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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로서 살아온 30여 년의 세월과 더불어 인생 후반기를 맞아 행복을 추구하는 기술자의 변신 스토리입니다. --------- 기술 자문(건설 소재, 재활용), 강연 및 글(칼럼, 기고문) 요청은 010-6358-0057 또는 tiger_ceo@naver.com으로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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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대는 차별화된 1등 인재를 원한다

 

나는 1980년대 강원도 삼척의 시멘트 공장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공장에서 내가 했던 주 업무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시멘트 제조공정의 열효율을 측정해서 상부에 보고하는 일이었고, 또 다른 한 가지는 최신 기술 정보를 모아 정리한 다음 다른 기술자들에게 알리는 일이었다. 시멘트는 섭씨 1450도의 고온에서 석회석 등 돌가루(?)를 구어서(전문 용어로 소성해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연료(당시에는 벙커씨유였지만, 나중에는 유연탄으로 바뀌었다)가 제조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40퍼센트 정도를 차지했고, 전기를 포함하면 에너지 비용이 70퍼센트를 넘었다. 따라서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것은 시멘트 제조 공장에서 아주 중요한 업무였다. 제조원가 중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5퍼센트를 조금 넘었으니까, 에너지 효율을 10퍼센트만 높이면 인건비를 두 배로 올려줄 수 있는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에너지 효율을 측정하려면 각 공정의 공기의 풍량, 압력, 온도 등을 측정한 다음 에너지 수지(energy balance)를 계산해야 한다. 무거운 측정 기구를 들고 서너 명이 뜨겁고 먼지 많은 현장에서 오전 내내 측정을 하고나면, 오후에는 몇 시간에 걸쳐 계산을 해야 했다. 당시에는 컴퓨터가 일반화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계산은 계산기를 이용해서 일일이 손으로 해야 했다. 그나마 1970년대 중반에 전자계산기가 나왔으니까 망정이지, 그 이전에는 주산으로 계산을 하거나 구구단을 외어가면서 계산을 해야 했다. 아무튼 이처럼 어려운 과정을 거쳐서 에너지 효율을 계산하고 나면, 그 계산결과를 과장, 차장, 부장, 상무 등을 거쳐 공장장에게 보고하고, 공장장은 퇴근 전까지 본사에 보고를 해야 하루 일과가 끝났다.

하지만 최근 삼척공장을 가봤더니 내가 했던 이런 업무를 수행하는 기술자는 이제 더 이상 없었다. 시멘트 제조공정에서 여전히 에너지 효율은 중요하지만, 모든 측정은 온라인으로, 계산은 컴퓨터로 행해져서 모니터를 통해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장 근무자나 공장장은 물론이고 본사에서도 에너지 효율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는 당시 회사 장학금을 받고 카이스트(한국과학기술원)의 석사 과정을 마친 다음 공장에서 근무하던 엘리트 기술자였다. 하지만 엘리트 기술자였던 내가 했을 정도로 중요했던 업무는 이제 더 이상 사람이 필요 없는 업무가 되었다. 당시에 내가 받았던 학교 교육 내용은 측정하고 계산하는 업무에 적합한 능력을 키우는 것이었지만, 이런 업무가 필요 없어진 지금도 대학의 교육 내용은 변함이 없다. 컴퓨터와 로봇이 대신하고 있는 업무를 아직도 대학에서 배우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시대가 왔으니 인재상도 바뀌고 대학의 커리큘럼이나 교육 내용도 바뀌어야 하는데 아직도 산업 사회에 적합한 인재를 키우는 교육을 고집하고 있다.

그럼 새로운 시대에는 어떤 인재가 필요한 것일까? 앞으로 계속 설명을 하겠지만, 우선 비유를 들어 보겠다. 어느 날 아내와 백화점에 갔다가 아내가 핸드백 코너에 전시된 어떤 핸드백을 가리키며 가격이 얼마나 할 것 같으냐고 물었다. 루이비통 핸드백이었는데, 그 가격이 무려 500만 원이었다. 나는 처음에는 50만 원을 잘못 표기했거나, 내가 숫자를 잘못 읽은 줄 알았다. 더 놀라운 사실은 1,000만 원이 넘는 핸드백도 많다는 것이었다. 시장에 가면 5만 원만 줘도 쓸 만한 핸드백을 살 수 있을 텐데, 왜 고급 백화점에서는 500만 원짜리 핸드백이 팔리고 있는 것일까? 핸드백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 소지품을 넣는 것이지만, 500만 원, 1,000만 원짜리 핸드백을 사는 소비자들이 단순히 소지품만 넣기 위해서 그런 비싼 핸드백을 사지는 않을 것이다. 소지품을 넣고 다니는 용도라면 시장에서 살 수 있는 5만 원짜리 핸드백으로도 충분할 테니까 말이다. 비싼 핸드백을 사는 이유는 아마도 자신이 부자라는 사실을 과시하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모두가 가난했던 1970년대에는 5만 원짜리 핸드백이 대세였지만, 지금은 부유층이 많아지면서 500만 원, 1,000만 원짜리 핸드백을 찾는 소비자층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그렇다면 기업의 입장에서는 5만 원짜리 핸드백을 만들어서 파는 게 이익이 많이 남겠는가, 아니면 500만 원짜리 핸드백을 만들어서 파는 게 더 이익이 많이 남겠는가? 누구나 500만 원짜리 핸드백을 만들어서 파는 게 더 이익이 많이 남을 것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문제는 제품을 고급스럽게 만든다고 해서 500만 원짜리 핸드백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5만 원짜리 핸드백에 비해, 500만 원짜리 핸드백이 당연히 품질이 더 좋겠지만, 100배 더 좋지는 않을 것이다. 기껏해야 2, 3배 더 좋을까? 소비자들은 품질이 더 좋기 때문에 500만 원짜리 핸드백을 사는 게 아니라, 자신을 과시할 수 있는 브랜드 때문에 100배나 더 많은 돈을 지불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5만 원짜리 핸드백의 제조원가가 2만 원(40퍼센트)라고 했을 때, 500만 원짜리 핸드백의 제조원가는 얼마나 될까? 2만 원보다는 많겠지만, 500만 원의 40퍼센트인 200만 원이 되지는 않을 것은 틀림이 없다. 계산상의 편의를 위해 20만 원(4퍼센트)이라고 가정하자. 물론 브랜드를 만들어내고 지키기 위해 지불하는 비용은 5만 원짜리보다는 500만 원짜리가 훨씬 더 많겠지만 말이다.

