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엔지니어로서 살아온 30여 년의 세월과 더불어 인생 후반기를 맞아 행복을 추구하는 기술자의 변신 스토리입니다. --------- 기술 자문(건설 소재, 재활용), 강연 및 글(칼럼, 기고문) 요청은 010-6358-0057 또는 tiger_ceo@naver.com으로 해 주세요.
행복 기술자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최근에 받은 트랙백

글 보관함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ESC] 한우도 달구지 끌고 그 길 걸었겠지

 

옛길과 새길의 재발견, 강원 횡성 여행

지난 13일 횡성군 갑천면 횡성호수길 비(B) 코스. 호수에 비친 산의 능선이 아름답다. 김선식 기자

 

강원도를 꽤 드나들었는데도 횡성에 반나절 이상 머문 기억이 없다. 강릉, 평창 등에 머물다 돌아오는 길, 한우나 안흥찐빵을 사 먹으려고 잠시 들른 게 전부다. 경기도 여주시, 양평군과 맞닿은 횡성은 수도권에 가깝고 교통이 편리하다. 횡성에만 강릉선 케이티엑스(KTX) 정차역이 2개다.(횡성역, 둔내역. 서울에서 KTX로 1시간 20~30분 거리.) 등잔 밑이 어두웠다. 횡성엔 한우, 안흥찐빵에 이어 새로운 명물이 등장했다. 바로 옛길이다. 횡성 우천면, 안흥면 일대 옛 42번 국도는 ‘명품 숲’(상안리 낙엽송 숲)과 놀이터(횡성 루지 체험장)로 화려하게 변신했다. 자동차들이 옛길 대신 더 빠르고 반듯한 새길로 가는 덕이다. 옛길 못지않게 새로 놓인 길도 주목받고 있다. 횡성 갑천면 옛 동네 뒷산엔 없던 길이 깔렸다. 횡성군은 횡성호 건설로 수몰된 마을 뒷산에 호수 길(횡성 호수 길)을 정비했고, 숲을 사랑한 한 초로의 신사는 숲 탐방로를 닦아 오가는 이들과 숲(노아의 숲)을 나눈다. 지난 12~13일 강원도 횡성에서 옛길과 새길을 걸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엔 ‘횡성 한우’가 우마차를 끌고 그 길을 걸었을 것이다. 일제강점기엔 목재를 운반하는 트럭이, 그리고 1995년까진 원주~횡성~평창을 오가는 버스가 그 길로 다녔다. 횡성 안흥면 상안리에서 문재(고개)를 넘어 평창 방림면 운교리로 이어지는 옛 42번 국도는 과거 관동대로, 문재국도 등으로도 불렸다. 인천부터 정선, 동해를 잇는 주요 도로로 구실을 톡톡히 했다. 1995년 문재터널이 뚫리면서 옛길은 찻길로는 쓸모를 다했다. 그제야 임도를 품은 숲이 보였다. 백덕산 끝자락 삿갓봉에서 소나무와 참나무 등 천연림 약 12ha, 낙엽송, 잣나무 인공림 약 48ha가 어우러진 ‘상안리 숲’이다. 이곳은 지난해 6월 산림청이 ‘국유림 명품 숲’ 다섯 곳 중 한 곳으로 선정했다. 산림청은 경관, 생태적 가치, 여행지로서의 가치 등을 평가했다고 밝혔다. 앞서 2010년엔 북부지방산림청도 이곳을 ‘명품 숲’으로 선정했다. 수령 90년가량인 소나무와 낙엽송이 임도와 오솔길을 빼곡히 채운 숲이다.

