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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로서 살아온 30여 년의 세월과 더불어 인생 후반기를 맞아 행복을 추구하는 기술자의 변신 스토리입니다. --------- 기술 자문(건설 소재, 재활용), 강연 및 글(칼럼, 기고문) 요청은 010-6358-0057 또는 tiger_ceo@naver.com으로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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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기사] 제주 애월 누들로드

2014. 3. 13. 22:50 | Posted by 행복 기술자

사람은 자기 중심적이다. '힐링'이라며 주변에서 내뱉는 수백 마디를 들어도 '됐어'하며 귀를 닫았는데, 친구가 건넨 한마디에 마음의 벽이 스스르 무너졌다. 'Don't try'. 우리말로 '괜히 애쓰지 마' 정도 될까? 현대 미국의 '가장 위대한 아웃사이더 작가' 중 한 명이자 저항의 아이콘이라 불리는 찰스 부코스키의 묘비명이란다. 비슷한 시기 다른 선배에게 똑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힘들면 데쓰노트라도 써. 일기라도 쓰든가. 그래도 제일 좋은 건 바람 좀 쐬고 오는 거더라. 남한테 호소만 하지 말고 네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좀 곰곰이 생각해봐."

최근 연예인들이 이곳에 별장을 사면서 유명해진 제주 애월 지역의 바다. 하마바위, 고양이바위같이 바위마다 이름을 붙여놓은 모습이 흥미로웠다.

화산이 빚어낸 368개의 구릉 ‘오름’

제주도는 그 해답을 찾는 첫 번째 열쇠였다. 남들과 똑같은 길을 가면서 똑같은 걸 보고 즐기는 게 아니라 '나만의' 무언가를 찾길 원했기 때문이다. 우연인 것인지, 제주도에서 만난 사람들은 '나를 찾기 위해' 이주하고, 카페를 열고, 게스트하우스를 열었다고 했다. "겉보기만 좋고 한가로워 보이지 생각보다 녹록지 않아요"라며 말했지만, 도심에서 찾기 어려운 여유가 웃음 뒤에 묻어났다.

각자의 눈에 비친 제주는 말 그대로 '다른 제주'였다. 제주의 한가로움을 사랑하는 이도 있었고, 아토피가 있는 딸을 위해 하루만 고민하고 제주행을 결정했다는 이도 있었고, 바다와 하늘의 경계에 빠져들었다는 사진작가도 있었다. 요즘 제주 여행 트렌드는 '애월읍'에서 '하우스 렌트(집을 빌리는 것)'를 해보며 시간 날 때 마다 한담산책로를 걷는 것이라고 했다. 누군가는 "요즘 올레 대신 애월이래요"라고 양손 엄지를 올리기도 했다. 제주에 왔으면 각종 국수를 맛보며 '누들로드' 한번 완성해야 한다는 이도 있었다.

영화 ‘아바타’의 원시 숲을 닮은 비자림

(위부터) 아부오름에서 보이는 한라산 /
제주 북서 방면의 애월읍 한담해변산책로.
올레길 15코스가 비껴간 제주의 비경 중 하나다.

'오름'을 알아야 제주를 안다는 이도 적지 않았다. 제주 토박이이자 울트라마라토너로 해외에서 더 유명한 안병식씨는 "제주도를 찾는다면 올레길이나 한라산, 서귀포를 이야기하는데 그로 다 설명 못 할 제주가 무궁무진하다"며 "서울 생활도 6개월 해봤지만 제주의 상징인 오름 때문에 제주를 떠날 수 없다"고 말했다. 오름이란 화산이 만들어낸 작은 구릉의 일종으로 제주엔 공식적으로 368개의 오름이 있다고 했다. 대체로 높이가 100m에서 400m안쪽이어서 한두 시간 정도면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제주공항에서 차를 타고 한 시간쯤 달린 뒤 찾게 된 것이 구좌읍의 다랑쉬오름·용눈이오름·아부오름과 표선면의 따라비오름이다. 진짜 경험해보지 않으면 모른다고, 겉에서 볼 땐 '저게 뭐야'라고 볼멘소리를 냈지만 막상 오르니 점점 해안선까지 보이며 시야가 환해졌다. 용눈이오름의 경우 새벽에 오르면 성산 일출봉까지 보인다고 했다. 사그락거리는 억새 소리가 친구처럼 느껴진다. 사진작가들이 왜 그렇게 탐을 내는지 조금씩 알 듯했다. 오름 입구엔 '소똥 주의'라고 쓰여 있는데 봄이 되면 소들을 풀어놓아 기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소들과 함께 오르는 언덕이라니, 이런 모습은 제주 아니면 어디서 찾겠는가.

숲을 찾는 이에겐 다랑쉬오름 근처의 비자림이 제격이다. 이날따라 찬바람에 몸이 휘청거릴 듯했고, 곳곳은 비쩍 마른 나무들로 우울해 보였지만 비자림은 다른 세상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문득 영화 '아바타'의 원시림이 떠올랐다.

사람 때를 덜 탄 애월 한담해변산책길

제주를 다시 찾는다면 '애월',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애월한담해변산책길 때문일 것이다. 최근 연예인들이 이곳에 별장을 사면서 조금 유명해졌는데, 아직 사람때가 덜 탄 덕인지 고즈넉한 한가로움이 있다. 산책로는 1.2㎞로 길지 않아 한 시간이면 충분하다. 하마바위, 고양이바위같이 바위마다 이름을 붙여놓은 모습이 흥미로웠다. 휴대폰에 파도 부서지는 소리를 담았다. 해외 유명 고급 스파에서 휴식용 음악으로 파도 소리를 들려준다는데, 그야말로 자연이 준 선물 아닌가.

 

(조선일보 2014년 3월 13일 제주=최보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