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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로서 살아온 30여 년의 세월과 더불어 인생 후반기를 맞아 행복을 추구하는 기술자의 변신 스토리입니다. --------- 기술 자문(건설 소재, 재활용), 강연 및 글(칼럼, 기고문) 요청은 010-6358-0057 또는 tiger_ceo@naver.com으로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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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차별화된 최고 인재인가?

 

이제까지 달에 착륙했던 사람들은 누가 있는가? 아마도 닐 암스트롱외에 다른 사람들을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아폴로 11호를 타고 닐 암스트롱이 인류 최초로 달을 밟은 것이 1969년의 일이고, 그 후 아폴로 12, 14, 15, 16, 17호 등이 달에 다녀왔지만, 닐 암스트롱 외에는 기억되는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다. 왜 그럴까? 당연히 닐 암스트롱이 첫 번째로 달에 착륙했기 때문이다.

이제 세상은 최고만이 기억되는 세상’, ‘최고만이 살아남는 세상이 되었다. 기업도, 사람도 최고만이 살아남는 세상이 된다고 하면 반발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유치원 시절부터, 아니 엄마 뱃속에서부터 최고가 되기 위해 치열한 경쟁에 시달리는 한국인들의 입장에서는 최고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키는 게 당연한 일이다. 사실 차별화된 최고 인재라는 주제로 강연을 할 때나 대화를 나눌 때도 사람들이 '최고'이라는 단어에 상당한 반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많이 느낀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최고'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도, 모두 최고가 될 수 없는 현실에 절망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그냥 최고이 아니라 '차별화된 최고'이라고 아무리 강조해도 모두 차별화라는 단어보다는 최고이라는 단어에만 눈길을 주는 것 같다. 나도 산업 사회에서 말하는 '최고'이 되자는 주장에는 절대 반대한다. 지금 한국 사회에 만연한 '최고', 즉 다른 사람들을 누르고 혼자 우뚝 서는 최고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왜냐하면 산업사회의 최고 개념은 한 사람을 제외한 다른 모든 사람들은 패배자로 만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을 제외한 절대 다수를 패배자로 만드는 사회는 결코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없다. 하지만 여기서 주장하는 차별화된 최고개념은 모든 사람들을 승리자로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최고개념과는 차이가 있다. '수학은 못하지만 미술에서는 최고', '공부를 못하지만 남을 배려하는 데는 최고', '느리지만 기발한 생각을 하는 데는 최고' 등 뭔가 자기만의 분야를 만들어 그 분야에서는 최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차별화된 최고의 개념을 인정하는 사회는 서로의 다른 능력을 인정하고 협력하여 더 큰 경쟁력을 창출할 수 있다. 서로를 경쟁자로 보는 약육강식의 사회가 아니라, 각자가 차별화된 최고 분야를 활용할 수 있도록 서로 협력함으로써 더 나은 것을 만드는 상생의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최근 들어 기업들이 차별화된 최고 인재를 찾는 이유도 기업 자체가 차별화된 최고 기업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핸드폰을 사는 경우의 예를 들어보자. 과거에는 별로 핸드폰에 대한 정보가 없기 때문에 주위의 말만 듣거나, 판매원의 말만 듣고 판단해서 샀기 때문에 최고 제품을 살 확률이 낮았다. 따라서 자기도 모르게, 또는 친인척인 판매사원들의 권유로 2, 3등 제품을 사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핸드폰에 대한 정보가 너무 많다. 가격 비교 사이트도 있고, 사용해 본 사람들의 핸드폰에 대한 평가를 올려놓은 사이트도 많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2등인 핸드폰을 사려는 사람이 있을까? 당연히 누구나 최고 제품을 사려고 할 것이다. 이처럼 정보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지식 사회가 되면서 필히 나타나게 된 현상이 바로 최고 제품에 대한 쓸림 현상승자 독식에 의한 양극화 현상이다. 글로벌 기업인 지이(GE)와 삼성이 세계 최고가 아닌 사업 분야들을 정리하고 있는 것도 이런 추세를 감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기업들의 차별화된 최고 전략은 산업사회에서의 최고 제품 전략과는 차이가 있다. 산업사회에서의 최고 제품 전략이 모든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했다면, 현재의 차별화된 최고 전략은 동일한 제품이라도 소비자층을 차별화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일본의 컴퓨터 그래픽 카드 제조회사인 <현인지향>은 차별화된 마케팅 전략으로 사업 개시 2년 만에 일본의 컴퓨터 그래픽 카드 시장에서 1위로 올라섰다. <현인지향>의 차별화된 마케팅 전략은 불친절이다. 이 회사의 제품은 포장이 엉성하고, 제품에 대한 설명서도 없다. 제품에 대한 의문점이 생겨도 문의할 회사 내 담당자도 없다. <현인지향>은 컴퓨터 그래픽 카드의 주 고객이 전문가들이라는 데 마케팅의 주안점을 두었다. 즉 전문가들이라면 포장이 화려할 필요도 없고, 설명서도 필요 없다는 점에 착안을 한 것이다. 그러면 그게 뭐 그리 중요한가하고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인지향>의 제품을 사는 사람들은 자신들을 전문가로서 차별화할 수 있다는 데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즉 포장에도 신경을 안 쓰고, 매뉴얼도 필요 없는 전문가로 보이고 싶어서 <현인지향>의 제품을 사는 것이다. 처음에는 전문가들이 주 고객이었으나, 점차 일반인들도 전문가로 보이고 싶어서 <현인지향>의 제품을 주문하게 되면서 매출이 획기적으로 늘게 되었다고 한다. 이 마케팅 전략은 고객들에게 전문가로서의 자부심을 심어주는 효과뿐만 아니라, 회사 입장에서는 원가를 절감할 수 있고, 제품의 출시 속도를 빠르게 할 수 있는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즉 포장, 사용 매뉴얼 작성, 상담 담당자 채용 비용을 줄일 수 있고, 제품 개발과 제조 이외의 시간을 들일 필요가 없으니 제품 출시 속도가 빨라질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제품의 사이클이 빠른 IT 사업에서 출시 속도가 경쟁업체보다 빠르다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경쟁력이 된다. 아마도 <현인지향>에서 뽑으려고 했던 인재는 컴퓨터 그래픽 카드를 잘 만드는 능력을 가진 인재보다는 차별화된 최고 마케팅 전략 인재였을 것이다. 컴퓨터 그래픽 카드를 잘 만드는 일류 대학 출신보다는 지방대생이라도 차별화된 최고 마케팅 전략 능력을 가진 인재였을 것이다.

