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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로서 살아온 30여 년의 세월과 더불어 인생 후반기를 맞아 행복을 추구하는 기술자의 변신 스토리입니다. --------- 기술 자문(건설 소재, 재활용), 강연 및 글(칼럼, 기고문) 요청은 010-6358-0057 또는 tiger_ceo@naver.com으로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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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은 문과일까, 이과일까? 생뚱맞게 어리석은 질문을 한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단순하게 문과라고 대답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싶어서다. 경제학은 미분 적분 등 많은 부분을 수학에 의존한다. 경제학과 출신들이 많이 취업하는 은행 증권사 등 금융권에도 이과생들 진출이 늘고 있다. 기업 인수ㆍ합병(M&A)과 펀드 투자 등은 금융공학을 전공한 수학자들 몫이 되고 있다.

우리가 문과라고 생각하는 심리학도 이과적인 사고가 많이 요구된다. 최근 세계 과학계 트렌드는 뇌과학자들이 심리학자들과 함께 연구하고 뇌 활동을 다양한 각도에서 해석한다. 한국 심리학자에게 뇌를 연구하라고 한다면 "나는 과학에는 재능이 없어서"라고 한다.

한국과 일본을 제외하고 문ㆍ이과를 나누는 나라는 없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제임스 헤크먼 미국 시카고대 교수는 과학학술지 `사이언스`에 논문을 게재한다. 한국과 일본에선 이런 모습이 놀랄 만한 일이지만 문ㆍ이과 구분이 없는 외국에선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우리나라는 문ㆍ이과를 나누는 뿌리 깊은 관행 때문에 이미 초등학교, 중학교 때부터 `나는 이과, 저 아이는 문과`라는 낙인을 찍어 버린다. 문과와 이과 쪽 직업에 대한 고정관념을 학생 시절에 주입시킴으로써 자기 능력을 펼 수 있는 기회조차 꺾어버린다. 문ㆍ이과 구분은 일제 시대 잔재다. 이과 쪽 성향이 강한 사람은 문과 쪽 공부를 시키지 않으면서 속성으로 기술자를 양산하겠다는 시대상이 반영됐다.

21세기는 융합형 인재를 원한다. 인문적 지식과 과학적ㆍ예술적 지식을 두루 갖춘 인재가 대우받는다. 아이폰을 만든 애플의 스티브 잡스부터 시작해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창조경제`를 구현한 사람들은 문ㆍ이과를 나누지 않는 융합적인 삶을 살아왔다. 하지만 한국 고교에서는 문과 학생들은 과학을 공부하지 않아도 되고, 이과 학생들은 사회를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 대학입시가 문과와 이과로 나뉘어 있기 때문이다.

문ㆍ이과 통합이 당연시되는 이유다. 교육부도 서둘러 문ㆍ이과 통합형 교육과정을 마련했다. 교육과정개정연구위원회가 마련한 문ㆍ이과 통합 교육안은 15단위로 지정된 `공통과목(국어ㆍ영어ㆍ수학ㆍ사회ㆍ과학)` 이수단위가 모두 10단위로 줄어들고 한국사 6단위가 추가됐다. 여기에 인문교과를 추가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외형상으로 보면 필수 5과목 시수가 같이 줄었지만 난이도 등을 따져보면 사회과목 비중은 늘고 과학은 줄어든 것이다.

과학계는 이번 개편이 `밥그릇 싸움`이라고 비난한다. "국사 필수과목 지정으로 국사가 사회단위를 뺏어가면, 사회과목 선생님 2000명 밥줄이 왔다 갔다 한다. 그래서 교육계가 문ㆍ이과 통합을 명분으로 사범대 출신들 밥그릇을 지켜주고 있다"고 주장한다.

교육계는 우생학까지 들먹인다. 김경자 교육과정개정연구위원회 위원장은 위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우생학이라는 과학의 이름을 빌려 유대인 학살도 가능하게 한 과학의 힘이 다시금 생각난다"며 "과학계 집단 행동은 교육적이라기보다는 선동적"이라고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다.

미래 교육을 놓고 선생님들은 감정싸움을 하고 있다. 과연 교육과정 개정안이 세계 추세에 맞는 문ㆍ이과 통합에 관한 철학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교육학자 13명이 6개월 만에 뚝딱 만든 개정안을 들여다보면 문과와 이과를 융합하려는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 문ㆍ이과 구분 없는 미래형 인재를 만들려는 노력보다는 숫자 놀음만 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단순히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수업시간 비율을 맞춰 다시 대학입시에 맞는 교육과정을 만들려고 한 것은 아닌지 되짚어봐야 한다.

분명한 것은 사회에서는 문과생보다는 이과생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최근 대기업 채용 과정을 들여다보면 이과생 채용이 문과생보다 4배나 많다. 이과 학생들이 인문사회를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과 학생들에게 과학을 충분히 가르쳐야 하는 것이 더 중요해 보인다.

[매일경제 2014년 9월 19일 김성회 과학기술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