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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로서 살아온 30여 년의 세월과 더불어 인생 후반기를 맞아 행복을 추구하는 기술자의 변신 스토리입니다. --------- 기술 자문(건설 소재, 재활용), 강연 및 글(칼럼, 기고문) 요청은 010-6358-0057 또는 tiger_ceo@naver.com으로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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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엔지니어의 뉴스레터 (제 311 호)

 

【 사랑을 실천해야 구원 받는가 믿어야 구원 받는가? 】

 

가톨릭(천주교)과 프로테스탄트(개신교)는 같은 하느님을 섬기지만, 신앙의 기본 교리는 다른 점이 많이 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개신교는 천주교의 기본 교리를 부정하면서 탄생한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서도 구원의 전제 조건(?)을 사랑의 실천으로 보느냐, 믿음으로 보느냐가 아마도 가장 큰 차이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루터가 천주교를 비판하면서 내세운 가장 큰 명분이 면죄부라 불리는 천주교 수장인 교황의 권한(?) 부정입니다.

물론 면죄부라는 명칭 자체가 적절하냐 하는 것은 또 다른 논쟁의 대상이지만 여기서는 편리상 그냥 면죄부라고 부르겠습니다.

그러니까 루터가 종교 개혁을 위해 표면상 내세운 명분은 교황이 십자군 원정 비용과 개인적인(?) 부의 축적을 위해 면죄부를 남용했다는 것입니다.

 

면죄부라는 의미는 글자 그대로 구원에 장애가 되는 죄를 어떤 조건(금전 기부 또는 십자군 참여)을 충족하면 교황의 권한으로 사해준다는 의미입니다.

교황을 비롯한 성직자들의 죄 사함의 권한은 성직자들이 예수님의 후계자로서, 하느님인 예수님의 죄 사함의 권한을 위임받았다는 다음의 성경구절에 근거합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마태복음 18:18).”

 

위 성경 구절에 근거하여 천주교에서는 성직자들에게 죄를 고백하면 그 죄를 사해주는 고해성사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이와 반면에 개신교에서는 죄 사함은 하느님과 신도 개인의 개별 관계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보고, 개별적으로 하느님에게 죄 사함을 간청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죄가 구원의 장애 요인이라는 점에서는 천주교와 개신교가 같지만, 죄 사함의 방식에 대해서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구원에 대한 전제 조건(?)도 천주교와 개신교는 확연히 다른 교리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천주교에서는 사랑의 실천이라고 주장하는 반면에, 개신교에서는 믿음 그 자체로 구원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개신교에서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개인의 구원 여부는 하느님에 의해 미리 정해져 있다는 예정설을 주장하기도 합니다.

 

천주교와 개신교의 구원 논쟁에서 어느 편이 옳으냐를 따져보기 위해서는 먼저 구원의 의미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마도 천주교와 개신교에서 내세우는 구원은 죽은 다음에 천국이라는 낙원에 들어간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죽은 다음에 천국이나 지옥에 가야 한다는 교리는 이슬람교 등 다른 종교에서도 공통되는 교리이기도 합니다.

 

전에도 제가 한 번 언급을 했지만, 이러한 천국과 지옥에 대한 교리는 하느님(신)이 마치 전제 폭군과 같다는 전제를 기반으로 합니다.

하지만 과연 자비하신 하느님(신)이 사랑하는 자녀들인 우리를 지옥에 영원해 보내는 벌을 줄 정도로 잔인할 수 있을까요?

만약 이런 끔찍한 교리를 주장하는 종교인 있다면 저는 그 종교인이 하느님을 내세워 개인적인 사리사욕을 취하려고 한다고 장담할 수 있습니다.

 

개신교가 천주교의 면죄부를 비난했지만, 지금 개신교도 또 다른 형태의 면죄부를 신자들에게 팔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는 의미를 교회에 잘 나오면서 헌금을 잘 내는 것으로 해석한다면 면죄부를 팔았던 교황과 무엇이 다를 바가 있겠습니까?

더 나아가 예수님이 배척하고자 했던 바리새인 등 유대 기득권층의 행동을 꼭 같이 답습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만물 안에 현존하는 하느님, 즉 과학적인 신의 관점에서 보면 구원은 하느님, 즉 만물과 하나로 연결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에 맞게 행동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하느님(예수님)을 진정으로 믿는다는 의미는 하느님을 통해 하나로 연결된 만물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단순히 교회에 열심히 나가서 충성을 다 하는 믿음은 하느님을 교회라는 틀 안에 가두는 잘못된 생각입니다.

 

같은 의미에서 사랑을 실천해야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천주교의 교리도 본말을 전도하는 오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만물이 하느님과 연결된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으면 자연스럽게 이웃을 비롯한 만물을 사랑하는 게 당연한 일입니다.

다시 말해 사랑을 실천해야 구원을 받는 게 아니라, 만물이 하느님과 연결된 소중한 존재라는 구원의 진리를 깨달으면 자연스럽게 사랑을 실천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행복한 미래를 만드는 기술자

 

김송호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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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발송되었던 뉴스레터를 보고 싶으신 분들은 제 개인 블로그 http://happyengineer.tistory.com/의 <주간 뉴스레터>나 http://www.linknow.kr/group/happygroup의 <행복한 엔지니어의 뉴스레터> 목록에서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본 주제에 대해 다른 의견을 가지신 분들은 저에게 알려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다만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긍정적인 관점에서 글을 읽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