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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로서 살아온 30여 년의 세월과 더불어 인생 후반기를 맞아 행복을 추구하는 기술자의 변신 스토리입니다. --------- 기술 자문(건설 소재, 재활용), 강연 및 글(칼럼, 기고문) 요청은 010-6358-0057 또는 tiger_ceo@naver.com으로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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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엔지니어의 뉴스레터 (제 313 호)

 

【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라 】

 

성경에 나오는 가장 유명한(?) 말 중의 하나가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라(마르코복음 12:31, 마태복음 22:39)”는 구절입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예수님이 율법학자의 질문을 받고 답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지만, 유대인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는 구약성경의 한 구절입니다.

예수님은 몸과 마음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 못지않게, 이웃도 제 자신처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성경 구절에 대해 저는 두 가지 점에서 좀 더 상세히 살펴보려고 합니다.

우선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똑같은 비중으로 중요하다는 점이 강조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상식적으로 하느님이 인간보다 훨씬 더 높은 존재라고 생각되기 때문에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 인간인 이웃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중요할 텐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두 번째는 이웃을 제 자신보다 더 사랑하라고 하지 않고, 제 자신처럼 사랑하라고 권유했다는 점입니다.

제 자신보다 이웃을 더 사랑하는 게 더 큰 사랑일 것 같은데, 제 자신처럼만 사랑하라고 하니 이 또한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선은 자신을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은 남도 사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타인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사랑을 할 수도 없습니다.

또 사랑은 평등한 사람들 사이의 것이기 때문에 평등과 일치가 있는 곳이 아니면 사랑은 있을 수 없습니다.

나 자신을 죽이고 무조건적으로 굴종을 하는 것은 진정한 사랑의 행위라고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진정한 의미는 나와 내 이웃이, 또 하느님과도 하나로 연결된 존재이기 때문에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사랑함으로써 이웃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함으로써 하느님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과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신(하느님)은 만물 안에 존재하기 때문에 내 이웃을 사랑하는 것과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 같은 의미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주신 큰 두 계명, 즉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것과 네 이웃과 너 자신을 사랑하라는 것은 결국 같은 하나의 계명입니다.

하느님과 이웃, 그리고 내가 하나로 연결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고도 하느님을 사랑한다면서 이웃이나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모순일 수밖에 없습니다.

더 나아가 하느님과 인간 이외의 만물도 하나로 연결된 존재이기 때문에 결국 만물도 사랑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은 자신을 사랑하는 것과 똑같은 사랑으로 모든 피조물을 사랑하고, 만물을 누리되, 만물을 피조물로 여기지 않고 하느님으로 여깁니다.

하느님은 이 모든 피조물 가운데 어느 한 피조물을 다른 피조물보다 더 사랑하는 법이 없습니다.

피조물이 비록 죄인일지라도 문을 활짝 열어 그분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하느님은 자신을 그들 속에 쏟아 부으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권고는 우리가 서로 연결된 하나의 존재라는 것을 깨달으라는 권고이기도 합니다.

인간이 하느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성경 말씀이나, 우리가 본래 부처라는 부처의 가르침도 모두 같은 의미입니다.

세상 만물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불교의 인드라망 사상도 결국 같은 의미를 표현한 것입니다.

 

나를 만물과 분리시키는 이분법적인 사고야말로 다른 존재 및 하느님과의 합일을 경험하지 못하게 가로막는 근본 원인입니다.

하느님과 이웃은 사랑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당연히 사랑해야할 나 자신과 같은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영성주의자 엑카르트는 하느님과 하나가 되고 피조물과 하나가 되는 것을 가리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내밀한 하느님 경험이라고 말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물고 하느님도 그 사람 안에 머무십니다(요한1서 4:16).”라는 성서의 말씀도 같은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진정으로 사랑을 하려면 내가 가진 것을 조금 나눠줄 게 아니라, 내 것이 곧 네 것이요, 하느님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다 내놓아야 합니다.

물론 그런 사실을 어설프게 깨달은 사이비 성직자들이 다른 사람들이 내놓은 것들을 자신들이 차지하는 죄악을 저질러서 문제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저는 제 이웃과 하느님을 제 자신처럼 사랑하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행복한 미래를 만드는 기술자

 

김송호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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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발송되었던 뉴스레터를 보고 싶으신 분들은 제 개인 블로그 http://happyengineer.tistory.com/의 <주간 뉴스레터>나 http://www.linknow.kr/group/happygroup의 <행복한 엔지니어의 뉴스레터> 목록에서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본 주제에 대해 다른 의견을 가지신 분들은 저에게 알려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다만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긍정적인 관점에서 글을 읽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