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쌀쌀해지는 날씨는 따뜻한 녹차를 생각나게 한다. 노랗게 우러난 녹차를 마시면서 지나간 세월을 음미하고 세상을 관조해 보는 여유를 가져볼 만하다. 녹차와 함께 마음을 녹이고 사색을 즐기는 것은 인생의 멋이자 흥취(興趣)다.
초의선사가 처음으로 기록을 남겨
녹차 이야기를 끄집어 낼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다성(茶聖)으로 일컫는 조선 후기의 초의선사(草衣禪師)다. 녹차를 어떻게 마셔야 하는가에 대한 다법(茶法)을 제일 먼저 기록으로 남겼다. 그리고 녹차를 하나의 도(道)의 경지로 끌어 올렸다. 녹차를 선(禪)과 결합시켜 다선일미(茶禪一味), 다선삼매(茶禪三昧)의 경지로 끌어 올린 것.
▲ 다도의 선구자로 알려진 초의선사는 조선후기 시대의 승려로 녹차에 대한 기록을 처음으로 남겼다. |
그러나 다도(茶道)는 일본문화를 대표하는 간판 브랜드이자 아이콘이다. 일부 학자들은 일본의 다도문화가 우리나라에서 전래됐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역사적 근거는 미약하다.
녹차를 비롯해, 홍차, 백차 등 차를 많이 마시면 건강에 이롭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유해산소를 없애주고 몸의 수분을 지켜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 차 중에서 효능은 녹차가 으뜸이라고 할 수 있다.
녹차에는 특히 EGCG, 폴리페놀 등의 항산화물질이 있어 전립선암과 유방암의 예방 효과가 뛰어나다. 전문가들은 좀 더 많은 연구가 따르긴 해야 하지만, 녹차가 지닌 건강상 이로운 효능은 의심할 바가 없다고 한다. 이미 알려진 효능들을 소개해 본다.
▲ 심장질환 예방 = 어떤 차든 심장질환의 위험을 낮춰주지만, 특히 녹차는 혈압을 잘 조절할 수 있도록 심장 동맥을 유연하고 편안하게 지켜준다. 플라보노이드로 알려진 항산화물질은 내피세포가 제대로 작동하게 해 혈전을 막아준다.
▲ 비만 예방 효과 = 녹차는 체중 감량을 도와주고 뱃살을 막아준다. 하루에 5잔을 마시면 자연적으로 지방을 연소시키는 기능도 있다. 2011년의 생쥐 실험 연구에서 고지방식을 먹을 때 녹차를 곁들이면 살이 천천히 찐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 당뇨 예방 효과 = 미국 당뇨협회의 연구결과다. 2006년 1만7천명의 일본인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하루에 적어도 녹차를 6잔 마신 사람들은 3분의 1까지 당뇨병 위험이 낮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비해 다른 차를 마셨을 경우에는 별 효능이 없었다.
▲ 면역력 증진, 저항력 강화 = 한 연구에서 녹차는 특정 유형의 감기 바이러스 증식을 막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우리 몸에서 강력한 면역 기능을 나타내는 ‘조절 T세포’의 숫자를 늘려주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 콜레스테롤 저하 = 폴리페놀은 콜레스테롤의 흡수를 차단한다. 나쁜 콜레스테롤(LDL)의 수치를 낮추는 데 기여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 경우 녹차의 효과는 그다지 크지 않아서 처방약을 먹고 있는 사람들은 녹차를 마신다고 해서 약을 끊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 노화로 인한 신체적·정신적 기능 개선 = 65세 이상 노인 1만4천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녹차를 마신 사람 대부분은 노화과정에 잘 대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루에 적어도 5잔씩 녹차를 마신 사람들은 목욕, 옷 입기 같은 일상 활동을 7% 더 쉽게 할 수 있었다.
기억력 손상 치료에 효과 있어
한편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녹차는 기억력 향상에도 탁월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제3군 의대(Third Military Medical University) 연구팀에 따르면 녹차 속의 화학물질이 두뇌 세포를 활성화시켜 기억력과 공간 지각력을 향상시킨다고 한다.
