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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로서 살아온 30여 년의 세월과 더불어 인생 후반기를 맞아 행복을 추구하는 기술자의 변신 스토리입니다. --------- 기술 자문(건설 소재, 재활용), 강연 및 글(칼럼, 기고문) 요청은 010-6358-0057 또는 tiger_ceo@naver.com으로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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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복의 직격 인터뷰] 지그메 틴레이 전 부탄 총리 

 

틴레이 전 총리는 “GNH 개념의 도입으로 부탄 사람들이 더 행복해졌다고 확신하나”란 질문에 “더 행복해졌다고 단언하진 못하겠지만 GDP만 보고 가는 길을 택했다면 덜 행복할 거라는 점은 확실하다”고 대답했다. [김경빈 기자]


히말라야 고산지대의 조그마한 산악국가 부탄. 부탄은 국내총생산(GDP) 위주의 경제 발전을 지양하고 국민총행복(GNH)을 사회 발전 지표로 채택한 나라다. 그 덕분인지 1인당 GDP 2000달러에 불과한 부탄은 2010년 영국 신경제재단(NEF)이 발표한 국가별 행복지수 조사에서 1위에 올랐다. 부탄을 ‘행복 국가’ 반열에 올려놓은 정치 지도자로 존경받는 지그메 틴레이(62) 전 총리를 지난 15일 매경 세계지식포럼이 열린 서울 신라호텔에서 만났다.

- 한국에 대한 인상이 궁금하다.

 “1985년 이후 이번이 다섯 번째 방한이다. 늘 놀라고 감탄하는 것은 한국인의 에너지와 활력, 강인함이다. 식민 지배와 전쟁의 참화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속도로 발전을 이룩한 원동력이 거기에 있다고 본다.”

 - 한국은 세계에서 노동시간이 가장 긴 나라 중 하나다. 하드워크(hard work)와 행복의 관계를 어떻게 보나.

 “더 많이 일하면 생산량은 늘어난다. 그러나 인간은 일뿐 아니라 휴식과 사회활동, 타인과의 관계도 필요하다. 하드워크를 통해 경제적으로는 보상받겠지만 정신적·감정적·심리적으로는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 한국의 자살률은 세계 최고인 반면 출산율은 세계 최저 수준이다.

 “경제적 성공의 슬픈 결과며 물질적 성공의 대가라고 생각한다. 경제 성장과 물질주의를 지나치게 중시하는 시스템을 운영해 온 증거라고 할 수도 하다. 물론 한국의 경우 이해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경제 성장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제는 정신적 발전을 생각할 때가 됐다.”

 - 정신적 발전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가.

 “부(富)와 행복이 꼭 함께 가는 것은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많은 사례가 있다. 부탄의 행복지수는 최고 수준은 아니더라도 비교적 높은 편에 든다. 개발의 초기 단계에서는 사람들이 큰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물질적 가치보다 정신적 가치에 무게를 두고, 종교에서 위안을 얻기도 한다. 또 가난할 때는 상호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높다. 한국도 가난했을 때는 도시보다 농촌에 사는 사람이 많았다. 농촌에서는 혼자 힘으로 살 수가 없다. 이웃의 도움이 필요하다. 나는 남을 돕고, 남은 나를 도와준다. 이런 상호의존이 사람들 간에 긴밀한 관계를 만든다. 또 시골에서는 늘 가족이 함께한다. 가족 구성원 간의 관계가 매우 끈끈하고 강하다. 인간 사이의 심리적·정신적 유대를 회복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 행복을 어떻게 정의하는가.

 “행복은 개인이 신체와 정신의 욕구, 물질과 심리적 필요의 균형을 이룸으로써 삶을 즐길 수 있는 상태다. 또 행복은 일시적이고 순간적인 게 아니라 지속적인 상태인지, 아닌지가 중요하다. 알코올이나 마약 같은 자극제에 의해 일시적으로 얻는 쾌감이나 만족감은 행복이 아니다. ”

 - 경제적 기반 없이도 행복할 수 있다고 보나.

 “물론 아니다. 행복을 위해서는 웰빙이 필요하고, 웰빙을 위한 여러 조건 중 하나가 경제적 웰빙이다. 하지만 행복은 경제적·물질적 욕구에 대한 자기조절 능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끝없이 욕심을 부리면 결코 행복할 수 없다. 값비싼 최신형 고급 차를 갖는 것보다 안정적인 가정과 친구를 갖고 쉴 수 있는 시간을 갖는 데서 더 큰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 행복은 매우 주관적인 개념이다. 같은 조건에서도 누구는 행복하게 느끼지만 누구는 그렇지 않다. 행복한 정도를 어떻게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가.

