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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로서 살아온 30여 년의 세월과 더불어 인생 후반기를 맞아 행복을 추구하는 기술자의 변신 스토리입니다. --------- 기술 자문(건설 소재, 재활용), 강연 및 글(칼럼, 기고문) 요청은 010-6358-0057 또는 tiger_ceo@naver.com으로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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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뒷산을 오르다가 등산길에 수북이 쌓인 낙엽을 보면서 여러 생각이 떠올랐다. 며칠 전만 해도 녹색 잎을 자랑하던 나무들이 노랑, 빨강 잎을 매달고 아름다움을 뽐내더니 그마저 내팽개치고 앙상한 가지를 내보이니 갑자기 마음 한 구석에 쓸쓸함이 밀려온다.


“일 년 사계절 중 어느 계절이 가장 좋은가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아마도 봄과 가을이라는 대답이 가장 많이 나오지 않을까. 

 

봄은 답답하고 가라앉았던 추운 겨울에서 벗어나 생명이 움트고 따뜻해지기 시작하는 계절이라 좋다는 대답이 많을 것이다. 반면에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고 더운 여름에서 벗어나 선선해지는 날씨 때문에 좋기도 하지만, 단풍을 볼 수 있는 계절이라 더욱 좋을 것이다.
 

▲ [사진=픽사베이 제공]


주말에 낙엽을 밟으면서 뒷산을 걷다가 문득 나도 이제 서서히 낙엽 신세가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뭇잎이 단풍이 들고 결국에는 낙엽이 되어 떨어지는 이유는 추운 겨울, 즉 죽음이 오는 것을 대비하기 위해서다. 나도 인생 후반부에 이미 접어들었는데, 낙엽처럼 죽음에 대한 준비를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 되돌아보게 된다.


남자들, 특히 중년 남자들이 가을을 많이 타는 이유는 호르몬 영향도 있겠지만, 퇴직이라는 변화를 겪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퇴직은 사회를 위해, 가정을 위해 일하던 의무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의 아름다움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녹색의 엽록소를 통해 나무의 성장에 필요한 영양소를 만들어내던 나뭇잎이 엽록소를 버리고 자신의 고운 색깔을 내보이는 단풍처럼 말이다.


열대우림은 울창하지만 화재가 나서 나무들이 타거나, 벌목을 하게 되면 새로운 숲이 형성되는 데 상당히 긴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그 이유는 열대우림에는 추운 겨울이 없기 때문에 사시사철 푸르고 낙엽이 지지 않아 땅에 영양분이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열대우림에는 비가 많이 내려서 그나마 땅에 조금 남아 있는 유기물을 쓸어가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낙엽은 죽음을 의미하지만, 또 다른 생명의 밑거름으로 변화됨을 의미하기도 한다. 인생 후반부를 맞은 나도 낙엽처럼 아름다움을 보여주다가 결국에는 다른 생명의 밑거름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만약 내가 열대우림의 나무처럼 엽록소를 버리지 못하고 낙엽이 되기를 거부한다면 내 삶이 추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낙엽이 단풍처럼 아름답지는 않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연륜이라는 그 나름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산길을 걸으면서 보는 낙엽은 자연스럽게 보이지만, 아스팔트 위에 떨어진 낙엽은 어딘지 모르게 부자연스럽다. 아스팔트 위나 포장된 인도에 떨어져 있는 낙엽은 물 위에 떠있는 기름같이 어울리지가 않는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숲속의 낙엽은 지저분하다는 느낌이 들면서도 전체적으로는 조화로운 느낌이 든다. 하지만 아스팔트 위의 낙엽은 치워져야 하는 귀찮은 존재라는 느낌이 들고, 실제로 청소 대상이 된다. 치우고 또 치워도 다시 떨어지는 도시의 낙엽은 청소부들에게는 귀찮은 존재지만, 좋게 보면 그들에게 일거리를 제공하기도 한다.

도시의 낙엽과 자연의 낙엽 얘기를 하다 보니 낙엽에 비유되는 우리 인생 후반부도 도시에서의 인생과 자연에서의 인생이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도시에서 보내는 인생 후반부는 아스팔트 위의 낙엽 같고, 자연으로 돌아가서 보내는 인생 후반부는 숲 속의 낙엽 같지 않을까. 인생 후반부를 도시에서 보내기보다, 시골의 자연에서 보내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이유다.
 

낙엽에 대해 생각하다보니 남자가 퇴직하고 나면 ‘젖은 낙엽 신세’가 된다는 얼마 전 책에서 읽은 얘기가 떠오른다. 젖은 낙엽이 포장된 아스팔트에 눌어붙으면 잘 떨어지지 않듯이, 남자들이 퇴직하고 나면 아내에게서 떨어지지 않는다는 비유다. 퇴직하고 치맛자락을 붙잡는 남편들을 아내들이 떼어내려고 하지만, 남편들은 젖은 낙엽처럼 찰싹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불쌍한 신세가 된다는 비유이리라.

젖은 낙엽의 비유는 원래 일본에서 나온 것인데, 한국 남자들도 점점 비슷한 신세가 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한국 남자들은 아직까지는 ‘젖은 낙엽’ 신세를 부정하고, 큰소리를 치지만 그렇다고 현실이 바뀌지는 않는다. 이제부터라도 젖은 낙엽 신세가 되지 않고, 숲속의 낙엽처럼 이 세상에 이로운 존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김송호 과학칼럼니스트]

■ 칼럼니스트 소개= 서울대학교 공대를 졸업하고 미국 퍼듀(Purdue)대학교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공학한림원 회원, 한국공학교육인증원 감사, 한국산업카운슬러협회의 산업카운슬러로 활동 중이다. 과학 기술의 대중화에도 관심이 많아 5000여 명에게 다양한 주제의 글을 써서 매주 뉴스레터를 보내고 있고 약 20권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의 책을 저술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인공지능AI 공존 패러다임’, ‘신의 존재를 과학으로 입증하다’, ‘행복하게 나이 들기’, ‘당신의 미래에 취업하라’, ‘신재생 에너지 기술 및 시장 분석’ 등이 있다.

 

[메가경제 2021년 11월 16일 게재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