영국의 일간 데일리메일에 따르면 지난 9월 연구팀은 녹차 속의 에피갈로카테킨 갈레이트(epigallocatechin gallate, EGCG)라는 유기 화학물질에 주목했다. EGCG가 줄기세포처럼 다양한 유형의 세포들을 적응시키는 신경조상세포(neural progenitorcells)의 생성을 촉진시킨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
생쥐를 대상으로 시험한 결과를 통해 녹차 속의 항산화물질인 EGCG가 지능을 지켜준다는 것이다. 녹차가 새로운 두뇌 세포의 성장을 촉발시켜 생쥐의 기억력과 학습력을 강화시킨다는 것이 연구의 핵심이다.
연구팀은 생쥐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을 통해 이 화학물질이 단기 기억과 장기 기억을 처리하는 뇌 영역인 해마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관찰했다.
EGCG를 투여한 생쥐 그룹과 투여하지 않은 그룹으로 나누고, 처음 3일간 미로에서 길을 찾는 훈련을 시킨 다음 미로의 시야를 흐리게 하고는 기억을 되살려 길을 찾도록 했다. 그 결과 EGCG가 투여된 생쥐 그룹이 길을 더 빨리 찾았다. 연구팀은 EGCG가 투여된 생쥐 그룹은 전반적으로 대상을 인식하는 능력과 공간 기억력이 향상된다는 것을 확인했다.
연구를 이끈 윤바이 교수는 “녹차가 심혈관 질환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건 많이 알려졌지만, 이번 연구를 통해 녹차 속의 화학물질이 뇌 속의 세포 기제에 영향을 미쳐 퇴행성 질환과 기억력 손상을 막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국내 연구진, 여드름 치료에 효과 있다고 밝혀
또한 최근 국내 연구진은 녹차가 여드름 치료에도 커다란 효과가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서울대 병원의 서대헌 교수(피부과)가 이끄는 연구팀은 녹차 잎의 추출물인 EGCG가 여드름의 거의 모든 병인에 대해 상당한 치료 효과가 있다고 밝혔다.
▲ 항산화식품으로 알려진 녹차의 효능에 대한 연구결과가 연이어 나오고 있다. ⓒDaily Perricone |
연구팀은 SEB-1 피지 세포주에 EGCG를 주입했다. 그리고는 지질(脂質, lipid) 합성에 주로 관여하는 SREBP-1 인자의 합성이 억제돼 세포 내 지질이 55% 감소하는 것을 관찰했다. 또한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피지 세포의 자멸사도 관찰됐다. EGCG가 피지세포의 지질 합성과 증식을 동시에 억제함이 밝혀진 것이다.
전문가들은 비단 여드름뿐만 아니라 심각한 지성 피부의 치료에 있어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도포 약제가 현재까지 거의 없었음을 고려할 때 이 연구가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고 지적했다.
또한 여드름의 주원인인 프로피오니박테리움 아크네스 세균은 피지세포로부터 각종 염증성 물질을 분비시키는데, EGCG는 이를 50~95% 감소시키는 것이 증명돼 여드름 관련 염증 반응이 억제됨을 시사했다.
이러한 실험 연구를 토대로 연구팀은 35명의 여드름 환자를 대상으로 한쪽 뺨에는 EGCG를 포함한 약제를, 다른 뺨에는 기제만 포함된 위약(placebo)을 하루에 2회 여드름 부위에 바르게 한 후 8주간 임상 관찰 및 피부조직 검사 등을 통해 여드름 상태를 관찰했다.
그 결과, EGCG를 도포한 비교군에서는 시험 전 비염증성 여드름이 평균 53.8개, 염증성 여드름이 10개 있었으나 8주 후에는 평균 15.6개와 1.1개로 나타나 비염증성 여드름은 79%, 염증성 여드름은 89% 줄어들었다. 그러나 대조군에서는 비염증성 및 염증성 여드름의 개수에 있어서 거의 변화가 없었다.
어쨌든 녹차가 우리 몸에 상당히 좋다는 연구 결과들이다. 그렇다고 마치 물 마시듯이 들이킬 성질의 것은 아니다. 그보다 더 좋은 식품들도 많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녹차와 더불어 마음의 평정(平靜)을 찾아 보는 일이다. 그것이 바로 다도(茶道)다.
옛말에 "울분을 삭이는 데는 술을 마시고 혼미한 마음을 다스리는 데는 차를 마신다”는 말이 있다. 경제불황, 취업난 등이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인터넷에 빠진 우리의 마음이 찌들고 있다. 따뜻한 녹차를 마시면서 여유를 가져보자. 이제는 검색이 아니라 사색할 때가 아닌가.
(사이언스타임스 2012년 11월 9일 김형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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