기업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 차별화된 최고 인재의 예를 들어보겠다. 몇 년 전 윤효간이라는 피아니스트가 <피아노와 이빨>이라는 제목으로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한 공연을 관람했다. 아는 후배가 1000회가 넘는 공연을 한 피아니스트의 특별 공연이라면서 나를 초대를 해서 우연히 그 공연을 관람한 것이다. 이 공연에서 가장 특이한 점은 윤효간이라는 피아니스트가 고졸(중퇴?)이라는 점이다. 그러니까 윤효간은 피아노를 전공하지 않은 것은 물론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그는 부잣집에 태어나서 어릴 적부터 피아노 레슨을 받았다. 그러다 중학생 때 피아노 콩쿠르에 나갔는데 등수에 들지 못하고 나서는 왜 피아노는 악보에 정해진 대로만 쳐야 하는 건지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는 대학 입시를 위해 규격화된 피아노 연주를 배우라는 주위(부모?)의 뜻을 거부하고 고3때 가출을 했다. 그 이후 현재까지 자신만의 차별화된(?) 피아노 연주 방법을 개발(?)해서 인기를 얻고 있다. 그는 피아노 연주방법이 독특할 뿐만 아니라, 피아노가 무대 위에만 있어야 한다는 상식을 깨고 사막 위에도, 폐허 위에도, 국군 장병들 속에도 피아노를 놓는 파격을 저지르고 있다. 그는 피아노를 운반하기 위한 전용 차량까지 구비하고 있다. 윤효간 뿐만 아니라 세계의 많은 피아니스트들이 자신만의 해석에 의한 연주를 하고 있지 않느냐고 주장하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다른 피아니스들은 악보에 약하게 치라는 곳에서 세게 쳐 보고, 한 옥타브 올리거나 내려서 치는 윤효간 식의 파격적인 연주는 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윤효간은 악보와는 다른 연주를 하면서 이를 세상에서 오직 윤효간만이 하는 차별화된 연주라고 주장하고 있다. 윤효간은 유명한 대학, 유명한 스승 밑에서 피아노를 배워야 성공한다는 세간의 상식을 깨고 자신만의 차별성으로 차별화된 최고 인재가 된 것이다.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한 조성진도 최고 인재지만, 자신만의 피아노 연주 분야를 개척한 윤효간도 차별화된 최고 인재.

