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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로서 살아온 30여 년의 세월과 더불어 인생 후반기를 맞아 행복을 추구하는 기술자의 변신 스토리입니다. --------- 기술 자문(건설 소재, 재활용), 강연 및 글(칼럼, 기고문) 요청은 010-6358-0057 또는 tiger_ceo@naver.com으로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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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16일 밤 서울 서대문구 안산(296m) 정상 봉수대 옆에서 바라본 서울 남쪽 야경. 여의도 63빌딩과 한강 물줄기 일부도 보인다.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 서울 도심 저녁 산책 코스
햇살이 한풀 꺾이는 틈, 저녁 산책을 나간다. 더위를 벗어나기 위해 많은 이들이 탈출한 도심 산책길은 고요하다.
축축하게 젖은 녹음의 향기와 머리카락을 들썩이는 바람을 벗삼아 언덕을 오르면 아름다운 야경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한낮 폭염과 한밤 열대야가 이어지며 밤낮으로 피곤이 쌓이는 한여름. 더위를 씻으면서 건강도 챙기고, 잠 못 드는 밤을 해결하는 방법은 없을까.

“일주일에 한두번 저녁때 와서 한바퀴 걷고 내려가지요. 바람 시원해서 좋고 야경도 끝내줍니다.” 지난 7월17일 해 질 무렵, 서울 중랑구 용마산 묘지공원길 들머리에서 만난 박아무개(55·망우1동)씨는 저녁 산길 걷기로 더위를 잊고 산다고 했다. “한바탕 걷고 내려가서 찬물에 샤워한 뒤 잠을 청하면 바로 곯아떨어질 수 있지요.” 박씨의 경우처럼, 선선한 산바람 쐬며 초저녁 산행을 즐기기 위해 가까운 야산을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가벼운 산행으로 한여름 더위를 이기며 건강을 챙긴다는 이들이다.

그렇다면 서울 도심에서 남녀노소 온 가족이 안전하게 거닐면서 도심 야경 전망까지 감상할 수 있는 시원한 숲길은 어딜까. 초저녁에 걷기 시작해 해 질 무렵 야경을 감상하면서 내려오면 좋을, 완만한 숲길과 빼어난 전망을 갖춘 서울 도심의 산길을 둘러봤다. 손전등에 기본 산행장비만 갖춘다면, 어렵지 않게 저녁 산책 겸 운동을 즐길 수 있는 곳들이다.

서울 서대문구 안산
데크로 보강한 완만한 둘레길
두세시간이면 한바퀴 돌아
광진구 아차산 숲길
곳곳의 가로등으로
야간 산길 안전

걸림돌 없는 안산자락길, 정상의 도심야경 황홀

안산 둘레를 한바퀴 도는 ‘안산자락길’의 동쪽 나무데크 구간.

“나 같은 늙은이도 매일 산책할 수 있으니, 좀 좋아? 길 완만하지, 나무 많지, 전망 좋지. 봄엔 벚꽃이 어마어마해요. 여의도 저리 가라 그래.” 지난 17일 안산 자락길(안산 둘레길) 안산방죽 위 쉼터에서 만난 김아무개(75·연희동)씨와 동료들의 자랑이다. 수십년씩 안산을 오르내리며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는 어르신의 말씀엔 안산에 대한 애정이 듬뿍 배어 있었다.

안산(296m)은 서울 서대문구에 솟은 낮고 완만한 산이다. 낮지만 숲이 울창하고, 곳곳으로 오솔길·나무데크길이 뻗어 있는데다, 전망까지 빼어나다. 해가 기울어가는 네댓시쯤 산에 올라 천천히 산 둘레의 완만한 숲길을 거닐다, 잠깐 산길을 오르면 펼쳐지는 정상에서의 장쾌한 전망을 즐긴 뒤, 해가 진 직후 야경을 감상하며 내려오기 딱 좋은 산이다. 최근 계단도 없고 턱도 없는 나무데크와 일부 흙길이 이어지는 길이 7㎞의 ‘안산자락길(둘레길)’이 조성되며 찾는 이들의 발길이 늘고 있다. 넉넉잡고 3시간이면 둘레길을 한바퀴 돌 수 있다.

서대문독립공원 왼쪽 계단길을 올라 이진아도서관 위쪽에서 나무데크길을 만나 안산자락길을 걷기 시작했다. 일단 데크길에 오르면, 하늘색 또는 노란색 화살표를 따라 걸으면 출발점으로 돌아오게 된다. 노란색은 시계 방향, 하늘색은 반대 방향이다. 길은 지팡이 짚은 어르신도 부담 없을 만큼 완만하고, 소나무·참나무·잣나무·자작나무·메타세쿼이아 숲은 해를 가릴 만큼 울창하다. 가파른 산비탈엔 나무데크길이 지그재그로 설치돼 경사도를 줄여준다. 숲그늘 짙은 평지엔 쉼터와 운동시설이 설치돼 있고, 약수터는 안산 자락 전체에 무려 27곳에 이른다.

뭐니 뭐니 해도 안산의 가장 큰 매력은 정상에서의 멋진 도심 전망이다. 나무데크길 곳곳에서 연결되는 흙길·바윗길·계단길을 10여분 또는 20여분 걸어오르면 봉수대가 있는 안산 꼭대기에 닿는다. 정상의 봉수대는 조선시대 안산의 두 봉수대 중 ‘동봉수대’로 최근 복원해 놓은 것이다. 둘레길을 걷던 이들은 대개 반쯤 걷고 나서 산길을 타고 정상으로 향한다. 동쪽 북카페~백암약수~정상 코스는 다소 가파르고, 서쪽 무악정~정상 산길이 비교적 완만하다.

