그리고 그 앞에는 커다란 혹등고래의 등처럼 평평한 바위가 시야를 꽉 채운다. 저곳만 다른 세상인 것 같다. 마치 신선계처럼. 조선왕조 개국공신 정도전을 비롯해 퇴계 이황 선생, 단원 김홍도 화백 등 수많은 인물이 옥순봉을 사랑했다는데. 그들이 저 바위 위에 앉아 풍류를 즐기는 모습을 멋대로 상상해본다. 서쪽 전망대에서는 푸른 호수 위에 빨간 옥순 대교가 보이는데, 깜찍한 포인트다.

 

걸었던 길을 내려오며 내 마음과 같은지 함께한 초보등산러 일행에게 물었다.“오늘 산행, 어땠어요?”“이 정도 난이도에 이 풍경이라니, 딱 좋은 것 같아요!”건조한 계절이지만, 단 4시간을 투자한 것치고는 차고 넘치는 보상. 등산이라기보다는 물 맑고 산세도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한 ‘산크닉’(산+피크닉)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짧게 오르내리는 하이킹의 재미를 만끽하기는 물론, 바스락거리는 마음에 미스트를 뿌린 듯 촉촉함을 선사하기에 충분한 산이었다.

 

김강은(벽화가·하이킹 아티스트)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pecialsection/esc_section/976856.html#csidx4b1f64471453808bb40d7bb908e1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