우리는 최고하면 수학에서 최고, 영어에서 최고, 학급에서 최고, 피아노 연주에서 최고를 생각한다. 또한 그 최고의 기준이 정해진 규격에 얼마나 잘 맞추느냐 하는 데 달려있다. 하지만 이런 과거의 최고 방식으로는 앞으로 성공하기 힘들 뿐만 아니라, 엄청난 노력이 요구된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은 선천적인 능력도 있었겠지만, 엄청난 노력을 했을 것이다. 물론 윤효간도 노력은 했겠지만,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자신만의 분야를 개척했기 때문에 조성진만큼 힘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윤효간은 피아노를 단순히 정해진 규격에 따라 잘 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즐기는 도구로 만들었기 때문에 윤효간만의 피아노 연주가 가능했고, 많은 사람들이 그 연주를 사랑하는 것이다. 또 한 가지는 조성진처럼 피아노를 잘 치는 사람은 앞으로도 계속 나와서 조성진을 2, 3등으로 밀어내겠지만, 윤효간을 2, 3등으로 밀어내는 일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윤효간은 자신만의 분야에서 차별화된 최고이기 때문이다.

그날 윤효간의 연주회에 많은 부모들이 자녀들을 데리고 관람을 왔다. 이 연주회의 특징 중의 한 가지가 피아노 연주가 끝난 다음 질의응답 시간이 있다는 점이었는데, 그때 자녀들에게 윤효간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그날 부모들의 질문을 들으면서 느낀 점은 부모들은 고졸인 윤효간도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되었는데 내 자녀도 그렇게 될 수 있지 않겠느냐는 막연한 의망을 갖고 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만약 거기에 온 아이들 중에서 어떤 아이가 윤효간을 따라서 했다고 해서 윤효간처럼 성공할 수 있을까? 나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고 확언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아이는 절대로 차별화된 최고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차별화된 최고가 될 수 있을까? 가장 간단하고 쉬운 방법은 자신만의 분야를 만들어서 거기서 최고를 하면 된다. 아니 자신만의 분야를 만들면 저절로 최고가 된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처럼 남이 만들어준 분야에서 최고하기는 너무 어렵지만, 피아니스트 윤효간처럼 자신이 만든 분야에서는 얼마든지 최고를 할 수 있다. 나는 지방 대학에 강연을 갈 때면 안타까움을 많이 느끼고 한다. 고졸 학력인 윤효간이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될 수 있는 것처럼, 자신만의 길을 찾아 차별화된 최고이 되기 위한 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규격화된 최고가 되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부모와 교사, 교수 등 주위로부터 구박을 받아 주눅이 든 지방대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 안타깝다. 이제 세상은 과거의 규격화된 최고 인재도 필요하지만, ‘차별화된 최고가 더욱 더 필요한 시대로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