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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로서 살아온 30여 년의 세월과 더불어 인생 후반기를 맞아 행복을 추구하는 기술자의 변신 스토리입니다. --------- 기술 자문(건설 소재, 재활용), 강연 및 글(칼럼, 기고문) 요청은 010-6358-0057 또는 tiger_ceo@naver.com으로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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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직전 돌아본 삶의 기록 『숨결이 바람 될 때』
한치 앞도 못 내다보는 이기심에 경고 『근시사회』
말 그대로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지나갑니다.

독서 인구가 갈수록 준다지만 책은 여전히 세상을 보는 창이고, 우리의 삶을 견주는 틀입니다. 올 한 해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사회·문화 현상은 출판계에 고스란히 영향을 끼쳤습니다. 복고 분위기를 타고 복간본 열풍이 불었고, 강남역 살인 사건 이후 페미니즘 도서가 주목받았습니다.

5월 소설가 한강의 맨부커인터내셔널상 수상으로 한국문학은 모처럼 숨통이 틔었습니다.

시에 대한 젊은 독자들의 관심이 커져 재판을 찍은 시집이 늘기도 했습니다.

하반기 대한민국을 뒤흔든 최순실 국정 농단은 정치·사회 분야 책을 다시 펼치게 했습니다.

2016년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10권의 책을 소개합니다. ‘2016 중앙일보·교보문고 선정 올해의 좋은 책’입니다.
 
에세이
숨결이 바람 될 때
폴 칼라니티 지음
이종인 옮김, 흐름출판
284쪽, 1만4000원

폴 칼라니티(1977~2015)는 죽음을 이해하기 위해 매진한 한 인간이었다. 영문학·의학·철학·역사학을 공부하며 ‘사람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는가’의 답을 찾았다. 촉망받는 신경외과의사로서 꿈꿨던 이상도 “목숨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누구나 결국에는 죽는다), 환자나 가족이 죽음이나 질병을 잘 이해하도록 돕는 것”이었다.

얄궂게도 칼라니티는 자신이 그토록 절실하게 원하던 일을 잘 할 수 있게 된 순간에 불치의 폐암 진단을 받았다.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그는 죽음을 “의사와 환자 모두의 입장에서 보기 시작”했다. 죽어가는 대신 계속 살아가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산다. 수술을 하고, 책을 쓴다. 아내를 사랑하고, 딸이 태어나고, 일상은 평온하다. 그의 최우선 과제는 맑은 정신을 최대한 오래 유지하는 것이었고, 임종까지 2년 여 그 힘든 일을 해냈다. 암 진단을 받은 날로부터 죽음 직전까지, 자신의 삶을 돌아본 이 기록은 제목처럼 앞서 간 자가 뒤에 남은 자에게 들려줄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숨결이자 바람이다. ‘숨결이 바람 될 때(원제 When Breath Becomes Air)’란 책 제목은 영국 시인 그레빌 남작(1554~1628)의 시 ‘카엘리카’에서 따왔다. “죽음 속에서 삶이 무엇인지 찾으려 하는 자는/ 그것이 한때 숨결이었던 바람이란 걸 알게 된다.”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예술
구원의 미술관
강상중 지음
노수경 옮김, 사계절
240쪽, 1만5000원

누구나 물음을 품고 산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나는 어디에 있는가’. 삶의 뿌리에 해당하는 물음들이다. 그런 물음을 푸는 통로는 저마다 다르다. 누구는 철학을 통하고, 누구는 직업을 통하고, 누구는 사랑을 통하고, 누구는 종교를 통한다. 이 책에서 저자가 택한 창구는 ‘미술’이다.

저자는 일본에서 태어난 한국인 2세다. 자신의 정체성을 놓고 고민하다 일본 이름을 버리고 ‘강상중’이라는 본명을 썼다. 재일한국인이란 이유로 사회진출도 어려웠다. 대학원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은사의 권유로 독일 유학을 떠났다. 모든 게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나중에는 한국인 최초의 도쿄대학 정교수도 됐지만, 당시의 그는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라는 물음에 답을 하지 못하는 처지였다.

