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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로서 살아온 30여 년의 세월과 더불어 인생 후반기를 맞아 행복을 추구하는 기술자의 변신 스토리입니다. --------- 기술 자문(건설 소재, 재활용), 강연 및 글(칼럼, 기고문) 요청은 010-6358-0057 또는 tiger_ceo@naver.com으로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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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리가름 주택 협동조합은 건축 설계 마지막 단계를 앞두고 논의가 한창이다.

[매거진 esc] 라이프
‘함께 귀촌’ 준비하며 공동 생활 터전 마련중인
제주 오시리가름협동조합 주택과 평창 꽃숲마을

나이 들면 누구와 살까
3회 귀촌도 함께하는 협동조합주택들

올해 7월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에는 ‘오시리 가름 주택’이 들어선다. 은퇴를 앞둔 16 가구가 모여 공동으로 땅을 구입하고 집을 짓되 소유권은 조합이 갖는 협동조합 주택단지다. 또 올해 3월엔 강원도 평창군 방림면 방림리에서 꽃숲마을이 첫 삽을 뜬다. 서울 마포에서 함께 아이를 키우며 공동육아, 공동주거를 개척했던 성미산 마을 1세대들의 귀촌 모임이다. 소유와 주거를 분리한 협동조합 주택이나, 공유주택을 마련하고 함께 할 일을 찾는 귀촌 프로젝트는 단지 여럿이 땅을 공동 구입하고 집을 짓는 것에 그쳤던 동호인 전원주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형태로 봐야 할 것이다. ‘함께 귀촌’을 궁리하는 두 주택단지 사람들을 만나봤다.

실버형 협동조합주택 제주 오시리 마을

“살면서 가장 큰 기쁨 가운데 하나를 꼽으라면 자기가 살 집을 짓는 것이다.” 오시리 가름 협동조합 주택 사람들은 헬렌 니어링, 스콧 니어링 부부의 <조화로운 삶>에 나오는 말이 과연 맞았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들이 해보니 집을 짓는 일이 퍽 즐거웠던 까닭이다.

평창군 방림면 꽃숲마을이 들어설 터를 찾은 성미산 귀촌추진위원회 사람들.

지난해 봄 진병무 디테크회장이 하우징쿱 주택협동조합 기노채 이사장과 은퇴를 대비한 실버형 협동조합 주택을 짓기로 한 것이 시작이었다. 혈연관계가 없는 사람들이 모여 공동 공간과 시설을 갖춘 소박한 공동체를 만들자는 계획을 두고 뜻밖에 호응이 높았다. 소문을 듣고 모여든 사람들과 협동조합을 만들고 보니 조합원들 중엔 의사나 변호사, 금융맨들에다 심지어는 부동산 시장을 쥐락펴락하는 대형 건설사 대표까지 있었다. 제안자인 진병무 디테크회장과 시공자인 기노채 이사장도 오시리 주택 조합원일 뿐 직업이 무엇이건 역할이 어떠했건 간에 이들은 모두 조합에서 1인1표만을 갖는다.

가시리 마을 자연취락지구 7054.74㎡ 넓이의 터에 들어설 오시리 가름 주택 16가구는 집집마다 필요에 따라 82~132㎡ 정도의 집을 짓는다. 조합원들은 “땅값과 공동 시설, 개인 주택까지 해서 2억5000만원 정도를 예상하지만 집 크기에 따라서 좀 덜 내거나 더 낸다. 개인 소유의 집은 아니고 협동조합법인의 공동자산” 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거주만 할 뿐 내가 소유할 수 없는 집을 짓는 일이 뭐 그리 즐거울까? 설계를 맡은 이엠에이 건축사 이은경 대표는 “아파트로 재산을 불려갔던 세대에 속하는 조합원 대부분에게 그동안 집은 그저 상품이었을 것이다. 방이 몇 개고 몇 평인지처럼 집의 사양이 중요한 삶을 살았다면 지금부터는 집을 통해 누구와 무엇을 할까를 상상하고 실현하는 인생이 시작되기 때문일 것”이라고 풀이했다. 2층을 음악실로 꾸미거나, 누마루처럼 데크를 높인다거나, 세탁실을 마련하는 등 집집마다 각자의 취향과 삶을 집 안에 들여놓을 궁리로 설계가 즐거웠단다.

