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돌이 깔려 있는 봉암해수욕장은 추봉도의 유명한 볼거리다. 거친 파도가 밀려오면서 생겨난 해안 퇴적물로 인해 동그랗고 맨들맨들한 각양각색의 몽돌이 태어났다. 이 몽돌은 ‘모오리돌’이라고도 불린다. 이재언 제공
행정구역상 경남 통영시 한산면에 속하는 추봉도는 한산도와 바로 이웃해 있는 섬이다. 두 섬은 수백년 동안 독립된 별개의 섬이었으나, 2007년 7월 두 섬을 잇는 추봉대교가 개통됨으로써 이제는 마치 ‘하나의 섬’처럼 여겨지고 있다. 한때 봉암도(蜂岩島) 혹은 추암도(秋岩島)라고도 불렸는데, 일제 강점기인 1914년 이 섬의 전래 마을인 추원동과 봉암동을 합치면서 두 지명의 머리글자를 따서 현재의 이름이 됐다.
추봉도 전경. 추암도 혹은 봉암도로도 불리다가 섬의 전래마을인 추원동과 봉암동의 두 머리글자를 따 추봉도란 이름이 붙었다. 이재언 제공
잘 알려진 한산도와 다리로 연결된 이후 추봉도의 교통편은 아주 편리해졌다. 다리를 건너면 오른쪽이 봉암마을 가는 길이고, 왼쪽은 예곡마을 가는 길이다. 봉암마을에는 여름휴가철 피서객들이 찾는, 몽돌로 유명한 봉암해수욕장이 있다. 봉암마을은 크게 입을 벌리고 있는 범의 형상을 닮았는데 추봉도의 꼬리 부분에 해당하는 곳이다. 봉암해수욕장 인근 해변에는 아름드리 해송이 우거진 솔숲공원도 있다. 이곳의 솔숲은 독메라고도 불리는데, 홀로 떨어져 있다 하여 이름붙었다고 한다. 독메는 아름다운 솔숲이지만, 한때 섬사람들이 기피하는 무덤이기도 했다. 조선 말기 을유·병술 대기근(1885~1886년) 때 굶주림과 괴질로 수많은 주민들이 목숨을 잃었다. 주검들을 거적에 말아 솔숲에 버렸기 때문에 사람들이 발걸음을 피한 것이다.
대마도 정벌 전초기지 역할도
예곡마을 풍경. 한산도에서 추봉대교를 건너오면 다리 왼쪽에 마을이 형성돼 있다. 이재언 제공
몽돌이 깔려 있는 봉암해수욕장은 추봉도의 또다른 볼거리다. 수천, 수만년 동안 거친 파도가 밀려오면서 생겨난 해안 퇴적물로 인해 동그랗고 맨들맨들한 각양각색의 몽돌이 태어났다. 이 몽돌은 ‘모오리돌’이라고도 불린다. 몽돌을 밟고 지나갈 때 나는 ‘사그락~ 사그락~’ 소리와, 파도에 몽돌이 밀려 내는 ‘사르르~ 사르르~’ 소리는 자연이 들려주는 음악이다. 해변을 따라 300미터 남짓한 산책로가 단정하게 가꿔져 있다. 반대편 추봉대교 왼쪽으로는 깊은 만이 하나 형성돼 있다. 만의 기슭을 따라 완만한 대봉산 자락 아래 위치한 마을이 추원마을이다. 산 아래 평지와 산 중턱에는 밭이 많지만, 고령화로 인한 일손 부족 탓에 휴경지가 늘어 잡초가 무성한 편이다. 예곡마을과 추원마을 사이 약 600미터 구간엔 후박나무와 동백나무, 모밀잣밤나무, 팔손이나무 등 다양한 난대림 수종이 자생하고 있다.
추봉도는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는 섬이지만, 역사가 깃든 섬이기도 하다. 추원마을은 예부터 수군들의 요충지였다. 1419년 세종 때 왜구의 소굴인 대마도 정벌을 위해 이종무 장군이 출병했는데, 최종 출전지가 바로 이곳이다. 당시 조정은 이종무 장군에게 227척의 전함과 1만7285명의 군사를 내주고 주원방포(추원) 앞바다에 집결시켰다. 이곳에서 출병식을 하고 대마도 정벌에 나선 것이다.
