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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로서 살아온 30여 년의 세월과 더불어 인생 후반기를 맞아 행복을 추구하는 기술자의 변신 스토리입니다. --------- 기술 자문(건설 소재, 재활용), 강연 및 글(칼럼, 기고문) 요청은 010-6358-0057 또는 tiger_ceo@naver.com으로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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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영의 원려심모]
기본일자리 정책을 제안하며(상)

 

기본소득을 헌법에 명시할 것을 주장하는 시민사회단체들. 김성광 한겨레 기자 flysg2@hani.co.kr

소득 이전에 일이 있어야 하는 이유 북유럽의 복지국가 핀란드는 2017년부터 2년간 기본소득에 대한 정책실험을 했다. 2020년 최종보고서가 나올 것이기는 하나, 2019년 초에 2017년 한 해의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삶의 만족도는 높아졌으나, 고용 개선에는 유의미한 효과가 없었다는 내용이었다. 이는 2019년 초에 이미 언론에서 소개된 것이다.

 

기본소득에 대해서는 성급하게 실패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핀란드의 사회실험이 실업자를 대상으로 기본소득을 지급했으며, 근로의욕을 저하시키지 않았다는 것은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실험 결과를 긍정적이었다고 볼 수는 없다.그럼에도 기본소득에 대한 주장은 여전히 유효하다. 2020년 민주당 대통령 선거 후보로 출마한 앤드류 양(Andrew Yang)은 기본소득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그는 매월 미국인 전부에게 1000달러를 기본소득으로 지급하는 것으로 공약으로 내걸었다. 기본소득의 필요성을 주창하는 일론 머스크(Elon Musk)는 공개적으로 앤드류 양 후보를 지지한다.그런데 기본소득에 앞서 논의할 게 있다. 일자리 문제다. 사람에게 일이 없다면 사람을 사람답게 할 수 있는 건 뭘까? 일을 통해 인간은 학습하고, 일을 통해 다른 인간과 관계를 형성한다. 일을 통해 인격이 성숙하며, 일을 통해 자아실현을 한다. 기본소득이 생존을 위한 소득을 중심으로 전개된 정책이라면 기본일자리는 그 이상의 것을 고민한다. 그렇다면 기본소득에 앞서 기본일자리를 주장해야 한다.

 

기본일자리에서 일자리란 근로에 대해 경제적 보상을 받는 일자리(Job)를 의미한다. 경제적 보상이 보장되지 않는 일(Work)과는 구분된다. 현재의 사회-정치-경제 시스템에서 생존을 보장하면서 일을 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은 기본일자리를 제공하는 것 이외에는 없다. 논리적으로 일자리는 일의 충분조건이다. 일자리가 있어야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나, 일자리가 있다면 일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보다는 일자리에 집중하는 것이 조금 먼 미래까지 타당할 것이다. 먼 미래엔 일자리가 아니라 일에 대해 보다 집중해야 하겠으나, 당분간 사람과 일의 관계는 사람과 일자리의 관계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기본소득제도가 인간에게서 일을 소외시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이 인간답게 일을 할 수 있는 경제적 여건을 주기 위한 것이다. 기본소득이 있다면 인간은 생존의 위협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자유의지와 인간의 존엄을 지키며 해야 할 일을 선택할 수 있다. 기본소득도 안전하고 행복한 일자리를 유인하기 위한 것이다. 그럼에도 기본소득제도 이전에 기본일자리에 대한 고민과 제도를 정착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우리가 가진 자원의 한계와 일의 순서가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자원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적절하게 분배되지 않았다는 주장이 있다. 일부 공감하지만 자원을 적절하게 분배할 수 있는 정보시스템으로서의 경제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아, 재화의 생산과 분배가 비효율적이 될 수 있다는 점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독일의 ‘노동 4.0’ 백서에서 독일 노동계는 기본소득제도에 반대했다. 기본소득제도가 양극화를 심화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개인에게는 사회에 적극 참여하고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고, 기업에는 생산성 극대화를 위해 기본소득을 위한 세금만 내고 그 이상의 이윤을 추구하게 할 가능성이 크다. 기본소득제가 실패한 것은 아니나, 기본소득제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선행적으로 해결해야 할 일이 적지 않다. 따라서 우리는 누구에게나 일자리가 보장될 수 있는 기본일자리에 대해서 먼저 논의해야 한다.

 