지난 13일 횡성군 갑천면 횡성호수길 비(B) 코스. 김선식 기자

 

바람 들어오는 허름한 빨간 천막이 숲길 들머리다. 숲 해설가 2명이 교대로 거기에 머물며 안내한다. 임도 따라 자작나무, 전나무, 잣나무, 낙엽송, 소나무 군락지가 이어진다. 들머리부터 문재 정상(횡성 안흥면과 평창 방림면 경계)까지 구불구불한 임도는 약 5~6㎞다. 임도만 걸어도 왕복 2시간은 족히 걸린다. 문재 정상으로 가는 길, ‘쉼터데크’에선 치악산 비로봉을 조망할 수 있다. 우람한 소나무들이 줄기와 가지를 배배 꼬며 늘어서 있다. 문재 정상엔 옛 42번 국도임을 알리는 도로 안내판과 횡성과 평창 경계를 알리는 표지판이 남아 있다. 그 옆엔 옛 화전민이 거주하며 운영한 너와집 형태의 주막이 껍데기만 남아 있다. 임도 들머리부터 오른쪽으로 숲 탐방로 4개 구간이 거미줄처럼 이어져 있다. 문재 정상 근처까지 차례로 에이(A) 코스 0.6㎞, 비(B) 코스 1.6㎞, 시(C) 코스 3.8㎞, 디(D) 코스 5.8㎞다. 숲 탐방로는 숲속 오솔길이다. 권영민 숲 해설가는 “디(D) 코스에 있는 낙엽송 군락지는 강원도에서 가장 빽빽한 낙엽송 군락지”라며 “그 낙엽송들이 바람에 흔들리면 마치 나무가 신들린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디코스는 소나무, 철쭉, 낙엽송 군락지를 따라 걷는 길이다. 장대한 소나무, 낙엽송이 끝도 없이 나타난다. 차가 사라진 임도에선 종종 다람쥐도 만난다.

 

지난 12일 횡성군 안흥면 ‘상안리 명품 숲’. 김선식 기자

 

비교적 최근 쓸모를 다한 옛길도 있다. 횡성 우천면 오원리 일대 옛 42번 국도는 2012년 무렵 폐도로가 됐다. 근처 전재터널이 뚫리면서 더 빠른 새 도로가 생겼기 때문이다. 횡성군은 아스팔트 폐도로 그대로 새 쓸모를 찾았다. 지난 8월 폐도로 약 2.4㎞ 구간을 ‘루지 체험장’으로 개장했다. 루지는 1000~1500m 얼음 트랙에서 소형 썰매로 속도를 겨루는 겨울 스포츠다. ‘횡성 루지 체험장’에선 이용자들이 차가 달리던 아스팔트 도로에서 바퀴 달린 무동력 썰매를 타고 손잡이로 방향과 속도를 조절해 달린다. 현장 진행요원은 “개인마다 속도차가 크다”며 “2.4㎞를 완주하는 데 빠르면 3분, 늦으면 10분 걸린다”고 말했다. 천천히 가다가 마지막 구간에만 조금 속도를 냈더니 약 6분 걸렸다. 브레이크와 가속, 방향 전환 조절 장치는 섬세한 편이었다. 체험장은 충돌 방지 매트로 구불구불한 루지 코스를 만들었다. 고양이 모양 아치 등 흥미로운 디자인도 보탰다.

횡성군 우천면 오원리 ‘횡성 루지 체험장’. 김선식 기자

 

사라진 마을, 동네 아이들이 밤 주우러 돌아다녔을 뒷산엔 없던 길이 생겼다. 2000년 준공한 횡성호 물가를 따라 걷는 길이다. 횡성호는 갑천면 구방리, 중금리, 화전리, 부동리, 포동리 등 5개 마을을 수몰해 건설했다. 호수 들머리엔 이주한 253세대 938명이 옛 마을을 기억하고 찾아올 수 있도록 전시관 등을 갖춘 ‘망향의 동산’을 지었다. 호수가 생기고 사람들이 호숫가로 걸으면서 자연스레 길이 났다. 횡성군은 2015년부터 그 길을 정비해 총 6개 구간 31.5㎞ 산책 탐방로를 조성했다. 가장 널리 알려진 길이 5코스(가족길)다. 가족길은 애초 4.5km 남짓 한 구간(A코스)만 있었는데 지난해 3월 비(B)코스(4.5㎞)를 추가 개통했다. 굴곡진 호숫가 따라 걷다가 삐죽 튀어나온 물가, 은사시나무와 억새, 호수에 비친 산 능선을 보며 오랫동안 발길을 멈췄다. 호수 아래 옛 마을은 사라졌지만 호수 위엔 구름, 하늘, 산과 사람들 반영이 비친다. 옛 마을 사람들이 늘 보았던 풍경은 호수에 남았다.

