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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로서 살아온 30여 년의 세월과 더불어 인생 후반기를 맞아 행복을 추구하는 기술자의 변신 스토리입니다. --------- 기술 자문(건설 소재, 재활용), 강연 및 글(칼럼, 기고문) 요청은 010-6358-0057 또는 tiger_ceo@naver.com으로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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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이 밝아오는 아침 무렵 미황사 주지 금강스님이 달마산 트레킹 코스 달마고도를 걷고 있다. 달마고도에서 내려다보이는 다도해가 아침노을로 물들었다

여명이 밝아오는 아침 무렵 미황사 주지 금강스님이 달마산 트레킹 코스 달마고도를 걷고 있다. 달마고도에서 내려다보이는 다도해가 아침노을로 물들었다

 ‘달마고도’는 한반도 최남단 봉우리 달마산(489m)의 7부 능선을 잇는 트레킹 코스다. 지난해 11월 개통한 길은 여행자 사이에서 ‘명품’으로 불린다. 큰돈을 치러야 걸을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장인의 손길로 완성된 명품처럼 정성으로 빚은 길이어서 붙은 별명이다. 5월 둘째 주 전남 해남의 달마고도를 걷고 왔다. 길의 시작점이자 종점인 천년고찰 미황사까지 돌아보는 여행은 명품 여정이었다. 마침 산속 외딴 절이 그리워지는 부처님오신날을 앞둔 시점이었다. 
 

걷기 길 만든 해남 미황사 금강스님
중장비 없이 1만 명이 9개월 작업
달마산 한 바퀴 도는 18㎞ 코스
다도해 조망하며 걷는 산 속 숲길

천년고찰 미황사 뒤편으로 우뚝 솟아있는 달마산 암봉.

천년고찰 미황사 뒤편으로 우뚝 솟아있는 달마산 암봉.

없는 게 많아 더 즐거운 길 
달마산은 한반도가 남해 바다로 빨려 들어가기 직전, 우뚝하게 솟은 산이다. 전남 해남 땅끝마을에서 10㎞ 거리 달마산 중턱에 신라 경덕왕 8년(749년)에 창건된 절 미황사가 있다. 미리 말해두지만, 미황사로 찾아가는 여정은 고되기 짝이 없다. 서울에서 해남까지 버스로 5시간 30분이 걸리고, 해남 버스터미널에서 미황사까지 택시로 30분을 더 가야 한다. 그야말로 땅끝의 절이다. 한데 미황사에는 찾아오는 수고를 마다치 않는 이가 허다하다. 템플스테이 참가 인원만 한해 내국인 4000명, 외국인 500명에 달한다. 단순히 절간을 구경하려는 여행객까지 합치면 10만 명을 웃돈다. 
미황사 담벼락에 얹은 불상. 미황사는 아담하고 아기자기해 사찰 곳곳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미황사 담벼락에 얹은 불상. 미황사는 아담하고 아기자기해 사찰 곳곳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절에 들어서면 미황사가 왜 인기 사찰인지를 단박에 알게 된다. 절 뒤로는 묵직한 커튼처럼 달마산 암봉이 펼쳐지고, 대웅전 앞으로는 다도해가 내려다보인다. 아담한 절과 남도의 절경이 기막히게 어우러진다. 한데 요즘에는 미황사를 부러 찾아가는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사찰에서 출발하는 도보 여행길 ‘달마고도’를 걷기 위해서다. 미황사에서 만난 문화해설사 전희숙씨는 “예전에는 미황사에 도착하면 경내로 들어서기 바빴지만, 요즘에는 절 옆길로 샌다”고 말했다. 
2017년 11월 개통한 달마고도. 미황사에서 출발해 미황사로 되돌아오는 걷기여행 길이다.

2017년 11월 개통한 달마고도. 미황사에서 출발해 미황사로 되돌아오는 걷기여행 길이다.