미국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로 출마한 버니 샌더스는 일자리 보장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청년의 미래를 위해 기본일자리가 필요하다 기본일자리의 개념은 활동적 노인을 포함한 성인에게 일정한 보수가 지급되는 일자리가 보장될 수 있도록 사회-정치-경제 시스템을 마련해야 하며, 개인에게 기본일자리를 그 사회에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체제를 말한다. 근로의 권리와 의무를 규정한 우리나라 헌법 32조는 완전고용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선언적 규정에서, 개개인의 구체적 권리로 승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구체적 권리란 국가에게 일정한 행위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개인의 청구권이 있다는 의미다. 기본일자리의 개념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일자리 보장(Job Guarantee)은 신케인지언 학파에서 주창된 것으로 1980년대부터 등장했다. 일자리 보장 제도는 일자리를 원하나 시장에서 일자리를 찾지 못한 희망자에게 정부가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기본일자리에 대한 기원은 기본소득제보다 오래된 것은 아니다. 기본소득제를 최소 임금제를 기원으로 두는 것이면 16세기 초 유토피아 사상과 연계되며, 누구에게나 일정한 소득을 제공한다는 의미의 기본소득제는 19세기 중반의 샤를 푸리에(Charles Fourier) 와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일자리 보장에 대해서는 그 관리 비용이 지나치게 많이 들 것이라는 비판이 있다. 이를 근거로 하여, 일자리 보장이 기본 소득제에 비해 큰 장점이 없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로 출마한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는 대선 경선 후보인 키어스트 질리브랜드(Kirsten Gillibrand)와 콜리 부커(Coly Booker)와 함께 일자리 보장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이들은 일자리 보장은 최소 주 15시간의 일자리를 노동을 원하는 사람에게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기본일자리는 일자리 보장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다만 산업사회에서 지식사회로의 이행에 따른 보다 다양한 정책을 포괄하는 것을 의미하므로, 좀 더 넓은 개념으로 보아야 한다. 기본일자리의 구체적 대안에 대해서는 학문적, 사회적, 실무적 논의가 더 진행되어야 하는데, 특히 우리나라의 맥락적 상황에서 다음과 같은 장점을 지닐 수 있다. ? 청년의 미래 경쟁력 확보 : 적절하고 충분한 일자리를 경험하지 않는다면 미래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한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속담은 경험이 역량과 인격을 형성한다는 의미다. 청년층 실업은 일자리를 통해 필요한 경험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청년 세대에서 박탈한다는 의미이며, 이는 미래에 우리나라의 국가경쟁력을 낮출 위험이 된다. 소수의 엘리트가 국가경쟁력을 결정할 것이라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 혁신의 과정은 진화론에서의 돌연변이와 적자생존을 닮았다. 자연설계만큼은 아니나 혁신도 무수한 시행착오를 통해 진화한다. 청년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보장하는 것이 미래성장동력을 유지하는 근본이다. ? 지식사회에서의 한국의 경쟁력 유지 : 한국사회는 산업사회에서 지식사회로 이행해야 하고, 이행하고 있다. 4차산업혁명과 디지털 전환은 이를 가속화할 것이다. 지식사회는 지식산업의 비중이 절대적일 것으로 보인다. 지식 생산을 위한 연구개발, 문화 콘텐츠의 생산을 위해서는 노동에서 새로운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지식산업에서 전통적인 노동법이 적용되기 어렵다. 기본일자리는 노동법의 공백에 대응할 수 있다. ? 소득보장과 유효수요 확보 : 21세기의 경제성장 둔화는 공급 부족에서 유발된 것이 아니라 유효수요 부족에 있다. 국제적으로는 개발도상국의 경우 수요는 있으나 이를 만족시킬 수 있는 소득이 없다. 국가적 차원에서도 양극화 진행에 따라 유효수요가 줄어들고 있다. 사회의 고령화도 유효수요를 줄이는 이유가 된다. 기본일자리는 일정 수준의 소득을 보장함에 따라 유효수요를 확보하게 할 수 있다. 우리나라와 같이 수출의존도가 높은 국가의 경우 4차산업혁명으로 인한 매스 커스터마이제이션과 생산시설의 현지화에 대응하기 위해 내수시장을 늘려야 한다. 기본일자리는 소득보장과 유효수요 확보를 위한 핵심 정책의 하나로 판단된다. ? 인플레이션에 대한 통제 : 고정 일자리 보장 임금은 인플레이션을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 현대 화폐이론의 대표적 지지자인 윌리암 프란시스 미첼(William Francis Mitchell) 교수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경우, 정부는 강력한 재무와 통화 정책을 시행하게 될 것이고, 이는 전체 고용대비 일자리 보장 고용 비율(BER, Buffer Employment Ratio)을 높여, 노동자가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영역에서 일자리 보장 영역으로 이전하게 되어, 결과적으로 인플레이션을 통제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극단적 불평등은 역사적으로 비극적인 폭력적 혁명을 가져왔다. 픽사베이