 “맞는 말이다. 행복은 주관적 감정이다. 행복에 대한 생각도 사람마다 다르다. 덜 갖고도 행복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더 갖고도 불행한 사람이 있다. 개인이나 국가 차원의 행복 수준을 측정하는 완전히 객관적인 방법은 있을 수 없다. 결국은 개인에게 물어보는 면접조사 방식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묻는 방식이 중요하다. 그냥 ‘지금 행복한가’라고 물어서는 안 된다. 교통 체증 때문에 두 시간 동안 발이 묶여 있다 막 호텔에 도착한 사람에게 행복하냐고 묻는 것은 난센스다. ‘당신의 인생 전체를 돌아봤을 때 행복하다고 느끼는가’라는 식으로 물어야 한다. 그러면 자기 인생을 돌아보며 스스로 평가할 것이다. 물질적 상태부터 타인과의 관계, 인생 역정 등 모든 것을 돌아보는 의식적 과정을 거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대답은 여전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런 과정을 거쳐 수집한 자료를 객관적으로 활용할 수는 있다. 주관적 정보의 객관적 분석을 통해 유의미한 결과를 얻는 것이다. 부탄은 행복에 대한 주관적 조사도 하지만 건강이나 교육 등 물질적 조건과 관련한 객관적 조사도 병행하고 있다.”

 - 물질만능주의의 부작용을 생각할 때 GNH가 GDP의 매력적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너무 이상적인 것 아닌가. 순진한 발상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비판은 물질주의 문화가 고도로 발전한 사회에서조차 이젠 소수 의견이 됐다고 본다. 자본주의에서 성공한 기업인과 지도자들이 모이는 아시아 최대 지식 콘퍼런스인 매경 지식포럼 참가자들 사이에서도 행복과 웰빙, 대안적 경제 패러다임을 말하는 사람이 많았다. GDP 주도의 경제 모델에 대한 대안으로 공유 경제, 제로비용 경제 등에 대해서도 많은 얘기가 나왔다. 점점 더 빈번해지는 경제·생태·금융·보건·안전 등과 관련한 온갖 종류의 재난과 위기를 보면서 사람들은 자본주의적·시장주의적·물질주의적 경제 시스템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고, 인간의 웰빙을 나타내는 광범위한 지표들로 측정되는 새로운 경제 모델의 필요성에 눈뜨기 시작했다. GNH는 더 이상 나이브한 아이디어도, 유토피아적 발상도 아니다. 우리는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기술적 발전이 현실에서 이뤄지는 세상에 살고 있다. 상상력의 한계를 뛰어넘는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GNH를 대안적이고, 이상적으로만 생각할 게 아니라 실제로 실현 가능한 아이디어라고 믿는 방향으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 GDP가 여러 문제점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GDP와 결별하자고 하는 것은 ‘돈이 문제가 많으니 더 이상 돈을 찍지 말자’는 얘기와 같은 것 아닌가.

 “그렇지 않다. GDP 맹신주의의 문제를 말하는 것이다. 부탄도 GDP와 1인당 GDP 통계를 내고 있다. 행복의 물질적 측면을 측정하는 데 필요하기 때문이다. 재화와 용역의 생산과 시장의 기능, 국가 차원의 웰빙 상태를 측정하는 좋은 지표가 GDP다. GNH를 위해서도 GDP는 필요하다.”

 - 부탄은 4개 기둥과 9개 분야, 72개 지표로 구성된 정교한 GNH 측정 메커니즘을 구축했다. GNH를 측정하는 국제적으로 합의된 틀이 있나.

 “국제적 논의가 진행 중이다. 부탄의 전문가나 지식인뿐 아니라 전 세계 학자와 전문가들이 참여하고 있다. 관련 국제회의나 논의가 정기적으로 진행되면서 관련 지표도 점점 정교하고 세련되게 다듬어지고 있다. 72개였던 지표가 지금은 33개로 줄었다. 그게 다시 몇 개가 될지 모르지만 아무튼 계속 진화 중이다. 국제적 수용성도 높아지고 있다. 유엔도 사회 발전의 목표로 행복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행복에 관한 결의안도 채택했다. 매년 3월 20일을 ‘국제 행복의 날’로 정한 것도 유엔이다. 올해가 두 번째였다. 유엔이 추구하는 지속 가능한 발전의 목표 구현을 위한 논의에도 GNH 패러다임이 도입됐고, 그 논의 결과가 내년 말까지 나오기로 돼 있다.”

 - 좋은 거버넌스(국정)는 GNH를 구성하는 4개 기둥 중 하나로 돼 있다. 거버넌스의 평가 기준은 뭔가.