제주 가시리 마을 들어설 16가구
소유와 상속 대신
함께 노년 보낼 방법 모색
성미산 공동육아 1세대
울타리 없는 귀촌 준비

게다가 도시에서 나이듦은 고립과 패배의 상징일 수 있지만 ‘함께 귀촌’은 생산적인 일을 계획할 계기가 된다. 개인 주택 설계를 거의 다 마친 오시리 가름 주택은 공동 공간을 두고 논의가 한창이다. 종이 위에 그려진 오시리 가름 마을 모습은 이렇다. 마을 입구엔 청년들을 위한 셰어하우스와 마을 공동작업장, 작은 도서관이 있다. 마을 반대편에는 함께 모이는 커뮤니티 하우스가 있다. 조합원들은 셰어하우스가 가시리 청년들을 위한 공간으로, 작은 도서관은 가시리 마을의 지적 자산을 보호하는 터로 쓰이길 바란다. 조합원 16가구만의 공간인 공동작업장과 커뮤니티 하우스에선 철마다 작은 공연도 열고 영농법인도 만들어 그들이 가진 전문지식과 경험을 활용해 지역을 위한 사업들을 벌일 계획이다.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가르치는 한 조합원은 “퇴임 뒤 55~75살 나이라면 그저 소일하는 정도로만 일거리를 찾는 것은 곤란하다. 아직 건강하고 활발히 활동할 수 있는 시기라서 사회적 기여도 하면서 부분적인 경제활동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제주에서 함께 기획하는 삶이 그런 부분을 채워줄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오시리 가름 주택 조합원들은 적게는 48살, 많게는 69살로, 완전히 은퇴할 나이라 하기는 이르고 당분간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살다가 점차 제주에 정착하는 노후를 그리고 있다.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사십대 후반의 한 조합원은 “은퇴 뒤 가장 건강한 시기를 보내게 될 것이 분명한 제주에서의 삶을 일단 준비하면서 앞으로의 인생이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고 싶다”고 했다.

오시리가름 주택 협동조합은 건축 설계 마지막 단계를 앞두고 논의가 한창이다.

성미산 귀촌 프로젝트 평창 꽃숲마을

성미산 마을에서 공동육아를 시작했던 사람들은 성미산 아이들이 크고 나면 함께 귀촌하기로 약속했단다. 그 아이들이 스무살을 넘겼다.

마을살이에는 어지간히 익숙해진 그들이지만 노후까지 함께한다는 결심을 하려면 자신을 여러번 돌아봐야 했다. “대기업에 다니면서 도시인으로 그럭저럭 살아왔다”는 아침사랑(닉네임)네는 노년에도 지금과 같은 소비 수준을 어떻게 유지할까 고민하는 선배들을 보면서 문득 “인생의 마지막 계절은 내가 주도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다. 성미산 마을 셰어하우스 소행주(소통이 있어 행복한 주택)를 만든 박흥섭 대표는 “도시에서 노인은 폐기물처럼 여겨진다”며 귀촌을 결심했단다. 치과의사로 일하는 까치네(닉네임)는 “좀 일찍 귀촌을 준비했지만 준비 과정 자체가 삶을 좀 더 길게 내다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고 한다.

7년 가까이 귀촌을 준비하면서 꾸준한 걸음이 계속되어 왔다. 2009년엔 평창에 야트막한 땅을 함께 사고, 지난해엔 터닦기를 마쳤다. 성미산에 살다가 먼저 내려온 진상돈씨는 지난해부터 혼자 집짓기를 시작해 1층은 거의 다 지었고 지금은 다락을 손보고 있다. 나머지 집들은 올해 3월부터 짓기 시작해 연말까지 모든 공사를 끝낼 예정이다. 건축비와 땅값을 합쳐 1억6000만원 정도의 작고 실용적인 집들로 짓는다고 했다.

평창군 방림면 꽃숲마을이 들어설 터를 찾은 성미산 귀촌추진위원회 사람들.

꽃숲마을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지만 성미산 귀촌 추진위원회가 만든 마을 결정 사항으로 미루어 그 풍경을 짐작할 수 있다. 대지는 함께 공유하고 건물은 각기 소유하는 꽃숲마을에서도 4가구는 공유주택으로 지어진다. 등을 붙인 네 집은 각기 43㎡ 정도 되는 개별 주택으로 짓고 66㎡ 넓이의 공동 식당과 거실, 게스트룸을 함께 쓰도록 설계했다. 박흥섭 소행주 대표도 공유주택에서 살 예정이다. 최소한의 규모만을 지닌 집에서 살면서 농기구를 함께 쓰고 서로 울타리를 치지 않고 사는 것이 그들이 그리는 꽃숲마을의 모습이다. 마을 한가운데엔 공동작업실과 모임 공간인 커뮤니티 하우스가 들어선다. 그림 그리고, 산책하고, 나무 키우고, 술을 빚는 등 각자 꿈꿨던 생활을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함께 생산하고 마을에 기여하는 삶을 지속할 생각이다.

집이 모두 지어져도 은퇴를 하기엔 아직 이른 나이의 사람들도 많다. 그들 중 절반은 당분간 도시와 산에 걸쳐진 삶을 살겠지만 2017년까지는 강원도 평창으로 생활터전을 완전히 옮겨갈 계획이다. 꽃숲마을은 “함께 가면 그만큼 더 넓어진다”며 귀촌할 집을 더 모으고 있다.

 

(한겨레 2015년 1월 15일 남은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