뜻밖에도 그는 미술관에서 ‘답’을 만났다. 독일 국립미술관에서 뒤러의 ‘자화상’이란 작은 그림을 본 순간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뒤러는 당시 28세. 저와 비슷한 연배였다. 500년 전을 살던 그림 속 남자는 제게 ‘나는 여기에 있어. 당신은 어디에 서 있는가’라고 묻는 듯했다”고 말하는 저자는 “그제야 저는 그때까지의 미망에서 빠져나와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자기 운명에 대한 받아들임과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자각이었다. 그가 알처럼 품고 있는 ‘존재의 물음’에 미술 작품들이 하나씩 답을 한다.

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소설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알랭 드 보통 지음
김한영 옮김, 은행나무
300쪽, 1만3500원

이제는 삼포 세대를 넘어 오포, 아니 칠포 세대란다. 연애·결혼·출산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와 집에 이어 꿈과 희망까지 모두 포기해버린 세대라서 그렇다. 지난달 취업준비자가 65만 명으로 2003년 통계 작성이 시작된 이래 가장 높은 수치를 달성했다는데 대체 언제쯤이면 희망이 생겨나는 걸까.

‘닥터 러브’라는 별명을 가진 저자는 21년 만의 신작 소설을 통해 “결혼한 지 16년이 되었지만 이제 결혼할 준비가 되었다고 느낀다”고 고백한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소가 몇 마리 있으면, 집 한 채가 마련되면, 이런 식으로 어떤 이정표에 도달하면 결혼할 준비가 되었다고 느꼈지만 실상은 완벽함을 포기해야 그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데뷔작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의 후속판을 표방하는 만큼 전작에서 달달하게 사랑을 나눴던 주인공들은 이제 결혼 16년차 부부가 되어 권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등바등한다. 통상 연애소설이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났는지를 보여주는데 전력을 쏟는데 반해 서로를 어떻게 견뎌내는지에 집중한다.

결혼은 정말 미친 짓일까. 이들을 보면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면 최소한의 희망에 부푼 도박임은 분명하다. 원제(‘The Course of Love’)처럼 사랑은 과정이자 학습의 연속이다. 낭만이 재난을 낳기 전에 일단 글로라도 사랑을 배워보자.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경제·경영
인간은 필요 없다
제리 카플란 지음
신동숙 옮김, 한스미디어
296쪽, 1만5000원

혁명적인 변화는 긍정적인 결과를 낳지만 나라들 사이, 사람들 사이의 ‘먹이를 쪼는 순서(pecking order)’가 바뀔 수 있다. 인공지능(AI) 혁명의 본격 개막은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가. 스탠퍼드대 법정보학센터의 펠로(fellow)인 제리 카플란(64) 박사가 『인간은 필요 없다』에서 이 문제를 다룬다.

미국, 특히 실리콘밸리는 안전하다. 저자는 AI를 개방적으로 수용하는 한국 같은 나라는 점점 더 부자 나라가 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하지만 상위 1%의 지배력은 더욱 강화된다. 나머지는 자동화가 악화시키는 실업·불평등에 노출된다.

“실리콘밸리 기업가들에게 성배(聖杯)는 관련 산업 전반의 붕괴다”라고 저자는 말한다. 크게 성공하는 기업과 사람을 위해 크게 망하는 희생자가 나오는 구조다. 장기적으로는 “인간은 전례 없는 여가와 자유를 누리게 된다”고 저자는 전망한다. 앞으로 20~50년 동안의 사회적 혼란이 문제다. 자동화는 블루칼라, 화이트칼라를 가리지 않는다.

