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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로서 살아온 30여 년의 세월과 더불어 인생 후반기를 맞아 행복을 추구하는 기술자의 변신 스토리입니다. --------- 기술 자문(건설 소재, 재활용), 강연 및 글(칼럼, 기고문) 요청은 010-6358-0057 또는 tiger_ceo@naver.com으로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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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웅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공과대학에서 선생 노릇을 하고 있지만, 늘 교육을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좀 부끄러운 이야기지요. 대학은 여러모로 특이한 곳입니다. 학교 선생이 되려면 교육에 관해 미리 공부를 좀 해둬야 할 성싶은데, 대학만은 예외입니다. 대학교수가 되는 데 필요한 교직과목 같은 게 있다는 소리도 들어보질 못했습니다. 대학에 자리를 잡으려면 요즘은 그저 연구만 잘하면 됩니다.

신입생들이 대학에 들어오는 이른 봄이나, 4학년(이나 5학년) 학생들이 세상에 나갈 준비를 하는 늦가을엔 그나마 교육에 대해 좀더 생각해보는 편입니다. 교수들에게 봄은 공세지만, 가을은 수세의 계절입니다. 봄엔 이런 식으로 말하지요. “공교육을 어떻게 하기에 애들이 미적분도 제대로 할 줄 모르나요.” 가을엔 기업에 있는 사람들한테서 이런 얘기를 듣습니다. “어떻게 공대 나온 청년들이 현장에서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나요? 대학에서 뭘 가르치는지 당최 모르겠습니다.” 이런 불만들 사이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전 과정이 지금 ‘이곳’을 위한 ‘예비과정’으로서 제 몫을 다하지 못한다는 거지요.

이공계 교육에 관해서만 말하려 합니다. 학부 졸업생들은 대학원에 진학하기도 하고 기업에 가기도 합니다. 또 흔한 사례는 아니지만, 과학 전문 기자가 되기도 하고 미디어 아티스트가 되기도 합니다. 이렇듯 여러 갈래 길이 있는데 학부가 하나의 선택지만을 위한 예비과정이 된다면, 그게 과연 옳은 일이라 할 수 있을는지요? 이른바 연구중심대학에서는 학부생을 예비 대학원생으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연스레 교수들은 자신의 연구분야에 필요한 전공교과목을 학부에 되도록 많이 배치하고 싶어합니다. 대학원생이 곧바로 연구과제에 참여할 수 있기를 교수들이 바라기 때문이지요. 학부과정은 이런 식으로 대학원에 종속됩니다.

공대생을 기업의 엔지니어가 될 사람으로만 여기면, 기업은 현장에 당장 투입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해달라고 대학에 요구하게 됩니다. 그러면 대학은 보통 “예, 알았습니다” 합니다. 하지만 그리 대답하는 대신, 우리 졸업생들을 평생 데리고 있을 거냐고 되물어야 하지 않을까요? 청년들을 엔지니어로 좀 쓰다 내보낼 거면 그렇게 요구해선 안 된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취직을 쉽게 하는 것보다는 원하는 일을 오랫동안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게 더 중요할 테니까요. 아울러 멀리 보면, 기존의 도구를 부려쓰는 데만 익숙한 사람보다, 요긴한 도구를 손수 생각해서 만들어낼 줄 아는 엔지니어가 기업에도 더 보탬이 될 것입니다.

이제껏 대학은 정보와 도구를 차곡차곡 쌓아 학생들 보따리에 넣어주는 일을 해왔습니다. 졸업생들은 그 보따리를 들고 세상으로 나갑니다. 그리고 거기 담긴 내용물을 하나둘 꺼내 씁니다. 보따리는 언젠가 비워지겠지요. 그럼 다른 길을 모색해야 합니다. 이를테면 치킨집을 차린다든가… 이게 바로 그 유명한 치킨집 수렴 공식입니다. 안타까운 공식이지요.

정보와 도구를 제공하는 방식의 교육에서 우린 이제 벗어나야 합니다. 거의 모든 정보가 인터넷에 널려 있는 21세기엔 더 그렇습니다. 중요한 건 지식창출능력입니다. 구슬을 꿰어 보배를 만들듯, 정보를 체계적으로 모으고 가공하고 엮어서 지식을 구성하는 사유의 힘이 곧 지금 세상에 나갈 청년들한테 필요한 소양입니다. 물과 기름처럼 서로 섞이지 못하는 전공교육과 교양교육을 유기적으로 결합해야 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말과 글로 깔끔하게 소통하는 능력도 길러야 합니다. 과학과 수학은 결과만이 아니라 사유방식으로서 탐구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 학생들이 뛰어난 과학기술자로, 또 자유로운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겨레 2014년 11월 14일 윤태웅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