몽돌 해변과 울창한 난대림이 볼거리
추봉대교 개통돼 한산도와 ‘한 몸’
유엔군이 포로수용소 설치·운영해
‘요주의’ 공산포로 1만명 수용하기도
한국전쟁의 아픔도 새겨졌다. 예곡마을 회관 옆 텃밭엔 포로수용소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6·25 전쟁 당시 전쟁 포로들을 가뒀던 포로수용소의 흔적이 지금도 예곡마을에 어렴풋이 남아 있다. 양철 판으로 된 낡은 안내판은 페인트칠이 다 벗겨진 상태다. 1952년부터 1954년 말까지 이곳엔 유엔군이 설치해 운영했던 포로수용소가 자리잡고 있었다. 한때 공산군 포로 1만명을 수용했다고 한다. 전쟁 기간 중이었음에도 주민들이 한가로이 보리타작을 하고 있던 1952년 5월, 느닷없이 거대한 함정이 섬에 들이닥치며 수많은 불도저를 내려놓았다. 군인들은 주민들을 내쫓고 집들을 밀어버렸다. 얼마 뒤 그곳엔 포로수용소가 들어섰다. 하루아침에 옛 터전에서 내몰린 주민들은 초등학교 운동장에 천막을 치고 피난민 아닌 피난 생활을 이어가야 했다. 휴전협정이 체결되고도 한참 뒤인 1955년 포로수용소가 폐쇄되고서야 주민들은 다시 옛 마을로 돌아갈 수 있었다.
청명한 날엔 대마도 볼 수 있어
한산도와 추봉도를 잇는 추봉대교. 추봉대교 개통으로 두 섬은 마치 ‘한 몸’처럼 됐다. 이재언 제공
추봉도에 포로수용소가 세워진 건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일어난 반란 사건과 연관이 있다. 거제도 360만평에 들어선 포로수용소엔 모두 17만명의 포로가 수용돼 있었는데, 유엔군 측의 처사에 불만을 품은 포로들이 반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수용소장이 포로들에게 감금됐다가 풀려나기까지 했다. 이후 거제도의 포로들 가운데 집중 관리가 필요한 ‘요주의 인물’들을 추려내 별도로 수용한 곳이 바로 추봉도다. 추봉도에 수용된 포로들 가운데는 이 섬 출신들도 있었다고 한다. 태어난 마을에서 포로 생활을 해야 했던 운명이란 동족상잔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예곡마을 출신 포로의 행방은 그 후 알려지지 않았으나, 추원마을 출신 포로는 석방된 뒤 고향에서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한국전쟁 당시 포로수용소 흔적. 1952년부터 1954년말까지 유엔군이 추봉도에 설치해 운영했다. 이재언 제공
예곡마을 능선에 자리잡은 추봉초등학교에서 곡룡포마을 방향 고갯길로 200미터쯤 가다 보면 왼쪽으로 망산 봉수대 들머리 안내판이 서 있다. 약 20분 숲길을 따라 오르면 망산 정상(256m)에 이른다. 망산으로 오르는 길에는 두릅나무와 이름 모를 야생초가 지천으로 널려 있다. 정상에 서면 섬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동쪽으론 거제도가 병풍처럼 막아서 있고, 남쪽 아래 추봉도의 곡선 해안인 곡룡포마을과 장사도, 가왕도, 매물도뿐 아니라, 멀리 홍도와 국도가 보인다. 날씨가 청명한 날엔 대마도가 희미하게 보일 정도다.
추봉도는 관광지로 이름난 한산도와 덩치 큰 거제도 사이에 끼여 그동안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는 처지였다. 하지만 추봉대교가 개통된 이후 섬엔 부쩍 생기가 돌고 있다. 때 묻지 않은 자연과 현대사의 상처가 아로새겨진 섬, 추봉도의 앞날은 밝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