 달마고도는 미황사를 중심으로 달마산을 한 바퀴 도는 트레킹 코스로 2017년 11월 개통했다. 달마산 정상을 정복하는 대신, 해발 220m에 있는 미황사 옆길을 통해 달마산 7부 능선을 따라간다. 17.74㎞ 이어진 길을 완주하는데 어른 걸음으로 6시간 30분 걸린다. 달마고도가 열리자마자 전국의 걷기여행 매니어가 땅끝으로 모였다는 말에 호기심이 일었다. 달마고도 4개 코스 중에 우선 1코스(2.7㎞)를 걸었다.
 미황사 일주문을 정면에 두고 왼편 달마고도 입구에 들어섰다. 입구부터 푹신한 흙길이었다. 후박나무·때죽나무 등 활엽수가 둥그스름하게 터널을 이루고 있어 따가운 봄볕을 막아줬다. 정상을 향하는 등산로가 아니라 산을 에두르는 길이어서 버거운 오르막이나 내리막이 없었다. 이내 의문이 들었다. ‘명품’이라는 소문이 무색하게 달마고도는 화려하지도, 특별하지도 않았다. 
 “달마고도는 있는 것보다 없는 게 많은 길이에요.”
 전 해설사의 말을 듣고 그간 걸었던 트레일을 떠올렸다. 그리고 깨달았다. 달마고도에는 딱딱한 데크로드가 없었다. 트레일에서 데크로드를 마주할 때마다 정취가 깨졌는데, 달마고도는 오로지 흙길과 낙엽길만 있었다. 전국의 트레일이 교실 바닥처럼 나무 복도로 휘둘렸다는 걸 새삼 실감했다.
달마고도 이정표.

달마고도 이정표.

 인공 시설물을 최소화한 달마고도는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길일 수도 있겠다. 데크로드는 물론이고 여행자를 위한 의자나 정자도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편의 시설이 없다고 문제 될 것은 없었다. 길을 걷다 지치면 바위에 앉으면 그만이었다. ‘단출하게 살아라’. 흙길을 걷는 내내 길이 일러주는 것 같았다. 가볍게, 경쾌하게 호젓한 산길을 그리 걸었다. 
 
 ‘싸목 싸목’ 걷는 길
달마고도는 산을 에두르는 길이라 급한 오르막이나 내리막이 없어 걷기 편하다.

달마고도는 산을 에두르는 길이라 급한 오르막이나 내리막이 없어 걷기 편하다.

 1코스 종착점에서 미황사로 돌아와 절간에 여장을 풀었다. 밤이 깊어갈 즈음, 미황사 주지 금강스님과 차담을 나눴다. 금강스님은 달마고도를 기획한 주인공이었다. 달마고도 개통 이후, 관광버스까지 대절해 도보 여행객이 찾아든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라 불편하시겠다는 말로 운을 뗐다. 스님은 “소란이 외려 줄었다”는 의외의 답을 했다.
 “달마산이 험준하다 보니 해마다 등산객이 다치는 일이 서너 번 발생했습니다. 구조 헬기가 뜨면 온 산이 진동했지요. 걷기 좋은 달마고도가 생긴 뒤로 사고가 없어져서 경내가 더 고요해졌습니다.”
 금강스님은 1989년 미황사에 부임한 이후로 안전한 길을 내고 싶다는 소망을 줄곧 품어 왔다. 전라남도의 지원으로 2014년부터 논의가 본격화됐다. 스님은 ‘걷기 편한 길’을 원칙으로 삼고 길을 구상했다. 불편한 길을 억지로 오르려니 바위에 구멍을 뚫고 밧줄을 달아 자연을 망가뜨린다고 판단했다. 
달마고도의 명물인 너덜겅. 부서진 바위가 산비탈을 타고 흘러내린 흔적이다. 양보라 기자

달마고도의 명물인 너덜겅. 부서진 바위가 산비탈을 타고 흘러내린 흔적이다. 양보라 기자

 금강스님은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며 길을 정비하는 방법은 한가지뿐이었다”고 말했다. 사람이었다. 2017년 2월부터 하루 평균 40명의 인부가 삽·호미·곡괭이로 꼼꼼하게 길을 다듬었다. 중장비를 썼으면 달포 만에 마무리될 작업이 아홉 달이나 지속됐다. 공사에 동원된 연인원이 1만 명. 전남도청이 지원한 예산 13억5000만원 중 90%가 인건비로 쓰였다. 그렇게 미황사 주변 암자와 암자 터를 잇는 달마산 옛길(古道)이 복원됐다. 길이 완공되자 스님이 달마고도(達摩古道)라고 이름을 지었다. 
미황사 12암자 중 하나인 도솔암. [중앙포토]

