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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로서 살아온 30여 년의 세월과 더불어 인생 후반기를 맞아 행복을 추구하는 기술자의 변신 스토리입니다. --------- 기술 자문(건설 소재, 재활용), 강연 및 글(칼럼, 기고문) 요청은 010-6358-0057 또는 tiger_ceo@naver.com으로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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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부암동 백사실계곡 숲. 별서 터에서 내려다본 모습이다. 사진 앞쪽에 연못 터 일부와 못가에 남은 육각정 초석들이 보인다.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 서울 도심 숲길
도심속 청정계곡 백사실과 인왕산·북한산 산책길…서울시 누리집 ‘두드림길’에 걷기 정보 빼곡

‘도심속 비밀 정원’, ‘서울 도심의 청정 생태계곡’…. 서울 인왕산 자락 부암동의 백사실(백석동천·백석실) 계곡을 일컫는 말들이다. 처음 이곳을 찾는 이들의 첫마디도 대개 “서울 복판에 이런 데가 다 있었네!”다. 이런 찬사들이 제대로 어울리는, 도롱뇽·가재·무당개구리·버들치들이 사는 생태·경관보전지역이지만, 이곳을 관리하는 이의 입에선 다른 말이 튀어나왔다.

“지금 가물어서 물이 말라 그렇지, 물이 좀 불어나 봐요. 어른은 물에 들어앉아 발 씻고 애들은 물놀이하고, 버들치·가재 잡는다고 훌뒤집고, 아주 볼 수가 없어요.”(종로구청 공원녹지과 직원)

응선사쪽 입구부터 현통사까지
길이 500m 짧고 아늑한 골짜기
바람소리·새소리·물소리 청량해
최근 가뭄으로 물길은 빈약

그는 “일부 언론에서 백사실 계곡을 물놀이 피서지나 유원지 식으로 소개한 탓이 크다”고 말했다. 종로구청 쪽이 ‘백사실 계곡은 유원지가 아닙니다’ ‘백사실 생물들이 화가 났대요’ 등 이곳이 생물보호종 서식지이자 문화재 보호구역임을 강조하는 내용의 안내 전단을 따로 만들어 배포했을 정도다. 물놀이·취사는 물론 물가에서 음식물을 먹는 행위도 금지된 곳이다.

종로구 옥인동(서촌) 인왕산 자락의 수성동계곡.
백사실 계곡 하류 쪽 입구의 현통사.

일부 방문객의 잘못된 행태를 제외한다면 이 짧고 깊은 골짜기는 메마른 도심 속에서 도드라지게 빛나는 청정 샘터임에 틀림없다. 백악산(북악산의 옛지명)에서 유래한 지명(백석동천·백석실)이 변해 백사실로 불리는 이곳은 1968년 무장간첩 침투사건 이래 군사지역으로 묶여 출입이 통제됐다가 2006년에야 일반에 개방됐다. ‘백사실’이 조선 전기의 문신 백사(白沙) 이항복의 별서(자연 속에 은거하던 별장)가 있던 데서 연유한 이름이라 전해오지만 확인되지 않았다. 최근 <완당전집>에서 추사 김정희가 이 별서를 매입했다는 기록이 확인됐다고 한다.

추사가 머물던 별서 터엔 ㄴ자형 사랑채의 초석들과 돌계단·석축이 고스란히 남아 있고 뒤쪽 안채 터엔 잡풀이 무성하다. 사랑채 앞엔 물이 마른 둥근 연못 터가 있는데 못가에 남은 육각정 초석들을 볼 수 있다. 별서 터 앞 느티나무 그늘이나 솟대 옆 나무의자에 앉아 생각에 잠기는 이들이 많다. 울창한 숲 안에 들어선 별서 건물과 연꽃이 만발했을 연못, 못가의 정자와 물소리 자욱한 청정 계류 같은 김정희 때의 경치를 떠올려 보는 걸까.

응선사 쪽 입구부터 하류 현통사까지 길이 500m가량의 짧은 골짜기지만 숲은 아늑하기 그지없다. 비 오면 빗소리에, 비 그치면 물소리에 귀와 턱을 맡겨두고 오래 머물고 싶어지는 숲이다. 참나무·느티나무·소나무·밤나무들 우거진 숲길 따라 끊이지 않는 탐방객들 인기척 사이로 청량한 바람소리와 새소리도 쉬지 않고 오고 간다. 하지만 물길은 빈약하다. 가뭄 탓에 거의 말라가는 물길의 얕은 웅덩이마다, 막판으로 몰린 버들치들이 작은 인기척에도 놀라 몰려다니며 아우성이다.