“소득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정책에 정부의 노력을 기울일 때가 왔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이를 위해 사회혁명은 불필요하다고 보는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 누구에게 무언가를 빼앗을 필요 없이 앞으로 새로 거둬들일 부를 더욱 공정한 방식으로 나누기만 하면, 불평등 문제는 저절로 해결될 것이다.”

김환영 논설위원 whanyung@joongang.co.kr
 
과학
대단하고 유쾌한
과학 이야기

브뤼스 베나므랑 지음
김성희 옮김, 까치
429면, 2만원

프랑스에서 과학 대중화를 위한 유튜브 채널 ‘생각 좀 해봅시다(e-penser)’를 운영하는 지은이는 과학을 흥미진진한 놀이동산이라고 믿는다. 어려운 전문용어나 복잡한 방정식으로 표현되면서 과학은 ‘어렵다’ ‘비인간적이다’라는 오해를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과학이야기를 과학자들의 개성과 사람 사는 세상의 생생한 사연으로 함께 풀어내는 시도를 한다. 뉴턴이나 아인슈타인 같이 유명한 과학자의 삶을 흥미롭게 소개하면서 빛·물질·전자기학·우주·역학·상대성이론 등 과학 소재를 쉽게 풀어낸다.

근대과학의 개척자들은 철학자나 예술가를 겸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과학자의 원형이 르네상스형 지성인임을 보여준다. 예로 영국의 프랜시스 베이컨은 ‘경험론’과 ‘귀납법’으로 이름 높은 철학자이지만 과학과 기술의 진보에 맞는 새로운 인식론을 제창해 ‘근대과학의 아버지’로 평가받는다.

독일 출신의 영국 작곡가인 윌리엄 허셜은 천문학자로도 맹활약해 1781년 천왕성을 발견했다. 토성의 위성인 미마스도 1789년 찾아냈다. 미마스는 영화 ‘스타워즈’에 나오는 전투용 위성 데스스타와 놀라울 정도로 닮았다. 18세기 천문학적 업적이 20세기 창의적인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영감을 불어 넣어준 셈이다. 자연과학과 인문학, 그리고 문화예술은 인간지성과 이성이라는 부모 아래 태어난 일란성 쌍둥이들이다.

채인택 논설위원
 
소설
안녕 주정뱅이
권여선 지음
창비
276쪽, 1만2000원

올 5월 소설가 권여선(51)의 『안녕 주정뱅이』 출간은 문단의 화제였다. 소문난 애주가인 저자가, 음주 장면 생생한 단편 7편을 묶은 소설집이어서다. SNS 상에서 작가의 음주 근황이 실시간 공유되는가 하면 ‘주류(酒類)문학’이라는 유사 장르 구분까지 생겨났다. 소설집은 지금까지 1만2000부 팔려, 실제 구매로 이어진 관심임을 입증했다.

표제작이 없는 소설집에서, 첫 머리에 놓인 단편 ‘봄밤’은 시인 김수영(1921∼68)의 동명 시에 기대 알코올 의존증이라는 지금까지 한국소설이 제대로 조명한 적이 없는 영역을 본격적으로 탐구한다. 쉰다섯의 전직 교사 영경을 주인공으로 해서다. 영경은 ‘술에서 깨어 무거운 몸이여’ ‘절제여/ 나의 귀여운 아들이여’ 같은 ‘봄밤’의 시구절이 딱 들어맞는 여인이다. 그가 느끼는 모든 신체적, 감정적 반응이 거짓이라는, 그러니까 알코올 중독 부작용으로 인한 헛것이라는 의사 진단을 받는다. 동갑내기 남편 수환의 처지도 못지 않게 심각해서 류머티즘 관절염 악화로 사실상 시한부 상태다. 소설은 두 사람의 마지막 순간을 실감나게 전한다. 소설적 임상보고로 손색 없다고 느껴질 정도다. 하지만 영경과 수환의 입장에서 보면 비정상은 정상인들이다. 착하디 착한 두 사람은 상식과 합리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사랑과 정을 나눈다. 소설집 전체가 그런 사람들 얘기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허수경 지음
문학과지성사
165쪽, 8000원

