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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로서 살아온 30여 년의 세월과 더불어 인생 후반기를 맞아 행복을 추구하는 기술자의 변신 스토리입니다. --------- 기술 자문(건설 소재, 재활용), 강연 및 글(칼럼, 기고문) 요청은 010-6358-0057 또는 tiger_ceo@naver.com으로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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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백만기의 은퇴생활백서(21)
점자도서관. 은퇴 후 지역사회에 기여할 바를 찾다가 시각장애인을 위해 책을 낭독해 주는 점자도서관이 있다는 것을 알고 지원했다. 선발에는 몇 가지 테스트가 있는데 마지막 단계는 시각장애인의 어려움을 직접 체험하는 실습 과정이 있다. [사진 백만기]

점자도서관. 은퇴 후 지역사회에 기여할 바를 찾다가 시각장애인을 위해 책을 낭독해 주는 점자도서관이 있다는 것을 알고 지원했다. 선발에는 몇 가지 테스트가 있는데 마지막 단계는 시각장애인의 어려움을 직접 체험하는 실습 과정이 있다. [사진 백만기]

 
오랜만에 만난 후배에게 신선한 이야기를 들었다. 외국 기업의 독일 지사에서 근무하다가 임기가 끝나 돌아왔는데, 입양한 독일인 장애아를 데리고 귀국한 것이다. 피부색도 다른 데다가 장애가 있어 우리나라에서 양육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 염려했더니 독일은 우리나라 아이를 많이 입양했다며 우리 또한 그리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는 입양한 장애아를 위해 요즘 집안에 문턱을 없애는 등 집수리에 한창이라고 했다. 입양이라면 아이를 양육하기 어려운 사람이 해외로 보내거나 자식이 없는 부부가 미혼모의 아이를 입양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외국에서 태어난 그것도 장애가 있는 아이를 입양하다니 한편으로는 부끄럽고 또 한편으로는 그가 자랑스러웠다.
 
직장에서 은퇴한 후 지역사회에 기여할 바를 찾다가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을 위해 책을 낭독해주는 점자도서관이 있다는 것을 알고 지원했다. 몇 차례의 목소리 테스트를 거쳐 선발되었는데 마지막으로 시각장애인의 어려움을 직접 체험하라는 의미에서 눈을 안대로 가리고 직접 거리를 걷는 실습과정이 있었다.
 
시각 장애인 어려움 직접 체험해 보니
한 대학에서 진행한 시각 및 지체장애 체험 모습. 눈을 가리고 길을 걷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처음엔 가볍게 느껴졌던 지팡이가 시간이 지날수록 무거워졌고 앞이 보이지 않아 두려워서 잘 걸을 수 없었다. [중앙포토]

한 대학에서 진행한 시각 및 지체장애 체험 모습. 눈을 가리고 길을 걷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처음엔 가볍게 느껴졌던 지팡이가 시간이 지날수록 무거워졌고 앞이 보이지 않아 두려워서 잘 걸을 수 없었다. [중앙포토]

 
점자도서관 지하 강당에 모인 지원자들은 2인 1조가 돼 계단을 올라 밖으로 나섰다. 눈을 가리고 길을 걷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처음엔 가볍게 느껴졌던 지팡이가 시간이 지날수록 무거워졌고 도대체 앞이 보이지 않으니 두려워서 잘 걸을 수 없었다.
 
자동차 서행을 유도하기 위해 설치된 아파트 단지 내의 요철에 걸려 넘어질 뻔했다. 또 거리에서 들리는 자동차의 경적이 꼭 나를 덮치는 듯했다. 이런 체험을 직접 하면서 장애인이 겪는 어려움이 정상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알았다. 도서낭독봉사자는 이런 과정을 통해 책임과 의무감을 갖게 된다.
 
시각장애인이 어떻게 횡단보도를 건널 수 있을까, 어떻게 계단을 내려와 지하철을 탈 수 있을까 하는 것을 생각하다 보면 우리가 생활 속에서 당연시하며 지내는 일상이 대단하다는 걸 느낀다. 계단 옆에 설치된 손잡이가 왜 그곳에 있는지 평소에는 몰랐다. 하지만 장애인에게는 무엇보다 소중한 시설물이다.
 
시각장애인의 90% 이상이 생후 1년 이후에 발생한 후천성 장애라고 한다. 그리고 그 절반이 40세 이후에 발생했다. 이것은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눈뿐만 아니다. 나이가 들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몸 여기저기에 장애가 오기 마련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17년 노인실태조사 분석 보고서에 의하면 65세 이상 노인 중 73%가 2개 이상의 만성질환을 갖고 있다. 옷을 입거나 세수하기, 음식 먹기, 화장실 출입 등의 일상생활수행능력에 제한이 있는 노인도 8.7%나 된다.
 
나이든 부모의 일상생활수행능력이 떨어지면 흔히 요양원으로 모시는 사람이 많다. 그런 사람도 자신이 그 나이가 되면 요양원에는 가지 않겠다고 한다. 왜 요양원에 가지 않으려고 할까. 요양원에 입원하면 그곳의 통제에 따라야 하고 독립적으로 생활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요양원은 마치 계륵과 같은 존재다.
 
고령자 주택 개·보수 사업 지원하는 일본
봉사자들이 주거환경 개선이 필요한 곳을 직접 찾아가 도배와 장판을 교체해주는 집수리 봉사를 펼치고 있는 모습. 장애가 생긴 노인을 요양원으로 모시기보다 우선은 집수리를 통해 어떻게 자택에서 독립적으로 활동할 수 있을지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사진제공=희망브리지) 뉴스1

봉사자들이 주거환경 개선이 필요한 곳을 직접 찾아가 도배와 장판을 교체해주는 집수리 봉사를 펼치고 있는 모습. 장애가 생긴 노인을 요양원으로 모시기보다 우선은 집수리를 통해 어떻게 자택에서 독립적으로 활동할 수 있을지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사진제공=희망브리지) 뉴스1

 
먼저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일본에서는 조금 허약하거나 장애가 있어도 가능한 한 집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고령자 집을 고쳐주는 주택 개·보수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요양원에 입원하는 시기를 늦추고 어르신에게 독립된 생활을 보장하기 위함이다. 2015년 기준 4500억 원이 지원됐다.
 
우리도 장애가 생긴 노인을 직접 요양원으로 모시기보다는 우선은 집수리를 통해 자택에서 거주하는 기간을 늘려야 한다. 화장실 변기 옆에 손잡이를 부착하고 복도에 난간을 설치하며 집 안의 문턱을 제거하거나 출입문을 미닫이문으로 교체하는 것 등이다. 욕조 바닥에 미끄럼 방지 깔판을 놓는 것도 필요하다. 자칫 미끄러지기라도 한다면 고관절이나 머리를 다치기 쉽다.
 
자녀를 위해서는 사교육에 공을 들이고 이것저것 신경을 쓰지만 막상 어르신이나 장애인에게는 배려가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정부는 복지예산의 일부를 집수리 비용으로 지원해 장애 노인이 가급적 집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정책 방향을 선회할 필요가 있다. 그만큼 요양급여 예산도 줄어들 것이다. 새로운 일자리도 창출할 수 있다.
 
가족도 부모가 일상수행능력이 떨어졌다고 해서 그저 요양원에 입원시킬 것이 아니라 거주공간을 개량하여 어떻게 하면 부모가 독립적으로 활동할 수 있을지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그것은 곧 자신의 노후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
 
백만기 아름다운인생학교 교장

[출처: 중앙일보 2018년 11월 24일] 어르신을 요양원 아닌 자택에 모셔야 하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