골짜기 위쪽 바위엔 ‘백석동천’ 글씨가, 별서 터 앞 맞은편 산비탈 바위엔 ‘월암’이란 글씨가 한자로 새겨져 있다. ‘동천’이란 ‘신선이 살 만한 경치 좋은 산골짜기’를 뜻하는 말이다. 골짜기 하류 현통사 앞쪽과 더 아래쪽, 집들이 다닥다닥 붙은 물길의 거대한 암반들을 통해, 수려했을 이 골짜기의 옛 경치를 어렵지 않게 떠올려볼 수 있다.

백사실계곡 주변엔 차를 댈 곳이 마땅치 않으므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게 좋다.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서 7022, 7212, 1020 등 버스를 타고 창의문에서 내려 백사실로를 따라 걸으면 된다. 창의문~응선사 20분 거리. 백사실계곡 산책과 함께 세검정초등학교 안의 ‘장의사 당간지주’, 인조반정 뒤 칼을 씻은 곳이라는 세검정, 흥선대원군 별서였던 석파정(서울미술관), 현진건 집터 등 신영동·부암동 역사·문화 도보탐방을 해볼 만하다. 창의문~백사실~세검정~석파정~현진건 집터~창의문 약 3시간30분.

이밖에 옛 골목길 풍경 속에 예쁜 카페들이 들어선 서촌(경복궁 서쪽) 일대와 함께 겸재 정선의 그림 ‘수성동’을 통해 진경산수화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인왕산 자락 수성동계곡(최근 복원)을 산책해볼 만하다. 북한산 둘레길의 한 구간인 도봉옛길, 용마산 묘지공원길, 불암산자락길, 관악산자락길 등도 완만하고 울창한 숲길이다.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누리집 ‘두드림길’을 검색하면 한양도성길·생태문화길·근교산자락길·한강지천길·서울둘레길 등 다양한 테마의 서울시내 걷기 코스를 지도와 함께 찾아볼 수 있다. 여행 문의 각 구청 공원녹지과.


>>> 저녁 숲길걷기 알아두기

숲에서 멧돼지 만나면 어떡하지?

더위를 피해 저녁 숲길 걷기나 야간 산행에 나서는 이들이 늘고 있다. 자외선 걱정 없이 선선한 숲길에서 산책 겸 운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밤중 산행이든 해 질 무렵 숲길 걷기든 만일의 사고에 대비한 충분한 사전준비가 필요하다.

아무리 걸림돌이 없는 완만한 숲길, 나무데크길이어도 등산화는 기본이다. 길을 잘못 들 수도 있고, 둘레길 등 완만한 길까지 오르내리는 과정이 바윗길일 수도 있다. 해 진 뒤 하산길을 비춰줄 손전등이나 헤드랜턴도 반드시 준비해야 한다. 휴대폰 손전등 앱을 내려받아 두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저녁 무렵 나홀로 산행은 금물이다. 반드시 2~3인 이상이 함께 걷도록 한다.

초저녁에 나섰더라도 산속에선 금세 어두워지므로, 해가 지면 곧바로 하산을 시작하는 게 좋다. 하산할 땐 되도록 왔던 길로 되돌아가도록 한다. 초행길이라면 더욱 그렇다. 해 진 뒤 하산길엔 돌부리나 바위, 계단, 그리고 미끄러짐 등에 각별히 신경써야 한다. 일기예보를 미리 챙겨보고, 바람막이나 긴팔옷도 준비하는 게 좋다. 짧은 숲길 걷기에 나설 때도 생수·간식 등을 챙기도록 한다. 모기가 기승을 부리는 곳도 있으므로 뿌리는 모기약도 챙기자.

최근 부쩍 늘어난 야생동물과의 조우도 염두에 둬야 한다. 만약 야생 멧돼지를 만났다면 절대 소리를 지르거나 달아나지 말고 신속하게 주변 바위나 나무 뒤로 몸을 피하도록 한다. 새끼를 거느린 경우엔 어미 돼지의 신경이 예민해지므로 더욱 조심해야 한다.

 

(한겨레 esc 2014년 7월 24일 이병학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