외국에 나가 살면 안다. 맘껏 한국말을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귀하다는 것을. 아무리 외국어가 유창해도 미묘한 뉘앙스와 속내까지 담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한국 사람 만나 실컷 수다 떠는 게 스트레스 해소엔 으뜸이라고 한다. 보통 사람도 이런데 시인은 오죽하랴. 허수경(52) 시인은 1992년 한국을 떠나 25년째 독일서 살고 있다. 내년이면 등단 30년을 맞는 시인은 “하루에도 몇 번씩 모어(母語)와 이별하고 재회한다”고 했다.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이후 5년 만에 낸 시집은 이렇듯 독일어로 살면서 모국어로 사유하는 긴장과 충돌이 스며있다. “얼마나 오래/이 안을 걸어 다녀야/나는 없어지고/시인은 탄생하는가”(‘눈’중)

그가 주목하는 건 의외다. 딸기·레몬·포도 등 우리 식탁에 오르는 평범한 과일이다. 하지만 시선은 겉만 스치지 않고, 그것들이 영그는데 투여된 오래된 시간을 응시한다. “아직도 둥근 것을 보면 아파요/ 둥근 적이 없었던 청춘이 문득 돌아오다 길 잃은 것처럼”(‘수박’ 중)이라며 청춘의 방황을 묘사하다간 돌연 “너덜너덜 목 없는 빨래처럼 말라갔습니다” (‘포도나무를 태우며’ 중)라며 죽음의 헛헛함과 직면한다.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기억을 어떻게 보듬는가 하는 것이 삶의 질을 정해준다.” 수록된 62편의 시를 관통하는 건 시간의 유한성에 대한 새삼스런 자각이다.

최민우 기자 minwoo@joongang.co.kr
 
사회
근시사회
폴 로버츠 지음
김선영 옮김, 민음사
392쪽, 1만8000원

공동체나 미래세대의 공익은 나 몰라라 하고 당장 눈앞에 있는 사익만 게걸스럽게 추구하는 사람이 넘치는 시대다. 지은이는 이처럼 충동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 판을 치는 현대를 ‘근시사회’라고 규정한다.

지은이는 상당수 정치인은 지속가능한 사회 발전을 고민하기보다 당장의 찬사와 인기, 득표와 권력에만 눈이 어둡다고 지적한다. 기업도 별반 다르지 않다. 딜로이트 조사에 따르면 1981년 불황 때 미국 기업은 이익감소분의 절반 정도만 인력감축으로 메웠지만 이 수치는 90년에는 4분의 3으로, 2001년과 2007년에는 98%로 각각 늘었다. 경기침체가 올 때마다 기업과 투자자들은 고통을 노동자에게 전가했다는 지적이다.

결정적인 문제는 개인이 소비하는 상품에 대한 투자만 증가할 뿐 모두를 위한 공공 투자는 갈수록 준다는 점이다. 메르스 같은 전염병을 막을 예방의학 시스템, 미래를 개척할 과학연구, 기회균등의 사회를 위한 교육확충, 지속가능한 지구를 만들 대체에너지 개발, 지역 공동체를 위한 도로와 다리 건설은 우선투자 대상에서 밀리고 있다. 지은이는 이를 해결하려면 ‘나 안의 이기주의’부터 다스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치인을 올바르게 뽑고, 기업을 감시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으면 해결은 더욱 멀어질 뿐이라는 지적이 울림을 준다.

채인택 논설위원 ciimccp@joongang.co.kr
 
사회
우리 아이들
로버트 D. 퍼트넘 지음
정태식 옮김, 페이퍼로드
488쪽, 2만2000원

개천에서 용이 안 난다는 건 더이상 새롭지 않다. 열심히 공부하면 부자가 되고 사회적 지위도 올라간다는 믿음은 허물어졌다.