기본일자리를 위한 다양한 정책대안 기본일자리를 위해 다양한 방안이 있다.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은 <노동의 종말>에서 일자리 나누기를 제안했다. 디지털 노마드의 출현과 임시직 위주의 ‘긱 경제’ 비중 증가 및 플랫폼 경제 확산으로 전통적 노동법 적용 영역이 축소되고 있는 상황이다. 미래 사회 변화에 대응하여 전통적 노동법의 변화가 절실한 상황이다. 지식사회가 가진 ‘성실한 실패’에 대한 포용은 기본일자리와 관련해서 수립되어야 할 원칙이다. ‘성실한 실패’에 대한 포용은 그 사회의 지속적 혁신을 유지하게 할 수 있다. 사회내의 공익과 전인류적 공익을 위한 일자리를 만드는 것을 고민해야 한다. 사익을 추구함으로써 보이지 않는 손의 작동을 통해 사회적 부가가치를 만드는 사기업에 공익을 추구하도록 하면 비용효율성에서 큰 문제가 된다. 비정부기구에 공익을 맡기는 것이 적합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나, 현실세계에서 비정부기구도 사익을 추구하는 기업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정책 입안자(Policy Entrepreneurs)가 공개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공익 시장을 만들어 일자리와 사회적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안도 생각할 수 있다. 고전적인 공적 영역을 확대하는 것도 충분히 가치 있다. 기준에 대한 논란이 있기는 한데, 한국사회의 공적 부분에서의 고용은 OECD 국가 평균에 비해 상당히 낮다. 마지막으로 앞에서 언급한 일자리 보장으로 기본일자리의 전체 체계를 완성한다. 이밖에도 기본일자리를 위한 다양한 제도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 대안은 사회-정치-경제 시스템의 기본 요건을 만족해야 한다. 기본 요건으로 정보시스템의 비용효율성, 지속적 혁신, 자연환경에서의 지속가능성, 공정성을 들 수 있다. 자본주의는 사회주의에 비해 무엇을 생산할지, 얼마나 생산할지, 누구에게 배분할지를 결정하기 위한 정보시스템에서 비용 효율성이 탁월했다. 이 때문에 자본주의가 사회주의와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었다.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이 지속적 혁신에서 다른 시스템에 비해 우수했다. 인간의 합리적 이기주의가 지속적 혁신을 가능하게 했다는 것인데, 현재의 특허제도와 부의 양극화는 혁신 속도를 저하시키고 있다. 자본주의 체제가 자동적으로 지속적 혁신을 보장하는 건 아니다. 지속적 혁신의 속도가 떨어진다면 그 시스템은 다른 시스템과의 경쟁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다. 조선이 중기 이후에 혁신속도 저하를 넘어서 후퇴하면서 식민지를 경험했던 것이 대표적 사례다. 이븐 할둔(Ibn Khaldun)이 <역사서설>에서 보여준 중세시대 중동지역의 종교적 매몰이 그들의 혁신속도를 저하시켜, 유럽 제국에 역사의 주도권을 넘겨주었다. 현재의 시장경제 시스템은 시장외부비용을 내부비용화하고 있다. 저렴한 플라스틱 사용으로 인한 환경오염과 바다 생태계 파괴에 대해 인류는 여태까지 마땅한 비용을 지불하지 않았다.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으로 솔로몬 제도가 바닷물에 잠겨도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이 최고인 미국의 국민에게 어떠한 비용도 요구하지 않았다. 그러나 상황이 바뀌었다. 이제 외부불비용은 내부 비용화했다. 이 비용까지 감안하여 사회-정치-경제 시스템의 생존가능성이 평가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공정성이 유지되어야 한다. 인류의 역사를 보면 극단적 불평등은 항상 비극적인 폭력적 혁명을 가져왔다. <팩트풀니스>가 21세기 들어 극빈층의 숫자가 줄었음을 밝히고 있는데, 불평등 지수도 사회적 안정성에서 매우 중요하다. 논어의 계씨(季氏)편에 不患寡而患不均 不患貧而患不安(불환과이환불균 불환빈이환불안)이라 쓰여 있다. 주자는 과(寡)와 빈(貧)을 바꾸어 不患貧而患不均 不患寡而患不安(불환빈이환불균 불환과이환불안)으로 써야 한다고 했다. 백성이 가난한 것이 걱정이 아니라 평등하지 못한 것을 걱정해야 하며, 백성이 적은 것을 걱정해야 할 것이 아니라 안정되지 못한 것을 걱정한다는 의미다. 공정하지 못한 사회는 不均(불균)한 사회이며 不安(불안)한 사회다. 그 사회가 오래갈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들 네 가지 요건은 사회-정치-경제 시스템 간의 경쟁에서 이기고 혹은 살아남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데, 네 요건으로 인한 영향이 동시에 나타나지 않는다. 미래학의 Three Horizons의 시각 틀에 의하면 비용 효율성, 즉 정보시스템으로서의 비용 효율성은 현재와 단기 미래에 해당하는 Horizon 1에서, 지속적 혁신은 중기 미래와 장기 미래에 해당하는 Horizon 2와 3에, 환경에서의 지속가능성은 Horizon 3에, 공정성은 양극화 속도에 따라 다르겠으나 Horizon 2 이후에 주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조직의 근시 현상만이 만연한 것이 아니라, ‘근시사회’에서 사회-정치-경제 시스템의 장기적 요건을 만족시키라고 요구하는 것은 과도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기후변화로 인해 인류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이들 네 가지 요건을 통합적으로 검토하지 않는 것은 스스로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고 러시안 룰렛 게임을 하는 것과 간다. 윤기영/한국외대 경영학부 미래학 겸임교수, 에프엔에스 미래전략 연구소장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cience/future/907792.html?_fr=mt2#csidxd770962efea0d4a8b504bc80ef97cce

 

기본소득보다 기본일자리가 더 시급하다

[윤기영의 원려심모] 기본일자리 정책을 제안하며(상)

www.hani.co.kr

[한겨레 2019년 8월 3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