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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로서 살아온 30여 년의 세월과 더불어 인생 후반기를 맞아 행복을 추구하는 기술자의 변신 스토리입니다. --------- 기술 자문(건설 소재, 재활용), 강연 및 글(칼럼, 기고문) 요청은 010-6358-0057 또는 tiger_ceo@naver.com으로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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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인 원장이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에서 마지막으로 <한겨레>와 만났다. 그는 “내년 봄 창립하는 칼 폴라니연구소에서 소장으로 일할 예정”이라며 “아직 조합원 총회를 거치지 않았으니 확정은 아닌 셈”이라고 말하며 웃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폴라니 연구소’ 창립하는 정태인

정태인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새사연) 원장이 자리를 옮긴다는 소문이 지난해부터 학계와 시민사회에 파다했다. 사실이다. 이변이 없는 한 내년 봄 문을 열 ‘칼 폴라니 연구소’ 한국 소장을 맡게 될 예정이다.

12일 오후, 그는 서울 마포구 독막로 새사연에서 이삿짐을 싸고 있었다. “이달 중순으로 예정됐던 연구소 개소를 약간 미루고 협동조합 체제를 보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창립준비위원회 일을 하느라 여념이 없다.

칼 폴라니 연구소는 캐나다 퀘벡주 몬트리올에 거점을 두고 있다. ‘사회적 경제’의 이론적 배경을 제공한 칼 폴라니(1886~1964)의 학술적 성과를 계승하고 사상을 전파하려고 1988년 설립했다. 폴라니의 딸인 맥길대 경제학과 교수 카리 폴라니레빗이 이사장, 사회적 경제의 석학 마거리트 멘델이 소장을 맡았다. 아시아 지부가 될 서울 연구소엔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 이병천 강원대 경제학과 교수가 힘을 보태고 있다.

“우리는 정책 실천을 염두에 두고 현실에 맞게 폴라니의 이론을 재해석할 생각이다. 이런 연구를 통해 자본주의 기업과 협동조합을 연결하고, 거시 정책도 구상할 수 있다고 본다.”

글 잘 쓰는 경제평론가, 시민사회 경제정책 ‘브레인’으로 통하는 그는 참여정부에서 국민경제 비서관과 대통령 직속 동북아경제중심 추진위원회 기조실장을 맡았다. 청와대를 나온 뒤 2006년 한미에프티에이저지 범국민운동본부 본부장으로 활동했다. 이 때문에 “왕의 남자가 왕을 배신했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그간 정책 경험에 대해서는 “지도자가 잘 알고 있지 않으면 관료에게 당하고 재벌에게 밀린다”고 잘라 말했다. “내가 무지했다는 생각 때문에 뼈저리게 반성한 시간이 있었다. 그 뒤론 정확하게 이론과 현상을 알고 구체적으로 방안을 가지려고 노력했다.”

그 뒤엔 주류 경제학의 한계를 뛰어넘는 사회적 경제, 공공경제, 생태경제 연구에 몰두해왔다. 얼마 전 캐나다에서 연 칼 폴라니 국제학회에 참석해서도 ‘다원적 경제 모델’을 폴라니 이론과 접목해 발표했다. “그의 대표작 <거대한 전환>(1944)의 핵심은 ‘시장 원리로 사회를 조직하면 사회는 붕괴한다’는 것이다. 다원적 경제는 시장경제뿐 아니라 공공경제, 사회적 경제, 생태경제까지 다양한 경제가 공존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래야만 평등·효율성·지속가능성·연대의 가치를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새사연에서 칼 폴라니 연구소로
시장·공공성·생태의 ‘다원적 경제’
연말 피케티 분석서도 발간

그는 ‘인간 본성’에 대한 탐구자이기도 한데, 이는 폴라니가 강조한 ‘상호성’ 논의와도 연관된다. ‘호혜’는 ‘양의 상호성’, 곧 서로 좋은 것을 주고받는 것을 가리킨다. 하지만 협동에서는 ‘음의 상호성’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상대가 무임승차 같은 이기적인 행동을 하면 응징한다는 것이 ‘음의 상호성’이다.

“받은 만큼 베풀고, 남이 잘 대해주지 않으면 응징하는 것이 상호성이다. ‘협동’에서는 음의 상호성도 필요하다. 상호성을 이끌어내는 것이 ‘신뢰’다. 신뢰는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상대방이 공동체 보편 규범에 따라 협동할 것이라는 믿음이다.”

서로 신뢰하지 못하면 개인 이익이 최대치가 될 수 없다. 서로 협동한다는 전제 아래 이익의 최대치가 발생한다. 국가와 시장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시민사회가 협동의 제도와 규범을 만들고 네트워크를 조직하면 사회적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폴라니 연구소는 이런 정책 요소들을 고려해 사회적 경제 단체 및 지방자치단체를 연계하는 허브 구실을 할 예정”이라고 한다.

올해는 정 원장에게 무척 분주한 해였다. 그는 지난봄부터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을 일찌기 한국 사회에 적용하며 대중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폴라니가 사회적 경제의 이론적 원천을 제공했다면, 피케티는 재분배 경제의 효율성과 평등 가치관을 정립하는 계기를 던져줬다”고 그는 말했다. “이를 우리가 잘만 소화해낸다면 아이들에게 좀더 행복하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계층간 소득 불평등이 확대될 수밖에 없다는 피케티의 이론을 둘러싼 논쟁이 확산되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뜨거운 열기는 어느새 미지근해져가고 있다. 이에 대해 그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한국은 실제 사회(계층) 이동 가능성은 최하위인데, 그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 경향이 제일 강하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자신의 처지가 상향될 수 있다는 기대가 여전히 크기 때문에 소득 불평등의 심각성을 외면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1960년대 세계에서 가장 평등한 나라 중 하나였다. 하지만 지금은 자본 소득과 노동 소득의 비율을 뜻하는 베타값이 7.5 정도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1995년부터는 세계에서 제일 빠른 속도로 불평등이 심화하고 있다. 경쟁은 심각해지는데, 빈부격차는 여전히 개인의 노력에 달렸다고 생각하니 불평등을 교정하려는 주장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는 불안정한 상황이 오히려 길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했다. “교황도 ‘규제 없는 자본주의는 새로운 독재’라고 하지 않았나. 독재의 결과는 불평등과 배제다. 박근혜 정부의 최경환식 ‘부채 주도 성장’은 곧 파산할 것이다. 대기업 외에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중심의 네트워크 경제가 필요하다. 인간은 상호적이어야 함께 번영할 수 있고, 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리라 본다.”

그는 올 연말까지 <피케티와 한국 경제>(가제·레디앙)를 낼 예정이다. 폴라니의 저작들도 내년부터 한해에 두권씩 연구소에서 발간할 것이라고 했다. 시장경제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학술과 실천의 탐색이다.

 

(한겨레 2014년 11월 14일 이유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