그걸 알지만 다음과 같은 사실은 새삼 섬뜩하다. 저자는 2013년 나온 미국의 한 조사를 인용한다. 대졸 부모를 둔 아이들은 고졸 부모의 아이들보다 잠들기 전 부모와 보내는 시간이 1.5배 많았다. 부모 학력이 높을수록 친밀한 시간을 많이 갖는다. 충격적인 것은 1970년대 초엔 이 차이가 없었다는 거다. 최근의 문제는 많이 배운 부모가 더 좋은 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부유한 부모가 더 많은 재산을 물려주는 수준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제는 아이의 정서 발달도 부모의 교육 수준이 좌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저자는 부모와의 친밀한 시간이 두뇌 발달에 영향을 미치고 학업 성취도, 졸업 후 직업·수입까지 이어지는 과정을 그려낸다. 아이들이 부모의 한계 안에 갇히게 되는 것을 보여주는 거대한 세밀화다. 저자는 미국의 여러 지역 사례를 수집해 작은 사실에서 커다란 진실을 캐낸다. 계급간 장벽의 단단함이 극단까지 갔다는 진단이다.

현실진단은 절망적이지만 대안은 구체적이고 낙관적이다. “약간의 현금을 가난한 가정에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의 학교 성적은 오른다”는 주장을 통계와 함께 보여주는 식이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사회
나쁜 페미니스트
록산 게이 지음
노지양 옮김, 사이행성
376쪽, 1만5800원

‘나쁜’ 페미니스트를 자처한 여성이 쓴 페미니즘 책이다. 남성이 기준이 된 사회, 여성 혐오 문화와 언론의 부주의한 성범죄 보도, 성폭력 사건이 아무렇게나 재현되는 대중문화 등을 통렬하게 비판한다. 1974년생 흑인 여성인 저자는 아이티계 미국인으로 퍼듀 대학 교수이자 문화 비평가다. 수식어 ‘나쁜’은 “페미니즘을 지지하면 매사에 일관적이고 논리정연한 사람으로만 살아야 할까봐 거부했던” 저자의 지난 경험에서 나온 단어다. 그냥 “작고도 불완전한” 페미니스트로서 목소리를 내겠다는 선언이다.

저자가 해석하는 페미니즘은 단순하다. “여성과 남성의 동등한 권리를 믿는 것”이 전부다. 그는 “다이아몬드와 화려한 결혼식을 좋아하고, 일만 하다가 남편과 아이 없이 혼자 늙어 죽을까봐 두려워하는 ” 평범한 여성이지만, 여성에게 지속적인 불이익을 가져오는 제도적 불평등을 깨기 위해서는 격렬하게 싸울 준비가 돼있는 페미니스트다. 그의 유연한 태도는 ‘페미니스트’에 덧씌워진 “전투적이고 정치적이며 인간으로서 완벽하고 남자를 증오하는 사람들”이란 부정적 신화를 깨는데 한 몫 한다.

책은 미국에서 2014년 출간돼 그 해 아마존 올해의 책,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예민한 주제를 정면으로 다뤘는데도 적절한 유머 덕에 흥미진진하게 읽힌다.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어떻게 선정했나
‘2016 올해의 좋은 책 10’ 선정에는 중앙일보 출판·문학팀과 교보문고 북마스터·구매담당자 60명이 참여했다. 먼저 교보문고 측에서 2016년 출간된 도서 중 판매 부수와 독자 반응, 전문가 리뷰 등을 고려해 최종 후보 50권을 골라냈고, 중앙일보와 토론을 거쳐 10권을 선정했다. 사회적 영향력과 콘텐트 완성도를 주요 선정 기준으로 삼았다.
중앙일보 출판·문학팀

[출처: 중앙일보 2016년 12월 24일] [책 속으로] 중앙일보·교보문고 선정 ‘2016 올해의 좋은 책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