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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로서 살아온 30여 년의 세월과 더불어 인생 후반기를 맞아 행복을 추구하는 기술자의 변신 스토리입니다. --------- 기술 자문(건설 소재, 재활용), 강연 및 글(칼럼, 기고문) 요청은 010-6358-0057 또는 tiger_ceo@naver.com으로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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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스스로 개혁할 때다

2017. 2. 8. 16:41 | Posted by 행복 기술자

한국에서 정경유착 사건이 터질 때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것이 재벌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도 재벌이 어김없이 등장했다. 대기업들이 대통령의 말 한 마디에 수십 내지 수백 억원의 돈을 아낌 없이(?) 특정 재단에 출연했다. 왜 그 많은 돈을 특정 재단에 출연했는지는 특검 수사 결과를 지켜봐야 알 수 있겠지만, 대가 없이 그 많은 돈을 출연했을 것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럼 대기업들은 왜 대통령의 한 마디에 꼼짝 못하고 거액을 특정 재단에 출연했을까? 그건 두 말할 나위도 없이 바치는 돈보다 더 큰 대가를 직접적으로 얻을 수 있거나, 최소한 정부가 치부(?)를 들춰냄으로써 입을 손해를 보상하고도 남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기업이 정치인에게 부당한 돈을 바침으로써 이익을 얻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현재의 체제는 너무나 큰 문제다.  

왜냐하면 정치인이 기업에게 부당한 이익을 주려면 공정경쟁이란 시장 질서를 무너뜨릴 수밖에 없고, 더 나아가 세금을 낭비하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장기적으로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결국 한국 경제의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대기업이 자신의 치부를 가리기 위해 정치인에게 부당한 돈을 주는 행위도 부작용이 크기는 매 한가지다.  

글로벌 경쟁 체제 아래에서 진정한 경쟁력을 가지려면 공정한 경쟁을 해야 하고, 이를 위해선 기업이 투명하게 경영돼야 한다. 하지만 특정인, 예를 들어 재벌 오너를 위해 기업이 운영되도록 하기 위해 부당한 행위를 하게 된다면 결국 경쟁력이 약화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재벌 오너가 모든 결정을 하는 시스템에선 임직원이 자발적이고 창의적인 자세로 일을 하기가 힘들다. 과거 산업사회에선 재벌 오너의 명령에 의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것이 기업의 경쟁력이었지만, 현대의 네트워크 사회에선 임직원의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기업 경쟁력의 원천이다. 

재벌 경영체제가 나은가, 아니면 전문경영인 체제가 나은 지에 대해선 아직 명확하게 결론이 내려지지 않은 상태인 것만은 틀림이 없다. 재벌 경영체제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의사 결정을 하고, 의사 결정이 빠른 강점이 있는데 비해 오너의 독단에 의해 경영될 소지는 큰 단점이다. 반면 전문경영인 체제는 지나치게 주주의 이익만을 고려해 단기적인 관점으로 기업을 경영할 소지가 있다. 대신 어느 정도 투명하게 기업이 경영될 가능성이 크다는 강점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재벌경영 체제가 나은가, 전문경영인 체제가 나은가 라는 이분법적인 선택을 위한 논란을 벌일 필요가 없다. 가장 바람직한 방향은 어느 한 체제가 좋은지를 따지기보다는 두 체제가 가진 강점들을 모두 가진, 즉 장기적인 관점을 갖되, 빠른 의사결정을 하면서도 투명한 경영이 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다.

나는 그 방향은 바로 소규모 벤처기업들이 창업돼 글로벌 대기업으로 커나갈 수 있는 경영환경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의 구글이나 페이스북, 중국의 알리바바 등의 기업들처럼 네트워크 사회에 맞는 벤처 기업이 창업돼 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만 한다. 하지만 만약 이런 기업들이 한국에서 창업을 했더라면 지금처럼 글로벌 거대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경영환경이 한국에 형성돼 있는지는 의문이다. 한국에선 구글 같은 벤처기업이 창업되더라도 여러 제도적인 제약 때문에, 기존 재벌 기업들의 견제 때문에 제대로 싹도 틔워보지 못한 체 주저앉고 말 것이다.

매 정권마다 끊이지 않고 발생하는 정경유착 고리의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재벌이란 사실을 부정하기 힘들 것이다. 대기업이 오너를 위해, 오너에 의해 운영되다 보면 투명성을 확보할 수 없고, 그걸 빌미로 정치권에서 부당한 돈을 요구할 여지를 주기 때문이다. 만약 정치권에서 전문경영인이 투명하게 경영하고 있는 기업에게 부당한 돈을 요구한다면, 그에 응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대기업 오너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정치권에 부당한 돈을 줄 가능성이 높다. 만약 이번에도 정치권에서 재벌 개혁에 미적거린다면 부당한 돈을 쉽게 요구할 수 있는 통로를 버리기 싫다는 속내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국민이 판단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에너지경제 2017년 2월 8일 게재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