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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로서 살아온 30여 년의 세월과 더불어 인생 후반기를 맞아 행복을 추구하는 기술자의 변신 스토리입니다. --------- 기술 자문(건설 소재, 재활용), 강연 및 글(칼럼, 기고문) 요청은 010-6358-0057 또는 tiger_ceo@naver.com으로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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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잡아라

2014. 11. 27. 21:45 | Posted by 행복 기술자

행복한 엔지니어의 뉴스레터 (제 304 호)

 

【 바람을 잡아라 】

 

예전에 예부터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동양의학을 전수받은 분으로부터 들은 얘기를 먼저 전해 드리겠습니다.

그 분이 스승으로부터 동양의학을 전수받을 때는 자세한 설명을 먼저 듣는 게 아니라 어떤 화두를 던져 주고 스스로 깨닫도록 하면서 전수를 받았다고 합니다.

체계적이고 이론적인 공부를 통해서 동양의학 지식을 전수받은 게 아니라, 몸으로 체득하는 직관을 통해서 전수 받았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약초를 캐러 스승과 함께 산으로 가는데, 갑자기 스승이 “산꼭대기까지 올라가면서 바람을 잡아라.”라고 지시를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제자는 그게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홀로 산을 오르면서 고민을 하기 시작합니다.

‘바람을 느끼는 것도 아니고 잡으라니 도대체 그게 무슨 뜻일까?’ 등의 고민을 하면서 스승의 뜻을 이해하기 위해 애를 씁니다.

 

하지만 이 스승의 지시는 현대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설명을 하면 아주 간단한 얘기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즉 약초는 냄새가 나기 때문에 바람을 타고 오는 약초 냄새를 맡아서 어디에 약초가 있는지를 알아내라는 뜻입니다.

이 방법은 멧돼지나 사슴 등 야생동물들이 약초를 찾아낼 때 주로 활용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그 스승이 ‘바람을 잡아라’고 한 다음 실제로 제자가 그 의미를 깨닫고 또 실제로 바람을 잡는 데는 수년이 걸린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왜 그 스승은 과학적으로 설명하면 간단히 설명할 수 있는 것을 어렵게 설명을 했을까요?

그 이유는 약초를 찾아내는 것이 단순히 이론적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또 직관으로 체득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오랜 고민을 통해 몸으로 체득된 이치는 이론으로 습득된 지식과는 달리 산지식이 됩니다.

또한 이런 고민을 통해 한 번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다른 문제들도 스스로 풀어나갈 수 있는 힘이 생기는 이점도 있습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우리 조상님들은 화두를 던지고 제자들이 스스로 깨닫도록 하는 방법으로 가르친 것입니다.

 

더 나아가 동양의학이나 철학, 종교는 어떤 합리적인 설명보다는 직관을 통해 이해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가르침 방법이 더 선호되기도 했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음양오행의 이치나 기의 존재 등은 현대 과학처럼 논리적인 방법으로는 깨우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침을 놓아서 마취를 시키거나 아픈 사람을 치유하는 행위는 서양의 과학 원리로는 아직도 잘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봐도 이런 차이를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을 이해하는 데도 이와 마찬가지로 합리적인 설명보다는 직관에 의한 이해가 필요한 면이 많이 있습니다.

물론 ‘바람을 잡아라’라는 명제에서 제시된 바와 같이 제가 지금 하고 있는 것처럼 신의 존재를 과학적으로 어느 정도는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을 어느 수준까지 이해하는 데는 현대인들이 익숙한 과학적인 설명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과학적인 설명에는 한계가 있고, 궁극적으로는 직관에 의해 신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점만은 분명합니다.

그 이유는 신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알고 있는 상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즉 하느님은 모든 표현과 이해를 넘어서기 때문에 우리가 신에 대해서 말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우리 자신의 한계 안에 신을 가두게 됩니다.

 

이런 한계를 불교에서는 ‘살불살조(殺佛殺祖)’, 즉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라’는 표현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부처님도 자신의 가르침을 뗏목, 즉 중생이 강을 건너는 데 사용할 수 있는 뗏목에 비유했는데, 일단 강을 건너고 나면 뗏목은 더 이상 필요 없기 때문에 진정한 깨달음에 이르고 나서는 부처나 조사의 가르침을 버려야만 한다는 의미입니다.

인간의 한계 때문에 어떤 것을 설명하려고 하면 우리는 개념의 그물이란 덫에 걸리게 되기 때문에, 말과 설명을 넘어서는 것이 진정한 깨달음으로 가는 길입니다.

 

이런 논리를 전개해놓고 보니 제가 지금 하고 있는 과학적으로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고 노력하는 일이 부질없는 짓이라는 것을 자인하는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저는 제가 부처님의 표현대로 깨달음에 이르는 뗏목 역할은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우주 안에 있는 만물이 모두 하나이고 신의 모습’이라고 깨닫는 데 도움이 된다면 제가 하는 작업이 부질없는 일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행복한 미래를 만드는 기술자

 

김송호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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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발송되었던 뉴스레터를 보고 싶으신 분들은 제 개인 블로그 http://happyengineer.tistory.com/의 <주간 뉴스레터>나 http://www.linknow.kr/group/happygroup의 <행복한 엔지니어의 뉴스레터> 목록에서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본 주제에 대해 다른 의견을 가지신 분들은 저에게 알려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다만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긍정적인 관점에서 글을 읽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