미황사 12암자 중 하나인 도솔암. [중앙포토]

 이튿날 미황사에서 다시 달마고도를 걷기 위해 출발했다. 전날은 구름이 낀 탓에 알지 못했는데 우거진 나무 사이로 바다가 보였다. 전희숙 해설사가 “달마고도 1코스는 서해를, 2코스(4.37㎞)와 3코스(5.63㎞)는 남해를, 미황사로 되돌아가는 4코스(5.03㎞)는 다시 서해를 벗하는 길”이라고 알려줬다. 
 전 해설사는 2코스를 달마고도 백미로 꼽았다. 2코스 시작점부터 해남 북평면과 완도를 잇는 완도대교가 눈앞에 드러났다. 걷는 내내 완도와 옥빛 남해 바다를 곁에 뒀다. 전 해설사가 구수한 사투리로 ‘싸게 싸게(빨리 빨리)’ 걷지 말고 ‘싸목 싸목(느릿느릿)’ 걸으라고 일렀다.
달마고도 2코스 시작점에서 완도대교가 보인다.

달마고도 2코스 시작점에서 완도대교가 보인다.

 쉬고 싶다 생각이 들면 어김없이 바위가 깔린 비탈 ‘너덜겅’이 등장했다. 바윗돌에 앉아 땀을 식히고 다시 걷기를 반복했다. 달마고도에 크고 작은 너덜겅이 20여 곳 있었다. 규암 덩어리가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면서 군데군데 부서져 내린 흔적이었다. 3코스를 걸을 때는 땅끝이 손에 잡힐 듯했다. 4코스는 달마고도에서 가장 그윽한 숲길이었다. 산길을 오르는 일은 고행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쉬엄쉬엄 달마산을 누비니 머리가 개운해졌다. 완주에 꼬박 8시간이 걸렸지만 다리가 후들거리지 않았다.
사리탑 27기가 모여 있는 미황사 부도전.

사리탑 27기가 모여 있는 미황사 부도전.

 숲을 빠져나와 미황사 부도전에 닿았다. 미황사에서 수행했던 큰스님의 사리를 모신 사리탑(부도) 27기가 모인 곳이다. 금강스님은 미황사 대웅전에서 1㎞ 정도 떨어진 부도전을 수시로 찾는다.  
 “평생을 부처님처럼 살다 간 미황사 큰스님들도 산길을 거닐며 수행했지요. 달마고도를 찾아오는 모든 이들이 복잡하고 우울한 마음을 물리칠 마음의 근육을 단련하길 바랍니다.” 
 
꼭 신자가 아니어도 템플스테이에 참여할 수 있다. 미황사의 하루를 체험하기 좋다. [중앙포토]

꼭 신자가 아니어도 템플스테이에 참여할 수 있다. 미황사의 하루를 체험하기 좋다. [중앙포토]

◇여행정보=달마고도 4개 코스 17.74㎞를 완주하는 데는 보통 6시간 30분 걸린다. 1㎞마다 이정표가 있다. 길에 물과 먹을 것을 파는 매점이 없다. 미황사 카페 선다원에서 도시락(2인 1만원)을 판다. 3코스 중간 지점에서 샛길로 이어진 도솔암 부근에 간이 화장실이 있다. 주말에는 해남군청(061-530-5114)이 무료 트레킹 가이드를 운영한다. 미황사(mihwangsa.com) 템플스테이를 곁들이는 것도 좋다. 체험형 템플스테이는 사찰의 기본일과(공양·예불)와 예절을 준수하는 선에서 자유롭게 일정을 소화하는 프로그램이다. 1박 5만원. 061-533-3521.  
 
해남=글 양보라 기자

[출처: 중앙일보 2018년 5월 18일] 호미·곡괭이로 냈다…땅끝 트레일 달마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