5만 원짜리 핸드백을 만들던 과거의 기업에서는 원가 절감을 잘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인재가 필요했다. 과거에 내가 삼척의 시멘트 공장에서 했던 일이 바로 원가 절감을 하는 업무였다. 원가 절감에 기여할 수 있는 내 능력을 시멘트 회사가 필요로 했기 때문에 내가 카이스트 석사 과정을 마치는 데 필요한 비용을 대주면서 스카우트 했던 것이다. 하지만 500만 원짜리 핸드백을 만드는 현대의 기업에서는 원가 절감보다는 비싼 브랜드를 만들어낼 수 있는 창조적인 인재가 필요하다. 500만 원짜리 핸드백의 제조 원가인 20만 원을 낮추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브랜드 가치를 높여 1,000만 원짜리로 만드는 게 기업으로서는 훨씬 더 이익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대학의 교육 내용은 아직도 핸드백의 제조 원가를 줄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기업은 제조원가보다는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인재가 필요한 데도 말이다. 대학에서 이런 내용의 강의를 하면 교수들. 특히 공대 교수들은 그래도 품질 향상이나 원가 절감이 중요하고, 더 나아가 브랜드를 높이는 것은 공대의 교육의 목표가 아니지 않느냐고 항변한다. 물론 품질 향상과 원가 절감이 중요하지만, 그런 인재보다는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인재가 더 높은 평가를 받는다는 의미다. 지방대생들의 입장에서는 품질 향상과 원가 절감을 할 수 있는 능력으로는 서울 명문대 학생들을 따라갈 수 없지만,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능력으로는 뒤처질 이유가 없다는 의미다. 만약 지방대에서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능력을 가진 인재를 키워낸다면 기업에서 대환영을 받을 것임을 보장할 수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볼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지방대생들이 서울 명문대생들에 비해 경쟁력이 낮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바로 제조원가를 낮추거나 품질향상을 하는 산업사회에서 필요한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수학능력시험(수능) 점수는 과거 산업사회에서 필요했던 제조원가를 낮추거나 품질향상을 하는 능력을 보여주는 숫자지,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제품이나 서비스의 가치를 높이는 창의력을 보여주는 숫자가 아니다. 현재 대학에서 학생들을 선발하는 기준이 바로 산업사회에서 필요한 능력이라는 의미다. 과거 산업사회에서 수능 점수가 낮은 지방대생들이 수능 점수가 높은 서울 명문대생들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없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지만 새로운 시대에는 서울 명문대생들이 잘 하는 분야는 대부분 로봇이나 컴퓨터가 대체하고 있기 때문에 지방대생들도 제품이나 서비스에 가치를 높이는 창의력을 갖는다면 얼마든지 성공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좀 더 일반화하여 얘기하자면 자본 중심의 대량 생산 체제의 산업사회에서는 표준화, 평준화된 인재가 필요했다. 대량 생산을 위해서는 표준화된 시스템에 맞춰 개미처럼 근면, 성실하게 근무하는 평준화된 인재가 필요했다. 표준화된 시스템을 무시하고 나름대로의 생각을 보태는 튀는 인재는 대량 생산의 적이었다. 왜냐하면 표준화된 시스템을 벗어난다는 의미는 곧 불량품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커진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산업사회는 표준화된 시스템에 의해 싸고 품질 좋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면 무조건 팔리는 시대였기 때문에, 굳이 위험을 무릅쓰면서 변화를 꾀할 이유가 없었다. 산업사회의 이런 사고방식을 보여주는 말이 모난 돌이 정 맞는다.’든가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모난 돌이 예술 작품이 되고, 튀어야만 인정을 받는 시대가 되었다. 튀어도 조금 튀는 정도가 아니라 어느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차별화되고 창의적인 1등 인재가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과거에는 기업의 기존 제품을 잘 만드는 인재가 필요했지만, 이제는 획기적인 가치를 창출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어내어 기업에 공헌하는 차별화된 1등 인재가 필요하다. 5만 원짜리 핸드백을 싸고, 빨리 만들어내는 인재보다는 500만 원짜리, 1,000만 원짜리 핸드백을 만들어낼 수 있는 차별화된 1등 인재가 필요한 시대가 된 것이다. 이제 기업도 생존 경쟁에 내몰리면서 차별화된 1등 기업이 되어야만 살아남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에, 차별화된 1등 인재를 필요로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