횡성군 둔내면 태기산 정상(1258.8m)에서 본 해넘이. 김선식 기자

 

횡성호 주변, 어답산과 구리봉에 둘러싸인 숲이 있다. ‘노아의 숲’이다. 주인장 박주원 대표는 퇴직 후 숲이 있는 대지 6만5000평가량을 사들였다. 명이나물 밭 등을 일구며 6개 객실을 갖춘 펜션을 운영한다. 주인장 관심은 숲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퇴직 뒤 숲 해설가와 산림치유지도사 자격증을 땄다. 예약을 받아 오전, 오후, 저녁에 숲 탐방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길을 3개 구간으로 나눠 소요길, 휴선길, 새롬길이라 이름 붙였다. 숲에 길을 만들고 의미와 숨결을 불어넣었다.

 

횡성 여행 수첩

 

가는 방법

‘상안리 명품 숲’은 이름 검색만으로 찾아가기 어렵다. 주소 ‘안흥면 상안리 325-2’를 내비게이션이나 종이 지도 등을 이용해 찾아가면 ‘상안리 명품 숲’ 이정표가 장승과 함께 세워져 있다. 이정표 따라 들어가면 바로 천막이 나오는데, 거기서 안내하는 숲 해설가에게 간략한 숲 해설을 듣고 탐방하길 권한다. 특히, 임도가 아닌 에이(A)~디(D) 숲 탐방로를 걸을 계획이라면 각 코스 지도를 숙지하고 움직이는 게 좋다. 자칫 길을 헤맬 수 있다. 디 코스는 ‘소나무 탐방로’ 이후 구간 내리막길이 가파르다. 등산화와 스틱 등을 준비하면 좋겠다. ‘횡성 루지 체험장’(우천면 전재로 407/033-342-5504)은 주말 기준 1회권 1만5000원, 2회권 2만4000원. 이용권 1장마다 3000원권 관광 상품권을 발급해준다. 상품권은 횡성 우천면과 안흥면에 있는 상점 등에서 이용할 수 있다. 이용시간 9~11월 기준 오전 10시~오후 6시. 눈이나 비가 오는 날은 휴장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눈이 오는 겨울철에는 루지 코스가 얼어 당일 눈이 오지 않아도 휴장할 수 있다. 미리 문의하고 방문해야 한다. 누리집(luge.hsg.go.kr) 참고. 횡성호수길(갑천면 태기로 구방5길 40)은 입장료 2000원. 매표 시 갑천면에 있는 상점 등에서 이용 가능한 관광 상품권 2000원권을 발급해준다. ‘노아의 숲’(갑천면 외갑천로 694번길 92-20/033-344-5295)은 누리집(noaforest.modoo.at)에서 펜션 숙박, 숲 탐방 프로그램을 예약할 수 있다. 숲 탐방 프로그램(1시간)은 성인 기준 주간 1만원, 야간 2만원이다. 예약 필수.

 

식당

횡성 축협 한우프라자 본점(횡성읍 횡성로 337/033-343-9908)은 한우구이로 널리 알려진 곳. 구리뜰막국수(갑천면 청정로 227)는 막국수와 내장 전골(겨울철 메뉴) 등을 낸다. 안흥찐빵은 ‘심순녀 안흥찐빵’과 ‘면사무소앞 안흥찐빵’이 유명하다. ‘운동장 해장국’은 새벽 6시부터 한우내장해장국과 뼈해장국을 판다.

 

횡성(강원)/글·사진 김선식기자

 

[한겨레 2020년 11월 19일]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pecialsection/esc_section/970762.html#csidx544a0e97302aa7ca93904ebc431bf93