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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로서 살아온 30여 년의 세월과 더불어 인생 후반기를 맞아 행복을 추구하는 기술자의 변신 스토리입니다. --------- 기술 자문(건설 소재, 재활용), 강연 및 글(칼럼, 기고문) 요청은 010-6358-0057 또는 tiger_ceo@naver.com으로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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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평구 불광동에서 북한산 둘레길로 접어드는 곳에 있는 집 ‘구름정원 사람들’은 은퇴를 함께 준비하는 8가구가 모여 지은 공유주택이다.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매거진 esc] 라이프
은평구 불광동 실버형 공유주택 ‘구름정원’…사회적 가족공동체를 꿈꾸며 조합 만들어 짓기

나이 들면 누구와 살까
1회 실버형 공유주택 ‘구름정원 사람들’

1인가구 400만 시대, 한국 사회는 혈연이 아니더라도 누구와 공간과 시간을 함께 나누며 살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스웨덴 페르드크네펜 주택, 핀란드 로푸키리 주택 등 외국에서는 이미 청년들뿐 아니라 시니어 세대들까지도 남과 사는 문제를 두고 공동주거 실험을 시작한 지 오래됐다. 책 <마흔 이후, 누구와 살 것인가>에서는 공유주택, 협동주택, 함께 살기 등 늘어나는 1인가구만큼이나 다양한 대안이 존재한다고 조언한다. 민간과 개인 차원에서 시도되고 있는 함께 살기를 위한 여러 건축적 시도를 3회에 걸쳐 소개한다.

서울 은평구 장미공원에서 출발해 진관생태다리까지 이어지는 북한산 둘레길 8코스를 구름정원길이라고 부른다. 지난 10월25일 구름정원길 중에서도 불광사 산길과 마을이 맞닿는 곳에 ‘구름정원사람들’(구름정원)이라는 이름의 지하 1층, 지상 4층짜리 집이 섰다. 둘레길에서 따온 이름처럼 집의 모양은 구름처럼 밝고 가볍지만 의미는 바위처럼 묵직한 집이다. 이 집은 주택협동조합 하우징쿱이 건축 과정을 주도하고 조합원 8가구가 모여 함께 지은 주택이다. 58살부터 43살까지, 평균 연령 52살인 구름정원 건축주들은 나이듦을 고민하며 함께 은퇴를 대비하자는 뜻으로 실버형 공유주택을 지었다.

집은 1인가구와 대가족 등 가족 수와 삶의 모양을 고려해 집집마다 다르게 지어졌다.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나이 들면 어떤 모양새로 살게 될까? 혼자서는 쉽게 그려지지 않는다. 경제활동 가능 연령이 막바지에 이르러도 노후 비용을 확보한 가구는 많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한국인은 주거 비용을 줄여서 노후를 감당해야 한다. 구름정원 사람들은 공동거주와 공동소유 주택에서 해법을 찾았다.

구름정원은 겉으로는 외부 장식 하나 없는 단순하고 소박한 모양새지만 안으로는 이들이 각기 살아오고 함께 살아갈 날들을 말하듯 복잡하고 입체적인 구조다. 살림집은 2층부터 시작된다. 출판사 대표인 남편과 작가인 아내가 사는 203호는 복층 구조다. 살림집은 2층에, 아내의 작업실은 3층에 있다. 그 옆집 201호는 주방과 서재를 나란히 두고 서재 문을 투명한 미닫이문으로 달아 주방에서도 바깥 소나무숲이 한눈에 내다보이도록 한 것이 두드러져 보였다.

같은 층 남기창 청암교회 목사의 집은 다리가 불편한 남 목사를 위해 단층 구조다. 초등학교 교사인 부인과 세 아이가 모이는 넓은 거실이 시끌벅적할 때도 집 한켠에 마련된 작은 기도실은 조용하다. 부부는 현관문 옆에 침실과 기도실을 마련해 아이들이 들락날락하는 걸 지켜보며 자연스럽게 가족들이 말을 섞기를 원했다. 집을 안내하던 남 목사는 “좁은 집에서 기도실 같은 공간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커뮤니티하우스라서 가능하지 않았을까”라고 덧붙였다. 구름정원은 3층과 1층에 공동보일러실을 두고 공동세탁실로도 쓴다. 층마다 이웃과 교류하는 공동마루가 있지만, 4층엔 손님맞이나 공동행사를 열 수 있는 넓은 커뮤니티룸을 따로 마련했다.