안산 꼭대기 전망은 예상을 뛰어넘는다. 이렇게 낮은 산이 이토록 장쾌한 전망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가까운 아파트 무리에서부터, 인왕산·북한산·북악산·남산 등 가깝고 먼 산들과, 산들이 품고 있는 광화문·용산·여의도·신촌 등 도심의 고층빌딩 숲이 빼곡하게 우거져 있다. 북서쪽 일부 전망을 제외하곤, 270도가량의 시야가 좌우로 시원하게 펼쳐진다.

해가 저물자 빌딩 숲에 별이 뜨듯 하나둘씩 불빛이 켜지면서 황홀한 서울 야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산행객들은 난간에 기대서서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별꽃들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어두워질수록 경관은 아름다워지지만, 아쉬움을 남긴 채 하산길을 재촉해야 한다. 준비한 손전등을 켜고 돌부리와 계단에 주의해 나무데크길까지 내려서면 다시 걸림돌 하나 없는 평탄한 둘레길이다.

안산 주변엔 볼거리도 많다. 일제강점기 애국지사들이 투옥되고 희생됐던, 옛 경성감옥 자리에 조성한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이나 신라 때 연세대 터에 창건됐다가 옮긴 고찰 봉원사 등이다. 봉원사는 한글학회의 시초가 된 국어연구학회가 1908년 창립총회를 연 곳이기도 하다. 봉원사 명부전 현판은 조선 개국공신 삼봉 정도전의 친필이다.

산행 들머리는 서대문구청·독립문역·봉원사 등 여러 곳이다. 어디든 10여분 걸어오르면 안산자락길과 만난다.

고구려 자취 따라 걷는 아차산 숲길

지난 7월19일 저녁 서울 광진구 아차산 숲길에서 만난 야간산행꾼들.

서대문구의 안산이 서울시내 전망대라면, 광진구와 구리시 경계에 솟은 아차산(287m)은 서울 동부 외곽 한강 물줄기 전망대다. 어렵지 않게 오르내리며 울창한 숲과 빼어난 경관, 그리고 선인들의 발자취를 두루 만나볼 수 있는 완만한 산이다. 계단길과 흙길을 20여분 오르면 능선 좌우로 펼쳐지는 광진구 일대와 구리시·서울시 경계 지역의 한강 경관이 장관이다.

아차산은 삼국시대 고구려·백제·신라군이 한강 유역 영토를 놓고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거점지역이다. 산 능선을 따라 고구려군이 쌓은 보루(둘레 100~300m의 작은 성곽)들이 즐비하고, 남쪽 자락엔 백제군이 쌓은 아차산성이 있다.

아차산 생태공원이 숲길 들머리다. 아스팔트길 따라 오르다 계단길을 잠시 오르면 낙타고개와 만나는 갈림길 지나, 첫번째 전망대인 고구려정에 이른다. 고구려정은 비탈진 바위자락 위에 고구려 건축 양식으로 최근 지은 정자다. 한강 물줄기 일부가 보이지만 전깃줄이 시야를 가린다. 여기서 계단길을 따라 잠시 오르면 해맞이광장이다. 여기서부터 능선길을 따라 오르면서 두세 곳에 나무데크 전망대가 설치돼 있다. 광진구·중랑구 일대 도심 전망도 좋지만, 북서쪽으로 마주 보이는 용마산과 그 밑으로 길게 뻗어내린 긴고랑 골짜기의 수림지대가 짙푸르다. 해맞이광장 지나면서 산길은 능선길이다. 능선길 자체가 좌우 전망대 구실을 하다시피 하지만, 전망 좋은 곳은 출입금지 팻말이 붙은 보루 유적지다. 3보루와 정상에 위치한 4보루는 출입이 허용된다. 전망이 멋진 장소는 정상보다는 3보루 주변과 해맞이광장과 3보루 사이의 전망데크들이다. 아차산의 보루 중 가장 널찍한 3보루에서의 구리시와 강동대교 등 한강 쪽 물줄기 경관이 아름답다.

야경까지 즐기려면, 초저녁에 산행을 시작해 정상에 이르는 동안 도심과 한강 풍경을 감상한 뒤, 해 질 무렵 하산을 시작해 전망데크들과 해맞이광장·고구려정을 거쳐 내려오며 차례로 해 진 뒤의 야경을 즐기는 것이 좋겠다. 완만하긴 하지만, 바윗길과 흙길 계단길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아차산생태공원에서 해맞이광장까지는 곳곳에 가로등이 있어 야간에도 큰 불편 없이 오르내릴 수 있다. 고구려정에도 조명등이 켜진다.

아차산생태공원 주차장은 밤 10시까지 관리인이 지킨다. 광나루역이나 아차산역에서 생태공원까지는 각각 10여분 거리.

이밖에 종로구 혜화동에서 낙산공원 거쳐 한양도성 성곽을 따라 흥인지문까지 이어지는 낙산성곽길(약 3㎞)도 서울 야경을 감상하며 산책하기 좋은 곳이다. 강북구 번동 옛 드림랜드 터에 조성된, 북서울꿈의숲에서도 숲길과 야경을 함께 즐길 수 있다. 시내 야경과 북한산·도봉산·수락산 경치가 두루 아름답다.

 

(한겨레 매거진ESC 2014년 7월 24일 이병학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