 “민주주의가 최선의 국가 운영체제라는 점을 인정하고, 부탄 국왕 스스로 절대왕정을 포기하고 입헌군주제를 채택했다. 좋은 국정인지 아닌지 따지는 기준을 순서와 상관없이 말하자면 우선 언론이 얼마나 자유롭고 독립적인가 하는 점이다. 정부의 투명성과 선거 시스템과 절차의 공정성과 투명성도 중요하다. 권력 분립의 원칙이 얼마나 잘 지켜지고 있는지도 봐야 한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다. 우리가 행복도 조사를 할 때마다 빠뜨리지 않는 질문이 ‘당신은 정부를 믿습니까’이다. 좋은 국정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정부에 대한 신뢰다.”

 - GNH는 고립된 지역에 위치한 인구 75만 명의 불교국가 부탄의 특수성을 반영한 지표란 생각이 든다. 이를 일반화해 다른 나라에도 적용하는 것은 비현실적 아닌가.

 “부탄은 한 번도 GNH가 가장 좋은 시스템이라고 선전한 적이 없다. 72년부터 GNH 개념을 도입했지만 떠들지 않고 조용히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매우 진지했다. 국민의 행복은 국가의 가장 중요한 책임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98년 유엔이 먼저 우리에게 GNH를 소개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래서 그해 10월 내가 처음으로 GNH에 대해 국제사회에 설명했다. 우리가 나서서 먼저 전파한 게 아니라 국제사회의 요청에 따라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함께 토론하고 있는 것뿐이다.”

 - 2009년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글로벌 금융위기의 주범으로 인간의 끝없는 탐욕을 지적했다. 하지만 자기 이익과 욕심은 인간의 본성이고, 경제적·사회적 발전의 동인이기도 하다.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많이 소비하고 싶은 것이 반드시 인간의 본성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자원이 한정돼 있는 세상에서 끝없는 성장을 추구하는 경제 시스템에 의해 길들여진 행동일 뿐이다. 그 시스템의 영향을 받아 필요 이상으로 더 많이 갖고자 하는 욕망과 탐욕에 개인이 휘둘리고 있는 것이다. 욕심이 인간의 본성 중 하나인 건 맞지만 인간의 본성에는 그것만 있는 게 아니다. 경제 시스템이 인간의 욕심을 자극하는 쪽으로 치우치다 보니 다른 중요한 본성들이 균형 있게 발현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 GNH 개념의 도입으로 부탄 사람들이 더 행복해졌다고 확신하나.

 “더 행복해졌다고 단언하진 못하겠지만 만일 우리가 GDP만 보고 가는 길을 택했다면 덜 행복할 거라는 점은 확실하다.”

 - 마지막 질문이다. 귀하는 행복한가.

 “매우 행복하다. 나는 항상 모든 걸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일이 잘못되더라도 앞으로는 더 잘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또 행복한 가족을 갖고 있다.”

틴레이 전 총리는 …

1952년 부탄 중부 붐탕 출생. 76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졸업과 동시에 공직 입문. 92년 주유엔대사. 98년 외교장관. 2003년 내무장관. 98~99년, 2003~2004 임명직 총리. 2008~2013년 첫 민선 총리. 현재 부탄 GNH센터 회장.

[인터뷰 후기] 정치인보다 종교인 느낌

부탄 전통복장 차림인 그는 정치인보다 종교인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미국 유학 시절 익힌 영어가 지금도 유창하다.

 개인적으로 가장 궁금한 것부터 물었다. “담배를 피우는 외국인도 입국할 수 있습니까.” 세계 최초·유일의 완전 금연국가가 부탄이라고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이다. 부탄에서 흡연 자체는 불법이 아니다. 담배 판매와 거래가 법으로 금지돼 있을 뿐이다. 외국인의 경우 두 보루(400개비)까지 무관세로 갖고 들어와 허용된 장소에서 피울 수 있다.”

 부탄은 외국인 관광객 수를 제한하는 나라로도 유명하다. 어떤 방식으로 제한하는지 궁금했다.

 “부탄을 방문하려면 1인당 하루 250달러를 여행사를 통해 미리 내야 한다. 하지만 이 돈만 내면 호텔비에서 교통비, 가이드비, 입장료까지 모든 게 다 해결된다. 일종의 패키지 관광요금인 셈이다. 이 요금 수준을 통해 입국자 수를 조절하고 있다.”

 전에는 하루 200달러였지만 입국자 수가 늘어 얼마 전 250달러로 인상했다. 현재 연간 10만 명 정도인 입국자 수가 더 늘면 300달러로 추가 인상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부탄은 문화적·생태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범위 내로 입국자 수를 제한함으로써 환경에 대한 영향을 최소화하는 ‘고가치 저영향(high value, low impact)’ 관광을 추구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중앙일보 2014년 10월 22일 글=배명복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