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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로서 살아온 30여 년의 세월과 더불어 인생 후반기를 맞아 행복을 추구하는 기술자의 변신 스토리입니다. --------- 기술 자문(건설 소재, 재활용), 강연 및 글(칼럼, 기고문) 요청은 010-6358-0057 또는 tiger_ceo@naver.com으로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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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역사. 중앙일보 江南通新 ‘맛대맛 라이벌’의 1위를 차지한 맛집의 공통점이다. 맛대맛 라이벌은 지난 2월 5일 설렁탕집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36가지의 서로 다른 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총 77개 식당(※공동 1위 두 차례 등)을 소개했다. 복수의 전문가가 추천한 리스트 가운데 독자의 투표를 가장 많이 받은 두 집을 소개하는 방식이었다. 이렇게 독자가 직접 선정한 1위집 38곳을 정리했다.

역사를 품은 맛집

 유학파 20~30대 셰프가 웬만한 연예인보다 더한 인기를 누리고 외국 유명 브랜드의 디저트 하나 먹겠다고 긴 줄을 서는 시대다. 그래도 변함없이 사람들을 이끄는 건 전부터 먹던 익숙한 음식이다. 맛대맛에서 1위를 차지한 38곳(일본식라멘·샤브샤브는 공동 1위) 중 25곳(66%)이 1994년 이전에 생긴 식당이었다. 2010년 이후 문을 연 식당 가운데 1위를 차지한 건 남경막국수(막국수)와 멘야산다이메(일본식 라멘), 송원스키야키샤브샤브(샤브샤브) 딱 3곳 뿐이었다. 송원스키야키샤브샤브가 1966년 개점한 송원복집의 세컨드 브랜드라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로는 2곳 뿐인 셈이다.

 역사가 긴 만큼 대를 이어 하는 곳이 많다. 예컨대 낙원떡집은 1대 고이뽀(59년 작고)씨가 1919년 낙원시장(현 낙원상가 자리)에서 떡을 팔기 시작한 후 96년 동안 4대가 이어오며 떡을 빚고 있다. 오장동 흥남집(냉면)과 한일관(불고기)은 3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 이문설농탕(설렁탕)과 명동교자(구)명동칼국수(칼국수), 삼원가든(소갈비), 토속촌(삼계탕), 한성돈까스, 백년옥(손두부) 등은 2대째 가게를 지키고 있다.

 역사가 오래된 만큼 현대사의 명암을 모두 목격했다. 또 정부가 새 정책을 시행할 때나 각종 식자재 파동마다 예상하지 못한 난관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뚝심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맛을 유지한 끝에 아직까지 살아남았다. 50년대 이문설농탕을 인수한 어머니에 이어 가게를 맡고 있는 전성근(66) 사장은 “별다른 맛의 비결이 있는 게 아니라 처음 맛 그대로를 유지하면 된다”며 “단골들 모두 이 맛에 익숙해져 계속 찾는다”고 말했다. 전주청국장은 85년 문을 연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콩을 씻고 불려 직접 띄운 청국장을 사용한다. 이 집 김종필(66) 사장은 “우스갯말로 우리집은 크기만 바뀌었다고들 한다”고 했다. 오장동 흥남집은 예전 맛을 내기 위해 요즘도 매일 면을 직접 뽑는다. 미리 많이 만들어 놓지 않고 면이 떨어질 때마다 새로 반죽해 면을 뽑고 참기름도 직접 짜서 쓴다.

맛집으로 오래 살아남으려면 주인의 뚝심이 있어야 한다. 독자 투표로 뽑은 ‘맛대맛 라이벌’ 1위집들 모두 그렇다. 이문설농탕에선 혀밑과 만하(소 비장)를 여전히 넣는다. 손질이 어려워도 그래야 제 맛이 난다고 생각한다. 이문설농탕과 동해해물탕, 전주청국장(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김경록 기자]


좋은 재료는 기본

 좋은 식자재를 고집한다는 것도 1위 맛집의 공통점이다. 백년옥(손두부)은 2000년대 중반 대기업이 두부 시장에 뛰어들며 어려움을 겪었지만 구수한 맛이 나는 강원도 고랭지산 콩만 고집해온 덕분에 손님을 잃지 않았다. 2대 사장 최요섭씨는 “문을 연 91년보다 지금은 콩값이 2배나 올랐지만 아버지 고집 때문에 여전히 가장 좋은 식재료만 쓴다”고 말했다. 광화문집(김치찌개)의 노병복(71)씨는 80년 가게를 인수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40년 넘게 국산 배추로 한 해 전 담근 김치만 써서 찌개를 끓인다.

 87년 청담동에 문을 연 진상샤브샤브 청담점의 손치중 대표는 요즘도 매일 아침마다 가게에 나와 수프(육수)맛을 보고 한우 상태를 확인한다. 한번은 150만원이 넘는 양의 한우를 상태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배달 직원 앞에서 쓰레기통에 버린 적도 있다. 그는 “내가 버리지 않고 그냥 돌려보내면 다른 가게에 주지 않았겠느냐”며 “안 좋은 고기는 내 가게는 물론 다른 가게에도 주지 말라는 뜻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식재료비가 치솟을 땐 모든 식당이 재료비를 아끼거나, 그렇지 않으면 음식값이라도 올려야한다는 유혹에 시달린다. 그러나 대부분의 1위 식당은 싼 재료를 쓰지도, 그렇다고 가격을 함부로 크게 올리지도 않았다. 이문설농탕 전성근 사장은 “79년 1500원이었던 설렁탕 한 그릇의 값이 지금은 7000원”이라며 “워낙 오랜 세월 드나든 단골이 많아 가격도 내 마음대로 올리지 못한다”고 했다. 오장동 흥남집도 2010년 이후 줄곧 8000원이던 가격을 4년 만인 올해 9000원으로 올렸다.