401호 조합 이사장은 현장 작업반장
202호는 관공서 오가는 대외협력부장
303호는 함께 키울 텃밭 준비
조합원마다 일 분담하며
함께 집짓고 살림 꾸려가

입주민들 모임과 행사를 위해 만들어진 4층 공유공간은 책장과 주방으로 꾸며졌다.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공동주택이면서 안은 단독주택처럼 여러 가구가 다락방을 두고 사는 것도 특이하다. 고등학교 국어교사인 김성숙씨는 집 곳곳에 향기로운 편백나무로 원목가구를 짜넣으면서 어린 조카들이 놀러 와서 다락방에서 자고 가는 모습을 꿈꿨다. 402호 집주인 부부는 “아들이 낯선 동네로 이사 오길 싫어했는데 다락방을 보고 금세 마음을 바꿨다”고 전한다. 401호엔 하기홍 구름정원주택협동조합 이사장이 산다. 은평 살림의료생활협동조합 활동가로 일하던 하 이사장은 마포 성미산마을에 만들어지는 공유주택 소행주를 보면서 “혈연이 없더라도 사회적인 가족 공동체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구체적인 모양을 갖게 됐다”고 했다. 은평구는 마포구보다 좀더 도심에서 먼 대신 생태적인 삶을 가꿀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집의 주제는 자연스럽게 나이 들어 함께 사는 ‘실버형 공유주택’이 됐다.

설계는 인터커드 건축사사무소 윤승현 소장이 했고, 시공은 공정건설에서 맡았지만 협동조합형 공유주택은 출자부터 설계까지 조합원들이 참여하는 집이다. 하기홍 이사장은 철거부터 준공할 때까지 현장을 지키며 작업반장 노릇을 자처했고, 남기창 목사는 은행, 관공서를 오가는 ‘대외협력부장’을 맡았다. ‘텃밭위원장’ 김성숙 교사는 봄이 오면 입주자들이 함께 가꿀 텃밭을 두고 궁리중이다. 구름정원 입주자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한 2013년 10월부터 집이 완공된 2014년 10월까지 8가구는 일주일에 한번씩 만나 할 일을 나누고 공간을 계획했다. 아직 어린 아기가 있는 집엔 햇살 잘 드는 창이, 강아지가 있는 집엔 두터운 방음문이 달린 구름정원 곳곳에선 입주자들이 서로 소통하고 배려한 흔적이 읽힌다.

집은 1인가구와 대가족 등 가족 수와 삶의 모양을 고려해 집집마다 다르게 지어졌다.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패시브하우스를 지향하는 구름정원은 옥상에 태양광 집열판을 설치하고 외벽을 120㎜ 단열재로 두르고, 내벽은 6㎜ 반사판에 50㎜ 단열재로 한번 더 둘렀다. 창은 모두 3중 단열창을 썼다. 511㎡의 땅에 8가구가 가족수와 필요에 따라 91.9~84.3㎡ 정도의 면적을 나눠 살면서 집집마다 땅값과 시공비에 2억4000만원씩을 냈다.

시공을 맡은 공정건설 대표이자 하우징쿱주택협동조합의 기노채 이사장은 “아파트 전셋값 정도로 들어올 수 있는 집을 생각했다. 구름정원은 노후에 큰 경제적 부담 없이 공기 좋은 곳에 공동체 마을을 만들면서 살 수 있는 집으로 지어졌다. 부동산 개발업자, 분양할 때 나가는 마케팅 비용을 생략하고 착한 건설을 추구하면 기초공사에 더 많은 돈을 들일 수 있다. 그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지속가능한 노후의 모양”이라고 했다. “집을 공동으로 사서 공동 등기 하니까 가구당 1000만원 이상 절세 효과도 거뒀다”고도 귀띔했다.

집은 1인가구와 대가족 등 가족 수와 삶의 모양을 고려해 집집마다 다르게 지어졌다.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윤승현 소장은 집집마다 작지만 특색있는 집을 제안하는 대신 모든 집에서 북쪽 수양산 소나무숲과 동쪽의 북한산이 내다보일 수 있도록 향을 평등히 나눴다. 또 건축가는 “지역 주민들 입장에서 보면 구름정원이 북한산을 조금이라도 가릴 수밖에 없는데 건물 밖은 단순하고 아름답게 만들 책임이 있다. 북한산 돌멩이처럼 짓자”고 건축주들을 설득했다. 에어컨 선도, 빨래 너는 곳도 보이지 않도록 모든 선을 벽 속으로 넣느라 배관값이 배나 들었지만 건축주들은 기꺼이 동의했단다.

이 집이 ‘실버형’인 것은 단순히 건축주들 나이 때문만은 아니다. 입주자들은 따로 돈을 모아 1층과 지하에 가게 3곳을 마련했다. 더 나이 들었을 때 함께 소득을 거둘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고 당장 마을과 소통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공유주택인 이상 마을에 어떤 방식으로든 역할을 해야 하는데 가게가 그 일을 했으면 했다. 저녁때가 되더라도 둘레길 입구를 밝혀주고 구름정원이 산에서 마을로 나아가는 마을 문 역할을 하길 바란다”는 것이 건축가의 바람이다. 입주자들은 상업적인 분위기에 쏠리지 않으면서 마을에 보탬이 될 만한 구름정원 장사꾼들을 찾는 중이다.

 

(한겨레 2014년 12월 11일 남은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