맛집 거리의 독보적 맛집

 같은 메뉴 식당이 모여있는 맛집 골목은 경쟁이 더욱 치열하다. 너도나도 원조 간판을 달고 손님을 끈다. 맛대맛 라이벌을 통해 장충동 족발거리, 응암동 감자국거리, 낙원동 떡집상가, 종로3가 닭볶음탕골목 등 맛집 골목이 여럿 소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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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중 오장동 흥남집은 오장동 냉면골목의 원조다. 6·25전쟁 직후 오장동은 북한에서 피난 내려온 실향민이 모여 살던 판잣집 동네였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북한 음식 파는 음식점이 생겨났고, 53년 쓰러져가는 판잣집에 ‘흥남’ 간판을 내걸고 함흥냉면을 판 게 이 집의 시작이다.

 그런가 하면 장충동 평안도족발집은 온통 ‘원조’간판 천지인 장충동 족발거리의 대표 맛집으로 꼽힌다. 이경순(80) 평안도족발집 사장은 62년부터 빈대떡을 팔았는데 몇몇 손님의 “다른 걸 좀 팔라”는 말에 고향에서 즐겨 먹던 족발을 팔기 시작했다. 이 사장이 50년 가까이 지키는 원칙은 그날 삶은 고기는 그날 다 판다는 거다. 일부러 조금 모자라게 준비하기 때문에 빠르면 오후 8시면 다 떨어진다. 그는 “족발이 남아 버리는 것보다 낫다”며 “남은 걸 다음날 데워 팔면 손님이 대번 알아채고 다음부터 안 오니 덜 만들어 덜 파는 게 오히려 남는 장사”라고 설명했다.

 같은 메뉴를 파는 경쟁 식당이 다 문을 닫고 홀로 골목의 명맥을 이어가는 곳도 있다. 계림(닭볶음탕)이 그렇다. 50여 년 전 종묘광장공원 맞은편 세운상가 쪽 좁은 골목길에 문을 열 당시는 물론 80년대까지만 해도 두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의 좁은 골목 양옆에는 닭볶음탕집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계림만 남았다. 길진영 사장은 “일흔 넘은 단골들이 ‘젊은 시절 싸고 푸짐하게 먹을 수 있어 자주 왔던 가게들이 다 없어져 서운하다’면서 계림만은 자리를 지켜달라고 한다”고 했다.

강북에서 강남으로

 강남 개발이 본격화하면서 80년대 들어 강남에도 맛집이 속속 생겨났다. 무교동유정낙지와 한일관처럼 강북에서 강남으로 자리를 옮긴 곳도 꽤 있다. 맛대맛 라이벌 1위집 38곳 중 18곳이 강남에 있는데, 강남에서 30년 넘게 맛집 자리를 지킨 식당이 11곳이다. 이중 원주추어탕은 강남에서 드물게 40여 년 역사를 이어오는 집이다. 80년대 추어탕 먹으러 자주 오던 손님이 미국 이민을 갔다가 20년 만에 귀국해서는 그 자리에 그 모습 그대로 있는 걸 보고 감격해서 돌아갔다는 얘기도 있다. 이 사연은 미국 한인 라디오 방송에 소개되기도 했다. 2대 이남수(45)사장은 “처음엔 국내산 미꾸라지를 구하기 힘들어 남원에 양식장까지 만들었지만 실패했다”며 “10년 전부터 자연산 미꾸라지가 많이 나오는 7월 초부터 한 달간은 태안에서 자연산 미꾸라지를 공수해온다”고 말했다.

 삼원가든(소갈비)은 선견지명으로 강남에 일찌감치 터를 잡았다. 삼원가든의 시작은 박수남(67)회장이 76년 금천구 시흥동의 삼원정이라는 고깃집을 인수한 데서 출발한다. 이후 강동구 길동을 거쳐 81년 지금의 신사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대우식당(부대찌개)이 84년 역삼동에 문을 열 당시 이 곳은 주택 외엔 별다른 게 없었다. 근처에 식당 하나 없었다. 대충해도 돈을 벌 수 있었겠지만 여인숙(61) 사장은 값싼 수입산 고기 대신 한우를 고집했다. 또 국물맛을 시원하게 하려고 미나리를 넣는데, 겨울철 미나리값이 3배 이상 올라도 양을 줄이지 않는다. 30년째 지켜온 원칙이라고 한다.

 고향집(보쌈)은 강남 개발 후 건설회관·석유개발공사·토지개발공사 등 큰 건물이 생겨난 86년 논현동에 문을 열었다. 이후 30년째 돼지고기 사태를 삶은 보쌈과 절인 배추를 함께 내놓으며 고향집만의 보쌈으로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강남에서 보기 드물게 인테리어 역시 처음 그대로라, 드라마 촬영지로도 자주 등장한다.

(중앙일보 2014년 12월 11일 송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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